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년산행 /2013. 1.15. 아차산

2013.1.15. 아차산 용마산 산행

아베베1 2013. 1. 17. 11:11

 

 

 

 

 

 

 

 

 

 

 

 

 

 

 
 

 동사강목 제3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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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신라 진평왕 12년, 고구려 평원왕 32년ㆍ영양왕(嬰陽王) 원년, 백제 위덕왕 37년(수 문제 개황 10, 590)


수(隋)가 쇄서(壐書)로 고구려 왕을 질책하였다.
고구려 왕이 진(陳)이 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며 군사를 정비하고 양곡을 비축하여 수비할 계책을 세우니 수주(隋主)가 쇄서로써 질책하기를,
“너희 나라는 비록 속국이라 하지만, 정성과 절개를 다하지 못하니 이제 고구려 왕을 내쫓고 다시 우리의 관속을 뽑아 보내어 백성들을 안정시키겠노라. 그러나 왕이 만일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을 고친다면 곧 짐(朕)의 어진 신하인데 어찌 특별히 재능 있는 선비를 보내려고 수고하겠는가? 요수(遼水)의 너비가 장강(長江)과 어떠하며, 고구려의 인구가 어찌 진국(陳國)만하랴! 짐이 만약 돌보아 주지 않고 왕의 과거 허물을 책한다면 한 장군에게 명하여도 충분한데 어찌 많은 병력을 동원하랴?”
하였다. 왕이 글을 보고 두려워하여 장차 글을 올려 사죄하려 하였으나 그대로 되지 않았다.

동10월 고구려 왕 양성(陽成)이 훙(薨)하고, 태자 원(元)이 즉위하였다.
고구려가 문자왕(文咨王) 이후로는 모두 용렬한 임금뿐이더니 왕에 이르러서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에게 부지런하여서 칭찬할 만한 것이 있었다. 왕이 훙하자 호를 평원(平原)이라 하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영양왕(嬰陽王)평양왕(平陽王)이라고 한다 이다. 풍채가 뛰어나서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하였다.
○ 수가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 왕을 책봉하였다.
상개부의동삼사 습작요동군공(上開府儀同三司襲爵遼東郡公)으로 책봉하고 옷 한 벌을 주었다.
○ 고구려 대형(大兄) 온달(溫達)이 군사를 거느리고 한강 이북의 옛 경계를 수복하려고 아단성(阿旦城)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온달이 왕에게 고하기를,
“신라가 우리의 한강 이북 땅을 빼앗아 군현(郡縣)을 만드니 한강 이북 사람들은 부모의 나라를 잊지 못하나이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를 불초(不肖)하다 마시고, 군사를 주시면 나가서 반드시 이를 수복하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떠날 때에 맹세하기를,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을 우리에게 돌려오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출발하여 신라군과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장사지내려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그의 처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이 결판났으니 아, 고이 돌아가소서.”
하매, 마침내 상여가 들려서 장사를 지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비통히 여겼다.


 

 

 

동사강목 제2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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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신라 자비왕 18년, 고구려 장수왕 63년, 백제 개로왕 21년ㆍ문주왕(文周王) 원년(북위 효문제 연흥 5, 송주 욱 원희 3, 475)


춘정월 계림이 수도를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기었다.

