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화석정 시

화석정(花石亭) 8세에 짓다 (율곡 이이)

아베베1 2011. 3. 16. 14:34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화석정(花石亭) 8세에 짓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 林亭秋已晩
시인의 생각 끝없이 일어나네 / 騒客意無窮
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遠水連天碧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 받아 붉구나 / 霜楓向日紅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 내고 / 山吐孤輪月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었네 / 江含萬里風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 塞鴻何處去
저녁 구름 속으로 소리 사라지네 / 聲斷暮雲中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풍악산(楓嶽山)에서 작은 암자에 있는 노승(贈小庵老僧)에게 주다 병서(幷序)

내가 풍악산에 구경 갔을 때에, 하루는 혼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몇 리쯤 가니 작은 암자 하나가 나왔는데, 늙은 중이 가사(袈裟)를 입고 반듯이 앉아서 나를 보고 일어나지도 않고 또한 말 한마디 없었다. 암자 안을 두루 살펴보니, 다른 물건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부엌에는 밥을 짓지 않은 지 여러 날이 되어 보였다. 내가 묻기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하니, 중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또 묻기를, “무얼 먹고 굶주림을 면하오?” 하니, 중이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것이 내 양식이오.” 하였다. 내가 그의 말솜씨를 시험하려고 묻기를, “공자(孔子)와 석가(釋迦)는 누가 성인(聖人)이오.” 하니, 중이 말하기를, “선비는 늙은 중을 속이지 마시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부도(浮屠)는 오랑캐의 교(敎)이니 중국에서는 시행할 수 없소이다.” 하니, 중이 말하기를, “순(舜)은 동이(東夷) 사람이고,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이니, 이들도 오랑캐란 말이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불가(佛家)의 묘(妙)한 곳이 우리 유가(儒家)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하필이면 유가를 버리고 불가를 찾아야겠소.” 하니, 중이 말하기를, “유가에도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소.” 하자, 내가 말하기를, “맹자가 성선(性善)을 얘기할 때에 말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들어 말하였는데, 이것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우리 유가에서 본 것이 실리(實理)를 얻었을 뿐이오.” 하니, 중은 긍정하지 않고 한참 있다 말하기를,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이오?” 하자, 내가 말하기를, “이것도 앞에서 말한 경우라오.” 하니, 중이 웃었다. 내가 이내 말하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색이오, 공이오?” 하니, 중이 말하기를,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오. 이는 진여(眞如)의 본체(本體)이니, 어찌 이러한 시(詩)를 가지고 비교할 수 있겠소.” 하자,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미 말이 있으면, 곧 경계(境界)가 되는 것인데, 어찌 본체라 하겠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유가의 묘(妙)한 곳은 말로써 전할 수 없는데, 부처의 도(道)는 문자(文字)밖에 있지 않은 것이 되오.” 하니, 중이 깜짝 놀라서 나의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당신은 시속 선비가 아니오. 나를 위하여 시(詩)를 지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글귀의 뜻을 해석해 주시오.” 하였다. 내가 곧 절구(絶句) 한 수를 써서 주니, 중이 보고 난 뒤에 소매 속에 집어 넣고는 벽을 향하여 돌아앉았다. 나도 그 골짜기에서 나왔는데, 얼떨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뒤 사흘 만에 다시 가 보니 작은 암자는 그대로 있는데 중은 이미 떠나 버렸다.
물고기 뛰고 솔개 날아 아래 위가 한가진데 / 魚躍鳶飛上下同
저것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로세 / 這般非色亦非空
심상히 한 번 웃고 신세를 돌아보니 / 等閒一笑看身世
지는 해 우거진 숲 속에 홀로 서 있네 / 獨立斜陽萬木中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산인(山人) 보응(普應)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풍암(豐巖) 이광문(李廣文) 지원(至元) 의 집에 이르러 초당(草堂)에서 묵으면서 을묘년(1555, 명종10)

도를 배우니 곧 집착이 없구나 / 學道卽無著
인연을 따라 어디든지 유람하네 / 隨緣到處遊
잠깐 청학동을 떠나 / 暫辭靑鶴洞
백구주에 와서 구경하노라 / 來玩白鷗洲
신세는 구름 천 리요 / 身世雲千里
건곤은 바다 한 귀퉁이로세 / 乾坤海一頭
초당에서 잘 자고 가는데 / 草堂聊寄宿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구나 / 梅月是風流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성산(星山)에서 임영(臨瀛)으로 향하며

