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전고/우리나라의 지리전고

지리전고(地理典故) 총지리(摠地理)

아베베1 2011. 1. 22. 08:59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지리전고(地理典故)
총지리(摠地理)


우리나라 땅의 경계는 해좌(亥坐) 사향(巳向)인데 정동은 경상도의 영해부(寧海府)이니, 서울에서 7백 45리 떨어져 있으며, 정서는 황해도의 풍천부(豐川府)이니, 서울에서 5백 35리 떨어져 있으며, 정남은 전라도의 해남현이니, 서울에서 8백 96리 떨어져 있으며, 정북은 함경도의 온성부(穩城府)이니, 서울에서 2천 1백 2리 떨어져 있다. 동과 서를 합치면 도합 1천 2백 80리요, 남과 북을 합치면 2천 9백 98리가 된다.
○ 고려 때에는 은병(銀甁)을 돈으로 썼는데 이것을 ‘활구(闊口)’라고 했으며, 우리나라의 지형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활구의 제도를 보지 못하나, 대개 우리나라 땅 모양이 좁고 길어서 서울에서 남쪽으로는 장흥에 이르기까지 9백 75리요, 북쪽으로는 강계에 이르기까지 1천 3백 30리가 되며,동북쪽으로는 경흥에 이르기까지 2천 3백 59리요, 서남쪽으로는 진도에 이르기까지 9백 리가 되며, 서북쪽으로는 의주에 이르기까지 1천 1백 40리요, 동남쪽으로는 울산에 이르기까지 9백 20리이며, 동쪽으로는 영해(寧海)에 이르기까지 5백 40리요, 서쪽으로는 고양(高陽)에 이르기까지 30리이니, 이것을 보면 활구가 둥글고 길쭉한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소문쇄록》
○ 전라도의 김제군 벽골제호(碧骨堤湖)를 경계로 해서 전라도를 호남이라 부르고, 충청도를 호서라고도 부른다. 또는 제천에 의림지호(義林池湖)가 있기 때문에 충청도를 호서라고 한다.
○ 경상도의 고을들은 조령과 죽령 두 고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영남이라 부른다.
○ 강원도는 바닷가에 있는 9군(郡)이 단대령(單大嶺) 동쪽에 있기 때문에 영동이라 한다. 단대령은 대관령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강원도를 또 관동이라고도 한다.
○ 황해도는 경기해(京畿海)의 서쪽에 있으므로 해서라고 부른다.
○ 함경도는 철령관(鐵嶺關)의 북쪽에 있으므로 관북이라 부르며, 평안도는 철령관 서쪽에 있으므로 관서라고 부른다. 《역대아람(歷代兒覽)》
○ 우리나라의 도읍을 정했던 곳은 한두 곳이 아니다. 김해는 금관국(金官國)의 도읍이었고, 상주는 사벌국(沙伐國)의 도읍이었고, 남원은 대방국(帶方國)의 도읍이었고, 강릉은 임영국(臨瀛國)의 도읍이었고, 춘천은 예맥국(濊貊國)의 도읍이었으니, 이들은 모두 조그마한 지경을 점거한 것으로 지금의 소읍 같은 것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경주는 동경(東京)으로 신라 1천년의 도읍터인데 산천이 서로 둘러 있고 땅이 기름진데, 그 중에 문천(蚊川) 한 구비가 노닐 만하고 나머지는 별로 기이한 명승지가 없다. 평양은 기자(箕子)가 도읍했던 곳으로 팔조(八條)의 정치와 정전의 제도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으니, 지금의 외성(外城)이 그것이다. 그 후에 연 나라 위만(衛滿)에게 점거되었다가 또 고구려가 도읍한 곳인데, 그 국경은 남으로 한강에 이르고 북으로 요하에 이르렀으며 군사 수십만을 거느린 가장 강한 나라이었다. 고려에서는 서경(西京)을 설치하여 봄과 가을에 왕래하며 순유(巡遊)하는 곳으로 삼았으니, 지금도 사람과 물자가 풍부한 것은 모두 그 남아 있는 교화 때문이다. 영명사(永明寺)는 바로 동명왕(東明王)의 구제궁(九梯宮)이니 기린굴(麒麟窟)과 조천석(朝天石)이 있으며 영숭전(永崇殿)은 고려 장락궁(長樂宮)의 터이다. 도읍의 진산(鎭山)은 금수산(錦繡山)이요, 그 윗봉우리는 모란봉인데, 모두 작은 산으로서 송도와 한성의 주산(主山)처럼 웅장하거나 높지는 않다.북쪽에는 내[川]가 없으므로 몽고 군사가 휘몰아 쳐들어왔고, 남쪽은 강이 둘렀으므로 묘청(妙淸)이 점거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니 한스러운 일이다. 성문은 넓고 크며 누각은 높으며, 동쪽에는 대동문(大同門)ㆍ장경문(長慶門)의 두 문이, 남쪽에는 함구문(含毬門)ㆍ정양문(正陽門)의 두 문이, 서쪽에는 보통문(普通門)이, 북쪽에는 칠성문(七星門)이 있다. 8도에서 오직 이 도읍터만이 서울과 서로 겨룰 만하다. 동쪽 10리 밖 구룡산(九龍山) 밑에 안하궁(安下宮)의 옛터가 있는데 어느 시대에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별궁인 것 같다.
성천(成川)은 송양국(松壤國)의 도읍이었고 옛 강동(江東)은 양양국(陽壤國)의 도읍이었는데, 비록 지형은 좁으나 산과 물이 좋아 경치가 좋고 그 중에도 용강산성(龍岡山城)은 가장 웅장하여, 지금까지도 높이 솟아 허물어지지 않았다. 전해 오는 말로는 용관국(龍官國)이라고 하는데 어디에 근거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부여는 백제의 도읍터로 탄현(炭峴) 안에 반월성(半月城)터가 아직도 뚜렷하다.비록 백마강으로 참호를 삼았으나 좁고 얕아 왕자가 거처할 곳은 되지 못하니 그렇기 때문에 소정방(蘇定方)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전주는 견훤이 점거했던 곳이나 오래 못 가서 고려에 항복했는데, 지금도 고도의 유풍이 있다. 철원은 궁예가 점거했던 곳으로서 태봉국(泰封國)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겹성[重城]의 옛 터전과 궁궐의 층계가 남아 있으며 봄이면 꽃이 어지러이 핀다. 땅의 형세가 험하고 막혔으므로 강을 따라 물건을 운반하기가 어렵다.
