漢詩/비갠후 산에 올라서

비 갠 후 산에 올라서 (신독재 김집)

아베베1 2009. 11. 5. 16:39

 비 갠 후 산에 올라서 산꼭대기 또 꼭대기를 찾아 / 山上復山上

 푸른 아지랑이 속 휘저어 가니 / 飛笻翠微中

 구름 걷히자 산은 더 높게만 보여 / 雲收勢轉高

 눈앞이 아득하기만 하네 / 眼力渺無窮

 하늘 아래 저리도 넓은 평야 /天垂平野闊

 바다는 흐르는 물 다 받아들이고 / 海涵衆流空

 뭇 산들은 발 아래 돌며 / 足底低群嶺

 나무 끝엔 무지개가 걸려 있네 / 林梢耀霽虹

 우주 밖을 거니는 기분 / 神遊八極表

 내 지금 바람을 타고 가는 것일까 / 曠然思御風

 신선은 어디메 있다더냐 /  羽客何處在

 진실로 계합하는 마음 통하기 어려워라 / 眞契杳難通

 불로장생약 만드는 법이나 배워 / 願學鍊丹術

 단숨에 영주 봉래산으로 달려갈까 / 一擧凌瀛蓬

 

 

산속에 오래 부쳐 있으면서


이 골짝 속세 사람 찾는 이 없어 / 谷口塵蹤斷
마음 한가하기 선학과 같다네 / 閒情仙鶴如
초은의 노래가 아예 없었는데 / 旣無招隱操
절교 서신이 있을 까닭 있는가 / 寧有絶交書
밤이면 흰 구름과 함께 자고 / 夜共白雲宿
낮이면 푸른 사슴과 같이 지내지 / 晝幷靑鹿居
이만하면 그윽한 정취 만족인데 / 此中幽趣足
그 밖에 무엇을 또 바라리 / 何用更求餘


 

[주B-001]귀봉(龜峯)의 …… 차운하다 : 이하 제1권에 실려 있는 시는 모두 귀봉의 시 제목을 그대로 써서 지은 것임을 밝혀둔다.
[주D-001]초은(招隱) : 숨어 사는 선비를 나와서 벼슬하도록 부르는 일을 말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    -> 목록      ->  

 

     

      잡시 雜詩

                         도연명 陶淵明, 중국 晉나라 시인

    인생무근체
    人生無根체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표여맥상진
    飄如陌上塵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분산축풍전
    分散逐風轉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차이비상신
    此已非常身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니지.

    락지위형제
    落地爲兄弟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가 되는 것
    하필골육친
    何必骨肉親   어찌 꼭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득환당작악
    得歡當作樂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두주취비린
    斗酒聚比隣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성년불중래
    盛年不重來   한창 나이 다시 오는 거 아니고
    일일난재신
    一日難再晨   하루에 두 새벽이 있기는 어려워.

    급시당면려
    及時當勉勵   늦기전에 면려해야 마땅한 거야
    세월불대인
    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 체(艸+帶)

       

  

 


이 시는 도연명의 '잡시 12수' 가운데 첫 번째 시입니다. 도연명 시집에는 물론 실려 있고, 또한 고문진보 전집에 실려 있습니다.
人生無根체,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체(艸+帶)는 '대' '제' 등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대개 '체'로 읽습니다. 체(艸+帝)와 뜻이 같은 글자입니다. 오이 또는 과일 등에서 줄기나 가지와 연결된 부분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뿌리가 땅 깊이 들어가면 그 나무는 힘있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오이가 꼭지가 튼튼하게 줄기에 붙어 있으면 아무 탈 없이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근체는 뿌리와 꼭지, 다시말해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바탕 또는 근거를 말합니다. 인생은 정처없는 나그네 같은 것입니다. 떠돌이 신세인 것이지요.
飄如陌上塵,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표'는 바람에 날린다는 뜻입니다. '맥'은 들길입니다. 들판, 농경지 사이에 나 있는 길입니다. 혹 일반도로, 도회지의 길거리 등의 뜻으로도 쓰입니다만, 도연명 시인이 전원시인이고 시 창작의 배경이 농촌일 거라고 보면, 들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맥상'은 그 들길 위에, 진은 먼지 티끌 같은 것이니까, 맥상진은 들길에 풀풀 날리는 먼지를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문제되는 글자는 '여'자입니다. 이 글자는 '무엇무엇과 같다.'는 뜻입니다. '표'하는 것이 '맥상진'과 같다. 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표여'를 붙은 낱말로 보아서, '표연(飄然)'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표연은 그냥 '풀풀'입니다. '풀풀 저 들길의 먼지라' 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큰 뜻은 마찬가지입니다만, 문법적 구조는 약간 다릅니다.
分散逐風轉,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분산은 나뉘어 흩어진다는 뜻이고, 축풍은 바람을 따라 이고, 전은 굴러 다니는 것입니다.  나뉘어 흩어져서 바람 따라 굴러다니는 먼지와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此已非常身,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니지.
이몸은 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는 이몸을 뜻하는 것같습니다. '상신'은 항상 변치 않는 몸이라는 뜻이니, 비상신, 상신이 아니다 라는 것은 언젠가는 죽을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합니다.
落地爲兄弟, 세상에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가 되는 것.
락지는 땅에 떨어지다 는 말인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너도나도 다들 형제같은 사이가 되는 것이니,
何必骨肉親, 어찌 꼭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하필, 어찌 반드시, 골육지친만을 따지겠느냐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형제 같은 사이인데, 굳이 내 친형제만을 형제라고 할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도연명 자신이 형제가 없었거나 아니면 있다가 잃었거나 아마 그런 일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아니면 그런 상황에 있는 친구에게 지어준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두 구절과 아래의 두 구절은 형제 없음에 대한 서글픔 같은 것을 위안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得歡當作樂,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득환, 즐거운 일이 있습니다. 작악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 것같습니다. 친형제가 없더라도 의기소침해서 지내지 말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음악도 연주하며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斗酒聚比隣,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두주, 한 말의 술입니다. 량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술 한 말을 장만하여 이웃 벗들을 불러모읍니다. 비린은 이웃하고 사는 사람들이고, 취는 모은다는 뜻이니까, 이웃의 벗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盛年不重來, 한창 나이 다시 오는 거 아니고.
성년은 한창 젊은 나이를 말합니다. 젊어 기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공부에 전념해야 할 시기입니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중래는 거듭 오다 이고, 불중래는 거듭 오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공부해야 합니다.
一日難再晨, 하루에 두 새벽이 있기는 어려워.
하루에는 새벽은 한 번 밖에 없습니다. 그 새벽 시간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지요.
及時當勉勵, 늦기전에 면려해야 마땅한 거야.
급시, 때 미처 라는 뜻입니다. 때에 미친다함은 때가 늦기 전에 그 늦어지지 아니한 때에 미쳐서 공부한다는 말입니다. 면려는 힘써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세월은 사람을 위해서 기다려 주지 않고,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