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忠義 고장 宜寧/세종실록지 경상도

진주 서편에서 합류하여 광탄(廣灘)이 되고, 의령(宜寧)에 이르러 정암진(

아베베1 2010. 1. 31. 16:44

세종
 지리지
세종 지리지 / 경상도

◈ 경상도(慶尙道)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 땅이었고, 삼국(三國) 때에는 신라 땅이었는데, 고려 태조(太祖)가 신라와 백제를 병합함에 미쳐서 동남도 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설치하고, 사(司)를 경주(慶州)에 두었다가, 성종(成宗) 14년(995) 을미에 경내(境內)를 10도(道)로 나누어, 상주(尙州)의 관할은 영남도(嶺南道)로 하고, 경주(慶州)·금주(金州)의 관할은 영동도(嶺東道)로, 진주(晉州)의 관할은 산남도(山南道)로 하였었는데, 그 뒤에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합하여 경상도로 되었다. 지금 국사(國史)를 상고하건대, 예종(睿宗) 원년(元年) 병술에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일컬었고, 명종(明宗) 원년(元年) 신묘에는 나누어서 경상주도(慶尙州道)·진합주도(晉陜州道)로 만들었으며, 16년 병오에 이르러 비서승(秘書丞) 이계장(李桂長)을 동남해 도부서사(東南海都部署使) 겸 경상주도 안찰사(慶尙州道按察使)로 삼았다고 하였으니, 경상도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는가 싶다. 신종(神宗) 14년 갑자에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로 고치고, 그 뒤에 또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로 고쳤으며, 충숙왕(忠肅王) 원년(元年) 갑인에【원(元)나라 인종(仁宗) 연우(延祐) 원년(元年).】 도로 경상도로 하였는데, 본조(本朝)에서 그대로 따라 도관찰사(都觀察使)를 두고 사(司)를 상주(尙州)에 두었다.
그 땅이 동남쪽에는 큰 바다가 있고, 서쪽은 지리산(智異山)을 경계로 하여 감음현(減陰縣) 육십현(六十峴)에 이르고, 북쪽은 죽령(竹嶺)을 경계로 하여 문경현(聞慶縣) 초점(草岾)에 이르는데, 대구군(大丘郡)이 도(道) 중앙에 있다. 동서가 3백 76리, 남북이 4백 48리이다.
관할[所管]은 유수부(留守府)가 1, 대도호부(大都護府)가 1, 목(牧)이 3, 도호부(都護府)가 6, 군(郡)이 15, 현령(縣令)이 6, 현감(縣監)이 34이다.
명산(名山)이 5이니, 주흘산(主屹山)【문경(聞慶)에 있다.】·태백산(太伯山)【봉화(奉化)에 있다.】·지리산(智異山)【진주(晉州)에 있다.】·사불산(四佛山)【상주(尙州)에 있다.】·가야산(伽倻山)【성주(星州)에 있다.】 이다.
대천(大川)이 3이니, 첫째가 낙동강(洛東江)이다. 그 근원(根源)이 셋인데, 하나는 봉화현(奉化縣) 북쪽 태백산(太伯山) 황지(黃池)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聞慶縣) 북쪽 초점(草岾)에서 나오고, 하나는 순흥(順興) 소백산(小白山)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尙州)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 선산(善山)에서 여차니진(餘次尼津), 인동(仁同)에서 칠진(漆津), 성주(星州)에서 동안진(東安津), 가리현(加利縣)에서 무계진(茂溪津)이 되고, 초계(草溪)에 이르러 합천(陜川)의 남강(南江) 물과 합하여 감물창진(甘勿倉津)이 되고, 영산(靈山)에 이르러 또 진주(晉州) 남강(南江)의 물과 합하여 기음강(岐音江)이 되며, 칠원(漆原)에서는 우질포(亐叱浦)가, 창원(昌原)에서는 주물연진(主勿淵津)이 되어 김해(金海)에 이르고, 밀양(密陽) 응천(凝川)을 지나 뇌진(磊津)이【해양강(海陽江)이라고도 한다.】 되고, 양산(梁山)에서 가야진(伽倻津)이 되고, 황산강(黃山江)이 되어,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둘째는 진주(晉州) 남강(南江)이다. 그 근원(根源)이 둘이니,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고,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와서, 진주 서편에서 합류하여 광탄(廣灘)이 되고, 의령(宜寧)에 이르러 정암진(定巖津)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기음강(岐音江)으로 들어간다. 세째는 초계(草溪) 황둔진(黃芚津)이다. 그 근원(根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전라도 무주(茂朱) 초현(草峴)에서 나오고, 하나는 감음현(減陰縣) 황석산(黃石山)에서 나와서, 거창(居昌)에서 합류되어 합천(陜川)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감물창진(甘勿滄津)으로 들어간다.
