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 분의 문집/예문지(藝文志) (비각)

예문지(藝文志) 5 비각(碑刻)

아베베1 2011. 12. 16. 10:30

 

 

                   이미지 사진은 도봉구 방학동 양효공 안맹담의 신도비의 모습이다

                    (세종대왕의 사위이신 정의공주의 부군되시는 분이다)

                                       2011.12.1. 죽산안씨 묘역에서 촬영   

 

 

해동역사 제46권

 예문지(藝文志) 5
비각(碑刻)



관구검(毌丘儉)의 불내성기공명(不耐城紀功銘)
○ 위(魏)나라 정시(正始) 연간에 유주 자사(幽州刺史) 관구검이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고구려 왕 고궁(高宮)을 추격하여 옥저(沃沮) 땅 천여 리를 지나 숙신씨(肅愼氏)의 남쪽 경계에 이르러서 돌에다가 공을 새겨 놓았는데, 환도산(丸都山)에 새겨 놓았으며, 불내성(不耐城)에도 명(銘)을 새겨 놓았다. 《삼국지》 ○ 살펴보건대, 불내성은 지금의 함흥부(咸興府)이다.

당나라 태종(太宗)의 주필산기공비(駐蹕山紀功碑)
○ 정관(貞觀) 19년(645, 보장왕4)에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안시성(安市城)에서 고연수(高延壽)를 격파하고 인하여 행차한 산을 이름하여 주필산(駐蹕山)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중서 시랑(中書侍郞) 허경종(許敬宗)에게 명하여 글을 지어 돌에 새겨서 공적을 기록하게 하였다. 《구당서(舊唐書)》 ○ 삼가 살펴보건대, 주필산은 마땅히 지금의 개평현(蓋平縣) 동쪽에 있어야 한다. 지지(地志)에 상세하게 나온다.