추9월 고구려왕이 크게 군사를 내어 백제를 치니 백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계림에 보내어 구원을 구하였다.
이에 앞서 고구려왕이 가만히 백제를 도모하려 하여 간첩을 구하니 부도(浮屠 승려) 도림(道琳)이 모집에 응하여 말하기를,
“소승이 도는 잘 모르나 나라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 있으니 소진(蘇秦)이 제(齊)나라를 유세하던 꾀로써 백제를 속이고자 합니다.”
하니, 왕이 기꺼이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도림은 거짓 나라에 죄를 얻은 체하고 도망해 백제에 들어가서 백제왕이 바둑을 잘 둔다 함을 듣고 드디어 바둑으로 왕을 만나보고 더불어 대국을 하니, 과연 국수(國手)인지라 왕이 믿고 가까이 하였다. 도림이 인하여 조용히 말하기를,
“신은 이국의 사람인데도 대왕께서 멀리하여 물리치지 않으시니 은혜가 너무나 큰데도 아직 조금의 도움도 드리지 못하였기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하니, 백제왕이 물으매 도림이 말하기를,
“대왕의 나라는 산으로 싸이고 하수가 가로 흘러 천연으로 된 요새이기에 사방의 이웃 나라가 감히 엿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마땅히 숭고한 자세와 부유(富有)한 사업으로 남이 보고 듣는 것을 두려워하게 해야 할 것인데도, 성곽(城郭)이 수선되지 못하고 궁실이 수축되지 못하며, 선왕의 해골은 임시로 노지(露地)에 빈장(殯葬)하였고, 백성의 주택들은 하수에 거듭 파괴되었으니, 신은 취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소.’ 하고 이에 크게 나라 사람을 동원해서 흙을 모아 성을 쌓고 궁실을 높이며 원유(苑囿)를 크게 하고 욱리하(郁里河) 지금 미상 에서 석곽(石槨)을 가져다가 다시 선왕을 장사지내고, 하수를 따라 제방을 쌓아 사성(蛇城) 지금 미상 동쪽으로부터 숭산(崇山)지금 미상 를 북쪽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창고가 바닥나고 백성들이 흩어져 유리하게 되었다. 도림이 도망하여 돌아가서 고구려왕에게 고하니, 고구려왕이 기뻐하며 친히 3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쳤다. 백제왕이 이를 듣고 아들 문주에게 이르기를,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해서 소인을 신용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백성은 쇠잔하고 군사는 약하니 누가 즐겨 나를 위하겠는가? 나는 마땅히 사직(社稷)을 위해 죽으려니와 부자가 같이 죽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너는 난을 피해서 종묘 사직을 잇도록 하여라.”
하고, 문주를 신라에 보내어 구원을 구하도록 하였다. 이에 문주는 목리 만치(木劦滿致)와 조미 걸취(祖彌桀取) 두 사람의 성명이다 를 데리고 남으로 행하였다.
○ 고구려가 진격해서 한성(漢城)을 쳐 함락하니 백제왕 경사(慶司)가 성을 나가 달아났으나 옛 신하 재증 걸루(再曾桀婁) 등이 왕을 잡아 시해하였다.
고구려 왕이 대로(對盧) 제우(齊于)와 재증 걸루ㆍ고이 만년(古爾萬年)재증과 고이는 복성(複姓)이다 등을 명해서 향도를 삼고 백제의 한성 북쪽 성을 쳐서 7일 만에 함락하고, 이동해서 남쪽성을 치며 군사를 나누어 네 길로 마주치고 바람을 타 불을 질러서 성문을 불태우니, 성 안의 인심이 위구(危懼)하여 나와 항복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다. 백제왕은 사태가 위급하여 어떻게 할지를 몰라 수십 기(騎)를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나니 재증 걸루 등이 추격해 따라갔다. 백제왕이 말에서 내려 절하는 것을 보고는 왕의 얼굴을 향해 세 번 침을 뱉고 그의 죄를 세며 결박해서 아단성(阿旦城)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혹은 영춘현(永春縣)이라 한다 으로 보내어 죽이고 남녀 8천 인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걸루와 만년은 본래 백제 사람으로서 일찍이 왕에게 죄를 짓고서 도망하여 고구려로 달아나서 장수로 피용되었던 것이다. 최씨가 이르기를,
“임금된 이는 반드시 잡힐 만한 틈이 있은 뒤에 사람이 그 틈을 엿보게 되며 적에서도 이간하게 되는 것이다. 개로왕은 구구(區區)한 작은 오락을 즐기다가 마음과 뜻을 미혹해서 마침내 적국의 미끼에 걸리고 말았다. 옛글에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伐] 뒤에 남이 치게 되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개로를 두고 말함이라 하겠다.”
○ 백제 왕자 문주가 즉위하였다.

동10월 수도를 웅진(熊津)으로 옮겼다.
문주가 신라에 이르러 군사 1만 인을 얻어 왔으나 왕은 죽고 성은 파괴되고 고구려 군사는 이미 물러갔다. 이에 문주가 즉위하니 이가 문주왕이다. 혹은 문주(汶洲)라 한다 성질이 착하고 부드러워 결단성이 없으나 그래도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도 왕을 애중하였다. 왕은 한성이 너무 파괴되고 또 고구려와 가까움을 두려워하여 드디어 수도를 웅진 지금의 공주부(公州府) 으로 옮기니 한성에 도읍한지 1백 5년 만에 천도한 것이다.

