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忠義 고장 宜寧/미수 허목의 시 30수

의춘(宜春) 마을에서 벼슬을 따라 서울로 돌아가는 막내아우 서(舒)를 작별

아베베1 2011. 4. 21. 15:38


기언 별집 제1권
 시(詩)
의춘(宜春) 마을에서 벼슬을 따라 서울로 돌아가는 막내아우 서(舒)를 작별하면서 삼십운(三十韻)을 주다



이 땅에 올 줄 어이 기약하였으며 / 此地豈嘗期
여기서 이별할 줄 어이 알았으랴 / 此別豈嘗知
찌는 듯한 풍토 좋지 않은 곳 / 炎蒸瘴癘地
떠돌다가 우연히 깃들어 살았네 / 漂淪偶棲依
관가에서 말곡식을 꾸어주기에 / 官家賑斗粟
여러 식구 그 덕으로 굶지 않았네 / 百口仰不飢
타향에서 머문 지 이미 오래니 / 旅泊旣已久
방언 들음도 마땅하도다 / 方音聽亦宜
인정은 몹시 고향을 그리나니 / 人情苦懷土
북녘 땅 바라보며 눈물 뿌리네 / 北望攬涕洟
전쟁이 휩쓴 자취 쓸쓸하기만 한데 / 蕭條兵火盡
열에 하나 살아남은 자 칼날의 상처로다 / 十一遺瘡痍
감개하여 부질없이 한탄만 하니 / 感慨徒歎恨
시운이 마침내 이러하다네 / 時運竟如斯
애당초 난리로 달아날 적에 / 念昔奔竄初
저마다 허둥지둥 헤어졌었지 / 狼狽各分離
눈 쌓인 음산의 길과 / 積雪陰山道
얼음 덮인 발해의 해변가로 / 玄氷渤海湄
떠도는 나그네가 일남에 이르렀으니 / 轉客到日南
세월은 흘러 철도 이미 바뀌었네 / 時久已序移
눈 쌓인 골짜기에선 화롯불 꼈고 / 雪峽擁篝火
열대 지역에선 불볕을 두려워했네 / 朱涯畏炎曦
고된 길 천만리에 / 辛勤千萬里
수많은 근심 걱정 몹시 괴로웠네 / 百憂惱相思
오늘이 있을 줄을 생각이나 하였으랴 / 豈料今日在
당황하여 마음이 천치된 듯하네 / 惝怳心如癡
구사일생 어려움을 겪어왔기에 / 九死經艱難
서로 보니 눈물 먼저 흐르는구려 / 相對淚已滋
떨어져 그리다가 다시 만나니 / 離情逢會合
기쁨이 복받쳐 되레 서러워라 / 喜極還成噫
이웃 사람 날마다 술 들고 와서 / 隣人日携酒
마냥 취하여 기쁨에 휩싸였네 / 酣醉動歡嬉
술에 취해 정신 잃고 누워 있으니 / 沉冥臥不省
눈앞의 세상만사 도리어 잊었구려 / 萬事復還遺
수십 일 이렇게 지내다 보면 / 連延數十日
천애 먼 곳에 있는 처지도 잊으리라 / 忘却在天涯
인생이란 모이면 흩어지는 법 / 人生一聚散
일정한 기약 없음 이에 알겠네 / 迺知無常期
관사의 너무도 바빠 / 苦道官事忙
돌아가는 채찍을 늦출 수 없다 하네 / 歸鞭不可遲
반가이 만난 것이 얼마나 되나 / 驩逢能詎幾
찬 달 쉬이 기울매 마음 아프오 / 盈月感易虧
곤궁한 때에 다시 이별하니 / 窮途復此別
아득하여 잡은 손 놓지 못하네 / 黯然惜解携
나의 타관살이 안타깝게 여겨 주니 / 憐我覊旅情
이별의 슬픔을 더욱 자아내누나 / 牽添別離悲
쓰리고 슬픈 마음 마냥 고달파 / 惻惻抱辛酸
깊은 밤 눈물이 마구 흐르는구려 / 中夜泣漣洏
정에 끌려 이야기 다시 이어 가니 / 情牽語更連
듣는 사람 지루함을 용서하시라 / 聽者恕支離
젊은 나이에 높은 절개 사모하여서 / 少年慕高節
보통 사람 따르기를 부끄러워했네 / 恥與衆人隨
평생에 주공 공자의 말씀 외면서 / 平生誦周孔
본마음 잊지 못하여 스스로 기이하다 하노라 / 耿耿空自奇
탄식하며 길게 읊조리나니 / 感歎長吟哦
흰머리에 계획이 이미 어긋났구나 / 白首計已違
끝났도다 다시는 말하지 말라 / 已矣勿復道
슬퍼서 탄식한들 무엇하리오 / 咄咄且何爲
너를 보내며 한마디 하노니 / 贈言送爾行
선비란 몸가짐이 귀한 것일세 / 士固貴自持
행신을 한 번 그르친다면 / 行身一失誤
뉘우치고 한탄한들 소용없으리 / 悔恨莫可追
부지런히 노력하여 게을리 말고 / 努力勿懈怠
일마다 경계한 말 생각하게나 / 隨事憶箴規

 

