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휘 덕지 등/연촌공 관련 왕조실록

연촌공 휘 덕지 관련 왕조실록 기사

아베베1 2011. 3. 14. 15:40

고려사 > 序文 > 수사관

 

수사관
修史官
正憲大夫工曹判書 集賢殿大提學 知經筵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臣鄭麟趾
嘉善大夫中樞院副使 同知春秋館事臣金銚
嘉善大夫藝文館提學 同知春秋館事 世子左副賓客臣李先齊
通政大夫集賢殿副提學 知製敎 經筵侍講官兼春秋館編修官臣鄭昌孫
通政大夫集賢殿副提學 知製敎 世子左輔德兼 春秋館編修官臣辛碩祖
通政大夫司諫院左司諫大夫 知製敎兼春秋館編修官臣崔恒
果毅將軍虎賁侍衛司上護軍兼知兵曹事 春秋館編修官臣盧叔仝
中訓大夫集賢殿直提學 知製敎 世子左弼善兼春秋館記注官臣李石亨
中訓大夫集賢殿直提學 知製敎 世子右輔德兼春秋館記注官 知承文院事臣申叔舟
中訓大夫藝文館直提學兼春秋館記注官臣崔德之
奉正大夫直集賢殿知製敎 世子右弼善兼春秋館記注官臣魚孝瞻
奉列大夫直集賢殿知製敎 世子右弼善兼左中護 春秋館記注官臣金禮蒙
奉列大夫成均司藝 知製敎兼春秋館記注官臣金淳
通德郞集賢殿校理 知製敎 世子右文學兼春秋館記注官臣梁誠之
通善郞集賢殿校理 知製敎 經筵副檢討官兼春秋館記注官臣李芮
奉直郞守史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臣金之慶
奉直郞守成均直講兼春秋館記注官臣金閏福
承議郞守集賢殿副校理 知製敎 世子右司經兼春秋館記事官臣李宜堪
承議郞集賢殿修撰 知製敎 經筵司經兼春秋館記事官臣尹起畎
承議郞成均注簿兼春秋館記事官臣金命中
進勇校尉行右軍攝副司直兼承文院副校理 春秋館記事官臣趙瑾
宣敎郞守成均注簿兼中部儒學敎授官 春秋館記官臣洪禹治
宣敎郞守承文院副校理兼春秋館記事官臣芮承錫
宣敎郞集賢殿副修撰 知製敎 經筵司經兼春秋館記事官臣尹子雲
宣敎郞司贍注簿兼春秋館記事官臣李孝長
宣務郞守成均注簿兼西部儒學敎授官 春秋館記事官臣李仁全
宣務郞行藝文奉敎兼春秋館記事官臣柳子文
務功郞藝文奉敎兼春秋館記事官臣金孝宇
通仕郞藝文待敎兼春秋館記事官臣金勇
通仕郞行藝文檢閱兼春秋館記事官臣韓瑞鳳
通仕郞行藝文檢閱兼春秋館記事官臣吳伯昌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永樂) 8년) 6월 25일(경신) 1번째기사 지의정부사 황희를 보내 원단에 비를 빌게 하다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황희(黃喜)를 보내어 원단(圓壇)에 비를 빌게 하였다. 황희가 원단에 이르러 향(香)과 축(祝)을 점고(點考)하여 보니, 호천상제(昊天上帝)의 제문(祭文)만 있고 오제(五帝)의 제문(祭文)은 없었다. 황희가 사람을 달려 보내 아뢰니, 임금이 노하여 여러 대언(代言)을 꾸짖기를,
“어찌하여 불경(不敬)하기가 이와 같은 데 이르렀는가? 이와 같은 군신(君臣)의 재덕(才德)으로 또 직사(職事)를 공경하고 조심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하늘의 응험(應驗)을 받겠는가? 역삭 교서 정자(役朔校書正字) 최덕지(崔德之)가 그 직사를 삼가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삼관(三館)에 내쳐야 하겠으나, 남의 전정(前程)을 폐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하옥(下獄)하게 하면 3일이 지나면 으레 석방하여야 하는데, 장차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고, 조금 뒤에 말하기를, “제사 일[祀事]이 지나지 않았으니 지금 아직 놓아두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555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 *사법-탄핵(彈劾)

 

 太宗 19卷, 10年(1410 庚寅 / 명 영락(永樂) 8年) 6月 25日(庚申) 1번째기사
지의정부사 황희를 보내 원단에 비를 빌게 하다

○庚申/遣知議政府事黃喜, 禱雨于圓壇。 至圓壇, 點視香祝, 只有昊天上帝祭文, 而闕五帝祭文。 馳遣人以啓, 上怒, 責諸代言曰: “何不敬, 至於若是歟? 以如此君臣才德, 又不敬謹職事, 其蒙天應乎? 役朔校書正字崔德之, 不謹其職, 宜黜諸三館, 然不欲廢人前程。 若令下獄, 過三日例當放, 將何以處之?” 旣而曰: “祀事未過, 今姑釋之。”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555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 *사법-탄핵(彈劾)

 태종 34권,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12월 9일(경인) 1번째기사
사헌 감찰 최덕지·허맹을 파직하다

사헌 감찰(司憲監察) 최덕지(崔德之)·허맹(許孟)을 파직하였다.
처음에 감찰 김소남(金召南) 등이 감찰 김윤(金潤)·정곡(鄭谷)의 범한 것을 가지고 본부(本府)에 보고하였는데, 임금이 김윤 등의 범한 것이 다른 사람의 죄보다 경하다고 하여 특별히 직사에 나오도록 명하였다. 최덕지 등이 김윤정곡이 피혐(避嫌)하지 않고 취직한 것이 풍헌(風憲)의 직임에 어그러진다고 하여 본부에 고하였다. 최덕지 등을 불러 그 까닭을 묻고 의금부에 가두었다가 4일 만에 석방하고 그 직을 파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책 19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太宗 34卷, 17年(1417 丁酉 / 명 영락(永樂) 15年) 12月 9日(庚寅) 1번째기사
사헌 감찰 최덕지·허맹을 파직하다

 

○庚寅/罷司憲監察崔德之許孟職。 初, 監察金召南等以監察金潤鄭谷所犯, 課于本府, 上以所犯輕於他人罪, 特命就職, 德之等以不避嫌就職, 有乖風憲之任, 告于本府。 召德之等問其故, 囚于義禁府, 四日而釋之, 罷其職。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책 19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세종 30권,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12월 10일(을해) 2번째기사
지함양군사 최덕지와 임강·안음·비안 현감 박지생·김명양·권후 등을 인견하다

 

지함양군사(知咸陽郡事) 최덕지(崔德之)·임강(臨江) 현감 박지생(朴枝生)·안음(安陰) 현감 김명양(金明諹)·비안(比安) 현감 권후(權厚) 등을 인견하고 이르기를,
“이전에는 다만 2품 이상인 수령만을 접견하였으나, 내가 자세히 생각하여 보니, 시골의 먼 곳을 내가 친히 가서 다스리지 못하고 어진 관리를 선택하여 나의 근심을 나누어 주어 보내는 것이니, 그 임무가 가볍지 않다. 그런 까닭에 2품 이하의 수령도 또한 친히 보고 보내도록 하였다. 금년은 여름은 가물고 겨울은 더워서, 명년의 농사가 어떨지 알 수 없다. 이제 들으니, 각도 군(郡)·읍(邑)에 식량이 떨어진 백성이 꽤 많다고 한다. 백성을 구제할 방법을 항상 가슴에 생각하라. 옛날에는 백성에게 예의 염치(禮義廉恥)를 가르쳤으나, 지금은 의식(衣食)이 부족하니 어느 겨를에 예의(禮義)를 다스리겠느냐. 의식이 넉넉하면 백성들이 예의를 알게 되어, 형벌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본받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기르는 일에 힘쓰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책 70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世宗 30卷, 7年(1425 乙巳 / 명 홍희(洪熙) 1年) 12月 10日(乙亥) 2번째기사
지함양군사 최덕지와 임강·안음·비안 현감 박지생·김명양·권후 등을 인견하다

○引見知咸陽郡事崔德之臨江縣監朴枝生安陰縣監金明諹比安縣監權厚等謂曰: “前此,只令二品以上守令接見。 予詳思之, 閭閻遐邈, 予不親往莅之。 選擇良吏, 分憂差遣, 其任不細, 故二品以下守令, 亦令親見以送。 今年夏旱冬燠, 明年農事, 未可知也。 今聞, 各道郡邑, 絶食之民頗多, 救民之術, 恒念于懷。 古者, 敎民以禮義廉恥, 今則衣食不足, 何暇治禮義? 衣食足則民知禮義, 而遠於刑辟。 爾等體予至懷, 以安養斯民爲務。”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책 70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종 75권, 18년(1436 병진 / 명 정통(正統) 1년) 11월 25일(병진) 1번째기사
지김제군사 최덕지가 진주를 바치니 내구마 1필을 내리다

 

지김제군사(知金堤郡事) 최덕지(崔德之)가 진주 1매(枚)를 바치니, 내구마(內廐馬) 1필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책 41면
【분류】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

 世宗 75卷, 18年(1436 丙辰 / 명 정통(正統) 1年) 11月 25日(丙辰) 1번째기사
지김제군사 최덕지가 진주를 바치니 내구마 1필을 내리다

