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대장 관련 자료/2013. 3. 10 삼각산 첫산행

천주봉(天柱峯)

아베베1 2013. 3. 18. 08:46


  도봉산 관련 공부 자료 

 

 

 

 
서계집 제2권
확대원래대로축소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천주봉(天柱峯)

도봉산(道峯山)이 땅에서 치솟아 하늘에 닿을 듯 삐죽삐죽한 봉우리가 우뚝하니 조화옹이 유독 여기에만 솜씨를 부렸다. 고인들이 이 산은 바로 신선이 살고 있어서 봉호(蓬壺)의 으뜸이 되기 때문에도봉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하였다. 또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등 상서로움과 신령함을 기르고 모아 무강한 기틀을 공고히 하는 것은 임안(臨安)의 천목산(天目山)과 비교해 보면 현격히 차이가 나는데도 산의 봉우리들은 거의 이름이 없으니 매우 괴이하게 여길 만하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 하나를 근래에 이르러서야 곧 ‘만장(萬丈)’이라 명명하였는데 속됨을 면치 못하였으므로 내가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지금 ‘천주(天柱)’라고 명명하고자 하니, 그 형상을 본뜬 것이다. 인하여 절구 4수를 짓는다.

옛적에 이 봉우리의 이름을 만장이라 하였는데 / 舊云萬丈是峯名
새 이름을 지어 다시 실정에 걸맞게 하려 한다 / 要與新名更稱情
도리어 하늘에 기둥 없어도 되게 하였으니 / 却遣天無柱亦得
그 어느 것이 이 봉우리와 높음을 다투겠는가 / 擎高誰與此峯爭

공공의 몸을 백억 개로 만들어 / 便化共工身百億
몸통 하나에 머리 하나씩 붙였어라 / 一身還着一頭來
머리마다 떠받아 깨져도 계속해서 떠받지만 / 頭頭觸碎頭頭觸
우뚝한 이 봉우리 어찌 갑자기 꺾이겠는가 / 看見孤撑詎忽摧

천주는 본래 옥황상제의 뜰과 가까워 / 天柱由來近帝庭
동서 만리에 깊은 바다 굽어본다네 / 東西萬里俯重溟
난새 참마와 규룡 수레 항상 내왕하여 / 鸞驂虬駕常來往
밤마다 성단에 온갖 신령이 모인다네
 / 夜夜星壇會百靈

형악에 천주봉 높다는 말 들었는데 / 衡嶽曾聞天柱高
오봉 중에 높이 다투면 어느 것이 가장 으뜸인가 / 五峯爭長孰推豪
도리어 비바람 치는 어둑한 밤에 / 還輸風雨冥冥夜
홀로 삼경에 토호 세는 것만은 못하리라
 / 獨向三更數兎毫

[주D-001]봉호(蓬壺) : 산 이름이다. 해중(海中)에 삼산(三山)이 있는데, 하나는 방호(方壺)로 곧 방장(方丈)이고, 둘째는 봉호로 곧 봉래(蓬萊)이고, 셋째는 영호(瀛壺)로 곧 영주(瀛洲)이다. 모양이 병처럼 생겼다고 한다. 《拾遺記》
[주D-002]천목산(天目山) : 절강성(浙江省) 임안현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부옥산(浮玉山)이라고도 한다. 동천목(東天目)과 서천목(西天目)의 두 봉우리가 있다.
[주D-003]공공(共工) : 고대 전설상의 천신(天神)이다. 전욱(顓頊)과 제위(帝位)를 다투다가 노하여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으니,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기울고 땅을 매어 놓은 밧줄이 끊어져서,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어 해와 달과 별은 서북쪽으로 옮겨 가고 땅은 동남쪽이 낮아져 물은 동남쪽으로 흘렀다고 한다. 《淮南子 天文訓》
[주D-004]난새 …… 모인다네 : 난새 참마와 규룡 수레는 신선이 타는 것이고, 성단(星壇)은 미성(尾星)과 기성(箕星)에 제사 지내던 단이다. 여기서는 천주봉(天柱峯)에 밤마다 신선들이 모인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주D-005]오봉(五峯) : 형산(衡山)의 다섯 봉우리로 자개(紫蓋), 천주(天柱), 운밀(雲密), 석름(石廩), 축융(祝融)이다.
[주D-006]도리어 …… 못하리라 : 도봉산(道峯山)의 천주봉이 구름보다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비바람 치는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할지라도 달 속에 있는 토끼의 털을 셀 수 있지만, 형산(衡山)의 천주봉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인 듯하다. 즉 도봉산의 천주봉이 형산의 천주봉보다 훨씬 더 높다는 뜻으로 말한 듯하다.

