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누정 옛집 /옛집 이야기

스크랩 노블레스 오블리주’ 임청각

아베베1 2012. 3. 30. 12:32

 

 

 

[함성호의 옛집 읽기]<19>‘노블레스 오블리주’ 임청각

동아일보DB

조선의 사대부들은 결국 왕조를 망쳤다.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경북 안동은 영남 유림으로 대표되는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왕조를 망친 것도 그들이었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고자 무장독립투쟁을 벌인 것도 역시 그들이었다.

임청각(臨淸閣)은 안동에 있다. 초대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1858∼1932)의 집이다. 임청각의 주인들은 벼슬하기보다는 학문에 힘썼던 사람들이다. 벼슬한 이는 500년 동안 한 사람뿐이지만 이들은 대대로 영남 유림의 학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 때문에 안동에서 임청각은 학문하는 집안의 집으로 명성이 높았다. 토착 양반들로 구성된 자치기구로 향리의 악폐를 막고 지방의 풍기를 단속하던 유향좌수와 도산서원의 원장 격인 도산서원 전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이 바로 임청각이다.

지금 임청각은 1942년에 개통된 집 앞을 지나가는 철도 때문에 50채나 되는 행랑채를 잃어버렸지만 남은 규모만으로도 가장 규모가 큰 반가다. 집의 구조도 독특해서 다른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가구식 구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경사지에 배치한 탓에 행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마당이 비좁고 폐쇄적이며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누정인 군자정이 횡으로 펼쳐져 그 웅장한 규모가 더 강조되어 보인다. 서까래도 위 서까래와 아래 서까래가 주먹장이음으로 결구(結構)되어, 엇갈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 전하는 얘기로는 철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대문이 낙동강가에 닿아 있었고, 대문을 2층 누각으로 지어 거기서 낙동강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집이었고 어마어마한 권세를 누리던 가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가문이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같이 기울기 시작했다. 가문의 모든 것을 팔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상룡은 1896년 가야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나라가 망하자 과감하게 사당에 모셔 놓았던 조상의 위패를 땅에 파묻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너희들은 이제 독립군이다”라고 선언하며 노비를 해방하고 가산을 정리해 서간도로 식솔을 이끌고 떠났다. 당대에 대한 책임을 가장 통렬히 인식하고 삼정승이 나온다는 길지를 풍찬노숙의 가시밭길로 만든 사람, 그 사람이 살았던 집이 임청각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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