소정방(蘇定方)의 평백제탑비명(平百濟塔碑銘)
○ 평백제비(平百濟碑)는 정서(正書)이다. 후반부가 떨어져 나가 연월일이 보이지 않는데, 마땅히 현경(顯慶) 5년(660, 의자왕20)으로 되어야 한다. 강소성(江蘇省) 가정현(嘉定縣)에 사는 전씨(錢氏)의 탁본(拓本)이 있다. 《환우방비록(寰宇訪碑錄)》
진서(鎭書)가 삼가 살펴보건대,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의 ‘평제탑탁본제발(平濟塔拓本題跋)’에 이르기를, “위에 나오는 ‘평백제탑비명’은 당나라 현경(顯慶) 5년 8월에 능주장사 판병부(陵州長史判兵部) 하수량(賀遂亮)이 찬하고, 낙주(洛州) 하남(河南)의 권회소(權懷素)가 쓴 것이다. 대개 백제로 인하여 신라에서 조공하는 길이 막히자, 당나라에서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소정방 등을 파견하여 토평(討平)한 다음, 돌에 새겨 공을 기록하고 백마강(白馬江) 가에 탑을 세운 것이다. 비(碑)는 높이가 5척 2촌이고 너비가 4장 6척 2촌이며, 비문은 118행이고 지금도 1800여 자가 남아 있다. 비석의 대해(大楷)는 당나라 초기에도 고례(古隸)의 유의(遺意)가 아직 남아 있었는바, 해동의 석묵(石墨) 가운데에서 옛 글씨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가경(嘉慶) 갑술년(1814, 순조14) 10월 2일에 옹방강은 지(識)한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상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 탑은 지금 부여현(扶餘縣)에서 남쪽으로 2리 되는 곳에 있는데, 부여는 바로 백제의 고도(古都)이다. 문장이 웅혼하고 필력이 힘이 있어 당나라 비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서안부(西安府)를 두루 둘러보아도 역시 이만한 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나라에서이겠는가. 원래의 비명이 애석하게도 중국의 전적(典籍)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아래에다가 첨부하여 참고하는 데 대비하게 하였다.
무릇 천자(天子)가 만국(萬國)의 조회를 받고 만백성들을 제압하여 바다 바깥을 맑게 해서 천유(天維)를 일으키고, 천하의 한복판에 자리 잡아 지락(地絡)을 넓힘에 있어서는, 모두 다 칠덕(七德)을 드날려 먼 변경을 어거하고, 오병(五兵)을 빛내 변방을 고요하게 한다. 이에 비록 질문(質文)이 궤를 달리하고 보취(步驟)가 길을 달리하더라도, 읍양(揖讓)이 간과(干戈)와 더불고 수종(受終)이 혁명(革命)과 더불었는바, 모두 신무(神武)를 수고롭히고 가병(佳兵)을 거두지 않았다. 이는 흉수(洶水)에서 재앙을 끼치다가 마침내 구영(九)이 주륙을 당하고, 동정(洞庭)에서 반역을 일으켰다가 삼묘(三苗)가 이미 주살된 데에서 알 수가 있다.
천년을 거울로 삼고 만고를 멀리 생각해 보건대, 당도(當塗)가 한(漢)나라를 대신하고, 전오(典午)가 조씨(曹氏)를 이어받음에, 임무는 착문(鑿門)하는 데에 중하고, 예의는 추곡(推轂)하는 데에 융숭하였다. 마 복파(馬伏波)는 교지(交趾)에서 구리 기둥을 주조해 세우고, 두 거기(竇車騎)는 연연산(燕然山)에서 돌에 공을 새기었다. 그러나 끝내 제해(鯷海)에서 날뛰는 고래를 뒤집어엎지 못하였고, 낭산(狼山)에서 치달리는 큰 돼지를 끊어 없애지 못하였다. 더구나 구수(丘樹)가 없어져서 명성(名聲)은 들리지 않고, 원정(圓鼎)이 전하지 않아 문서에 기록되지 않았던 데이겠는가.
어리석은 이 오랑캐들은 섬에 숨어 살면서 구이(九夷)를 금대(襟帶)로 삼고 만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험고함을 믿고서 감히 천륜을 어지럽혔다. 그리하여 동쪽으로는 친한 이웃을 정벌하면서 밝은 조칙(詔勅)을 어겼고, 북쪽으로는 반역의 무리들과 연계하여 사나운 소리에 호응하였다. 더구나 밖으로는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는 요사한 계집을 믿어, 형벌이 미치는 바는 오직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였고, 총애가 가해지는 바는 반드시 간사한 아첨꾼이었다. 이에 표매(標梅)가 원망을 품고 저축(杼)이 슬픔을 머금었다.
우리 황제께서는 두 가지를 체득해서 존귀한 자리에 있으시고, 세 가지 일에 통달하여 표준을 세우셨으니, 주형(珠衡)에 경사가 흐르고, 일각(日角)에 빛이 번쩍였다. 이에 오서(五瑞)가 모여서 백신(百神)이 조알하고, 만물을 신묘하게 해서 육변(六辯)을 탔으며, 서북쪽에서는 천주(天柱)를 바르게 하고 동남쪽에서는 지뉴(地紐)를 돌리셨다. 대저 용도(龍圖)를 진열하고, 봉기(鳳紀)를 모으고, 금경(金鏡)을 매달고, 옥촉(玉燭)을 가지런히 하셨는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서 다 죽어 가던 물고기를 구해 주었고, 기울어진 새집에서 위태롭던 새알을 건져 주시어, 살아남은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흉악한 무리들을 분하게 여기셨다. 이에 직접 백성들을 조문하면서 토죄(討罪)하지 않고, 먼저 장수에게 명하여 치게 하셨다.
사지절(使持節) 신구우이마한웅진등일십사도대총관(神丘嵎夷馬韓熊津等一十四道大摠管)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상주국(上柱國) 형국공(邢國公) 소정방(蘇定方)은 증성(曾城)에서 보루를 멀리 쌓았고, 길게 위수(委水)에서 물결을 일으켰으며, 뛰어난 계략을 무장(武帳)에서 맞추었고, 빼어난 기운은 문창(文昌)에서 나타냈다. 위곽(衛霍)을 능가하여 그 뒤를 좇지 않았고, 팽한(彭韓)을 굽어보아 하찮게 보았는바, 조운(趙雲)은 한 몸의 담력으로 용맹이 삼군(三軍)의 으뜸이 되었고, 관우(關羽)는 만인(萬人)을 대적할 힘으로 명성을 백대(百代)에 떨쳤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순국할 뜻은 화살이 쏟아지는 속에서 더욱 굳어졌고,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의를 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적의 예봉을 앞장서서 막는 데에서 빼앗기 어려웠다. 마음속에는 수경(水鏡)이 걸려 있어서 귀신도 그 형상을 감출 수가 없었고, 자질은 송균(松筠)보다 뛰어나 바람과 서리도 그 색을 바꿀 수가 없었다. 사졸을 기르고 변방 오랑캐를 어루만짐에 이르러서는 사지(四知)를 삼가고 삼혹(三惑)을 제거하였다. 빙천(氷泉)을 돌아보고 깨끗함을 드러내었고, 상백(霜柏)을 품고서 곧음을 굳게 하니, 말을 하지 않아도 시서(詩書)와 부합하였고, 행하지 않아도 법도에 딱 맞았다. 흰 구름을 거느리고서 상쾌함을 함께하였고, 푸른 솔과 더불어서 고고함을 다투었는바, 멀리 전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하매 모두 덕이 공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부대총관(副大摠管)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위장군(□□□衛將軍) 상주국(上柱國) 하박공(下博公) 유백영(劉伯英)은 위로는 □□□□□ 풍운(風雲)으로, 낭묘(廊廟)의 재주를 지니고 장상(將相)의 그릇을 품었다. 말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행동은 군사들의 법칙이 되었으며, 문장은 포백(布帛)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은 지란(芝蘭)의 향기를 풍겼다. 공적은 깃발에 드러나고 절조(節調)는 종률(鍾律)에 잘 맞았으며, 평생(平生)을 만절(晩節)보다 중하게 여기었고, 척벽(尺璧)을 촌음(寸陰)보다 가볍게 여기었다. 외효(隗囂)의 진흙을 깨뜨린 공훈을 세우고서도 항상 부족하게 여겼고, □를 평정한 계책을 세우고서도 □ 말한 적이 없었다.
부대총관 사지절(副大摠管使持節) 농주제군사 농주자사 상주국(隴州諸軍事隴州刺史上柱國) 안이공(安夷公) 동보덕(董寶德)은 □지(□志)를 크게 드날리고 웅도(雄圖)를 우뚝 세웠다. 재주는 《삼략(三略)》을 통달하였고, 계책은 □□를 운용하였다. □□ 매실을 생각하게 해 위(魏)나라 군사로 하여금 갈증을 멈추게 하였고, 솜을 채워 넣는 수고로움이 없고서도 마침내 초(楚)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추위를 잊게 하였다.
