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 산행 /2011.2.26. 수락산 산행

2011.2.26. 수락산 산행

아베베1 2011. 2. 27. 13:52

 

 

 

 

 

 

 

 

 

 

사가시집보유 제3권
 시류(詩類)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는 시
수락사(水落寺)


수락산 산중에 수락사가 있으니 / 水落山中水落寺
물 줄어들고 돌 드러나 산중이 저물어 가네 / 水落石出山中暮
황학이 날아가는 곁에 하늘은 나직하고 / 黃鶴去邊近靑天
검은 구름 끄는 곳엔 소낙비가 날리누나 / 黑雲拖處飛白雨
거년에 스님 찾아 이곳에 와서 노닐 땐 / 去年尋僧此來遊
구렁 가득 눈 쌓이고 달빛도 하 밝더니 / 積雪滿壑山月白
금년에 스님 찾아 이곳에 와서 노닐 땐 / 今年尋僧此來遊
바위 곁에 봄꽃들이 피고 지고 하는구려 / 巖畔春花欲開落
거년에도 금년에도 늘상 오고 가는 길인데 / 去年今年自來往
산천은 역력히도 그 옛날과 똑같구나 / 山川歷歷如昨昔
명아주 지팡이 짚어라 이끼 길은 미끄럽고 / 杖藜一枝苔蹤滑
샘물은 세차게 흘러 겨드랑에 바람이 이네 / 石泉激激風生腋
밥 먹고 난 뒤에 예전의 종소리 들리어라 / 飯後鍾聽舊時聲
벽 위에 쓰인 시엔 먼지가 가득 끼었네 / 壁上有詩塵欲撲
붉은 소매가 고금에 어찌 유독 구 내공뿐이리오 / 紅袖古今豈獨寇萊公
왕공의 호기 적음을 내 한번 조소하노라 / 我一笑王公豪氣少
이십 년 만에야 비로소 벽사롱을 보게 되다니
/ 二十年來始得碧紗籠


 

[주D-001]밥 먹고 …… 되다니 : 구 내공(寇萊公)은 송대(宋代)의 명상(名相)으로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진 구준(寇準)을 가리키고, 왕공(王公)은 당(唐)나라 왕파(王播)를 가리킨다. 벽사롱(碧紗籠)이란 시구(詩句)를 푸른 깁에 싸 놓은 것을 이르는 말로, 이는 곧 명사(名士)의 시문을 소중히 보호함을 의미한다. 당나라 왕파가 일찍이 미천했을 적에 집이 몹시 가난하여 양주(揚州) 혜소사(惠昭寺)의 목란원(木蘭院)에 한동안 우거(寓居)하면서 중의 재식(齋食)을 얻어먹고 지냈는데, 나중에는 중들이 그를 싫어하여 그가 오기 전에 밥을 먹어 버리곤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그가 고관(高官)이 되어 그 지방을 진무(鎭撫)하러 내려가서 옛날에 놀았던 그 절을 거듭 찾아가 보니, 자기가 옛날에 제(題)해 놓은 시들을 모두 깁으로 덮어서 보호하고 있으므로, 그가 다시 절구 2수를 지어 “당에 오르면 밥 다 먹고 동서로 각기 흩어졌기에, 스님네들 식사 후에 종 치는 게 부끄럽더니, 이십 년 동안 얼굴에 먼지 그득 분주하다가, 이제 비로소 푸른 깁에 싸인 시를 보게 되었네.[上堂已了各東西 慙愧闍黎飯後鐘 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한 고사와, 또 송대(宋代)의 시인 위야(魏野)가 명상 구준을 수행하여 섬부(陝府)의 승사(僧舍)에 가 노닐면서 각각 시를 유제(留題)한 적이 있었는데, 뒤에 다시 함께 그 승사에 놀러 가서 보니, 구준의 시는 이미 푸른 깁으로 잘 싸서 보호하였으나, 위야의 시는 그대로 방치하여 벽에 가득 먼지가 끼어 있었으므로, 이때 마침 그 일행을 수행하던 총명한 한 관기(官妓)가 즉시 자기의 붉은 옷소매로 그 먼지를 닦아 내자, 위야가 천천히 말하기를 “항상 붉은 소매로 먼지를 닦을 수만 있다면, 응당 푸른 깁으로 싸 놓은 것보다 나으리.[若得常將紅袖拂 也應勝似碧紗籠]”라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가시집보유 제3권