기언 별집 제1권
 시(詩)
의춘(宜春)에 우거(寓居)하면서 자범(子範)에게 부치다



산골에 날마다 비가 많으니 / 山峽日多雨
살랑살랑 바람 불어 앙상한 나무 가을이 왔네 / 颯颯寒木秋
깊은 산골 우거함이 뜻에 맞으니 / 寓居適深僻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 그윽하여라 / 崒嵂亂峯幽
낮은 곳 웅크린 집 쑥대밭에 가려 있고 / 濕蟄掩蓬蒿
답답한 마음은 온갖 근심 안고 있네 / 鬱悒抱百憂
반갑게도 수의 어사 만나고 보니 / 忻逢繡衣史
엊그제 한마을 놀던 벗이라 / 昔日同里遊
사막 밖에 여러 해를 지내왔으니 / 經年沙漠外
반가운 사람 대할 줄을 어이 알았으랴 / 豈料對靑眸
날 보자 춥고 굶주림 위로해 주니 / 相對慰寒飢
정과 뜻 아울러 알뜰하구려 / 情意兩綢繆
사나운 짐승 날마다 핍박하는데 / 猛獸日逼人
슬프다 뉘라서 물리쳐 주랴 / 咄咄誰能驅
바다제비 가을 하늘 하직하고 떠나니 / 海燕辭天霜
총총히 한 해도 다해 가누나 / 蒼茫歲欲遒
두어라 다시금 말하지 말고 / 已矣勿復道
술 마셔 애써 시름이나 달래리 / 得酒強寬愁
서생이 늙어 집 안이 텅 비었으니 / 書生老嵺廓
크게 탄식하고 길게 노래하리 / 大吒仍長謳


 

백사집 제1권
 시(詩)
오랫동안 의춘(宜春)에 머무르면서 병사(兵使)에게 터진 옷 꿰매주기를 요구했더니, 병사가 나 혼자 자는 것을 민망히 여겨 소녀를 뽑아 보내고서, 일부러 바느질을 더디 하여 해가 저문 것을 핑계로 내 처소에 자게 해서, 내가 그녀와 관계를 갖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늙었으니, 머리 깎은 중에게 빗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하여 절구 한 수를 지어서 거절하는 바이다. 을미년에 책사(册使)의 접반사(接伴使)로 남쪽에 머물렀었다.



장군은 이교서를 익숙히 읽었었기에 / 將軍熟讀圯橋書
나그네 회포 헤아리길 적정 헤아리듯 하여 / 料得客情如料敵
짐짓 섬섬옥수에게 옷을 게을리 깁게 해서 / 故敎纖手懶縫衣
철석간장 이 선생을 시험하려 하였네그려 / 欲試先生腸似石


 

[주D-001]이교서(圯橋書) : 한(漢) 나라 장량(張良)이 이교(圯橋) 위에서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은 책으로, 바로 태공망(太公望)의 병서(兵書)를 가리킨다.

 

백사집 제1권
 시(詩)
오랫동안 남중(南中)에 떨어져 있다 보니, 낙상(洛上)의 친구들이 날로 생각나는 것을 깨닫겠다. 우연히 공사를 인하여 일찍이 서울에 이르렀을 적에는 효언(孝彦)이 날마다 나를 내방하였고, 도중에 은진(恩津)을 들렀을 적에는 수지(受之)가 관접(館接)을 매우 정성스럽게 해주었다. 그래서 돌아와 의춘(宜春)에 누워서 이공(二公)의 뜻을 느끼어 생각하니, 실로 천애(天涯)의 골육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월 십칠일 밤의 꿈에는 이공과 더불어 서로 평상시처럼 해학을 하였으니, 어찌 느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꿈을 깨어 그 일을 생각하고 인하여 율시 두 수를 지어 기록하는 바이다.



백옥당 안에서 집무하는 선비요 / 白玉堂中士
황룡새 가에 사는 사람이로다 / 黃龍塞上人
나의 시름겨운 얼굴은 노쇠했는데 / 愁容余潦倒
그대의 명환은 청신하기만 하네 / 名宦子淸新
빛난 것은 시사를 바로잡는 책략이요 / 燀赫匡時略
외로운 나는 나라를 떠난 몸이로다 / 零丁去國身
남은 논의를 접할 길이 없었는데 / 無由接餘論
오히려 꿈 속에 친하기를 허여하였네 / 猶許夢相親

지난번 왕부현에 이르러 보니 / 伊昔王鳧縣
공당에는 신선이 앉아 있었네 / 公堂坐羽人
그대에게 들르니 시름이 사라져 가고 / 經過愁欲破
훌륭한 접대에 뜻이 더욱 새로웠네 / 館穀意彌新
다만 수시로 꿈이나 꿀 뿐이요 / 只得時成夢
어떻게 한 번 몸이 갈 수 있으랴 / 何由一致身
마치 정진의 잉어를 만난 것 같아 / 如逢鼎津鯉
옛정의 친밀함을 묻고 싶구려 / 欲問舊情親


 

[주D-001]왕부현(王鳧縣) : 지방의 현(縣)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선인(仙人)왕교(王喬)가 섭현(葉縣) 영(令)으로 있으면서 거기(車騎)도 없이 삭망(朔望) 때마다 조정에 나오므로, 그를 이상하게 여겨 엿보게 한 결과, 그가 올 무렵에 쌍부(雙鳧)가 동남쪽에서 날아오므로 그물을 쳐서 이를 잡아 놓고 보니, 신 한 짝이 들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83》
[주D-002]정진(鼎津)의 잉어 : 서신(書信)을 뜻한다.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손님이 먼 데서 찾아와, 나에게 잉어 두 마리를 주었네. 아이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뱃속에서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가시집 제22권
 시류(詩類)
입춘(立春) 2수



새벽에 거울 보니 백발은 한층 더했는데 / 淸曉臨銅白髮新
조그마한 종이 오려서 의춘을 붙이노라 / 裁成小紙貼宜春
머리 가득 번승은 되레 부끄럽기만 하고 / 滿頭幡勝還羞澁
소반 속의 오색 신채는 정말 보기도 싫네 / 厭見盤中五色辛

