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판관공 휘 희수 등/휘 복남 관련 기사

휘 복남 관련자료

아베베1 2011. 5. 29. 08:12

 

 

 

 

최복남(崔福男)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성균진사(成均進士)를 지낸 최언린(崔彥潾)의 아들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냄.

 

시대: 조선후기 연도: 1545-1606

 

산당집 ( 山堂集 )
형태서지 | 저 자 | 가계도 | 행 력 | 편찬 및 간행 | 구성과 내용

  형태서지
권수제  山堂集
판심제  山堂集
간종  목판본
간행년  1866年刊
권책  5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9×14.7(㎝)
어미  上花紋魚尾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도서번호  奎4040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16
 저자
성명  최충성(崔忠成)
생년  1458년(세조 4)
몰년  1491년(성종 22)
 弼卿
 山堂
본관  全州
특기사항  金宏弼의 문인. 南孝溫 등과 교유
 가계도
 崔德之
 直提學
 崔
 司勇
 密陽朴氏
 
 崔大成
 
 崔忠成
 
 全義李氏
 參議 李若水의 女
 崔演文
 萬戶
 女
 
 薛俊
 忠順衛

기사전거 : 家狀 및 萬姓大同譜에 의함
 행력
왕력 서기 간지 연호 연령 기사
세조 4 1458 무인 天順 2 1 羅州에서 태어나다.
세조 11 1465 을유 成化 1 8 형을 따라 漢陽을 여행하다.
성종 14 1483 계묘 成化 19 26 月出山을 유람하다.
성종 15 1484 갑진 成化 20 27 長湍의 湧巖山을 유람하다.
성종 16 1485 을사 成化 21 28 한양의 三角山ㆍ白嶽山, 송도의 天磨山ㆍ聖居山을 유람하다.
성종 17 1486 병오 成化 22 29 瑞石山을 유람하다.
성종 18 1487 정미 成化 23 30 頭流山을 유람하다. 도중에 金鍵과 함께 南孝溫을 방문하여 「小學」ㆍ「近思錄」을 講論하다. ○ 점필재 金宗直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글을 올려 佛巫의 폐단을 물리칠 것을 청하다.
성종 19 1488 무신 弘治 1 31 봄, 方丈山을 유람하다. ○ 金宏弼의 부친상을 조문하러 嶺南에 가다. ○ 여름, 完山ㆍ玉川 등지를 유람하다. ○ 가을, 雪山을 유람하다. ○ 8월, 昌平監試에 응시하다. ○ 9월, 金堤文場에 응시하다. ○ 겨울, 金鍵 등과 더불어 月出山 精廬에서 講學하다.
성종 20 1489 기유 弘治 2 32 겨울, 鳳城에서 中風으로 병석에 눕다. 〈蒸室記〉, 〈警慮焚刻記〉를 짓다.
성종 21 1490 경술 弘治 3 33 전라도 관찰사에게 글을 올려 약을 구하다.
성종 22 1491 신해 弘治 4 34 3월 24일, 졸하다. 羅州 可芝洞 선산에 묻히다.
현종 6 1665 을사 康熙 4 - 2월, 士林이 祖 崔烟村이 享祀되어 있는 存養祠에 배향하다.
숙종 11 1685 을축 康熙 24 - 후손 崔秀華가 소장하고 있던 유고를 朴世采에게 校勘을 받다.
숙종 39 1713 계사 康熙 52 - 存養祠에 제관을 보내 致祭하고 ‘鹿洞書院’으로 賜額하다.
순조 5 1805 을축 嘉慶 10 - 9대손 崔爀이 2권 1책으로 문집을 간행하다.
순조 28 1828 무자 道光 8 - 후손 崔鍾翼이 家狀을 짓다.
고종 1 1864 갑자 同治 3 - 宋來熙가 行狀을 짓다.
고종 3 1866 병인 同治 5 - 후손 崔秉潤 등이 문집을 增補하여 간행하다.

