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년산행 /2012.1.1. 불암산 산행

2012.1.1. 불암산 신년 산행

아베베1 2012. 1. 1. 11:54

 

 

 

 

 

 

 

 

 

 

 

 

 

 

 

 

 

 

 

 

 

 

 

 

 

 

 

 

사가시집 제52권
 시류(詩類)
불암산(佛巖山)


불암산 아래에 띳집 한 채가 있으니 / 佛巖山下有茅廬
문 앞에 당한 봉우리는 그림보다 좋고말고 / 當戶峯巒畫不如
오늘은 사공의 나막신을 상상하거니와 / 今日追思謝公屐
당년에 반랑의 나귀는 몇 번이나 거꾸로 탔던고 / 當年幾倒潘閬驢
지는 꽃 흐르는 물은 예가 바로 신선 집이요 / 落花流水仙家是
고목 사이 굽은 절벽은 보찰의 나머지로다 / 古木回巖寶刹餘
원숭이 학이 해마다 응당 서글피 바라보겠지 / 猿鶴年年應悵望
소매 속에는 이미 사직소를 초해 놓았노라 / 袖中已草乞骸書


 

[주D-001]사공의 나막신[謝公屐] : 사공(謝公)은 남조(南朝) 때의 문인으로 풍류가 뛰어났던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깊고 험준한 명산을 오르기 좋아하여 매양 ‘밀을 칠한 나막신[蠟屐]’을 신고 등산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당년에 …… 탔던고 : 반랑(潘閬)은 송대의 시인으로, 그가 화산(華山)을 바라보며 읊은 〈망화산(望華山)〉 시에 “하늘에 치솟은 삼봉이 사랑스럽기도 해라, 나귀 거꾸로 타고 머리 쳐들어 읊으며 바라보네. 옆 사람은 깔깔 웃지만 그야 웃거나 말거나, 나는 끝내 집 옮겨서 저 위에 올라가 살련다.[高愛三峯揷太虛 昻頭吟望倒騎驢 傍人大笑從他笑 終擬移家向上居]”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동시대의 시인 위야(魏野)가 반랑의 이 시를 보고 그에게 준 시에 “이제부터는 저 화산의 그림 위에, 다시 반랑의 나귀 거꾸로 탄 모습이 더해지겠네.[從此華山圖籍上 更添潘閬倒騎驢]”라고 했다 한다. 소식(蘇軾)의 〈이기시승견화전편부용원운답지(李杞寺丞見和前篇復用元韻答之)〉 시에는 “도잠은 스스로 오류전을 지었거니와, 반랑의 그림은 삼봉도에 들어갔었지.[陶潛自作五柳傳 潘閬畫入三峯圖]”라고 하였다.
[주D-003]고목(古木) …… 나머지로다 : 두목(杜牧)의 〈염석유(念昔遊)〉 시에 “이백이 시를 제한 수서사에는, 고목나무 굽은 절벽에 누각 바람이로다.[李白題詩水西寺 古木回巖樓閣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원숭이 …… 바라보겠지 : 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일찍이 북산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몹시 책망하는 뜻을 서술했던바, 그 대략에 “혜초 장막은 텅 비어 밤 학이 원망하고, 산중 사람이 떠나가니 새벽 원숭이가 놀란다.……그러자 남산은 조롱을 보내오고, 북산은 소리 높이 비웃는다.[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驚……於是 南嶽獻嘲 北隴騰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속동문선 제1권
 사(辭)
전상인을 위하여 불암사를 지음[佛唵辭爲專上人作]


서거정(徐居正)

불암산이 깊고 또 구불구불한데 / 佛之山深且逶迤兮
불암산 물은 맑고 또 살랑살랑 흐르누나 / 佛之水淸且漣漪
구름은 자욱하고 바위 삐죽삐죽 / 雲幽幽兮石鑿鑿
흰 갈매기 벗을 삼고 누른 학을 부르며 사네 / 盟有白鷗兮招有黃鶴
내가 속세에 얽매였을 적에도 / 我嬰塵網兮
날마다 돌아갈 생각을 하였거니 / 我日思歸
내사 이미 잠발의 누가 없어졌으니 / 我旣無簪紱之累兮
망설일 일이 무엇인고 / 亦何事於依違也
산에 오를 수레도 있고 / 登山有車兮
물을 건널 배도 있거니 / 涉水有航
나는 저 백련의 유칙을 따르려 하노니 / 我將從白蓮之遺則兮
어찌 슬퍼하고 슬퍼하겠나 / 奚怊悵而悲傷


 

[주D-001]날마다 …… 하였거니 : 벼슬하는 사람은 머리에 잠을 꽂고 허리에 인끈[紱]을 찬다. 이것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가운데 있는, ‘혜추창이독비(奚惆悵而獨悲)’란 귀절을 인용한 것인데, “지금이라도 깨달으면 되는데 왜 지난 일을 서글퍼만 하랴.” 하는 뜻이다.
[주D-002]백련(白蓮) : 동진(東晋)의 중 혜원(慧遠)이 여산(盧山)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만들어, 그의 제사와 높은 선비 유유민(劉遺民) 종병(宗炳) 등과 함께 염불(念佛)을 하였는데, 연못에 흰 연꽃을 심었으므로 백련사라 이름하였다.

 

 

사가시집 제1권

 사류(辭類)
불암사(佛巖辭). 전 상인(專上人)을 위하여 짓다.


불암산은 깊고도 멀리 뻗었음이여 / 佛之山深且逶迤兮
불암산 물은 맑고도 잔물결 일렁이도다 / 佛之水淸且漣漪
구름은 한가롭고 돌은 뾰족뾰족함이여 / 雲幽幽兮石鑿鑿
백구와 맹약을 하고 황학을 불러오도다 / 盟有白鷗兮招有黃鶴
나는 속세의 일에 얽매였음이여 / 我嬰塵網兮
나는 날로 돌아가길 생각했더니 / 我日思歸
내 이미 벼슬의 얽매임 없어졌음이여 / 我旣無簪紱之累兮
또한 어찌 망설일 것이 있으리요 / 亦何事於依違也
산에 오를 수레가 있음이여 / 登山有車兮
물을 건널 배 또한 있거니 / 涉水有航
내 장차 백련사의 남긴 법칙 따르리라 / 我將從白蓮之遺則兮
어찌 실망하여 마음 아파할쏜가 / 奚怊悵而悲傷


 

[주D-001]내 …… 따르리라 : 백련사(白蓮社)는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당대의 명유(名儒)들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念佛修行)을 할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또한 백련사와 같이 승속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사가시집 제1권
 사류(辭類)
산중지락사(山中之樂辭)


정유년(1477, 성종 8) 여름에 파직(罷職)되어 양주(楊州) 토산(兎山)의 촌서(村墅)에 있으면서 짓다.