 

 


【인물】 고구려 온달(溫達) 용모가 껄렁[龍鐘]하여 우스웠으므로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 일컬었다. 양강왕(陽岡王)의 어린 딸이 스스로 나서서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후주(後周) 무제(武帝)가 요동(遼東)을 치니,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쌔게 싸워 수십여 급(級)을 베자 제군(諸軍)이 승세를 타고 분발해 쳐서 크게 이겼다. 왕이 가상히 여겨 탄식하기를, “과연 내 사위로다.” 하고 대형(大兄) 벼슬을 주었다. 평강왕(平岡王)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기를, “신라가 우리 한북(漢北)의 땅을 베어 저희 나라의 군현(郡縣)으로 삼으니, 백성들이 통한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원하건댄, 대왕께서는 신을 불초(不肖)하다고 여기지 말고 군사를 주어 가게 한다면 반드시 우리 땅을 회복하겠습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온달이 떠날 때에 임하여 맹세하기를, “계립고개[鷄立峴]ㆍ죽령(竹嶺) 이서를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 하였다. 드디어 신라군과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유시(流矢)에 맞아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 하니 널[柩]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지라, 공주가 널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죽고 삶이 다르니, 아, 돌아갑시다.” 하니, 드디어 널이 움직여 장사하였다.

 

 