 

丙辰/知(金提)〔金堤〕郡事崔德之獻眞珠一枚, 賜內廐馬一匹。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책 41면
【분류】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

 

 문종 10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10월 29일(갑오) 2번째기사
예문관 직제학 최덕지가 사직하고 물러나다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 최덕지(崔德之)가 늙었다고 고(告)하고, 전리(田里)에 돌아가기를 원하니,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이계전(李季甸)에게 말하기를,
“지난번 윤대(輪對)에서 최덕지와 말을 해 보니, 사람됨이 순박하고 진실하며 아직 그다지 늙지도 않았었다. 머물러 두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돌아갈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머물러 둘 수 없습니다.”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최덕지는 나이가 68세였다. 세상에는 나이를 무릅쓰고 억지로 조정에 서는 자가 많은데, 최덕지는 아직 치사(致仕)할 나이에 이르지 아니하여 스스로 물러가니, 당시의 의논이 그를 칭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6책 44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文宗 10卷, 1年(1451 辛未 / 명 경태(景泰) 2年) 10月 29日(甲午) 2번째기사 예문관 직제학 최덕지가 사직하고 물러나다

 

 藝文館直提學崔德之告老, 乞歸田里, 上謂都承旨李季甸曰: “頃於輪對, 與德之語, 爲人諄實, 未甚衰老。 留之何如?” 對曰: “歸志已決, 不可留也。” 從之。 德之, 年六十八。 世有冒年强立于朝者多, 德之未及致仕之年, 而能自引去, 時論稱之。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6책 44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선조 160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3월 14일(경오) 2번째기사
영암의 문익주 등이 상소를 올려 최득수를 효자로 표창해 줄 것을 청하다

전라 감사 한준겸(韓浚謙)이 아뢰었다.
영암(靈巖)에 사는 전 현감 문익주(文益周) 등 20여 인이 연명(連名)하여 와서 정소(呈訴)하기를 ‘군(郡)에 사는 사인(士人) 최득수(崔得壽)는 고(故) 명현(名賢) 최덕지(崔德之)의 6대손이다. 일찍이 의방(義方)을 알았고 성품 또한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른의 뜻을 받들어 어기지 않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매우 돈독하였다. 지난 임진년 경성(京城)에서 적변을 만나자 나이 80인 노모를 모시고 삭녕(朔寧)으로 피란하였다. 노모가 병으로 죽자 산중에 임시로 묻어 두고 1년 동안 주야로 빈소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마침내 적봉(賊鋒)을 면하고 다음해 가을 금천(衿川)으로 돌아가 장사지낸 다음 3년을 죽만 마시면서 여묘 밖을 나가지 않았다. 계사년·갑오년에 기근이 너무 심하여 여사(廬舍) 옆에서 사람들이 다투어 서로 잡아 먹었지만 득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애절한 통곡과 수척한 모습을 보는 자는 눈물을 흘렸다. 득수는 본군 사람으로 난 후에 와서 살았는데 그 성효(誠孝)의 돈독함을 보면 충분히 사람을 감동시킬 만하므로 순선(旬宣)5076) 아래에 와서 진달하는 것이니 조정에 아뢰어 달라. 그리고 전쟁을 치른 뒤 의열(義烈)로 표창해 줄 사람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장려해 주는 은전을 입지 못하였으니, 인정이 모두 답답해 하는 것은 물론 장차 후인을 용동시킬 수 없다.’ 하였습니다.
득수가 과연 문익주 등이 진달한 것과 같다면 참으로 가상한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더욱더 순방(詢訪)하게 하여 우선 정표(旌表)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주(羅州) 생원 강위호(姜渭虎) 등 1백여 인이 와서 정소하를 ‘난 후 의병을 일으킨 사람 가운데 고경명(高敬命) 같은 이는 광주(光州)에 사당을 세워 주었고 조헌(趙憲) 같은 이는 금산(錦山)에 비석을 세워 주었는데, 김천일(金千鎰)만은 아직 표창해 주는 은전이 없어서 충신의 마을로 하여금 묻혀서 빛이 없게 만들어 수레타고 가는 사람이 경의를 표할 줄 모르고 걸어가는 사람도 존경할 줄 모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호남의 사론(士論)이 지금까지 답답해 하니 또한 조정에 알려서 충신의 공적을 표창해 주고 그 문려에 정표함으로써 후세에 권장되도록 해달라.’ 하였으니, 모두 해조로 하여금 시행하게 하소서.”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4책 457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군사(軍事) / *윤리(倫理)

 

 宣祖 160卷, 36年(1603 癸卯 / 명 만력(萬曆) 31年) 3月 14日(庚午) 2번째기사
영암의 문익주 등이 상소를 올려 최득수를 효자로 표창해 줄 것을 청하다

 

全羅監司韓浚謙啓曰: “靈巖居前縣監文益周等二十餘人, 連名來呈曰: ‘郡居士人崔得壽, 故名賢德之六代孫也。 早知義方, 性又至孝, 承順無違, 兄弟之間, 友愛尤篤。 去壬辰, 在京城逢賊變, 奉年耋之母, 避亂朔寧地, 母因病卒, 權厝于山中, 晝夜不離殯側, 首尾一年, 竟免賊鋒, 明年秋, 歸葬衿川地, 啜粥三年, 不出廬外。 癸巳、甲午間, 飢饉太甚, 廬舍之側, 人爭殺食, 而得壽不畏懼, 哭泣之哀, 柴毁之狀, 見者垂涕。 得壽, 本郡人也。 亂後來居, 目見其誠孝之篤, 有足以動人, 故來陳旬宣之下。 請聞于朝。’ 且見兵戈之後, 義烈表著之人, 不爲不著, 而未蒙崇奬之典, 人情咸鬱, 將無以聳動後來。 得壽果如文益周等所陳, 則誠爲可嘉。 請令該曹, 更加詢訪, 爲先旌表。 羅州生員姜渭虎等百餘人來呈, ‘亂後起事人, 如高敬命, 立祠于光州, 趙憲, 竪碑于錦山, 獨于金千鎰, 迄未有表厥之典, 使忠臣之閭, 埋沒無光, 車者不知式, 行者不知敬, 湖南士論, 至今鬱鬱。 亦請聞于朝, 褒其忠績, 表其門閭, 以爲後勸。’ 云。 幷乞令該曹施行。”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4책 457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군사(軍事) / *윤리(倫理)

 

全羅監司韓浚謙啓曰: “靈巖居前縣監文益周等二十餘人, 連名來呈曰: ‘郡居士人崔得壽, 故名賢德之六代孫也。 早知義方, 性又至孝, 承順無違, 兄弟之間, 友愛尤篤。 去壬辰, 在京城逢賊變, 奉年耋之母, 避亂朔寧地, 母因病卒, 權厝于山中, 晝夜不離殯側, 首尾一年, 竟免賊鋒, 明年秋, 歸葬衿川地, 啜粥三年, 不出廬外。 癸巳、甲午間, 飢饉太甚, 廬舍之側, 人爭殺食, 而得壽不畏懼, 哭泣之哀, 柴毁之狀, 見者垂涕。 得壽, 本郡人也。 亂後來居, 目見其誠孝之篤, 有足以動人, 故來陳旬宣之下。 請聞于朝。’ 且見兵戈之後, 義烈表著之人, 不爲不著, 而未蒙崇奬之典, 人情咸鬱, 將無以聳動後來。 得壽果如文益周等所陳, 則誠爲可嘉。 請令該曹, 更加詢訪, 爲先旌表。 羅州生員姜渭虎等百餘人來呈, ‘亂後起事人, 如高敬命, 立祠于光州, 趙憲, 竪碑于錦山, 獨于金千鎰, 迄未有表厥之典, 使忠臣之閭, 埋沒無光, 車者不知式, 行者不知敬, 湖南士論, 至今鬱鬱。 亦請聞于朝, 褒其忠績, 表其門閭, 以爲後勸。’ 云。 幷乞令該曹施行。”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4책 457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군사(軍事) / *윤리(倫理)

 

