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정보]
본관명 | 거창(居昌) |
성씨명 | 신씨(愼氏) |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慶尙南道) 거창군(居昌郡) |
본관이칭 | |
시조명 | 신수(愼修) |
[상세내용]
본관 연혁
거창(居昌)은 경상남도 북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동부 지역을 가소, 서북부 지역을 임례(稔禮) 혹은 남내(南內)라 하였다. 본래 거타(居陀)‧거열(居烈)이라 불리던 것을 757년(신라 경덕왕 16) 가소를 함음현(咸陰縣)으로, 남내를 여선현(餘善縣)으로 개편하여 거창군으로 통합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여선현을 감음현으로, 함음현을 가소현으로 고쳤다가 1018년(고려 현종 9) 합주(陜州: 陜川)에 통합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거제현(巨濟縣)과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이 되었다. 1496년(연산군 2)에 거창군으로 승격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 1658년(효종 9) 안음(安陰: 安義)에 편입시키고, 1739년(영조 15)에 거창부(居昌府)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거창군이 되었고, 1937년 거창면이 거창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신씨(愼氏)는 중국 천수(감숙성 위천도)에서 시작된 성씨이다.
우리나라 신씨는 송나라 개봉부 사람인 신수(愼修)가 고려 문종 때 사신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 시초라 한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수사도(守司徒)와 좌복야(左僕射)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으며, 1101년 사망하자 숙종이 공헌(恭憲)의 시호를 내렸다. 6세손 신집평(愼執平)이 강화도 천도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으로 몽골에 대항하다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신성(愼成)은 군기감사(軍器監司)를 역임하였으며 아버지가 사망하자 경상남도 거창에 내려가 살면서 거창신씨의 시원이 되었다.
분적종 및 분파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참판공파(參判公派), 서령공파(署令公派), 양간공파(襄簡公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
경기도 파주시 금촌읍 금릉리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대정리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참고문헌]
《증보문헌비고》
《씨족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