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봄을느끼다

봄을 느끼다 외 병신년(1536, 중종31) (퇴계 이황 선생 )

아베베1 2011. 3. 10. 13:32

퇴계선생문집 제1권
 시(詩)
봄을 느끼다 병신년(1536, 중종31)


맑디맑은 새벽이라 아무런 일이 없어 / 淸晨無一事
옷깃을 헤친 채 서헌에 앉았더니 / 披衣坐西軒
어린 종놈 뜨락을 쓸어 내고 / 家僮掃庭戶
다시금 고요히 사립문을 닫누나 / 寂寥還掩門
그윽한 섬돌엔 가는 풀이 자라나고 / 細草生幽砌
꽃다운 동산엔 좋은 수목 흩어졌네 / 佳樹散芳園
살구꽃은 비 온 뒤에 드물고 / 杏花雨前稀
복사꽃은 밤사이에 한창이라 / 桃花夜來繁
향기로운 눈인양 붉은 벚꽃 나부끼고 / 紅櫻香雪飄
은빛의 바다인양 흰 오얏꽃 굽이치네 / 縞李銀海飜
고운 새들 스스로 자랑이나 하는 듯 / 好鳥如自矜
아침의 햇살 아래 무어라 우짖누나 / 間關哢朝暄
빠른 세월 잠시도 머무르지 않나니 / 時光忽不留
그윽한 회포는 애달프기 짝이 없어 / 幽懷悵難言
서울에서 삼 년째 새봄을 맞이하매 / 三年京洛春
옹색하기 마치도 멍에 맨 나귀같아 / 局促駒在轅
실없어라 마침내 무슨 이익 있었던가 / 悠悠竟何益
조석으로 생각하니 나라 은혜 부끄럽네 / 日夕愧國恩
우리 집은 맑디맑은 낙동강 주변이요 / 我家淸洛上
희희낙락 즐거운 한가로운 마을이라 / 煕煕樂閒村
이웃들은 모조리 봄 농사에 나가고 / 隣里事東作
닭과 개가 집에 남아 울타리를 지킨다오 / 雞犬護籬垣
고요한 책상머리 서책들은 쌓여 있고 / 圖書靜几席
봄 안개는 나지막히 강과 들을 감돌리라 / 烟霞映川原
시냇물에 노니는 건 고기와 새들이요 / 溪中魚與鳥
소나무 아래에는 학이며 잔나비들 / 松下鶴與猿
즐거울사 그 산골에 살아가는 사람들 / 樂哉山中人
나도야 돌아가 술이나 마시련다 / 言歸謀酒尊


 

시(詩)
《도연명집(陶淵明集)》에 실린 음주에 화운하다

술 없으면 딱하게도 기쁨일랑 없나니 / 無酒苦無悰
술 있으면 이내 바로 그것을 마신다네 / 有酒斯飮之
한가해야 비로소 즐거움을 얻나니 / 得閒方得樂
즐거운 일 있거들랑 그때 바로 즐겨야지 / 爲樂當及時
훈훈한 저 바람이 만물을 고무시켜 / 薰風鼓萬物
무성한 아름다움 이제 이와 같구나 / 亨嘉今若玆
만물과 내가 함께 즐거움을 누리거늘 / 物與我同樂
가난하고 병든 것을 걱정할 것 있으리 / 貧病復何疑
저 세상 영화로움 내 어찌 모르랴만 / 豈不知彼榮
헛되고 헛된 이름 오래가기 어려워라 / 虛名難久持

나의 생각 닿는 곳 그 자리가 어드메뇨 / 所思在何許
하늘의 끝자락과 대지의 한 모퉁이 / 天涯與地隅
높고도 또 높아라 세상 소리 멀어지고 / 迢迢隔塵響
넓고도 또 넓어라 길은 마냥 이어지네 / 浩浩綿川塗
사람의 인생살이 아침 이슬 같은데 / 人生如朝露
희어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몰아대네 / 羲馭不停驅
손에 있는 녹기금은 / 手中綠綺琴
줄 끊어져 슬픔만 남아 / 絃絶悲有餘
오직 하나 잔 속에 채워진 이 술만이 / 獨有杯中物
외로운 이내 삶을 때때로 위로하네 / 時時慰索居

순 임금도 주 문왕도 오래 전에 세상 떠나 / 舜文久徂世
조양에는 봉새가 이르지 않는구나 / 朝陽鳳不至
상서로운 기린마저 이미 멀리 떠났으니 / 祥麟又已遠
말세는 어두워라 정신없이 취한 듯이 / 叔季如昏醉
낙양과 민중 땅을 멀리서 우러르니 / 仰止洛與閩
현인들이 비늘처럼 뒤이어 일어났네 / 群賢起鱗次
내 어이 때 늦고 외진 곳서 태어났나 / 吾生晩且僻
혼자선 귀한 본성 닦을 길을 모르겠네 / 獨昧修良貴
아침에 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 / 朝聞夕死可
이 말씀 진실로 깊은 뜻이 있구나 / 此言誠有味