 시류(詩類)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는 시
〈수락사시(水落寺詩)〉 서(敍)


내가 젊었을 때 여러 산사(山寺)에서 글을 읽을 적에 수락산(水落山)도 두 번이나 왕래하면서 우연히 이 시를 벽상(壁上)에 남겨 두었었는데, 지금 이미 3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 일전에 일암(一庵) 전상인(專上人)이 이 시를 베껴 와서 나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장단(長湍) 백 태수(白太守)가 외우는 것을 적어 왔다.” 하면서, 나에게 잘못된 글자를 바로잡아 주기를 요청하였다. 나는 시를 지어도 짓는 족족 버리기 때문에 편언척자(片言隻字)도 상자 속에 남겨 둔 것이 없다. 더구나 방탕했던 소년 시절에는 남겨 전할 생각이 없었으니, 어찌 기록해 두려고 했겠는가. 32년 전의 일이라 아득하기가 마치 꿈속 같아서 그때 지은 시들은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또 어찌 잘못된 글자를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번 읽어 보매, 운자(韻字)를 단 것이나 글자를 놓은 것이 미진한 데가 있으니, 이는 아마도 내 유치함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외워 전한 이가 잘못 전한 게 아닐까도 싶으나, 우선 그대로 두노라. 예전 일을 생각하니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마침내 근체시(近體詩) 여섯 수를 지어서 일암 법좌하(法座下)에 기록하여 바치는 바이다. 일암이 지금 불암사(佛巖寺)에 있는데, 수락사와는 겨우 10여 리밖에 되지 않으니, 후일 서로 만나서 한번 놀게 되거든 이에 관한 말을 다하리라.

내 옛날 산중의 고사에 유학하던 시절이 / 山中古寺昔曾遊
손꼽아 헤어 보니 지금 삼십 년이 되었구나 / 屈指如今三十秋
나막신 신고 많은 시간 손과 함께 걸었고 / 步屐多時携客去
한가함 좋아해 스님과도 오래 머물렀었네 / 愛閑長日爲僧留
고운 꽃 빽빽한 대숲은 그윽한 경계 이루고 / 花濃竹細連幽境
고목나무 굽은 절벽은 누각을 옹위했었지 / 木古巖回擁小樓
다시 스님과 손잡고 한번 가 보고 싶어라 / 更欲携師一歸去
소년 시절의 옛일이 꿈같이 아득하구려 / 少年往事夢悠悠

지난 일 아득하여라 일찍이 소년 시절 / 悠悠往事少年曾
취중의 호탕한 기개에 필력이 날뛰었네 / 醉裡豪狂筆勢騰
나는 본디 벽 위에 시 쓸 마음 없었는데 / 我本無心題板壁
스님은 유독 다사하여 종이에 베껴 왔구려 / 僧偏多事寫花藤
벽사니 홍수니 함은 분에 넘쳐 부끄럽고 / 碧紗紅袖慙非分
세속에 찌든 백발은 늙음이 가증스러워라 / 白髮黃塵老可憎
다시 스님과 손잡고 한번 그곳에 가서 / 更欲携師一歸去
높은 봉우리를 유쾌히 거듭 올라 봤으면 / 有峯高處快重登

가장 높은 봉우리에 거듭 올라가고파라 / 重登準擬最高峯
정성 지나 삼성 만지면 가슴을 씻을 만하리 / 歷井捫參可盪胸
태양은 머리 위에 한 마리 새가 지나간 듯 / 白日頭邊過一鳥
푸른 산은 눈 아래 여러 용이 노는 듯하겠지 / 靑山眼底戲群龍
금은으로 장식한 불찰은 삼천대천세계요 / 金銀佛刹三千界
금수 같은 산하는 백이의 겹겹 요해거니 / 錦繡山河百二重
다시 스님과 손잡고 한번 그곳에 가서 / 更欲携師一歸去
차를 달이면서 석양까지 앉아 있어 봤으면 / 煮茶聲裡坐高舂