 숙종 38년 11월 19일 (무술) 원본474책/탈초본25책 (27/30)  1712년 康熙(淸/聖祖) 51년

崔德之 등의 祠宇에 賜額해 줄 것을 청하는 文獻緯 등의 상소
○ 幼學文獻緯等疏曰, 伏以, 尊賢建祠, 士林衛道之至意, 揭虔宣額, 國家尙德之盛典。是以尊之斯有祠, 祠之斯有額, 下必申其懇, 上輒准其請者, 實次第當行之事也。惟我國家, 崇儒重道, 褒德尙賢, 聲敎所曁, 文四行缺然, 此固出於高山景仰之誠, 同得於秉彝好德之天, 而亦莫非國家風厲振作之效, 有以致之也。苟有可尊之賢而不尊, 祠可請之額而不請而賁之, 則不但爲多士之羞, 其爲有慊於聖朝倡導之化者, 豈淺淺哉? 此臣等所以敢陳。故直提學崔德之及其孫忠成, 故領議政臣金壽恒及其子判書臣昌協, 立祠尊祀之大略, 以祈宣賜恩額之典者也。夫四臣事績本末, 固非如臣等晩出蒙士, 所可揄揚其萬一, 而略敍鄕邦之所傳誦, 平昔之所覩記, 以備裁察, 伏願殿下, 少垂省納焉。蓋聞崔德之, 當我世宗時, 歷踐翰苑三司, 而後以南原府使, 退居本邑, 取孟子在心養性之訓, 以名其所居之書樓, 留心正學, 杜門不出。及文宗卽位, 召拜直提學, 奬以純實, 且將貿用, 而上書乞骸, 長往不返。噫, 發軔榮途, 卿相在前, 而芥視富貴, 賁趾丘園, 其高風淸節, 足以立懦廉頑, 而玩書樓三字之扁, 可知其存養之工, 觀聖祖一言之褒, 可得其純實之資, 則其所立之高, 所存之正, 實有遠過於人, 而足爲後來之師範也。抑臣等於此(臣等於此), 又有所感焉。德之之退歸, 在於文廟, 一時名賢, 送行惜去, 見於篇什者甚多, 而六臣之詩若文, 竝在其中, 稱慕企羡之意, 溢於言外, 則德之之於六臣, 可謂合志同方, 而其後國家多故, 六臣者終不免焉, 然則德之之退, 有若見幾知微者然, 此豈常人所可及者, 而至今聞風者, 尙且咨嗟想像, 有所興起, 則其樹立之卓, 有補於世敎, 亦豈下於當日自靖之諸臣哉? 此尤聖朝之所宜亟加褒闡, 不可少緩者也。至如其孫忠成, 受學於四行缺着工向裹四字缺書, 循環誦讀, 微辭奧旨數字缺融解, 而尤用力於朱子全書, 體驗躬行, 以爲一生受用之資。雖以微臣等之蒙陋, 未能窺測其所造之至於何極, 而以其見於外者言之, 平居儼然, 終日矜莊, 而接人應物, 渾是一團和氣, 聽其辭氣, 覿其德容, 莫不心醉而起敬。以故士林歸仰, 望若山斗, 此固遠邇之所同然, 而薰腴所被, 在臣等爲尤深且切, 使窮鄕僻邑之人, 得知學問之根基, 爲人之規範者, 實壽恒之賜也。若乃昌協, 早襲庭訓, 躬服儒行, 亦嘗隨壽恒, 往來于玆邑, 臣等亦嘗得其爲人, 而景服之有素矣。蓋其仕於朝也, 經筵啓沃, 發揮心學, 章奏勤懇, 講明治體者, 莫非學問中流出, 而及其屛處之後, 尤以斯道爲己任, 囂囂畎畝, 矻矻墳典, 潛心於格致誠正之學, 着力於操存涵養之功。刻厲奮發, 眞知力踐, 參訂論辨, 提示幽眇之旨, 造詣成就, 幾臻高明之域。雖其苦心靡改, 確節難拔, 終未得羽儀朝端, 翊贊儒化, 使一世之人, 咸被其澤, 而其有補於世敎, 作範於後學, 則雖謂之儒門之大宗師, 不爲過矣。是以一邑多士, 興敬於想像傾慕之餘, 感發於耳目濡染之地, 協力建祠, 以祀德之於前, 而且以配焉。齊聲倡義, 竝享壽恒於後, 而又以昌協配焉。以伸一方景仰崇奉之意, 而第以遐遠樸愚, 尙未能請額于朝, 使前賢妥靈之所, 不得列於邦家之祀典, 而聖朝右文之化, 不得宣於海嶠之下邑, 此實臣等之罪也。玆敢重繭於百舍之外, 齊籲於九重之下。伏乞聖明, 數字缺察四臣者之德邃學, 淸芬遺韻, 合爲士林以下缺。答曰, 省疏具悉。疏辭, 令該曹稟處。

 

都承旨 南致熏。左承旨 金德基式暇。右承旨 許玧坐直。左副承旨 李德英坐直。右副承旨 李喜朝在外。同副承旨 沈壽賢未肅拜。注書 李國休洪廷相。假注書 朴弼正仕直。事變假注書 申兼濟



