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리 서원 전고 /선비산맥

선비산맥(鮮卑山脈)

아베베1 2011. 6. 26. 08:26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
선비산맥(鮮卑山脈)


백두산의 줄기는 유주(幽州)ㆍ영주(營州)ㆍ병주(幷州)의 3개 주의 밖에서 왔고, 선비산(鮮卑山)은 또 그 밖에 있다. 오호시대(五胡時代)에 선비족이 제일 강했는데, 산 이름을 가지고 그 종족의 명칭을 붙인 것이다. 아마 이것이 백두산의 출발점이 된 듯하다. 백두산 내외에 있는 종족을 모두 숙신(肅愼)이라 하며 그 서남방의 줄기는 조선이다. 그 영역이 처음에는 요동 전역에 걸쳤으며, 요동의 땅은 모두가 선비산의 지맥이었다. 조(朝)라고 한 것은 “아침에 해가 떠오른다.”는 뜻의 아침이다. 아침이란 곧 동쪽이란 말이다. 천하에서 동쪽의 끝이 곧 조선(朝鮮)이다.
요(堯) 시대에, “공공(共工)이 힘을 모아서 공적을 나타냈다.”고 하였다. 공공(共工)은 사공(司空)에 소속된 관리이다. 그의 직무는 국가의 토지를 관장하는 것이니, 본래 황무지를 개간하는 관리이다. 그런즉 그가 “힘을 모아 공적을 나타내었다.”는 것은 국토를 개척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舜)이 12개의 주를 창설한 사실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사실이었으며, 기주(冀州) 동북방에 따로 유ㆍ병ㆍ영의 3주를 설치하였으니, 이것이 곧 그가 나타내었다는 공적이다. 우공(禹貢)의 9주에 와서는 이 3개 주는 제외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아마도 무력으로 토지를 확장시키고 보니 영토만 넓고 백성이 피폐하였을 것이다. 그의 죄상은 곧 “이론으로는 성립되나 실제 운영에는 맞지 아니하여 제(帝)의 명령을 어긴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禹)는 이 지역을 폐기하였다. 네 사람의 죄를 처벌할 때에 공공(共工)은 유주에 유배하였으니, 그 지역에 유배한 것은 곧 “실제 운영에 맞지 아니하며 국가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백성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내려오면서 점점 잘 복종하여 본토 사람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周)가 천하를 차지했을 때에 황제(黃帝)의 후손을 유주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으니, 이것은 그 공적을 나타낸 성과라 할 것이다.


 

[주C-001]선비산맥(鮮卑山脈) : 《類選》 卷1下 天地篇下 地理門.
[주D-001]공공(共工)이 …… 공적을 나타냈다 : 《서경》 요전(堯典)에 있는 구절을 인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