나그네 길에 봄도 절반 지나려 하는데 / 客路春將半
역관(驛館)에는 오늘 해도 지려 하네 / 郵亭日欲斜
가는 당나귀 먹일 곳이 어디뇨 / 征驢何處秣
연무(煙霧) 저편에 인가가 있네 / 煙外有人家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청송(聽松) 선생을 곡하다 갑자년(1564, 명종19)


산악의 정기 한쪽으로 몰려 석인의 풍채 훤칠하시어 / 嶽精偏毓碩人頎
앉아서 유림들이 우의를 쳐다보게 하였도다 / 坐使儒林仰羽儀
구름 날개는 북극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 雲翼未瞻摶北極
서리 속 국화 동쪽 울타리에서 늙어 간 것이 애석하구나 / 霜英還惜老東籬
맑고 온화한 바람과 달은 음성과 그림자에서 흘러나오는 듯하고 / 淸和風月流聲影
아래 위 시내와 산은 수양하기를 도와주었네 / 上下溪山入燕貽
장부가 평생에 있는 눈물을 여기서 다 뿌렸으니 / 滴盡平生壯夫涙
이런 분을 위하여 통곡하지 않고 누구를 위하여 통곡할거나 / 非斯爲慟爲伊誰


[주D-001]우의 : 《주역(周易)》 〈점괘(漸卦) 상구(上九)〉에 “기러기가 하늘 높이 날아가나니, 그 터럭을 의식에 써도 좋으리라.[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에서 나온 말로, 지위가 높고 재덕이 있어 남의 존중을 받고 모범이 되는 것을 비유한다.
[주D-002]구름 …… 못하였고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이름은 곤(鯤)이다. 변화해서 새가 되었는데 이름은 붕(鵬)이다. 붕새의 등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으며, 날면 날개가 하늘을 덮는 구름과 같다.”에서 나온 말로, 원대한 포부를 펴지 못한 것을 비유한다.
[주D-003]서리 …… 애석하구나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에서 나온 말로, 조정에 등용되지 못한 것을 비유한다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연경(燕京) 도중에서 사제(舍弟)에게 부치다


가는 길 삼천사백 리요 / 去路三千四百里
돌아오는 길도 삼천사백 리라 / 歸路三千四百里
왕복 육천팔백 리에 / 行行六千八百里
달도 여섯 번 찼다 이지러지리라 / 月魄看看六回死
우리 아우 시골집은 서울서 또 천 리 / 我弟邨莊更千里
더구나 못 본 지가 나 떠나기 훨씬 전이었네 / 況是別日前乎此
고국에서 사람은 왔는데 편지를 보지 못하니 / 故國人來不見書
머리를 긁으며 요해 가에서 구름만 바라보누나 / 搔首看雲遼海涘
외로운 성 목탁 소리에 잠 이루지 못하고 / 孤城木鐸不成眠
오랑캐의 사냥불에 들판이 환하네 / 單于獵火連郊紫
한양의 눈보라 속에 그대가 왔느냐 / 漢陽風雪子來否
마주 앉아 이런 얘기한 것이 참으로 꿈이었네 / 對牀話此眞夢耳
다만 원하는 것은 서로 만나는 날 새로 안 것이 있어서 / 只願相逢有新得
시나 학문 논하는 데 남이 공경하는 마음 생기게 하기를 / 論詩論學令人起


 

 

 

율곡선생전서 제1권

 시(詩)
노승(老僧)의 시축(詩軸)에 쓰다 중은 늙고 귀가 먹었다.


개미 꿈틀거림과 소 싸우는 것이 / 蟻動與牛鬪
조용하기는 똑같은 소리로다 / 寥寥同一聲
누가 알았으랴 고요한 이 속에도 / 誰知淵默處
땅을 울리는 요란한 파도 소리 있는 줄을 / 殷地海濤轟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호당(湖堂)에서 밤에 앉아 기사년(1569, 선조2)


호당에서 이슥토록 잠 못 자니 / 湖堂久不寐
밤기운이 품에 산산하게 스며드는구나 / 夜氣著人淸
나뭇잎 다 떨어지니 가을 가는 줄 알겠고 / 葉盡知秋老
강물이 훤해지니 달 뜨는 것을 보겠네 / 江明見月生
엉성한 솔그림자 탑에 걸려 흔들리고 / 疎松搖榻影
변방 기러기 모래밭에 내리는 소리로다 / 塞鴈落沙聲
부끄럽구나 속세의 나그네는 / 自愧紅塵客
물가에 와서도 갓끈을 못 씻누나 / 臨流未濯纓


