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요람(歷代要覽)/정통(正統)

정통(正統) 명 영종(英宗), 세종(世宗) 18년(1436년)

아베베1 2011. 4. 9. 15:02

역대요람(歷代要覽)
정통(正統) 명 영종(英宗), 세종(世宗) 18년(1436년)


원년(元年) 병진. 남지(南智)가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는데, 황제(皇帝)께서 칙명을 내리기를, “왕(王)이 상주(上奏)하여 서적을 요청하므로 지금 《음주자치통감(音註資治通鑑)》을 발송(發送)하고, 나머지는 다 판(板)이 모자라니 완전히 인출(印出)하여 내려주기를 기다리라.”하였다.
2년 전라(全羅)ㆍ경상도(慶尙道)에 처음으로 공법(貢法)을 시행하였다.
3년 배신 홍여방(洪汝方)이 경사로부터 돌아왔는데 황제는 칙명을 내려 칭찬하고 원유관복(遠遊冠服)을 하사하였다.
4년 4맹삭(孟朔)으로 나누어 봉록(俸祿)을 반포하였다.
5년 가려 뽑아 들여보냈다[抄送入去].
7년 처음으로 각 품(品)의 행수법(行守法)을 시행하였다.
8년 처음으로 전답의 품(品)을 고쳐 전답은 5등급으로 나누고, 작황(作況)은 9등급으로 나누는 법을 시행하였다.
○ 왜적(倭賊)이 상국(上國)의 연해지방(沿海地方)을 노략질하고 또 우리 제주(濟州)에 침범하다가 변장(邊將)에게 붙들리고, 나머지 적(賊)은 대마도(對馬島)로 도망해 돌아갔다. 이예(李藝)를 보내 도주(島主)에게 잡아 보내도록 타이르니, 도주는 감히 숨기지 못하고 13명을 잡아 이예에게 넘겨 보내어 드디어 배신 신인손(辛引孫)을 보내 황제(皇帝)에게 바쳤다.
9년 배신 유수강(柳守剛)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는데, 황제는 칙명(勅命)으로 면복(冕服)을 내려 주었다. 신인손이 경사로부터 돌아왔는데 황제는 칙서를 내려 칭찬해 장려하고, 또 채폐와 옷의 겉감과 안집 등을 주었다.
14년 기사. 황제는 친히 북원(北元)을 치다가 적(敵)에게 함몰(陷沒)되었는데, 황태후(皇太后)는 성왕(郕王) 기옥(祁鈺)에게 명(命)하여 임시로 정사(政事)를 맡게 하였다가 곧 진짜 제위(帝位)에 오르게 하니 이 분이 공인강정 경황제(恭仁康定景皇帝)이다. 태후(太后)는 영종(英宗)의 장자 견유(見濡)를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주D-001]행수법(行守法) : 계자(階資)보다 실직(實職)이 낮은 것을 행(行)이라 하고, 계자보다 실직이 높은 것을 수(守)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