앉아서 내처와 마주해 한 번 껄껄 웃고 / 坐對萊妻一笑新
조용히 술잔 따라 새 봄을 경축하여라 / 穩斟杯酒慶新春
인생은 절로 백 년의 낙이 있는 법이니 / 人生自有百年樂
가난 때문에 고생된다 말할 것 없고말고 / 不爲家貧說苦辛


 

[주D-001]조그마한 …… 붙이노라 : 의춘(宜春)은 옛날 입춘일(立春日)에 조그마한 종이를 오려서 이 두 글자의 모양을 만들거나 글씨로 쓰기도 하여 창호(窓戶), 기물(器物), 채승(彩勝) 등에 붙여서 봄맞이〔迎春〕를 표시한 데서 온 말이다. 《天中記》 당(唐)나라 최융(崔融)의 춘규(春閨) 시에 “의춘 글자를 오려 만들려고 하니, 봄 추위가 가위 속에 들어오누나.〔欲剪宜春字 春寒入剪刀〕” 하였다.
[주D-002]번승(幡勝) : 채승(彩勝)과 같은 뜻으로, 일명 인승(人勝)이라고도 한다. 정월 초이레 인일에 봄이 온 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머리에 꽂았던 채색 조화(造花)를 이르는데, 옛날 풍속에 대궐에서 여러 조관(朝官)들에게 이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荆楚歲時記》]
[주D-003]소반 …… 싫네 : 오색은 곧 다섯 가지 종류를 이른다. 옛날 풍속에 입춘(立春)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매운 맛이 나는 훈채(葷菜)인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 등 다섯 가지 나물을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쟁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오니 백옥이 왕래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 하였다.
[주D-004]내처(萊妻) :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효자로 명성이 높았던 노래자(老萊子)의 아내를 가리킨다. 그녀는 일찍이 노래자에게 출사(出仕)하지 말 것을 간절히 권하여 부부가 함께 강남에 은거했으므로, 전하여 현처(賢妻)의 대칭(代稱)으로 쓰인다. 《古列女傳》

사가시집 제50권
 시류(詩類)
입춘일(立春日)에 이옥여(李玉如)의 운에 차하고 겸해서 봄나물을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새해엔 병이 많아 귀밑털이 흰 실 같은데 / 新年多病鬢如絲
봄기운은 사람 깔보고 대울을 넘어오네 / 春色欺人過竹籬
소반 가운데 보드라운 생채가 보기 좋아라 / 喜見盤中細生菜
봄의 풍미를 소릉이 나보다 먼저 알았었네
/ 少陵風味我先知

오신반의 생채는 실보다 더 가늘고말고 / 五辛盤縷細於絲
반 이랑 새 채소가 울타리 너머에 있네 / 半畝新蔬隔短籬
급히 계집종 불러 백주 가져다 따르노니 / 急喚女奴斟柏酒
한 봄의 이 정취를 그 누구에게 알리랴 / 一春情興許誰知

채승 속의 금화엔 비단실이 한데 모였고 / 勝裏金花簇錦絲
날아온 채연은 동쪽 울타리로 들어오네 / 飛來綵燕入東籬
반쯤 거나하여 의춘 두 글자를 쓰고 나니 / 半酣爲寫宜春
새해의 길상은 점치지 않고도 알 만하네 / 新歲佳祥不卜知


 

[주D-001]소반……알았었네 : 소릉(少陵)은 두보(杜甫)의 호이다. 옛날 풍속에 입춘일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훈채(葷菜) 즉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나물로 만들어 먹으면서 이것을 오신채(五辛菜) 또는 오신반(五辛盤)이라 일컬었고, 또 이 나물을 소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다. 두보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봄 소반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8》
[주D-002]채승(彩勝)……모였고 : 채승은 곧 번승(幡勝)과 같은 것으로, 옛 풍속에 입춘일이면 봄이 온 것을 경축하는 의미로 머리에 꽂았던 채색한 조화(造花)를 말하는데, 입춘 때마다 대궐에서 여러 조관(朝官)들에게 이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금화(金花)는 역시 금실의 조화를 가리킨다.
[주D-003]날아온……들어오네 : 채연(綵燕)은 채색 종이를 오려서 만든 제비를 말하는데, 옛 풍속에 입춘일이면 이것을 머리 위에 꽂았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의춘(宜春) : 옛날 입춘일이면 조그마한 종이를 오려서 이 두 글자의 모양을 만들거나, 혹은 글씨로 쓰기도 하여 창호, 기물, 채승 등의 위에 붙여서 봄맞이〔迎春〕를 표시한 데서 온 말이다. 당나라 최융(崔融)의 〈춘규(春閨)〉 시에 “의춘 글자를 오려 만들려고 하니, 봄추위가 가위 속에 들어오누나.〔欲剪宜春字 春寒入剪刀〕”라고 하였다.

 