부대총관 좌영군장군(副大摠管左領軍將軍) 김인문(金仁問)은 기품과 도량이 온화하고 아담하며 기국과 식견이 침착하고 굳세어서, 소인배들의 자잘한 행위는 없었고, 군자의 고고한 풍모만이 있었으며, 무(武)는 전쟁을 그치게 하였고, 문(文) 역시 먼 데 사람을 포용하였다.
행군장사 중서사인(行軍長史中書舍人) 양행의(梁行儀)는 채운(彩雲)이 빼어남을 토하고 태양(太陽)이 빛을 드날리는 듯하여, 풍모는 진신(搢紳)들을 쓰러지게 했고, 도(道)는 아속(雅俗)에 빛났으며, 식감(識鑑)은 허곽(許郭)보다 맑았고, 명망은 순배(荀裴)보다 중하였다. 분별을 하는 것은 파도를 타고 올라 학문의 바다에서 구류(九流)를 움켜잡았고, 문장의 조리는 빼어남을 발하여 문단에서 칠택(七澤)을 가리었다.
사 태부(謝太傅)의 심오한 계책으로도 그의 말고삐를 잡는 것조차 감당할 수가 없으니, 두 진남(杜鎭南)의 원대한 계략이 어찌 그의 수레와 나란히 갈 수가 있겠는가. 잠시 동안 봉지(鳳池)에서 노닒에 고래가 날뛰던 바다가 맑게 되었다.
형국공(邢國公)이 비책(祕策)을 운용하고 효웅(驍雄)을 드날리매 음우(陰羽)는 언월(偃月)의 계책을 열고, 양문(陽文)은 효성(曉星)의 기운을 머금었다. 용도(龍韜)와 표령(豹)은 반드시 마음속에서 드러나고, 현녀(玄女)황공(黃公)은 모두 신묘한 쓰임에 모였다. 더구나 하늘에 닿도록 개미처럼 모여들고 땅을 빙 둘러 벌 떼처럼 날아드는 데이겠는가.
단호(短狐)가 모래를 머금은 것과 흡사하고, 장사(長蛇)가 안개를 토해 내는 것과 비슷하여 군영(軍營)을 연결하면 표랑(豹狼)이 길에 가득 차고 진영을 치면 효경(梟獍)이 산에 가득하였다. 이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이 궁벽지고 험한 곳을 지키고 있으면서는 천균(千鈞)의 무게로 떨어뜨려 매달린 줄이 장차 끊어지고, 구정(九鼎)의 무게로 짓눌러서 쌓아 올린 바둑돌이 먼저 위태롭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에 가을 풀이 마르니 차가운 산이 고요하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니 살기(殺氣)가 엄해졌다. 빠른 걸음은 번개와 더불어 빨리 날기를 다투고,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천둥과 함께 다투어 진동하였다. 풍륭(豐隆)에게 명하여 후방을 방위하게 하고, 열결(列缺)을 틀어잡아 선봉에 서게 하였다. 나쁜 기운과 요사스런 기운은 창과 방패로 쓸어 버리고, 높은 성과 가파른 성가퀴는 병거(兵車)로 부수었다.
좌□군총관 우둔위낭장 상주국(左□軍摠管右屯衛郞將上柱國) 축아사(祝阿師)와 우일군총관 사지절 치주자사 상주국(右一軍摠管使持節淄州刺史上柱國) 우원사(于元嗣)는, 지방은 관하(關河)에 처해 있고 재주는 문무(文武)를 함께 타고났다. 산서(山西)의 장한 기운을 끼고 있고, 기북(冀北)의 뜬구름을 탔으므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 강과 바다가 파도를 멈추고,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치면 바람과 우레가 소리를 끊었다.
우이도부총관(嵎夷道副摠管) 우무후중랑장(右武侯中郞將) 상주국(上柱國) 조계숙(曹繼叔)은 오랫동안 정벌하는 데 참여하여 온갖 어려운 일을 다 겪었는데, 억지로 먹었던 염파(廉頗)와 달랐고, 늙은 신하였던 조충국(趙充國)과 같았다.
행군장사(行軍長史) 기주사마(沂州司馬) 두상(杜爽)은, 자질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빛나고, 아름다움은 계수나무 밭에 흘렀다. 바람을 따르고 번개를 밟아 서해에서 빠른 발굽을 달리고, 구름을 밀치고 물을 쳐 남명(南溟)에서 강한 깃을 치니, 천리마의 발굽이 이미 펴지고, 봉지(鳳池)를 빼앗을 만하였다.
우일군총관(右一軍摠管) 선위장군(宣威將軍) 행좌효위낭장(行左驍衛郞將) 상주국(上柱國) 유인원(劉仁願)은 효성을 바탕으로 삼아 충성을 하고, 집안을 바로하여 나라를 바로잡았다. 나이 어려서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배우고, 나이 들어서 손자(孫子)와 오자(吳子)의 병서를 읽어서, 이미 영용(英勇)한 재주를 지녔으며, 이어 문무(文武)의 도를 겸비하였다. 형국공(邢國公)이 황제의 성지(聖旨)를 받들어 반조(班條)를 맡기니, 금(金)을 곡식처럼 여겨 엿보지 않고 말을 양(羊)처럼 보아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였다.
우무위중랑장(右武衛中郞將) 김양도(金良圖)와 좌일군총관(左一軍摠管) 사지절(使持節) 기주자사(沂州刺史) 상주국(上柱國) 마연경(馬延卿)은 모두 철석(鐵石) 같은 마음을 지녔고 각자 응전(鷹鸇) 같은 뜻을 가다듬었다. 이에 삼하(三河)의 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육군(六郡)의 좋은 집안 자제들을 거느렸다.
형국공(邢國公)은 위로 신묘한 계책을 받들고 아래로 절도(節度)의 임무를 전담하였다. 혹 중권(中權)으로 진을 함락하기도 하고, 혹 후경(後勁)으로 선봉이 되게도 하여, 하늘로 솟구치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기묘한 계책이 천 번 변하고 만 번 변하며, 멀리까지 이르고 깊은 데까지 파고드는 신묘한 계책이 번개같이 일어나고 바람처럼 행해졌다. 이에 성기(星紀)가 옮겨지기도 전에 아름다운 명성이 길에 가득하였다.
형국공은, 어짊은 □선(□扇)하는 것과 같고 은혜는 투료(投醪)하는 것처럼 깊었다. 명을 거스르는 자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와 같은 위엄으로 쳐 죽이고, 귀순하는 자에 대해서는 봄 이슬과 같은 은택으로 적셔 주었다. 한 번 출동해서 구종(九種)을 평정하고, 두 번째 출동해서 삼한(三韓)을 평정하였다. 그런 다음 유홍(劉弘)의 척서(尺書)를 내리자 천성(千城)이 모두 그 덕을 우러르고, 노련(魯連)의 비전(飛箭)을 쏘자 만리가 모두 그 은혜를 머금었다.
백제의 왕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 융(隆) 이외에 왕자 효(孝) 등 13인이 대수령(大首領)과 대좌평(大佐平)인 사타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명과 함께 이미 겹겹의 포위 속에 들어 있어 포로로 잡혔다. 이들에게 무기를 버리게 하고 우마차에 실은 다음 사훈(司勳)에게 올리고, 청묘(淸廟)에 바쳤다. 이어 사나운 풍속을 바꾸어서 현묘한 꾀에 젖어 들게 하였다.
휘장을 걷고 면복(冕服)을 보임에 있어서는 먼저 충성스럽고 성실한 자를 택하고, 생선을 삶고 비단옷을 만듦에 있어서는 반드시 어질고 착한 사람을 선발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만 부절(符節)을 나눔에 공적이 공황(龔黃)보다 훨씬 뛰어나고, 현(絃)을 울림에 명성이 탁로(卓魯)보다 높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5도독(都督), 37주(州), 250현(縣)을 두었으며, 호구 수는 24만 호이고, 인구는 620만 명인데, 이들을 각각 편호(編戶)로 가지런하게 하고 모두 오랑캐의 풍습을 바꾸게 하였다.
무릇 동관(東觀)에 쓰고 남궁(南宮)에 기록하는 것은 그 착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이정(彝鼎)에 새기고 경종(景鍾)에 새기는 것은 그 공적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나 능주장사 판병조(陵州長史判兵曹) 하수량(賀遂亮)은 외람되이 용렬한 재주를 가지고 잘못 문한(文翰)의 직임을 맡았다. 학문은 조두(俎豆)를 가벼이 여기고 기운은 풍운(風雲)을 중하게 여겼다. 직함은 장군이라 불려 염파(廉頗)와 줄을 나란히 하기를 원하고, 벼슬은 박사라 칭해져 가의(賈誼)와 더불어 우열을 다투기를 바랐다. 용모가 쇠약했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장한 절개를 품고서 해외에서 창을 들고 티끌만큼이나마 공을 세우고자 하여, 이에 3년 동안 적들 속에 있으면서 아홉 번 도적들을 꺾었다. 빗돌을 세우고자 함에 있어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하였는바, 이에 쓸데없는 말은 내버리고 공경히 직필(直筆)을 휘둘러서, 이루어진 일만을 쓰고 부화(浮華)한 말은 취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변하도록 천지와 더불어 영원하고, 모래톱에 울도(鬱島)가 옮겨지도록 일월과 더불어 장구하리라.
그 명(銘)은 다음과 같다.

