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요람(歷代要覽)/천순(天順)

천순(天順) 명 영종(英宗), 세조(世祖) 3년(1457년)

아베베1 2011. 4. 13. 13:26

역대요람(歷代要覽)
천순(天順) 명 영종(英宗), 세조(世祖) 3년(1457년)


2년 배신(陪臣) 한명회(韓明澮)가 경사(京師 북경)에서 돌아왔는데, 황제는 세자(世子)의 책봉을 허락하였다.
3년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하였다. 요동(遼東)의 첩자(諜者)가 중국에 고(告)해 바치기를, “건주(建州)의 수령(首領) 동산(董山)이 몰래 조선(朝鮮)과 결탁하였다.”하니, 황제는 순무도어사(巡撫都御史) 정신(程信)에게 명하여 조사하도록 하였는데, 정신은 자재주(自在州)의 지주(知州) 종성(終成)을 보내었다. 종성은 처음에 다른 일로 변경(邊境)에 갔다가 우리나라가 동산에게 준 정헌대부 중추원사(正憲大夫中樞院使) 제신(制信)을 손에 넣었다. 황제는 형과급사중(刑科給事中) 진가유(陳嘉猷)를 보내 칙서(勅書)를 내려 문책하고는 제신(制信)을 내보였다. 또 금의위(錦衣衛)의 역자(譯者)를 건주(建州)에 보내 힐책하였다.
○ 배신(陪臣) 조석문(曹錫門)이 칙유(勅諭)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에 왕의 상주(上奏)를 보고, 동산의 사정을 자세히 알았노라. 선덕(宣德)과 정통(正統) 연간(年間)에 내린 칙유는 조선과 건주 사이에 원한을 풀고 병란을 멎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지, 그들과 서로 왕래하거나 관직을 제수하는 일은 일찍이 허락한 적이 없다. 또 저들은 이미 조정의 관직을 받고 있는데도 왕이 또 벼슬을 주었으니, 이는 조정과 맞겨루자는 것이로다. 다만 이미 지난 일이니 짐이 깊이 허물하지는 않겠다. 앞으로는 법도를 삼가 지켜서 사사로이 오가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하였다.
4년 10월부터 호대전(戶大典)을 비로소 시행하였다.
○ 황제가 급사중(給事中) 장영(張寧) 등을 보내어 칙령(勅令)을 내려 낭복아합(浪卜兒哈)에 대하여 사실대로 상주하라 하였다.
○ 배신(陪臣) 김예의(金禮義)가 경사(京師)에서 돌아왔는데, 가지고 온 칙서(勅書)에, “이번에 왕의 상주를 보니 나라가 바다 밖에 위치하여 학문이 정교하지 못하고, 게다가 이문(吏文)과 중국의 음(音)이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역대(歷代)의 옛 제도를 참조하여 자제(子弟)들을 보내어 입학시켰으면 하는 취지를 자세히 알았노라. 또 전대(前代)의 제도에 혹 8재자(才子)에게 명하여 가서 가르치게 한 일이라든가, 혹은 자제들을 보내어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여 왕빈(王彬) 등이 과거에 합격돼 가지고 돌아갔고, 한방(韓昉)의 무리가 일로 인하여 잠시 체류하였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 당시 그곳의 학문이 왕성하지 못했고, 또 중국에 과장(誇張)을 좋아하는 군주들이 아름다운 겉치레로 한 것뿐이다. 우리 명 나라 개국 이래로는 이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고, 또 지금 왕의 나라에서는 시서(詩書)와 예의(禮義)의 가르침을 익힌 지 오래되어 표전장주(表箋章奏)와 행이(行移 공문을 보내는 것)의 이문(吏文)에 있어서도 모두 법식에 맞아, 비록 완전히 중국의 음(音)에 통하지 못해도 통사(通事 통역관)가 번역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하필 꼭 자제들이 와서 배워야만 오류가 없겠다는 것인가? 짐은 조종(祖宗)의 전례에 따라 겉치레의 과장을 하려 하지 않으니, 왕도 옛 규례를 삼가 지켜 나라 안의 자제들을 지도하고 장려하여 경서(經書)에 뜻을 돈독히 하면 저절로 스승을 얻고도 남음이 있어 인재를 성취하기 어렵다고 걱정하지 않을 것이며, 대국을 섬기는 데 있어서도 장애 있음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 배신(陪臣) 김순(金淳)이 경사에서 돌아왔는데, 내린 칙서에 이르기를, “이번에 왕의 상주를 보고, 낭복아합(浪卜兒哈)을 죽이게 된 실정에 있어서 그가 통모(通謀)하여 난(亂)을 선동하기 때문에 법에 의해 처단하였다는 등의 사실을 자세히 알았노라. 왕이 법에 의해 죄를 다스림은 다만 왕의 나라에서나 시행할 것이요, 이웃 나라에 시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왕의 국법으로 이웃 나라 사람을 벌하였으니 변방에 일이 나지 않게 하려 한들 되겠는가? 장래의 환난은 왕이 스스로 알아서 하라.”하였다.
○ 신숙주(申叔舟)를 보내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野人)들을 정벌하였다.
5년 예부(禮部)에 자문(咨文)을 보내어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반포해 달라고 청했는데, 예부에서 황제에게 아뢰는 제사에, “조선에서 해마다 올리는 표전장주(表箋章奏)는 별로 음운(音韻)에 착오가 없었는데 이번에 홍무정운을 보내 달라 청하였습니다. 인판(印板)은 본시 남원(南原) 국자감(國子監)에 수장(收藏)되었던 것으로 지금 찍어 낸 것이 없으므로 보내줄 수가 없습니다.”하니, 성지(聖旨)를 받드니, “옳다.”하였다.
○ 형대전(刑大典)을 서울에서는 7월 15일부터, 경기 지방에서는 23일부터, 충청도와 황해도에서는 18일부터, 전라도ㆍ경상도ㆍ영안도(永安道 함경도)ㆍ평안도에서는 8월 23일부터 비로소 시행하였다.
6년 전답을 측량했다.
8년 영종(英宗)이 붕(崩)하고 헌종 계천응도 성명인경 숭문숙무 굉덕성효 순황제(憲宗繼天凝道誠明仁敬崇文肅武宏德聖孝純皇帝) 휘(諱) 견유(見濡)가 즉위하여 태복시승(太僕寺丞) 김식(金湜)과 중서사인(中書舍人) 장성(張珹)을 보내어 등극조서(登極詔書)를 반포하고, 문금(文錦)을 하사하였다.


 

[주D-001]제신(制信) : 우리나라에서 건주(建州)의 수령(首領)에게 중추원사(中樞院使)의 벼슬을 내려 준 임명장이다.
[주D-002]호대전(戶大典) :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이ㆍ호ㆍ예ㆍ병ㆍ형ㆍ공의 육전으로 되었는데, 호대전(戶大典)은 호에 관한 법전이다. 호는 호조에 속하는 호적(戶籍)ㆍ재정(財政) 등의 사항들이다.
[주D-003]스승을 얻고도 남음이 있어 : 《맹자》에서, 조교(曹交)가 맹자(孟子)를 찾아 가서 제자가 되겠다고 청하니, 맹자는 사절하며, “돌아가서 스스로 마음에 구하면 스승을 얻고도 남음이 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