○ 上在慶德宮。停常參, 只晝講。
○ 下直, 竹山府使李鳳徵, 禮安縣監朴鶴齡
○ 政院啓曰, 掌令鄭必東, 持平魚有龜, 俱爲引避退待, 已至經宿, 而本府無行公之員, 尙未處置。除在外未肅拜外, 呈告人員, 卽爲牌招, 使之處置, 何如? 傳曰, 允。
○ 傳曰, 明日晝講爲之。
○ 政院啓曰, 卽者吏曹郞廳來言, 今日爲政事, 命下, 而判書李健命病不來, 參判李晩成牌不進, 參議李光佐在外, 不得開政云。判書李健命, 參判李晩成, 竝卽牌招開政, 何如? 傳曰, 允。
○ 謝恩, 吏曹參判李晩成
○ 禮曹判書金鎭圭上疏。大槪, 迫於嚴召, 黽勉承命, 而第於金吾所移李眞伋過限呈券事, 有難冒當其覆奏者, 乞蒙遞改, 竝幸公私事。入啓。答曰, 省疏具悉。卿勿過辭, 斯速覆奏。
○ 持平金相玉牌不進, 依承傳罷職。
○ 晝講。入侍, 同知事金鎭圭, 特進官閔鎭□, 承旨李德英, 玉堂洪禹瑞·李喬岳, 假注書朴弼正, 兼春秋李基聖, 史官沈珙, 武臣安斗齡
○ 副修撰李澤牌不進罷職傳旨。傳曰, 只推勿罷。
○ 晝講時, 禁府罪人權卨推問事, 令史官備員擧行事, 榻前下敎。
○ 晝講時, 同知事金鎭圭所啓, 臣於李眞伋事, 不無難便於覆奏者, 故陳疏祈免, 而未蒙准許, 成命之下, 亦不可每每辭避。今當擧行, 而以其推案見之, 則渠不但於乘暗擧火, 終始自明, 雖其過限呈券, 亦不承款。其所謂覆帳擧帳云者, 語意固自破綻, 而每以時限之將盡, 垂盡爲言, 終不以爲過限矣。金吾前後議啓, 雖以過限一款, 令本曹稟處爲請, 而旣不能過限, 的實取服於罪人, 則本曹何所據而論斷乎? 且獄官旣未就服, 則本曹似當以前日査問試券塡字者, 參考其呈券早晩, 而眞伋試券所塡之字九食, 此則其日收券之數, 不至甚晩, 恐非擧帳所納之券所可塡也。委積之券所塡字, 雖曰不能, 循次以擧帳所納, 而字次之高如是, 不無可疑, 而當初該府, 一不憑覈於掌其事者, 凡試場收券之規, 必限過而後覆帳, 故政院吏隷所供曰, 酉牌纔挿, 卽爲覆帳。眞伋亦以爲覆帳, 然則其過申限可知, 而猶每謂時限將盡垂盡, 不服其過限, 而該府不以此窮覈得情, 則亦何可遽斷以過限乎? 且所謂乘暗擧火, 該府始則只欲以政院吏隷所供殿內擧燭之早晩, 乘暗投呈之有無, 斷其虛實。及其諫臣之現告尹志遜而爲證, 則此視政院, 誠爲緊切, 而志遜所供, 語多糢糊, 渠旣不知眞伋之已呈與否, 而問救他人云者, 已不成說。且志遜則以爲, 點頭不答, 而眞伋則以爲, 答以同接之券者, 語不相符。眞伋則以爲, 傍接燃燭, 求其燭跋, 而志遜則以爲, 他處擧火, 更無所見, 尤大相左。宜反覆嚴覈於彼此, 而志遜則略略三招之外, 更不窮推, 眞伋則再推, 讞辭之所臚列其違端者, 三推所供, 未見其爲辨明, 而議啓泛言, 其無可覈之路, 而只以拈出過限一款, 依前付本曹, 朝家之中間放釋眞伋, 而復爲拿問者, 蓋以乘暗之不可不竝窮覈, 而苟覈出其乘暗, 則過限自當明甚故也, 而今還囚而更覈者, 止於如此, 恐非復爲拿問之本意。況雖於過限一款, 其未能取服, 如上所陳, 本曹亦何以處置耶? 有司所援據者前例, 而博考謄錄, 無如此之事, 欲請議大臣, 而獄案未盡究覈, 大臣亦何以獻議乎? 然則爲今之道, 更加窮覈其所未盡者, 俾獄情昭著, 而後論定其處置之如何, 而此又非有司所敢仰請, 惟在自上所裁處耳。蓋此委折, 有非草草文字, 所可覆奏, 故敢此入侍面陳, 而亦異常規, 不勝惶恐。上曰, 乘暗投呈一款, 雖以禁府觀之, 固難明白覈出, 而至於過限事, 則渠旣曰擧帳納券, 政院隷屬, 亦言酉牌已揷。試帳例於時刻已盡後覆之, 旣云擧帳, 則其覆可知, 旣覆之後, 則過限分明矣。鎭圭曰, 覆帳之爲過限, 誠如聖敎, 故臣已陳之矣。然朝家處事, 自有事體, 該府旣不得以過限取服, 則本曹何可遽斷以過限乎? 且乘暗擧火, 亦不可不明査, 而尹志遜所招, 甚糢糊, 似有隱情, 而該府不窮覈矣。上曰, 尹志遜雖更拿問, 未知其能得明白覈出也。問議大臣, 可矣。鎭圭曰, 然則以筵中所稟者, 下敎辭意, 出擧行條件, 以問于大臣, 而所問議者, 在於更査當否歟, 抑以過限勘斷當否歟? 上曰, 以過限勘斷當否, 問議, 可也。
○ 晝講時, 檢討官李喬岳所啓, 卽今金吾所囚, 除科獄罪人, 幾盡疎釋, 無復爲滯鬱之歎, 聖明顧恤之德, 群下孰不欽仰? 第外方則例多滯獄, 臣待罪縣邑時, 稔知此弊矣。前後朝臣, 屢次陳達, 聖上每加申飭, 道臣非不惕念, 守令非敢怠忽, 而重囚同推之際, 自致延拖, 久則八年, 近則四五年, 一向淹滯, 飢寒逼身, 鬼形已成, 幾至瘦死者, 往往有之, 良可矜惻, 今後若更爲各別申飭, 則庶無獄囚久滯之弊, 敢此仰達。同知事金鎭圭曰, 玉堂旣已陳達, 臣亦有所懷仰達矣。外方固多滯獄之弊, 而獄亦有此患。臣於頃者, 待罪刑官, 以按治獄事, 積困人言, 狼狽而遞, 其開坐亦不數, 未免尸居其職矣。然亦略知滯獄之爲弊。蓋獄情多疑亂, 難於遽斷, 又有査問外方而往復者, 其勢固當遲滯而然, 累年幽囚之苦可想, 卽今刑官無故, 自當擧職, 而外方此弊, 必尤甚矣。王政之於春月, 固恤刑獄, 而冬月滯獄, 亦豈不念乎? 上曰, 儒臣所達, 是矣, 而禮判之言, 又如此, 外方滯獄之弊, 屢次申飭, 而今則又當隆寒, 各別申飭, 可也。侍讀官洪禹瑞所啓, 臣有所懷, 事雖微眇, 而實爲矜惻, 故敢達。前後式年文科人林德升·金汲·具適·李正華等四人, 皆是鄕中士族, 合被選國子者也。林德升·金汲, 則登科時, 以年五十無一資, 當直授典籍, 而未及分館, 四人擧皆身死矣。半生窮經, 僅參科名, 而特以生前, 身無職名之故, 死後直以及第題主云, 殊甚惻然。未及分館而身故者, 如魚史商·沈瀷等, 皆因筵臣, 得參贈職之典, 而此四人, 則本以鄕人而無知者, 尙無陳白之擧。倘蒙矜念, 命贈成均典籍·學諭等職, 特加愍典, 則瞻聆所及, 孰不感聳? 臣適有所聞知, 敢此仰達。上曰, 令該曹稟處, 可也。參贊官李德英所啓, 臣待罪近密, 有所懷敢達。先正臣朴世采, 卽聖上禮遇之儒賢也。朝家爲慮其宗祀, 特命立後, 宗祀幸有主者, 而家事零替, 香火不能繼云。從前先賢子孫, 朝家每令各別錄用, 則況此聖上禮遇儒賢, 尤有所別, 其奉祀孫, 一體錄用, 似合事宜, 惶恐敢達。上曰, 所達誠然, 令該曹錄用, 可也。特進官閔鎭遠所啓, 李濟爲國子時陳疏, 以養賢庫經用之難繼, 館下齋十人減去額數矣。