아득하고 아득한 아주 먼 옛날 / 悠悠邃古
망망하고 망망했던 그 처음에 / 茫茫厥初
인륜은 혼돈하여 어두웠으나 / 人倫草昧
천지 자연 이치는 시작되었네 / 造化權輿
겨울에는 움집 살고 여름에는 굴 / 冬巢夏穴
새들처럼 떠돌면서 살아왔다네 / 鷇飮鶉居
결승(結繩)과 계목(鍥木)으로 의사 통하고 / 以結以刻
들짐승을 사냥하고 고기 잡았네 / 或畋或漁
순박했던 풍속은 이미 지나고 / 淳源旣往
천지 대도 몰락되어 없어졌다네 / 大道淪胥
그러다가 삼황오제 시대가 되어 / 爰及三五
대대로 한 주인이 아니었다네 / 代非一主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선위하였고 / 揖讓唐虞
탕 임금과 무왕은 혁명하였네 / 革命湯武
위로는 칠정을 바르게 하고 / 上齊七政
아래로는 구토를 고르게 했네 / 下均九土
여러 차례 무기 들고 전쟁하여서 / 屢擾干戈
그리하여 온 천하를 맑게 하였네 / 式淸區宇
그러나 서쪽 담을 못 적셨으니 / 未漸西掖
그 어찌 동쪽 집에 미치었겠나 / 豈覃東戶
아, 우리 거룩하신 황제께서는 / 粵我聖皇
지니신 도 하늘과 딱 맞았다네 / 道叶穹蒼
천고에 밝고 밝은 거울이라서 / 瑩鏡千古
사방의 뭇 왕 모두 받아들였네 / 牢籠百王
아득하니 멀고 먼 변방 나라와 / 逖矣遠徼
까마득히 멀리 있는 대황 지역이 / 遐哉大荒
모두 와서 정삭을 받아서 갔고 / 咸稟正朔
아울러 봉강에 참예하였네 / 幷通封疆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 구종들은 / 蠢玆九種
혼자서만 삼광과 막혀 있었네 / 獨隔三光
은혜 베푼 나라에 흉악 부렸고 / 叛渙澤國
수향에서 깔보아 능멸하였네 / 馮陵水鄕
하늘이 날랜 장수 내려 보내매 / 天降飛將
날랜 군사 한꺼번에 일어났다네 / 豹蔚龍驤
활에는 달그림자 머금어 있고 / 弓含月影
검에서는 별빛이 번쩍였다네 / 劍動星芒
표범처럼 날랜 군사 일백만 명이 / 貔貅百萬
번개처럼 바람처럼 일어났다네 / 電擧風揚
앞에서는 반목을 이미 베었고 / 前誅蟠木
물러나선 부상을 베어 버렸네 / 却翦扶桑
얼음은 여름 해에 녹아 흐르고 / 氷銷夏日
잎은 가을 서리 맞아 부서졌다네 / 葉碎秋霜
헌걸차고 씩씩할사 오영 군사고 / 赳赳五營
밝고도 밝을사 삼령이라네 / 明明三令
위로는 묘당 계략 들어맞췄고 / 仰叶廟略
아래로는 군정을 바르게 했네 / 附齊軍政
바람 엄해 초목들은 시들어졌고 / 風嚴草衰
날씨 차서 강물은 깨끗해졌네 / 日寒江淨
서릿발 같은 창은 밤에 동하고 / 霜戈夜動
구름 깃발 새벽에 휘날렸다네 / 雲旗曉映
월나라의 방패가 앞장을 서고 / 越戟前驅
오나라의 갈고리가 뒤를 막누나 / 吳鉤後勁
간악한 우두머린 머릴 바치고 / 巨猾授首
도망쳤던 자들은 목숨 청하네 / 逋誅請命
위엄과 은혜가 -원문 2자 빠짐- / 威惠□□
변방 땅이 벌써 다 평정되었네 / 邊隅已定
아름다운 나무를 베지 않으매 / 嘉樹不翦
감당에는 노랫소리 울리는구나 / 甘棠在詠
화대에서 하늘 뜬 달 바라다보니 / 花臺望月
패전이 허공중에 떠서 있구나 / 貝殿浮空
성긴 종소리는 밤에 울리고 / 疎鍾夜鏗
맑은 범패 소리는 새벽에 우네 / 淸梵晨通
이 보찰에 빗돌을 깎아 세워서 / 刊玆寶刹
거기에다 특별한 공 기록하나니 / 用紀殊功
하늘 문을 가로막아 단단도 하고 / 拒天關以永固
땅의 축을 가로질러 무궁하리라 / 橫地軸以無窮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소미재난정고(蘇米齋蘭亭考)》 -옹방강(翁方綱)이 찬하였다.- 에 이르기를, “고려에서 탁본을 뜬 당나라 정원(貞元) 16년(800) 신라의 무장사비(鍪藏寺碑)와 회인대아(懷仁大雅)가 찬집한 왕 우군(王右軍)의 글자를 보면, 숭(崇) 자 아래에 세 점이 모두 완전하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고구려국의 집당태종서비(集唐太宗書碑)를 보면 천(遷) 자가 저수량본(褚遂良本)의 난정첩(蘭亭帖)과 서로 합치되는데, 대개 천(遷) 자의 ‘西’ 아래 부분이 좌변에 있는 한 개의 직필(直筆)로 인하여 조금 비어 있으므로, 그 사이의 가로로 그은 긴 획을 바깥쪽으로 삐쳐서 중간에 없어져 버린 한 가로획을 채우고 있다.” 하였다.
무장사비는 신라의 수대남령(守大南令) 김육진(金陸珍)이 찬하고 쓴 것인데, 비문은 행서(行書)이고, 절은 경주부(慶州府)에 있으며, 비석은 모두 마멸되어 읽을 수가 없다. 집당태종서비는 바로 고려의 흥법사비(興法寺碑)로, 절은 원주(原州) 건등산(建登山)에 있으며, 세속에서는 진공대사비(眞空大師碑)라고 부른다. 고려 태조 23년(940) 7월에 왕사(王師) 충담(忠湛)이 죽자, 이곳에 탑을 건립하고 친히 비문을 지은 다음 최광윤(崔光胤)에게 명하여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모각(摸刻)하게 한 것이다.