산중에 있는 것이 즐거울 만하여라 / 山之中兮可樂
아름다운 한 사람이 한곳에 홀로 있으니 / 有美一人兮獨處廓
높은 산은 푸르고 푸름이여 / 高山之蒼蒼兮
흐르는 물은 깊고도 넓도다 / 流水之泱泱
계수나무는 떨기져서 어지러이 섞여 있고 / 桂樹叢兮轇轕
그윽한 난초는 자라서 향기를 풍기도다 / 幽蘭茁兮芬芳
소나무 잣나무는 하도 많아서 무성함이여 / 松柏紛其薈鬱兮
또 긴 대나무 밭을 겸하였도다 / 又重之以脩篁
내 아침엔 국화의 떨어진 꽃잎을 먹음이여 / 予朝飧秋菊之落英兮
저녁엔 매화의 향기를 맡노라 / 夕坐嗅乎梅之香
거처할 만한 띳집이 있음이여 / 居有茅茨兮
경작할 만한 묵정밭이 있도다 / 耕有菑畬
낚시질할 고기가 있음이여 / 釣有魚兮
캘 만한 나물이 있도다 / 採有蔬
내 상자에 내가 쟁여둠이여 / 我篋我遺兮
내 항아리에 내가 남겨두도다 / 我盎我贏
내 이미 춥고 굶주릴 걱정이 없음이여 / 我旣無溫飽之足虞兮
다시 구구와 승영을 어찌 일삼으리요 / 復何事於狗苟而蠅營也
공명의 길은 멀어서 나와 서로 어긋남이여 / 顧名途之邈與我違兮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에 뜻을 두도다 / 志鴻飛之冥冥也
내 이미 으르렁대는 호표를 멀리 도망쳐서 / 予旣使虎豹嘷以遠遁兮
교룡과 더불어 깊이 숨어 있게 하고 / 與蛟龍以潛藏也
황학을 불러서 함께 배회함이여 / 招黃鶴以夷猶兮
미록과 서로 벗삼아 노니는도다 / 友麋鹿乎翶翔也
깨끗하게 홀로 서서 짝이 없음이여 / 耿獨立而無伴兮
적막을 달게 여기고 오래 머무르도다 / 甘寂寞而淹留
맑은 가을의 낙엽지는 걸 슬퍼함이여 / 悲淸秋之搖落兮
해는 저물어서 서산으로 넘어가도다 / 白日晼晩其西流
그러나 내 어려서 끝없이 청결했음이여 / 然予幼淸之未沫兮
조용히 허정함으로써 스스로 닦았도다 / 漠虛靜以自脩
하늘은 넓어서 하도 광대함이여 / 天宇寬以蕩蕩兮
나의 조용한 모습을 누가 알리요 / 孰知予之從容
문득 잠깐 사이에 얻은 것이 있음이여 / 忽有得於介然之頃兮
어찌 띠풀이 내 마음을 막았으랴만
/ 夫豈茅塞乎其心胸也
그러나 반성하여 스스로 책망함이여 / 顧反觀以自訟兮
아 기왕지사는 어찌할 수가 없도다 / 嗟旣往之不可追也
내 이미 시속의 비굴한 작태를 등졌음이여 / 予旣偭夫時俗之軟美兮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를 뿐이로다 / 直是是而非非也
어찌하여 홀로 이 기복을 사모하여 / 何獨慕此奇服兮
높은 관을 쓰고 긴 칼을 허리에 찼는고 / 冠巍峨而鋏陸離也

세상은 이미 둥글기를 좋아하는데 / 世旣好夫圓兮
나만 홀로 모난 것을 지키도다 / 吾獨守乎方也
세상은 모두 권세를 좋아하는데 / 世皆好夫炎熱兮
나만 홀로 우우하며 양량하도다 / 吾獨踽踽而涼涼也
갑자기 이 까닭 없는 재앙을 만났음이여 / 忽然遭此無妄之災兮
마음에 맺혀 풀리지 않는도다 / 謇不可釋也
그러나 나는 조금의 허물도 없음이여 / 然吾無纖芥之疵兮
또 어찌 가려져서 안 밝혀질 걸 걱정하랴 / 又何患蔽而不白也
아 슬프다 안회는 먼지를 주웠음이여 / 嗚呼嘻噫顔回拾塵兮
불의는 남의 금을 훔쳤도다 / 不疑盜金
광장은 불효를 하였음이여 / 匡章不孝兮
중자는 청렴하지 못했도다 / 仲子不廉
고인을 보니 애매하여 밝히기 어려움이여 / 相古人其曖昧而難明兮
나만 어찌 여기에 사리를 못 깨닫는고 / 吾何獨於此而蓬之心也
내 처음 마음의 헤아린 바를 관찰함이여 / 庶覽余初之所揆兮
청백을 굳게 지켜 뉘우치지 않으련다 / 伏淸白而不悔也
어진 이를 가려 덮고 시기하기 좋아함이여 / 好蔽美而妬賢兮
진실로 뭇사람의 평상적인 태도로다 / 固衆人之常態也
영분이 나에게 좋은 점괘를 고해줌이여 / 靈氛告予以吉占兮
하늘이 나를 크게 성취시키리라 하도다 / 天方玉汝于大成也
나는 또 하늘은 편애가 없음을 감격하여 / 予又感皇天之無私阿兮
이에 말을 늘어놓아서 정회를 펴도다 / 玆陳辭以抒情
산중에 있는 것이 즐거울 만하여라 / 山之中兮可樂
더 즐거울 수 없음은 한적하고 고독함일세 / 樂莫樂兮幽且獨
한적하고 고독함을 다시 어떻게 구하리요 / 幽且獨兮復焉求
내 장차 이런 데서 스스로 아끼련다 / 吾將以此而自惜


 

