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순(崔甫淳)에 대하여1162년(의종 16)∼1229년(고종 16). 고려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예부상서를 지낸 균(均)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황주의 장서기(掌書記)를 거쳐 소부감(小府監)이 되었다. 1208년(희종 4) 금나라의 황제 즉위 축하문을 잘못 썼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뒤 이부시랑(吏部侍郞)이 되고, 1212년(강종 1)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과거를 주관하여 위대여(魏大輿) 등을 시취(試取)하였다. 이듬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지공거가 되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이주장(李柱長)과 함께 허수(許受) 등을 시취하였다. 1222년(고종 9) 참지정사(參知政事)로서 또 지공거를 맡았으며,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를 거쳐 이듬해 수문전대학사 동수국사(修文殿大學士同修國史)를 역임하였다. 1227년 감수국사(監修國史)가 되어 수찬관(修撰官) 김양경(金良鏡)·임경숙(任景肅)·유승단(兪升旦) 등과 함께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이듬해 수태사 판이부사(守太師判吏部事)에 올랐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 |||||||||||
云云。夫代天理物。貳王行政者。宰相之任也。國以之重輕。民由之肥瘠。以人爲鑒。唐宗保魏徵之明。用汝作舟。商后倚傅說之濟。如非遠量。曷副輿情。卿該通天人。諳練典故。業文而資之武。體柔而濟以剛。精神折衝。弄敵人於掌上。論議有據。藏國子於胸中。貞松不爲寒暑變其容。良玉不因燥濕渝其性。擧國安危而是託。非卿德望而孰當。是用直越鴻樞。擢登鳳閣。申峻史臣之職。兼崇書殿之資。用玆西省之新榮。雪爾南曹之舊屈。大抵王者之用人也。雖未嘗究閱其爲人。苟僉言之皆允。猶柄用而不疑。况如卿者。在昔納言密邇之時。朕已親試。置斯當軸論思之地。誰復異詞。毋執小謙。更陳牢讓。所請宜不允云云。 |
| ||||
고율시(古律詩) | ||||
모춘(暮春)에 박사 최보순(崔甫淳)과 함께 주부(注簿) 윤세유(尹世儒)를 찾아 술상을 차려놓고 동파(東坡)의 시운을 따라 각각 짓다 |
마주앉아 세 잔씩 마셨으나 / 對酌三杯酒
수인장은 엿볼 수 없네 / 難窺數仞墻
꽃이 지니 시 생각 어지럽고 / 落花詩思亂
해는 지는데 취한 노래 흥겹구나 / 殘日醉歌長
내 살쩍에는 처음에는 흰 털이 났고 / 我鬢初抽綠
그대는 일찍부터 명성이 알려졌네 / 君名早飮香
서로 만나 글 얘기하며 마시는데 / 相逢文字飮
꼭 이량을 연주할 게 뭐 있나 / 何必奏伊凉
[주C-002]윤세유(尹世儒) : 고려(高麗) 시중(侍中) 윤관(尹瓘)의 손자로, 벼슬이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에 이르렀다. 《高麗史》
[주D-001]수인장(數仞墻) : 두어 길 되는 담장으로, 인격과 도덕이 높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선생님의 담장은 두어 길이 되기 때문에 그 문(門)을 찾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종묘(宗廟)의 아름다움과 백관(百官)의 훌륭함을 볼 수 없다.” 하였다.
[주D-002]이량(伊凉) : 이주(伊州)와 양주(凉州)의 두 악곡(樂曲). 《악원(樂苑)》에 “이주는 상(商)에 해당한 곡조요 양주는 궁(宮)에 해당한 곡조이다.” 하였다.
