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리 서원 전고 /영남 오륜

영남 오륜(嶺南五倫

아베베1 2011. 4. 12. 09:49


성호사설 제13권
 인사문(人事門)
영남 오륜(嶺南五倫)



지금 풍속의 무너짐이 극도에 달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인데, 경기의 풍습은 겨우 남아 있는 것이 세 가지이고, 두 가지는 없어졌으니, 곧 장유(長幼)와 붕우(朋友)가 상실되고 말았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부자는 천속(天屬)이어서 떼려야 뗄 수 없고, 군신은 녹과 벼슬로 얽어매였고, 부부간은 정으로 좋아하니 배반할 수 없지만, 어린 아이들이 과거에 오르면 나라 사람이 흠앙하여 장로(長老)도 무릎을 꿇게 되었고, 붕우도 세리(勢利)로 잠깐씩 기회를 엿보아 아침에 옷깃을 잡았다가는 저물게는 가 버리니,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오직 영남은 군자의 남은 교화를 지켜, 어른을 섬기는 예절의 절하고 꿇고 나오고 물러가는 것을 감히 어기지 못하여, 친척이면 친척이 되는 그 의리를 잃지 않고 친구이면 친구가 되는 의리를 잃지 않아서, 대대로 전하는 예전 정의로 기쁘게 성의를 보이며, 다른 좌석에서 만나면 비록 일찍이 얼굴을 알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절하고 읍(揖)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고, 다른 고을과 마을에 손으로 지날 때에 장로(長老)가 있는데도 찾아뵙지 않으면 비방을 받으니, 이것이 신라의 남은 풍속이다.
지금에 있어 온 나라 가운데서 오륜이 구비한 시골을 찾자면 오직 이 한 지방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산천 풍기로 증험할 수 있다. 대저 영남의 큰 물은 낙동강인데,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일제히 모여들어 물 한 점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이 없다. 그 물이 이와 같으면 그 산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뭉치어 부름이 있으면 반드시 화답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하는 이치이다. 게다가 유현(儒賢)이 대대로 일어나 스스로 성교(聲敎)를 이루어서 고치고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의 즈음에도 오직 신라만이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여 1천 년을 전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심이 환산(渙散)하지 않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이것뿐 아니라 선비를 논할 때에도 관작과 지위로 하지 않고, 만일 한 고을의 물망(物望)이 아니면 비록 자신이 청자(靑紫)를 취하였더라도 수에 치지 않는다. 선현(先賢)을 대단히 좋아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퇴계(退溪 이황(李滉))ㆍ남명(南冥 조식(曹植))ㆍ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ㆍ한강(寒岡 정구(鄭逑))ㆍ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ㆍ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여러 선생의 문에 출입한 자는 그 후세 자손을 모두 우족(右族)으로 칭하고, 부조(父祖)의 관작이 없는 것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비가 행검을 힘써서 입사(入仕)한 뒤에는 백의(白衣)로 영(嶺)을 넘는 것을 욕되게 여기고, 시속 좋아하는 것에 영합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어, 우리나라에서 문벌을 숭상하는 풍습이 오직 이 한 지방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토풍(土風)으로 말하면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검소하고 사치하지 않으며, 부녀는 반드시 밤에 길쌈하고 선비는 모두 짚신을 신으며, 혼인 상사에 집 형세의 있고 없는 것에 따르고, 붕우와 친척이 도와주어 전복하고 유리하는 환을 면하며, 백성은 모두 토착하여 농사를 짓고 교활한 도적이 일어나지 않으며, 국가에 일이 있으면 솔선으로 난에 임하여 죽고 사는 것을 따지지 않으며, 만일 글을 읽고 도리를 말하여 그 행검과 재능이 밖으로 나타나는 자가 있으면 또한 옷깃을 여미고 스승으로 높이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후한 풍속, 즐거운 땅, 인의(仁義)의 시골이다. 이것을 버리고 장차 어디에 의지하여 돌아갈 것인가? 무릇 조정 귀족으로써 탐욕하는 사람들은 이(利)로 나왔다가 이가 다하면 배반하기 때문에 신하는 모름지기 물러가고 겸양하는 사이에서 구하여야 한다. 공자가, “능히 예로 사양하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하였으니, 오직 영남만이 이런 것이 있다 하겠다.


 

[주C-001]영남 오륜(嶺南五倫) : 황 익성의 이름은 희(喜), 호는 방촌(厖村), 익성은 그 시호(諡號). 세종(世宗) 때의 명상(名相).《類選》 卷9下 經史篇8 論史門5.
[주D-001]청자(靑紫) : 귀관(貴官)을 말함. 한(漢) 나라 제도에 공후(公侯)는 자색 인끈[印綬], 구경(九卿)은 청색 인끈을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