[주D-001]구구(狗苟)와 승영(蠅營) : 구구는 개가 주인이 아무리 쫓아도 다시 눈치를 보며 구차하게 계속 따라오는 것을 말하고, 승영은 파리 떼가 윙윙거리며 아무리 쫓아도 다시 덤벼드는 것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곧 사람이 물욕에 이끌려 염치없이 비굴하게 처신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내 …… 청결했음이여 : 《초사》 초혼(招魂)에, “내 어려서 청백 염결하였음이여, 몸소 의리를 행하여 마지않았도다.〔朕幼淸以廉潔兮 身服義而未沫〕” 하였다.
[주D-003]잠깐 …… 막았으랴만 : 맹자(孟子)가 고자(高子)에게 이르기를, “산중의 오솔길이 잠깐 사람이 이용하면 길이 되고, 한참 동안만 이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나서 막아 버리나니, 지금 그대는 띠풀이 마음을 막아 버렸도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 한 데서 온 말인데, 띠풀이 마음을 막았다는 것은 곧 의리(義理)의 마음이 막혀 버렸음을 이른 말이다. 《孟子 盡心下》
[주D-004]어찌하여 …… 찼는고 : 기복(奇服)은 고결(高潔)한 지행(志行)을 비유한 말인데, 《초사》 구장(九章)에, “내 어려서 이 기복을 좋아했음이여, 나이 이미 늙도록 쇠하지 않았도다. 기다란 칼을 허리에 참이여, 높다란 절운관을 쓰도다.〔余幼好此奇服兮 年旣老而不衰 帶長鋏之陸離兮 冠切雲之崔嵬〕”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우우(踽踽)하며 양량(涼涼)하도다 : 우우는 고독(孤獨)한 모양이고, 양량은 세인(世人)들에게 박대(薄待)받는 것을 말한다.
[주D-006]안회(顔回)는 먼지를 주웠음이여 : 공자(孔子)가 일찍이 진채(陳蔡) 사이에서 곤액을 당했을 때 양식이 떨어져서 7일 동안이나 밥을 먹지 못하다가 자공(子貢)의 주선으로 쌀 한 섬을 구해왔는데, 안회와 중유(仲由)가 무너진 집 아래서 밥을 지을 적에 마침 철매가 밥솥으로 떨어지자 안회가 그 철매 묻은 밥을 걷어내서 먹었다. 자공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는 안회가 몰래 밥을 훔쳐 먹었다고 여겨 공자에게 묻기를, “인인 염사(仁人廉士)도 곤궁하면 절개를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하면서 그 사실을 말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안회의 인(仁)함을 믿은 지 오래이기에 네가 그런 말을 하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필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니, 내가 물어보겠다.” 하고, 안회를 불러서 이르기를, “네가 밥을 지어 올리거든 내가 제사(祭祀)를 드려야겠다.” 하니, 안회가 대답하기를, “조금 전에 철매가 밥 속으로 떨어졌는데, 그대로 두면 불결하고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제가 즉시 주워 먹었으니, 제사는 지낼 수 없습니다.”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그런 경우라면 나도 먹었을 것이다.” 하고, 안회의 결백함을 인정해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在厄》
[주D-007]불의(不疑)는 …… 훔쳤도다 : 한 문제(漢文帝) 때 직불의(直不疑)가 낭관(郞官)으로 있을 적에, 동사랑(同舍郞) 중에 고향 가는 자가 있어 잘못 다른 동사랑의 금(金)을 가지고 떠났는데, 이윽고 그 금을 잃어버린 사람이 직불의를 의심하자, 그는 두말 없이 자기가 가져갔다고 사과하고 즉시 금을 사서 보상해 주었다. 그런데 뒤에 고향 갔던 동사랑이 돌아와서는 자기가 금을 가져갔다며 금을 돌려주자, 금을 잃어버린 사람이 대단히 부끄럽게 여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46 直不疑傳》
[주D-008]광장(匡章)은 불효를 하였음이여 : 광장은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사람인데, 당시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불효한다고 칭했는데도 맹자는 그를 예우(禮遇)하여 종유(從遊)했으므로, 공도자(公都子)가 맹자에게 그 까닭을 묻자, 맹자가 광장은 부모에게 불효했다고 할 만한 실상은 전혀 없되, 다만 부자간에 서로 잘하라고 책망을 하다가 사이가 나빠진 것일 뿐이라며 광장의 입장을 두둔해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주D-009]중자(仲子)는 청렴하지 못했도다 : 제(齊) 나라 광장(匡章)이 일찍이 진중자(陳仲子)를 가리켜 참으로 청렴한 선비라고 칭찬하자, 맹자(孟子)가 진중자는 제 나라의 뛰어난 선비이기는 하나, 형(兄)의 집과 녹봉을 불의(不義)한 것이라 하여 살지도 먹지도 않고, 형을 피하고 모친 곁을 떠나서 자기 아내하고만 오릉(於陵)에 가서 살았으니, 그것을 어찌 청렴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주D-010]영분(靈氛) : 옛날에 일의 길흉(吉凶)을 잘 점쳤던 사람이다.

 

사가시집 제1권
 사류(辭類)
청산백운도사(靑山白雲圖辭)


푸른 산은 깊고 고요함이여 / 靑山之幽幽兮
흰 구름은 멀리 아득하도다 / 白雲之漠漠
아마도 그 안에는 별천지가 있어 / 想其中之有容兮
그윽하고 깊고 길은 굽게 났는데 / 窈深而繚曲
아름다운 한 사람이 있어 / 有美一人兮
홀로 별천지에 살리로다 / 獨處廓
나도 한번 그를 따라가고 싶어라 / 我欲一從兮
과감함은 어렵지 않고말고 / 果哉非難
산신령께 아뢰노니 앎이 있다면 / 報山靈兮有知
안개 거두고 여울 감추게 하지 마소서 / 毋使斂霧兮藏湍


[주D-001]과감함은 어렵지 않고말고 : 공자(孔子)가 일찍이 위(衛) 나라에서 경쇠〔磬〕를 칠 적에, 한 은자(隱者)가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문 앞을 지나다가 경쇠 치는 소리를 듣고는 난세(亂世)에 조용히 은거하지 않고 끝내 도(道)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말하기를, “마음을 둔 데가 있도다, 경쇠를 침이여.〔有心哉 擊磬乎〕” 하더니, 이윽고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잗단 소리여. 나를 알아줄 이가 없거든 그만둘 뿐이니라.〔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하였는데,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이르기를, “과감하도다. 세상을 잊기로만 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으리라.〔果哉 末之難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憲問》
[주D-002]안개 …… 마소서 : 남제(南齊) 때 주옹(周顒)이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뒤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변절하여 해염 현령(海鹽縣令)이 되었는데, 그 후 임기를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북산을 들르려고 하자, 이때 종산(鍾山)에 은거하고 있던 공치규(孔稚圭)가 주옹의 변절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그로 하여금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뜻을 서술했던바, 그 글에, “가벼운 안개를 거두고 흐르는 여울물을 감추어서, 주옹의 수레 끌채를 골짝 어귀에서 차단시키고, 망녕된 말고삐를 교외 끝에서 막아야 한다.〔斂輕霧 藏鳴湍 截來轅於谷口 杜妄轡於郊端〕”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속동문선 제1권
 사(辭)
산중인사(山中人辭)


