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대장 관련 자료/2014.1.5. 소백산비로봉

2014.1.5. 소백산 비로봉 산행 (스크랲)

아베베1 2014. 1. 7. 14:11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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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지
세종 지리지 / 경상도 / 안동 대도호부 / 순흥 도호부

◎ 순흥 도호부(順興都護府)
본디 고구려의 급벌산군(及伐山郡)인데, 신라에서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치고, 고려에서 흥주(興州)로 고쳤다. 현종 무오년에 길주(吉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移屬)시키고, 명종 1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충렬왕 갑술년 태(胎)를 안치하고 흥령현(興寧縣)으로 고쳐서 영(令)을 두었으며, 충숙왕(忠肅王) 계축년에 또 태(胎)를 안치하고 승격시켜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삼았고, 충목왕(忠穆王) 무자년에 또 태(胎)를 안치하고 순흥부(順興府)로 승격시켰다. 본조 태종 계사년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로 고쳤다. 별호(別號)는 순정(順政)이다.【순화(淳化) 때에 정한 것이다.】
진산(鎭山)은 소백산(小白山)이다.【부 북쪽에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안동(安東)의 부곡(部曲) 소라(召羅)에 이르기 41리, 서쪽으로 죽령(竹嶺)에 이르기 19리, 남쪽으로 영천(榮川)에 이르기 13리, 북쪽으로 단양(丹陽)에 이르기 24리이다.
호수는 2백 84호, 인구가 1천 6백 79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36명, 진군(鎭軍)이 30명, 선군(船軍)이 81명이다.
토성(土姓)이 4이니, 안(安)·이(李)·신(申)·윤(尹)이며, 촌성(村姓)이 1이니, 석(石)이다. 내성(來姓)이 2이니, 김(金)·정(鄭)이며, 속성(續姓)이 3이니, 김(金)【하나는 경주에서 왔고, 하나는 광주(光州)에서 왔다.】·윤(尹)【주천(酒泉)에서 왔다. 모두 향리이다.】 이다. 인물은 시중 문성공(侍中文成公) 안향(安珦)【충렬왕 때 사람인데,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였다.】·판문하부사 문간공(判門下府事文簡公) 안종원(安宗源)【본조 태조 때 사람.】·영돈녕부사 소의공(領敦寧府事昭懿公) 안천보(安天保)【본조 태종 때 사람.】 이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는 따뜻하며, 간전(墾田)이 2천 4백 59결이다.【논이 7분의 3이다.】 토의(土宜)는 벼·기장·조·콩·보리·메밀·뽕나무·삼[麻]이요, 토공(土貢)은 꿀·밀·칠·종이·석이(石茸)·송이버섯·잣·지초·인삼·자리[席]·여우가죽·삵가죽·노루가죽·돼지가죽이며, 약재(藥材)는 백급(白芨)·적복령(赤茯苓)·백복령(白茯苓)·맥문동(麥門冬)·웅담(熊膽)·측백나무씨[栢子仁]이다. 토산(土産)은 신감초(辛甘草)·산겨자[山芥]·은구어(銀口魚)와, 수정석(水晶石)이 부(府) 서쪽 양곡동(陽谷洞)에서 난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부(府)의 북쪽 사동리(沙洞里)에 있고, 도기소(陶器所)가 1이니, 부(府)의 동쪽 가이리(加耳里)에 있다.【모두 하품이다.】
읍 석성(邑石城)【둘레가 1백 30보이며, 안에 우물 둘이 있다.】 소백산 석성(小白山石城)은 부(府)의 서쪽 20리에 있다.【둘레가 5백 31보인데, 높고 험하며, 안에 샘 셋이 있고, 또 군창(軍倉)이 있다. 영천 군창(榮川郡倉)도 함께 아울러 들여다 둔다.】 취원루(聚遠樓)【부(府) 북쪽 봉황산(鳳凰山) 부석사(浮石寺)에 있다.】 역(驛)이 2이니, 창락(昌樂)과 신역(新驛)이며, 험조(險阻)한 곳은 죽령산(竹嶺山)이다.【부(府) 서쪽 33리에 있는데, 충청도 단양(丹陽)의 지로(指路)이다. 그 험조처(險阻處)의 길이가 3리가 넘는다.】 봉화(烽火)가 1곳이니, 죽령산이다.【동쪽으로 기천현(基川縣) 망전산(望前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단양(丹陽)의 화산(禾山)에 응한다.】