 

[주D-001]물가에 …… 씻누나 :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에서 나온 말이다.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퇴계(退溪) 선생을 곡하다 신미년(1571, 선조4)


좋은 옥 정제한 금처럼 타고난 기질이 순수함이여 / 良玉精金稟氣純
참된 근원은 관민에서 갈려나왔구나 / 眞源分派自關閩
백성들은 위아래로 덕택 입기를 바랐는데 / 民希上下同流澤
종적은 산림에서 독선하는 몸이 되었네 / 迹作山林獨善身
호랑이도 가고 용도 없어져 사람의 일 변했는데 / 虎逝龍亡人事變
물결 돌리고 길 여신 저서가 새롭구나 / 瀾回路闢簡編新
남쪽 하늘 아득히 저승과 이승이 갈렸으니 / 南天渺渺幽明隔
서해 물가에서 눈물이 마르고 창자가 끊어지도다 / 淚盡腸摧西海濱


 

[주D-001]관민 : 관(關)은 관중(關中)에 거주한 장재(張載), 민(閩)은 민중(閩中)에 거주한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물러나기를 청하여 윤허를 받으매 감격스러워 수미음(首尾吟) 절구(絶句) 4수를 지어 ‘감군은(感君恩)’이라 이름하다 계유년(1573, 선조6)


임금의 은혜 물러남을 허락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니 / 君恩許退返鄕園
고목나무 황폐한 물굽이 율곡 마을일세 / 古木荒灣栗谷邨
대그릇 밥과 표주박 물 살아가기에 넉넉하니 / 一味簞瓢生意足
밭 갈고 우물 파는 것이 모두 임금 은혜로세 / 耕田鑿井是君恩

임금의 은혜 물러남을 허락하여 속박을 떠났으니 / 君恩許退謝籠樊
들길 쓸쓸해라 홀로 문을 닫고 있네 / 野逕蕭蕭獨掩門
네 벽에는 도서이고 바깥일 없으니 / 四壁圖書無外事
초당의 갠 햇빛도 임금 은혜로세 / 草堂晴日是君恩

임금의 은혜 물러남을 허락하여 강촌에서 늙게 되니 / 君恩許退老江邨
고요히 앉아 낚싯줄 드리우니 앉은 돌이 따스하구나 / 淸坐垂綸釣石溫
날 저물어 목단 배를 붉은 여뀌꽃 핀 강어귀에 대어 놓으니 / 晚檥蘭舟紅蓼岸
물가의 바람과 달도 임금 은혜로세 / 渚風汀月是君恩

임금 은혜 바다 같은데 갚을 길 없으니 / 君恩如海報無門
뱃속에 가득 찬 시서를 다시 논할 수 없구나 / 滿腹詩書莫更論
따스한 햇볕 향기로운 미나리 바치기 어려우니 / 暖日香芹難獻御
일생 동안 감군은만 읊고 지내리 / 一生惟詠感君恩


 

[주D-001]밭 …… 은혜로세 : 임금의 은혜 덕분에 태평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堯)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나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따스한 …… 어려우니 : 하찮은 선물이나 변변치 못한 계책을 올린다는 뜻으로,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나서 봄날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자기 처에게 말하기를, “해를 등지고 있으면 얼마나 따뜻한지 아무도 모르니, 이 햇볕을 우리 임금에게 바치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라고 하자, 그 마을의 부자(富者)가 그에게 말하기를, “옛사람이 미나리를 아주 좋아한 이가 있어 그 마을의 부자에게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말하자, 그 부자가 미나리를 먹어 본 결과 맛이 독하고 배가 아팠다더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列子 楊朱》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만월대(滿月臺)


말에서 내려 가시덤불 헤치고 / 下馬披荊棘
높은 누대 올라 사면을 바라봐도 공허하구나 / 高臺四望虛
구름이 자욱한 산은 외로운 새 날아가는 밖에 솟아 있고 / 雲山孤鳥外
민물은 옛 도읍지에 그대로 있구나 / 民物故都餘
높은 섬돌은 수풀에서 황폐해가고 / 危砌依林廢
교목(喬木)은 그림자도 성글구나 / 喬松落影疎
석양이 삼각산을 비추니 / 斜陽照三角
저기가 바로 임금 계신 데라 가리켜 보네 / 指點是王居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눈 속에 소를 타고 호원(浩原)을 방문한 다음 작별하면서

