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忠義 고장 宜寧/약천 남구만의 관향인 의춘

약천 자신의 관향(貫鄕)인 의춘(宜春)을 이르며, 이합(離合)은 글자의

아베베1 2009. 12. 11. 12:31

 약천집 제1권
 시(詩)
고향을 그리워하여 낙향해서 편안히 쉴 것을 생각하며, 군망(郡望)과 성명자(姓名字)를 이합(離合)하여 짓는 시체(詩體)를 붙이다.


집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부족하니 / 家貧食不足
돼지우리 장차 지어야 하겠네 / 豕柵行可築
다만 특별한 지조가 없어서 / 直緣無特操
십 년 동안 계획 헛되이 보냈구나 / 十年計虛擲
진월인(秦越人)의 의술(醫術) 배우지 못하여 / 秦越術未學
시질로 선적과 같다오 / 示疾同禪寂
아침저녁 국록(國祿)으로 끼니를 이으니 / 昕夕尙營廩
파리하여 기운이 다하려 하네 / 斤然氣欲索
예로부터 현달한 사람은 / 古來賢達人
한번 떠나면 구복(口腹)을 따지지 않는다오 / 一去不計腹
방아 찧는 소리 거문고 소리로 대신하고 / 杵聲代鼓琴
나무 열매 먹으며 은둔하는 것 달게 여기네 / 木食甘遯迹
반드시 생활하는 방법 따지고자 한다면 / 必欲問生理
마음이 이미 외물을 따르리라 / 心已外物逐
쌀을 구걸하는 것이 비록 괴로우나 / 乞米雖甚苦
사람의 종이 되는 것 더욱 부끄럽다오 / 人役尤可恧
초야에 스스로 한가롭게 지내니 / 草澤自寬閒
일찍 떠나가 깊이 숨어야 하리 / 早往當跧伏
산 동쪽에 한 언덕이 있으니 / 嵎東有一丘
산이 높아 기운이 깨끗하네 / 山逈氣淸淑
노을과 빛과 아지랑이의 경치 / 霞光與煙景
붉은 비단 펼쳐놓은 듯 눈에 가득하네 / 段錦碎盈矚
김매고 호미질함은 참으로 나의 일이니 / 耘鉏眞我業
쟁기질하는 도구 절로 적당하다오 / 耒具自玆適
말과 수레 영원히 끊기를 바라며 / 蹄輪永願絶
제향 또한 점치기 어렵네
/ 帝鄕亦難卜
간략히 돌아가겠다는 뜻을 읊으니 / 略賦歸歟志
전야(田野)가 황폐하여 마음 더욱 급하노라 / 田荒意愈亟


