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인년 산행/2010.12.17. 도봉산(수도권)

2010.12.17. 도봉산 산행

아베베1 2010. 12. 19. 11:21

 

  최근 중수중인 원통사 梵鐘閣 

   한국의 건축미는 역시 멋있다  

   우이암이 보이고

   눈내리는 金剛암 의 모습

  모형 신선대에서 눈이 내려서 하얗게

 

 

 

 

농암집 제5권  ▶ (김창협) 선생님의 시한구절을 인용해 본다 ◀

 시(詩)

밤에 무우단(舞雩壇)에서 술을 마시며 여수례(旅酬禮)를 행하다.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지었는데 나는 ‘공(空)’ 자를 얻었다.


봉우리 높이 솟은 도봉산이여 / 峨峨道峯山
숲 나무 울창하다 서울 동쪽에 / 鬱鬱神京東
그 아래 일백 굽이 흐르는 시내 / 下有百折溪
수석 서로 어울려 영롱하다오 / 水石相玲瓏
삼나무며 소나무 흰 구름 닿고 / 杉松矯白雲
줄사철이 청풍나무 타고 오르네 / 薜荔裊靑楓
옛 현인 은거하여 소요하던 곳 / 昔賢所盤桓
사당 안에 놓인 제기 엄정하여라 / 俎豆儼明宮
선현의 곧은 절개 되새겨보니 / 曠世挹遺烈
진한 감동 나약함을 떨쳐 세우네 / 感慨激懦衷
삼월이라 늦봄에 이곳 찾으니 / 我來三月暮
초목은 그새 벌써 녹음 짙은데 / 草樹已葱蘢
여러 명의 푸른 옷 우리 유생들 / 侁侁靑衿子
무우단 부는 바람 함께 쏘일 제 / 共追舞雩風
조용한 뜰 늙은 괴목 그늘이 지고 / 閒庭老槐陰
해묵은 제단에는 붉은 꽃 날려 / 古壇飛花紅
사흘 동안 머무는 즐거움이란 / 留連三日歡
취한 밤과 맑은 대낮 가릴 것 없네 / 夜飮淸晝同
주나라 예법 따라 예를 행하며 / 揖讓用周禮
두 말들이 술동이 비지 않으니 / 朋樽殊不空
거문고를 탈 것이 무어 있으랴 / 點瑟何用鼓
샘 소리가 다름 아닌 거문고 가락 / 鳴泉自絲桐
세속의 얽매임을 떨쳐버리자 / 物累良已遣
깊고도 조화로운 도심이로세 / 道心穆以融
한번 웃고 세상 속 되돌아보니 / 一笑顧世間
봄날의 아지랑이 가물거리고 / 野馬春濛濛
도봉산 봉우리만 구름 위 솟아 / 獨有雲表峯
풍진 속에 떨어지지 아니하였네 / 不墮塵
벗들이여 여러분께 당부하거니 / 歎息謂諸子
영원히 이끗 명예 멀리했으면 / 永謝利名叢


 

[주C-001]여수례(旅酬禮) : 제사를 마친 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회를 즐기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술잔을 권하는 의식이다.
[주C-002]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 : 소식(蘇軾)의 《동파전집(東坡全集)》 권98 〈십팔대아라한송(十八大阿羅漢頌)〉의 끝구이다.

 

 