오직 송도만은 왕씨(王氏)가 왕업을 일으킨 땅으로, 5백 년 기업을 튼튼히 한 곳이다. 곡봉(鵠峯)을 주산으로 하고 줄기가 뻗어 산세가 둘러 있으니, 비록 작은 산이라도 모두 구역이 정해져 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방방곡곡에 놀 만한 곳이 많다. 고종 이후로 강화에 도읍을 옮겼는데, 이곳은 바다 속에 있는 조그마한 섬으로서 도읍이라고 일컬을 수가 없다.우리 태조가 개국하면서 도읍을 옮길 뜻이 있어 먼저 계룡산 남쪽에 가서 지세를 살펴보고 서울의 규모를 생각하다가 얼마 안 되어 이를 중지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술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공암(孔巖)이 앞에 있다는 참언이 있고 삼각산이 서쪽으로 서역평(曙驛坪)에 연해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라 했더니 뒤에 다시 보니, 모든 산이 밖을 향해 달아나는 형세이므로 백악 남쪽과 목멱산 북쪽이 제왕 만대의 땅으로서 하늘과 함께 무궁할 것이다.”고 하였다.세속에 전하기를, “송경(松京)은 산과 골짜기가 사면을 쌓고 있어 서로 감싸고 감추어 주는 형세이기 때문에 시대마다 세력을 부리는 권신들이 많고, 한도(漢都)는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은 낮기 때문에, 큰 아들이 가볍게 되고 작은 아들이 무겁게 될 형세이므로 오늘날까지 왕위의 계승과 명공(名公)ㆍ높은 대신에는 대개 작은 아들이 많다.” 하였다. 《용재총화》
○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부아악(負兒岳)에 올라가서 살 만한 땅을 골랐는데, 비류는 미추홀(彌趨忽)에 도읍하고 온조는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했다. 뒤에 온조(溫祚)는 도읍을 남한산성 곧 지금의 광주(廣州)로 옮겼다가, 또 북한산성으로 옮겼는데 바로 이곳이 지금의 한양인데, 그가 정한 명당(明堂)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한양이 이씨(李氏)의 도읍터라는 것이 도선(道詵)의 도참(圖讖)에 써 있었기 때문에 고려가 남경(南京)을 한양에 세워 오얏나무를 심고 이씨(李氏)의 성을 가진 사람을 골라서 이씨를 부윤(府尹)으로 삼았다. 임금도 또한 해마다 한번씩 순행하고 용봉장(龍鳳帳)을 묻어서 지세를 눌렀다. 내가[서거정(徐居正)] 일찍이 《고려사》를 상고해 보건대, 한양의 명당은 다만 임좌(壬坐) 병향(丙向)의 자리라고만 쓰여 있고 어디라고는 명백히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 경복ㆍ창덕 두 궁(宮)의 정전(正殿)이 모두 임좌 병향인 것을 보면, 고려 때 말한 곳이 아마 이 두 궁(宮)터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근래에 술사 최양선(崔揚善)은 승문원 옛 터가 바로 명당이라 했고 어느 사람은 또 종묘의 낙천정(樂天亭)이 명당자리라고 하나 모두 얕은 소견이며 믿을 수 없는 말들이다. 《필원잡기》
○ 세조가 인지의(印地儀)를 만들어 노래[歌]로 찬송했는데 그 법제는 동(銅)을 부어 24위(位)의 그릇을 만들고 그 가운데를 비워 구리 기둥을 세우고 옆으로 구멍을 뚫어 그 위에 구리 저울을 놓고 낮추고 올리면서 보게 하였으니 이것을 규형(窺衡)이라 불렀다.땅을 측량할 적에 영구(靈龜 지남철)로 사방을 바로잡았으니, 오시(午時) 초일각(初一刻)이 어느 표(標)에 멀고 가까운가를 알려고 하면 먼저 묘시(卯時) 초일각이나 혹은 유시(酉時) 초일각에 표를 해서 엿보게 하고, 다시 묘시와 유시에 표한 곳을 먼저 법에 의해서 사방을 바로잡아 정오(正午) 초일각에 표한 곳을 어느 방위 몇 각(刻)으로 정한다.이렇게 한 뒤에 명당으로부터 끈으로 앞의 묘시(卯時) 초일각까지 재어서 1천 1백 척에 표하면 세 곳의 오정(午正) 일각(一刻)의 표가 3천 3백이 될 것이니, 이것으로 24위를 바로잡고, 가로 세로와 구부러지고 바른 것을 모두 이것으로써 바로잡았다. 임금이 일찍이 이륙(李陸)ㆍ김유(金紐)ㆍ강희맹(姜希孟) 등을 불러서, 이 법을 강론하고 후원에서 시험하게 하였더니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에 곧 영릉(英陵) 사산(四山)을 측량하였으며, 그 뒤에 또 경성의 지형을 측량하도록 명하고 모두 이 법을 쓰게 하였다.그러나 경성은 민가가 즐비하여 측량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이륙 등의 어리석은 의견을 썼으니 한 성 안에 무릇 표를 세운 곳은 모두 이 법을 써서 바로잡고 원근ㆍ고저ㆍ대소ㆍ평험(平險)에 이르기까지 역시 종이에 베끼고 그 속에 24위를 정하고,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 하나를 측량하고 이를 줄여서 작은 자로 하면, 다시 땅을 재지 않아도 이 자로 땅 위에 그은 곳을 재어 보면, 번거롭게 걸으면서 재지 않아도 산하와 천지와 성곽과 집들이 모두 제곳을 떠나지 않으면서 원근과 고저가 자연히 추호도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청파(靑坡)》
○ 곤륜산(崑崙山) 한 줄기는 큰 사막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동쪽으로 의무려산(醫巫閭山)이 되고 이곳으로부터 크게 끊어져서 요동 들판이 된다. 들판을 건너가서 불쑥 일어난 것이 백두산이 되어 여진과 조선의 경계에 있으니 이것이 곧 《산해경(山海經)》에 이른바 불함산(不咸山)이다. 북쪽으로 뻗친 한 줄기가 두 강을 끼고 영고탑(寧古塔)이 되고, 남쪽으로 뻗어나간 한 줄기가 조선 산맥의 맨 첫째가 된다. 산꼭대기에 있는 큰 못[池]으로부터 분수령이 되어 남쪽으로 내려간 것은 연지소봉(燕脂小峯)ㆍ백산(白山)이 되고 허항령(虛項嶺)ㆍ보다회산(寶多會山)ㆍ완항령(緩項嶺)ㆍ설령(雪嶺)이 된다.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쳐서 장백산이 되고, 한 줄기는 북쪽으로 달려 경성ㆍ부령(富寧)을 지나 두만강을 끼고 동쪽으로 뻗어 경흥에서 그친다. 설령으로부터 남쪽으로 달려서 두리산(豆里山)ㆍ참두령(斬頭嶺)이 되며, 서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가서 황토령(黃土嶺)ㆍ천수령(天守嶺)ㆍ조가령(趙可嶺)ㆍ후치령(厚致嶺)이 되고, 북쪽으로 꺾어져서 태백산이 되며, 그 중간에 뻗친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내려와서 함흥부가 된다.
○ 태백산으로부터 서쪽으로 내려가서 백계산(白階山)이 되고, 남쪽으로 부전령(赴戰嶺)이 되며, 서남쪽은 초황령(草黃嶺)ㆍ설한령(雪寒嶺)이 되며 서쪽으로 뻗친 한 산맥은 평안도가 된다. 원 산맥 줄기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상검산(上劍山)ㆍ하검산(下劍山)ㆍ오봉산(五峯山)ㆍ마유령(馬踰嶺)ㆍ두미령(頭尾嶺)이 되며, 또 동으로 꺾어졌다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거모령(巨毛嶺)ㆍ쌍가령(雙加嶺)ㆍ거차리령(巨次里嶺)이 되고, 모흘(亇屹)ㆍ마유령(馬踰嶺)ㆍ노인치(老人峙) 3령은 모두 안변(安邊)ㆍ영풍(永豐)에 있다. 가 되고 박달치(朴達峙)가 되며,동쪽으로 꺾어져 세 지방의 분수령이 되는데 동쪽에서 일어나 철령이 되고, 동북쪽으로는 황룡산(黃龍山)이 되고, 남쪽으로 뻗쳐서 축곶령(杻串嶺)ㆍ추지령(楸池嶺)ㆍ금강산ㆍ회전령(檜田嶺)ㆍ진부령ㆍ흘리령(屹里嶺)ㆍ석파령(石波嶺)ㆍ설악(雪岳)ㆍ한계산(寒溪山)이 되고, 오색령(五色嶺)ㆍ 연수파(連水波)ㆍ오대산ㆍ대관령ㆍ두타산ㆍ백복령(百復嶺)이 되었으며, 서쪽으로 꺾어져 태백산이 되고, 서남쪽으로는 우치(牛峙)ㆍ마아령(馬兒嶺)ㆍ소백산ㆍ죽령이 되고,또 불쑥 솟아서 월악(月岳)ㆍ주흘산(主屹山)ㆍ조령ㆍ의양산(義陽山)ㆍ청화산(淸華山)ㆍ속리산ㆍ화령(火嶺)ㆍ추풍령이 되고, 황악(黃嶽)ㆍ무풍령(舞豐嶺)ㆍ대덕산ㆍ덕유산ㆍ육십치(六十峙)ㆍ본월치(本月峙)ㆍ팔량치(八良峙)ㆍ지리산이 된다.