고종 41년 갑진(1904, 광무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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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2일(병진, 양력 11월 18일) 맑음
좌목
 재실에서 원소를 간심한 도감의 당상 이하를 소견할 때 비서원 승 신성균 등이 입시하여 간심한 결과에 대해 논의하였다
○ 신시(申時).
상이 재실(齋室)에 나아갔다. 원소(園所)를 간심한 도감(都監)의 당상(堂上) 이하가 입시하였다. 이때 입시한 비서원 승 신성균(申性均), 비서원 낭 허만필(許萬弼)ㆍ신영학(辛泳學), 원소도감 당상(園所都監堂上) 이주영(李胄榮), 학부 대신서리 박제순(朴齊純), 장례원 소경 민영돈(閔泳敦)이 차례로 나와 엎드렸다.
상이 이르기를,
“사관은 좌우로 나누어 앉으라.”
하였다. 이어 원소도감 당상 이하에게 앞으로 나아오라고 명하니, 이주영 등이 앞으로 나아왔다. 상이 이르기를,
“상지관(相地官)은 대령하였는가?”
하니, 이주영이 아뢰기를,
“대령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즉시 입시하게 하라.”
하니, 상지관 최헌규(崔獻圭)ㆍ제갈형(諸葛炯)ㆍ이승건(李昇乾)ㆍ김윤현(金潤鉉)ㆍ오성근(吳聖根)ㆍ김중빈(金重彬)ㆍ김광식(金光植)ㆍ박인근(朴寅根)ㆍ전성기(全成基)가 차례로 나와 엎드렸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이 여러 곳을 간심한 결과 소견이 과연 어떠한가?”
하니, 이주영이 아뢰기를,
“신들이 명을 받들고 옛 수릉(綏陵)에 나아가 국내(局內)를 간심하니, 상지관들이 말하기를, ‘용(龍)과 혈(穴)이 엉기고 맺혀서 매우 길한 데다가 산운(山運)과 연운(年運)까지 부합하여 구애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지사(地師)들이 지금 대령하였으니, 하문하신 다음 처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상지관들은 각각 소견을 아뢰도록 하라.”
하니, 최헌규가 아뢰기를,
용마산(龍馬山)의 기운은 삼길성(三吉星)이 분명합니다. 용은 참되고 혈은 확실하며, 수(水)는 감돌고 사(砂)는 감싸 주며, 명당(明堂)은 평평하고 반듯하며, 조산(朝山)은 공손히 읍(揖)하는 형상이니, 순수한 길지(吉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제갈형이 아뢰기를,
탐랑(貪狼)과 거문(巨門)태조산(太祖山)이고, 태을(太乙)과 무곡(武曲)이 소조산(小祖山)이어서 삼길성이 구비되었습니다. 행룡(行龍)은 꿈틀거리듯 기복(起伏)이 있으며, 감돌고 감싸 주는 것은 겹겹이 싸인 연꽃 같고 변화가 많은 용 같으며, 좌우로 감아 주고 간직한 것은 연꽃이 반쯤 핀 형상이며, 혈맥(穴脈)이 국(局)을 이룬 것은 옥녀(玉女)가 단정히 앉아 있는 형상이니, 참으로 황실에서 크게 쓸 최상의 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승건이 아뢰기를,
용마산은 태조산의 낙맥(落脈)으로, 기복이 분명하고, 행도(行度)가 보필하듯 내려와 상생(相生)이 되었으며, 과협(過峽)은 번갈아 이어져 맞아들이고 있으며, 행룡은 왕(王) 자(字) 모양으로 맥(脈)이 되어 뇌(腦)를 이루었으며, 자색(紫色)은 깨끗하고 빼어나며, 입수(入首)의 기질은 살아 있고, 혈판(穴板)은 둥글고 정묘(精妙)하며, 수(水)는 맑고 기(氣)가 모여 합국(合局)하였으며, 태미원국(太微垣局)의 제석(帝席)이 본혈(本穴)이 되고, 천도(天道)로 태자성(太子星)이 조림(照臨)하며, 혈토(穴土)는 오색(五色)으로 비단결처럼 윤기 있고 주로 황사토(黃沙土)이니, 오이가 주렁주렁 달리는 형세로 자손이 집에 가득할 크게 길한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윤현이 아뢰기를,
용마산이 우뚝 서서 개장(開帳)하고 출맥(出脈)하며, 세 조산(朝山)의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으며, 도두(到頭)는 풍성하고 두터우며, 청룡(靑龍)과 백호(白虎)는 완만하게 감싸 주고 있으니, 반드시 매우 좋은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중빈이 아뢰기를,
용마산의 산세(山勢)는 삼길성이 구비되었고 기복과 굴곡이 있으며, 혈(穴)이 돌(突) 위로 모였고 위에서 나뉜 것을 아래에서 합하고 있으며, 태극(太極)이 분명하고 24개 봉우리는 빙 둘러 성곽의 모양을 이루었으며, 수세(水勢)는 합금(合襟)하고 현규(玄竅)가 서로 통하니, 이 자리의 기상(氣像)은 만세토록 영화롭고 번창할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광식이 아뢰기를,
용마산의 산등성이는 기복이 아차산(峨嵯山)까지 이어졌으며, 탐랑이 태조산이고 거문이 중조산(中祖山)이고 무곡이 소조산이며, 활동적이면서도 온화하고 윤택하며, 완만하면서도 기(氣)가 뭉쳐 있습니다. 혈(穴)이 돌(突) 위로 모여 있고 묘좌(卯坐)의 특성은 밖으로 사방의 산세와 합하였으며, 24개 봉우리는 정해진 자리를 잃지 않았고 양쪽으로 나뉜 물은 합금하여 자연스럽게 고리와 성곽의 모양을 이루었으니, 하늘이 만들어 낸 형상으로 영원토록 편안하고 길할 자리입니다.”
하였다. 박인근이 아뢰기를,
“용은 불암산(佛巖山)에서 뻗어 나왔으며, 탐랑이 태조산이고 아차산이 중조산이고 용마산(龍馬山)이 소조산입니다. 간인방(艮寅方)에서 곤신방(坤申方)을 향해 옆으로 낙맥하고, 갑묘방(甲卯方)에서 경유방(庚酉方)을 향해 속인(束咽)하고, 기복과 굴곡이 있다가 다시 솟아 축간방(丑艮方)에서 미곤방(未坤方)을 향해 작봉(作峯)하고, 묘을방(卯乙方)에서 유신방(酉辛方)을 향해 전신(轉身)하고, 묘방(卯方)에서 유방(酉方)을 향하여 입수(入首)하였습니다. 묘좌(卯坐)의 혈성(穴星)은 돌혈(突穴) 위에 와혈(窩穴)을 열었고 금성(金星)과 수성(水星)이 국(局)을 이루었으며,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서로 양보하듯 엇갈려 있고 수세는 감돌아 흐르며, 조산과 안산(案山)은 공손히 읍하고 있는 형상이니, 상길(上吉)의 자리에 부합할 듯합니다.”