석양까지 차 끓는 소리 듣고 앉았노라면 / 高舂落日煮茶聲
청산은 거만하여 세정을 아랑곳 않을 텐데 / 偃蹇靑山不世情
굽어보면 조각구름은 평지에서 일어나고 / 俯視片雲平地起
쳐다보면 폭포가 반공중에 환히 쏟아지리 / 仰看飛瀑半空明
누각 가득 내린 꽃비는 옷을 다 적실 게고 / 滿樓花雨沾衣濕
베개맡의 솔바람은 뼛속까지 서늘하겠지 / 欹枕松濤徹骨淸
다시 스님과 손잡고 한번 그곳에 가서 / 更欲携師一歸去
청련사 결성하여 노년을 보내고 싶구려 / 靑蓮結社送殘生

노년의 청련사 결성은 처음 먹은 마음인데 / 殘生結社是初心
서글퍼라 연래에 비녀 가득해진 백발이 / 惆悵年來雪滿簪
소원 맺음이 미미하지 않음을 누가 알리오 / 結願誰知非淺淺
산에 듦은 마냥 깊지 못할까 염려했는걸 / 入山長恐不深深
고관대작은 연연하지 않은 지 오래거니와 / 蟬貂久矣無心戀
원숭이 학은 여전히 꿈마다 서로 찾는다오 / 猿鶴依然有夢尋
다시 스님과 손잡고 한번 가고 싶어라 / 更欲携師一歸去
불암산 밑 시골집이 총림에 가깝거니 / 佛巖村墅近叢林

총림이 가까이 불암산에 자리했는데 / 叢林近在佛巖山
불암산 밑에는 두어 칸 내 집이 있으니 / 山下吾廬屋數間
도잠의 삼경은 비록 적막할 뿐이지만 / 三徑陶潛雖寂寞
양로의 일구 집은 배회할 만하고말고 / 一區揚老可盤桓
순채 찾고 죽순 삶는 건 평범한 일이요 / 討蓴燒筍尋常事
국화 보내고 매화 맞음은 절로 한가롭지 / 送菊迎梅自在閑
다시 스님과 손잡고 한번 그곳에 가서 / 更欲携師一歸去
만년 신세를 스님과 함께 지내고 싶구려 / 暮年身世共追攀


 