○ 세 지방의 분수령으로부터 산세가 불쑥 일어나서 철령이 되고, 한 가지는 동남쪽으로 뻗쳐 내려가다가 금성(金城)ㆍ 금화(金化) 사이를 지나 꾸불꾸불 내려가서 영평(永平) 백운산이 되고, 적목치(赤木峙)가 되었으며, 북쪽으로 되돌아서 주엽산(注葉山)이 되고, 축석현(祝石峴)이 되었으며, 서북쪽으로는 불곡산(佛谷山)이 되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도봉산ㆍ삼각산ㆍ백악ㆍ인왕산이 되고, 한양 경성이 되었다.
○ 검산령(劍山嶺)으로부터 남쪽으로 거차리령(巨次里嶺)에 이르러, 서쪽으로 뻗은 한 줄기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청량산, 고달산(高達山)이 되고 곡산(谷山)ㆍ학령(鶴嶺)이 된다. 이곳으로부터 두 산맥으로 나뉘어져 한 산맥은 서쪽으로 내려가서 황해도가 되고, 한 산맥은 남쪽으로 뻗쳐 이천(伊川)ㆍ토산(兔山)ㆍ금천(金川) 경계를 지나서 화장산(華藏山)ㆍ성거산(聖居山)ㆍ천마산ㆍ오관산(五冠山)이 되고 송악 송경(松京)이 된다.
○ 황해도 산맥은 학령(鶴嶺)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쳐 덕업산(德業山)이 되었으며, 북쪽으로 내려가서 재고개(梓古介)ㆍ석달령(石達嶺)ㆍ증격산(甑擊山) 곡산의 진산 이 되고, 서쪽으로 꺾어져 수안(遂安)의 언진산(彦眞山)ㆍ망진산(望眞山)이 되며 서쪽으로 뻗은 한 줄기는 황주(黃州)의 구현(駒峴)이 되며, 정맥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고음초산(古音初山)이 된다. 또 두 산맥으로 나뉘어져 서쪽으로 뻗친 한 줄기는 태산준령(泰山峻嶺)이 되고, 가로 뻗쳐서 서흥(瑞興)ㆍ봉산(鳳山)이 되고, 끊기지 않고 북쪽으로 뻗쳐서 대현산(大峴山)ㆍ자비령(慈悲嶺)ㆍ파령(岊嶺)ㆍ동선령(洞仙嶺)이 된다.남쪽으로 뻗은 한 줄기는 동쪽으로 꺾였다가 다시 서쪽으로 돌아 차유령(車踰嶺)이 되고, 정족산(鼎足山)이 되며, 남쪽으로는 평산(平山)ㆍ면악(綿岳) 혹은 멸악산(滅惡山)이라고도 한다. 이 된다.남쪽으로 뻗은 또 한 가지는 배천(白川)의 치악산과 연안의 비봉산(飛鳳山)이 된다. 정맥은 서남쪽으로 가다가 해주의 창금(唱金)ㆍ수양(首陽)ㆍ북고(北高)의 여러 산이 되고, 또 들로 내려가서 평강(平崗)이 되며, 서북쪽으로 내려가 신천(信川)의 치산(雉山)ㆍ달마산(達摩山)이 되며, 북쪽으로 돌아서 문화(文化)의 구월산이 된다.
○ 덕유산은 경상ㆍ전라ㆍ충청 세 도(道)의 어귀를 차지하고 서쪽으로 뻗은 한 가지는 다시 북쪽으로 돌아 고달산(高達山)과 전주 동쪽에 있는 진안(鎭安)의 마이산이 되는데 두 돌봉우리가 치솟아 하늘에 닿았으며, 서북쪽으로는 웅치(熊峙)가 되고, 서쪽으로 뻗친 한 산맥은 전주부(全州府), 동쪽은 위봉산성(威鳳山城), 북쪽에는 기린봉(麒麟峯)이 되었으며, 한 산맥은 전주의 서북쪽에 이르러 건지산(乾止山)이 된다.
○ 마이산의 한 산맥은 서남쪽으로 가다가 북으로 뻗어 금구(金溝)의 모악(母岳)이 되며, 서남쪽으로 뻗어 순창의 부흥산(復興山)과, 정읍의 내장산과, 장성의 입암산(笠巖山)ㆍ노령(蘆嶺)이 되고, 또 남쪽으로는 나주부 금성산(錦城山)이 되었다.입암산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어 추월산(秋月山)ㆍ광덕산(廣德山)이 되고, 동남쪽으로 무등산이 되며, 남쪽으로 장흥의 천관산(天冠山)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돌아 영암의 월출산이 되며, 남쪽으로 만덕미(萬德尾) 황등산(黃等山)에서 그치고, 동북쪽으로 돈 것은 송광(松廣) 계족산(鷄足山)이 된다.
○ 마이산의 또 한 줄기는 웅치(熊峙)로부터 북으로 뻗쳐 한 줄기는 석산(石山)이 되며 거꾸로 내려가다가 구봉산(九峯山)ㆍ주취산(珠崒山)ㆍ운제산(雲梯山)ㆍ탄현(炭峴)ㆍ이치(梨峙)가 되며, 대둔산(大芚山)이 되어 충청도 지경에 들어가서 금수(錦水)를 등지고 돌아 계룡산이 된다. 계룡산 한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가다가 크게 끊어져서 판치(板峙)가 되고, 불쑥 솟아서 북치(北峙)가 되며, 공주부 월성산(月城山)이 된다.
○ 월성산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뻗어 백제의 옛 수도인 부여의 부소산(扶蘇山)이 된다.
○ 속리산 한 줄기는 서쪽으로 뻗다가 북으로 달려 거질화령(巨叱火嶺)이 되고, 달천(達川)을 끼고 동쪽으로 꺾어져 서북쪽으로 가다가 삼생산(三生山)ㆍ두타산이 되며 죽산 경계에 이르러 칠장산(七長山)이 된다. 칠장산으로부터 한강을 따라 서북쪽으로 오다가 흩어져서 한남(漢南)의 여러 산이 되고, 양지(陽智)를 따라 남ㆍ동ㆍ북쪽으로 가다가 여주의 영릉(英陵)이 되고, 용인으로부터 곧장 북으로 뻗은 것은 남한산성이 된다.광교산(光敎山)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어서 화성이 되고 북으로 뻗어 청계산(淸溪山)ㆍ관악산이 되며, 서쪽으로 뻗어 수리산(修理山)ㆍ소래산(蘇來山)이 되고 통진의 문수산(文殊山)에 이르러 바다를 건너서 강화부가 된다.
○ 칠장산으로부터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 영맥(嶺脈)이 되어 대문령(大門嶺)과 마일령(磨日嶺)이 되며, 전의(全義)에서 크게 끊어졌다가 서쪽에서 일어나 차령(車嶺)이 되며, 또 서쪽으로 무성(武城)ㆍ오서(烏棲)ㆍ가야(伽倻) 등 여러 산이 되며, 흩어져서 내포(內浦)의 여러 산이 된다.
○ 태백산 동쪽 줄기는 동남쪽으로 가다가 금장산(金莊山)ㆍ백암산(白巖山)ㆍ평해(平海) 경계가 되고 주령(珠嶺)ㆍ삼승령(三乘嶺)이 되며, 서쪽으로 꺾여져 영해(寧海) 북쪽에 이르러 월명산이 되며, 바다를 따라 남쪽에 이르러서는 신라의 고도인 경주의 금오산이 된다.고개 동쪽 11읍(邑) 영해ㆍ영덕(盈德)ㆍ청하(淸河)ㆍ흥해(興海)ㆍ영일ㆍ경주ㆍ장기ㆍ울산ㆍ언양(彦陽)ㆍ기장(機張)ㆍ동래 의 물은 모두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며 경주에서 서쪽으로 뻗어 북쪽으로 돌아서 대구부가 된다.