김종직(金宗直)

극기(克己)가 도영창(都永昌)ㆍ한인효(韓仁孝) 및 생질 강백진(康伯珍) 등과 더불어 안국사(安國寺)에 가 목욕하였는데, 그 절은 고승(高僧) 행호(行乎)가 머무는 곳이었다.

산중에 사람들이 문득 서넛 / 山中人兮忽三四
손을 잡고 조용히 노니는구나 / 謇携手兮其虛徐
난초로 물끓이고 부들로 자리 삼으니 / 蘭爲湯兮蒻爲薦芳
향기롭고 화락할손 산중의 이 집 / 誾誾兮屋廬
날마다 목욕하고 앉고 누우니 / 日澡浴兮或坐臥
정기가 뭉치고 때 벗겨지네 / 精氣摶兮麤穢除
아침에 마시는 건 돌에 고인 물 / 朝而噏兮石溜
저녁에 씹는 건 깨끗한 나물 / 暮咀嚼兮氷蔬
신선이 비록 멀리 격하여서도 / 雖神仙兮遼以隔
어즈버 사귀어 동무 삼을 듯 / 羌彷彿兮爲曹
대사를 불러서 주미를 휘두르고 / 招乎師兮揮塵
서왕모를 맞아서 복숭아 나누네 / 邀王母兮分桃
우스울사 공문은 환이 하 많아 / 哂空門兮多幻
음란 투성이라 세상을 싫어하네 / 嫌下土兮淫遨
고요히 거처하며 드높이 보니 / 密靚處兮高觀
알겠도다, 의가 이기어 몸이 살찜을 / 知義勝兮身肥
구름 나무에 자고새 지저귄다 / 鉤輈聒兮雲木
대숲이 어둑어둑 이끼 낀 사립 / 澁勒暗兮苔扉
뿔없는 외발 소는 괴물이요 / 夔一足兮畜怪
여우랑 살쾡이 족속들 모였네 / 又狐狸兮聚族
구름이 캄캄하고 달이 검은데 / 雲冥冥兮月黑
다투어 날치며 강둥거리리 / 競恣睢兮蹢躅
생각하니 기인이라 나는 속세에 얽혀 / 念畸人兮縛塵纓
그대들 생각에 맘 괴롭네 / 隱思子兮勞心曲
복숭아꽃 눈부신 낮, 오얏꽃 하얀 밤 / 桃眩晝兮李縞夜
봄빛이 분분히 눈을 즐겨주나니 / 韶華繽紛兮悅目
이 동산 가운데도 즐길 만하데 / 湛中園兮可樂
그대들 어이 빈 골짝에 머무느뇨 / 君胡爲兮空谷


[주D-001]주미(麈尾) : 사슴의 꼬리로 만든 불자(拂子)인데, 담론(談論)할 때에 그것을 휘두르며 하기도 한다.
[주D-002]서왕모(西王母)를 …… 나누네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천도(天桃)를 가져다 바친 일이 있다 한다.
[주D-003]의(義)가 …… 살찜을 :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와서 배우는데, 처음에는 몸이 자꾸 파리하여지더니 얼마를 지난 뒤에는 살이 쪘다.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처음에는 부자(夫子)의 앞에 오면 인의(仁義)가 즐겁다가, 나가 보면 부귀(富貴)가 부러워서 두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서 싸우느라고 괴로워서 파리하였었는데, 이제는 의(義)가 이겨서 부귀보기를 흙덩이같이 보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여 살이 쪘습니다.” 하였다.
[주D-004]기인(畸人) : 《장자(莊子)》에, “기인(畸人)이란 것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고 천(天 자연(自然))과 짝이 되는 사람이라.” 하였다.

 

속동문선 제1권
 사(辭)
꿈에 청학동에 논 사[夢遊靑鶴洞辭]


유호인(兪好仁)