하였다. 이응국이 아뢰기를,
용루봉각(龍樓鳳閣)과 오행성신(五行星辰)이 좌우로 개장하고 중심으로 출맥하며, 용(龍)과 호(虎)가 겹겹이 싸여 있고 안산(案山)은 줄지어 서 있으며, 명당(明堂)은 넓고 평평하며, 혈처(穴處)는 맺혀 있으니, 향기로운 풀로 말을 기르는 형상으로 만세토록 편안함을 누릴 자리입니다.”
하였다. 전성기가 아뢰기를,
용마산에서 개장하여 뻗어 온 용은 딱따구리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과 같기에 살아 있는 용이며, 양(陽)으로 오다가 음(陰)으로 혈(穴)을 이루었기에 돌혈(突穴)입니다. 조산과 안산이 고리처럼 감싸 안고, 우뚝 솟은 것은 마치 위용 있는 무장(武將)이 성곽을 호위하는 것과 같으니 대귀(大貴)의 사(砂)이며, 명당이 깨끗하게 엉겨 있는 것은 엄정한 현신(賢臣)이 호위하는 것과 같으니 대길(大吉)의 수(水)입니다. 참으로 제왕의 묘에나 쓸 수 있는 격(格)으로 만세토록 대길할 자리입니다.”
하였다. 최헌규가 아뢰기를,
“홍릉 왼쪽 산등성이의 손좌(巽坐)는, 용맥은 참되고 확실하며 혈성(穴星)은 단정하나 당국(堂局)이 얕고 열렸으니, 중길(中吉)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제갈형이 아뢰기를,
“용의 기운은 굳세고 혈의 국세(局勢)는 단아하여 비록 형편없다고 논할 수는 없지만 좌익(左翼)이 짧고 얕으니, 크게 쓸 만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였다. 이승건이 아뢰기를,
“용과 혈이 비록 아름답지만 사(砂)와 수(水)가 왼쪽은 나오고 오른쪽은 들어갔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윤현이 아뢰기를,
“용맥은 생기(生氣)를 탔고 혈이 비록 단정하지만 국세가 얕고 단조로우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오성근이 아뢰기를,
“내맥(來脈)은 기복이 있고 입수(入首)가 분명하며 국(局)을 이룬 것이 주밀하니, 길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김중빈이 아뢰기를,
“활동적인 용의 형세는 이법(理法)으로 볼 때 정묘하지만 혈장(穴場)이 매우 좁으니, 결코 크게 쓸 만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였다. 김광식이 아뢰기를,
“용의 형세가 활동적인 것은 이법으로 볼 때 정묘하지만 혈장이 좁고 짧으니, 크게 쓸 만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였다. 박인근이 아뢰기를,
“용의 몸은 기복하여 성봉(成峯)하였지만 혈성이 짧고 좁으며 당국이 평평하고 열렸으니, 크게 쓸 만한 자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응국이 아뢰기를,
“용은 참되고 혈은 확실하지만 국세가 좁고 짧으니, 이 또한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전성기가 아뢰기를,
“용과 혈은 비록 참되고 확실하지만 국세가 넓지 않으니, 이 또한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최헌규가 아뢰기를,
“숭릉(崇陵) 왼쪽 산등성이의 신좌(辛坐)는 용이 비록 흠은 없지만 사(砂)와 수(水)가 곧바로 혈을 쏘고 들어오니, 감히 찬동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제갈형이 아뢰기를,
“비록 혈은 단정하고 사와 수는 화목하게 감싸 주어 쓸 만한 자리인 듯하지만, 상국(上局)에 비할 경우 감히 크게 적합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승건이 아뢰기를,
“용과 혈은 단조롭고 사와 수는 반쯤 열렸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윤현이 아뢰기를,
“명산(名山)의 여맥(餘脈)으로 용은 비록 흠이 없지만, 청룡(靑龍)이 혈을 감싸 주지 않고 사와 수는 혈을 곧바로 쏘고 들어온다고 하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오성근이 아뢰기를,
“국(局)을 이룬 것은 비록 아름답지만 혈형(穴形)이 확실하지 않으니, 감히 크게 찬동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김중빈이 아뢰기를,
“용은 비록 멀리서 뻗어 왔지만 혈성이 모호하며, 사는 아름답고 수는 길하지만 크게 쓸 수 없습니다.”
하였다. 김광식이 아뢰기를,
“용, 혈, 사, 수는 비록 감싸 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태극(太極)이 모호합니다.”
하였다. 박인근이 아뢰기를,
“용, 호, 사, 수는 비록 감싸 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혈성이 모호합니다.”
하였다. 이응국이 아뢰기를,
“용이 귀봉(貴峯)에서 솟아 당국에 부합할 수 있지만 청룡이 감싸 주지 않으니, 이른바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전성기가 아뢰기를,
“명산의 여맥이어서 용과 혈은 비록 아름답지만 사와 수가 혈을 감싸 주지 않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최헌규가 아뢰기를,
“홍릉(洪陵) 왼쪽 산등성이의 간좌(艮坐)는 맥이 짧고 혈이 볼품없으니, 결코 상인(上人)이 거처할 자리가 아닙니다.”
하였다. 제갈형이 아뢰기를,