우리나라 예로부터 추로라 부르나니 / 吾東號鄒魯
선비들이 모두들 육경을 읽는다네 / 儒者誦六經
그것이 좋은 줄 모르는 이 없건마는 / 豈無知好之
어느 누가 이를 과연 성취해 내었는가 / 何人是有成
높이 뛰어났어라, 정오천이여 / 矯矯鄭烏川
목숨 바쳐 지키며 끝내 변치 않았네 / 守死終不更
뒤를 이은 점필재는 쇠한 사문(斯文) 일으켜 / 佔畢文起衰
도 구하는 선비들 그 문정에 가득했네 / 求道盈其庭
쪽빛에서 나온 청색 쪽빛보다 더 푸르니 / 有能靑出藍
김한훤과 정일두가 서로 이어 울렸네 / 金鄭相繼鳴
그들의 문하에서 섬겨 보지 못했으니 / 莫逮門下役
이내 몸 돌아보며 마음 상해 하노라 / 撫躬傷幽情

술 가운데 묘한 이치 있다고들 하지만 / 酒中有妙理
사람마다 반드시 다 얻지는 못한다네 / 未必人人得
취하여 고함치며 즐거움을 구하는 건 / 取樂酣叫中
그대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아닌가 / 無乃汝曹惑
잠시 잠깐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오면 / 當其乍醺醺
하늘과 땅 사이에 호연지기 가득차서 / 浩氣兩間塞
온갖 번뇌 풀어 주고 인색한 맘 녹이나니 / 釋惱而破吝
괴안국의 영화보다 훨씬 더 나으리라 / 大勝榮槐國
필경 이런 경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니 / 畢竟是有待
바람 앞에 도리어 부끄러워 침묵하네 / 臨風還愧默


[주D-001]희어(羲馭) : 요(堯) 임금 때에 희(羲)와 화(和)는 해[日]를 맡은 관직이므로, 여기서는 해를 희어(羲馭)라 하였다.
[주D-002]녹기금(綠綺琴) :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양왕(梁王)으로부터 하사받은 거문고이다.
[주D-003]낙양(洛陽)과 민중(閩中) : 낙양은 정자(程子), 민중은 주자(朱子)가 살던 곳이다.
[주D-004]추로(鄒魯) : 공자와 맹자가 살던 곳이다.
[주D-005]정오천(鄭烏川) : 정몽주(鄭夢周)가 오천군(烏川君)이다.
[주D-006]김한훤(金寒暄)과 정일두(鄭一蠹) : 김굉필(金宏弼)과 정여창(鄭汝昌)을 말한다.
[주D-007]괴안국(槐安國)의 영화 : 당나라 순우분(淳于棼)이 꿈에 대안국에 가서 남가 태수(南柯太守)가 되어 부귀를 누리다가 깨어 보니 괴목(槐木) 밑에 큰 개미굴이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異聞集》
[주D-008]이런 …… 것이니 : 《장자(莊子)》에 이르기를, “열자(列子)가 바람을 타고 공중에 다니다가 보름 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을 기다려서야 되는 것이다. 천지(天地)의 정기(正氣)를 타고 무궁(無窮)에 노는 성인(聖人)은 무엇을 기다림이 없이 소요(逍遙)하고 논다.” 하였다. 여기서는 성현(聖賢)은 술이 없이도 도의(道義)의 호기(浩氣)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퇴계선생문집 제2권
 시(詩)
빙(憑)의 집에서 술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시내 달을 읊다 2수(二首)

술 거나해 돌아올 제 말 가는 대로 놓아두니 / 帶醉歸來信馬行
고리 같은 초승달이 시내를 밝히도다 / 一鉤新月照溪明
구불구불 물속의 달 여러 차례 건너는데 / 縈回屢渡溪中月
시내와 달 어울려 굽이굽이 맑아라 / 溪月相隨曲曲淸

달을 밟고 돌아올 때 서리는 하늘 가득 / 踏月歸時霜滿天
옷에 스민 남은 향기 국화꽃 자리였네 / 衣巾餘馥菊花筵
이 가운데 한결 마음 깨우는 곳 있으니 / 箇中別有醒心處
여울소리 울려대는 태고의 현악이라 / 水樂鏘鏘太古絃
퇴계선생문집 제2권
 시(詩)
봄날 한가히 지내면서 노두(老杜)의 시를 차운하여, 절구 여섯 수를 짓다