낭만히 노는 어떤 손이 청구에 비껴 서니 / 客有漫浪遊兮竚靑丘
천고에 아득히 짝이 없네 / 曠千古兮杳寡儔
절운관을 높이 쓰고 / 冠切雲之嵯峨
명월주 차고 임구를 울리며 / 佩明月兮鳴琳球
몸에는 산뜻하고 화려한 비단 도포 / 披錦袿之鮮麗兮
자줏빛 연기를 입었으며, 봄 구름으로 수놓았네 / 衣紫煙兮繡春雲
나의 차림도 으리으리하니 / 顧余飾之陸離
픙기는 향내도 그윽해라 / 譪菲菲兮淸芬
요염하고 곱고 매혹적인 그 맵시 / 妖姸姣好有餘濃兮精神
황홀한 정신이 높이 놀아 닭의 무리에 뛰어난 봉이로세 / 焱迅邈超謝乎鷄群
광한전에 올라 계수를 만지고 / 攬桂樹於廣寒
부상의 아침 햇살을 손으로 떨치며 / 拂朝暾兮扶桑
허공에 솟아 올라 항해를 움켜 마시니 / 凌大漠而飮沆瀣兮
인간이 어디메뇨, 티끌만 아득해라 / 眛人寰兮塵杳茫
취수 서쪽 끝 만 리에 / 翠水之西極萬里兮
반린을 타고 백봉을 몰아 / 駕斑麟而驂白鳳
곧바로 곤륜산으로 노닐러 가니 / 逕遨遊乎崐岡
서왕모가 생긋 웃으며 부드러운 낯으로 / 金母啓齒色敷腴兮
청조를 시켜 경장을 따라 주네 / 令靑鳥導余以瓊漿
바람 연에 노을 수레로 훨훨 몰아가니 / 颷輦霞輧馭汗漫兮
휘휘, 덜커덩, 달리는 소리 온 우주를 뒤흔드는데 / 驞駍駖磕乎鴻濛之宅
비렴이 길을 맑혀 줌이여 / 飛廉屛翳吸嚊繡卒兮
붉은 구름 저쪽에 아득히 보이누나 / 隔紅雲兮空羃羃
부구선인이 방장산의 선관을 관할하다 / 浮丘管轄乎方丈之館兮
아양떨며 눈짓하며 드디어 나를 황홀히 부르는구나 / 睮睮貇貇遂招予乎髣髴
주궁ㆍ패궐이 허공에 둥실 늘어서 있고 / 朱宮貝闕繚以跨虛兮
우의가 너울너울 서늘한 바람에 춤추는데 / 羽衣翩躚泠然騰颯
위에는 고요하고 툭 틔어서 막힘이 없고 / 上寥廓沆漭而無閡兮
밑에는 또 끝간 데를 몰라라 / 下積蘇兮又焉極
대지가 축을 붙들고 빙빙 돌아가고 / 大地互回而控軸兮
별들이 두루 깔려 수없이 반짝이네 / 星辰環布而錯落
너울너울 세 번 향수에 목욕하고 천궐에 나아가 / 翼翼三熏仰覲天表兮
단신으로 자신 앞에 머리를 숙이니 / 瀝血寸丹首稽乎紫宸
자신전은 빛나고도 그지없이 깊은데 / 紫宸煜霅而沕穆兮
기기괴괴, 얼기설기, 드높이 주순을 걸쳐 지었네 / 攦佹閜砢嵬架乎朱鶉
옥황께서 우위를 거느리고 엄연히 척강하사 / 玉皇羽衛儼陟降兮
중기중기한 창합들을 굽어보시니 / 俯閶闔之嶙峋
번개가 신동에 번쩍, 뇌성이 천소를 도와 / 電霍神瞳雷助天笑兮
태허의 온 봄을 만드시네 / 陶大虛之一春
늘어선 선관들이 구름 달리듯, 안개 일 듯 / 森官府之雲奔霧滃兮
오채의 조복을 번쩍이고 / 烱五彩之襠祫
옥녀와 시동들이 / 仍玉女而與侍裔兮
예쁜 맵씨로 분분히 나타나 / 紛群妙之綽約
머리엔 태화ㆍ신영의 상투를 짜고 / 戴太華晨嬰之䯻兮
발에는 현경ㆍ봉문의 신을 신었구나 / 履玄瓊鳳文之舃
비경을 시켜 팔랑을 타고 / 令飛瓊兮禪八琅
능화를 명하여 경을 치니 / 敎凌華兮拊石轟
뭇 음악이 쾅쾅 번갈아 나오는데 / 衆音之迭進兮
이따금 현운의 법곡도 들리는고야 / 間玄雲之法曲
만년 만에 한 번인 이 기회를 만났으니 / 幸萬期而邂逅兮
그 동안 동해가 뽕밭으로 변했으리 / 亦變東海兮桑田
외람되이 우러러 월계를 더럽힌 날 / 叨仰塵兮月階
이 좋은 저녁이 묻노라 어느 핸고 / 玩今夕兮何年
청은의 비록을 내게 수여하며 / 授我以靑隱之錄
동화의 높은 각을 내게 빌려 주며 / 假我以東華之閣
거승의 꽃을 내게 먹여 주며 / 偰我以巨勝之花
화지의 샘물을 내게 권하면서 / 侑我以華池之泉
초남의 명령나무를 어루만지며 / 撫楚南之冥靈
8천 년 뒷 기약을 나와 맺은 후에 / 要後期於八千
인하여 조용히 나를 달래며 / 仍誘余以縱臾
육신에게 자문하여 내주는 선결 / 咨六神而與訣
이 태현이 아득하고 황홀하니 / 曰玆大玄杳兮惚兮
무위의 처음을 혹 얻을지니 / 無爲之先倘可得兮
삼시를 치고 네 욕심을 가시면 / 攻而三尸淨而欲兮
도가 바로 네게 있는데 눈썹 보지 못하누나 / 道則在爾而不見睫兮
이와 서캐같은 하천한 몸이 / 顧蟣虱之下賤
진원의 우악하신 총은을 입사와 / 荷眞元之寵渥
백붕 같은 하사를 내리오시니 / 等百朋兮起壽
상제여, 만수무강, 아름다이 즐기옵소서 / 頌神休兮於樂
문득 하늘 닭이 날개쳐 꼬끼요 울고 / 忽天鷄之膞膞
새벽 종이 쾅쾅 울려오기에 / 晨鍾轟隱乎砰磕
내 혼이 황홀하여 인간으로 돌아오니 / 魂恍惚兮歸來
몸에 밴 하늘 향기 아직도 풍겨 있네 / 尙天香兮未歇
다만 보이는 건 목객이 시를 읊고 산 원숭이 달 아래 휘파람 부는데 / 但見木客吟詩山㺑嘯月
만규에 피리 소리, 천암이 검극인 듯 / 萬竅笙竽千巖劍戟
아득한 세계가 참인가 환이런가 / 眩眞幻於古漭國
안개만 부질없이 모이락 흩어지락 / 空漲霧之歘翕
아, 이것이 조물주가 나를 희롱함인가 / 噫嘻此乃造物者戲我邪
나도 또한 모르겠네, 하늘이 왜 까마득하고 땅이 왜 탁한지 / 吾亦未知天何爲而玄地何爲而濁
해와 달이 왜 오락가락하는지, 바람과 구름이 왜 변하고 없어지는지 / 日月何爲兮往來風雲何自兮變滅
분분한 시비가 만 가지로 다르거니 / 紛是非之吹萬
신세를 일락에 부침만 못하리라 / 曷若付身世於一貉
진실로 인생이 우주 안에 / 信乎寓形宇內
삶이 아득히 털끝처럼 가는 것인데 / 渺然毫髮
벌레의 팔이나 쥐의 간으로 / 蟲臂鼠䏏
내 멋대로 살리라 / 隨吾所適
올라가면 옥당에 금마 / 升則玉堂金馬
물러나면 운천에 계수나무 있는계곡 / 退則雲泉桂壑
고관대작을 영통의 지역에 비기고 / 擬簪笏於苓通之域
만상을 초월하고 우주를 나오면 / 超萬象而出宇宙
큰 바다가 고대 술병으로 보이고 / 坐見瀛海爲窪尊
태산이 조그만 송편이 되어 / 岱輿爲飣餖
삼광보다 더 오래 늙지도 않고 / 後三光而不老
희황이 모두 아래로 깔보이리니 / 下羲皇而高視
이런 뒤에 사람들이 다 이르기를 천하의 즐거움을 한몸에 모은 자는 / 然後人皆謂萃天下之樂者
오유자라 하리라 / 孰有浮於烏有子