부록(附錄)
○ 정관(貞觀) 22년(648, 진덕여왕2)에 신라의 왕이 김춘추(金春秋)를 파견하여 조회하자, 태종이 자신이 지은 온탕비(溫湯碑)와 진사비(晉祠碑)를 하사하였다. 《구당서》
○ 절강(浙江) 전당(錢塘)에 있는 고려사견면차부비(高麗寺蠲免箚付碑)는 정서(正書)로 썼다. 음기(陰記)는 주필정(周必正)의 정서이고, 순희(淳煕) 7년(1180, 명종10) 5월에 세웠다.
○ 전당에 있는 고려사첩(高麗寺牒)은 행서(行書)이다. 보경(寶慶) 3년(1227, 고종14) 1월에 세웠다.
○ 전당에 있는 고려혜인교사칙첩비(高麗慧因敎寺勅牒碑)는 행서이다. 소정(紹定) 4년(1231, 고종18) 11월에 세웠다.
○ 전당에 있는 고려 혜인사(慧因寺)의 잔비(殘碑)는 행서이다. 세워진 날짜가 없으며, 군기감승 주□(軍器監丞周□)의 이름이 있다. 《이상 모두 환우방비록(寰宇訪碑錄)》


 

[주D-001]환도산(丸都山)에 …… 새겨 놓았다 : 이병도는 이에 대해, “환도산에 새겨 놓았다는 것은, 환도를 함락시킨 뒤에 관구검이 환도성의 북쪽, 곧 지금의 소판분령(小板岔嶺)에 비석을 세운 것을 말한 것이고, 불내성(不耐城)에 새겨 놓았다는 것은, 낙랑 태수 유무(劉茂)와 대방 태수 궁준(弓遵)이 고구려군이 점거하였던 동예(東濊) 지방의 불내성을 쳐서 항복받고 그곳에 비석을 세운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이병도, 國譯三國史記, 1977, 을유문화사, 265쪽 주》
[주D-002]주필산(駐蹕山) : 지금의 요령성 요양현(遼陽縣)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일명 수산(首山)이라고도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주(注)에는, “《구당서》를 살펴보건대, 그 산의 본래 이름은 육산(六山)이다.” 하였다.
[주D-003]비(碑)는 …… 남아 있다 : 이 비의 높이는 136.4cm이고, 폭은 218.2cm이며 행수는 118행이고,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대략 1800자이다. 비가 들어 있는 탑은 부여읍 동남리(東南里)에 위치해 있는데, 높이가 1060.5cm이고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으로 불린다. 여기서 말한 118행은 원문에는 ‘九百十八行’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D-004]대당평백제국탑비명(大唐平百濟國塔碑銘) : 이 비문은 마멸된 글자가 많은 탓에 《해동역사》에 실려 있는 비문과 그 이후에 학자들이 판독한 비문의 글자가 다른 것이 있으므로 이들을 근거로 교감(校勘)하여 번역하였다. 교감하는 데 참고한 자료는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이며, 이들을 각각 三, 海, 朝, 韓으로 약하여 표기하였다. 《한국고대금석문(韓國古代金石文) (韓國古代社會硏究所)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1992》에 김영심(金英心)의 교감과 번역이 실려 있다.
[주D-005]천유(天維) : 하늘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밧줄을 말한다.
[주D-006]지락(地絡) : 땅의 맥락, 즉 지맥(地脈)을 말한다.
[주D-007]칠덕(七德) : 무왕(武王)의 일곱 가지 덕으로, 금포(禁暴), 집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豐財)를 말한다.
[주D-008]오병(五兵) : 다섯 가지의 병기로, 과(戈), 수(殳), 극(戟), 추모(酋矛), 이모(夷矛)를 말한다.
[주D-009]가병(佳兵) : 견고한 갑옷이나 날카로운 병기를 말하기도 하고, 무력을 쓰기를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주D-010]흉수(洶水)에서 재앙을 끼치다가 : 원문에는 ‘洶水挻祅’로, 朝에는 ‘洶水挻祓’로, 三과 海에는 ‘洶水挻祅’로, 韓에는 ‘洶水挺祓’로 되어 있다. ‘洶水挻祅’가 맞을 듯하다. 흉수는, 자세하지는 않으나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물 이름인 듯하다.
[주D-011]구영(九) : 구영(九嬰)이다. 수화(水火)의 괴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주D-012]동정(洞庭)에서 …… 주살된 데 : ‘洞庭’이 朝와 韓에는 ‘洞底’로 되어 있다. 동정은 하남(河南)에 있는 큰 호수이고, 삼묘(三苗)는 요순 시대 때에 있었던 남방의 오랑캐이다. 삼묘가 동정호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요 임금에 의해 정벌되었다.
[주D-013]당도(當塗) : 한나라를 멸망시킨 삼국 시대의 위(魏)나라를 가리킨다. 한나라 때 참서(讖書)에 ‘한나라를 대신할 자는 당도고(當塗高)이다’란 말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이현(李賢)의 주(注)에, “당도고란 것은 위(魏)이다.” 하였다.《後漢書 卷75 袁術列傳》
[주D-014]전오(典午) : 조씨(曹氏)가 세운 위(魏)나라를 멸망시킨, 사마씨(司馬氏)가 세운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진(晉)나라를 가리킨다. 전오는 사마(司馬)의 은어(隱語)이다.
[주D-015]착문(鑿門) : 흉문(凶門), 즉 북문(北門)을 연다는 뜻으로, 고대에 장수가 출정(出征)할 때 북문을 열고 나가 결사 항전할 결심을 보였다.
[주D-016]추곡(推轂) : 수레를 민다는 뜻으로, 장수를 임명하는 예(禮)를 말한다. 고대에 장군을 임명할 때 임금이 우대하는 뜻을 보이기 위해 행하던 예이다.
[주D-017]마 복파(馬伏波)는 …… 세우고 : 마 복파는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가리킨다. 마원이 건무(建武) 연간에 교지(交趾)를 평정하고 한나라의 끝 지점에 구리 기둥을 세워 국경을 표시하였다.
[주D-018]두 거기(竇車騎)는 …… 새기었다 : 두 거기는 한나라의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으로, 두헌이 흉노를 정벌하고는 반고(班固)에게 명하여 연연산(燕然山)의 돌에다가 공을 기록하게 하였다.
[주D-019]제해(鯷海)에서 날뛰는 고래 : 제해는 중국 회계(會稽) 지방의 바깥에 있는 바다이고, 분경(奔鯨)은 마구 날뛰는 고래로, 여기서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20]낭산(狼山)에서 치달리는 큰 돼지 : 낭산은 하북성 청원현(靑苑縣)의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고, 봉시(封豕)는 큰 돼지로 사나운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는 돌궐(突厥)을 가리키는 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기에 앞서 돌궐을 정벌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21]구수(丘樹) : 구목(丘木)으로, 옛날에 묘지의 곁에 심어 묘역을 보호하던 나무를 말한다.
[주D-022]원정(圓鼎) : 둥근 솥으로, 옛날에 공을 기록할 적에 솥에다가 새겼다.
[주D-023]구이(九夷) : 아홉 개의 오랑캐 종족으로,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이다.
[주D-024]친한 이웃 : 신라를 가리킨다.
[주D-025]반역의 무리들 : 고구려를 가리킨다.
[주D-026]표매(標梅) : 시집갈 나이가 된 여자를 말한다.
[주D-027]저축(杼) : 베틀의 북으로, 여기서는 부녀자들을 가리킨다.
[주D-028]두 가지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본받는 것을 말한다.
[주D-029]세 가지 일 : 사람을 가려 뽑고, 백성의 뜻을 따르며, 시대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주D-030]주형(珠衡) : 눈두덩이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생긴 골상(骨相)으로, 옛날에 관상가(觀相家)들이 성현(聖賢)의 상으로 여겼다.
[주D-031]일각(日角) : 이마의 중앙 부분이 불쑥 튀어나와 해의 모양처럼 된 것으로, 관상가들이 크게 귀한 상으로 여겼다.
[주D-032]오서(五瑞) : 다섯 가지의 상서로운 것으로, 황룡(黃龍), 백록(白鹿), 연리목(連理木), 가화(嘉禾), 감로(甘露)를 말한다.
[주D-033]육변(六辯) : 자세하지는 않으나, 육부(六府)인 듯한데, 육부는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이다.
