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삼봉 정도전의 한시

삼봉 정도전의 가을밤[秋夜] 등 시 삼봉집1권

아베베1 2009. 11. 14. 11:50

가을밤[秋夜]


신해년(1371) 가을 7월에 공은 신돈(辛旽)이 처형당하였다는 말을 들고 개경(開京)에 달려왔다. 이때에 왕은 신돈을 처형한 연유를 들어 태묘(太廟)에 고하는데, 무릇 예수(禮數)와 악절(樂節)에 있어서는 공에게 명하여 의론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전(前) 지후(祗侯)로서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제수되고 전선(銓選) 관장하기를 무려 5년이나 했다.

나는 본래 산야의 사람으로 / 以我山野人
돌아가 숨을 마음 보상 못하고 / 未償丘壑心
먼저 흙 속에서만 헤매노라니 / 營營塵土間
지칠 대로 지쳐서 견디지 못하겠네 / 倦矣不能任
저물녘에야 휴식으로 나아가서 / 嚮晦方就休
편안히 앉아 어느덧 밤이 깊었네 / 宴坐到夜深
갑자기 청상의 소리 있어 / 忽有淸商聲
창 북쪽 숲속으로 몰아치누나 / 廻薄牕北林
처음에는 생학(笙鶴)이 왔나 의심되고 / 初疑笙鶴來
또 교룡이 우는 것도 같더니 / 又訝虬龍吟
일어나 보니 아무것도 없고 / 起視意無有
해맑은 기운만이 옷섶에 스며드네 / 灝氣襲衣衿
이윽고 산에 달이 솟아오르니 / 少焉山月上
정원의 수목들 성긴 그늘 펴네 / 庭柯布疎陰
한 순간 해묵은 병이 물러가 버리고 / 恍然沈痾痊
평화와 담박이 가슴속에 우러나네 / 冲澹生胸襟
옛동산이 그리워져서 / 因之懷舊山
평상 위 거문고를 둥둥 탄다오 / 彈我牀上琴
가을바람 남쪽으로 부니 / 秋風吹南去
바람을 의탁하여 유음을 부치노라 / 託此寄遺音

또[又]
오늘은 분명히 어제는 아닌데 / 今日非昨日
내일 아침은 다시 언제일까 / 明朝復何時
음과 양이 기틀을 멈추질 않아 / 陰陽無停機
사시는 서로 밀고 옮기네 / 四時相推移
백 년이란 얼마나 되는 건가 / 百年能幾何
속절없이 내 마음만 서러울 따름 / 徒令我心悲
슬프다 저 명리에 허덕이는 사람 / 哀哉名利人
노경에 이르러도 아직 모르네 / 至老猶未知
고귀한 자는 자연 교만하고 고집 세고 / 貴者自驕固
비천한 무리들은 벌 붙는 짓 많네 / 卑者多詭隨
영화란 번갯불을 좇는 것이다 / 榮華逐電光
죽은 뒤엔 기롱만이 남게 되는 걸 / 身後有餘譏
아름다운 저 군자와 선비를 보소 / 彼美君子士
속마음은 닳거나 변함이 없네 / 中心無磷緇
높고 높다 운월의 정 / 高高雲月情
희고 흰 빙설 같은 모습이로세 / 皎皎氷雪姿
모쪼록 썩지 않는 사업 남기어 / 庶將垂不朽
천추를 내다보며 기약을 하네 / 千載以爲期
여기에 느껴서 긴 노래를 부르노라니 / 感此發長謠
가을바람 으시시 처량도 하네 / 秋風颯凄其


[주D-001]생학(笙鶴) : 선학(仙鶴)의 이름. 도가(道家)의 고사에 “주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晋)이 칠월 칠석날에 흰 학을 타고 피리를 불며 후산(候山)의 마루에 머물러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했다.
[주D-002]닳거나 변함이 없네 : 원문의 인치(磷緇)는 변질됨이 없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굳은 것이 있지 않느냐! 갈아도 엷어지지 않고, 흰 것이 있지 않느냐!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느니라[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하였다.
오언고시(五言古詩)
뜰앞의 국화[庭前菊]
삼봉집 제1권

 

 

 오언고시(五言古詩)

차운하여 정달가 몽주 에게 부치다[次韻寄鄭達可 夢周 ]

유락(流落)과 이별 속에 해가 가고 달이 가니 그리운 정회는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자야(子野)의 편에 서찰을 받들어 두세 번 읽어보니 기쁨과 느껴움이 어울려 격동하므로 운(韻)에 의해 지었거니와 사(辭)는 달(達)에 그쳤을 따름입니다.
마음을 같이한 벗이 / 夫何同心友
하늘 한구석에 각각 있는지 / 各在天一方
때때로 생각이 여기 미치니 / 時時念至此
저절로 사람을 슬프게 하네 / 不覺今人傷
봉황새는 천 길을 높이 날아서 / 鳳凰翔千仞
돌고 돌아 조양(朝陽)으로 내려가는데 / 徘徊下朝陽
이 사람은 출처에 너무 어두워 / 伊人昧出處
한 번 움직이면 법에 저촉되누나 / 一動觸刑章
지란은 불탈수록 향기 더하고 / 芝蘭焚愈馨
좋은 쇠는 갈수록 빛이 더 나네 / 良金淬愈光
굳고 곧은 지조를 함께 지키며 / 共保堅貞操
서로 잊지 말자 길이 맹세를 하세 / 永矢莫相忘

[주D-001]조양(朝陽) : 《시경(詩經)》 대아(大雅)권아(卷阿)에 “오동은 저 조양에서 자라고 봉황은 고강에서 운다[梧桐生矣 于彼朝陽 鳳凰鳴矣 于彼高岡].”이라 하였는데, 그 주에 “산의 동쪽을 조양이라 한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