卽今士子多聚, 依接無處, 雖難盡復元額, 參酌復舊, 似合事宜, 而經費不貲, 亦甚可慮。禮曹判書金鎭圭, 今方入侍, 下詢而處之, 何如? 鎭圭曰, 臣果累爲館官, 故亦知此事矣。今之所以作士者, 雖不如三代之制, 然聚士於國學而講讀, 其意固好。本館上齋, 則以其生進之故, 去來無常, 講讀亦不專, 下齋則鄕儒之專於治經, 而貧寒難以糊口之類, 爲其依歸之所, 故其講讀之勤, 實勝於上齋, 故殿講, 下齋之通者居多, 此則自上亦必下覽矣。上曰, 下齋果多通矣。鎭圭曰, 下齋之爲鄕儒依歸之所者如此, 而乃恤其所養之耗於經費, 減其祖宗朝所定額數, 以經費之若干所耗, 比諸養士本意, 自有輕重。臣之愚見, 不必參酌, 宜依祖宗朝所定元額, 而盡復舊矣。上曰, 當初減其額數, 蓋慮經費, 而經費與養士本意, 有輕重云者, 誠然, 依前復舊, 可也。鎭遠曰, 館學下齋儒生, 以事體言之, 則太學爲重, 而四學次之。四學, 則勿論京儒·鄕儒, 爭先願入, 太學, 則以有上齋之故, 渠輩行止不便, 人多厭避。每以遐鄕卑微之人充入, 登第後分館時, 館下齋出身, 則斷以爲卑微而枳塞之。以此兩班子枝, 抵死不入, 此非國家設立之本意, 此後則兩班子枝, 各別勸諭以入, 而分館時, 勿以館下齋爲拘之意, 申飭於該曹及四館, 何如? 上曰, 依爲之。鎭圭曰, 閔鎭遠所達, 誠甚捄弊之意, 而不但分館時如此, 上齋之視下齋, 甚鄙薄, 故下齋不勝其苦。此雖有生進幼學名稱之分, 而同是士子, 何可鄙薄乎? 此習甚惡, 必先改其習, 而後可以捄弊。使大司成, 當飭上齋, 毋得薄待下齋, 似好矣。上曰, 同是士子, 不可賤待, 大司成知悉此意申飭, 可也。又所啓, 臣待罪國子, 無以仰塞敎育之責, 所事者只是課試末節, 而卽今國家設行通讀殿講, 故外方治經儒生之上來者甚多, 飢寒無依, 彷徨道路, 甚可矜惻。近來京華士子, 雖爭先入學, 托故受由, 不爲居齋, 只欲借名於殿講時, 士習極爲無據。向者金鎭圭崔昌大相爭者, 蓋以此也。如此之類, 臣盡令出齋, 仍爲聚會中外士子試講, 則善誦者三十餘人, 一依講次, 塡充其闕, 而其不及入參之類, 以饑寒切迫之意, 每日呼訴於臣, 殊可愍然。蓋李濟爲大司成時, 以館學下齋, 試講許入之意陳疏, 廟堂覆啓, 雖不明白, 亦無防塞之語。金鎭圭爲大司成時, 以儒身不居齋, 而占其窠, 冒卜殿講事, 作爲完議, 永塞受由, 而堂上及兼官, 不爲遵行矣。鎭圭曰, 臣爲知館事時, 有完議之事矣。鎭遠曰, 此後則不許受由, 試講許入兩件事, 奉承傳定式施行, 何如? 上曰, 依爲之。鎭遠曰, 試講時, 大司成及四學兼官, 各自試講, 則必有不均之患。大司成間間試講, 而四學兼官無故, 則亦爲來參, 有故則大司成獨爲試講, 未爲不可矣。上曰, 依爲之。
○ 兵批, 以李頤晩爲副護軍, 李宜顯爲副司直。以上朝報
○ 晝講時, 特進官行大司成閔鎭遠所啓, 臣於頃日試講諸生, 則只誦周易, 而他書不能誦者頗多。蓋殿講時, 每以周易一經試講, 故專治此書, 以爲殿講時僥倖決科之計, 士子任便之習, 誠甚未安。今後則殿講時, 永罷曾時讀書入之規, 自政院, 以經書七冊, 列書以入, 自上落點於其中一冊, 而試講, 則可防士子僥倖之計矣。上曰, 所啓好, 今後則自政院列書七冊以入, 落點試講事, 定式施行, 可也。以上成均館謄錄
○ 訓鍊廳啓曰, 今日晝講入侍時, 同知事金鎭圭所啓, ·兩陵, 近有虎患, 村民家牛畜狗彘, 多被嚂殺, 陵卒不得巡山, 令各軍門, 發送砲手捉虎事定奪矣。善放砲手八十名, 將官率領, 今日出送之意, 敢啓。答曰, 知道。以上訓局謄錄
○ 晝講時, 同知事金鎭圭所啓, 宣陵陵官所報內, 王后陵曲墻西邊, 林木逼近, 前日大臣禮官於莎草奉審時, 使陵官看審, 其去曲墻尺數以報, 故尺量, 則其間十一尺云矣。蓋其林木, 卽今雖不長大, 無風落震驚之慮, 而落葉亦隨風覆陵上, 且長大之後, 則不但有風落震驚之慮, 亦將陰翳, 而有妨莎草, 宜量其遠近而斫伐, 此前所以使之看審以報也。未知, 當限幾尺而斫伐乎? 二十尺則似近, 限以三十尺乎? 上曰, 距曲墻三十尺爲限, 可也。鎭圭曰, 陵木斫伐時, 例有告由之擧, 而今冬至節祀不遠, 兼行, 何如? 上曰, 依爲之。鎭圭曰, 陵木斫伐時, 例有發遣本曹郞官, 與陵官眼同斫伐矣。今亦依例爲之乎? 上曰, 依爲之。以上禮曹謄錄
○ 有政。吏批, 判書李健命進, 參判李晩成進, 參議李光佐在外, 右承旨許玧進。
○ 兵批, 行判書趙泰采病, 參判朴弼明未肅拜, 參議宋徵殷病, 參知沈壽賢進, 右承旨許玧進。
李德英啓曰, 明日常參·經筵, 取稟。傳曰, 只晝講。
○ 又啓曰, 大司憲權尙夏, 執義李晩堅在外, 掌令鄭必東, 持平魚有龜避嫌退待, 掌令洪好人未肅拜上疏, 持平金相玉牌不進。今日以監察茶時之意, 敢啓, 傳曰, 知道。
○ 又以都摠府言啓曰, 副摠管柳星, 以訓鍊都監別將軍兵等操鍊事, 露梁進去之意, 敢啓。傳曰, 知道。
○ 又啓曰, 外各司內摘奸單子, 有頉處察推事, 命下矣。長興庫奉事沈壽浚, 旣已執闕, 所當依承傳罷職傳旨捧入, 而第壽浚, 以當日應爲替入之員, 適有母病, 未及趁所相替。故主簿李潗, 仍留直所, 將欲面替之際, 摘奸已到, 壽浚名入省記之故, 有此執闕云。此與全然闕直有異, 何以爲之? 軍器寺火藥庫軍士雇立士堅, 無緣干點, 令攸司推治, 何如? 傳曰, 依啓。沈壽浚分揀。
○ 又啓曰, 上番兼春秋李萬根, 本以衰老之人, 且得休息痢疾, 症情苦重, 決無出入筵席之勢, 姑爲減下, 其代, 今日政, 卽爲差出, 何如? 傳曰, 允。
○ 又以弘文館言啓曰, 副修撰李澤, 昨日違牌之後, 旣有只推之命, 更爲牌招察任, 何如? 傳曰, 允。
○ 禮曹判書金鎭圭疏曰, 多缺旣就列四五字缺, 而有難參涉於其事者, 蓋此與試官歷抵, 試門開閉, 條款自別而然, 亦係科獄中一事, 則以臣之曾按科獄, 而積困人言, 何可諉以此非秋曹所按, 而冒當覆奏哉? 況臣細閱其案, 金吾前後究覈眞伋者, 過限後乘暗呈券, 與擧火書券, 而眞伋所供, 乃引儒臣燈燭旣張, 乘暗投呈云云。語謂爲疾怨之家, 乘時所媒孽, 其所謂儒臣, 卽李健命也。惟此所究覈者, 實肇於, 成於李宜顯, 而中間健命, 亦嘗筵奏與疏論, 故不以其爲問目之外, 而攙引爲言如此。且金吾所讞, 雖以乘暗用奸之無可覈, 請令稟處者, 過限一款, 而欲前後所覆者, 限後乘暗, 固是一串事, 則今於覆奏之際, 終難只擧過限, 而不及乘暗, 況儒臣筵奏, 亦有限後之語, 其何可强分而二之哉? 夫趙銘, 旣自服其外製事之, 果言于健命, 則臣之按治一事, 可謂無嫌, 而人乃藉口姻戚, 欲株連於臣。今眞伋之斥健命者, 非復事之比矣, 而臣若當其覆奏, 有所論斷, 則彼所藉口, 必有加於前。臣雖不肖, 固不爲避事圖便之計, 而然顚沛之餘, 不自懲創, 致令査事, 緣臣又壞, 則是將添其罪戾, 臣故不得不爲此仰慁。伏乞聖明, 俯垂諒察, 亟遞臣職, 移授無嫌之人, 使遄擧其覆奏, 竝幸公私, 不勝大願。疏批見上