송자대전 제101권
 서(書)
정경유(鄭景由)에게 답함 - 정사년(1677) 2월 23일



의춘(宜春 의령(宜寧)의 옛 이름)에서 헤어진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네. 그사이 세상사의 변화가 너무도 많았네.
그전에 자네의 가문은 선대의 덕을 고치지 않고 또 여경(餘慶)으로 제사를 받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편지를 받고서 백씨(伯氏)가 세상을 떠나 연기(練期 소상(小祥))가 벌써 지났음을 알았으니, 놀라움과 애통함을 금할 수 없네. 운기(運氣)가 좋지 못하여 대현(大賢)의 후예도 복을 받지 못함을 알겠네. 신명한 이치가 잘못된 지 오래이네. 어쩌겠는가.
3년 사이에 안부를 보낼 인편이 없지를 않았건만 양문(梁門)의 구서사건(購書事件)에 징계되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라네. 지금 미약한 자네 집의 힘으로 사람을 멀리 보내어 궁벽한 곳을 찾아 존문(存問)을 하니, 이 어찌 쉬운 일인가. 게다가 이 어리석은 사람을 형편없다고 여기지 않고 굽어 물어 마치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하니,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모르겠네. 그러나 자네의 성의를 감히 저버리지 못하겠기에 조목에 따라 답하였으니, 다음 편에 고쳐서 돌려보내 주기를 바라네. 지금 감히 나의 어리석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이를 통하여 가르침을 구하고 싶어서라네.
나는 온갖 시련(試鍊)을 받아 죽을 날이 날마다 가까워지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죄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조금도 슬픈 마음이 없다네. 하고 싶은 말은 매우 많지만 여기 온 종[奴]이 양식이 떨어져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하므로 하나하나 다 말하지 못하네. 회답한 것도 매우 난잡하니 모두 헤아려 살펴 주기를 바라네.