[주C-001]군망(郡望)과 …… 붙이다 : 군망은 고을의 명망이 있는 집안이라는 뜻으로, 약천 자신의 관향(貫鄕)인 의춘(宜春)을 이르며, 이합(離合)은 글자의 일부를 떼어내고 남은 글자를 다시 맞추어 자신이 의도하는 글자를 이루는 것으로, 문장의 한 유희(遊戲)인데, 한(漢) 나라 때부터 유행하였다. 후한(後漢)의 공융(孔融)은 노국(魯國) 사람으로 자가 문거(文擧)였는데, 그가 사언시(四言詩)를 지으면서 ‘노국공융문거(魯國孔融文擧)’ 여섯 글자를 이 시 속에 숨겨두어 유명하다. 공융의 시를 살펴보면, “어부가 절개를 굽히고 물에 잠겨 방소(方所)를 숨겼다가〔漁父屈節 水潛匿方〕, 때에 따라 나와서 출행을 거창하게 한다〔與峕進止 出行施張〕.” 하였는데, 앞의 두 구는 어(漁)자에서 ‘氵’를 떼고 ‘魚’를 만들고, 뒤의 두 구는 시(峕)자에서 ‘出’을 떼고 ‘日’을 만든 것으로 ‘魚’와 ‘日’을 합하면 ‘魯’가 된다. “여공(呂公 : 강 태공〈姜太公〉)이 낚시터에서 낚시질하다가 위수(渭水) 가에서 문왕(文王)을 만나 입(말)이 합하였네〔呂公磯釣 闔口渭傍〕, 구역에 성인이 있으니 어느 땅이든 왕노릇 하지 않는 곳이 없네〔九域有聖 無土不王〕.” 하였는데, 앞의 두 구는 여(呂)의 두 ‘口’가 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口’를 만들고, 뒤의 두 구는 역(域)에서 ‘土’를 떼고 ‘或’을 만든 것으로 ‘口’와 ‘或’을 합하면 ‘國’이 된다. 약천의 시 역시 공융의 이 시체(詩體)를 따라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뜻으로 오언시(五言詩)를 지으면서 이 속에 ‘의춘남구만운로(宜春南九萬雲路)’ 일곱 글자를 원문 네 구, 곧 한 줄마다 한 자씩 숨겨둔 것이다. 첫 구의 가(家)에서 ‘豕’를 떼고 ‘宀’를 만들고, 셋째 구의 직(直)에서 십(十)을 떼고 ‘且’를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의(宜)’가 된다. 다섯째 구의 진(秦)에서 ‘示’를 떼고 ‘’을 만들고, 일곱째 구의 흔(昕)에서 ‘斤’을 떼고 ‘日’을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춘(春)’이 된다. 의춘은 바로 의령(宜寧)으로 약천의 관향이다. 아홉째 구의 고(古)에서 ‘一’을 떼고 ‘’를 만들고, 열한째 구의 저(杵)에서 ‘木’을 떼고 ‘午’를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남(南)’이 된다. 열셋째 구의 필(必)에서 ‘心’을 떼고 ‘丿’을 만들고, 열다섯째 구의 걸(乞)에서 ‘人’을 떼고 ‘乙’을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구(九)’가 된다. 열일곱째 구의 초(草)에서 ‘早’를 떼고 ‘艹’를 만들고, 열아홉째 구의 우(嵎)에서 ‘山’을 떼고 ‘禺’을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만(萬)’이 된다. 스물한째 구의 하(霞)에서 ‘叚’를 떼내어 ‘雨’를 만들고, 스물셋째 구의 운(耘)에서 ‘耒’를 떼고 ‘云’을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운(雲)이 된다. 스물다섯째 구의 제(蹄)에서 ‘帝’를 떼고 ‘足’을 만들고, 스물일곱째 구의 약(略)에서 ‘田’을 떼고 ‘各’을 만든 다음 이 두 자를 합하면 ‘노(路)’가 된다. 운로(雲路)는 약천의 자이다. 이렇게 된 이유를 알려면 시 원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家에서 豕가 行(가다)하여 宀만 남고 直에서 十을 擲(던져버리다)하여 且가 되었으며, ‘秦’에서 示가 寂(잠적하다)하여 ‘’만 남고 昕에서 斤이 索(없어지다)하여 日이 되었으며, 古에서 一이 去(떠나가다)하여 ‘’가 되고 杵에서 木을 食(먹다)하여 午가 되었으며, 必에서 心이 已(없어지다)하여 丿만 남고 乞에서 人이 恧(부끄러워하다)하여 乙이 되었으며, 草에서 早가 往(떠나가다)하여 艹가 되고 嵎에서 山이 逈(멀어지다)하여 禺이 되었으며, 霞에서 叚가 碎(부서지다)하여 雨가 되고 耘에서 耒가 適(가다)하여 云이 되었으며, 蹄에서 帝를 卜(소유하다)하기 어려워 足이 되고 略에서 田이 荒(황폐해지다)하여 各이 된 것이다. 叚와 段은 원래 다른 자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혼용하였는바, 원문에도 段이 叚로 되어 있다.
[주D-001]진월인(秦越人) : 전국(戰國) 시대의 유명한 의원(醫員)인 편작(扁鵲)의 성명이다. 고대에 편작이라는 명의가 있었는바, 진월인이 그와 같다 하여 그 역시 편작이라 칭했다 한다.
[주D-002]시질(示疾)로 선적(禪寂)과 같다오 : 시질은 불가(佛家)의 말로 부처와 보살 및 고승(高僧)의 질병을 이르며, 선적은 참선(參禪)하여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으로 병들어 조용히 있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3]방아 …… 대신하고 :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에 백결선생(百結先生)이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 마침 설을 세기 위하여 이웃집에서 모두 방아를 찧었으나 자기 집에는 방아 찧을 만한 곡식이 없었다. 아내가 이것을 한탄하자 백결선생이 거문고를 타서 방아 찧는 곡조를 연주하니, 이것을 대악(碓樂)이라 하였는바, 이러한 고사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주D-004]말과 …… 어렵네 : 제향(帝鄕)은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산다는 천상(天上)을 가리키는바, 말과 수레를 타고 외출하는 것을 끊으려 하며 신선이 되어 천상에 올라가는 것 또한 바라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