【원전】 5 집 64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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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조종(祖宗) 열둘

첫째는 한강(漢江)인데 그 근원이 셋이니, 하나는 강릉 오대산의 우통(于筒)에서 발원하고 하나는 회양 금강산의 만폭동(萬瀑洞)에서 발원하며 하나는 보은 속리산의 문장대(文藏臺)에서 발원한다. 달천강(達川江)은 문장대의 서쪽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복천(福泉)이 되어서 북쪽으로 흘러 충주에 이르고 다시 단월(團月)의 서북을 경유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신연강(新淵江)은 만폭동의 서남쪽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명연(鳴淵)이 되어 홍천강(洪川江)과 합쳐지고 다시 굴운천(窟雲川)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용진(龍津)이 되어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임진강(臨津江)은 그 근원이 문천(文川)의 노령(蘆嶺)에서 시작되는데 남쪽으로 영풍(永豐)의 고현(古縣)에 이르고 다시 사천(沙川)을 지나 오두(鰲頭)에 이르러서 조강(祖江)에서 한강과 합쳐진다. 그리하여 오대산, 설악산, 금강산의 서쪽 지방과 철령(鐵嶺), 분수(分水), 쌍령(雙嶺), 운악(雲嶽), 불곡(佛谷), 왈롱(曰籠) 이남 지방과 대관령, 백복산(百福山), 태백산(太白山) 이서 지방과 조령, 죽령, 속리산 이북 지방과 피반(皮盤), 상당(上黨), 칠현(七賢), 백운(白雲), 광교(光敎), 수리(修理), 안남(安南), 문수(文殊) 이동 지방과 서울의 모든 물들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둘째는 예성강(禮成江)인데 그 근원이 수안(遂安)의 언진산(彦眞山)에서 발원하며, 남쪽으로 흘러서 흑석탄(黑石灘)이 되고 성천(成川)을 지나 미라산(彌羅山) 동방포(東方浦)에 이르러서 벽란도(碧瀾渡)가 되는데, 수룡산(秀龍山), 성거산(聖居山), 천마산(天磨山)의 서쪽 지방과 총수산(葱秀山), 멸악산(滅惡山), 운달산(雲達山) 이동 지방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셋째는 대진(大津)인데 그 근원이 셋이니, 하나는 양지(陽智 지금의 경기도 용인 지역)의 곡돈현(曲頓峴)에서 발원하고 하나는 청양(靑陽)의 백월산(白月山)에서 발원하며 하나는 공주의 차령(車嶺)에서 시작된다. 돈곶진(頓串津)은 백월산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여양(黎陽)을 경유하여 왕자산(王子山)에 이르러 승선천(昇仙川)을 지나 북쪽으로 행담도(行擔島)로 들어가서 공진(貢津)과 만난다. 미륵천(彌勒川)은 차령의 동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덕평향(德坪鄕)을 경유하여 온정천(溫井川)을 지나서 단포(丹浦)가 되어 팔당(八堂)의 서쪽에 이르러서 돈곶진과 만난다. 그리하여 광교산(光敎山), 성륜산(聖倫山) 이남과 칠현산(七賢山), 성거산(聖居山) 이서와 차령, 각흘산(角屹山), 사자산(獅子山), 오서산(烏棲山), 가야산(伽倻山) 이북의 모든 산의 물이 이곳으로 흘러든다.
넷째는 금강(錦江)인데 그 근원이 장수산(長水山)의 수분치(水分峙)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흘러 용암(龍巖)에 이르러서 송탄(松灘)이 되고 옥천(沃川)에 이르러 강경(江景)을 거쳐 옥구(沃溝)를 지나 용당진(龍塘津)이 된다. 그리하여 장안산(長安山), 성수산(聖壽山), 마이산(馬耳山), 주취산(珠翠山) 이북과 상당(上黨), 피반(皮盤), 황악(黃岳), 대덕(大德) 이서와 망이(望夷), 차령, 각흘 이남의 모든 산들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다섯째는 사호(沙湖 영산강(榮山江))인데 그 근원이 담양(潭陽)의 용천산(龍泉山)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흘러 원율천(原栗川)이 되고 작천(鵲川)을 서남쪽으로 지나서 곡강(曲江)이 되어 용포(龍浦)에 와서 머문다. 그리하여 내장산(內藏山), 백암산(白巖山), 추월산(秋月山), 용천산(龍泉山) 이남과 옥천산(玉泉山), 무등산(無等山), 중조산(中條山), 여점산(呂岾山) 이서와 반등산(半登山), 취령산(鷲嶺山), 불갑산(佛岬山), 군니산(君尼山) 이동과 화악산(華嶽山), 덕룡산(德龍山), 쌍계산(雙溪山), 월출산(月出山) 이북의 모든 산의 물이 이리로 흘러든다.