어제는 구름이 땅 위에 드리우더니 / 昨日雲垂地
오늘 아침 비내려 진흙을 적시었네 / 今朝雨浥泥
수풀을 틔워내어 들사슴 다니게 하고 / 開林行野鹿
버들가지 엮어서 뒤뜰의 닭을 막네 / 編柳卻園雞

산꽃이 어지러이 피어도 상관없네 / 不禁山花亂
길가의 풀마저도 오히려 어여쁜 걸 / 還憐徑草多
그 사람 기약두고 이르지 아니하니 / 可人期不至
이 옥빛 술동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 奈此綠尊何

물소리는 골짜기 어구를 삼키는데 / 水聲含洞口
구름 기운 산 허리를 감싸고 도는구나 / 雲氣帶山腰
조는 학은 모래톱에 가만히 서 있는데 / 睡鶴沙中立
놀란 듯 다람쥐는 나무 위로 오르네 / 驚鼯樹上跳

산속의 밭일망정 콩과 조가 잘 자라고 / 山田宜菽粟
약초 심은 밭에는 싹과 뿌리 무성해라 / 藥圃富苗根
북쪽의 징검다리 남쪽으로 통해 있고 / 北彴通南彴
새로 이룬 촌락은 옛 마을과 닿았구나 / 新村接舊村

나무꾼은 한가로이 골짝에서 나오고 / 樵人閒出谷
어린 새들 다투어 처마 끝에 깃들인다 / 乳雀競棲簷
조그만 집 마련하니 하윤과 같거니와 / 小閣同何胤
높이 솟은 누대는 송섬과는 다르구나 / 高臺異宋纖

푸르게 물든 것은 천 가지 버들이요 / 綠染千條柳
빨갛게 타는 것은 만 송이 꽃이러라 / 紅燃萬朶花
웅장하고 호방한 건 산꿩의 천성이요 / 雄豪山雉性
사치하고 화려한 건 들사람의 집이라네 / 奢麗野人家

[주C-001]노두(老杜) : 두보(杜甫)를 말한다. 두목지(杜牧之)는 소두(少杜)라 하였다.
[주D-001]조그만 …… 같거니와 : 양(梁)나라 처사(處士) 하윤(何胤)이 진망산(秦望山)에서 서당(書堂)을 지어 여러 제자를 가르치면서, 그 옆에 따로 작은 각(閣)을 바위 속에 만들고 거기서 거처하면서 자신이 손수 열었다 잠갔다 하며, 하인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다.
[주D-002]송섬(宋纎) : 진(晉)나라 처사인 송섬은 주천(酒泉) 남산(南山)에 숨어 살았는데, 태수 마급(馬岌)이 찾아갔으나 높은 누대에서 문을 잠그고 만나 주지 않았다 한다.

 

퇴계선생문집 제3권
 시(詩)
도산잡영(陶山雜詠) 병기(幷記)