[주C-001]청학동(靑鶴洞) : 지리산(智異山)의 가장 깊숙한 동학(洞壑)에는 청학(靑鶴)이 깃들여 있고 신선들이 산다 하며 역대 시인들의 제영(題詠)이 많다.
[주D-001]절운관(切雲冠) :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서 나왔는데, 당시의 높은 관(冠)이다.
[주D-002]항해(沆瀣) : 북방의 밤중 기운이 어리어 맺는 맑은 이슬이다.
[주D-003]천소(天笑) : 이백(李白)의 시에, “옥녀(玉女)가 투호(投壺)하니 천제(天帝)가 웃는다.”는 말이 있다.
[주D-004]동해가 …… 변했으리 : 선녀(仙女) 마고(麻姑)가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하기를, “동해(東海)가 물이 말라서 뽕밭으로 변하는 것을 세 번이나 보았다.” 하였다.
[주D-005]초남(楚南)의 명령(冥靈)나무 : 《장자》에, “초(楚) 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란 나무가 있는데, 8천 년은 봄이 되고 8천 년은 가을이 된다.” 하였다.
[주D-006]삼시(三尸) : 도가(道家)에서, “사람의 몸에 삼시충(三尸蟲)이 있는데, 그것이 없어져야 오래 산다.” 하였다.
[주D-007]목객(木客) : 산중에 있는 도깨비 종류인데, 형체가 사람과 비슷하다.
[주D-008]일락(一貉) : “예와 지금이 모두 한 언덕의 여우와 같다[古與今如一丘之貉].” 이라 옛글이 있다.
[주D-009]영통(苓通) : 말똥은 통(通)이라 하고, 돼지똥을 영(苓)이라 한다.
[주D-010]오유자(烏有子) : 오유(烏有)는 어찌 있겠느냐는 뜻인데, 오유자(烏有子)는 실제로 없는 공상적(空想的)인 인물로 쓰는 것이다.

청음집 제38권
 기(記) 5수(五首)
유서산기(遊西山記)