여섯째는 섬강(蟾江 섬진강(蟾津江))인데 그 근원이 진안(鎭安) 마이산의 중대(中臺)에서 나와서, 전주의 웅치(熊峙)에 와서 쌍계(雙溪)의 물웅덩이를 지나면서 용연(龍淵)이 된 뒤 남쪽으로 흘러서 두적강(斗赤江)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성수산, 마이산, 소치산(掃峙山), 모악산(母岳山) 이남과 내장산, 금성산(金城山), 설산(雪山), 무등산 이동과 억불산(億佛山), 주월산(舟越山), 도솔산(兜率山), 백운산(白雲山) 이북과 장안산(長安山), 여원산(女院山), 주치산(走峙山), 지리산 이서의 모든 산들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일곱째는 낙동강(洛東江)인데 그 근원이 안동의 태백산(太白山)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산을 뚫고 흐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천천(穿川)이라고도 한다. 천연대(天淵臺)를 경유하여 탁영담(濯纓潭)이 되고 다시 가야천(伽倻川)을 지나 박진(朴津)이 되어 진강(晉江)과 만난다. 그런 다음 호포(狐浦)를 지나 월당진(月堂津)이 되어 다시 흩어져서 삼차하(三叉河)가 된다. 금호강(琴湖江)은 그 근원이 청송(靑松)의 보현산(普賢山)에서 나와서 하빈(河濱)의 고현(古縣)을 경유하여 서쪽에서 낙동강과 서로 만나며, 황둔강(黃芚江)은 그 근원이 무주의 덕유산(德裕山) 불영봉(佛影峯)에서 나와서, 합천(陜川)에 이르러 징심천(澄心川)을 지나서 진천(鎭川)으로 들어갔다가 현창(玄倉)에 이르러 낙동강과 만난다. 그리하여 태백산과 소백산, 조령과 죽령의 이남과 속리산(俗離山), 황악산(黃嶽山), 대덕산(大德山), 덕유산(德裕山), 장안산, 지리산 이동과 고초산(高草山), 백암산, 취서산(鷲棲山), 구룡산(九龍山), 원적산(圓寂山) 이서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여덟째는 대동강(大同江)인데 그 근원이 영원(寧遠) 내악림(內樂林)의 백산(白山)에서 나와서, 금천(金川)을 지나 비류강(沸流江)과 합쳐지고 다시 합장포(合掌浦)를 지나 은탄(銀灘)이 된다. 그런데 능성강(能成江)은 그 근원이 두류산에서 나와서 문포천(文浦川)을 지나 마탄(馬灘)에서 대동강과 만나며, 그리고 월당강(月唐江)은 그 근원이 서흥(瑞興) 웅파산(熊坡山)의 부연(釜淵)에서 나와서 영진(迎津)을 지나 철화강(鐵和江)이 되어 북쪽으로 대동강과 급수문(急水門)에서 만난다. 그리하여 검산(劍山), 마유(馬踰), 철옹(鐵甕), 오강(吳江), 화여(花餘), 재령(載寧) 이서와 악림(樂林), 광성(廣城), 생천(栍川), 알일(謁日), 고야(姑射) 이남과 덕업(德業), 언진(彦眞), 멸악(滅惡), 수양(首陽), 달마(達摩) 이북과 구월(九月) 이동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아홉째는 청천강(淸川江)인데 그 근원이 강계의 갑현(甲峴)에서 나와서, 문천(文川)을 지나 고성진(古城津)에 이르러 노강(老江)이 된다. 그런데 대령강(大寧江)은 그 근원이 의주의 천마산(天摩山)에서 나와서 해망우(海望隅)의 동쪽에 이르러 노강에서 청천강과 만난다. 그리하여 갑현, 적유(狄踰), 구현(狗峴), 우치(牛峙), 구계(九階), 방장(防墻) 이남과 천마, 청룡(靑龍), 길상(吉祥) 이동과 악림, 광성, 생천 이서와 향산(香山), 알일, 고야, 마두(馬頭), 도운(到雲) 이북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열째는 용흥강(龍興江)인데 그 근원이 영흥의 철옹산에서 나와서, 비류천(沸流川)을 지나 제인포(濟仁浦)가 되어 남쪽으로 말응도(末應島)에 이른다. 그리하여 마유령, 철옹, 오강, 화여, 재령 이동의 여러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열한째는 압록강(鴨綠江)인데 그 근원이 백두산(白頭山)의 대택(大澤)에서 나와서, 지하로 복류(伏流)하여 남쪽으로 흘러서 혜산강(惠山江)이 되고 청성(淸城), 방산(方山), 옥강(玉江)의 보(堡)와 수구(水口)의 진(鎭)을 거쳐 의주부에 이르러 적도(赤島)의 동쪽에서 다시 세 갈래로 갈라져서 흐르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남쪽으로 흘러서 구룡연(九龍淵)이 되니 이것이 곧 압록강으로서 그 물빛이 마치 오리 머리처럼 푸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서강(西江)이 되고 하나는 중간을 따라 흐르는데 이를 이름하여 소서강(小西江)이라 한다. 검동도(黔同島)에 이르러서 이들이 다시 합쳐져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백두(白頭) 이남과 원산(圓山) 이서와 후치(厚致), 황초(黃草), 설한(辥罕), 적유(狄踰), 우현(牛峴), 방장(防墻), 천마(天麼), 노동(蘆洞), 망일(望日) 이북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열두째는 두만강(豆滿江)인데 그 근원이 백두산(白頭山)의 남쪽 갑산(甲山)에서 나와서, 경흥부(慶興府)에 이르러서 적지(赤池)를 경유하여 수빈강(愁濱江)이 되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서 조산(造山)을 지나 녹둔도(鹿屯島)에 이르게 된다. 