○ 지리산 서쪽 줄기는 화개(花開) 남쪽에 이르러 하동의 경양산(慶陽山)이 되며, 청천강(菁川江)을 끼고 동쪽으로 뻗어 곤양(昆陽)ㆍ사천ㆍ진해의 북쪽을 지나서 창원의 청룡산이 되고, 가락국의 고도인 김해에 이르러 구지봉(龜旨峯)이 된다.
○ 주취산(珠崒山) 북쪽 한 줄기는 서쪽으로 내려가서 탄현(炭峴)이 되고 운제산(雲梯山)ㆍ정토산(淨土山)이 되며 용화산(龍華山)이 되었으며, 기준(箕準 기자(箕子)의 후손으로 위만에게 쫓겨 남쪽으로 피난감)의 옛 성터가 그곳에 있다.
○ 평안도 산맥은 설한령(雪寒嶺)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은 두 줄기 중의 한 줄기가 희천(熙川)의 적유령(狄踰嶺)을 따라 서남쪽으로 뻗어 또 두 갈래로 나뉘어져 북으로 내려간 것은 위원(渭原)ㆍ초산(楚山) 두 읍의 여러 산이 되고, 서남쪽으로 뻗은 것은 흩어져서 청천강 이북과 압록강 이남 여러 고을의 산이 된다.
○ 설한령의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뻗어 영원(寧遠)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서 묘향산에 이르러 두 강 사이를 끼고 꾸불꾸불 내려가다가 알일령(遏日嶺)과 유현(柳峴)이 된다. 안주 구봉산(九峯山)에 이르러 다시 남쪽으로 뻗어 자모산(慈母山)과 서경 평양부의 금수산(錦繡山)이 된다.
○ 양덕(陽德) 남곡산(南谷山) 북령(北嶺) 산맥의 한 줄기는 서쪽으로 내려가서 함박산(含朴山)이 되고, 거꾸로 북으로 내려가서 성천(成川)의 검학산(劍鶴山)이 된다.
○ 자모산의 한 줄기는 영유강(永柔江) 서쪽을 따라 서남쪽으로 뻗어 용강(龍崗)의 황룡산(黃龍山)이 된다.
○ 총전령(葱田嶺)의 한 줄기는 거꾸로 북쪽으로 내려가서 강계부(江界府)와 폐 4군의 여러 산이 된다.
○ 강원도 오대산의 서북쪽 한 줄기는 홍천 동쪽에 이르러 세 줄기로 나뉘어 하나는 서북쪽으로 내려가서, 춘천의 봉의산(鳳儀山)이 되는데 옛 맥국(貊國)의 땅이다.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내려가서 원주부 치악산이 되며, 한 줄기는 서쪽으로 뻗어 검의산(劍倚山)ㆍ팔봉산(八峯山)이 되고 용문산(龍門山)에서 그친다.
○ 두만강은 바로 토문강(土門江)이며 백두산 큰 못이 근원이다. 동쪽 흐름 수십 리는 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돌 틈을 따라 백리를 숨어 흐르다가 비로소 큰 물이 솟아나서 동량(東良)ㆍ북사(北斜)ㆍ지하(地河)ㆍ목하(木河)ㆍ수주(愁州)ㆍ동건(童巾)ㆍ다온(多溫)ㆍ속장(束障) 등을 거쳐 경원 회질가(會叱家)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경흥ㆍ사차마도(沙次磨島)에 이르러 나뉘어서 5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지승람》
무산(茂山) 서북에 있는 냇물은 근원이 설잠(雪岑) 북쪽에서 나왔고, 박하천(朴下川)은 근원이 장백산 북쪽에서 나왔는데, 두 물이 합쳐져서 두만강으로 들어가고 무산을 거쳐서 동쪽으로 회령에 이르고 북쪽으로 꺾어져 종성을 거쳐 온성(穩城)에 이르고, 동쪽으로 꺾어져 남으로 흐르다가 경원을 지나 경흥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 훈춘강(訓春江)은 근원이 여진 땅에서 나와 동림성(東林城)에 이르러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여지승람》에는 경원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 수빈강(愁濱江)은 근원이 백두산으로부터 나와서 북쪽으로 흘러 소하강(蘇下江)이 되는데, 혹은 속평강(速平江)이라고도 한다. 공험진(公嶮鎭) 선춘령(先春嶺)을 지나서 거양(巨陽)에 이르고 다시 동으로 1백 20리를 흘러 아민(阿敏)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여지승람》에는 경흥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 함흥의 성천강(成川江) 혹은 군자하(君子河)라고도 한다. 은 그 근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갑산(甲山) 경계 화기령(樺岐嶺) 태백산 남쪽 에서 나오고, 하나는 희천(熙川) 경계 황초령(黃草嶺) 동남쪽 에서 나와 합류하여 함흥부 서북쪽 탑란동(塔蘭洞)을 지나서, 성 남쪽 만세교(萬歲橋)에 이르고 함흥부 남쪽 35리 도련포(都連浦)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 초원(草原)의 금강진(金江津)은 근원이 검산령(劍山嶺) 동쪽에서 나와 초원의 남쪽을 지나서 바다로 들어간다.
○ 영흥(永興)의 용흥강(龍興江)은 그 근원이 넷이 있으니, 하나는 함흥부 서쪽 50리 떨어진 정변사(靜邊社)에서 나오는데 이름을 비류수(沸流水)라고 한다. 그 물 근원인 구멍의 둘레가 5척 3촌이요, 깊기는 끝이 없으며 물이 솟아 내가 된다.또 하나는 함흥부 서북쪽 2백 10리 거리의 마유령(馬踰嶺) 희천(熙川)의 경계 요해지에서 나왔고, 하나는 함흥부 서쪽 1백 80리 거리의 애전현(艾田峴) 맹산(孟山) 경계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양덕현(陽德縣) 거차령(居次嶺)에서 나와서 고암(庫巖)에서 송어탄(松魚灘)과 합했는데, 이름을 횡천(橫川)이라 한다. 용신당(龍神堂)을 지나서 진정사(鎭靜寺) 서쪽 절벽 밑에 이르러 창경연(鶬鶊淵)이 되었다.그 밑에 광탄(廣灘)이 있고 광탄 가운데 백마같이 생긴 흰 돌이 있는데, 그 돌이 물 속에 잠기고 물 위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물의 수위를 짐작한다. 읍성 동북쪽을 지나서 이 강물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고원(高原)의 덕지탄(德之灘)ㆍ문천(文川)의 전탄(箭灘)과 합해서 바다로 들어간다.
본 이름은 횡강(橫江)인데, 하륜(河崙)이 사신이 되어 이곳에 이르렀을 때, 도순문사(都巡問使) 강회백(姜淮伯)이 중류에 술자리를 베풀고 “함흥부는 도조와 환조께서 터를 정한 자리이며, 또 태조께서 여기서 탄생하셨는데, 아직도 이 강에 이름이 없으니 또한 한 가지 흠이 아닙니까?” 하니 하륜이 용흥(龍興)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 의주의 압록강은 혹 마자하(馬訾河)라 하고 청하(靑河)ㆍ용만이라고도 하는데, 서쪽의 요동 도사(都司)까지 1백 60리가 된다. 근원은 백두산인데 남쪽으로 흘러 갑산(甲山)ㆍ혜산진(惠山鎭)을 거쳐 혜산강(惠山江)이 되고 허천강(虛川江)과 합한다.
○ 허천강은 근원이 북청ㆍ북제령(北諸嶺)ㆍ벌성포천(伐成浦川)인데, 산 북쪽 파천(波川)ㆍ독산천(禿山川)ㆍ황수천(黃水川) 등 여러 물과 합해서 북쪽으로 흘러 갑산(甲山)ㆍ청주기(靑州岐)에 이르고 허천역(虛川驛) 옆을 지나 허천강이 된다. 장백산 서쪽 여러 냇물과 합했고, 또 운총천(雲寵川)과 합류하여 혜산강으로 들어간다.