山堂集卷之四
 附錄
請賜額疏 農巖金昌協 a_016_614c


伏以臣等竊觀自古以來。朝廷之士。入而不出。懷祿耽寵。以失其世者多矣。其能決然勇退。不爲富貴所沒溺者。廑可指數。然考論其世。又皆遭時衰亂。怵迫016_614d禍患。思所以自全。而不者亦以名位已極。無所覬於後耳。若乃處明聖之世。嚮用未艾。而能從容自引去者。千百無一焉。況能不以一節自喜而志乎大道。不以閒散自適而力於實踐者。豈不益卓絶難覯哉。臣等下邑蒙士。耳目不遠。而獨聞我世宗文宗之世。有臣崔德之。其仕嘗自翰苑。歷玉堂,臺閣而後以南原府使。退居本邑。築書樓。扁以存養。杜門不出。時則世宗晩年也。及文宗卽位。召拜藝文直提學。奬以純實。且將留用。而在朝不二年。上書乞骸骨歸。遂不復起焉。臣等竊念本朝治化。莫盛於世016_615a文兩廟之際。當是時。才俊應運。鱗集雲蒸。經學文章之士。瑰瑋卓犖。比肩立朝。咸以功名自奮。蓋亦千載一時也。以德之之賢。翺翔其間。亡所與讓。使其從容逶蛇。附會時運。亦可以致位卿相。功名爛然矣。顧乃棄而不取。高蹈遠引。棲遯山海。以沒其身。此非審乎外內之辨。超乎榮辱之境者。不能也。彼世之審機逃禍。與位極乃止者。殆不足道也。且自古退遯之士。率多自標其高。以爲極致。而優游放曠。無所用心。是雖賢於沒溺富貴。終身不返者。而去道則亦遠矣。今德之之歸也。乃取孟氏所稱存心養性者。名其所居之016_615b室則其留心正學。不忘進修之實。槩可見矣。昔朱子有言曰。取舍之分明。然後存養之功密。存養之功密。則其取舍之分益明矣。若德之者。其庶乎此矣。惜乎史乘疏略。其言論風旨。無得以考其詳也。然其所立之高。所存之正。亦旣遠過於人。而足爲後來之師範矣。是以。及其孫而有忠成者。學於文敬公金宏弼之門。茂材篤學。克稱高弟。是其師友淵源。固有然者。而亦不可謂不漸於先訓矣。蓋自德之之世。今已二百餘年。而人猶慕之不衰。士大夫之道南州者。必問其所謂存養樓者。瞻禮其遺像。咨嗟歎息而不能去。其016_615c遺風餘韻。感人亦深矣。往在庚午年間。一邑章甫。協力建祠。以祀德之。且以忠成配焉。俎豆之事。久益不懈而顧以遐遠固陋。尙未能請額于朝。以爲多士羞。今者竊見聖明。尊賢重道。凡斯文曠典。士所願行者。無不樂施。臣等以爲此時不可失也。遂敢相率以來。請命于闕下。伏惟殿下覽察德之出處本末。學問大致。宜爲多士所尊奉。特命有司。宣賜恩額以褒奬之。使下邑之士。得遂尊賢之誠。而來者有以觀感興起。不勝大願。臣等無任仰首祈懇之至。
016_615d山堂集卷之四

山堂集卷之四
 附錄
禮曹請額回啓 a_016_623d


禮曹爲相考事節。啓下敎是內。靈巖幼學文獻緯等上疏。據曹啓目。粘連啓下是白有亦。觀此靈巖幼學文獻緯等上疏。則以爲故直提學崔德之。世宗朝以南原府使。退居本邑。留心正學。文宗朝。召拜直提學。奬以純實。上書乞骸。長往不返。其孫忠成。受學於文敬公金宏弼之門。茂才篤學。克稱入室之高弟。且金壽恒。剛方正直。忠勤謙恭。士林推爲領袖。國家倚以柱石。其謫居本邑也。閉戶求道。用力016_624a於朱子書。體驗躬行。使窮鄕之人。得知學問規範。實壽恒之賜也。若乃金昌協。早襲庭訓。躬服儒行。隨壽恒于茲邑。臣等景服之有素矣。一邑多士。協力建祠。以祀德之於前而以忠成配焉。幷享壽恒於後而以昌協配焉。遐遠편001愚。尙未請額于朝。特命有司。賜以華額亦爲白有臥乎所。崔德之等四臣。淸節德望。懿範邃學。實合於俎豆之享。而所建祠宇。今已年久。則營建在於禁令之前是白遣。四臣中金壽恒。雖有他院配享之所是乎乃。旣非主享則亦不當以疊設論之。似當依疏辭施行是乎矣。恩額重典。不敢自下擅016_624b便。上裁何如。
康煕五十二年五月十六日。右副承旨李德英次知啓。特爲賜額爲良爲敎事是去有等。啓下內辭緣。奉審書院良中。知委施行爲乎矣。到付日時移文向事。五月十八日禮曹。二十三日巡營。二十五日本邑。


[편-001]撲 :

山堂集卷之四
 附錄
延額時賜祭文 知製敎魚有龜製進 a_016_624b


維歲次。康煕五十二年癸巳六月丙子朔。十二日丁亥。
國王遣臣禮曹正郞吉景祖。諭祭于故直提學崔德016_624c之。故領議政金壽恒。故士人崔忠成。故判書金昌協
四臣之靈
王若曰。道學節行。世所矜式。祀賢饗德。邦有典則。侃侃直學。望實俱赫。遭際英陵。進途方闢。一投州紱。高臥月出。杜門講學。玩賾鄒說。堂扁存養。用工微密。文廟乃嘉。召致內閣。賞其純實。恩顧優渥。尺疏乞骸。復修初服。終身邱壑。風勵頹俗。庭訓所漸。有孫亦賢。薰德師門。志道妙年。識高行篤。遹紹家傳。繄我良佐。邦國蓍龜。忠純其操。莊穆其資。親炙名祖。切磋大老。尊聞行知。大展抱負。身任世道。抑陰扶陽。一節三朝。德▣016_624d彌章。四入中書。再遷南裔。惟卿進退。占時否泰。永言龍蛇。曷勝悼悔。眷彼朗山。是卿湘沅。迪我南士。餘敎斯存。淇竹興思。沒世不諼。嶷嶷尙書。趾美先躅。業承詩禮。器鞰珪璧。經幄討論。昌言啓沃。中罹變故。遯于空谷。俛焉自修。一心求道。探泝紫陽。叩抽鍵奧。眞知實踐。造詣益精。扶植世敎。模範後生。光塵所曁。衿紳均慕。前後四賢。跡留斯土。祖孫相望。父子幷美。多士協謀。立廟以祀。齊享于右。列配其次。茲宣華額。俾聳瞻聆。名叶鹿洞。輝映千齡。遣官致酹。牲酒肥香。神其來格。庶歆此觴。