올해도 다 저물고 눈이 산에 가득한데 / 歲云暮矣雪滿山
들길은 가늘게 고목나무 사이로 갈렸구나 / 野逕細分喬林閒
소를 타고 어깨 으스대며 어디로 가느냐 / 騎牛聳肩向何之
내 우계만에 있는 미인이 그리워서라네 / 我懷美人牛溪灣
저물녁 사립짝을 두드려 맑은 모습 얼굴을 바라보며 인사하니 / 柴扉晩扣揖淸臞
작은 방에 갈포 걸치고 짚방석을 깔고 있네 / 小室擁褐依蒲團
고요한 긴 밤을 잠 안 자고 앉았으니 / 寥寥永夜坐無寐
벽에 걸린 등불만 깜박거리네 / 半壁靑熒燈影殘
반평생에 이별의 슬픔 많았으니 / 因悲半生別離足
다시금 천산에 험한 길을 생각케 되네 / 更念千山行路難
이야기 끝에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어 / 談餘輾轉曉鷄鳴
눈 들어 보니 온 창문엔 서리 달만 차갑구나 / 擧目滿窓霜月寒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호연정(浩然亭)에서 달을 보며

마음대로 떠도는 소탈한 나그네 / 天放空疎客
강 위의 산에서 노니네 / 逍遙江上山
올라와 보니 석양도 다 저물고 / 登臨夕陽盡
바다 구름 사이에서 달이 나오네 / 月出海雲閒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정사(精舍)의 학도(學徒)에게 부치다

마음은 쟁반의 물 같아 가장 잡기 어려우니 / 心如盤水最難持
도랑이나 구덩이에 빠져들기 눈 깜박할 사이로세 / 墮塹投坑在霎時
그대들에게 부탁하노니 지조를 굳게 지켜서 / 爲報僉賢操守固
번거로운 세상 속에서 우뚝이 변치 말게 / 世紛叢裏卓無移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부벽루(浮碧樓)

평양성 동쪽 둔덕 대동강 어귀 / 箕城東畔浿江頭
그 사이 아스라이 솟은 누각이 있구나 / 中有縹渺之飛樓
푸른 산 바라보니 어찌 그리 이어졌나 / 靑山一望何袞袞
흰 구름 천년 동안 속절없이 흘러가네 / 白雲千載空悠悠
붉은 도포 입은 선자가 이때 방문했는데 / 猩袍仙子此時過
기린 말 탄 천손은 어느 곳으로 갔는가 / 麟馬天孫何處遊
옥퉁소 불어도 단장한 노을 없으니 / 玉簫吹澈彩霞盡
고국 연파 절로 시름지누나 / 古國煙波人自愁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연광정(練光亭)

연광정 높은 누각 강가에 솟았는데 / 練光高閣臨江渚
십 리 펀펀한 물결 거울처럼 열렸구나 / 十里平波寒鏡開
백조는 교목 가지 끝을 맴돌다 사라지고 / 喬木遙看白鳥沒
옛 성 둘레에는 푸른 구름이 돌아드네 / 古城逈抱靑雲回
손 들어 저 멀리 교진을 만나고 싶고 / 擧手遐思揖喬晉
돛 달아 곧장 봉래산을 오르고 싶네 / 掛帆直欲迢登萊
바람 앞에 옷깃 헤치고 술잔 잡으니 / 當風披氅動霞酌
지는 해도 날 위해 머뭇거리네 / 落日爲我猶徘徊

[주D-001]교진(喬晉) : 교(喬)는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인 왕자교(王子喬)를 가리키는데, 그는 뒤에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경회루(慶會樓)에서 황 천사(黃天使)의 시에 차운하다


공중에 높이 솟은 누각에 / 迥入層霄聳四阿
주반 차려 놓고 사신 오기를 기다렸네 / 綠樽留待使星過
발에 떠오르는 아지랑이는 푸른 산을 둘러 있고 / 簾浮嵐氣圍靑嶂
못 가운데 얄랑거리는 달빛은 항아를 희롱하는 듯 / 池蘸蟾光弄素娥
두어 곡조 거문고 소리는 난간 밖에 들려 오고 / 數曲雲和軒外奏
만 그루 솔바람은 비 온 뒤에 많구나 / 萬株松籟雨餘多
밤 깊어 앞 전각에 잔치가 끝나니 / 夜深前殿賓筵罷
은촉 사롱 불에 흩어지는 소리 / 銀燭紗籠散玉珂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고산의 아홉 굽이 계곡 / 高山九曲潭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 世人未曾知
내가 와 터를 닦고 집을 짓고 사니 / 誅茅來卜居
벗들이 모두 모여드네 / 朋友皆會之
무이산을 여기서 상상하고 / 武夷仍想像
소원은 주자를 배우는 것일세 / 所願學朱子