호수는 4만 2천 2백 27호, 인구가 17만 3천 7백 59명이다.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2천 6백 30단(單) 1명, 영진군(營鎭軍)이 3천 8백 76명, 선군(船軍)이 1만 5천 9백 34명이다.
간전(墾田)이 30만 1천 1백 47결(結)이다.
부세(賦稅)는 쌀[稻米]【흰쌀[白米]·조미(糙米)·찹쌀[糯米]·좁쌀이 있다.】·콩【콩과 녹두가 있다.】·밀[小麥]·참깨[芝麻]·향유(香油)·차조기기름[蘇子油]·꿀·밀[黃蠟]·명주[綿紬]·모시[苧布]·무명[綿布]·베[正布]·풀솜[雪綿子]【품질이 가장 좋으며, 타도에는 없다. 또, 상면자(常綿子)가 있다.】·면화(綿花)이다.
공물(貢物)은 호랑이가죽[虎皮]·표범가죽[豹皮]·곰가죽[熊皮]·사슴가죽[鹿皮]·노루가죽[獐皮]·여우가죽[狐皮]·삵가죽[狸皮]·잘[山獺皮]·수달피(水獺皮) 말가죽[馬皮]·쇠가죽[牛皮]·돼지가죽[猪皮]·점찰피(占察皮)·어피(魚皮)·가죽줄[皮絃]·표범꼬리[豹尾]·여우꼬리[狐尾]·족제비털[黃毛]·돼지털·늑(肋)·잡깃[雜羽]·쇠뿔[牛角]·마른 사슴고기[乾鹿]·마른 돼지고기[乾猪]·마른 노루고기[乾獐]·녹포(鹿脯)·사슴꼬리[鹿尾]·대구어(大口魚)·문어(文魚)·상어[沙魚]·마른 물고기[乾水魚]·백조(白條)·전포(全鮑)·홍합(紅蛤)·어교(魚膠)·곽(藿)·해모(海毛)·우무[牛毛]·참가사리[細毛]·오해조(吾海曹)·칠(漆)·송연(松煙)·송진[松脂]·밤·대추·홍시(紅柿)·곶감[乾柿]·모과[木瓜]·석류[石榴]·배개암[榛子]·잣·송화(松花)·귤(橘)·호도(胡桃)·치자(梔子)·작설차(雀舌茶)·석이[石茸]·느타리[眞茸]·표고버섯·겨자[芥子]·마른 죽순[乾竹笋]·지초(芝草)·홍화(紅花)·괴화(槐花)·뇌록[磊碌]·저마승색(苧麻繩索)·마의(馬衣)·지차(紙箚)【중국에 바치는 표지(表紙)와 나라에서 쓰는 표지, 도련지(擣鍊紙)·안지(眼紙)·백주지(白奏紙)·상주지(常奏紙)·장지(狀紙) 등이 있다.】·유둔(油芚)·유기(柳器)·목기(木器)·자기·초마선석(哨麿船席)【중국에 바치는 황화석(黃花席)·채화석(彩花席)·만화침석(滿花寢席)·만화석(滿花席)·염석(簾席)·방석(方席) 등이 있고, 타도에는 없다. 또 나라에서 쓰는 만화 각색석(滿花各色席)·별문상석(別文上席)·답석(踏席)·상문답석(常文踏席)·백문석(白文席)·초석(草席) 등이 있다.】·죽피방석(竹皮方席)·가는대[篠]【검은대[烏竹]와 살대[箭竹]가 있다.】·왕대[簜]【통대[全竹]와 쪽대[片竹]가 있다.】·입초(笠草)·자단향(紫檀香)·백단향(白檀香)·정철(正鐵)이다.