영지산(靈芝山) 한 줄기가 동쪽으로 나와 도산(陶山)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산이 두 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산이라 이름하였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 이 산중에 질그릇을 굽던 곳이 있었으므로 그 사실을 따라 도산이라 한다.” 하였다.
이 산은 그리 높거나 크지 않으며 그 골짜기가 넓고 형세가 뛰어나며 치우침이 없이 높이 솟아, 사방의 산봉우리와 계곡들이 모두 손잡고 절하면서 이 산을 빙 둘러싼 것 같다.
왼쪽에 있는 산을 동취병(東翠屛)이라 하고, 오른쪽에 있는 것을 서취병(西翠屛)이라 한다. 동취병은 청량산(淸凉山)에서 나와 이 산 동쪽에 이르러서 벌려 선 품이 아련히 트였고, 서취병은 영지산에서 나와 이 산 서쪽에 이르러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높이 솟았다.
동취병과 서취병이 마주 바라보면서 남쪽으로 구불구불 휘감아 8, 9리쯤 내려가다가, 동쪽에서 온 것은 서쪽으로 들고 서쪽에서 온 것은 동쪽으로 들어 남쪽의 넓고 넓은 들판 아득한 밖에서 합세하였다.
산 뒤에 있는 물을 퇴계라 하고, 산 남쪽에 있는 것을 낙천(洛川)이라 한다. 퇴계는 산 북쪽을 돌아 산 동쪽에서 낙천으로 들고, 낙천은 동취병에서 나와 서쪽으로 산기슭 아래에 이르러 넓어지고 깊어진다.
여기서 몇 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이 깊어 배가 다닐 만한데, 금 같은 모래와 옥 같은 조약돌이 맑게 빛나며 검푸르고 차디차다. 여기가 이른바 탁영담(濯纓潭)이다.
서쪽으로 서취병의 벼랑을 지나서 그 아래의 물까지 합하고, 남쪽으로 큰 들을 지나 부용봉(芙蓉峰) 밑으로 들어가는데, 그 봉이 바로 서취병이 동취병으로 와서 합세한 곳이다.
처음에 내가 퇴계 위에 자리를 잡고 시내를 굽어 두어 칸 집을 얽어서 책을 간직하고 옹졸한 성품을 기르는 처소로 삼으려 하였는데, 벌써 세 번이나 그 자리를 옮겼으나 번번이 비바람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시내 위는 너무 한적하여 가슴을 넓히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옮기기로 작정하고 산 남쪽에 땅을 얻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골이 있는데, 앞으로는 강과 들이 내려다보이고 깊숙하고 아늑하면서도 멀리 트였으며, 산기슭과 바위들은 선명하며 돌 우물은 물맛이 달고 차서 참으로 수양할 곳으로 적당하였다.
어떤 농부가 그 안에 밭을 일구고 사는 것을 내가 값을 치르고 샀다. 거기에 집짓는 일을 법련(法蓮)이란 중이 맡았다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죽었으므로, 정일(淨一)이란 중이 그 일을 계승하였다.
정사년(1557, 명종12)에서 신유년(1561, 명종16)까지 5년 만에 당(堂)과 사(舍) 두 채가 그런대로 이루어져 거처할 만하였다.
당은 모두 세 칸인데, 중간 한 칸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 선생(朱先生)의 〈명당실기(名堂室記)〉에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동쪽 한 칸은 암서헌(巖棲軒)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운곡(雲谷)의 시에,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으니 바위에 깃들여 작은 효험 바라노라.”라는 말을 따온 것이다. 그리고 합해서 도산서당(陶山書堂)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사는 모두 여덟 칸이니, 시습재(時習齋)ㆍ지숙료(止宿寮)ㆍ관란헌(觀瀾軒)이라고 하였는데, 모두 합해서 농운정사(隴雲精舍)라고 현판을 달았다.
서당 동쪽 구석에 조그만 못을 파고 거기에 연(蓮)을 심어 정우당(淨友塘)이라 하고, 또 그 동쪽에 몽천(蒙泉)이란 샘을 만들고, 샘 위의 산기슭을 파서 암서헌과 마주 보도록 평평하게 단을 쌓고는, 그 위에 매화ㆍ대[竹]ㆍ소나무ㆍ국화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불렀다.
당 앞 출입하는 곳을 막아서 사립문을 만들고 이름을 유정문(幽貞門)이라 하였는데, 문밖의 오솔길은 시내를 따라 내려가 동구에 이르면 양쪽 산기슭이 마주하고 있다. 그 동쪽 기슭 옆에 바위를 부수고 터를 닦으니 조그만 정자를 지을 만한데, 힘이 모자라서 만들지 못하고 다만 그 자리만 남겨 두었다. 마치 산문(山門)과 같아 이름을 곡구암(谷口巖)이라 하였다.
여기서 동으로 몇 걸음 나가면 산기슭이 끊어지고 바로 탁영담에 이르는데, 그 위에 커다란 바위가 마치 깎아 세운 듯 서서 여러 층으로 포개진 것이 10여 길은 될 것이다. 그 위를 쌓아 대(臺)를 만들었더니, 우거진 소나무는 해를 가리며, 위에는 하늘 아래에는 물이어서 새는 날고 고기는 뛰며 물에 비친 좌우 취병산의 그림자가 흔들거려 강산의 훌륭한 경치를 한눈에 다 볼 수 있으니, 이름을 천연대(天淵臺)라 하였다.
그 서쪽 기슭 역시 이것을 본떠서 대를 쌓고 이름을 천광운영(天光雲影)이라 하였으니, 그 훌륭한 경치는 천연대에 못지않다.
반타석(盤陀石)은 탁영담 가운데 있다. 그 모양이 넓적하여 배를 매 두고 술잔을 돌릴 만하며, 큰 홍수를 만날 때면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고 물결이 맑아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나는 늘 고질병을 달고 다녀 괴로웠기 때문에, 비록 산에서 살더라도 마음껏 책을 읽지 못한다. 남몰래 걱정하다가 조식(調息)한 뒤 때로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상쾌하여, 우주를 굽어보고 우러러보다 감개(感槪)가 생기면, 책을 덮고 지팡이를 짚고 나가 관란헌에 임해 정우당을 구경하기도 하고 단에 올라 절우사를 찾기도 하며, 밭을 돌면서 약초를 심기도 하고 숲을 헤치며 꽃을 따기도 한다.
혹은 바위에 앉아 샘물 구경도 하고 대에 올라 구름을 바라보거나 낚시터에서 고기를 구경하고 배에서 갈매기와 가까이하면서 마음대로 이리저리 노닐다가, 좋은 경치 만나면 흥취가 절로 일어 한껏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고요한 방 안에 쌓인 책이 가득하다.