일곡은 어디인가 / 一曲何處是
관암에 해가 비쳤도다 / 冠巖日色照
펀펀한 들판에 안개 걷힌 뒤에 / 平蕪煙斂後
먼 산이 참으로 그림 같구나 / 遠山眞如畫
소나무 사이에 술 항아리 놓고 / 松閒置綠樽
벗 오기를 우두커니 기다리네 / 延佇友人來

이곡은 어디인가 / 二曲何處是
화암에 봄 경치 늦었구나 / 花巖春景晩
푸른 물결에 산꽃을 띄워 / 碧波泛山花
들판 밖으로 흘려 보내노라 / 野外流出去
이 경치 좋은 곳을 사람들이 모르니 / 勝地人不知
알게 하여 찾아오게 한들 어떠리 / 使人知如何

삼곡은 어디인가 / 三曲何處是
취병에 잎이 벌써 퍼졌도다 / 翠屛葉已敷
푸른 나무에 산새가 있어 / 綠樹有山鳥
그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로구나 / 上下其音時
반송에 맑은 바람 불어오니 / 盤松受淸風
여름에 더운 줄 조금도 모를네라 / 頓無夏炎熱

사곡은 어디인가 / 四曲何處是
송애에 해가 넘어가는구나 / 松崖日西沈
못 가운데 바위 그림자가 거꾸로 서니 / 潭心巖影倒
온갖 빛이 모두 잠겼구나 / 色色皆蘸之
숲속의 샘물 깊을수록 더욱 좋으니 / 林泉深更好
그윽한 흥을 스스로 이기기 어려워라 / 幽興自難勝

오곡은 어디인가 / 五曲何處是
은병이 가장 보기 좋구나 / 隱屛最好看
물가에는 정사가 있어 / 水邊精舍在
맑고 깨끗하기가 한량없네 / 瀟灑意無極
그 가운데서 항상 학문을 강론하며 / 箇中常講學
달도 읊어보고 또 바람도 읊조리네 / 詠月且吟風

육곡은 어디인가 / 六曲何處是
조계가 물가에 넓게 차지하였구나 / 釣溪水邊闊
모르겠다 사람과 물고기 중에 / 不知人與魚
그 즐거움 어느 쪽이 더 많을런지 / 其樂孰爲多
황혼에 낚싯대 메고 / 黃昏荷竹竿
무심히 달빛 받으면서 돌아오네 / 聊且帶月歸

칠곡은 어디인가 / 七曲何處是
풍암에 가을빛이 선명하구나 / 楓巖秋色鮮
맑은 서리가 살짝 내리니 / 淸霜薄言打
절벽이 참으로 비단빛이로구나 / 絶壁眞錦繡
찬 바위에 홀로 앉았을 때에 / 寒巖獨坐時
무심히 집 생각까지 잊는구나 / 聊亦且忘家

팔곡은 어디인가 / 八曲何處是
금탄에 달이 밝구나 / 琴灘月正明
옥 거문고와 금 거문고로 / 玉軫與金徽
무심히 두서너 곡조 타는구나 / 聊奏數三曲
옛 곡조 알아들을 사람 없으니 / 古調無知者
혼자서 즐긴들 어떠하리 / 何妨獨自樂

구곡은 어디인가 / 九曲何處是
문산에 한 해가 저무는구나 / 文山歲暮時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이 / 奇巖與怪石
눈 속에 묻혀 버렸구나 / 雪裏埋其形
구경꾼이 제 안 오고 / 遊人自不來
공연히 좋은 경치 없다 하네 / 漫謂無佳景


율곡선생전서 제2권
 시(詩)
도성을 떠나 배를 타고 해주(海州)로 내려가다 계미년(1583, 선조16)


사방 먼 곳에 구름이 모두 짙은데 / 四遠雲俱黑
중천에는 햇볕이 쨍쨍하구나 / 中天日正明
외로운 신하의 한줌 눈물을 / 孤臣一掬淚
한양성 향해 뿌리네 / 灑向漢陽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