약재(藥材)는 쇠쓸개[牛膽]·곰쓸개[熊膽]·사향(麝香)·소유(酥油)·돼지쓸개[猪膽]·수달피쓸개[獺膽]·고슴도치쓸개[猬膽]·고슴도치가죽[猬皮]·우황(牛黃)·아교(阿膠)·섣달토끼머리[臘兎頭]·녹각(鹿角)·녹용(鹿茸)·녹각교(鹿角膠)【또 녹각상(鹿角霜)이 있다.】·섣달여우간[臘狐肝]·영양뿔[羚羊角]·범의 정강이뼈[虎脛骨]·도아조유(島阿鳥油)·상말벌집[霜蜂房]·원잠아(元蠶娥)【또 만잠아(晩蠶娥)가 있다.】·누에허물[馬鳴退]·오어골(烏魚骨)·가뢰[班猫]·자라껍데기[鼈甲]·매미허물[蟬脫皮]·거북껍데기[龜甲]·뽕나무벌레[桑螵蛸]·잉어쓸개[鯉膽]·굴조개껍질[牡蠣]·등에[蝱蟲]·백화사(白花蛇)·뱀허물[蛇脫皮]·오가피(五加皮)·필등(蓽䔲)·가(茄)·황경나무껍질[黃蘗皮]·뽕나무껍질[桑白皮]·느릅나무속껍질[楡白皮]·고염[小柿]·탱자[枳殼]·무이(蕪荑)·산이스랏씨[郁李仁]·복숭아씨[桃仁]·살구씨[杏仁]·괴각(槐角)·조피나무열매[川椒]·뽕나무 겨우살이[桑寄生]·모란껍질[牧丹皮]·오배자(五倍子)·산조인(酸棗仁)·조협(皂莢)·율설(栗楔)·오수유(吳茱萸)·산수유(山茱萸)·오미자(五味子)·후박(厚朴)·오매(烏梅)·염매(鹽梅)·백매실(白梅實)·청피(靑皮)·진피(陳皮)·두충(杜沖)·비자(榧子)·팔각(八角)·해동피(海東皮)·자석(磁石)·감꼭지[柿帶]·담죽엽(淡竹葉)·초목(椒目)·촉수자(蜀隨子)·적복령(赤伏苓)·백복령(白伏苓)·복신(茯神)·북나무진[安息香]·산골[自然銅]·새삼씨[兎絲子]·고무딸기열매[覆盆子]·겨우살이꽃[金銀花]·선복화(旋覆花)·사상자(蛇床子)·질려자(蒺藜子)·백부자(白附子)·결명자(決明子)·천선자(天仙子)·인삼·백합(百合)·검화뿌리껍질[白鮮皮]·병풍나물뿌리[防風]·두여미조자기[天南星]·창포말(菖蒲末)·마기령(馬夔零)·쇠비름[馬齒莧]·매자기뿌리[京三稜]·제니(薺苨)·포황(蒲黃)·택사(澤瀉)·감데뿌리[虎杖根]·여우오줌풀뿌리[鶴蝨]·탱알[紫莞]·대소 계초(大小薊草)·수자해좆뿌리[天麻]·수자해좆싹[赤箭]·두룹뿌리[獨活]·가희톱[白歛]·검산풀뿌리[續斷]·절국대뿌리[漏蘆]·족도리풀뿌리[細辛]·유향(葇香)·외나물뿌리[地楡]·당귀(當歸)·버들옷[大戟]·활석(滑石)·연꽃술[蓮花蘂]·연방(蓮房)【또 연밥이 있다.】·검인(芡仁)·으름[林下婦人]·동초(冬草)·독주근(獨走根)·파고지(破古紙)·작약(芍藥)【백(白)·적(赤)이 있다.】·박색[藜蘆]·구기자(枸杞子)·지골피(地骨皮)·석위(石葦)·호라비좆뿌리[天門冬]·만형자(蔓荊子)·향부자(香附子)·영릉향(苓陵香)·현호색(玄胡索)·택란(澤蘭)·등심(䔲心)·맥문동(芡門冬)·쇠무릎[牛膝]·자호(紫胡)·전호(前胡)·끼절가리뿌리[升麻]·호본(蒿本)·백지(白芷)·반하(半夏)·백급(白芨)·현삼(玄蔘)·쓴너삼뿌리[苦蔘]·더위지기[茵陳]·진봉(蓁芃)·속서근풀[黃芩]·단너삼뿌리[黃耆]·으름덩굴[木通]·지모(知母)·회초미뿌리[貫衆]·수뤼나물뿌리[葳靈仙]·바곳[草烏頭]·쪽[藍]·칠(漆)·여여(䕡茹)·저실(楮實)·두고(豆鼓)·초해(草蘚)·낭아(狼牙)【낭아자(狼牙子)도 있다.】·인동초(忍冬草)·구맥(瞿麥)·첨정력(甛葶藶)·청호(靑蒿)·수평(水萍)·해조(海藻)·용담(龍膽)·서장경(徐長卿)·충위자(茺蔚子)·목적(木賊)·사간(射干)·원지(遠志)·석곡(石斛)·수포석(水包石)·하수오(何首烏)·자하거(紫荷蕖) 등이다.【이상의 잡공(雜貢) 및 약재는, 지금의 토산이 희귀한 것은 각 고을의 밑에 기록하고, 그 각 고을마다 생산되는 것은 그 일반 물건만 여기에 기록해 두고 다시 새로 기록하지 아니한다.】