[주D-034]천주(天柱) :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기둥을 말한다.
[주D-035]지뉴(地紐) : 고대 신화에 나오는 지기(地紀)로, 땅을 묶고 있다는 큰 끈을 말한다.
[주D-036]용도(龍圖) : 하도(河圖)로, 복희씨(伏羲氏) 때 용마(龍馬)가 하수(河水)에서 도(圖)를 등에 업고 나왔다고 한다.
[주D-037]봉기(鳳紀) : 봉력(鳳曆)으로, 역수(曆數)와 정삭(正朔)을 말한다.
[주D-038]금경(金鏡) : 밝고도 밝은 정도(正道)를 말한다.
[주D-039]옥촉(玉燭) : 사시(四時)의 기운이 화창한 것으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주D-040]기울어진 …… 건져 주시어 : 원문에는 ‘極危卵於傾巢’로, 다른 데에는 ‘拯危卵於傾巢’로 되어 있다. 후자가 맞다.
[주D-041]증성(曾城) : 층성(層城)으로, 곤륜산(崑崙山)에 있다고 하는 성이다. 소정방이 정관(貞觀) 초에 이정(李靖)을 따라가 적구(磧口)에서 돌궐을 쳤으므로 이른 말인 듯하다.
[주D-042]보루를 멀리 쌓았고 : 원문에는 ‘疊遠構’로 되어 있는데, ‘壘遠構’의 잘못인 듯하다.
[주D-043]위수(委水) : 사수(娑水)의 잘못인 듯하다. 《구당서》 권83 소정방열전(蘇定方列傳)에, “전군총관(前軍摠管)이 되어 응사천(鷹娑川)에 이르렀는데, 돌궐(突厥)의 군사 2만 명이 와서 항거하였다.” 하였다.
[주D-044]무장(武帳) : 다섯 가지 병기를 두는 방으로, 군대의 막사를 말한다.
[주D-045]문창(文昌) : 위(魏)나라의 정전(正殿) 이름이다. 당나라 낙빈왕(駱賓王)의 주석편(疇昔篇)에, “창을 휘두르면서 무장에 나가고, 붓을 메고서 문창으로 들어간다.[揮戈出武帳 荷筆入文昌]” 하였다.
[주D-046]위곽(衛霍) : 원문과 三, 海에는 ‘李郭’으로, 韓에는 ‘衛郭’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투식으로 볼 때 ‘衛郭’이 맞는 듯하다. 위곽은 전한 때의 명장(名將)인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이름을 날렸다.
[주D-047]팽한(彭韓) : 한나라 때의 명장인 팽월(彭越)과 한신(韓信)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세웠다.
[주D-048]조운(趙雲) : 삼국 시대 촉(蜀)의 무장으로, 자가 자룡(子龍)이다.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에게 패해 달아날 때 혼자서 유비의 처자식을 구하였다.
[주D-049]관우(關羽) : 촉나라의 명장으로, 자가 운장(雲長)이다. 유비, 장비(張飛)와 함께 결의형제를 맺었으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주D-050]송균(松筠) : 소나무와 대나무로, 절개가 굳센 것을 비유한다.
[주D-051]사지(四知) :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상대가 아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왕밀(王密)이 양진(楊震)에게 금을 바치면서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하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하여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하니, 왕밀이 부끄러워하면서 나갔다고 한다.《後漢書 卷54 楊震列傳》
[주D-052]삼혹(三惑) : 사람을 미혹시키는 술, 여색, 도박 세 가지를 말한다.
[주D-053]풍운(風雲) : 원문에는 ‘風□’로, 朝와 韓에는 ‘風雲’으로, 三에는 ‘風委’로 되어 있다.
[주D-054]만절(晩節) : 원문에는 ‘晩□’로, 韓에는 ‘脫節’로, 나머지에는 ‘晩節’로 되어 있다. ‘晩節’이 맞을 듯하다.
[주D-055]외효(隗囂)의 진흙 : 험고한 데 웅거해 있으면서 굳게 지키고 있는 군사를 말한다. 외효는 후한 때 사람으로,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말기에 농서(隴西)에서 기병하여 한나라에 호응하였으나, 그 뒤에 공손술(公孫述)에게 붙어서 한나라에 대항하였다. 외효의 장수였던 왕원(王元)이 외효에게 “제가 대왕을 위하여 한 덩이의 진흙으로 동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봉쇄하겠습니다.” 하였다.《東觀漢記 隗囂載記》
[주D-056]동보덕(董寶德) : 이 부분이 원문에는 ‘董寶□’로, 三에는 ‘董寶亮’으로, 海와 韓에는 ‘董寶德’으로 되어 있다.
[주D-057]삼략(三略) : 한나라의 장량(張良)이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병서(兵書)로, 상략(上略), 중략(中略), 하략(下略)의 세 권으로 되어 있다.
[주D-058]매실을 …… 하였고 : 원문에는 ‘□□眞梅’로 되어 있는데, ‘□□思梅’일 듯하다. 위나라의 무제(武帝)가 목마른 군사들에게 앞에 매화나무 숲이 있으니 그곳까지 가면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속이고 군사들을 전진하게 한 고사로, 임기응변의 계책을 말한다.《世說新語 假譎》
[주D-059]솜을 …… 하였다 : 원문에는 ‘□□楚卒忘寒’으로, 三에는 ‘終使楚卒忘寒’으로 되어 있다. 초(楚)나라가 겨울에 소(蕭)를 정벌할 적에 초왕이 삼군을 순시하면서 군사들을 격려하자, 삼군의 군사들이 모두 솜옷을 입은 것처럼 여겨 추위를 잊었다고 하는 고사로, 임금이 물품을 하사하거나 은혜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春秋左氏傳 宣公12年》
[주D-060]허곽(許郭) : 후한의 허소(許劭)와 곽태(郭泰)로, 이들은 모두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아서 많은 후진들을 등용시켰다.
[주D-061]순배(荀裴) : 순숙(荀淑)과 배도(裴度)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62]분별을 …… 올라 : 원문에는 ‘辯箭騰波’로, 三에는 ‘辨箭騰波’로 되어 있다.
[주D-063]구류(九流) : 선진(先秦) 시대의 9개 학파로, 유가(儒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묵가(墨家),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를 말한다.
[주D-064]칠택(七澤) : 초(楚) 땅에 있다고 하는 운몽택(雲夢澤) 등 일곱 개의 소택(沼澤)을 가리킨다.
[주D-065]사 태부(謝太傅) : 원문에는 ‘□太傅’로 되어 있다. 태부를 지낸 사람 가운데에는 진(晉)나라의 사안(謝安)이 가장 유명한바, 사안일 듯하다. 사안은 자가 안석(安石)으로, 처음에는 벼슬하지 않고 있다가 나이 40이 넘어서 비로소 벼슬길에 나가 태부에까지 이르렀는데, 동진(東晉)의 명상(名相)으로 일컬어진다.
[주D-066]말고삐를 …… 없으니 : 원문에는 ‘□堪捧轡’로, 다른 데에는 ‘未堪捧轡’로 되어 있다.
[주D-067]두 진남(杜鎭南) : 진(晉)나라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를 가리킨다. 두예는 양호(羊祜)의 뒤를 이어 군대를 맡고서는 양호가 한 것처럼 갑옷을 입지 않은 채 항상 가벼운 옷을 입고 허리띠를 느슨히 풀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군사들이 정제(整齊)되어 오(吳)나라를 평정하였다.《晉書 卷34 杜預列傳》
[주D-068]어찌 …… 있겠는가 : 원문에는 ‘僅可幷輪’으로, 韓에는 ‘何可幷輪’으로 되어 있는데, 韓에 따라 번역하였다.
[주D-069]봉지(鳳池) : 흔히 중서성(中書省)의 별칭으로 쓰이나, 우리나라나 일본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70]효웅(驍雄)을 드날리매 : 원문에는 ‘□驍雄’으로, 다른 데에는 ‘縱驍雄’으로 되어 있다.
[주D-071]용도(龍韜)와 표령(豹) : 모두 태공망(太公望)의 병법 가운데 하나인데, 대개 병법이나 전략(戰略)의 의미로 쓰인다.
[주D-072]현녀(玄女) : 전설 속에 나오는 천상의 선녀로, 일찍이 황제(黃帝)에게 병법을 주어 치우(蚩尤)를 제압하게 하였다고 한다.
[주D-073]황공(黃公) : 진(秦)나라 말기에 장량(張良)에게 병법서를 준 황석공(黃石公)을 가리킨다.
[주D-074]단호(短狐)가 …… 머금은 것 : 고대 전설에 나오는 괴물인 물여우를 말한다. 물여우가 물속에 숨어 있다가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모래를 뿜어 사람을 쏘는데, 그 모래에 맞은 사람은 곧바로 병이 들어 죽는다고 한다.《搜神記 卷12》