○ 두 강이 합해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삼수(三水)의 경계로 들어가서 압록강이 되고, 가을파지(加乙波知)에 이르러 장진강(長津江)과 합하니, 장진강은 곧 부전령(赴戰嶺)과 황초령(黃草嶺) 이북에 있는 물이다. 또 서쪽으로는 후주강(厚州江)과 합해서 서북쪽으로 흘러 무창(茂昌)ㆍ여연(閭延)을 지나 남으로 꺾여 흘러서, 옛 우예(虞芮)에 이르러 자성강(慈城江)과 합하고, 서남쪽으로는 위원(渭源) 경계에 이르러 독로강(禿魯江)과 합한다.
독로강은 그 근원이 둘인데, 하나는 희천(熙川) 적유령(狄踰嶺)에서 나와 신광진(神光鎭)을 지나고, 하나는 함경도 경계 화을첩(和乙岾) 밑 설한령(雪寒嶺) 북쪽 총전령(葱田嶺) 서남쪽에 있는 물 밑에 나와서 평남진(平南鎭)을 거쳐 강계(江界) 입석(立石)에서 합하여 북쪽으로 흘러 강계에 이르며, 남쪽은 독로강이 되고, 서쪽은 위원 북쪽 오로량(吾老梁)에 이르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 초산(楚山) 산양회(山羊會)에 이르러 건주위(建州衛) 만주강(滿洲江)과 합하며, 만주강은 혹은 파저강(婆猪江)이라고도 하고 또는 퉁가강(佟家江)이라고도 하는데, 아이보(阿耳堡)에 이르러 동건강(童巾江)과 합한다.
동건강은 근원이 고리산(古理山)과 숭적산(崇積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꺾어져 서쪽으로 흐르다가 희천(熙川) 경계에 있는 우현진(牛峴鎭)과 운산(雲山) 경계의 차령진(車嶺鎭)의 여러 냇물과 합쳐서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 벽동(碧潼)ㆍ창성(昌城)ㆍ삭주를 거쳐 의주 북쪽에서 옥강(玉江)과 합한다.
옥강은 의주 동북쪽 60리에 있는데 그 근원은 천마산(天磨山)과 여자산(呂子山)에서 나와 옥강진(玉江鎭)에 이르러 압록강으로 들어가는데, 그 속에서 담청색 옥이 나기 때문에 옥강(玉江)이라고 한다.
○ 적도(赤島) 동쪽에 이르러 세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남쪽으로 흘러 굽이쳐서 구룡연(九龍淵)이 되는데, 이것을 압록강이라 하니 물빛이 오리 머리 같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 서강(西江)이 되고 하나는 중류를 따라 흐르는데, 이것을 소서강(小西江)이라 한다.검동도(黔同島)에 이르러 다시 합쳐서 하나가 되고 수청량(水靑梁)에 이르러 또 두 갈래로 나뉘어져, 한 갈래는 서쪽으로 흘러 적강(狄江)과 합하고 적강은 압록강 서북쪽에 있으니 오랑캐 땅에서 동북쪽으로 흘러 내려왔다. 한 갈래는 남쪽으로 흘러 큰 강이 되어 위화도를 거쳐 암림곶(暗林串)에 이르러 서쪽으로 흐르다가 미륵당(彌勒堂)에서 다시 적강과 합하여 대총강(大摠江)이 되어 고진강(古津江)과 합한다.
고진강은 근원이 보광산(普光山) 북쪽 선천(宣川) 경계 에서 나와서 식송진(植松鎭)을 거쳐 미륵당에서 삭주 지경의 천마산 남쪽 여러 냇물과 합류하여 이루어진 강이다. 옛 정령(定寧)ㆍ옛 영주(寧州)ㆍ옛 인산(麟山)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가는데, 천순(天順) 연간에 서장관 강기수(姜耆壽)가 여기 빠져 죽었기 때문에 서장강(書狀江)이라고도 한다.
○ 남쪽으로 서해로 들어간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여진이 일어난 곳에 압록강이 있었다.” 하였고 옛 기록에 “천하의 세 곳에 큰 강이 있으니 황하ㆍ장강ㆍ압록강이 이것이다.” 하였다.
○ 안주(安州) 청천강은 혹은 살수(薩水)라고도 하는데, 그 근원은 영변(寧邊) 묘향산에서 나와서 10여 리를 흐르다가 어천(魚川)과 합한다. 어천은 근원이 적유령(狄踰嶺)에서 나와 동쪽으로 10리를 흘러 어천이 되었다. 영원 서쪽 경계에 있는 물이 서쪽으로 40리를 흐르다가 희천(熙川) 봉단성(鳳丹城)에서 합하고 아래로 흘러 영변 장항진(獐項津)이 된다.이 강은 안주부 동남쪽에 이르러 화천강(花遷江)이 되고, 또 남쪽으로 5, 6리를 흐르다가 안주 무골도(無骨島)에 이르러 또 구음포진(仇音浦津)과 합한다. 구음포진은 근원이 초산과 벽동(碧潼) 지경에서 나와 운산(雲山)의 동천(東川)이 되고 영변을 거쳐 동쪽으로 흐르다가 또 개천(价川) 장항강(獐項江)과 합한다. 장항강은 바로 묘향산 남쪽 분탄(犇灘)의 하류인데 동천과 합쳐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안주 북성(北城) 아래에 이르러 청천강이 되고 서쪽으로 30리를 흐르다가 박천강(博川江)과 합한다.
○ 박천강은 근원이 창성(昌城)의 부운산ㆍ삭주의 천마산ㆍ청룡산ㆍ옛 구주(龜州)의 팔령산(八嶺山)에서 나오는데 청천강과 합류하여 태천(泰川) 동쪽에서 오지천천(烏知遷川)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구성(龜城)의 구림천(仇林川)ㆍ팔령천(八嶺川)과 합해서 동쪽으로 흘러 박천(博川) 서쪽에서 곶적강(串赤江)과 합해서 박천강이 된다. 이 강이 가산(嘉山) 동쪽에 이르러 대령강(大寧江)이 되어 정주 가마천(加磨川)과 동쪽으로 흐르다가 합하고, 고성진(古城鎭)에 이르러 청천강과 합하며 남쪽으로 흐르다가 노강(老江)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는 대정강(大定江)이라 하였고, 옛날에는 개사강(蓋泗江)이라 불렀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를, “주몽이 북부여로부터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여기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모여서 다리를 만들었으며 이로 인하여 무사히 건넜기 때문에 이름을 대령강이라 하였다.” 한다.
○ 평양의 대동강은 그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영원(寧遠) 가막동(加幕洞)에서 나와 남쪽으로 흐르다가 맹산현(孟山縣) 북쪽에 이르러서 다시 꺾여 서쪽에서 흘러가다가 덕천 경계에서 삼탄(三灘) 영원 맹산(孟山)의 물이 여기에 이르러서 합쳐 흐르기 때문에 삼탄이라고 부른다. 과 합쳤고 남쪽으로 흘러 개천(价川) 경계에서 순천강(順川江)이 된다. 다시 순천 경계에 이르러 성암진(城巖津)이 되었는데, 위에는 사탄(斜灘)이 있고 밑에는 기탄(岐灘)이 있으며 자산(慈山) 경계에 이르러 우가연(禹家淵)이 되어 은산(殷山)의 대천(大川)과 합했으며 이로부터 다시 동쪽으로 흘러 강동 경계에 이르러 잡파탄(雜派灘)이 된다.
○ 하나는 양덕(陽德) 북쪽 문음산(文音山)과 오강산(吳江山) 및 맹산의 대모원동(大母院洞)에서 나와 다시 합해서 성천(成川)의 비류강이 되어 흘골산(紇骨山) 밑을 지나는데 산 밑에 사석혈(四石穴)이 있어 물이 그 구멍 속으로 통해 흐르다가 솟아 올라 서쪽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비류강이라 한다.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흐르다가 강동 경계에 이르러서 잡파탄과 합류하여 서진강(西津江)이 되고 다시 웅성강(熊城江)과 합한다.
