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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序類) | ||||
여묘(廬墓) 사는 박 청도(朴淸道)에게 주는 시의 서 |
교서랑(校書郞) 최직지(崔直之)가 그의 외할아버지 박군(朴君)이 임종할 때 그의 아들에게 유언한 시(詩) 한 절구를 나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육십난 효자 약을 맛보누나 / 六旬孝子藥先嘗
사생은 천명이라 피하기 어렵나니 / 死生存命終難避
너의 어미 무덤 곁에 나를 묻어 다오 / 近汝慈墳立壽堂
[주D-002]내시(內侍) : 고려 때 숙위(宿衛) 및 근시(近侍)의 임무를 맡아 보던 관원. 재예와 용모가 뛰어난 세족의 자제 또는 시문에 능한 문신 출신으로 임명하였다.
[주D-003]개풍 한천(凱風寒泉) : 개풍은 《시경》 패풍(邶風) 중의 편명. 한천은 개풍 중 ‘원유한천(爰有寒泉)’의 구절에서 인용된 것인데, 이는 자식들이 어버이를 잘못 섬기는 것을 자책한 시다.
[주D-004]내 손을……알았노라 : 증삼(曾參)이 병들어 제자들을 훈계한 말로, 몸을 온전히 보전하여 죽는 것도 효도의 하나인데, 이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論語 泰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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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권,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27일(정해) 2번째기사
김약채를 다시 대사헌으로 삼고, 김자수·전순 등 대관들도 임명하다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永樂) 8년) 6월 25일(경신) 3번째기사
관기를 매질하여 죽인 나주 판관 최직지를 파직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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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
補遺篇 (全羅道)
完山誌卷下
科宦文臣
鄭可宗 官至判書 원주 鄭守弘 官至大憲 원주 崔霮 官至參議 원주 崔匡之 霮之子官至提學 원주 崔直之 匡之弟至至提學 원주 任衡 官至獻納 원주 柳克剛 贈掌令 濕之子官至判典校事 원주 柳克修 克剛弟至郡守 원주 柳克濟 克修之弟也官至判官 원주 柳思汶 克修子官至參知 원주 吳蒙乙 麗末登第入我 朝開國功臣寶城君官至吏判 원주 崔進誠 定宗朝登第官至舍人 원주 柳益之 官至獻納 원주 金滓 太宗朝登第官至政堂文學 원주 李桂遂 世宗朝登第官至判事 원주 吳乙濟 文宗朝登第官至監司 원주 柳阡第 端宗朝登官至縣監 원주 李孟智 吏判 承吉五世孫官至執義 원주 柳孝章 睿宗朝登第官至郡守 원주 姜參 官至承旨 원주 柳仁弘 孝章子官至持平 원주 梁之孫 官至禮儀 원주 金瓊 官至禮正 원주 林乙孫 官至縣監 원주 李穟 完城君 伯由四世孫燕山
<하권1036-2>
朝登第官至牧使 원주 李昌壽 官至僉正 원주 鄭仁謙 官至僉樞 원주 李忠男 吏判 承吉四世孫官至持平 원주 林崇檜 進士乙枝子 中宗朝登第官至承文校檢 원주 鄭振 官至禮郞 원주 金權 府使 冏之孫官至府使 원주 金應璧 官至修撰 원주 姜璜 別坐 利誠子官至正言 원주 崔瑞獜 官至郡守 원주 梁鐵堅 官至縣監 원주 李效忠 昌壽子登魁第官至佐郞文行超世靜庵趙先生重其人有共貞之意早沒士天夫莫不惜之 원주 柳世華 生進俱中官至府使 원주 姜崇德 璜之子中壯元官至修撰 원주 李承孝 效忠子選湖堂官至修撰才行文章冠世 원주 崔弘僴 明宗朝登第官至本道監司 원주 鄭彦智 振之子官至判書 원주 鄭彦信 彦智弟官右議政 원주 陸大春 淸白官至郡守 원주 李義臣 官至郡守 원주 梁應鮐 初名應台放榜時 御賜鮐字 恩遇頗隆官至郡守 원주 柳世茂 官至府使 원주 柳德粹 官至牧使 원주 金汝鍊 官至翰林 원주 李振先 官至正郞 원주 梁夢說 官至正郞天性仁孝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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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 허주(許周)가 나주 판관(羅州判官) 최직지(崔直之)를 파면시켰다. 만경 현령(萬頃縣令) 윤강(尹江)이 어떤 일로 나주에 이르렀는데, 관기(官妓) 명화(名花)가 수청(守廳)을 들지 않는다고 노하매, 직지(直之)가 매를 때려 3일 만에 죽었다. 이리하여 그 집에서 원통함을 호소하였기 때문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55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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