백두 이동과 원산(圓山), 장백(長白), 무산(茂山)의 잿마루와 송진(松眞), 백악(白嶽) 이북의 여러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주D-001]대진(大津) : 아산만(牙山灣)을 지칭하는 것 같다. 세 개의 근원이란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안성천(安城川), 삽교천(揷橋川) 및 곡교천(曲橋川)을 지칭하는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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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고(地理考) 14
산수(山水) 2 경내(境內)의 수(水)


○ 바다 -제수(諸水)의 총설(總說)을 덧붙인다.
《수도제강(水道提綱)》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국(朝鮮國) -지형은 정북쪽의 장백산(長白山)에서 산맥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전라도의 경계를 지나 서남쪽으로 바다에 닿았으며, 일본의 대마도(對馬島) 등 여러 섬이 바다의 동남쪽에 널려 있으면서 경상도의 부산(釜山)과 마주 바라보고 있다.- 은 동쪽, 서쪽, 남쪽의 삼면이 모두 바다에 닿아 있으며, 남북은 길고 동서는 좁다. -북쪽으로는 동경(東經) 11도(度) 4분(分), 북위(北緯) 42도가 약간 못 되는 장백산으로부터 남쪽으로는 동남쪽 모퉁이의 바다에 있는 대마도와 서남쪽 모퉁이의 바다에 있는 한라산(漢拏山)까지에 이르는데, 북위는 34도이다. 그러나 그 실제 지역은 바닷가에 있는 진해성(鎭海城)과 고성(固城)으로, 북위가 34도 4분인바, 거리가 7도 반으로 1870여 리이다. 서쪽으로는 동경 8도, 북위 40도인 압록강(鴨綠江) 해구(海口)로부터 동북쪽으로는 동경 14도 반, 북위 42도 반인 토문강(土門江) 입구에 이르는바, 거리가 6도 반으로, 1600여 리이다. 왕경(王京)에서 동쪽으로는 동경 12도 6분, 북위 37도 5분인 양양(襄陽)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동경 9도, 북위 37도 4분인 강화도(江華島)에 이르는바, 동서 간의 거리는 900리이며, 양쪽 모두 바다에 닿아 있다. 오직 남쪽 경계만이 조금 넓은데, 그 동남쪽 모퉁이의 동경 13도 8분, 북위 35도 3분인 좌수성(左水城)에서부터 서남쪽 모퉁이의 동경 8도 6분, 북위 34도 7분인 무안성(務安城)까지는 거리가 1300여 리이다.- 토문강(土門江) 남쪽 둔치에서부터가 조선의 동북쪽 경계이다. -나라에서 동북쪽으로 가장 먼 곳은 경원부(慶源府)의 서북쪽에 있는, 동경은 13도를 넘어 14도에 가깝고, 북위는 42도 조금 넘는 온성(穩城) 및 미천진성(美踐鎭城)이고, 가장 동쪽에 있는 곳은 경원부 동남쪽에 있는 경흥성(慶興城) 및 이봉파(李鳳坡)로, 동경 14도 5분, 북위 42도 5분인 토문강 입구에 해당된다. 또 남쪽은 해안에 있는 서수락성(西水洛城)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미천진(美踐鎭)은 바로 미전진(美錢鎭)의 잘못된 표기이다. 동북쪽의 여러 물줄기가 모여서 토문강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토문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바다는, 토문강 입구에서 이봉파(李鳳坡) 동쪽을 경유하여 조금 남쪽으로 가면 서수락성(西水洛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서수라성(西水羅城)의 음이 변한 것이다.- 이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간 다음, 또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가면 큰 산의 기슭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200리가량 가다가 꺾어져서 남쪽으로 굽이굽이 300여 리를 간 다음, 다시 꺾어져서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서 조금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간다. 여기에서 비로소 꺾어져서 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단천성(端川城)의 동쪽을 지난다. -동경 12도 6분, 북위 40도 7분이다. 서수락성에서 이곳까지는 바닷가에 성곽이 없고 큰 산이 많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다. 