[주D-075]장사(長蛇)가 …… 비슷하여 : 원문에는 ‘異長蛇之吐霧’로 되어 있고, 다른 데에는 ‘似長蛇之吐霧’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문리가 부드럽기에 후자에 따라 번역하였다. 장사는 큰 뱀으로 탐학스럽고 흉포한 자를 가리킨다.
[주D-076]표랑(豹狼) : 사나운 짐승인 승냥이와 이리로, 큰 해독을 끼치는 간악한 자를 말한다.
[주D-077]효경(梟獍) : 효는 제 어미를 잡아먹는 새인 올빼미를 말하고, 경은 제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으로, 모두 악인(惡人)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78]이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 원문에는 ‘以北凶徒’로, 다른 데에는 ‘以此凶徒’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다.
[주D-079]구정(九鼎) : 우(禹) 임금이 만든 아홉 개의 큰 솥으로, 아주 무거운 것을 뜻한다.
[주D-080]풍륭(豐隆) : 고대의 전설 속에 나오는 뇌신(雷神)의 이름이다.
[주D-081]열결(列缺) : 원문과 三, 朝에는 ‘列缺’로, 韓에는 ‘烈缺’로 되어 있다. 열결(列缺)은 섬광(閃光)을 말한다.
[주D-082]좌□군총관(左□軍摠管) : 아래에 ‘右一軍摠管’이 있는 것으로 보아 ‘左一軍摠管’일 듯하다.
[주D-083]축아사(祝阿師) : 원문에는 ‘祝□□’으로, 다른 데에는 ‘祝阿師’로 되어 있다.
[주D-084]우원사(于元嗣) : 원문에는 ‘于允嗣’로, 다른 데에는 ‘于元嗣’로 되어 있다.
[주D-085]관하(關河) : 함곡관(函谷關)과 황하(黃河)를 가리킨다.
[주D-086]산서(山西) : 효산(崤山)과 화산(華山)의 서쪽 지방으로 옛날부터 이쪽 지방에서는 명장(名將)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한서(漢書)》 권69 조충국전(趙充國傳)에, “진한(秦漢) 이래로 산동에선 재상이 나오고 산서에선 장수가 나왔다.” 하였다.
[주D-087]기북(冀北) : 기주(冀州)의 북방 지역으로, 천리마(千里馬)가 생산되는 곳이다.
[주D-088]억지로 먹었던 염파(廉頗) : 염파는 조(趙)나라의 명장이다. 조나라가 진(秦)나라의 군사에게 자주 패하자, 조왕이 당시 늙어서 세력을 잃고 양(梁)으로 물러나 있던 염파를 다시 등용하고자 하여, 사자(使者)를 보내어 염파가 아직 쓸 만한지 살펴보게 하였다. 염파는 사자와 만나면서 쌀 한 말의 밥과 고기 10근을 먹고 갑옷을 입고 말에 타 아직도 건장하다는 것을 과시하였는데, 염파를 싫어하고 있던 자의 뇌물을 받아먹은 사자가 돌아와서 조왕에게 아뢰기를, “염 장군이 비록 늙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밥도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신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 세 번이나 똥을 쌌습니다.” 하니, 조왕이 늙었다고 여기고 소환하지 않았다.《史記 卷81 廉頗列傳》
[주D-089]늙은 신하였던 조충국(趙充國) : 조충국은 한나라 때의 명장이다. 한나라 선제(宣帝) 때 서강(西羌)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충국은 70세의 늙은 나이로 나가 싸워서 이를 평정한 다음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군사를 정돈하여 돌아왔다.《漢書 卷69 趙充國傳》
[주D-090]기주 사마(沂州司馬) : 원문에는 ‘岐州司馬’로, 다른 데에는 ‘沂州司馬’로 되어 있다.
[주D-091]반조(班條) : 조교(條敎)를 만들어 부로(父老), 사수(師帥), 오장(伍長) 등이 있는 곳에 두어 민간에 시행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때의 순리(循吏)인 황패(黃霸)가 영천 태수(潁川太守)로 있으면서 황제가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고 하는 뜻을 받들어서 반조(班條)하였다.《漢書 卷89 黃霸傳》
[주D-092]말을 양(羊)처럼 보아 : 원문에는 ‘馬如□’로, 다른 데에는 ‘馬如羊’으로 되어 있다.
[주D-093]응전(鷹鸇) 같은 뜻 : 새매가 새를 잡듯이 용맹을 떨치고자 하는 뜻을 말한다.
[주D-094]삼하(三河) : 하내(河內), 하남(河南), 하동(河東)의 세 군을 말한다.
[주D-095]육군(六郡) : 한나라 때의 농서(隴西), 천수(天水), 안정(安定), 북지(北地), 상군(上郡), 서하(西河)의 여섯 군을 말한다. 이 지방은 융적(戎狄)들과 가까이 있는 탓에 사람들이 무예를 숭상하였다고 한다.
[주D-096]중권(中權) : 삼군(三軍) 가운데 주장(主將)이 있는 중군(中軍)을 가리키기도 하며, 또는 중군에서 정한 전략을 말하기도 한다.
[주D-097]후경(後勁) : 후군(後軍)에 배치한 강력한 군사를 말한다.
[주D-098]성기(星紀)가 …… 전에 : 원문에는 ‘星□□□’로, 海와 韓에는 ‘星紀未移’로, 三에는 ‘星□律移’로 되어 있다. ‘星紀未移’가 맞을 듯하다. 성기는 성차(星次)의 이름이다.
[주D-099]□선(□扇) : 다른 데에는 ‘轉扇’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명확하지 않다.
[주D-100]투료(投醪) : 장수가 군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것을 말한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의 치욕을 갚고자 하여 아래로 백성들을 길렀는데, 술이 있으면 혼자 마시지 않고 강물에 풀어서 군사들과 함께 마셨다.《呂氏春秋 順民》
[주D-101]귀순하는 자 : 원문에는 ‘□順者’로, 다른 데에는 ‘歸順者’로 되어 있다.
[주D-102]구종(九種) : 구이(九夷)와 같은 뜻이다.
[주D-103]유홍(劉弘)의 척서(尺書) : 원문에는 ‘降謝弘之尺書’로, 다른 데에는 ‘降劉弘之尺書’로 되어 있다. 유홍은 진(晉)나라 사람으로, 혜제(惠帝) 때 정사를 처리하면서 직접 서신을 써서 지방관에게 보내어 상세하게 지시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여 “유공의 서신 한 장이 십부종사(十部從事)보다도 낫다.” 하였다.《晉書 卷66 劉弘列傳》
[주D-104]노련(魯連)의 비전(飛箭) :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을 말한다. 노련은 노중련(魯仲連)으로, 제(齊)나라의 장수이다.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연(燕)나라의 요성(聊城)을 오래도록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러자 노중련이 글을 써서 화살에 묶어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연나라의 장수가 노중련의 글을 읽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자살하자, 성안에 내분이 일어나 전단이 성을 함락시킬 수가 있었다.《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주D-105]사타천복(沙吒千福) :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조에 “흑치상지(黑齒常之)가 별부장(別部長) 사타상여(沙吒相如)와 함께 험한 곳에 웅거하였다.” 하였고,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조에는 “제감(弟監) 천복(天福)을 당나라에 보내어 전공(戰功)을 고하였다.” 하였는바, 사탁은 성이고 천복은 이름인 듯하다.
[주D-106]포로로 잡혔다 : 이때 당나라 군사가 쳐들어오자 의자왕은 태자 효(孝)와 함께 북변(北邊) 즉 신라본기에서 말하는 웅진(熊津)으로 도망치고 차자인 태(泰)가 왕이 되어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효의 아들인 문사(文思)가 줄을 타고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며, 소정방의 군대가 성첩으로 올라오자 태도 역시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國譯三國史記 卷28 義慈王》
[주D-107]사훈(司勳) : 《주관(周官)》의 하관(夏官)에 속하는 관직으로, 공상(功賞)에 관한 일을 주관하는 관직이다.
[주D-108]청묘(淸廟) : 제왕의 종묘인 태묘(太廟)를 말한다.
[주D-109]휘장을 …… 보임 : 한나라 때 곽하(郭賀)가 형주 자사(荊州刺史)가 되어 잘 다스렸다. 명제(明帝)가 남양(南陽) 지방을 순시하다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삼공(三公)의 의복을 하사한 다음, 칙명(勅命)을 내려 함께 지방을 순시하게 하였는데, 그때 “수레의 휘장을 벗겨서 백성들로 하여금 면복을 입은 모습을 보게 하라.” 하여 덕이 있음을 드러내고, 총애하는 뜻을 표하였다.《後漢書 卷26 郭賀列傳》