| ||||
교서(敎書)ㆍ비답(批答)ㆍ조서(詔書) | ||||
최보순(崔甫淳)이 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집현전태학사 동수국사 판예부사(參知政事集賢殿太學士同修國史判禮部事)를 사양한 데 대한 불윤교서 |
운운. 대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고 임금을 보좌하여 정사해가는 것이 재상의 소임인데, 따라서 나라의 위신이 중해지거나 경해지고, 백성이 잘살거나 못살게 되는 것이다. 당태종(唐太宗)은 사람을 거울삼아, 위징(魏徵)의 총명을 싸고 돌고, 상(商) 나라 임금은 신하를 배[舟] 삼아, 부열(傅說)이 건너줌을 힘입었다. 원대한 역량있는 사람이 아니고서 어찌 여정(輿情 민심)에 맞겠는가. 경은 천ㆍ인(天人)을 해박하게 통하고 전고(典故)를 익숙하게 알며, 문장(文章)을 전업(專業)하여 무(武)를 뒷받침하고, 몸이 연약하나 강단으로 보충하되, 정신으로 대항하여 적(敵)을 손바닥 위에서 놀리고, 의논이 근거가 있어 국자감(國子監)을 가슴속에 간직했으며, 절개 있는 솔이 한서(寒暑) 때문에 그 모양을 변하지 않듯 하고, 좋은 옥이 열기나 습기 때문에 그 성질이 변하지 않듯 한다. 국가의 안위(安危)를 부탁해야 하는데, 경 같은 덕망있는 사람이 아니고 누가 하겠는가. 이래서 바로 홍추(鴻樞 추밀원)를 뛰어넘어 봉각(鳳閣 중서성)으로 발탁해 올리되, 거듭 사신(史臣)의 직(職)으로 올리고 겸해서 서전(書殿 집현전(集賢殿))의 자급(資級)으로 높이어, 이 서성(西省 중서성)의 새 영화로써 남조(南曹 이조(吏曹))에서의 전일 굴욕을 씻게 한 것이다. 대저 왕자(王者)가 인재를 임용할 때, 비록 일찍이 그의 사람됨을 파보지 못하였더라도, 진실로 여러 사람의 말이 모두 좋다고 하면, 오히려 중하게 쓰고 의심하지 않는 것인데, 더구나 경 같은 사람은 지난날 근밀(近密)한 납언(納言)으로 있을 때, 짐(朕)이 이미 친히 시험했기에 이 요로인 논사(論思)하는 자리에 두는 것인데, 누가 다시 딴 말을 하겠는가. 조그마한 겸손을 고집하여 다시 굳이 사양하는 말을 하지 말라. 소청을 마땅히 윤허하지 않겠다. 운운.
[주D-002]부열(傅說)이 건너줌 : 고종(高宗)이 꿈에 성인을 만나고서, 백공(百工)들을 시켜 수소문하여 부열을 찾아내게 되자 정승을 삼으며 말하기를 “만약 큰 내를 건너게 된다면 그대로 주즙(舟楫)을 삼겠다.” 하였다. 《書經 說命上》
| ||||
비답(批答) | ||||
최보순이 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집현전대학사 동수국사 판예부사를 사양한 것에 대해 윤허하지 않는 교서[崔甫淳讓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集賢殿大學士同修國史判禮部事不允敎書] |
이규보(李奎報)
운운.
대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고 임금을 도와 정사를 행하는 것은 재상(宰相)의 책임이라, 나라의 안위가 정승에게 달렸고 백성들의 생활 역시 정승에게 달렸다. 당 태종(唐太宗)은 위징(魏徵)을 거울로 삼아 밝음을 보유했었고, 은 고종(殷高宗)은 부열(傅說)을 배로 삼아 강물을 건넜도다. 그러니 원대한 도량이 아니면 어찌 여론(輿論)에 흡족하게 부합되겠는가. 경(卿)은 학문은 천인(天人)을 통달하고 지식은 전고(典故)에 익숙하며, 문(文)을 업으로 하되 무(武)에도 능하고 바탕은 부드럽되 강함을 겸했으며, 정신으로 절충(折衝)하면 적을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고, 논의(論議)에 근거가 있어 국자(國子)를 가슴 속에 감추었도다. 절개는 단단한 소나무와 같아 춥거나 덥거나 간에 그 모습을 변하지 않았고, 품격은 좋은 옥과 같아 건조하거나 습하거나 간에 그 성질을 변하지 않았도다. 그러니 온 나라의 안위를 맡기려면 경과 같은 덕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어느 누가 그것을 감당하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경을 추밀(樞密)에서 발탁하여 참정(參政)에 올리고, 사신(史臣)의 직책과 집현전 학사의 자격을 겸하게 하였도다. 이번 서성(西省 중서성)의 새로운 영전으로써 앞서 남조(南曹 이조(吏曹))의 불우했음을 보상하는도다.