재배하는 약재(藥材)는 적소두(赤小豆)·두화(豆花)·대맥(大麥)·백변두(白萹豆)·흑변두(黑萹豆)·양귀비[鶯粟]·차조기[紫蘇]·영생이[薄荷]·소야기[香薷]·회향(茴香)·악실(惡實)·생지황(生地黃)【또 건지황(乾地黃)과 숙지황(熟地黃)이 있다.】·장군풀[大黃]·청목향(靑木香)·형개(荊介)·해바라기씨[葵子]·맨드라미꽃[鷄冠花]·감국(甘菊)·흑대두(黑大豆)·궁궁이[芎藭]·율무[薏苡]·청대(菁黛)·호유(胡荽)·호로(胡蘆)·순무우씨[蔓菁子]·생강[薑]·심황(深黃)·견우자(牽牛子)【검은 것과 흰 것 두 가지가 있다.】·자리공뿌리[商陸]이다.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의 사(司)를 창원(昌原)에 두었다.【군관(軍官)이 5백 명, 수성군(守城軍)이 4백 38명이다.】 병마 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의 수어(守禦)하는 곳이 다섯이니, 울산진(蔚山鎭)【군관 3백 99명, 수성군 40명.】·영일진(迎日鎭)【군관 3백 1명, 수성군 80명.】·동래진(東萊鎭)【군관 3백 명, 수성군 80명.】·영해진(寧海鎭)【군관 3백 명, 수성군 80명.】·사천진(泗川鎭)【군관 3백 명, 수정군 49명.】 이며, 좌도 수군 도안무처치사(左道水軍都安撫處置使)는 동래(東萊) 부산포(富山浦)에 있다.【병선(兵船) 33척, 군사 1천 7백 79명.】 수군 만호(水軍萬戶)가 수어(守禦)하는 곳이 11이니, 염포(鹽浦) 울산에,【도만호(都萬戶)가 수어한다. 병선(兵船) 7척, 군사 5백 2명.】 서생포(西生浦) 울산에,【3품은 만호(萬戶), 4품은 부만호(副萬戶), 5품은 천호(千戶), 6품은 부천호(副千戶)라 일컫는다. 아래에도 이와 같다. 병선 20척, 군인 7백 67명.】 축산포(丑山浦) 영해(寧海)에,【병선 12척, 군사 4백 29명.】 오포(烏浦) 영덕(盈德)에,【병선 8척, 군사 3백 53명.】 통양포(通洋浦) 흥해(興海)에,【지금은 두모적포(豆毛赤浦)에 있다. 병선 8척, 군사 2백 18명.】 포이포(包伊浦) 장기(長鬐)에,【지금은 가엄포(加嚴浦)에 있다. 병선 8척, 군사 5백 89명.】 감포(甘浦) 경주(慶州)에,【병선 6척, 군사 3백 87명.】 개운포(開雲浦) 울산에,【병선 12척, 군사 4백 20명.】 두모포(豆毛浦) 기장(機張)에,【병선 16척, 군사 8백 43명.】 해운포(海雲浦) 동래(東萊)에,【병선 7척, 군사 5백 89명.】 다대포(多大浦) 동래에【병선 9척, 군사 7백 23명.】 있다. 우도 수군 도안무처치사(右道水軍都安撫處置使)는 거제(巨濟) 오아포(吾兒浦)에 있다.【병선 28척, 군사 2천 6백 1명이다. 예전에는 제포(薺浦)에 있었는데, 금상(今上) 원년 기해에 대마도(對馬島)를 쳐서 파하고 처치사를 이곳으로 옮기도록 명하였다. 