○ 幼學文獻緯等疏曰, 伏以, 尊賢建祠, 士林衛道之至意, 揭虔宣額, 國家尙德之盛典。是以尊之斯有祠, 祠之斯有額, 下必申其懇, 上輒准其請者, 實次第當行之事也。惟我國家, 崇儒重道, 褒德尙賢, 聲敎所曁, 文四行缺然, 此固出於高山景仰之誠, 同得於秉彝好德之天, 而亦莫非國家風厲振作之效, 有以致之也。苟有可尊之賢而不尊, 祠可請之額而不請而賁之, 則不但爲多士之羞, 其爲有慊於聖朝倡導之化者, 豈淺淺哉? 此臣等所以敢陳。故直提學崔德之及其孫忠成, 故領議政臣金壽恒及其子判書臣昌協, 立祠尊祀之大略, 以祈宣賜恩額之典者也。夫四臣事績本末, 固非如臣等晩出蒙士, 所可揄揚其萬一, 而略敍鄕邦之所傳誦, 平昔之所覩記, 以備裁察, 伏願殿下, 少垂省納焉。蓋聞崔德之, 當我世宗時, 歷踐翰苑三司, 而後以南原府使, 退居本邑, 取孟子在心養性之訓, 以名其所居之書樓, 留心正學, 杜門不出。及文宗卽位, 召拜直提學, 奬以純實, 且將貿用, 而上書乞骸, 長往不返。噫, 發軔榮途, 卿相在前, 而芥視富貴, 賁趾丘園, 其高風淸節, 足以立懦廉頑, 而玩書樓三字之扁, 可知其存養之工, 觀聖祖一言之褒, 可得其純實之資, 則其所立之高, 所存之正, 實有遠過於人, 而足爲後來之師範也。抑臣等於此(臣等於此), 又有所感焉。德之之退歸, 在於文廟, 一時名賢, 送行惜去, 見於篇什者甚多, 而六臣之詩若文, 竝在其中, 稱慕企羡之意, 溢於言外, 則德之之於六臣, 可謂合志同方, 而其後國家多故, 六臣者終不免焉, 然則德之之退, 有若見幾知微者然, 此豈常人所可及者, 而至今聞風者, 尙且咨嗟想像, 有所興起, 則其樹立之卓, 有補於世敎, 亦豈下於當日自靖之諸臣哉? 此尤聖朝之所宜亟加褒闡, 不可少緩者也。至如其孫忠成, 受學於四行缺着工向裹四字缺書, 循環誦讀, 微辭奧旨數字缺融解, 而尤用力於朱子全書, 體驗躬行, 以爲一生受用之資。雖以微臣等之蒙陋, 未能窺測其所造之至於何極, 而以其見於外者言之, 平居儼然, 終日矜莊, 而接人應物, 渾是一團和氣, 聽其辭氣, 覿其德容, 莫不心醉而起敬。以故士林歸仰, 望若山斗, 此固遠邇之所同然, 而薰腴所被, 在臣等爲尤深且切, 使窮鄕僻邑之人, 得知學問之根基, 爲人之規範者, 實壽恒之賜也。若乃昌協, 早襲庭訓, 躬服儒行, 亦嘗隨壽恒, 往來于玆邑, 臣等亦嘗得其爲人, 而景服之有素矣。蓋其仕於朝也, 經筵啓沃, 發揮心學, 章奏勤懇, 講明治體者, 莫非學問中流出, 而及其屛處之後, 尤以斯道爲己任, 囂囂畎畝, 矻矻墳典, 潛心於格致誠正之學, 着力於操存涵養之功。刻厲奮發, 眞知力踐, 參訂論辨, 提示幽眇之旨, 造詣成就, 幾臻高明之域。雖其苦心靡改, 確節難拔, 終未得羽儀朝端, 翊贊儒化, 使一世之人, 咸被其澤, 而其有補於世敎, 作範於後學, 則雖謂之儒門之大宗師, 不爲過矣。是以一邑多士, 興敬於想像傾慕之餘, 感發於耳目濡染之地, 協力建祠, 以祀德之於前, 而且以配焉。齊聲倡義, 竝享壽恒於後, 而又以昌協配焉。以伸一方景仰崇奉之意, 而第以遐遠樸愚, 尙未能請額于朝, 使前賢妥靈之所, 不得列於邦家之祀典, 而聖朝右文之化, 不得宣於海嶠之下邑, 此實臣等之罪也。玆敢重繭於百舍之外, 齊籲於九重之下。伏乞聖明, 數字缺察四臣者之德邃學, 淸芬遺韻, 合爲士林以下缺。答曰, 省疏具悉。疏辭, 令該曹稟處。
○ 午時, 上御興政堂, 晝講。入侍諸臣見上 諸臣以次進伏。上讀禮記月令上篇, 自是月也天氣下降大文, 至天子居靑陽太廟大文後, 侍讀官洪禹瑞繼讀, 自是月也安萌芽大文, 至行夏令大文。上讀安萌芽大文, 止行夏令, 禹瑞因文義陳達曰, 二月爲四陽, 所謂安萌芽養幼少, 皆所以助發生氣也。宋哲宗, 戱折柳枝, 程子諫止, 亦欲以順時令也。草木萌芽, 猶當深護, 況幼少, 可不養乎? 諸孤可不存乎? 幼幼及人幼, 孤獨相養, 何時不爲, 而春時則尤宜加意, 此月令意也。德英曰, 四行缺寒暑輒有恤囚之命, 欽恤之仁, 至矣。前頭又當隆寒, 常以此留意, 則幸甚。上曰, 當體念焉。喬岳曰, 同律度, 勻衡石角斗甬, 正權槪, 此平其所當平之物也。王者之於春月晝夜平均之時, 平其器皿者, 乃所以體天道也。雖尋常器皿之物, 無不均平。況於行政出治之際, 豈不思所以均平乎? 一事一物之接, 一動一言之發, 或有一毫偏頗, 則便是失平也。是以洪範曰, 無偏無陂, 遵王之義。又曰, 王道平平, 無反無側。聖上若因此另加體念, 則可以爲益於建極之道矣。上曰, 儒臣推演文義, 所達好矣。予當體念焉。禹瑞曰, 無肆者, 肆陳尸也。周禮曰, 肆之三日, 春月不行刑戮, 而如大逆不孝, 亦當行戮, 埋之而勿肆也。又曰, 先雷三日奮木鐸, 令兆民, 使之戒容止者, 聖人於迅雷風烈[烈風], 必變玉藻云。迅雷甚雨, 雖夜必興, 衣服冠而坐, 聖人之於警威如此, 而小民愚迷, 褻瀆天威, 故以此戒之, 皆所以警天之意也。此時晝夜平均, 故可於此時, 均平度量衡石, 皆所以順時也。所謂歲二月東巡, 同律度量衡, 亦此意也。又曰, 獻羔開氷, 卽所謂四之日其蚤, 獻羔祭韭, 月令與·, 相表裏矣。上曰, 然。禹瑞曰, 上丁, 先庚三日, 後甲三日, 卽蠱之先甲後甲, 巽之先庚後庚也。古人祭祀, 必以丁日, 義以丁爲丁訓之意也。
鎭圭曰, ·順陵陵官所報內, 近有虎患, 村民家牛馬狗彘, 多被嚂殺, 陵卒不得任意巡山云。此兩陵, 以多樹木之故, 自前數有虎患, 每令各軍門, 發遣砲手捉虎矣。今亦依前分付軍門, 何如? 上曰, 依爲之。
德英曰, 判義禁閔鎭厚, 以按治權卨, 引嫌辭免, 連不開坐, 引嫌當否, 臣不敢知, 而觀其疏語, 不無難便之端。且科獄査事, 漸至遷就, 自朝家宜有處分, 使之趁速開坐, 故仰達。上曰, 官備員擧行, 可也。諸臣遂退出。燼餘