대개 왕자(王者)가 사람을 씀에 있어서 비록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알아보지 못하여도, 뭇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면 그대로 임용하여 의심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경과 같은 이는 옛날에 승지(承旨)로 가까이 출입할 적에 짐이 이미 몸소 겪어본 바이다. 그러니 이제 경을 논사(論思)하는 요직에 둠에 있어서 누가 다시 이의(異議)를 제기할 것인가. 겸손을 고집하여 다시 사양하지 말라. 청한 바는 윤허하지 않노라. 운운.
시대 |
| |||||
연대 |
| |||||
유형/재질 |
| |||||
문화재지정 |
| |||||
크기 |
| |||||
출토지 |
| |||||
소재지 |
| |||||
서체 |
| |||||
찬자/서자/각자 |
| |||||
위치 :미상 해제 :최보순(崔甫淳 : 1162~1229)의 자는 청노(淸老)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 균(均)은 상서예부랑중(尙書禮部郞中)을 지냈는데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다가 전사하였다. 1182년(명조 12)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관직은 수대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守大尉 門下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고 수대부 감수국사 주국(守大傅 監修國史 柱國)을 더 하였다. 네 번 과거를 주관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희종대에는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에서 제방을 쌓고 물길을 내어 수재를 없앴다. 또 1227년(고종 14)에는『명종실록』의 편찬을 주도하였다. 1229년(고종 16)에 별세하니 향년 68세였다. 합문지후(閤門祇候) 진중기(秦仲基)의 딸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부인은 용구현부인(龍駒縣夫人)에 봉해졌다.
崔首相墓誌」
▨▨▨水接于天遙源長發祟岳之峰柱于地層構深盤盖鍾靈於此爲姓爲名者其惟我公乎公姓崔名甫淳字淸」
老流化府人也考均仕爲尙書禮部郞中當大定十四年甲午東蕃二十餘城跋扈飛揚於萬死中不顧死生奉承」
王命單騎獨往諭以禍福各令歸順定亂之後返於路次乃爲他賊所害惜乎爲國亡身者也 本朝錄功追封▨徒」
蓋死於王事者其後必昌公其嫡子也公資貌魁奇胷懷宏大弘和博達而遇節必立恢曠放㢮而應機能斷其居室」
也孝悌慈愛洽乎宗族而內行著焉其在國也仁義禮智浸于朝廷而外美彰焉此其大略也始自勝衣至于弱冠孜」
孜焉仡仡焉心周孔之書體班楊之作鼇弄筆海虎戄詞場及 明宗在位泰定二十二年壬寅登乙第由是驥伸逐」
日之蹄鵬展摩霄之翮在丁未年除齊安書記其守節也淸於氷潔於水其勸農也焚薈蔚漑鹵赤地千里化爲良」
田一秋大稔萬戶皆足時黜陟使褒美之曰淸白守公存恤百姓興利除害因奏之」