“용이 뻗어 가는 기운은 꿈틀꿈틀하고 와혈로 혈을 이루었지만, 본혈(本穴)을 보호하는 사가 짧고 보잘것없으니, 크게 쓸 만한 자리에 부합하지 않을 듯합니다.”
하였다. 이승건이 아뢰기를,
“용의 형세는 깨끗하고 넓으며 국세는 반쯤 뭉쳐 있으며, 사와 수는 비록 아름답지만 좌(坐)와 혈(穴)이 낮으니, 하길(下吉)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윤현이 아뢰기를,
“용은 비록 생기가 있고 혈은 와혈로 국세를 이루었지만 명당(明堂)이 비고 열렸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오성근이 아뢰기를,
“후룡(後龍)은 겹겹이 뻗어서 내려오며, 혈성은 비록 아름답지만 짧고 좁은 것이 다소 흠입니다.”
하였다. 김중빈이 아뢰기를,
“활동적인 내룡으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혈판이 단정하기는 하지만 크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김광식이 아뢰기를,
“겹겹이 뻗어 온 용이고, 이법(理法)에 우연히 맞았지만 혈장이 짧고 좁으니, 크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박인근이 아뢰기를,
“용, 혈, 사는 비록 감싸 주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당국이 낮고 볼품없으니, 이는 평길(平吉)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이응국이 아뢰기를,
“주룡(主龍)이 기봉한 것은 우뚝 빼어나지만 혈처(穴處)가 넓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전성기가 아뢰기를,
“용과 혈은 비록 단정하지만 사와 수가 얕고 짧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최헌규가 아뢰기를,
“강릉(康陵) 왼쪽 산등성이의 유좌(酉坐)는 혈성이 우뚝 솟아 반드시 아래를 감싸 주면서 내려가는 형세가 있으니, 진인(眞人)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뒤에 비바람에 패여서 겉모양이 비록 모호해졌다고는 하지만 은은하게 길한 기운이 엉겨 있으니, 반드시 때를 기다려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제갈형이 아뢰기를,
“용의 형세는 웅장하고 감싸 주는 것이 주밀하며, 혈은 단정하고 순(脣)이 둥그니, 크게 사용될 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후룡이 파괴되어 다소 흠이 있습니다.”
하였다. 이승건이 아뢰기를,
“용의 형세는 깨끗하고 빼어나며, 국세는 매우 아름답고, 사와 수는 법에 맞지만, 좌와 혈이 둥글고 열렸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윤현이 아뢰기를,
“혈은 비록 단정하지만 용이 기복과 굴곡이 없고 수와 사가 곧바로 빠져나가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오성근이 아뢰기를,
“조산(祖山)은 우뚝 솟았고 용(龍)과 호(虎)가 멀리서 감싸 주고 있으며, 국(局)을 이룬 것은 웅장하지만 용맥이 파괴되었으니, 크게 쓰일 수 없는 자리입니다.”
하였다. 김중빈이 아뢰기를,
“불암산(佛巖山)의 산세가 겹겹이 뻗어 내려오고 활동적이지만 용맥이 파손되었으니, 이 때문에 흠이 있습니다.”
하였다. 김광식이 아뢰기를,
“용의 기운은 힘이 있어 활동적으로 변화하고, 혈이 유상(乳狀)으로 맺었으나, 가장자리에 다소 흠이 있습니다. 그러니 사와 수가 혈을 감싸 주고 있다 하더라도 평길(平吉)한 자리로나 쓸모가 있습니다.”
하였다. 박인근이 아뢰기를,
“주룡이 비바람을 맞은 흔적이 많으니, 혈처는 사상(四象)의 형세가 있는 듯하나, 주룡이 황송하여 감히 더 이상 찬동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응국이 아뢰기를,
“혈은 생기가 있지만 후룡이 굴곡과 동정(動靜)이 없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전성기가 아뢰기를,
“용과 혈은 비록 참되고 확실하지만 사와 수가 감싸 주지 않으니, 중길의 자리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간심한 여러 곳 가운데 용마봉(龍馬峯) 아래가 가장 길하던가?”
하니, 최헌규 등이 아뢰기를,
“실로 가장 길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미 길지라고 말하니 매우 다행이다. 평범한 사람의 안목으로도 길지라는 것을 알겠던가?”
하니, 이주영이 아뢰기를,
“비록 평범한 사람의 안목으로 보더라도 전혀 의심 없이 길지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상지관들의 말을 듣자니 모두 길지라고 하는데, 두 번째 간심은 언제 내보내는가?”
하니, 이주영이 아뢰기를,
“등록을 살펴보니, 첫 번째 간심을 한 뒤 2, 3일 내에 두 번째 간심을 하러 나갔습니다만, 오직 상께서 처분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총호사와 의논하여 날짜를 정하라.”
하니, 이주영이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하교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어 쓰라고 명하고 조칙(詔勅)을 내리기를,
“두 번째 간심을 할 때에는 시원임 대신과 총호사 이하가 나아가라.”
하였다. 또 쓰라고 명하고 조칙을 내리기를,
“두 번째 간심을 할 때에 중추원 의장 민영소(閔泳韶)도 함께 나아가라.”
하였다. 상이 상지관에게 먼저 물러가라고 명하고 이어 원소도감 당상 이하에게 물러가라고 명하였다. 또 물러가라고 명하니, 승과 사관이 차례로 물러 나왔다.