책상을 마주하여 잠자코 앉아 삼가 마음을 잡고 이치를 궁구할 때, 간간이 마음에 얻는 것이 있으면 흐뭇하여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생각하다가 통하지 못한 것이 있을 때는 좋은 벗을 찾아 물어보며, 그래도 알지 못할 때는 혼자서 분발해 보지만 억지로 통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선 한쪽에 밀쳐 두었다가, 가끔 다시 그 문제를 끄집어내어 마음에 어떤 사념도 없애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깨달아지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또 산새가 울고 초목이 무성하며 바람과 서리가 차갑고 눈과 달빛이 어리는 등 사철의 경치가 다 다르니 흥취 또한 끝이 없다. 그래서 너무 춥거나 덥거나 큰바람이 불거나 큰비가 올 때가 아니면, 어느 날이나 어느 때나 나가지 않는 날이 없고 나갈 때나 돌아올 때나 이와 같이 하였다.
이것은 곧 한가히 지내면서 병을 조섭하기 위한 쓸모없는 일이라서 비록 옛사람의 문정(門庭)을 엿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마음속에 즐거움을 얻음이 얕지 않으니, 아무리 말이 없고자 하나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에 이르는 곳마다 칠언시 한 수로 그 일을 적어 보았더니, 모두 18절(絶)이 되었다.
또 몽천(蒙泉), 열정(洌井), 정초(庭草), 간류(澗柳), 채포(菜圃), 화체(花砌), 서록(西麓), 남반(南沜), 취미(翠微), 요랑(廖朗), 조기(釣磯), 월정(月艇), 학정(鶴汀), 구저(鷗渚), 어량(魚梁), 어촌(漁村), 연림(烟林), 설경(雪徑), 역천(櫟遷), 칠원(漆園), 강사(江寺), 관정(官亭), 장교(長郊), 원수(遠岫), 토성(土城), 교동(校洞) 등 오언(五言)으로 사물이나 계절 따라 잡다하게 읊은 시 26수가 있으니, 이것은 앞의 시에서 다하지 못한 뜻을 말한 것이다.
아, 나는 불행히도 뒤늦게 구석진 나라에서 태어나서 투박하고 고루하여 들은 것이 없으면서도 산림(山林)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일찍 알았었다. 그러나 중년(中年)에 들어 망녕되이 세상길에 나아가 바람과 티끌이 뒤엎는 속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거의 죽을 뻔하였다.
그 뒤에 나이는 더욱 들고 병은 더욱 깊어지며 처세는 더욱 곤란하여 지고 보니, 세상이 나를 버리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가 세상에서 버려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비로소 굴레에서 벗어나 전원(田園)에 몸을 던지니, 앞에서 말한 산림의 즐거움이 뜻밖에 내 앞으로 닥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오랜 병을 고치고 깊은 시름을 풀면서 늘그막을 편히 보낼 곳을 여기 말고 또 어디를 가서 구할 것인가.
그러나 옛날 산림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현허(玄虛)를 사모하여 고상(高尙)을 일삼아 즐기는 사람이요, 둘째는 도의(道義)를 즐기어 심성(心性) 기르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전자의 주장에 의하면, 몸을 더럽힐까 두려워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심한 경우 새나 짐승과 같이 살면서 그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자의 주장에 의하면, 즐기는 것이 조박(糟粕)뿐이어서 전할 수 없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구할수록 더욱 얻지 못하게 되니,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차라리 후자를 위하여 힘쓸지언정 전자를 위하여 스스로 속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니, 어느 여가에 이른바 세속의 명리(名利)를 좇는 것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지 알겠는가.
어떤 이가 말하기를,
“옛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명산(名山)을 얻어 의탁하였거늘, 그대는 왜 청량산에 살지 않고 여기 사는가?”
하여, 답하기를,
“청량산은 만 길이나 높이 솟아서 까마득하게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늙고 병든 사람이 편안히 살 곳이 못 된다. 또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려면 어느 하나가 없어도 안 되는데, 지금 낙천(洛川)이 청량산을 지나기는 하지만 산에서는 그 물이 보이지 않는다. 나도 청량산에서 살기를 진실로 원한다. 그런데도 그 산을 뒤로 하고 이곳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여기는 산과 물을 겸하고 또 늙고 병든 이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옛사람들은 즐거움을 마음에서 얻고 바깥 물건에서 빌리지 않는다. 대개 안연(顔淵)의 누항(陋巷)과 원헌(原憲)의 옹유(甕牖)에 무슨 산과 물이 있었던가. 그러므로 바깥 물건에 기대가 있으면 그것은 다 참다운 즐거움이 아니리라.”
하여, 나는 또,
“그렇지 않다. 안연이나 원헌이 처신한 것은 다만 그 형편이 그런 상황에서도 이를 편안해한 것을 우리가 귀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이 이런 경지를 만났더라면 그 즐거워함이 어찌 우리들보다 깊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공자나 맹자도 일찍이 산수를 자주 일컬으면서 깊이 인식하였던 것이다. 만일 그대 말대로 한다면, ‘점(點)을 허여한다.’는 탄식이 왜 하필 기수(沂水) 가에서 나왔으며 ‘해를 마치겠다.’는 바람을 왜 하필 노봉(蘆峰) 꼭대기에서 읊조렸겠는가.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자, 그 사람은 그렇겠다 하고 물러갔다.
가정(嘉靖) 신유년(1561, 명종16) 동지에 노병기인(老病畸人)은 적는다.

