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尙右道水使崔集成馳啓: |
“晋州民輸倭糧於熊川, 遇倭賊, 被搶奪。” |
下諭書于巡邊使李季仝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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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22권, 3년(1497 정사 / 명 홍치(弘治) 10년) 3월 18일(경신) 4번째기사
경상우도 수사 최집성이 왜적의 양곡 약탈을 급보하다
경상 우도 수사 최집성(崔集成)이 급보로 아뢰기를,
“진주(晉州) 백성이 왜인에게 줄 양곡을 웅천(熊川)으로 실어가는 도중 왜적(倭賊)을 만나서 약탈을 당하였습니다.”
하니, 유서(諭書)를 순변사 이계동(李季仝)에게 내리기를,
“지금 경상 우도 수사의 급보로 인해 진주 사는 백성이 왜인의 급료를 빼앗긴 것을 알았다. 이것은 비록 소소한 도적이니 염려할 것이 없으나, 전일 순천(順天) 적왜가 쏜 것에 녹도(鹿島)의 표를 붙인 화살이 있었다 하니, 저들이 반드시 우리 변방 수비가 소루한 것을 익히 보고 거리낌없이 이를 얻는 데 재미를 들여서, 여러 섬을 배회 출몰하면서 장난하는 것이다. 형세가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일이니, 경은 이런 점을 잘 알아서 기회를 보아 조치하고 조금이라도 해이하지 말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3 책 204 면
【분류】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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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 (병인) | |||||||||||||||||||||||||||||||||||||||||||||||||||||||||||||||||||||||||||||||
평안도 관찰사 이극균 치계(馳啓)하기를, “건주위(建州衛) 저 사람들의 지휘(指揮) 김우당가(金亐唐可) 등 네 사람이 만포 첨사(滿浦僉使) 최집성(崔集成)에게 와서 말하기를, ‘아우 김구가(金仇加)의 사위 조두을시(趙豆乙屎)와 그 아비 조웅야적(趙雄也赤) 등이 이르되, 김산적하(金山赤下) 등이 지난달 그믐께 조선 사람 80명을 사로잡아 왔다더라고 하므로, 그 집에 가보니, 장정(壯丁)은 다 숨고 다만 약하고 늙은이만 있으므로 면대하여 힐문하니, 그들이 「광망(狂妄)한 소년이 스스로 용맹과 힘을 믿고 자주 대국(大國)을 범하였으니, 우리들이 결코 병란(兵亂)을 만날 것인데, 화(禍)를 피할 곳이 없다.」 하므로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하고, 또 말하기를, ‘저 적(賊) 인구가 번성하지 못하여 부락(部落)이 외롭고 사는 곳이 멀지 않으니, 군사를 일으켜 토벌해야 합니다.’하므로, 집성(集成)이 다시 저 적의 내력과 부락의 많고 적은 것, 길이 돌고 바른 것, 멀고 가까운 것과, 병마(兵馬)의 강하고 약한 것을 물으니, 우당가(亐唐可)가 말하기를, ‘저 적들이 40, 50년 전에 영안도(永安道)로부터 옮겨 와서 좌위(左衛)·우위(右衛)의 사이에 붙어 살아서 따로이 80여 호로 한 부락을 이루어서 기주위(岐州衛)라 자칭하고, 1년 11명이 한 번씩 중국에 조공(朝貢)할 뿐, 농업을 일삼지 않고 도둑질을 일삼아 사로잡은 사람과 말을 먼 곳에 팔아넘기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며, 위원(渭原) 고산리(高山里)·이산(理山) 등의 진(鎭)으로부터 기주위(岐州衛)까지 모두 4일 길인데, 모두 가난하고 병마가 강하지 못하니, 토벌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또 이 때에 위의 적(賊)이 삼(蔘)을 캐려고 온 부락이 출동하여 큰 재를 넘어 들에 퍼져서 여기에 머물러 밤을 지내니, 만약 날랜 군사로 덮치면 길에 흘린 물건을 줍는 것처럼 쉬울 것이요, 또 저 사람들이 어둠을 타서 만포(滿浦)에 와서 김우당가(金亐唐可)라고 거짓 칭하고, 진(鎭)의 사람들을 불러서 건너게 하고는 인하여 덮여 사로잡아서 폐단을 일으키니, 이 뒤에는 저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에 무기 가진 사람을 많이 배정하여 나룻터를 지키소서.’하였습니다. 만약 우당가의 말과 같다면, 이처럼 가을이 들어 삼(蔘)이 성숙할 때에는 저 적(賊)이 삼을 캐기를 탐내어 부락을 비우고 나갈 것이니, 먼저 정탐하고 날랜 군사로 덮치면 군사가 괴롭지 않고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니,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에 의논하게 하였다. 【원전】 13 집 127 면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주D-001]대국(大國) : 조선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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