[주D-001]고목나무 …… 옹위했었지 : 두목(杜牧)의 〈염석유(念昔遊)〉 시에 “이백이 일찍이 시를 제한 수서사에는, 고목나무 굽은 절벽에 누각 바람이로다.[李白題詩水西寺 古木回巖樓閣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벽사(碧紗)니 …… 부끄럽고 : 벽사와 홍수(紅袖)는 다음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당(唐)나라 왕파(王播)가 일찍이 미천했을 적에 집이 몹시 가난하여 양주(揚州) 혜소사(惠昭寺)의 목란원(木蘭院)에 한동안 우거(寓居)하면서 중의 재식(齋食)을 얻어먹고 지냈는데, 나중에는 중들이 그를 싫어하여 그가 오기 전에 밥을 먹어 버리곤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그가 고관(高官)이 되어 그 지방을 진무(鎭撫)하러 내려가서 옛날에 놀았던 그 절을 거듭 찾아가 보니, 자기가 옛날에 제(題)해 놓은 시들을 모두 깁으로 덮어서 보호하고 있으므로, 그가 다시 절구 2수를 지어 “당에 오르면 밥 다 먹고 동서로 각기 흩어졌기에, 스님네들 식사 후에 종 치는 게 부끄럽더니, 이십 년 동안 얼굴에 먼지 그득 분주하다가, 이제 비로소 푸른 깁에 싸인 시를 보게 되었네.[上堂已了各東西 慙愧闍黎飯後鐘 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하였다. 또 송대(宋代)의 시인 위야(魏野)가 명상(名相) 구준(寇準)을 수행하여 섬부(陝府)의 승사(僧舍)에 가 노닐면서 각각 시를 유제(留題)한 적이 있었는데, 뒤에 다시 함께 그 승사에 놀러 가서 보니, 구준의 시는 이미 푸른 깁으로 잘 싸서 보호하였으나, 위야의 시는 그대로 방치하여 벽에 가득 먼지가 끼어 있었으므로, 이때 마침 그 일행을 수행했던 총명한 한 관기(官妓)가 즉시 자기의 붉은 옷소매로 그 먼지를 닦아 내자, 위야가 천천히 말하기를 “항상 붉은 소매로 먼지를 닦을 수만 있다면, 응당 푸른 깁으로 싸 놓은 것보다 나으리.[若得常將紅袖拂 也應勝似碧紗籠]”라고 하였다.
[주D-003]정성(井星) …… 만하리 :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삼성 만지고 정성 지나 우러러 숨 헐떡거리고, 손으로 가슴 쓸며 앉아서 길이 탄식하네.[捫參歷井仰脅息 以手拊膺坐長歎]”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2》 여기서는 단지 높은 데 오른 뜻만 취하였다.
[주D-004]금은(金銀)으로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요 : 불교의 천문학(天文學)에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사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밖의 주위는 철위산(鐵圍山)으로 둘러쌌다고 하는바, 이것을 하나의 세계 또는 하나의 사천하(四天下)라 하는데, 이 사천하를 천 개 합한 것이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요, 소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요, 중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삼천대천세계는 천지 사방(天地四方), 즉 온 세상을 의미한다.
[주D-005]금수(錦繡) …… 요해(要害)거니 : 《사기(史記)》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진(秦)나라는 지세(地勢)가 뛰어난 나라로, 산하의 험고(險固)함을 띠고 천리 멀리 떨어져 있어, 제후의 창 가진 군사 백만을 대적함에 있어 진나라는 백분의 이로 당할 수 있다.[秦形勝之國 帶河山之險 縣隔千里 持戟百萬 秦得百二焉]”라는 말이 있다. 백이(百二)는 곧 100분의 2를 나타내는 말로, 전국 시대에 진나라의 지세가 매우 험고하여 진나라 군사 2만 명으로 제후의 군사 100만 명을 당해 내기에 충분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제후의 창 가진 군사 백만에 대하여, 진나라 지세의 험고함이 천하의 갑절이 되므로, 백만의 두 배를 얻었다는 것이다.[諸侯持戟百萬 秦地險固 一倍於天下 故云得百二焉]”라고도 한다.
[주D-006]꽃비[花雨] : 흔히 꽃 피는 계절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또는 부처의 설법의 공덕을 찬미하여 ‘꽃을 비처럼 쏟아 내린다.[散花如雨]’라고 하는 데서, 전하여 고승(高僧)의 설법에 비유하기도 한다.
[주D-007]청련사(靑蓮社) …… 싶구려 :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일찍이 당대의 명유(名儒)인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할 목적으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고사에 빗대서 한 말이다.
[주D-008]원숭이 …… 찾는다오 : 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북산 신령(神靈)의 이름을 가탁하여 관청의 이문(移文)을 본떠서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그로 하여금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뜻을 서술했다. 그 대략에 “종산의 영령과 초당의 신령이 연기로 하여금 역로를 달려가서 산정에 이문을 새기게 하였다.……혜초 장막은 텅 비어 밤 학이 원망하고, 산중 사람이 떠나가니 새벽 원숭이가 놀란다.[鍾山之英 草堂之靈 馳煙驛路 勒移山庭……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驚]”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원숭이와 학은 곧 깊은 산중의 은자의 처소를 의미한다. 《古文眞寶 後集 卷2》
[주D-009]총림(叢林) : 승려들이 함께 모여서 거처하는 곳을 말한 것으로, 승사(僧舍)를 가리킨다.
[주D-010]도잠(陶潛)의 …… 뿐이지만 : 삼경(三徑)은 세 오솔길이란 뜻으로, 본디 한(漢)나라 때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자기 집 대나무 밑에 세 오솔길을 내고 구중(求仲)과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종유했던 데서, 전하여 은자의 처소를 가리킨다. 《三輔決錄》 동진(東晉)의 처사(處士) 도잠 또한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그만두고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 卷5》
[주D-011]양로(揚老)의 일구(一區) : 양로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자이고, 일구는 주택 한 채를 지을 만한 땅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87 〈양웅전(揚雄傳)〉에, 그가 민산(崏山)의 남쪽에 살았는데 “토지 일전이 있고, 집 일구가 있었다.[有田一廛 有宅一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2]순채 …… 일이요 : 순채를 찾고 죽순을 삶는다는 것은 곧 아주 평범한 야인(野人)의 생활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여이십이백동심범십은거(與李十二白同尋范十隱居)〉 시에 “종래에 귤송만 읊조려 왔거니, 누구와 함께 순챗국은 찾을거나.[向來吟橘頌 誰與討蓴羹]”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화채준낭중견요유서호(和蔡準郎中見邀遊西湖)〉 시에 “서로 이끌고 죽순 삶아 먹으러 고죽사에 가고, 다시 연꽃 물가에 내려와 연뿌리를 밟노라.[相携燒筍苦竹寺 却下踏藕荷花洲]”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蘇東坡詩集 卷7》