정우당(淨友塘)

물건마다 한 하늘의 묘한 이치 품었거늘 / 物物皆含妙一天
염계는 무슨 일로 그대만을 사랑했나 / 濂溪何事獨君憐
향그런 덕 생각하니 벗하기 어려운데 / 細思馨德眞難友
정(淨) 하나로 일컫는 것 편벽될까 두려워라 / 一淨稱呼恐亦偏

반타석(盤陀石)

도도한 탁류 속에 얼굴 문득 숨겼다가 / 黃濁滔滔便隱形
고요히 흐를 때면 비로소 나타나네 / 安流帖帖始分明
어여쁘다 이 같은 거센 물결 속에서도 / 可憐如許奔衝裏
천고에 반타석은 구르거나 기울지도 않았네 / 千古盤陀不轉傾


[주D-001]운곡(雲谷) :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주D-002]농운정사(隴雲精舍) : 양(梁)나라 은사(隱士) 도홍경(陶弘景)의 시에,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언덕 위에 흰 구름이 많다. 다만 내 스스로 기뻐할 뿐, 이것을 가져다가 임에게 줄 수는 없네.[山中何所有, 隴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하였다. 퇴계가 이 뜻을 취하여 정사(精舍)의 이름을 농운(隴雲)이라고 하였다.
[주D-003]천연대(天淵臺) : 《시경(詩經)》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구절에서 온 말인데,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는 그것을, “위아래에서 활발히 유행(流行)하는 천지의 조화(造化)를 살필 수 있다.” 하였다.
[주D-004]천광운영(天光雲影) : 주희의 시에, “반이랑 네모난 연못이 한 거울을 이루었으니,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半畒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5]조식(調息) : 주희(朱熹)가 지은 〈조식잠(調息箴)〉이 있는데, 이것은 호흡법(呼吸法)을 말한 것이다.
[주D-006]조박(糟粕) : 제 환공(齊桓公)이 당상(堂上)에서 글을 읽는데 수레바퀴를 만들던 대목이, “임금님이 읽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환공은 답하기를, “옛날 성인(聖人)의 글이다.” 하니, 대목은, “그러면 그것은 성인의 찌꺼기[糟粕]입니다.” 하였다. 환공이 물은즉 대목이 답하기를, “신(臣)은 수레바퀴 만드는 기술로 한평생을 살아오는데, 연장이나 법도는 자식에게 전하여 줄 수 있으나, 연장을 천천히 놀리고 더디게 놀리는 묘한 솜씨는 자식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옛날 성인은 글은 남기었으나, 그 묘한 뜻은 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글은 찌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였다. 《莊子 天道》
[주D-007]안연(顔淵)의 …… 옹유(甕牖) : 공자의 제자 안연은 누추한 골목[陋巷]에서 가난하게 살았고, 원헌(原憲)은 오막살이집에 깨어진 독으로 들창을 삼았다.
[주D-008]점(點)을 …… 나왔으며 :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각 뜻한 바를 말하라.” 하였더니, 최후에 증점(曾點)이 모춘(暮春)에 춘복(春服)이 이루어지거든 관자(冠者) 5, 6명과 동자(童子) 6, 7명과 더불어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읊으며 돌아오리다.” 하니, 공자는 감탄하여, “나는 점(點)을 허여하노라.” 하였다. 《論語 先進》
[주D-009]해를 마치겠다 : 주희의 〈운곡십이영(雲谷十二詠)〉중의 한 구절이다.
[주D-010]물건마다 …… 품었거늘 :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만물(萬物)이 각각 한 태극(太極)을 갖추었다.” 하였다