[주D-001]삼길성(三吉星) : 구성(九星) 중에서 탐랑(貪狼), 거문(巨門), 무곡(武曲), 보필(輔弼)이 길성(吉星)에 해당하는데, 용마산(龍馬山)은 이 가운데 탐랑, 거문, 무곡의 세 길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D-002]용은 참되고 : 진룡(眞龍), 즉 산의 정기(精氣)가 살아 있어 혈(穴)이 응결된 용이라는 뜻이다.
[주D-003]혈은 확실하며 : 진혈(眞穴), 즉 가혈(假穴)이 아닌 땅으로 생기(生氣)가 모여 있다는 뜻이다.
[주D-004]사(砂) : 혈(穴)을 중심으로 하여 전후좌우에 나열된 산, 물, 암석, 지형, 건물, 수목 등 모든 환경조건을 말한다.
[주D-005]명당(明堂) : 혈(穴)을 중심으로 한 전후좌우의 묘역(墓域)을 말한다.
[주D-006]조산(朝山) : 안산(案山) 너머로 멀리 높게 솟은 산을 말한다.
[주D-007]탐랑(貪狼)과 거문(巨門) : 탐랑과 거문, 그리고 다음 구절의 무곡(武曲)은 구성(九星) 중의 하나이다. 구성법(九星法)으로 따져 입수(入首)나 용(龍)의 길흉을 보는 것으로, 구성 가운데 탐랑, 거문, 무곡, 좌보(左輔), 우필(右弼)은 길성(吉星)이고, 파군(破軍), 녹존(祿存), 문곡(文曲), 염정(廉貞)은 흉성(凶星)이다.
[주D-008]태조산(太祖山) : 혈(穴)의 맨 처음 근원이 되는 산으로 가장 높고 큰 산을 말한다.
[주D-009]소조산(小祖山) : 태조산(太祖山)에서 주산(主山) 사이에 이르는 동안 태조산 다음으로 높고 큰 산을 말한다.
[주D-010]낙맥(落脈) : 큰 산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여러 개의 작은 산줄기 중에 혈(穴)을 형성할 수 있는 귀한 가지가 떨어져 나온 것이다.
[주D-011]과협(過峽) : 용맥(龍脈)이 목처럼 잘록하게 줄어들고 움푹 가라앉아 이쪽 등성이에서 저쪽 등성이로 주맥(主脈)이 건너가는 곳으로, 용의 기가 묶이는 곳[束氣處]이다.
[주D-012]뇌(腦) : 뇌두(腦頭), 즉 혈(穴) 바로 뒤에 두골(頭骨) 모양으로 도도록하게 솟은 것이다. 단, 현무정(玄武頂)과는 다르다. 현무정은 혈 뒤로 뇌두보다 크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은 봉우리라고 할 수 있지만, 뇌두는 지형이 돌(突)한 것일 뿐 봉우리라고 볼 수 없다.
[주D-013]자색(紫色) : 묘좌(卯坐)가 목(木)에 해당하니, 목성(木星)은 길성(吉星)이다.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것을 말한다.
[주D-014]입수(入首) : 혈(穴) 뒤 4, 5십 척 되는 지점에서 혈까지 이르는 용맥(龍脈), 즉 혈 바로 뒤의 용맥이 입수이다. 과일에 비유하면 꼭지 부분에 해당한다.
[주D-015]혈판(穴板)은 둥글고 : 이는 둥글게 계수(界水)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계수’는 혈(穴) 좌우로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주D-016]정묘(精妙) : 원문에는 ‘精砂’로 되어 있는데, ‘砂’를 ‘妙’로 보아 번역하였다.
[주D-017]합국(合局) : 용(龍), 혈(穴), 사(砂), 수(水)가 모두 길격(吉格)에 맞는 것이다.
[주D-018]태미원국(太微垣局)의 제석(帝席) : ‘太微垣局’의 ‘垣’이 원문에는 ‘恒’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이 통하지 않아 ‘垣’으로 번역하였다. ‘제석’은 임금의 자리, 즉 임금격이 되는 제성(帝星)이 임한 곳을 말하는데, 자미원(紫微垣), 태미원, 천시원(天市垣)의 삼원(三垣)이 있다.
[주D-019]개장(開帳) : 용맥이 뻗어 나가는 모습이 장막을 열고 그 안에 귀인이 앉은 것처럼 좌우로 활짝 펼쳐지고, 중심맥은 그 가운데로 뻗어 내려온 것이다.
[주D-020]출맥(出脈) : 혈을 형성하는 산줄기가 부모산(父母山)에서 처음 뻗어 나오는 것이다.
[주D-021]도두(到頭) : 머리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혈을 맺는 근처에 바짝 와서 봉우리, 즉 현무정(玄武頂)을 이룬 것이다.
[주D-022]청룡(靑龍)과 백호(白虎) : 혈(穴) 왼편에 있는 용맥(龍脈)을 청룡이라 하고, 오른편에 있는 용맥을 백호라 한다.
[주D-023]태극(太極) : 태극혈(太極穴), 즉 혈형(穴形)이 둥그런 원운(圓暈)을 이룬 것을 말한다. 이 혈의 특징은 ‘은(隱), 미(微), 방(彷), 불(彿)’이라고 할 수 있으니, 둥그런 것이 은은하고 미미하여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음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있는 듯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없고, 곁에서 보면 드러나지만 다가가서 보면 있는지 없는지 모호한 것이 바로 태극혈의 신비라 할 수 있다. 이 태극운(太極暈) 위에는 물이 양쪽으로 나뉘고 아래에는 물이 합쳐진다.
[주D-024]합금(合襟) : 혈 뒤에서 나뉘었던 물이 혈 앞에서 다시 합쳐지는 것이다.
[주D-025]현규(玄竅)가 서로 통하니 : 산의 양(陽) 기운과 물의 음(陰) 기운이 서로 맞는 것을 말한다.
[주D-026]간인방(艮寅方) : 간방(艮方)과 인방(寅方)의 사이를 말한다. 이하 방위도를 참조한다.