웅성강의 근원은 옛 양덕 북쪽 40리에 있는 고원(高原) 경계 우라발산(亏羅鉢山) 거차리령(巨次里嶺) 남쪽 에서 나오는데, 흘러서 양덕(陽德)의 남천(南川)이 되고 곡산(谷山)으로 들어가서 말흘탄(末訖灘)이 되어 곡산 여러 냇물과 합한다. 이 물은 다시 수안을 지나 북쪽을 삼등(三登) 남쪽에 이르러서 웅성강이 되고, 또 서북쪽으로 흘러 서진강으로 들어간다.
○ 평양성 동북쪽에 이르러 마탄(馬灘)이 되고, 성 동쪽에 이르러 백은탄(白銀灘)과 대동강이 된다. 이로부터 서쪽으로 흘러 구진익수(九津溺水)가 되고 그 하류는 평양강과 합한다. 평양강은 근원이 순안(順安)의 법홍산(法弘山)에서 나와서 보통문(普通門) 밖을 지나 웅성강과 합류하여 중화 서쪽에 이르러 이진강(梨津江)이 되고, 강서의 구림천(九林川)과 합해서 용강(龍崗) 동쪽에 이르러 동쪽 급수문(急水門)으로 빠진다.
○ 금천(金川)의 저탄(猪灘)은 근원이 수안의 언진산(彦眞山)에서 나오는데 아래로 흘러 흑석탄(黑石灘)이 되고 보음탄(甫音灘)이 되며 신계(新溪) 서쪽을 지나서 사팔적탄(沙八赤灘)이 된다. 이 물은 평산(平山) 북쪽에 이르러 기탄(岐灘)이 되고 또 남쪽으로 가서 전탄(箭灘)이 되며, 저탄에 이르러 비로소 커져 하류는 금천 조읍포(助邑浦)의 조운(漕運)하는 곳이 된다.
○ 남쪽은 말롱포(末籠浦)가 되고, 그 남쪽은 배천(白川), 동쪽은 금곡포(金谷浦)의 조운하는 곳이며, 또 그 남쪽은 광정도(匡正渡)와 벽란도가 된다.
○ 서울의 한강은 옛날에는 한산하(漢山河)라 일컬었고, 고려에서는 사평도(沙平渡)라 일컬었다. 그 근원은 둘인데, 충주의 금천(金遷)으로부터 흘러온 것을 남강이라 일컫고, 춘천의 소양강으로부터 온 것을 북강이라 일컫는다.
○ 남강은 그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강릉의 오대산 우통수(于筒水) 금강연(金剛淵)에서 나온다. 한강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들였지만 우통수가 그 주류이다. 오대산 물이 두타산 북림계(北臨溪)와 삼척의 죽현(竹峴) 물과 합해서 남쪽으로 흘러, 정선 동쪽 여량역(餘粮驛)을 지나 군(郡) 북쪽에 이르러 광탄진(廣灘津)이 되고, 군 남쪽은 대음강(大陰江)이 되고, 군 서쪽은 용암연(龍巖淵)이 된다.또 흘러가다가 영월 후진(後津)이 되고 금봉연(金鳳淵)에 이르러 금장강(錦障江)과 합한다. 금장강은 바로 평창(平昌)의 연촌진(淵村津) 하류이며, 또 서쪽으로 주천강(酒泉江)과 합하는데 주천강은 바로 원주 동쪽 주천현 거슬산(琚瑟山) 여러 물의 하류이다.또 남쪽으로 흘러 영춘(永春)에 이르러서 눌어탄(訥魚灘)이 되고, 또 남쪽으로 흘러 남진(南津)이 되며, 서남쪽으로 흘러 단양에 이르렀으며, 북쪽으로는 상진(上津)과 하진(下津)이 되고, 서쪽은 소요항탄(所要項灘)이 된다. 또 북쪽으로 꺾어지고 서쪽으로 흘러서 청풍강이 되고, 병풍산 밑에 이르러 북진(北津)이 되며, 제천의 광탄(廣灘) 하류에 와서 합하고, 충주 북쪽 10리에 이르러 북진이 되며, 충주 서쪽 10리 금천에 이르러 달천(達川)과 서로 합한다.
○ 하나는 근원이 보은의 속리산에서 나와 산 위에서 물이 세 줄기로 나뉘어지는데, 그 하나는 구요(九遙) 팔교(八橋)의 냇물이 되어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꺾어져 청주 동쪽에 이르러 청천(靑川)이 되고, 청천은 파곶(葩串) 하류와 합하여 괴산에 이르러 괴진(槐津)이 되며, 연풍천(延豐川)과 합한다. 또 북쪽으로 충주 서남쪽에 이르러 달천이 되고, 서쪽으로 금천에 이르러 청풍강과 합하고, 서쪽으로는 월락탄(月落灘)이 된다.그 서쪽에 가흥창(嘉興倉)이 있고, 또 그 서북쪽으로는 원주의 흥원창(興元倉)이 있는데, 섬강(蟾江)과 합한다. 섬강은 바로 오대산 서쪽 횡성(橫城)ㆍ원주의 여러 물인데 서쪽에서는 여주의 여강(驪江)이 되고 양근(楊根)의 대탄(大灘)과 월계천(月溪遷)이 된다. 군(郡) 서쪽 45리 병탄(幷灘)에 이르러 북강과 합하기 때문에 세속에서는 이수두(二水頭)라고도 한다.
○ 북강(北江)은 그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인제 서화현(瑞和縣) 소파령(所波嶺)ㆍ소동라령(所冬羅嶺)과 춘천 기린현(基麟縣)의 네 냇물이 합쳐서 인제 미륵천(彌勒川)이 된다. 이 물은 서쪽으로 흘러 주연진(舟淵津)이 되고 양구 남쪽에 이르러 초사리탄(草沙里灘)이 되며, 춘천 동북쪽에 이르러 청연(靑淵)ㆍ주연(舟淵)ㆍ적암탄(赤巖灘)이 된다. 또 춘천부 북쪽 6리에 이르러 소양강이 되고, 우두산(牛頭山) 서쪽에 이르러 보제진(菩提津) 하류와 합했다.그 하나는 회양(淮陽)의 화천(和川) 하류에서 덕진(德津)이 되어 은계(銀溪)와 합했으며, 양구의 대연(大淵) 하류에서 회양ㆍ용연(龍淵)ㆍ남곡(嵐谷)의 물이 되어 금성(金城)의 남천(南川)이 되었고, 철령 남쪽 금강 서쪽에 있는 여러 냇물이 모두 합해서 금성(金城)이 보제진이 되는데 속칭 모천(牟遷)이라고도 한다. 이 물이 서쪽으로 흘러서 통구(通溝) 다경진(多慶津)이 되고 금강 남쪽의 물이 서쪽으로 흘러오다가 양구의 곡계(曲溪)와 합치고 서쪽으로 흘러와 합쳐서 낭천(狼川)에 이르러 마탄(馬灘)이 되고, 남쪽으로는 대리진(大利津)이 된다.또 춘천 북쪽에 이르러 모진(母津)이 되고 우두촌(牛頭村) 앞에 이르러 소양강과 합해서 서쪽으로 흘러 신연진(新淵津)이 된다. 또 홍천강과 합해서 가평 동쪽에 이르러 안판탄(按板灘)이 되고, 양근(楊根) 서쪽에 이르러 용진(龍津)이 되고 병탄에 이르러 남강과 합한다.