한양(漢陽)의 산이 복정(覆鼎)에서부터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왕도(王都)의 진산(鎭山)이 된 것을 공극(拱極)이라고 일컫는다. 이 공극에서 갈려 나와 산등성이가 불쑥 솟아나 꾸불꾸불 뻗어 내려오다가 서쪽을 끼고 돌면서 남쪽을 감싸 안고 있는 것을 필운(弼雲)이라고 한다. 나의 집은 이 두 산의 아래에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일찍이 산을 가까이에서 접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산 역시 다투어 내 집의 창과 실내로 들어오려 하여 친근함을 더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항상 자리에 누운 채로 바라보고 즐겼다. 그러면서도 일찍이 산속의 바위며 골짜기 사이에는 오간 적이 없었다.
갑인년(1614, 광해군6) 가을에 어머님께서 눈병이 나셨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서산(西山)에 신통한 샘이 솟아나는데 병든 사람이 머리를 감으면 이따금 효험을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마침내 날을 잡아 산에 올랐는데, 큰형님과 나와 광찬(光燦)과 광소(光熽)가 함께 따라갔다.
인왕동(仁王洞)에 들어가서 고(故) 양곡(陽谷) 소 이상(蘇貳相)이 살던 옛집을 지났는데, 이른바 청심당(淸心堂), 풍천각(風泉閣), 수운헌(水雲軒)으로 불리던 것들이 지도리는 썩고 주춧돌은 무너져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양곡은 문장(文章)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어 이미 귀하게 된 데다가 부유하였으며, 또한 심장(心匠)이라고 칭해졌으니, 집을 지으면서 교묘함과 화려함을 극도로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교유하였던 선비들도 모두 한때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이 읊었던 것 중에는 필시 기록되어 전해질 만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채 백 년도 못 되어서 이미 한둘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선비가 믿고서 후세에 베풀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은 것이다.
이곳을 지나서 더 위로 올라가니 절벽에서는 폭포가 쏟아지고 푸른 잔디로 덮인 언덕이 있어 곳곳이 다 볼만하였다. 다시 여기를 지나서 더 위로 올라가자 돌길이 아주 험하였으므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다시 한 번 쉰 다음 샘이 있는 곳에 이르니, 지세가 공극산의 절반쯤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높이 솟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새가 날개를 편 듯이 지붕을 얹어 놓은 것 같았다. 바위 가장자리가 파여 있는 것이 처마와 같아 비나 눈이 올 때 예닐곱 명 정도는 들어가 피할 만했다. 샘은 바위 밑 조그만 틈새 가운데로부터 솟아 나왔는데, 샘 줄기가 아주 가늘었다. 한 식경쯤 앉아서 기다리자 그제야 겨우 샘 구덩이에 삼분의 일쯤 채워졌는데, 구덩이의 둘레는 겨우 맷돌 하나 크기 정도이고 깊이도 무릎에 못 미칠 정도여서 한 자 남짓 되었다. 샘물의 맛은 달짝지근했으나 톡 쏘지는 않았고 몹시 차갑지도 않았다. 샘 근처의 나무에는 여기저기 어지럽게 지전(紙錢)을 붙여 놓은 것으로 보아 많은 노파들이 와서 영험을 빌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석굴의 앞에는 평평한 흙 언덕이 있었는데 동서의 너비가 겨우 수십 보쯤 되어 보였다. 비로 인해 파인 곳에 오래 묵은 기와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바로 인왕사(仁王寺)의 옛 절터인 듯하였다. 어떤 이가 북쪽의 맞은편 골짜기에도 무너진 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옛 자취가 다 없어졌으니 분명하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일찍이 듣기로는 국초(國初)에 도읍을 정할 때 서산의 석벽에서 단서(丹書)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어느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산 전체가 바위 하나로 몸체가 되어 산마루부터 중턱에 이르기까지 우뚝 선 뼈대처럼 가파른 바위로 되어 있고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와 겹쳐진 절벽이 똑바로 서고 옆으로 늘어서 있어 우러러보매 마치 병기를 모아 놓고 갑옷을 쌓아놓은 것과 같아 그 기묘한 장관을 이루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산줄기가 이어지면서 산등성이를 이루고 여러 산등성이가 나뉘어 골짜기가 되었다. 골짜기에는 모두 샘이 있어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매 수많은 옥이 찰랑거리는 것 같았는바, 수석(水石)의 경치가 실로 서울에서 으뜸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스러운 것은 금령(禁令)이 해이해져 산 전체에 아름드리 큰 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소나무나 전나무 그늘이 있고 단풍나무나 녹나무가 언덕을 둘러싸고 있어 솔솔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바람 맑고 달빛 밝은 저녁에 느릿느릿 서성인다면 봉호(蓬壺)나 곤랑(崑閬)도 어찌 부러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등 뒤로는 구부러진 성이 아주 가깝게 보였다. 하인을 보내어 올라가는 길을 찾아보게 했는데, 길이 험하여 올라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광찬과 광소가 빠른 걸음으로 갔다가 오더니 자기들이 본 것을 잘 말해 주었는데, 사현(沙峴)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으며 삼강(三江)의 돛단배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헤아릴 수가 있다고 하였다. 내 나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기력이 너무 쇠하여 가까운 거리임에도 오히려 더 걷지를 못하고 험한 길을 당하여 멈춰 서고 만 데 대해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러니 이런 기력으로 어찌 벼슬자리에 나아가 있는 힘을 다해 일하면서 내가 젊어서 배운 것을 펼쳐 도를 행하여 남에게 미치게 할 수가 있겠는가.
큰형님과 더불어 남쪽 봉우리에 오르니, 산봉우리 아래에 술 곳간이 있었다. 두 채를 서로 마주 보게 지어 놓았는데 십여 칸 정도가 서로 이어져 있었다. 술 냄새가 퍼져 나가 새들조차 모여 들지 않으니, 모르겠다만 얼마나 많은 광약(狂藥)이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온통 취하게 하였던가.
앞쪽으로는 목멱산(木覓山)이 보이는데 마치 어린아이를 어루만지는 듯하였다. 남쪽으로는 성이 산허리를 감고 구불구불 이어진 것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아래에 어찌 용같이 훌륭한 인물이 누워 있겠는가. 지금 반드시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래로 수많은 여염집의 기와지붕이 땅에 깔려 있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마치 물고기의 비늘과 같았다. 임진년(1592, 선조25)의 난리를 치른 뒤 23년이 지나 백성들의 수가 날로 불어나 집들이 많기가 이와 같이 성대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남자들의 숫자가 수십만 명을 밑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요순(堯舜)을 도와 당우(唐虞) 시대의 태평성대를 이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한갓 나라의 힘은 더욱 약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초췌해지고 변방의 방비는 더욱 위태롭게 돼 지금과 같이 쇠퇴해지는 데 이르게 하였다. 어찌하여 저 푸른 하늘은 인재를 내려 주는 것이 이렇게도 인색하단 말인가. 아니면 하늘이 인재를 내려 주긴 했는데 쓸 줄을 몰라서 그런 것인가? 어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운명 탓이 아니겠는가.
경복궁의 동산은 텅 비었고 성은 허물어지고 나무는 부러졌으며 용루(龍樓)와 봉각(鳳閣)은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단지 경회루 연못에 있는 연잎이 바람에 뒤집히면서 저녁 햇살에 번쩍이는 것만 보였다. 앞에서는 어진 인물을 막고 나라를 그릇되게 하여 전쟁을 불러들이고 온갖 고난을 겪게 하였으며, 뒤에서는 부추기고 이간질하면서 임금께 아첨을 하여 간사한 말이 행해지고 법궁(法宮)을 황폐해지게 하였으니, 간신의 죄를 어찌 이루 다 주벌할 수 있겠는가.
동궐(東闕)이 쌍으로 우뚝 솟아 있고 화려한 집들이 늘어서 있으며, 금원(禁苑)의 숲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빽빽한 가운데, 호분(虎賁)과 용양(龍驤)은 궁궐을 깨끗이 청소하고 임금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자(王者)의 거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본디 운수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임금다운 임금이 즉위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도 때가 있는 것이다.
흥인문(興仁門)의 빼어난 모습이 동쪽을 향하여 우뚝 서 있고 종로(鍾路)의 큰길이 한 줄기로 뻥 뚫려 있었다. 길 좌우에 늘어선 상점은 많은 별이 별자리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것처럼 반듯반듯하게 차례대로 늘어서 있었다. 그 사이로 수레와 말이 오갔으며, 달리는 사람과 뛰는 사람들이 허둥지둥 분주하게 오갔는데, 그들은 모두가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러니 당나라 사람의 시에 이른바 “서로 만나느라 늙는 줄도 모른다.〔相逢不知老〕”라고 한 것은 진실로 뛰어난 구절이다.
불암산(佛巖山)은 푸른빛으로 서 있는데 바라보니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깝게 보였다. 바위 봉우리가 빼어나게 솟은 것이 예사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만약 왕실을 가까이에서 보익하여 동쪽의 진산(鎭山)이 되어 서쪽과 남쪽과 북쪽의 세 산과 더불어 함께 우뚝 솟아 있었다면, 실로 도성의 형세를 장엄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서울을 수십 리 벗어난 곳에 있어 마치 거친 들판으로 달아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바, 조물주가 사물을 만든 뜻이 참으로 애석하였다.
아, 조석으로 생활하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접하던 산을 태어난 지 45년이나 지난 오늘날에서야 비로소 한 번 올라 보았다. 천지는 잠시 머물러 가는 주막인 거려(蘧廬)이고, 희서(羲舒)는 비탈길에 굴러 가는 구슬과 같은바, 부생(浮生)의 백년 세월은 이 우주에 잠시 몸을 의탁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처 없이 떠다니는 것이 마치 바람 속의 물거품과 같아 멀리 떠가거나 가까이 있거나 흩어지거나 모이거나 하는 것을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지금부터 여생이 몇 년이나 더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머니와 형을 모시고 아들과 조카를 따르게 하여 다시 이 산에 놀러와 여기에 머물러 먼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루 종일 즐기는 것을 어찌 또다시 기약할 수 있겠는가. 인하여 느낀 바가 있어 그것을 쓰고 때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주D-001]복정(覆鼎) : 북한산(北漢山)의 옛 이름으로, 산의 모양이 마치 솥을 엎어 놓은 듯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산은 이 이외에도 삼각산(三角山), 북악(北嶽), 부아악(負兒嶽) 등으로도 칭해진다.
[주D-002]공극(拱極) : 경복궁(景福宮)의 주산인 백악(白嶽)을 가리키는데, 중종 때 중국 사신 공용경(龔用卿)이 백악을 공극산, 인왕산(仁旺山)을 필운산(弼雲山)이라고 개명하였다.
[주D-003]소 이상(蘇貳相) : 좌찬성과 우찬성을 지낸 소세양(蘇世讓)을 가리킨다. 소세양은 뛰어난 시재(詩才)를 가지고 있어 한때의 문풍(文風)을 주도하였다.
[주D-004]심장(心匠) : 독특한 구상이나 설계를 말한다.
[주D-005]단서(丹書) : 중요한 내용을 붉은 글씨로 써서 깊이 간직해 숨겨 둔 것을 말한다.
[주D-006]봉호(蓬壺)나 곤랑(崑閬) : 봉호는 바다 속에 있으며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상의 봉래산(蓬萊山)을 말한다. 《습유기(拾遺記)》〈고신(高辛)〉에, “삼호(三壺)는 바로 바다 속에 있는 세 산으로, 첫 번째는 방호(方壺)인데 이는 방장산(方丈山)이고, 두 번째는 봉호인데 이는 봉래산이고, 세 번째는 영호(瀛壺)인데 이는 영주산(瀛洲山)으로, 모양이 술병과 같이 생겼다.” 하였다. 곤랑은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는 낭풍원(閬風苑)으로, 역시 신선이 산다고 하는 곳이다.
[주D-007]삼강(三江) : 지금의 용산(龍山), 마포(麻浦), 양화(楊花) 일대의 강을 말한다.
[주D-008]동궐(東闕) : 창덕궁의 이칭이다. 창덕궁은 태종이 이궁(離宮)으로 세운 궁전으로, 임진왜란 때 경복궁ㆍ창경궁과 함께 불에 탔으나 1609년(광해군1)에 가장 먼저 중건하여 오랫동안 법궁(法宮)으로 사용되었다.
[주D-009]호분(虎賁)과 용양(龍驤) : 조선 시대 오위(五衛)에 소속된 군사 조직으로, 임금의 호위를 주 임무로 하였다.
[주D-010]서로……모른다 : 맹교(孟郊)의 시 〈송유순(送柳淳)〉에 나오는 구절로, 명예와 이익을 좇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 분주히 만나고 다니느라 자신이 늙어 가는 줄도 모른다는 말이다.
[주D-011]희서(羲舒) : 해를 몬다고 하는 신인 희화(羲和)와 달을 몬다고 하는 신인 망서(望舒)로, 전하여 세월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D-012]현옹(玄翁)의……있다 : 현옹은 신흠(申欽)의 호이고, 백사(白沙)는 이항복(李恒福)의 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23년이 지난 해는 1615년(광해군7)으로, 이때 신흠은 1613년에 일어난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인해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으로 지목되어 파직된 후 김포(金浦) 근처에 있었고, 이항복은 같은 해 인재 천거를 잘못하였다는 구실로 북인(北人)들의 공격을 받고 물러나 불암산 아래에 동강정사(東岡精舍)를 새로 짓고 동강노인(東岡老人)으로 자칭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사가시집 제52권
 시류(詩類)
불암산(佛巖山)