[주D-027]속인(束咽) : 결인(結咽)과 같다. 부모산과 도두봉(到頭峯) 사이의 속기처(束氣處), 즉 위로 솟았던[起] 지형이 아래로 엎드린[伏] 곳이다. 과협(過峽)과 모습은 비슷하나 위치는 다르다. 곧, 과협은 혈에서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결인은 혈 바로 뒤에서 이루어진다.
[주D-028]작봉(作峯) : 기봉(起峯), 또는 성봉(成峯)과 같다. 용맥이 일어나 봉우리로 솟은 것이다.
[주D-029]전신(轉身) : 번신(翻身)과 같다. 내려오던 용맥이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것이다.
[주D-030]입수(入首) : 혈(穴) 뒤 4, 5십 척 되는 지점에서 혈까지 이르는 용맥(龍脈), 즉 혈 바로 뒤의 용맥이 입수이다. 과일에 비유하면 꼭지 부분에 해당한다.
[주D-031]혈성(穴星) : 혈(穴)이 있는 곳의 주위환경으로 별명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혈(窩穴)이니 유혈(乳穴)이니 하고 부르는 것을 말한다.
[주D-032]안산(案山) : 혈 앞에 솟은 산이다. 혈 앞의 산이 중첩되어 있을 경우 혈에서 가장 가까운 앞산을 내안산(內案山)이라 하고, 내안산 뒤에 있는 산을 외안산(外案山)이라 한다.
[주D-033]용루봉각(龍樓鳳閣) : 사격(砂格)에 길사(吉砂)와 흉사(凶砂) 두 가지가 있는데, 용루봉각은 길사에 속한다.
[주D-034]명당(明堂)이 비고 열렸으니 : 이는 안산(案山)이 멀리 있다는 말이다.
[주D-035]순(脣) : 혈이 일단 맺고 그 앞에 남은 기운이 발로한 것으로 ‘입술’이라고도 하는데, 혈 앞에 내민 것이 작거나 사람의 아랫입술과 같은 것을 ‘순’이라 한다.
[주D-036]사상(四象) : 여기서는 혈형(穴形)의 4대 기본 원칙을 말하는 것으로, 사대혈형(四大穴形), 또는 사대혈성(四大穴星)이라고 하는데, 와형(窩形), 겸형(鉗形), 유형(乳形), 돌형(突形)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