 

사가시집 제8권
 시류(詩類)
양주(楊州) 수락산(水落山) 도중에서 짓다.

 

 


비 갠 강 하늘에 달은 사람 눈썹만 하고 / 雨霽江天月似眉
양성의 돌아가는 길은 실낱보다 가늘지만 / 楊城歸路細於絲
깜깜하고 인가가 먼 걸 걱정하지 않음은 / 不愁昏黑人家遠
눈처럼 환한 해당화가 눈을 비춘 때문일세 / 照眼棠花白雪奇

송산의 산 아래 비가 처음 개고 나니 / 松山山下雨新晴
벼논엔 물 가득코 보리 고랑은 푸르구나 / 稻田水白麥溝靑
작은 둑의 버들은 아무도 관섭할 이 없어 / 小堤楊柳無人管
저물녘 실바람에 개지만 절로 떨어지누나 / 日暯微風絮自零

잔 모래 흰 돌 깔린 조그마한 강 굽이엔 / 細沙白石小回灣
연한 풀 그윽한 꽃에 저문 빛이 차가워라 / 嫩草幽花暮色寒
그 몇 번이나 수락산 앞을 지나다니면서 / 幾番水落山前過
높다랗게 우뚝 선 모습을 쳐다보았던고 / 玉立崔嵬仰面看

 

四佳詩集卷之八○第七
 詩類
楊州水落山途中 a_010_334a


雨霽江天月似眉。楊城歸路細於絲。不愁昏黑人家遠。照眼棠花白雪奇。
松山山下雨新晴。稻田水白麥溝靑。小堤楊柳無人管。日暯微風絮自零。
細沙白石小回灣。嫩草幽花暮色寒。幾番水落山前過。玉立崔嵬仰面看。


완당전집 제9권
 시(詩)
수락산 절[水落山寺]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적에 / 我見日與月
광경이 늘 새로움을 깨닫는다오 / 光景覺常新
만 가지 상이 각각 다 그대로라 / 萬象各自在
헤일 수조차 없는 이 나라 이 땅 / 刹刹及塵塵
뉘라 알리 가물가물 텅빈 저곳에 / 誰知玄廓處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
빈 소리는 착각하면 비가 되는데 / 虛籟錯爲雨
환화란 끝내 봄을 못 이루누나 / 幻華不成春
손 가운데 백이라 억의 보물은 / 手中百億寶
이웃에서 빌리는 게 아니랍니다 / 曾非乞之隣


 

[주D-001]헤일 수 …… 이 땅[刹刹塵塵] : 불가의 용어로 무수한 국토(國土)의 뜻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