 

농암 김창협  

1651(효종 2)~1708(숙종 34).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
고고하고 기상이 있는 문장을 썼고, 글씨도 잘 쓴 당대 문장가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당대 명문 출신으로 상헌(尙憲)의 증손자이며, 아버지 수항(壽恒)과 형 창집(昌集)이 모두 영의정을 지냈다. 육창(六昌)으로 불리는 여섯 형제 중에서 특히 창협의 문(文)과 동생 창흡(昌翕)의 시는 당대에 이미 명망이 높았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사헌부지평·동부승지·대사성·대사간 등을 지냈다. 아버지 수항과 중부(仲父) 수흥(壽興)은 노론의 핵심인물이었는데, 그가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버리고 영평(永平)에 숨어 살았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져 호조참의·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24세 때 송시열을 찾아가 소학(小學)에 대해 토론했고 이이의 학통을 이었으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호론(湖論)의 입장을 취했다. 전아하고 순정한 문체를 추구한 고문가(古文家)로 전대의 누습한 문기(文氣)를 씻었다고 김택영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주자대전차의문목 朱子大全箚疑問目〉·〈오자수언 五子粹言〉·〈이가시선 二家詩選〉 등이 있고, 〈강도충렬록 江都忠烈錄〉·〈문곡연보 文谷年譜〉 등을 엮어 펴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山民        산속에 사는 사람

                          김창협  金昌協
                          1651(효종 2) ~ 1708년(숙종 34)

    下馬問人居  말에서 내려 주인 계시오 하였더니,
    婦女出門看  부녀가 문을 열고 내다본다.
    坐客茅屋下  손님을 띠집 안에 모셔 앉히고
    爲客具飯餐  음식상을 차려 내온다.
    丈夫亦何在  남편은 어디 가셨습니까?
    扶犁朝上山  따비를 메고 아침에 산에 갔는데
    山田苦難耕  산밭이 참으로 갈기 어려워
    日晩猶未還  저물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四顧絶無隣  사방을 돌아봐도 이웃이 없고
    鷄犬依層巒  닭과 개만 언덕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中林多猛虎  숲속엔 맹수들이 많아
    采藿不盈盤  나물도 그릇 가득 캐지 못한단다.
    哀此獨何好  딱하구나. 무엇이 좋아서
    崎구山谷間  이 험한 산골에 살고 있을까.
    樂哉彼平土  좋지요. 저 평지에 가서 산다면야.
    欲往畏縣官  가고파도 탐관오리 무서워 못간다오.

     

    깊은 산 속에 오두막이 하나 있었겠지요.
    해도 저물고 해서 하룻밤 묵어갈 요량으로
    나그네가 주인을 부릅니다.
    아낙과 그집 어린 딸아이가 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손님을 모셔 앉히고 음식상을 차려내옵니다.
    나그네가 묻습니다.
    바깥어른은 어디 가셨습니까?
    대답합니다.
    따비를 메고 밭을 일구러 나갔는데
    밭이 거칠어 일구기가 참 어렵답니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아직 안 오시는군요.
    나그네는 사방을 한 번 둘러봅니다.
    이웃 없는 외딴집에
    기르는 닭과 개들만 집 근처 언덕에 돌아다닙니다.
    숲속에 맹수들이 많아서
    나물도 제대로 못캔다고 합니다.
    나그네가 물어봅니다.
    이런 곳이 뭐가 좋아서 여기 들어와 삽니까?
    대답합니다.
    아, 논밭 많은 평야지대에 살면 좋은 줄이야
    누가 모릅니까.
    탐관오리들 때문에 못가는 것이지요.
    백성들 피를 빨아먹는 잔학무도한 탐관오리들.
    그놈들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여기 숨어사는 게 마음 편하답니다.

    김창협은
    자는 중화(仲和)이고,
    호는 농암(農巖), 동음거사(洞陰居士),
    한벽주인(寒碧主人) 등이며,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안동(安東)입니다.
    위의 시는 그의 문집 <농암집>에 실려 있습니다
     


 저의 선조님이신 연촌 휘 덕지 , 휘 산당 충성,

 문곡 김수항  선생님과  함께 전남 영암 녹동서원에 배향 되시는 분이라  자료를 정리 하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