○ 남강과 북강이 합해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주(廣州) 경계에 이르러서 도미천진(渡迷遷津)이 되고, 광진(廣津)이 되고 또 송파(松波)ㆍ삼전도ㆍ저자도(楮子島)ㆍ뚝섬 두모포(豆毛浦)가 된다. 경성 남쪽에 이르러 한강도가 되고 또 서쪽으로는 서빙고ㆍ동작진ㆍ흑석(黑石)ㆍ노량(露梁)ㆍ용산강ㆍ마포ㆍ남타(南沱)ㆍ율도(栗島)ㆍ토정(土汀)ㆍ현석(玄石)ㆍ서강(西江) 농암(籠巖)이 된다. 금천(衿川) 북쪽에 이르러 양화도(楊花渡)가 되고, 양천 북쪽에 이르러 공암진ㆍ행주가 된다.또 교하(交河) 서쪽에 이르러 임진강과 합하고, 통진 북쪽에 이르러서는 조강(祖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임진강은 그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안변(安邊)과 영풍(永豐) 냇물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방장치(防墻峙)를 지나서 이천(伊川)으로 들어간다. 미탄(美灘)의 물은 근원이 박달치(朴達峙)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합해서 옛 성진(城津)이 되며 신계(新溪) 경계를 지나 안협의 제당연(祭堂淵)이 된다.평강(平康) 분수령 물은 안협(安峽)의 저구리탄(猪仇里灘)이 되고 이 물이 합해서 포리진(浦里津)이 되어 토산으로 들어가서 동천(東川)이 된다. 다시 삭녕에 이르러 삭녕도가 되고 연천 서쪽에 이르러 징파도(澄波渡)가 되며, 마전(麻田)에 이르러 후근도(朽斤渡)가 되어 양주의 대탄(大灘)과 합한다.
○ 그 하나는 철령 물이 서쪽으로 꺾어져 남으로 흐르다가 평강(平康)의 정자연(亭子淵)을 지나서 철원의 체천(砌川)이 되는데 양쪽 언덕이 모두 석벽이어서 섬돌 같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이 물은 순담(筍潭) 화적연(禾積淵)을 지나서 영평 북쪽에 이르러 직탄(直灘)이 되고, 또 서쪽으로 흐르다가 영평의 전탄(箭灘)과 합한다.포천의 여러 물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백로주(白鷺洲)가 되고 백운산의 여러 냇물과 합해서 흐르다가 영평 남쪽에 이르러 전탄이 되고, 또 마흘천(磨訖川)이 되며, 양주 북쪽에 이르러 대탄이 되고, 서쪽으로 흐르다가 연천의 아미천(峩嵋川)과 합하여 마전으로 들어가서 삭녕강과 합한다.
○ 적성(積城) 북쪽에 이르러 이포진(梨浦津) 구연강(仇淵江)이 되고, 장단 동쪽에 이르러 두기진(頭耆津)이 되며, 사미천(沙彌川)과 합해서 용산진과 임진도(臨津渡)가 되고, 동남쪽으로는 덕진(德津)이 된다. 다시 교하(交河) 북쪽에 이르러 낙하도(洛河渡)가 되고, 봉황암을 지나 오도성(烏島城)에 이르러 한수와 합한다. 오도성은 속칭에 오두현(鼇頭峴)이라 한다.
○ 공주의 금강은 근원이 옥천(沃川)의 적등진(赤登津)에서 나오고, 적등진은 근원이 덕유산 서북에서 나오니, 장수ㆍ진안의 여러 냇물이 합해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용담(龍潭) 달계천(達溪川)이 되고, 무주에 이르러 대덕산(大德山)ㆍ적상산(赤裳山) 냇물과 합해서 금산 경계에 이르러 소이진(召爾津)ㆍ지화진(只火津)이 된다. 다시 이 물은 옥천에 이르러 호진(虎津)이 되고, 또 북쪽으로 흘러 적등진이 된다.상주 중모현(中牟縣) 물은 황간(黃澗)ㆍ영동(永同)을 지나고, 속리산 물은 보은ㆍ청산(靑山)에서 합류해서 북쪽으로 화인진(化仁津)이 되고, 회인(懷仁)을 지나서 말흘탄(末訖灘)이 되며, 서쪽으로 흘러 문의에 이르러서 이원진(利遠津)이 되는데, 이것을 또 형각진(荊角津)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또 서쪽으로 동진(東津)과 합하고, 연기(燕岐)ㆍ동진ㆍ진천(鎭川)ㆍ청안(淸安)의 여러 냇물이 합류해서 청주 작천(鵲川)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목천ㆍ전의의 여러 냇물과 합해서 동진이 된다.다시 공주 북쪽에 이르러 금강이 되고 남으로 꺾어져 웅진과 부여에 이르러 백마강이 된다. 또 은진(恩津)에 이르러 강경포(江景浦)가 되고, 또 서쪽으로 꺾어져 석성의 고다진(古多津)ㆍ임천(林川)의 남당포(南堂浦)ㆍ한산(韓山)의 상지포(上之浦)ㆍ서천의 진포(鎭浦)가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임천에서 서천포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진포라고 한다.
○ 계룡산 한 골짜기의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진잠(鎭岑) 남쪽에 이르러 차탄(車灘)이 되고 진산(珍山)의 옥계(玉溪) 하류와 합했으며 또 동쪽으로 공주ㆍ유성에 이르러 여러 냇물과 합해서 회덕의 갑천(甲川)이 되고, 또 선암천(船巖川)이 되며 북쪽으로 흘러서 형각진(荊角津)으로 들어간다.
○ 나주의 영산강은 그 근원이 여덟이 있는데, 하나는 담양의 추월산(秋月山)에서 나오고, 하나는 창평(昌平)의 무등산 서봉학(瑞鳳壑)에서 나오고, 하나는 광주의 무등산에서 나와서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꺾어져 칠천(漆川)이 되며, 하나는 장성의 백암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노령 남쪽에서 나오는데 흘러가다가 합해서 선암도(仙巖渡)가 되며, 하나는 능주(綾州)의 여참(呂岾) 북쪽에서 나와서 화순의 물과 합해서 흐르다가 다시 남평(南平)을 둘러 서쪽으로 흐르고, 하나는 영광 수연산(隨緣山)에서 나와서 작천(鵲川)이 되고,하나는 나주 북쪽 도야산(都野山)에서 나와서 장성천이 되는데, 합해서 흐르다가 나주 동쪽에 이르러 광탄이 되고 나주 남쪽은 영산강이 되는데, 이 강의 본이름은 금강진(錦江津)이다. 다시 서쪽으로 흘러 회진강(會津江)이 되고 무안에 이르러 대굴포(大掘浦)가 되고 덕보포(德甫浦)가 되며, 남쪽으로 흘러 두령량(頭靈梁)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영암해로 들어간다. 고려 때에 이 물을 거슬러 흐르는 3대강(三大江)의 하나라고 하였다.
○ 광양의 섬진강은 근원이 진안(鎭安)의 중대(中臺) 마이산에서 나와서 합하여 임실의 오원천(烏原川)이 되고, 서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운암(雲巖) 가단(可端)을 지나서 태인의 운주산(雲住山) 물과 합하여 순창의 적성진(赤城津)이 되는데 이것을 ‘화연(花淵)’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또 저탄(猪灘)이 되고, 또 동쪽으로 흘러서 남원의 연탄(淵灘)이 되며, 또 순자진(鶉子津)이 된다. 다시 옥과에 이르러 방제천(方梯川)이 되며, 곡성에 들어가서 압록진(鴨綠津)이 되고, 구례에 이르러 잔수진(潺水津)과 합하였다.잔수진은 근원이 동복(同福) 서석(瑞石) 동쪽에서 나와 현(縣) 남쪽 달천(達川)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보성 북쪽에 이르러서 죽천이 되는데, 이것을 또 ‘정자천(亭子川)’이라고도 한다. 다시 동북으로 흘러 순천의 낙수진(洛水津)이 되며, 잔수진에 이르러 순자강과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화개(花開) 서쪽 경계에 이르러 용왕연(龍王淵)이 되는데, 여기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또 광양 남쪽 60리에 이르러 섬진강이 되는데, 그 동쪽 언덕은 바로 하동(河東)의 악양(岳陽)으로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 때에는 이 물이 거슬러 흐르는 3대강의 하나라 하였고, 이름을 ‘두치강(斗峙江)’이라 하였다.