퇴계선생문집 제4권
 시(詩)
산거(山居)에서 사계절을 각각 네 수씩 읊으니, 모두 16절이다



아침

안개 걷힌 봄 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 霧捲春山錦繡明
진기한 새 화답하며 갖가지로 울어대네 / 珍禽相和百般鳴
산집에는 요즈음에 찾는 손님 없으니 / 山居近日無來客
푸른 풀이 뜰 안 가득 제멋대로 나는구나 / 碧草中庭滿意生



뜨락에는 비 갠 뒤에 고운 볕이 더딘데 / 庭宇新晴麗景遲
꽃향기는 물씬물씬 옷자락에 스미누나 / 花香拍拍襲人衣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뜻 말하는데 / 如何四子俱言志
시 읊고 돌아옴을 성인이 감탄했나
/ 聖發咨嗟獨詠歸

저녁

동자가 산을 찾아 고사리를 캐었으니 / 童子尋山採蕨薇
반찬이 넉넉하여 시장기를 푸노라 / 盤飧自足療人飢
비로소 알겠구나, 당시 전원 돌아온 객 / 始知當日歸田客
저녁 이슬 옷 적셔도 소원에 어김없음을
/ 夕露衣沾願不違



꽃빛이 저녁 맞아 달이 동에 떠오르니 / 花光迎暮月昇東
꽃과 달 맑은 밤에 의미가 끝이 없네 / 花月淸宵意不窮
다만 달이 둥글고 꽃이 지지 않으면 / 但得月圓花未謝
꽃 밑에 술잔 비울 걱정이 없어라 / 莫憂花下酒杯空
이상은 봄을 읊은 네 절이다.

아침

새벽 빈 뜰 거닐자니 대 이슬이 맑았어라 / 晨起虛庭竹露淸
헌함 열고 멀리 보니 첩첩 산들 푸르러라 / 開軒遙對衆山靑
작은 아이 으레 빨리 물을 길어 가져오니 / 小童慣捷提甁水
세수하면 탕의 반에 나날의 계명있네 / 澡頮湯盤日戒銘



고즈넉한 한낮 산당 햇빛도 밝을시고 / 晝靜山堂白日明
우거진 고운 나무 처마 끝에 둘렀구나 / 蔥瓏嘉樹遶簷楹
북창 아래 높이 누워 희황씨 이전인 듯 / 北窓高臥羲皇上
시원한 산들바람 새소리를 보내오네 / 風送微涼一鳥聲

저녁

석양의 고운 빛깔 시내와 산 움직이니 / 夕陽佳色動溪山
바람 자고 구름 한가한데 새는 절로 돌아오네 / 風定雲閒鳥自還
홀로 앉은 깊은 회포 뉘와 얘기할꼬 / 獨坐幽懷誰與語
바위 언덕 고요하고 물은 졸졸 흐르누나 / 巖阿寂寂水潺潺



텅 빈 산 고요한 집 달은 절로 밝은데 / 院靜山空月自明
이부자리 말쑥해라 꿈도 역시 맑구나 / 翛然衾席夢魂淸
깨어나 말 않으니 알괘라 무슨 일고 / 寤言弗告知何事
한밤중 학의 소리 누워서 듣노라 / 臥聽皐禽半夜聲
이상은 여름을 읊은 네 절이다.

아침

어젯밤 바람 불어 남은 더위 사라지고 / 殘暑全銷昨夜風
아침 되어 서늘함이 가슴속에 스미누나 / 嫩涼朝起灑襟胸
영균이 원래 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면 / 靈均不是能言道
어이하여 천년 뒤에 회옹이 느끼겠나 / 千載如何感晦翁




서리 내려 하늘 비고 매는 한창 호기 나고 / 霜落天空鷹隼豪
물가의 바위 끝에 서당 하나 높구나 / 水邊巖際一堂高
요즘 와서 삼경이 유난히도 쓸쓸하여 / 近來三徑殊牢落
국화를 쥐고 앉아 도연명을 생각하네 / 手把黃花坐憶陶

저녁

가을 서당 조망을 뉘와 함께 즐길꼬 / 秋堂眺望與誰娛
단풍숲에 석양 드니 그림보다 낫구나 / 夕照楓林勝畫圖
갑자기 서쪽 바람 지나가는 기러기에게 부는데 / 忽有西風吹雁過
옛 친구는 편지를 보내 올란가 안 올란가 / 故人書信寄來無



차가운 못 달 비치고 하늘은 맑은데 / 月映寒潭玉宇淸
그윽한 이 한 칸 방이 고요하고 밝구나 / 幽人一室湛虛明
그 가운데 스스로 참된 소식 있나니 / 箇中自有眞消息
선의 공도 아니요, 도가의 명도 아니네 / 不是禪空與道冥
이상은 가을을 읊은 네 절이다.