○ 上在慶德宮。停常參, 只晝講。
○ 下直, 竹山府使李鳳徵, 禮安縣監朴鶴齡
○ 政院啓曰, 掌令鄭必東, 持平魚有龜, 俱爲引避退待, 已至經宿, 而本府無行公之員, 尙未處置。除在外未肅拜外, 呈告人員, 卽爲牌招, 使之處置, 何如? 傳曰, 允。
○ 傳曰, 明日晝講爲之。
○ 政院啓曰, 卽者吏曹郞廳來言, 今日爲政事, 命下, 而判書李健命病不來, 參判李晩成牌不進, 參議李光佐在外, 不得開政云。判書李健命, 參判李晩成, 竝卽牌招開政, 何如? 傳曰, 允。
○ 謝恩, 吏曹參判李晩成
○ 禮曹判書金鎭圭上疏。大槪, 迫於嚴召, 黽勉承命, 而第於金吾所移李眞伋過限呈券事, 有難冒當其覆奏者, 乞蒙遞改, 竝幸公私事。入啓。答曰, 省疏具悉。卿勿過辭, 斯速覆奏。
○ 持平金相玉牌不進, 依承傳罷職。
○ 晝講。入侍, 同知事金鎭圭, 特進官閔鎭□, 承旨李德英, 玉堂洪禹瑞·李喬岳, 假注書朴弼正, 兼春秋李基聖, 史官沈珙, 武臣安斗齡
○ 副修撰李澤牌不進罷職傳旨。傳曰, 只推勿罷。
○ 晝講時, 禁府罪人權卨推問事, 令史官備員擧行事, 榻前下敎。
○ 晝講時, 同知事金鎭圭所啓, 臣於李眞伋事, 不無難便於覆奏者, 故陳疏祈免, 而未蒙准許, 成命之下, 亦不可每每辭避。今當擧行, 而以其推案見之, 則渠不但於乘暗擧火, 終始自明, 雖其過限呈券, 亦不承款。其所謂覆帳擧帳云者, 語意固自破綻, 而每以時限之將盡, 垂盡爲言, 終不以爲過限矣。金吾前後議啓, 雖以過限一款, 令本曹稟處爲請, 而旣不能過限, 的實取服於罪人, 則本曹何所據而論斷乎? 且獄官旣未就服, 則本曹似當以前日査問試券塡字者, 參考其呈券早晩, 而眞伋試券所塡之字九食, 此則其日收券之數, 不至甚晩, 恐非擧帳所納之券所可塡也。委積之券所塡字, 雖曰不能, 循次以擧帳所納, 而字次之高如是, 不無可疑, 而當初該府, 一不憑覈於掌其事者, 凡試場收券之規, 必限過而後覆帳, 故政院吏隷所供曰, 酉牌纔挿, 卽爲覆帳。眞伋亦以爲覆帳, 然則其過申限可知, 而猶每謂時限將盡垂盡, 不服其過限, 而該府不以此窮覈得情, 則亦何可遽斷以過限乎? 且所謂乘暗擧火, 該府始則只欲以政院吏隷所供殿內擧燭之早晩, 乘暗投呈之有無, 斷其虛實。及其諫臣之現告尹志遜而爲證, 則此視政院, 誠爲緊切, 而志遜所供, 語多糢糊, 渠旣不知眞伋之已呈與否, 而問救他人云者, 已不成說。且志遜則以爲, 點頭不答, 而眞伋則以爲, 答以同接之券者, 語不相符。眞伋則以爲, 傍接燃燭, 求其燭跋, 而志遜則以爲, 他處擧火, 更無所見, 尤大相左。宜反覆嚴覈於彼此, 而志遜則略略三招之外, 更不窮推, 眞伋則再推, 讞辭之所臚列其違端者, 三推所供, 未見其爲辨明, 而議啓泛言, 其無可覈之路, 而只以拈出過限一款, 依前付本曹, 朝家之中間放釋眞伋, 而復爲拿問者, 蓋以乘暗之不可不竝窮覈, 而苟覈出其乘暗, 則過限自當明甚故也, 而今還囚而更覈者, 止於如此, 恐非復爲拿問之本意。況雖於過限一款, 其未能取服, 如上所陳, 本曹亦何以處置耶? 有司所援據者前例, 而博考謄錄, 無如此之事, 欲請議大臣, 而獄案未盡究覈, 大臣亦何以獻議乎? 然則爲今之道, 更加窮覈其所未盡者, 俾獄情昭著, 而後論定其處置之如何, 而此又非有司所敢仰請, 惟在自上所裁處耳。蓋此委折, 有非草草文字, 所可覆奏, 故敢此入侍面陳, 而亦異常規, 不勝惶恐。上曰, 乘暗投呈一款, 雖以禁府觀之, 固難明白覈出, 而至於過限事, 則渠旣曰擧帳納券, 政院隷屬, 亦言酉牌已揷。試帳例於時刻已盡後覆之, 旣云擧帳, 則其覆可知, 旣覆之後, 則過限分明矣。鎭圭曰, 覆帳之爲過限, 誠如聖敎, 故臣已陳之矣。然朝家處事, 自有事體, 該府旣不得以過限取服, 則本曹何可遽斷以過限乎? 且乘暗擧火, 亦不可不明査, 而尹志遜所招, 甚糢糊, 似有隱情, 而該府不窮覈矣。上曰, 尹志遜雖更拿問, 未知其能得明白覈出也。問議大臣, 可矣。鎭圭曰, 然則以筵中所稟者, 下敎辭意, 出擧行條件, 以問于大臣, 而所問議者, 在於更査當否歟, 抑以過限勘斷當否歟? 上曰, 以過限勘斷當否, 問議, 可也。
○ 晝講時, 檢討官李喬岳所啓, 卽今金吾所囚, 除科獄罪人, 幾盡疎釋, 無復爲滯鬱之歎, 聖明顧恤之德, 群下孰不欽仰? 第外方則例多滯獄, 臣待罪縣邑時, 稔知此弊矣。前後朝臣, 屢次陳達, 聖上每加申飭, 道臣非不惕念, 守令非敢怠忽, 而重囚同推之際, 自致延拖, 久則八年, 近則四五年, 一向淹滯, 飢寒逼身, 鬼形已成, 幾至瘦死者, 往往有之, 良可矜惻, 今後若更爲各別申飭, 則庶無獄囚久滯之弊, 敢此仰達。同知事金鎭圭曰, 玉堂旣已陳達, 臣亦有所懷仰達矣。外方固多滯獄之弊, 而獄亦有此患。臣於頃者, 待罪刑官, 以按治獄事, 積困人言, 狼狽而遞, 其開坐亦不數, 未免尸居其職矣。然亦略知滯獄之爲弊。蓋獄情多疑亂, 難於遽斷, 又有査問外方而往復者, 其勢固當遲滯而然, 累年幽囚之苦可想, 卽今刑官無故, 自當擧職, 而外方此弊, 必尤甚矣。王政之於春月, 固恤刑獄, 而冬月滯獄, 亦豈不念乎? 上曰, 儒臣所達, 是矣, 而禮判之言, 又如此, 外方滯獄之弊, 屢次申飭, 而今則又當隆寒, 各別申飭, 可也。侍讀官洪禹瑞所啓, 臣有所懷, 事雖微眇, 而實爲矜惻, 故敢達。前後式年文科人林德升·金汲·具適·李正華等四人, 皆是鄕中士族, 合被選國子者也。林德升·金汲, 則登科時, 以年五十無一資, 當直授典籍, 而未及分館, 四人擧皆身死矣。半生窮經, 僅參科名, 而特以生前, 身無職名之故, 死後直以及第題主云, 殊甚惻然。未及分館而身故者, 如魚史商·沈瀷等, 皆因筵臣, 得參贈職之典, 而此四人, 則本以鄕人而無知者, 尙無陳白之擧。倘蒙矜念, 命贈成均典籍·學諭等職, 特加愍典, 則瞻聆所及, 孰不感聳? 臣適有所聞知, 敢此仰達。上曰, 令該曹稟處, 可也。參贊官李德英所啓, 臣待罪近密, 有所懷敢達。先正臣朴世采, 卽聖上禮遇之儒賢也。朝家爲慮其宗祀, 特命立後, 宗祀幸有主者, 而家事零替, 香火不能繼云。從前先賢子孫, 朝家每令各別錄用, 則況此聖上禮遇儒賢, 尤有所別, 其奉祀孫, 一體錄用, 似合事宜, 惶恐敢達。上曰, 所達誠然, 令該曹錄用, 可也。特進官閔鎭遠所啓, 李濟爲國子時陳疏, 以養賢庫經用之難繼, 館下齋十人減去額數矣。卽今士子多聚, 依接無處, 雖難盡復元額, 參酌復舊, 似合事宜, 而經費不貲, 亦甚可慮。禮曹判書金鎭圭, 今方入侍, 下詢而處之, 何如? 鎭圭曰, 臣果累爲館官, 故亦知此事矣。今之所以作士者, 雖不如三代之制, 然聚士於國學而講讀, 其意固好。本館上齋, 則以其生進之故, 去來無常, 講讀亦不專, 下齋則鄕儒之專於治經, 而貧寒難以糊口之類, 爲其依歸之所, 故其講讀之勤, 實勝於上齋, 故殿講, 下齋之通者居多, 此則自上亦必下覽矣。上曰, 下齋果多通矣。鎭圭曰, 下齋之爲鄕儒依歸之所者如此, 而乃恤其所養之耗於經費, 減其祖宗朝所定額數, 以經費之若干所耗, 比諸養士本意, 自有輕重。臣之愚見, 不必參酌, 宜依祖宗朝所定元額, 而盡復舊矣。上曰, 當初減其額數, 蓋慮經費, 而經費與養士本意, 有輕重云者, 誠然, 依前復舊, 可也。鎭遠曰, 館學下齋儒生, 以事體言之, 則太學爲重, 而四學次之。四學, 則勿論京儒·鄕儒, 爭先願入, 太學, 則以有上齋之故, 渠輩行止不便, 人多厭避。每以遐鄕卑微之人充入, 登第後分館時, 館下齋出身, 則斷以爲卑微而枳塞之。以此兩班子枝, 抵死不入, 此非國家設立之本意, 此後則兩班子枝, 各別勸諭以入, 而分館時, 勿以館下齋爲拘之意, 申飭於該曹及四館, 何如? 上曰, 依爲之。鎭圭曰, 閔鎭遠所達, 誠甚捄弊之意, 而不但分館時如此, 上齋之視下齋, 甚鄙薄, 故下齋不勝其苦。此雖有生進幼學名稱之分, 而同是士子, 何可鄙薄乎? 此習甚惡, 必先改其習, 而後可以捄弊。使大司成, 當飭上齋, 毋得薄待下齋, 似好矣。上曰, 同是士子, 不可賤待, 大司成知悉此意申飭, 可也。又所啓, 臣待罪國子, 無以仰塞敎育之責, 所事者只是課試末節, 而卽今國家設行通讀殿講, 故外方治經儒生之上來者甚多, 飢寒無依, 彷徨道路, 甚可矜惻。近來京華士子, 雖爭先入學, 托故受由, 不爲居齋, 只欲借名於殿講時, 士習極爲無據。向者金鎭圭崔昌大相爭者, 蓋以此也。如此之類, 臣盡令出齋, 仍爲聚會中外士子試講, 則善誦者三十餘人, 一依講次, 塡充其闕, 而其不及入參之類, 以饑寒切迫之意, 每日呼訴於臣, 殊可愍然。蓋李濟爲大司成時, 以館學下齋, 試講許入之意陳疏, 廟堂覆啓, 雖不明白, 亦無防塞之語。金鎭圭爲大司成時, 以儒身不居齋, 而占其窠, 冒卜殿講事, 作爲完議, 永塞受由, 而堂上及兼官, 不爲遵行矣。鎭圭曰, 臣爲知館事時, 有完議之事矣。鎭遠曰, 此後則不許受由, 試講許入兩件事, 奉承傳定式施行, 何如? 上曰, 依爲之。鎭遠曰, 試講時, 大司成及四學兼官, 各自試講, 則必有不均之患。大司成間間試講, 而四學兼官無故, 則亦爲來參, 有故則大司成獨爲試講, 未爲不可矣。上曰, 依爲之。
○ 兵批, 以李頤晩爲副護軍, 李宜顯爲副司直。以上朝報
○ 晝講時, 特進官行大司成閔鎭遠所啓, 臣於頃日試講諸生, 則只誦周易, 而他書不能誦者頗多。蓋殿講時, 每以周易一經試講, 故專治此書, 以爲殿講時僥倖決科之計, 士子任便之習, 誠甚未安。今後則殿講時, 永罷曾時讀書入之規, 自政院, 以經書七冊, 列書以入, 自上落點於其中一冊, 而試講, 則可防士子僥倖之計矣。上曰, 所啓好, 今後則自政院列書七冊以入, 落點試講事, 定式施行, 可也。以上成均館謄錄