별지
‘《대학》을 본다[看大學]’에서부터 ‘앞쪽을 보기도 어렵다[便看前頭亦難]’까지에 대하여.
전두는 전문(傳文)에 상대하여 하는 말이니, 경 1장(經一章)임에는 의심이 없네. 거기서 말한 ‘명명덕(明明德)을 읽을 적에는 명명덕이 전두가 된다.’고 한 것은, 아마 현석(玄石 박세채)의 본의(本意)가 아닐 것이니, 혹시 기록에서 틀린 게 아닐까. 전혀 문리(文理)가 이루어지지 않네.
‘어느 것이 소학인가[如何是小學]’에 대하여.
《대학(大學)》ㆍ《소학(小學)》은 부자(父子)란 글자와 같네. 자(子) 자를 말하면서 부(父) 자를 빼 버리면 안 되듯이 《대학》을 말하면서 《소학》을 빼 버리는 것도 되지 않으므로 여기서 겸하며 말한 것이네.
‘내가 했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의 공부의 깊이를 보지 못할 것이다[不用某許多工夫亦看某底不出]’에 대하여.
오직 성인(聖人)이어야 성인의 뜻을 아는 것이니, 단지 문자(文字)뿐만이 아닐세. 아마 선생의 깊은 뜻은, 스스로 《대학》 한 책이 이미 가슴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네. 만일 선생의 평생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선생의 공부가 이 지위에까지 이른 것을 알겠는가.
복희(伏羲)ㆍ신농(神農) 아래 진씨(陳氏) 주(註)의 ‘학교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學之名未聞]’에 대하여.
맹자가 ‘하(夏)에서는 서(序)라 하였고, 은(殷)에서는 상(庠)이라 하였고, 주(周)에서는 교(校)라 하였다.’ 하였고, 이 이상은 이런 명칭이 없기 때문에 진씨의 말이 이러하네.
인생팔세(人生八歲) 주의, 제씨(齊氏)의 ‘육예는 8세 아이의 일이 아니다[六藝非八歲]’에서 ‘이름과 일일 뿐이다[名物而已]’까지에 대하여.
선사(先師) 문원공(文元公)도 제씨의 말을 따르지 않았네. 또 주 선생이 절문(節文) 두 글자를 위아래 문구(文句)에 나누어 소속시켰으니, 마땅히 절문(節文)의 문(文) 자로 보아야 할 듯하네.
규모와 절목을 안[內]과 밖[外]으로 구별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든 만물이 큰 것은 밖에 있고 작은 것은 안에 있네. 그러므로 《중용》의 주에 ‘그 큼은 밖에다 더 둘 것이 없고 그 작음은 안에다 더 둘 것이 없다[其大無外其小無內]’고 하였네.
‘살펴보면 그 책이[顧其爲書]’에서 ‘그 빠지고 소략한 것을 보충하여[補其闕略]’까지에 대하여.
’고기위서’의 서(書) 자는 서문 첫머리의 ‘대학지서(大學之書)’의 서(書) 자에 응하는 것 같네. 대략 그 뜻은, 《대학》 책이 정자(程子)의 개정을 거쳤으나 그래도 약간 잘못되었다[放失]는 것이니, 정자는 그 순서만을 고쳤을 뿐이므로, 정자의 책으로 지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네. 또 ‘방실(放失)’ 두 글자는 반드시 둘로 나누어 소속시킬 것 없네. 대체로 실(失) 자는 순서가 옛 모양을 잃었다는 것에 적용할 수도 있는 것이며, 오직 제5장의 없어진 것[亡失]만이 아닐세. ‘가려 모았다[采而輯之]’는 것은, 아마 정자의 말을 가려서 《대학》에 모았다는 것일 것이니, 이를테면 ‘친(親)은 신(新)으로 해야 한다.’ ‘신(身)은 심(心)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지본(知本)은 연문(衍文)이다.’라고 한 따위이네. ‘보기궐략(補其闕略)에 이른 다음에 도로 고기위서(顧其爲書)를 응한다.’고 한 기(其) 자는 모두 《대학》을 말한 것이네. 이렇게 보면 어떨지 모르겠네.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明德者人之所得乎天]’에서 ‘모든 일에 응한다[應萬事]’까지에 대하여.
명덕은, 성(性)이 심(心)에 들어 있어서 광명(光明)하고 발동(發動)하는 것에 입각하여 말한 것이니, 심을 놓아두면 그러한 소이연(所以然)을 밝힐 수가 없고, 성을 놔두면 그러한 소당연(所當然)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구(章句)에서 해석하기를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성을 말한 것이지만 심과 동일한 까닭에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광명이 밝게 비치는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명덕이고 ‘모든 이치를 갖추어 만사에 응한다[具衆理而應萬事]’는, 특히 심이 이 성을 통섭[統此性]하여 운용하는 도리를 말한 것입니다. ‘허령불매’ 4자가 중간에 있어서, 위 1구(句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人之所得乎天]’을 말함)는 허령불매의 원인을 말하였고, 아래 2구(‘뭇 이치를 갖추어[以具衆理]’와 ‘모든 일에 응한다[而應萬事]’를 말함)는 허령불매의 도(道)를 말한 것이니, 장구(章句)의 정묘하고 자세함이 이와 같습니다.
언젠가 이 뜻을 가지고 현석(玄石 박세채)에게 질문을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논(論)한 것이 더욱 정묘하다. 요사이 다시 헤아려 보니, 명덕의 본체만을 가지고 말하면 단지 허령불매의 4자면 충분하니, 맹자(孟子)의 이른바 본심(本心) 및 인의(仁義)의 마음이 그것이다. 명덕의 의(義)를 총괄하여 말하면 인지소득호천(人之所得乎天)에서부터 응만사야(應萬事也)까지 모두 연결지어 보아야 하는 것이니, 장자(張子 장재(張載))의 이른바 심통성정(心統性情)이 그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말이 어떻습니까?
‘소이연’과 ‘소당연’을, 주 선생은 모두 이(理)로 말하였는데, 지금 자네가 ‘소이연’을 심(心)에 소속시킨 것은 매우 잘못일세. 비록 하문(下文)의 불매(不昧)의 원인과 불매한 도(道)의 근본이 된다 하더라도 매우 타당하지 않네. 그 이하는 대체로 잘 보았네. 그런데 ‘통차성(統此性)’의 통(統) 자를 구(具) 자로 고치고 ‘운용지도리이(運用之道理耳)’ 여섯 자를 ‘이 정을 행하는 것이다[行此情者也]’로 고치면 나을 듯하네.
또, 이른바 하늘에서 얻은 것이라는 것은 심(心)ㆍ성(性)ㆍ정(情) 세 가지를 통합하여 말한 것인데, 지금 자네는 성 하나만을 말하니 그렇다면 심과 정은 하늘에서 얻은 것이 아닌가?
또, 이른바 ‘위 1구(句)는 허령불매한 원인을 말한 것이다’고 한 것은 하늘에서 얻은 것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니, 위에서 말한바 ‘하늘에서 얻은 것은 곧 성을 말한 것이다’와는 서로 모순이 되네.
명덕의 소주에 주자가 심(心)은 화(火)에 속한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오성(五性)은 오행(五行)의 이치이고 오행이 오장(五臟)에 속한다면, 당연히 오장이 각기 하나의 성을 통섭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성을 모두 심(心)에 통섭시킨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천하의 만물은 오행에 배속되지 않은 것이 없네. 오행의 이치가 사람에게 부여되어 오성이 되었다고 하면 되지만, 그대로 오행에 배속된 모든 것에 모두 인ㆍ의ㆍ예ㆍ지ㆍ신(仁義禮智信)의 성(性)이 있다고 하면 크게 옳지 못하네. 대체로 오행에 배속되는 것은 혹은 기(氣), 혹은 형(形), 혹은 맛, 혹은 냄새로 하는데, 지금 맛 가운데 모든 단맛은 다 토(土)에 속한다 하여 꿀이 신(信)의 성(性)을 갖추었다고 하면 되겠는가. 이런 곳은 절대로 집착하여 보면 안 되는 것이네.
북계 진씨(北溪陳氏)가 ‘이와 기가 합한 것이 허령하게 된 까닭이다[理與氣合所以虛靈]’ 한 데 대하여.
이 단락은 율곡과 사계 두 선생이 모두 깊이 배척하여, 그 말이 《경서변의(經書辨疑)》 속에 자세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어류(語類)》를 참고하였더니, 혹자가 묻기를,
“지각(知覺)은 마음의 영(靈)입니까, 아니면 기(氣)의 작용입니까?”
하자, 주자가 말하기를,
“오로지 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각의 이치가 있다. 이치가 지각하기 전에 기가 모여 형(形)을 이루게 되는데 이(理)와 기가 합하고 나서 능히 지각할 수 있게 된다.”