아침

우뚝 솟은 봉우리들 찬 하늘을 찌르고 / 群峯傑卓入霜空
뜰 아래의 국화는 아직 떨기 남았는데 / 庭下黃花尙倚叢
땅을 쓸고 향 사르니 다른 일 전혀 없고 / 掃地焚香無外事
종이창에 해 비치니 밝기가 마음 같네 / 紙窓銜日皦如衷



추운 철 깊숙이 들앉으니 무슨 경영 있겠는가 / 寒事幽居有底營
꽃 가꾸고 대 돌보며 여윈 몸을 조섭하네 / 藏花護竹攝羸形
찾아오는 손님을 은근히 사절하니 / 慇懃寄謝來尋客
겨울 석 달 동안에 손님 영접 끊으려네 / 欲向三冬斷送迎

저녁

나무 모두 뿌리로 돌아가고 해는 짧은데 / 萬木歸根日易西
내 낀 수풀 쓸쓸한데 새는 깊이 깃들었네 / 烟林蕭索鳥深棲
옛날부터 저녁에 두려워함 무슨 뜻일까 / 從來夕惕緣何意
은미한 곳에서 게으름과 욕심을 막음이라 / 怠欲須防隱處迷



눈 흐려져 안 보이니 등불 대기 두려워라 / 眼花尤怕近燈光
늙고 병드니 잘 알겠네 겨울밤 길고 긺을 / 老病偏知冬夜長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읽기보다 나으리니 / 不讀也應猶勝讀
서리보다 차가운 달 앉아서 보았다오 / 坐看窓月冷於霜
이상은 겨울을 읊은 네 절이다.


 

[주D-001]네 …… 감탄했나 : 공자가 자로(子路)ㆍ증점(曾點)ㆍ염유(冉有)ㆍ공서화(公西華)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도록 하였는데, 늦봄에 목욕하고 바람 쐬며 시를 읊고 돌아오겠다는 증점의 대답에 유독 감탄하였다. 《論語 先進》
[주D-002]당시 …… 어김없음을 : 도잠(陶潛)의 시에, “달을 띠고 호미 메고 돌아오니, 저녁 이슬이 나의 옷에 젖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다만 소원이 어김없었으면……[帶月荷鋤歸 夕露沾我衣 衣沾不足惜 但使願無違]” 하였다.
[주D-003]탕(湯)의 …… 계명 : 탕 임금이 세수하는 반(盤)의 명(銘)에,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다.” 하였다.
[주D-004]북창 …… 듯 : 도잠이 6월에 북창 아래 누워서, “희황(羲皇) 이전의 사람이다.” 하였다. 희황은 태고 시대의 임금 복희씨(伏羲氏)를 말한 것이다.
[주D-005]영균(靈均)이 …… 느끼겠나 : 영균은 굴원(屈原)의 자로, 회옹(晦翁) 즉 주희가 《초사(楚辭)》를 주석하였다.
[주D-006]삼경(三徑) : 한(漢)나라 장허(蔣詡)가 대밭 속에 숨어 살면서, 세 길[三徑]을 내어 뜻맞는 친구 양중(羊仲)ㆍ구중(裘仲)과 왕래하였다. 도잠(陶潛)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삼경은 묵었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았네.” 하였다.
[주D-007]선(禪)의 …… 아니네 : 불교에서는 공(空)을 주장하고, 도가에서는 명(冥)을 주장한다. 명은 모든 정(情)과 생각을 초월(超越)한 이상경(理想境)이다.
[주D-008]나무 …… 돌아가고 : 가을에 나무들이 모두 잎이 떨어지는 것을 뿌리로 돌아간다 한다.

 

퇴계선생문집 제1권
 시(詩)
퇴계 초옥(退溪草屋)에서 황금계(黃錦溪)의 내방을 기뻐하며 경술년(1550, 명종5) ○ 군수(郡守)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이다.


시냇가서 그대 만나 의심을 풀어낼 제 / 溪上逢君叩所疑
즐거이 그대 위해 탁주를 가져왔네 / 濁醪聊復爲君持
매화꽃 늦게 필까 하늘이 걱정하여 / 天公卻恨梅花晩
잠깐 사이 눈 보내니 가지에 가득하네 / 故遣斯須雪滿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