○ 만경(萬頃)의 신창진(新倉津)은 근원이 고산(高山)의 남천(南川)에서 나오는데, 운제산(雲梯山)과 주취산(珠崒山)의 물이 현(縣) 남쪽을 지나 흘러서 전주 북쪽으로 들어가 직연(直淵)이 되고 안천(鴈川)이 된다. 이 물은 또 삼례역(參禮驛) 남쪽에 이르러서 전주 남천의 북류와 합하며 또 서쪽으로 흘러 옥야(沃野)ㆍ이성(利城)을 거쳐 김제 경계에 이르러 신창진이 되는데, 바닷물이 들어온다. 만경현을 지나서 북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 부안의 동진(東津)은 내장산과 노령 북쪽 여러 냇물이 합해서 북으로 흘러서 고부(古阜)의 모천(茅川)이 되며, 서쪽으로 꺾어져 태인의 남천(南川)과 합해서 북쪽으로 흘러 부안의 동진이 된다. 금구(金溝) 상왕산(象王山)의 물은 김제의 벽골제(碧骨堤)가 되고 서쪽으로 흘러 동진으로 들어간다. 흥덕(興德) 우등산(牛登山) 물은 고부의 눌제천(訥堤川)이 되어, 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진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 경상도의 낙동강은 근원이 태백산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꺾어져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경상도의 중간을 가로지르며, 또 동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태백산 동쪽 줄기는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꺾어지며, 남쪽은 지리산에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가서 김해에 이른다. 경상도는 모두 한 수구(水口)를 이루니, 낙동강은 상주 동쪽을 말함이다.낙동강의 상류와 하류는 비록 지역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통틀어 낙동강이라 부르며, 이 강은 또 ‘가야진(伽倻津)’이라고도 한다. 강 동쪽은 좌도(左道)가 되고, 강 서쪽은 우도(右道)가 된다. 고려 때에는 이 강과 호남의 섬진강ㆍ영산강 두 강을 거슬러 흐르는 3대강이라고 하였다.
○ 태백산의 황지(黃池)는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와서 봉화에 이르러 매토천(買吐川)이 되며, 예안에 이르러 나화석천(羅火石川)과 손량천(損良川)이 된다. 또 남쪽으로 흘러 부진(浮津)이 되며, 안동 동쪽에 이르러 요촌탄(蓼村灘), 물야탄(勿也灘), 대항진(大項津)이 된다.영양ㆍ진보(眞寶)ㆍ청송의 여러 냇물이 모두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 용궁(龍宮)의 비룡산(祕龍山) 밑에 이르러 하풍진(河豐津)이 된다. 풍기ㆍ순흥(順興)ㆍ봉화ㆍ영천의 물은 합하여 예천의 사천(沙川)이 되고, 문경(聞慶)ㆍ용연(龍淵)ㆍ견탄(犬灘)의 물은 남쪽의 함창(咸昌) 곶천(串川)에 와서 합한다.
○ 상주 북쪽에 이르러 송라탄(松蘿灘)이 되며, 상주 북쪽 동북 35리에 이르러 낙동강이 되며, 의성ㆍ의흥(義興) 여러 냇물은 군위ㆍ비안(比安)을 거쳐 와서 합쳐진다.
○ 선산 북쪽에 이르러 견탄(犬灘)이 되며, 선산부(善山府) 동쪽에서는 이매연(鯉埋淵)이 되고 여차니진(餘次尼津)이 되며, 선산부 동남쪽으로는 보천탄(寶泉灘)이 되었다. 속리(俗離)ㆍ황악(黃岳) 동쪽 물은 지례(知禮)의 감천(甘川)이 되어 금산(金山)ㆍ개령(開寧)을 거쳐 합친다.
○ 인동 서쪽에 이르러 칠진(漆津)이 되며, 성주 동쪽에 이르러 소야강(所耶江)이 되고 동안진(東安津)이 되니, 바로 대구 서쪽 경계이다. 영천(永川)ㆍ신령(新寧)ㆍ하양(河陽)ㆍ자인(慈仁)ㆍ경산(慶山)의 여러 물과 합하여 대구의 금호(琴湖) 달천진(達川津)이 되어 모두 합치고, 또 남쪽으로 흘러 무계진(茂溪津)이 되어 현풍(玄風)을 지나 서쪽으로 흐른다.
○ 고령 동쪽에 이르러 개산강(開山江)이 되며, 성주의 가천(伽川)은 고령으로 들어가서 합천의 야천(倻川) 하류와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서 다시 합친다.
○ 초계(草溪) 동쪽 창녕 서쪽에 이르러 감물창진(甘勿倉津)이 되며, 거창 덕유산 동남쪽 여러 냇물은 합하여 합천의 남강(南江)이 되고, 또 초계의 황둔진(黃芚津)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가서 합한다.
○ 영산(靈山) 서쪽에 이르러 기음강(岐音江)이 되어 촉석강(矗石江)과 합하여진다.
○ 진주의 촉석강은 그 근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지리산 북쪽 운봉(雲峰) 경계에서 나와서, 함양의 임천(瀶川)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용유담(龍遊潭)이 되고 엄천(嚴川)이 된다.이 물은 산청 경계에 이르러 안의의 동천(東川) 하류와 합하여 진주 서쪽에서 우탄(牛灘)이 되며, 단성(丹城)에 이르러 신안진(新安津)이 되는데, 삼가(三嘉)의 여러 냇물이 흘러 합쳐서 진주 서쪽에 이르러 소남진(召南津)이 된다.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와서 산을 돌아 동쪽으로 흐르다가 진주 서쪽에서 합쳐서 청천강(菁川江)이 되며, 성(城) 아래에 이르러 촉석강이 된다. 다시 동쪽으로 의령에 이르러 정암진(鼎巖津)이 되며, 영산(靈山)의 기음강(岐音江)에 이르러 낙동강과 합하고, 칠원 북쪽에 이르러 모질포(亐叱浦)가 된다. 이 물은 다시 흘러서 매포(買浦)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혹은 ‘무포(茂浦)’라고도 한다.창원 북쪽에 이르러 주물연진(主勿淵津)이 되며, 밀양 남쪽 30리, 김해 북쪽 50리 경계에 이르러서 뇌진(磊津)이 되는데, 이곳은 혹 ‘해양강(海陽江)’이라고도 한다. 청도와 밀양의 물은 응천(凝川)이 되어서 영남루(嶺南樓)를 남쪽으로 돌아서 합쳐진다.
○ 또 동쪽으로는 삼랑창(三浪倉)이 있고 남쪽으로 흘러 옥지연(玉池淵) 황산강(黃山江)이 된다. 또 남쪽으로 양산(梁山)의 동원진(東院津)이 되며, 또 남쪽으로는 세 갈래 물이 되어서 김해부 남쪽 취량(鷲梁)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 보충 : 은하수의 형상은 하늘의 반쪽을 가로질렀는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에서 그쳤는데, 머리는 간방(艮方)이고 꼬리는 곤방(坤方)이다. 우리나라에 큰 강이 셋이 있는데, 압록강ㆍ대동강ㆍ한강으로서, 이 세 강은 모두 머리는 간방이고 꼬리는 곤방이다. 《성호사설》
○ 보충 : 우리나라 지도가 옛날에는 모두 평평하고 정방형이기 때문에 형세를 알 수 없었다. 영종(英宗) 경인년에 신경준(申景濬)에게 명하여 <동국지도(東國地圖)>를 만들게 하니, 관청에 보관했던 십여 가지를 내어 오고 또 널리 여러 사람들의 금ㆍ고본(今古本)을 찾아 내었으나, 정항령(鄭恒齡)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완전하였다.여기에 약간 교정을 더해서 <열읍도(列邑圖)> 8권과 <팔도도(八道圖)> 1권과 <전국도(全國圖)> 한 폭을 만들었는데, 주척(周尺 주 나라 척도(尺度)를 기준으로 삼음) 두 치로 한 선(線)을 하고 세로는 76선, 가로는 1백 31선으로 하게 하였다. 또 동궁에게 이와 같이 만들어 바치도록 하고, 임금이 친히 짧은 서문을 지어 족자 위에 썼다. 정씨(鄭氏)의 지도는 항령의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항령의 아들 원림(元霖)에 이르러 보충되었으니, 대개 3대(代) 50여 년이 걸려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