하였습니다. 지각이 허령과 체용(體用)의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치는 결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정우복(鄭愚伏 정경세(鄭經世))의 이른바 ‘북계(北溪)의 말이 곧 주자의 말이다.’ 한 것이 참으로 그 본뜻을 맞췄는데, 사계는 어찌하여 깊이 고찰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까. 언젠가 이것을 연유하여 생각해 보니, 이(理)는 비유하자면 등불이고 기(氣)는 비유하자면 기름입니다. 등불은 반드시 기름과 서로 합한 뒤에야 불빛이 생기는 것이고, 이치는 반드시 기와 서로 합한 뒤에야 허령(虛靈)이 생기는 것입니다. 단지 이치는 형(形)이 없고 불은 형이 있는 것이 같지 않은 점입니다. 혹 기름이 탁하면 그 불빛이 어두컴컴하여 물건을 비추지 못하는 것이 마치 새나 짐승이 편색(偏塞)한 기를 얻은 것과 같으니, 이는 이가 기에 가려져서 허령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와 기가 합했다는 데 대한 이(李)ㆍ김(金) 두 선생의 배척은 이 한 구절뿐이 아니네. 그 위에서,
“사람이 태어날 때 천지의 이(理)를 얻고 또 천지의 기(氣)를 얻는다.”
하였는데, 이 말은 매우 옳지 않네. 사람과 생물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이와 기가 본디 저절로 섞여 있어서 분리되지 않았네. 그러므로 기가 모여서 형을 이룰 때에, 이는 저절로 형 속에 갖추어지는 것이네. 그러기에 《중용》 주(註)에,
“기로써 형이 이루어지고 이도 부여된다.”
하였으니, 이 어찌 아주 분명한 점이 아닌가. 지금 먼저 천지의 이를 얻었다고 말하였는데, 사람이 천지의 기를 얻지 않은 때에 이가 어디서 떨어졌기에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
그 아래에 또 ‘천지의 기를 얻었다’ 하였으니, 이것은 먼저 이가 공중에 따로 매달려 있고 기가 혼자 능히 이리저리 조화를 부려 형을 이룬 것이란 말인가. 비록 그 문장을 고쳐 ‘천지의 기를 얻고 또 천지의 이를 얻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앞과 뒤 두 번이라는 혐의가 있는 것인데, 더구나 이가 먼저이고 기가 뒤이겠는가. 퇴계 선생이 이발기수설(理發氣隨說)을 내세웠는데, 율곡 선생은 언제나 이것을 퇴계 선생의 바른 견해 가운데 하나의 결점으로 여겼네. 혹시 퇴계 선생의 견해가 사실 여기에 말미암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이와 기가 합했다는 것은, 마치 이와 기가 제각기 한곳에 있다가 인ㆍ물(人物)이 태어날 때에야 비로소 저쪽과 이쪽에서 한곳에 합하는 것 같네. 그것은 《어류》에서 말한 ‘기가 모여 형(形)을 이루고 이와 기가 합한다’ 는 것과 크게 서로 다르지 않은가. 《어류》의 설은 곧 《중용》 주(註)의 설의 뜻이지만, 사실은 태극도(太極圖)에서 말한 ‘무극(無極)의 진(眞)과 이오(二五 음양과 오행)의 정(精)이 묘하게 합하여 모인다’ 에서 근본한 것이네.
자네의 편지에서 ‘이 이(理)가 반드시 이 기(氣)와 서로 합한 뒤에 허령(虛靈)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그릇된 것이네. 만약 고쳐서 ‘이와 기가 합하여 허령한 것은 심(心)이고 그 허령한 가운데 갖춰진 것은 성(性)이다’고 한다면 거의 타당할 것이네. 그런데 지금 자네의 편지에는 ‘이와 기가 합한 뒤에 허령이 생긴다’ 하였으니, 이는 허령을 성(性)이라 한 것일세. 이 어찌 석씨(釋氏)가 작용(作用)을 성이라 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이것은 그만두고 태극도와 《중용》 주를 가지고 반복하여 참고하면, 진씨(陳氏)의 설 및 이ㆍ김 두 선생이 논한 것에 대하여 논변하지 않고서도 그 옳고 그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네.
황씨(黃氏)가 말한 ‘허령불매(虛靈不昧)’에서 ‘덕야(德也)’까지에 대하여.
이 단락은 주자의 뜻과는 부합되지 않는데, 율곡은 뜻이 통하여 잘못이 없다고 하여 동그라미를 쳤으니, 의아스럽습니다.
주자가 《중용》에서 심(心)을 논하면서는 ‘허령지각(虛靈知覺)’이라 했는데, 여기서 지각을 바꾸어 말한 ‘불매(不昧)’는 바로 ‘명덕(明德)’의 명(明) 자의 근본이고 ‘하늘에서 얻었다[所得乎天]’의 득(得) 자는 바로 덕(德) 자의 근본이네. 황씨의 설은 진실로 주자의 본뜻과 들어맞네. 절실하게 밝힌 것은 없지만 사실 잘못된 점이 없기 때문에 율곡이 예전대로 그냥 둔 것이네.
옥계 노씨(玉溪盧氏)가 ‘허는 심의 적이다[虛者心之寂]’ 한 것에 대하여.
허(虛)란 투명하게 밝은 것을 말하고 적(寂)이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허는 동정(動靜)을 통합하여 하는 말이고 적은 정(靜)할 때의 기상(氣象)만을 관섭(管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자는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의미와 기상은 크게 다르니, 아마도 강제로 끌어다 합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어떻습니까?
심(心)이 만약 시끄럽고 파동(波動)한다면, 어떻게 허(虛)가 되겠는가.
《주역(周易)》에,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고, 정자(程子)는,
“심의 체(體)를 가리켜 말한 것이 있으니,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하였네. 심의 체에서 적(寂) 자를 말한 사람은 노씨뿐만이 아니네.
‘반은 목욕하는 데 쓰는 반이다[盤沐浴之盤]’에 대하여.
소주(小註)의 소씨(邵氏)의 설을 운봉(雲峯 호병문(胡炳文))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에, 이것은 몸의 때[垢]를 제거하는 것으로 심의 악(惡)을 제거하는 데 비유한 것이므로 반드시 온몸을 들어서 한 말입니다. 아마도 세숫 대야로 얼굴 하나만 깨끗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또 옛사람은 닷새에 한 번 머리를 감고 사흘에 한 번 목욕을 하였으니, 날마다 목욕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곳은 대의(大義)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꼭 이처럼 노력을 들일 것은 없네.
‘작신민(作新民)’에 대하여.
《상서(尙書)》의 본주(本註)에는 ‘작신(作新)’ 두 글자를 합하여 말하였으나, 여기서 꼭 작(作) 자를 임금에게 속하게 하고 신(新) 자를 백성에게 속하게 한 것은, 아마도 뜻이 있어서일 것이네. 이것은 위 장(章)의 극명준덕(克明峻德)을 이어서 한 말이니, 이미 임금이 능히 큰 덕을 밝히기를 요(堯) 임금처럼 한다면, 백성이 어찌 보고 느끼어 스스로 새로워짐이 없겠는가. 그들의 스스로 새로워짐을 따라서 진작시키는 것은, 또 《맹자(孟子)》에 인용된 ‘또 좇아서 진작시켜 은혜를 베풀어 주라[又從而振德之]’고 한 방훈(放勳)의 말과 같은 것이네. 그렇지 않다면, 주 선생이 어찌 작신(作新) 두 글자를 합하여 해석하면 간편하다는 것을 몰라서, 꼭 이렇게 지리하고 번거롭게 나누어 소속시켰겠는가. 나의 생각은 이러하나 옳은지는 모르겠네.
‘나의 명덕이 이미 밝다[我之明德旣明]’를 소주(小註)에 ‘명덕이 근본이 된다’ 하였고 ‘자연히 백성의 심지를 외복시킴이 있다[自然有以畏服民之心志]’를 소주에 ‘이것은 곧 신민(新民)이다’ 한 것에 대하여.
《경서변의(經書辨疑)》에서 사계(沙溪)는 이곳의 소주가 아래 주(註)의 주자의 설과 같지 않다고 하여 의심하였습니다.
경문(經文)의 ‘만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物有本末]’의 주에 ‘명덕이 근본이 되고 신민이 끝이 된다’ 하였는데, 이 청송장(聽訟章)은 바로 이 경의 글을 해석한 것이네. 그러므로 본주에 ‘나의 명덕이 밝으면 자연히 백성의 심지(心志)를 외복(畏服)시킴이 있다. 그러므로 송사는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없게 된다’ 하였네. 이른바 나의 명덕이 이미 밝게 된다는 것은 명명덕(明明德)이고, 저절로 백성의 심지를 외복시킴이 있어서 송사는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없게 된다는 것은 신민(新民)이네.