불암산 아래에 띳집 한 채가 있으니 / 佛巖山下有茅廬
문 앞에 당한 봉우리는 그림보다 좋고말고 / 當戶峯巒畫不如
오늘은 사공의 나막신을 상상하거니와 / 今日追思謝公屐
당년에 반랑의 나귀는 몇 번이나 거꾸로 탔던고 / 當年幾倒潘閬驢
지는 꽃 흐르는 물은 예가 바로 신선 집이요 / 落花流水仙家是
고목 사이 굽은 절벽은 보찰의 나머지로다 / 古木回巖寶刹餘
원숭이 학이 해마다 응당 서글피 바라보겠지 / 猿鶴年年應悵望
소매 속에는 이미 사직소를 초해 놓았노라 / 袖中已草乞骸書


[주D-001]사공의 나막신[謝公屐] : 사공(謝公)은 남조(南朝) 때의 문인으로 풍류가 뛰어났던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깊고 험준한 명산을 오르기 좋아하여 매양 ‘밀을 칠한 나막신[蠟屐]’을 신고 등산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당년에 …… 탔던고 : 반랑(潘閬)은 송대의 시인으로, 그가 화산(華山)을 바라보며 읊은 〈망화산(望華山)〉 시에 “하늘에 치솟은 삼봉이 사랑스럽기도 해라, 나귀 거꾸로 타고 머리 쳐들어 읊으며 바라보네. 옆 사람은 깔깔 웃지만 그야 웃거나 말거나, 나는 끝내 집 옮겨서 저 위에 올라가 살련다.[高愛三峯揷太虛 昻頭吟望倒騎驢 傍人大笑從他笑 終擬移家向上居]”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동시대의 시인 위야(魏野)가 반랑의 이 시를 보고 그에게 준 시에 “이제부터는 저 화산의 그림 위에, 다시 반랑의 나귀 거꾸로 탄 모습이 더해지겠네.[從此華山圖籍上 更添潘閬倒騎驢]”라고 했다 한다. 소식(蘇軾)의 〈이기시승견화전편부용원운답지(李杞寺丞見和前篇復用元韻答之)〉 시에는 “도잠은 스스로 오류전을 지었거니와, 반랑의 그림은 삼봉도에 들어갔었지.[陶潛自作五柳傳 潘閬畫入三峯圖]”라고 하였다.
[주D-003]고목(古木) …… 나머지로다 : 두목(杜牧)의 〈염석유(念昔遊)〉 시에 “이백이 시를 제한 수서사에는, 고목나무 굽은 절벽에 누각 바람이로다.[李白題詩水西寺 古木回巖樓閣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원숭이 …… 바라보겠지 : 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일찍이 북산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몹시 책망하는 뜻을 서술했던바, 그 대략에 “혜초 장막은 텅 비어 밤 학이 원망하고, 산중 사람이 떠나가니 새벽 원숭이가 놀란다.……그러자 남산은 조롱을 보내오고, 북산은 소리 높이 비웃는다.[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驚……於是 南嶽獻嘲 北隴騰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