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누정 옛집 /신문스크랩

잔잔한 어머니의 가르침…교육 도시 전주의 일등 공로자

아베베1 2012. 5. 29. 19:32

 

 

 

잔잔한 어머니의 가르침…교육 도시 전주의 일등 공로자

[전경미의 문화유산의 향기를 찾아서]5. 비지정문화재①잠에서 깨우다! -전주 시사재 이야기
2011년 12월 25일 (일) 전경미 예원예술대학교 교수 APSUN@sjbnews.com

   
  ▲ (사진 1) 시사재  
 
△전주유씨 시조 습(濕)의 아내(삼한국대부인 전주최씨) - 전주를 교육의 도시로 만든 공로자

나의 어머니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8호 자수장이셨다. 그 이전에는 초등학교 교사이셨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볼 때, 가끔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잠자다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수를 놓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 때마다 엄마는 유난히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바늘을 잡고 시간을 수놓고 계셨다. 당시의 어머니 세대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으니...

나는 애써, 혼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엄마를 지키려고 다시 잠들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엄마는 옆에 있는 그런 나에게 이런 저런,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수를 놓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이야기는 외갓댁의 어떤 할아버지가 초대 영국대사로 갔을 때 양변기를 보고 사용법을 몰라 그 물을 마셨다는 것, 소피아로렌(Sophia Loren), 엘리자베스테일러(Elizabeth Taylor)와 같은 서양 배우의 이야기, 마리오란자(Mario Lanza)가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영화에서 ‘마시자’ 또는 ‘마셔라’ 라는 음주 애호가(Drinking Song)가 있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 친구들과 잔을 마주치며 ‘마시자! 마시자! 마셔라!’하고 계실 것이라는 흉내를 내며 나의 걱정을 다독여 주셨고, 그리고 쥬세피 디 스테파노의 ‘그대 창에 불은 꺼지고’를 불러주며 다시 재워 주시곤 하셨다. 진안이라는 산골마을에서 엄마의 지식은 모두 ‘책’을 통해 이루어졌고, 돌가시는 날까지 새로운 지식을 노트에 빼곡이 적어 놓으셨다.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나는 모름지기 엄마처럼,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교육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사진 2)  
 

여기 또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전주유씨(全州柳氏) 시조인 습(濕)의 아내, 삼한국 대부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이야기다. 전주유씨 시조인 습은 생몰년대를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주유씨의 구보시조기(舊譜始組記)에 따르면 그는 충숙왕 시대에 탄생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며 5남1녀를 두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 전주최씨는 치가유법(治家有法)으로 5남1녀를 길러 모두 문과에 등급하게 만들었다. 장남 극강(克剛)은 판사, 차남 극서(克恕)는 직제학(直提學 : 문관으로 연구소의 소장격), 3남인 극수(克修)는 이조판서(吏曹判書 : 현재의 행정자치부 또는 총무처의 으뜸 벼슬) 4남인 극제(克濟)는 대사성(大司成 : 성균관의 으뜸 벼슬), 5남인 극거(克渠)는 호조판서(戶曹判書 : 지금의 재정경제부와 같은 곳의 으뜸 벼슬), 사위는 청송 심효생(沈孝生)으로 대제학(大提學 : 정2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지냈다. 고려 32대 우왕(1374-1388)은 그 공로로 인해 완산백(完山伯)으로 봉(封)하였고 식읍(食邑: 나라에서 상급으로 준 땅)으로 건지산의 일부를 하사하였으며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이라는 직첩을 내렸다. 그녀는 자녀의 학업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50번 읽고 100번 쓰도록 하는, 기독교 성경에서의 교육법과 같은, 반복의 교육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나는 전주유씨 문중의 한 자손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그녀는 전주를 교육의 도시로 만드는데 큰 공로자였다고 생각하였다.
   
  ▲ (사진 3)  
 

전주에 시사재(時思齋)라는 곳이 있다. 시사재(사진 1)는 인후동 1가 549-4번지에 자리하고 있고, 앞서 이야기한 전주최씨를 기리는 곳이다. 이곳은 앞쪽으로 삼한국 대부인 전주최씨와 시조를 합장한 묘가 있고 그 앞에 유일여중고, 옆으로 건지산줄기의 숲이 전주시민의 휴식처로 제공되고 있으며 전주역으로부터 약 2km 남짓 거리에 있다.
   
  ▲ (사진 4)  
 

시사재에 봄이 오면 뒷자락에 매화가 피고 밭의 둑에는 쑥이 고개를 든다. 시사재의 오른쪽 주변으로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사진 2). 시사재 주변에 사는 여인들은 쑥을 캐러 나온다. 유일여중고의 여학생들은 잠깐의 쉬는 시간, 스커트 아래에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봄을 걷는다.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다. 도시의 중심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가 또 있을까? 전주라는 도시에, 그 도심에 이러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접근 가능한 거리에 이만한 장소가, 어디 또 있겠는가? 물론 전주한옥마을도 좁은 골목의 돌담길, 실개천, 아기자기한 공방, 음식점 등 볼거리가 많이 제공 되므로 사람들이 자주 찾고 있어 전주의 자랑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밀물처럼 몰려왔다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도시의 섬이 되고 있다.
   
  ▲ (사진 5)  
 

시사재가 있는 인후동의 마을은 전주한옥마을과 또 다른 풍경이다. 시사재는 비지정문화재이다. 비지정문화재는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화재적 가치를 가진 것을 개발사업과 도시화 과정에서 멸실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사된 것이다. 시사재는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건물이라면 문화재로 지정받아 마땅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건축적인 분야의 연구자는 건축의 기법, 세워진 시기 등으로 볼 때, 미흡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주인 없는, 이야기꺼리가 없는 한옥의 공허함보다 잔잔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숨 쉬는 시사재와 같은 건축물이 지정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사진 6)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아웃리치사업단은 2011년 한 해 동안 시사재와 그 동반건물인 직사(사진 3)같은 비지정문화재를 관리하였다. 창호 및 벽지를 바르는 일(사진 4) 새롭게 하고(사진 5) 회벽을 바르는 등 다시 세우는 일(사진 6)을 했다. 그리고 전주유씨 문중은 시사재에서 예절교육, 인문학강의, 전통문화강의, 숙박, 전통놀이 등의 장으로 활용하기로, 그 아름다움을 사회와 공유하기로 했다. 시사재 앞에 펼쳐 있는, 유일학교의 캠퍼스를 바라보며 삼한국대부인 전주최씨의 가르침이 지금도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원예술대학교 교수.문화재 이웃리치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