그 아래에서 또 끝맺기를 ‘이 말을 보면 근본과 끝의 먼저 하고 뒤에 할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네. 이는 명덕과 신민이 근본과 끝이 됨을 거듭 말하여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말뜻이 분명하여 다시 의심할 만한 것이 없네. 《혹문(或問)》에서도 ‘송사를 들음[聽訟]과 송사 없음[無訟]이 명덕과 신민의 뜻에 어떻게 해당되는가?’ 하였으니, 이 또한 송사를 들음과 송사가 없음으로 명덕과 신민의 뜻을 삼아 질문을 내세운 것이고, 그 대답한 말도 장구(章句)와 다름이 없네. ‘자기의 덕이 이미 밝게 되었다[己德旣明]’는 것은 이른바 명덕이고 ‘백성의 덕이 스스로 새로워진다[民德自新]’는 것은 이른바 신민이니, 이 역시 명덕과 신민으로 근본과 끝을 삼은 것이 매우 명백하네. 그러나 다만 그 아래 글에 ‘그 또한 끝이다[其亦末矣]’라는 글이 있으므로, 많은 독자들이 이를 고집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송사가 없게 하는 것은 근본이고 송사를 듣고 판결하는 것은 끝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여기에서의 끝[末] 자는 근본과 끝[本末]의 끝 자가 아니고, 곧 아주 작음[徵末]의 뜻일 것이네. 왜 그런 줄을 아느냐 하면, 그 위 글에 ‘혹시 그렇게 하지 못하고 구구하게 분쟁(分爭)과 변송(辨訟) 속에서 잘해 보려고 한다면……’이라는 말이 실상 억눌러 물리치려는 말인데, 그것을 어떻게 ‘만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物有本末]’는 뜻과 함께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선사(先師 김장생을 가리킴)께서 소주(小註)의 말이 혹시 기록한 사람의 오기(誤記)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네. 바라건대, 다시 경문(經文) 및 장구(章句)ㆍ《혹문(或問)》을 가지고 반복하여 참고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在正其心]’와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不得其正]’에 대하여.
《변의(辨疑)》와 호운봉(胡雲峰)의 설이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계(沙溪)의 설이 아마 정론(正論)인 듯합니다. 대체로 이 심(心)의 용(用)이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실상 그 네 가지가 있으면 마음에 막히는 병이 있어 체(體)가 그 허(虛)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있다[有所]고 말했으면 마음의 체가 바르지 못함이 벌써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운봉은 네 가지 바른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마음의 체가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전(傳)에서 말한 ‘네 가지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이 네 가지에 혹시라도 막히어 체가 그 허를 잃게 되면, 마음의 체가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 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한 구절은 중복되고 막히며 원래 기력이 없고 전혀 의미도 없으니, 전을 지은 이의 뜻은 결코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장구(章句)에,
“용(用)의 행하는 것이 혹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분명히 말하였으니, 앞에서 말한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용을 가리킨 말이네. 운봉의 설은 정말 맞지 않으니 자네의 설이 옳네.
‘욕이 움직이고 정이 이긴다[欲動情勝]’에서 ‘그 바름을 잃는다[失其正]’까지에 대하여.
《경서변의》에서 사계 선생은 ‘욕심이 움직이고 사정이 정성을 이기면, 행하는 것의 바름을 잃는 것은 필연적인데 주(註)의 혹(或) 자는 알 수 없다.’ 하였습니다.
‘혹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或不能不失其正]’의 혹 자는 ‘욕심이 움직이고 사정이 정성을 이긴다’의 뒤에 있으므로 율곡(栗谷)도 의심하여 《성학집요(聖學輯要)》에는 빼 버리고 쓰지 않았네. 그렇지만 나의 뜻은 항상 그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네.
‘한 집이 어질면이라고 한 그 이상은[一家仁以上]’에서 ‘사람이 스스로 감화된다[人自化之]’까지에 대하여.
이것은 ‘보적자(保赤子)’ 아래 소주의 ‘이는 단지 감화시키는 것이 근본임을 말한 것이다[此且只說動化爲本]’와 같지 않으니 의심스럽습니다.
‘일가인(一家仁)’의 소주에 비록 ‘백성이 저절로 감화된다[人自化之]’는 글이 있으나, 위 글에서 말한 ‘그 집에서부터 미루어 나가 국가를 다스린다[推其家而治國]’와 ‘어린이를 보호하듯이 하라[如保赤子]’의 소주에서 말한 ‘뒤는 오로지 미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後方專說推]’와 서로 부합하네. 이 한 단락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곧 미루어 가는 것인데, 미루어 가는 중에도 감동ㆍ교화의 뜻이 있는 것이네. 다만 ‘보적자’의 소주에서 말한 ‘감동하여 교화시키는 것이 근본이다[動化爲本]’라는 것은 위 주(註)에서 말한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백성을 부린다[推慈幼之心以使衆]’는 것과는 서로 모순이 되네. 혹시 미루어 가는 것[推去]과 감동ㆍ교화[動化]는 다른 두 가지 일이 아니라, 서로 표리(表裏)가 되기 때문에 번갈아 말해도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의심스럽네.
‘재물이 있으면 이에 쓰임이 있다[有財此有用]’에 대하여.
‘재물이 있으면 이에 쓰임이 있다’는 것은, 실상 맹자(孟子)가 말한,
“곡식과 물고기를 다 먹지 못할 것이고, 재목을 다 쓰지 못할 것이니,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다.”
와 같은 것이네. 곡식ㆍ물고기ㆍ재목은 재물이고, 이것으로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것은 쓰임이다.
선즉득지(善則得之)의 소주에 옥계 노씨(玉溪盧氏)가 말한 ‘여기서 이른바 선은 지지선(止至善)의 선이다[此所謂善卽止至善之善]’에 대하여.
‘지선(至善)’의 선(善)은 사리(事理)를 가지고 하는 말이고 선하다 선하지 않다의 선은, 공부하는 점을 가지고 하는 말이므로, 그 뜻이 본디 다른데 노씨는 합쳐서 같이 취급하였으니 의심스럽습니다.
경문(經文)의 ‘지선’은 통괄하여 말한 것이고, 여기서 말한 선은 아마 혈구(絜矩)를 능히 수행하는 것을 가리켜 한 말일 것이네. 비록 통괄하여 말했거나 나누어서 말한 점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다를 것이 없네.
전(傳) 10장을 호씨(胡氏 호병문(胡炳文))는 8절(節)로 나누었는데, 너무 세쇄한 듯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5절로 나누어 보아야 할 듯한데 어떻습니까?
전 10장은 주 선생이 벌써 8절로 만들었으니, 반드시 그에 대한 설이 있어서 바꾸지 못할 것이네. 호씨가 이미 첫머리의 1절을 나누어 2절을 만들고 또 ‘언패(言悖)’와 ‘강고(康誥)’를 합하여 1절을 만들었으니, 벌써 별 의미가 없는 듯한데, 지금 자네는 또 묶어서 5절로 만드니, 합당한지의 여부는 그만두더라도 경솔하고 참람한 혐의가 없지 않겠는가. 이것이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보면 작은 잘못이 아니네.
독서를 할 때에는 반드시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뜻을 겸손히 하여, 한결같이 선유(先儒)의 옛날에 해 놓은 말을 반복하여 음미해 보다가, 몹시 걸리고 막히는 곳은 부득이 따로 다른 설[異說]을 구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네. 그렇지 않고 언제나 새롭고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힘을 쓰면 마음이 이미 밖으로 내달아서 심복(心服)이 되지 않는 것이네. 그러니 무엇으로 학문의 근본을 삼겠는가. 서로 깊은 허여를 입었기에 이와 같이 깊은 말을 하였으나 대단히 두렵네.


