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의령현 칠곡
장함현 의춘 의산 의 읍지인 칠곡 자굴산 영봉의 정기를 받은 칠곡
| ||
◎ 의령현(宜寧縣)
본디 장함현(獐含縣)인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함안군(咸安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현종 무오년에 진주(晉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공양왕 경오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고, 신번현(新繁縣)을 이에 붙였다. 속현(屬縣)이 1이니, 신번현(新繁縣)이다. 이는 본디 신이현(神尔縣)인데,【주오(朱烏)라고도 하고, 천천(泉川)이라고도 한다.】 경덕왕이 이름을 의상(宜桑)으로 고쳐서 강양군(江陽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현종 무오년에 합주(陜州) 임내(任內)에 붙였었다. 부곡(部曲)이 1이니, 정골(正骨)이요,【예전에는 곤명(昆明)에 속하였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직촌(直村)이 되었다.】 향(鄕)이 1이니, 지산(砥山)이다.【예전에는 곤명에 속하였었는데, 지금은 망하고 직촌이 되었다.】 자굴산(闍崛山)은 현 북쪽에 있고, 정암진(鼎巖津)은 현 남쪽에 있다.【진주(晉州) 남강(南江)의 하류이다. 나룻배가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초계(草溪)에 이르기 46리, 서쪽으로 삼가(三嘉)에 이르기 29리, 남쪽으로 진주(晉州)에 이르기 24리, 북쪽으로 합천(陜川)에 이르기 18리이다. 본현의 호수는 5백 4호, 인구가 1천 6백 29명이요, 신번(新繁)의 호수는 5백 55호, 인구가 9백 82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50명, 영진군(營鎭軍)이 70명, 선군(船軍)이 3백 27명이다. 본현의 토성(土姓)이 4이니, 남(南)·심(沈)·여(余)·옥(玉)이요, 속성(續姓)이 3이니, 임(林)·김(金)·강(姜)이며,【모두 근본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지금은 향리가 되었다.】 신번(新繁)의 성이 5이니, 진(陳)·서(徐)·임(任)·석(石)·오(吳)이요, 속성(續姓)이 1이니, 김(金)이며,【근본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지금은 향리가 되었다.】 정골(正骨)의 성이 1이니, 옥(玉)이요, 내성(來姓)이 3이니, 강(姜)·유(柳)【모두 진주(晉州)에서 왔다.】·조(趙)【함안(咸安)에서 왔다.】 이며, 지산(砥山)의 성이 1이니, 여(余)요, 없어진 소(所)인 저지(楮旨)의 성이 1이니, 박(朴)이다. 인물(人物)은 좌의정 충경공(左議政忠景公) 남재(南在)와 참찬문하부사 강무공(參贊門下府事剛武公) 남은(南誾)이다.【형제가 함께 개국 공신(開國功臣)으로서 본조(本朝)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땅이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하며, 간전(墾田)이 3천 5백 58결이다.【논이 3분의 2에 약하다.】 토의(土宜)는 벼·조·보리·뽕나무·삼[麻]·모시[苧]·목면[木綿]·감·배이요, 토공(土貢)은 꿀·밀[黃蠟]·지초·가는 대·왕대·칠·종이·사슴가죽·노루가죽·여우가죽이며, 약재(藥材)는 맥문동(麥門冬)·속단(續斷)·인삼이며, 토산(土産)은 은구어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본현(本縣) 동쪽 원당리(元堂里)에 있고,【하품이다.】 도기소(陶器所)가 1이니, 원당리에 있다.【중품이다.】 역(驛)이 2이니, 지남(知南)【현(縣) 경계에 있다.】·신역(新驛)【신번(新繁)에 있다.】 이요, 봉화가 1곳이니, 가막산(可莫山)이 본현 동쪽에 있다.【남쪽으로 함안(咸安) 소산(所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초계(草溪) 미타산(彌陁山)에 응한다.】 월경처(越境處)는 합천(陜川)의 남촌(南村) 어등화리(於等火里)와 초계(草溪) 다호점리(多乎岾里)가 신번현(新繁縣) 서촌(西村)으로 넘어 들어왔다. 【원전】 5 집 653 면
| ||
장함현의 읍지 한때는 백제 거열성의 한고을 한때는 신라의 한고을 조선에는 진주의 속현 이었네
태어나서 자란 그곳은 향수가 전해 오는 곳 저의 본향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뱃속에서 태어난곳
삼면 앞 뒤로 산으로 가려진 그곳 이지만 동녘의 뜨오르는 햇살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았네
한때는 장함현 의춘 의산 치실골의 고을 수 천년이 흘러서 오늘에 이렀는데
치실골의 한 골짝이인 수동 (壽富)라고 불러던 그곳 그곳에서 태어나고 초년을 의 추억이 있었기에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 머리속을 스쳐가는 구나 어렵고 힘든 세월이었지만 즐거움과 추억이 있었네
세월지나서 머리속에는 어릴적 추억과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서 머리속에서 ..
아 아 산과 들에서 지난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의 소인이 있었네 ...
빈농의 아들이지만 늘 가슴속에는 잊지 않았던 그때의 생각이 있었기에 오늘도 하루를 즐겁게 노내었는구나
세월가도 그시절의 추억은 잊혀지지 않고 부모님의 포근한 그 품안이 그리울 뿐이네
지금은 어릴적 살던 그곳에는 집만 세월을 지키고 고향을 버리고 떠나온 못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라는 마음뿐이네
내 고향 칠곡 (장함현 의산 의춘 치실 )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울수 없는 고향 이구나
얼마님지않은 이곳의 생활을 접고 내고향에서 노년의 즐거움 향수를 달래며 만년의 향수에 젖을
그때의 생각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구나 ...
계사년 입추 지절 잠시의 시간에 내고향 칠곡을 생각하며...
본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