○ 訓鍊廳啓曰, 今日晝講入侍時, 同知事金鎭圭所啓, ·兩陵, 近有虎患, 村民家牛畜狗彘, 多被嚂殺, 陵卒不得巡山, 令各軍門, 發送砲手捉虎事定奪矣。善放砲手八十名, 將官率領, 今日出送之意, 敢啓。答曰, 知道。以上訓局謄錄
○ 晝講時, 同知事金鎭圭所啓, 宣陵陵官所報內, 王后陵曲墻西邊, 林木逼近, 前日大臣禮官於莎草奉審時, 使陵官看審, 其去曲墻尺數以報, 故尺量, 則其間十一尺云矣。蓋其林木, 卽今雖不長大, 無風落震驚之慮, 而落葉亦隨風覆陵上, 且長大之後, 則不但有風落震驚之慮, 亦將陰翳, 而有妨莎草, 宜量其遠近而斫伐, 此前所以使之看審以報也。未知, 當限幾尺而斫伐乎? 二十尺則似近, 限以三十尺乎? 上曰, 距曲墻三十尺爲限, 可也。鎭圭曰, 陵木斫伐時, 例有告由之擧, 而今冬至節祀不遠, 兼行, 何如? 上曰, 依爲之。鎭圭曰, 陵木斫伐時, 例有發遣本曹郞官, 與陵官眼同斫伐矣。今亦依例爲之乎? 上曰, 依爲之。以上禮曹謄錄
○ 有政。吏批, 判書李健命進, 參判李晩成進, 參議李光佐在外, 右承旨許玧進。
○ 兵批, 行判書趙泰采病, 參判朴弼明未肅拜, 參議宋徵殷病, 參知沈壽賢進, 右承旨許玧進。
李德英啓曰, 明日常參·經筵, 取稟。傳曰, 只晝講。
○ 又啓曰, 大司憲權尙夏, 執義李晩堅在外, 掌令鄭必東, 持平魚有龜避嫌退待, 掌令洪好人未肅拜上疏, 持平金相玉牌不進。今日以監察茶時之意, 敢啓, 傳曰, 知道。
○ 又以都摠府言啓曰, 副摠管柳星, 以訓鍊都監別將軍兵等操鍊事, 露梁進去之意, 敢啓。傳曰, 知道。
○ 又啓曰, 外各司內摘奸單子, 有頉處察推事, 命下矣。長興庫奉事沈壽浚, 旣已執闕, 所當依承傳罷職傳旨捧入, 而第壽浚, 以當日應爲替入之員, 適有母病, 未及趁所相替。故主簿李潗, 仍留直所, 將欲面替之際, 摘奸已到, 壽浚名入省記之故, 有此執闕云。此與全然闕直有異, 何以爲之? 軍器寺火藥庫軍士雇立士堅, 無緣干點, 令攸司推治, 何如? 傳曰, 依啓。沈壽浚分揀。
○ 又啓曰, 上番兼春秋李萬根, 本以衰老之人, 且得休息痢疾, 症情苦重, 決無出入筵席之勢, 姑爲減下, 其代, 今日政, 卽爲差出, 何如? 傳曰, 允。
○ 又以弘文館言啓曰, 副修撰李澤, 昨日違牌之後, 旣有只推之命, 更爲牌招察任, 何如? 傳曰, 允。
○ 禮曹判書金鎭圭疏曰, 多缺旣就列四五字缺, 而有難參涉於其事者, 蓋此與試官歷抵, 試門開閉, 條款自別而然, 亦係科獄中一事, 則以臣之曾按科獄, 而積困人言, 何可諉以此非秋曹所按, 而冒當覆奏哉? 況臣細閱其案, 金吾前後究覈眞伋者, 過限後乘暗呈券, 與擧火書券, 而眞伋所供, 乃引儒臣燈燭旣張, 乘暗投呈云云。語謂爲疾怨之家, 乘時所媒孽, 其所謂儒臣, 卽李健命也。惟此所究覈者, 實肇於, 成於李宜顯, 而中間健命, 亦嘗筵奏與疏論, 故不以其爲問目之外, 而攙引爲言如此。且金吾所讞, 雖以乘暗用奸之無可覈, 請令稟處者, 過限一款, 而欲前後所覆者, 限後乘暗, 固是一串事, 則今於覆奏之際, 終難只擧過限, 而不及乘暗, 況儒臣筵奏, 亦有限後之語, 其何可强分而二之哉? 夫趙銘, 旣自服其外製事之, 果言于健命, 則臣之按治一事, 可謂無嫌, 而人乃藉口姻戚, 欲株連於臣。今眞伋之斥健命者, 非復事之比矣, 而臣若當其覆奏, 有所論斷, 則彼所藉口, 必有加於前。臣雖不肖, 固不爲避事圖便之計, 而然顚沛之餘, 不自懲創, 致令査事, 緣臣又壞, 則是將添其罪戾, 臣故不得不爲此仰慁。伏乞聖明, 俯垂諒察, 亟遞臣職, 移授無嫌之人, 使遄擧其覆奏, 竝幸公私, 不勝大願。疏批見上
○ 幼學文獻緯等疏曰, 伏以, 尊賢建祠, 士林衛道之至意, 揭虔宣額, 國家尙德之盛典。是以尊之斯有祠, 祠之斯有額, 下必申其懇, 上輒准其請者, 實次第當行之事也。惟我國家, 崇儒重道, 褒德尙賢, 聲敎所曁, 文四行缺然, 此固出於高山景仰之誠, 同得於秉彝好德之天, 而亦莫非國家風厲振作之效, 有以致之也。苟有可尊之賢而不尊, 祠可請之額而不請而賁之, 則不但爲多士之羞, 其爲有慊於聖朝倡導之化者, 豈淺淺哉? 此臣等所以敢陳。故直提學崔德之及其孫忠成, 故領議政臣金壽恒及其子判書臣昌協, 立祠尊祀之大略, 以祈宣賜恩額之典者也。夫四臣事績本末, 固非如臣等晩出蒙士, 所可揄揚其萬一, 而略敍鄕邦之所傳誦, 平昔之所覩記, 以備裁察, 伏願殿下, 少垂省納焉。蓋聞崔德之, 當我世宗時, 歷踐翰苑三司, 而後以南原府使, 退居本邑, 取孟子在心養性之訓, 以名其所居之書樓, 留心正學, 杜門不出。及文宗卽位, 召拜直提學, 奬以純實, 且將貿用, 而上書乞骸, 長往不返。噫, 發軔榮途, 卿相在前, 而芥視富貴, 賁趾丘園, 其高風淸節, 足以立懦廉頑, 而玩書樓三字之扁, 可知其存養之工, 觀聖祖一言之褒, 可得其純實之資, 則其所立之高, 所存之正, 實有遠過於人, 而足爲後來之師範也。抑臣等於此(臣等於此), 又有所感焉。德之之退歸, 在於文廟, 一時名賢, 送行惜去, 見於篇什者甚多, 而六臣之詩若文, 竝在其中, 稱慕企羡之意, 溢於言外, 則德之之於六臣, 可謂合志同方, 而其後國家多故, 六臣者終不免焉, 然則德之之退, 有若見幾知微者然, 此豈常人所可及者, 而至今聞風者, 尙且咨嗟想像, 有所興起, 則其樹立之卓, 有補於世敎, 亦豈下於當日自靖之諸臣哉? 此尤聖朝之所宜亟加褒闡, 不可少緩者也。至如其孫忠成, 受學於四行缺着工向裹四字缺書, 循環誦讀, 微辭奧旨數字缺融解, 而尤用力於朱子全書, 體驗躬行, 以爲一生受用之資。雖以微臣等之蒙陋, 未能窺測其所造之至於何極, 而以其見於外者言之, 平居儼然, 終日矜莊, 而接人應物, 渾是一團和氣, 聽其辭氣, 覿其德容, 莫不心醉而起敬。以故士林歸仰, 望若山斗, 此固遠邇之所同然, 而薰腴所被, 在臣等爲尤深且切, 使窮鄕僻邑之人, 得知學問之根基, 爲人之規範者, 實壽恒之賜也。若乃昌協, 早襲庭訓, 躬服儒行, 亦嘗隨壽恒, 往來于玆邑, 臣等亦嘗得其爲人, 而景服之有素矣。蓋其仕於朝也, 經筵啓沃, 發揮心學, 章奏勤懇, 講明治體者, 莫非學問中流出, 而及其屛處之後, 尤以斯道爲己任, 囂囂畎畝, 矻矻墳典, 潛心於格致誠正之學, 着力於操存涵養之功。刻厲奮發, 眞知力踐, 參訂論辨, 提示幽眇之旨, 造詣成就, 幾臻高明之域。雖其苦心靡改, 確節難拔, 終未得羽儀朝端, 翊贊儒化, 使一世之人, 咸被其澤, 而其有補於世敎, 作範於後學, 則雖謂之儒門之大宗師, 不爲過矣。是以一邑多士, 興敬於想像傾慕之餘, 感發於耳目濡染之地, 協力建祠, 以祀德之於前, 而且以配焉。齊聲倡義, 竝享壽恒於後, 而又以昌協配焉。以伸一方景仰崇奉之意, 而第以遐遠樸愚, 尙未能請額于朝, 使前賢妥靈之所, 不得列於邦家之祀典, 而聖朝右文之化, 不得宣於海嶠之下邑, 此實臣等之罪也。玆敢重繭於百舍之外, 齊籲於九重之下。伏乞聖明, 數字缺察四臣者之德邃學, 淸芬遺韻, 合爲士林以下缺。答曰, 省疏具悉。疏辭, 令該曹稟處。
○ 午時, 上御興政堂, 晝講。入侍諸臣見上 諸臣以次進伏。上讀禮記月令上篇, 自是月也天氣下降大文, 至天子居靑陽太廟大文後, 侍讀官洪禹瑞繼讀, 自是月也安萌芽大文, 至行夏令大文。上讀安萌芽大文, 止行夏令, 禹瑞因文義陳達曰, 二月爲四陽, 所謂安萌芽養幼少, 皆所以助發生氣也。宋哲宗, 戱折柳枝, 程子諫止, 亦欲以順時令也。草木萌芽, 猶當深護, 況幼少, 可不養乎? 諸孤可不存乎? 幼幼及人幼, 孤獨相養, 何時不爲, 而春時則尤宜加意, 此月令意也。德英曰, 四行缺寒暑輒有恤囚之命, 欽恤之仁, 至矣。前頭又當隆寒, 常以此留意, 則幸甚。上曰, 當體念焉。喬岳曰, 同律度, 勻衡石角斗甬, 正權槪, 此平其所當平之物也。王者之於春月晝夜平均之時, 平其器皿者, 乃所以體天道也。雖尋常器皿之物, 無不均平。況於行政出治之際, 豈不思所以均平乎? 一事一物之接, 一動一言之發, 或有一毫偏頗, 則便是失平也。是以洪範曰, 無偏無陂, 遵王之義。又曰, 王道平平, 無反無側。聖上若因此另加體念, 則可以爲益於建極之道矣。上曰, 儒臣推演文義, 所達好矣。予當體念焉。禹瑞曰, 無肆者, 肆陳尸也。周禮曰, 肆之三日, 春月不行刑戮, 而如大逆不孝, 亦當行戮, 埋之而勿肆也。又曰, 先雷三日奮木鐸, 令兆民, 使之戒容止者, 聖人於迅雷風烈[烈風], 必變玉藻云。迅雷甚雨, 雖夜必興, 衣服冠而坐, 聖人之於警威如此, 而小民愚迷, 褻瀆天威, 故以此戒之, 皆所以警天之意也。此時晝夜平均, 故可於此時, 均平度量衡石, 皆所以順時也。所謂歲二月東巡, 同律度量衡, 亦此意也。又曰, 獻羔開氷, 卽所謂四之日其蚤, 獻羔祭韭, 月令與·, 相表裏矣。上曰, 然。禹瑞曰, 上丁, 先庚三日, 後甲三日, 卽蠱之先甲後甲, 巽之先庚後庚也。古人祭祀, 必以丁日, 義以丁爲丁訓之意也。
鎭圭曰, ·順陵陵官所報內, 近有虎患, 村民家牛馬狗彘, 多被嚂殺, 陵卒不得任意巡山云。此兩陵, 以多樹木之故, 自前數有虎患, 每令各軍門, 發遣砲手捉虎矣。今亦依前分付軍門, 何如? 上曰, 依爲之。
德英曰, 判義禁閔鎭厚, 以按治權卨, 引嫌辭免, 連不開坐, 引嫌當否, 臣不敢知, 而觀其疏語, 不無難便之端。且科獄査事, 漸至遷就, 自朝家宜有處分, 使之趁速開坐, 故仰達。上曰, 官備員擧行, 可也。諸臣遂退出。燼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