 

[주C-001]정경유(鄭景由) : 정찬휘(鄭纘輝)를 말함. 경유는 그의 자. 호는 궁촌(窮村). 송시열의 문인. 음직(蔭職)으로 현감(縣監)을 지냈음.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임. 이 편지는 송시열이 유배지(流配地)인 장기(長鬐)에서 3년 만에 그의 편지를 받고 그동안에 변천된 여러 가지 일을 개탄하고, 질문한 《대학장구(大學章句)》 문목(問目)에 대하여 별지로 회답한 것이다.
[주D-001]양문(梁門)의 구서사건(購書事件) : 양문은 영평(永平 경기도 포천군(抱川郡)에 속한 지방)에 있던 역(驛)의 이름. 언젠가 여기에서 송시열이 부친 편지를 남에게 빼앗긴 적이 있었다. 《宋子大全隨箚 卷10》
[주D-002]전문(傳文) : 《대학(大學)》에 있어서 경문(經文)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대학》의 경문은 공자의 말을 증자(曾子)가 기록한 것이고, 전문은 증자의 뜻을 증자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다. 《大學章句 經1章》
[주D-003]절문(節文) : 쇄소(灑掃)ㆍ응대(應對)ㆍ진퇴(進退)의 절차와 예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禮樂射御書數)의 문예(文藝)이다.
[주D-004]친(親)은 …… 따위 : 정이(程頤)가 경(經) 1장 첫 구절의 ‘친민(親民)’의 친 자는 신(新) 자로 고치고 전(傳) 7장의 ‘신유소분치(身有所忿懥)’의 신(身) 자는 심(心) 자로 고쳐야 한다고 한 것과, 전 5장 첫머리의 ‘차위지본(此謂知本)’은 연문이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05]네 가지 : 《대학》 전 7장의 분치(忿懥)ㆍ공구(恐懼)ㆍ호요(好樂)ㆍ우환(憂患)을 말한다.
[주D-006]혈구(絜矩) : 자기를 척도(尺度)로 하여 남을 헤아리는 동정(同情)의 도를 말함. 《大學章句 傳10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