朝以此擢入國學循資轉秩六」管諸生樂聞嘉言甚於鍾鼓▨▨▨承慶知人者也一見大驚曰眞宰相器也因此直登中書注意之捷梯俄受監察」御史山立班心霜淸物表 神宗在位承安▨年庚申始入鳳池歷登左右正言司諫至居舍人皆兼三字琅琅諫」舌直磨天缺艷艷詞花如帶春露▨縫袞職潤色▨▨泰和二年壬戌秋南方群盗如猥毛而公以中軍兵馬判官」楯頭磨墨倚馬作檄萬擧萬全之計皆▨其手三年賊平 大上王卽位大和四年甲子以功拜居郞直寳文閣」依前知制誥兼太子文學司經乙丑冬爲入丹大使酋長聚看曰東國有賢人矣還爲禮部郞中居注典誥上方重外」勅令郞官出宰百里公例爲安南大都護副使峙堤坊決㙲澮除人水禍其慈化過於」
齊安萬萬矣半年入拜禮賓少」
卿遷國子司業兼御史雜端又遷少府監皆兼制誥凡兩爲按廉使前則慶尙後則全羅憂國如家愛民若子皆賀」
▨德之星出於南方矣察訪以守節奉公蘇復百姓褒奏之 康宗卽位大安三年辛未進拜吏部侍郞右諫議大夫」
翌年壬申遷尙書左丞依前制誥是年春爲監試座主考閱精强拔犀角擢象齒時無倒牓之誚崇慶二年癸酉拜太」
僕卿仍兼諫議制誥翰林侍講學士乙亥春出爲東界都統理疲民若烹小鮮禦黠虜如搏暴虎所以一方皆安枕矣」
丁丑春判秘書省依前制誥 今上在位貞祐六年戊寅詔爲樞密院右承宣翰林學士又兼左散騎常侍充史館修」
撰官知兵部事他皆厭聞請謁牢閉深坐不接賓客公獨大闢其戶容受百官章奏判决如流使君之澤無壅於上民」
之情無欝於下幾三載遷銀靑光祿大夫尙書右僕射席未暇暖於貞祐八年庚辰旋入中書拜金紫光祿大夫叅知」
政事集賢殿大學土同修國史判禮部事其間四掌春場一爲同提舉三爲上提擧所牓皆賢隋侯之櫝無魚目卞和之」
樻無鼠璞矣壬午冬拜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修文殿大學士示優游之德寛以濟猛推廣厚之心權以合經甲」
申冬爲守大尉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加守大傅監修國史柱國甞掌閑人之選有三度闕者官司當收田丁」
▨憫其如此更加考試乃▨于▨無一闕焉人皆感▨▨▨寡婦孤兒欲訴寃結爲吏卒所禁未得至前公呼來堂下」
▨▨▨底明白是非决之如神聞之者無不隕涕如此者不可勝數戊子冬爲三韓壁上正▨▨▨▨▨▨▨吏部事」
▨並如故是年夏初夜直中書忽然感疾 上驚惶命上方醫將萬金良藥理之須臾卽愈然時時復作尋具表▨▨」
▨▨上恐大臣釋位無與共政遣使敦諭挽留不去公强視事非所好也及冬末入政事堂除吏旣畢退息私第翌」
年己丑正月初二日曉問其時刻面壁偃臥如睡而終享年六十有八公凡仕五朝兩入憲臺四登諫掖一爲納言▨」
▨文昌爲相十年爲二宰六年爲冡宰二年是時達旦于加在於西北萬奴在東曰本在南如虎垂涎窺覦我國終未」
呑噬者以我公在朝故爾然則陰功隱德鎭壓三韓者有如此也公之室龍駒縣夫人秦氏乃閤門祇候仲基之女也」
子二人長爲內侍閤門祇候季爲國子博士兼直翰林院女三人一適禮部員外郞崔氏二亦皆爲官人之婦」
上聞訃軫悼乃命有司庀葬具加賻禮冊命諡曰文定公仍令百官祖送以是年二月初七日葬于白駒山麓禮也噫」
功名富貴壽考哀榮人臣之道無一缺焉門生吏部員外典誥星山綏之辱知最厚聊拾德爵齒之萬一上于貞珉其銘曰」
(公之生兮天降靈 五嶽秀兮公之容 學識富兮龜九肋 始達兮一日千里 吟藥西垣」公之出兮斗儲精 四溟深兮公之胷 文章麗兮鳳五色 大成兮十旬遠至 視草北門」煩大手兮高文 再憑熊兮閔南民」
陳讜議兮鯁言 暫分虎兮鎭東藩」) (▨▨一開兮▨之平 爲龍喉兮翔貴 瑠甁貯名 三取白日兮授五龍而飛天 爲亞相兮朝廷鼎重」春場四闢兮鏡之淸 含鷄舌兮奏事 金鉉調羨 一遏洪濤兮使六鼇而戴山 爲冡宰兮社稷盤安」歷仕五君 賢長城兮橫萬里」永鎭三韓 啓大炉兮鑄億人」)
(漢之安危兮在於兩握 何白鷄兮入夢 天子慟兮淚如兩 噫 龍亡大澤兮鰌鱓舞 國無人兮」
唐之輕重兮繫于一身 馭赤虬兮不廻 國人哭兮聲如雷 虎逝深山兮狐狸歌 其終奈何」
百身難續 唯餘芳烈」萬人出祖 長留竹索」)
[출전 : 『韓國金石全文』中世下篇 (1984)]
|
|||||||||||||
|
최수상(崔首相) 묘지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