 
도봉산(道峯山)을 바라보며 짓다

조화옹의 기교에 마음 몹시 놀라니 / 奇巧心偏怪化翁
수많은 손놀림이 신묘 막측하구나 / 幾般摶弄妙難窮
온갖 형상이 땅 아래에 조밀한데 / 萬形掩翳黃塵下
한 바위 봉우리가 창공을 찌르네 / 一骨嵯峨碧落中
달을 보매 세상의 어둠 아랑곳없고 / 看月不妨人界黑
꽃을 흩날리매 내내 하늘이 붉어라 / 散花長得佛天紅
벼랑 중턱 노송에 걸린 높다란 둥지 / 半崖松老危巢倒
몇 조각 구름이 학의 뒤를 따르네 / 數片雲隨鶴背風

 
서계집 제2권
확대원래대로축소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사예 조여길(趙汝吉)이 도봉서원(道峯書院)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

말을 멈춘 채 사람 만나 얘기 나누고서 / 駐馬逢人說
그대가 어제 도성을 나간 줄 알았어라 / 知君昨出城
바야흐로 시내를 지나가려다가 / 方將過溪去
도리어 숲 속 길로 접어들었네 / 却復入林行
눈 아래엔 푸른 산이 펼쳐지는데 / 眼底靑山在
머리 가엔 흰 머리털이 생겼구려 / 頭邊白髮生
계창에서 지난 십 년 얘기하다가 / 鷄窓十年事
졸다 깨어 새벽 시간을 묻노라 / 睡醒問殘更


권하노니 그대 일이 없거든 우선 머물러 / 勸君無事且遲留
모쪼록 다시 한 번 깊은 골 찾아보게나 / 深處應須更一搜
야윈 말 채찍질하여 도성으로 들어간 뒤에는 / 從此鞭羸入城去
이 운산이 좋다지만 속절없이 그리워하리니 / 雲山雖好謾回頭



형창에서 옛적 독서하던 소년이 / 螢窓昔日少年生
백발에 다시 이곳에 찾아왔네 / 白首還從此地行
산새와 물고기 모두 낯이 익건만 / 山鳥溪魚皆舊識
하염없는 세월만 홀로 무정하여라 / 悠悠歲月獨無情

[주C-001]도봉서원(道峯書院) : 1573년(선조6)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창건 때 ‘도봉(道峯)’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고, 1696년(숙종22)에는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였다.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다.
[주D-001]계창(鷄窓) : 서재를 말한다. 진(晉)나라 때 연주 자사(兗州刺史) 송처종(宋處宗)이 잘 우는 닭 한 마리를 사서 항상 서재 창 사이의 조롱에 두고 매우 사랑하며 길렀다. 닭이 마침내 말을 하게 되어 송처종과 담론하였는데 매우 말재주가 있어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송처종이 이로 인해 언변이 크게 진전하였다 한다. 《幽明錄》

 
계집 제2권
확대원래대로축소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도봉(道峯)

서른여섯 봉우리의 숭산은 낮은 붓걸이에 불과하고 / 六六嵩岑低筆格
아홉 봉우리의 여산은 작은 병풍에 지나지 않네 / 三三廬阜小屛風
구름과 안개 밖에 들쭉날쭉 첩첩이 / 參差重疊雲霞外
푸른 옥빛 부용이 하늘 가득 치솟았네 / 碧玉芙蓉揷滿空

 
 서계집 제2권
확대원래대로축소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무신년(1668, 현종9)에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에 지은 것이다.
약천(藥泉)의 별장에서 남운로(南雲路)에게 주다 4수

약천은 광진(廣津) 강가에 있는데 운로의 작은 집이 있다. 내가 가서 여기에서 이별하였다.

호해에서 서로 그리며 세월을 보냈는데 / 湖海相望歲月空
강산에서 또 이렇게 잠깐 함께하노라 / 江山又此暫時同
표표히 헤어져 동서로 흩어지리니 / 飄飄觧袂東西散
먼 길 어떻게 소식을 통할 수 있을까 / 路遠何緣信耗通

강을 따라 아득한 백운 속으로 들어가니 / 緣江路入白雲賖
붉은 밤과 누런 배 달린 두서너 집 있다오 / 赤栗黃梨三兩家
멀리 바라보니 새로 지은 집 가장 깊은 곳에 / 遙見深處
솔 드리워 그늘진 언덕에 작은 시내 비껴 흐르네 / 低松陰畔小溪斜

처음 이곳에 집 지음 뜻이 없지 않았으니 / 初營此地非無意
만년을 쉬며 한가롭게 지내려 해서였지 / 應有休閑歲晩期
오늘날 도리어 와서 지나는 길손 되니 / 今日却來爲過客
아득한 세상만사 뉘라서 먼저 알리오 / 悠悠萬事孰先

그대에게 들으니 호중에 승경 있는데 / 聞君見說湖中勝
꽃을 심을 만한 곳 유난히 많다지 / 勝處偏多可種花
어찌하면 가솔 데리고 그대 따라 은거해서 / 安得將家隨共隱
모내기하고 게 잡으며 생애를 보낼 수 있을는지 / 秧苗罛蟹送生涯

[주C-001]약천(藥泉)의 …… 주다 : 이 시에 남구만이 차운한 시가 한국문집총간 131집에 수록된 《약천집(藥泉集)》 권1에 〈광진별서차서계박형계긍세당운(廣津別墅次西溪朴兄季肯世堂韻)〉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시는 남구만의 시 아래 원운(元韻)으로 실려 있다.
[주D-001] : 《약천집》 권1 〈광진별서차서계박형계긍세당운〉에 ‘茅’로 되어 있다.
[주D-002] : 《약천집》 권1 〈광진별서차서계박형계긍세당운〉에 ‘更’으로 되어 있다.
[주D-003]孰先 : 《약천집》 권1 〈광진별서차서계박형계긍세당운〉에 ’復誰’로 되어 있다.
[주D-004]호중(湖中) : 호서(湖西) 지방으로, 약천 남구만이 호서의 결성(結城)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