기사전거 : 家狀ㆍ行狀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의 문집은 후손 崔邦彥이 소장하고 있던 草稿를 朴世采에게 校勘하여 1685년 원집 2권 1책으로 편집하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간행되지 못하고 稿本으로 남아 있던 것을 1805년에 9대손 崔爀이 宋煥箕의 序文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초간본》
그 후 후손 崔秉潤 등이 그의 부친이 轉寫하여 보관하고 있던 것에 부록을 덧붙여 別集ㆍ附錄 합 3권 1책을 편차하고 1866년 원집과 함께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중간본》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866년에 간행된 중간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장본이다.
 구성과 내용
본 문집은 原集 2권ㆍ別集 1권ㆍ附錄 2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의 雜著는 〈續原人〉ㆍ〈讀小學文〉 외에 「小學」에 관한 글 3편, 〈讀進學解〉ㆍ〈正名論〉ㆍ〈天堂地獄辨〉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小學」에 관한 글이 많은 것은 저자가 金宏弼의 제자로 「小學」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은 데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正名論〉은 군신과 부자의 名分을 바르게 함으로써 인륜을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논하였으며, 〈藥戒〉는 병자가 藥으로 치유하는 이야기를 中心으로 국가 다스리는 것을 身體를 調理하는 데 비유하여 설명한 글이다.
권2의 書는 〈上佔畢齋先生書〉와 〈上湖南方伯求藥書〉로, 전자는 1487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점필재에게 佛巫의 폐해를 물리칠 것을 청하는 상서이며, 후자는 1490년 中風을 앓을 때 전라도 관찰사에게 약을 구하기 위해 올린 글이다. 記는 〈蒸室記〉와 〈警慮焚刻記〉로 中風을 치유하려고 힘쓰던 때의 기록이다. 傳은 〈山堂書客傳〉으로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후에 지은 自傳的인 글이다. 그 밖에 〈擬送張舍人歸江東序〉ㆍ〈擬齊王田橫墓誌〉ㆍ〈擬褚遂良諫立武氏爲后疏〉는 모두 擬作으로 義理ㆍ三綱을 강조한 내용들이다. 권미에는 1491년 盧伯玉이 쓴 〈上山堂書〉가 부록되어 있고, 1685년에 쓴 朴世采의 識가 있다.
권3은 別集으로 招宦遊子文, 雜說, 慶會樓記, 送韓侍郞謫湖州序, 題明道先生墓碑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招宦遊子文은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뒤에 지은 것으로 富貴에 집착하지 않고 江湖에서 自適하는 생활을 권하는 내용이다. 雜說은 두 편인데, 하나는 養材에 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仁을 통한 成材에 관한 글로 그 긴요함을 잘 나타낸 글이다.
권4는 附錄으로 家狀(후손 崔鍾翼 撰), 行狀(宋來熙 撰), 墓表(宋穉圭 撰)와 저자가 享祀된 鹿洞書院에 관한 기록 등을 모은 것이다. 그중 鹿洞書院에 관한 기록은 配享通文, 祝文, 金昌協과 宋相琦 등의 請賜額疏, 1713년 延額時 賜祭文과 후손 崔鍾翼이 이 事蹟 뒤에 썼던 글 등을 모은 것인데, 金昌協 등의 請賜額疏와 墓表 등은 편집상태 및 版型으로 보아 1866년 重刊시에 追刻한 것으로 보인다.
권5는 附錄으로 擅勝樓題詠과 저자의 손자 崔彥潾의 詩, 증손 崔福男의 行狀 2편(崔尙重ㆍ尹濟弘 撰)ㆍ墓表(李肇源 撰)를 모은 것이다. 그중 擅勝樓題詠은 저자의 아들인 崔演文의 別墅에 대해 읊은 金麟厚와 林億齡의 詩를 收錄한 것이다. 끝에 1866년에 쓴 후손 崔秉潤의 附錄後識가 있다.

필자 : 鄭弼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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