또 가배량(加背梁)·견내량(見乃梁) 등지의 만호로 하여금 옥포(玉浦)로 옮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른바 그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이었다.】 수군 만호(水軍萬戶)가 수어하는 곳이 여덟이니, 가배량(加背梁) 고성(固城)에,【지금은 거제(巨濟) 옥포(玉浦)에 있으니, 도만호가 수어한다. 병선 22척, 군사 1천 1백 22명.】 제포(薺浦) 김해(金海)에,【병선 9척, 군사 8백 82명.】 영등포(永登浦) 거제(巨濟)에,【병선 8척, 군인 7백 20명.】 견내량(見乃梁) 고성(固城)에,【지금은 거제(巨濟) 옥포(玉浦)에 있으니, 병선 20척, 군사 9백 40명.】 번계(樊溪) 고성(固城)에,【지금은 당포(唐浦)에 있으니, 병선 15척, 군사 7백 22명.】 구량량(仇良梁) 진주(晉州)에,【지금은 고성(固城) 사포(蛇浦)에 있으니, 병선 16척, 군사 7백 48명.】 적량(赤梁) 진주(晉州)에,【지금은 가을곶(加乙串)에 있으니, 병선 13척, 군사 7백 20명.】 노량(露梁) 진주(晉州)에【지금은 평산포(平山浦)에 있으니, 병선 8척, 군사 5백 68명.】 있다.
감목관(監牧官)이 1인, 염장관(鹽場官)이 3인, 역승(驛丞)이 10인이다.
사근도 승(沙近道丞)의 관할하는 역(驛)이 15,【금양(金陽)·권빈(勸賓)·유린(有隣)·삼가 신역(三嘉新驛)·무촌(茂村)·성기(星奇)·성초(省草)·초계 신역(草溪新驛)·함양 신역(咸陽新驛)·안음 신역(安陰新驛)·신안(新安)·단계 신역(丹溪新驛)·전곡(戩穀)·신번 신역(新繁新驛)·소남(召南).】 성현도 승(省峴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14,【용가(龍駕)·수안(水安)·수산 신역(守山新驛)·무흘이(無訖伊)·동음 신역(冬音新驛)·풍각 신역(豐角新驛)·온정(溫井)·내야(內也)·일문(一門)·쌍산(雙山)·서지(西之)·청도 신역(淸道新驛)·매전(買田)·유천(楡川).】 김천도 승(金泉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16,【답계(踏溪)·안언(安偃)·무계(茂溪)·설화(舌化)·팔거 신역(八莒新驛)·안림(安林)·추풍(秋豐)·부쌍(扶雙)·김산 신역(金山新驛)·양천(楊川)·범어(凡於)·하빈 신역(河濱新驛)·인동 신역(仁同新驛)·약목신역(若木新驛)·작내(作乃)·장곡(長谷).】 창락도 승(昌樂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7,【창보(昌保)·평은(平恩)·유동(幽洞)·안교(安郊)·통명(通明)·도심(道深)·순흥 신역(順興新驛).】 장수도 승(長水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16,【청통(淸通)·영천 신역(永川新驛)·아화(阿火)·모량(毛良)·사리(沙里)·경역(鏡驛)·조역(朝驛)·인비(仁庇)·의곡(義谷)·육역(六驛)·압량(押梁)·흥해 신역(興海新驛)·대송(大松)·송라(松羅)·장기 신역(長鬐新驛)·하양 신역(河陽新驛).】 