[주D-110]생선을 …… 만듦 : 생선을 삶는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방도를 말한다. 《노자(老子)》에,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이 한다.” 하였다. 비단옷을 만든다는 것은 지방의 수령을 임명하는 법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31년 조에, “공자(公子) 피(皮)가 윤하(尹何)를 어떤 고을의 수령으로 삼으려고 하자, 공자 산(産)이 ‘그대에게 아름다운 비단이 있을 경우 그대는 옷 짓기를 배우는 사람에게 옷을 만들라고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니, 공자 피가 중지하였다.” 하였다.
[주D-111]부절(符節)을 나눔에 : 옛날에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부절을 나누어 한쪽은 자신이 가지고 한쪽은 제후에게 주어 뒷날에 신표로 삼았다.
[주D-112]공황(龔黃) : 전한(前漢) 시대 때의 순리(循吏)인 공수(龔遂)와 황패(黃霸)로, 이들은 모두 훌륭한 수령의 대명사로 쓰인다.
[주D-113]현(絃)을 울림에 : 관리가 정사를 함에 있어서 법도가 있어 백성들이 안락한 것을 말한다. 노(魯)나라의 자유(子遊)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예악(禮樂)으로 가르쳤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을 울리면서 노래하였다고 한다.《論語 陽貨》
[주D-114]탁로(卓魯) : 한나라 때의 탁무(卓茂)와 노공(魯恭)으로, 이들은 모두 순리(循吏)인데, 후대에는 어질고 재능이 있는 수령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주D-115]5도독(都督) …… 두었으며 :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조에, “백제국은 본디 5부(部), 37군(郡), 200성(城), 76만 호(戶)가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지역을 나누어 웅진(熊津), 마한(馬韓), 동명(東明), 금련(金漣), 덕안(德安)의 5도독부를 설치해서 각기 주현(州縣)을 통할하게 하였다.” 하였다.
[주D-116]호구 수는 …… 명인데 : 호구가 24만 호이고 인구가 620만 명이면 호당 25명이 넘으므로 이 통계는 잘못된 것 같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호구 수가 76만 호라고 하였는바, 24만 호는 74만 호의 잘못인 듯하다.《國譯三國史記 427쪽 주》
[주D-117]동관(東觀) : 동한 때 낙양(洛陽)의 남궁 안에 있던 관의 이름으로, 반고(班固) 등이 이곳에서 《동관한기(東觀漢記)》를 수찬하였다. 후대에는 국사(國史)를 수찬하는 곳을 말한다.
[주D-118]남궁(南宮) :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이다. 상서성이 열수(列宿)의 남궁에 속하므로 그렇게 칭하는 것이다. 또 예조(禮曹)를 칭하기도 한다.
[주D-119]이정(彝鼎) : 옛날의 제기(祭器) 이름으로, 표면에 공을 세운 자의 공적을 새겨 넣었다.
[주D-120]경종(景鍾) : 원문에는 ‘量鍾’으로, 다른 데에는 ‘景鍾’으로 되어 있다. 경종은 춘추 시대 때 진(晉)나라의 경종(景宗)이 만든 종으로, 경종이 이 종에다가 공훈을 새겼다.
[주D-121]그 공적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 원문에는 ‘所以表其巧’로 되어 있는데, ‘所以表其功’의 잘못인 듯하다.
[주D-122]조두(俎豆) :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조두에 관한 일은 일찍이 들었으나 군대의 일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주D-123]염파(廉頗) : 전국 시대 때 조(趙)나라의 명장이다.
[주D-124]가의(賈誼)와 …… 바랐다 : 원문에는 ‘羞共賈誼爭衡’으로 되어 있는데, 문세(文勢)로 보아 ‘羨共賈誼爭衡’일 듯하다. 가의는 전한 문제(前漢文帝) 때의 이름난 문신(文臣)이다.
[주D-125]3년 동안 : 원문에는 ‘三□賊庭’으로, 韓에는 ‘六載賊庭’으로, 海에는 ‘六載□庭’으로 되어 있다.
[주D-126]빗돌을 …… 있어서는 : 원문에는 ‘翁歸之立’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잘 통하지 않는바, 아마도 오자가 있는 듯하다.
[주D-127]공경히 직필(直筆)을 휘둘러서 : 원문에는 ‘敬僞直筆’로, 다른 데에는 ‘敬撝直筆’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다.
[주D-128]울도(鬱島) : 동해에 있다고 하는 선산(仙山)인 울주산(鬱洲山)데, 이 산은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한다.
[주D-129]결승(結繩)과 계목(鍥木) : 결승은 새끼를 매듭지어서 그 모양과 숫자로써 의사를 소통하는 것을 말하고, 계목은 나무에 표식을 새겨서 의사를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주D-130]칠정(七政) : 일, 월,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을 가리키기도 하고, 천(天), 지(地), 인(人),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D-131]구토(九土) : 구주(九州)로, 천하를 가리킨다.
[주D-132]瑩鏡千古 : 원문에는 ‘幾鏡千古’로, 다른 데에는 ‘瑩鏡千古’로 되어 있다.
[주D-133]대황(大荒) : 중국에서 아주 먼 지역을 말한다. 《산해경(山海經)》 대황동경(大荒東經)에, “동해의 밖, 대황의 안에 대언(大言)이란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나오는 곳이다.” 하였다.
[주D-134]정삭(正朔) : 정(正)은 1년의 시작을, 삭(朔)은 한 달의 시작을 의미하는데, 전하여 달력이나 역수(曆數)를 지칭한다. 제왕이 건국하면 달력을 고쳐 천하에 반포하여 통치 지역 내에서는 모두 그 달력을 행하였다.
[주D-135]幷通封疆 : 다른 데에는 ‘幷預封疆’으로 되어 있다.
[주D-136]蠢玆九種 : 원문에는 ‘蠢□九種’으로 되어 있다.
[주D-137]삼광(三光) : 해, 달, 별의 빛을 말한다.
[주D-138]獨隔三光 : 원문에는 ‘□隔三光’으로 되어 있다.
[주D-139]馮陵水鄕 : 다른 데에는 ‘憑陵水鄕’으로 되어 있다. 뜻은 같다.
[주D-140]반목(蟠木) : 전설 속에 나오는 산 이름으로, 동해 속에 있다고 한다. 일설에는 부상(扶桑)과 같은 뜻이라 한다.
[주D-141]부상(扶桑) :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나무 이름으로, 해가 뜨는 곳, 즉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주D-142]越戟前驅 : 원문에는 ‘□戟前驅’로 되어 있다. 뒷구절에 ‘吳鉤’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越戟’일 듯하다.
[주D-143]감당(甘棠) : 팥배나무로, 여기서는 당나라의 파견관들이 정사를 잘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주(周)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하여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甘棠) 시를 지어 기렸다.《史記 卷34 燕召公世家》
[주D-144]패전(貝殿) : 조개로 장식한 궁궐인 패궐(貝闕)로, 하백(河伯)이 사는 용궁(龍宮)을 가리킨다.
[주D-145]刊玆寶刹 : 원문에는 ‘刊龜□□’로, 海와 朝에는 ‘刊玆寶刹’로, 三과 韓에는 ‘刊莊寶刹’로 되어 있다.
[주D-146]현경(顯慶) …… 쓰다 : 이 부분이 원비(原碑)에는 ‘대당평백제비명(大唐平百濟碑銘)’이라고 쓴 바로 아래에 쓰여 있다.
[주D-147]무장사비(鍪藏寺碑) : 무장사는 경주시 암곡동에 있었던 사찰로, 비신(碑身)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각(集刻)한 것인데, 1915년에 그 파편 세 조각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주D-148]진사비(晉祠碑) : 진사는 산서성(山西省) 태원현(太原縣)에 있는 사당으로, 당나라 고조(高祖)가 기병(起兵)하면서 기도하였던 곳인데, 태종이 소진사명(昭晉祠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