황산도 승(黃山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13,【잉보(仍甫)·노곡(奴谷)·구어(仇於)·부평(富平)·굴화(屈火)·간곡(肝谷)·윤산(輪山)·위천(渭川)·덕천(德川)·아월(阿月)·성산(省山)·기장 신역(機張新驛)·동래 신역(東萊新驛).】 유곡도 승(幽谷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20,【요성(聊城)·덕통(德通)·낙양(洛陽)·낙동(洛東)·낙원(洛源)·낙서(洛西)·장림(長林)·청리 신역(靑里新驛)·공성 신역(功城新驛)·상평(常平)·구며(仇旀)·영향(迎香)·안곡(安谷)·상림(上林)·쌍계(雙溪)·안계(安溪)·수산(守山)·용궁 신역(龍宮新驛)·지보(知保)·소계(召溪).】 소촌도 승(召村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22,【진주 신역(晉州新驛)·말문 신역(末文新驛)·평거(平居)·부다(富多)·정수(正守)·평사(平沙)·금량 신역(金良新驛)·영선 신역(永善新驛)·상령(常令)·춘곡(春谷)·함안 신역(咸安新驛)·지남(知南)·송도(松道)·배둔(背屯)·춘원(春原)·횡포(橫浦)·율원(栗原)·마전(馬田)·관률(官栗)·사천 신역(泗川新驛)·완사(浣沙)·오양(烏壤).】 안계도 승(安溪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16,【옹천(甕泉)·일직 신역(一直新驛)·금소(琴召)·송제(松蹄)·우곡(牛谷)·청로(靑路)·철파(鐵破)·병곡(柄谷)·석보 신역(石保新驛)·영덕 남역(盈德南驛)·주등(酒登)·예안 신역(禮安新驛)·용안(龍安)·문거(文居)·화목(和睦)·진보 신역(眞寶新驛).】 자여도 승(自如道丞)의 관할하는 역이 12이다.【근주(近珠)·신풍(新豐)·안민(安民)·창인(昌仁)·영포(靈浦)·김해 신역(金海新驛)·대산 신역(大山新驛)·남역(南驛)·금곡(金谷)·덕산(德山)·성법(省法)·적항(赤項).】
도내(道內)의 공부(貢賦)는 각각 가까운 곳에 따라, 김해(金海)의 불암창(佛巖倉), 창원(昌原)의 마산창(馬山倉), 사천(泗川)의 통양창(通洋倉) 등으로 나누어 수송하여 바다를 따라 전라·충청도 해로(海路)를 지나서 서울에 이르는데, 수로(水路)가 험악하여 매양 파선하여 침몰되므로, 태종 3년 갑신에 조선(漕船)을 폐하고 각각 농민들로 하여금 충청도의 충주(忠州) 경원창(慶源倉)으로 바로 바치게 하였다. 그 가운데 낙동강 하류의 연강(沿江) 각 고을은【김해(金海)·창원(昌原)·밀양(密陽)·양산(梁山)·함안(咸安)·초계(草溪)·창녕(昌寧)·칠원(漆原)·진해(鎭海)·의령(宜寧).】 삼가세(三價稅)를【뱃 삯[船價]·사람 삯[人價]·말 삯[馬價]을 이른다.】 거두어서 사람을 모집해 배에 싣고【배 삯과 사람 삯을 준다.】 거슬러 올라와 상주(尙州)에 이르러서, 육로(陸路)로 운반하여 문경(聞慶) 초점(草岾)을 지나【사람 삯과 말 삯을 준다.】 경원창에 바치면, 참선(站船)으로 서울에 이른다.
【원전】 5 집 636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