단천에 이르러서야 조금 넓어지는데, 그 동쪽의 바닷물은 맑고 깨끗하여 10여 길 아래까지 훤히 들여다보여 다른 곳의 바다와는 다르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하나의 소수구(小水口)가 있다. -한 물은 단천에서 서북쪽으로 30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중간에 세 개의 근원에서 나오는 물과 합해져 동남쪽으로 200리를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단천부(端川府)의 남대천(南大川)으로, 근원은 원산(圓山)에서 나와 가덕천(加德川)과 합류하여 단천부의 치소 남쪽에 이르고, 또다시 서쪽에서 흘러온 복대천(福大川)과 합류한 다음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가다가 이성(利城)의 동쪽을 지나 -이성의 서쪽에 회산(檜山)과 성대산(聖代山)이 있다.- 또다시 남쪽으로 가면 북청성(北靑城) 북쪽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성대산 서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세 개의 물이 합해져서 동남쪽으로 2백 수십 리를 흘러 북청성 동북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낙강(洛江)으로, 근원이 성대산(聖代山)에서 나온다. 또 하나의 물이 회산에서 나오고 하나의 물은 성의산(聖義山)에서 나와 합류하여 북청부의 동쪽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면 홍원성(洪源城) -삼가 살펴보건대, 홍원성(洪原城)으로 되어야 한다.- 동쪽의 소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요원수(要原水)로, 근원이 북청부의 중산(中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홍원현(洪原縣) 동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수구가 있는 앞바다에는 도서(島嶼)가 있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입원산(入元山)의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면 함흥성(咸興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오는 두 개의 물이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정평현(定平縣)의 북쪽 경계를 지나며,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도안산(道安山)의 동쪽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성천강(城川江)으로, 근원이 함흥부의 낙림산(樂林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에서 흘러온 원천(元川)과 합류한 다음,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영흥성(永興城) 동북쪽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근원이 두 개인데, 하나는 서북쪽으로 정평현 서쪽에 있는 비백산(鼻白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흐른다. 여기에서 양덕(陽德)의 우선산(遇仙山) 동쪽에서 흐르는 물이 서쪽에서 와서 합해진 다음, 동쪽으로 흘러 영흥의 북동쪽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용흥강(龍興江)으로, 근원이 영흥부의 철옹산(鐵瓮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면서 오른쪽으로는 운곡천(雲谷川)의 물을 합하고 왼쪽으로는 요덕천(耀德川)과 비류천(沸流川)의 물을 합한 다음, 영흥부의 북쪽을 경유해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우선산(遇仙山)은 어느 산인지 상세하지 않다.- 수구가 있는 앞바다에는 바로 화도(花島), 사도(沙島)가 있으며, 그 동쪽에는 웅도(熊島), 연도(連島)가 있고, 그 동남쪽에는 신도(薪島), 묘도(卯島), 저도(猪島), 국도(國島)가 있어서 원근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다. -연도는 홍원의 동쪽에 있는데 가장 북쪽에 있으며, 묘도는 조금 큰데 가장 동쪽에 있으며, 국도는 가장 남쪽에 있다. 나머지 섬들은 모두 함흥이나 영흥과 가까운 바다에 있다. ○ 삼가 살펴보건대, 묘도는 아마도 난도(卵島)의 글자가 잘못된 듯하다.- 바다는, 영흥의 동북쪽에 있는 수구에서 동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대박산(大博山) 북쪽의 평지(平地)를 지나고, -여기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이 바로 국도(國島)이다.- 또다시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고원성(高源城) -삼가 살펴보건대, 고원성(高原城)으로 되어야 한다.- 동쪽을 지난다. -동경 12도 5분, 북위 39도이다.- 여기에서 또 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문천성(文川城) 동북쪽의 경계에 소수구가 있다. -물은 큰 근원이 두 개인데, 문천성 서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하나는 동남쪽으로 흐르고 하나는 동쪽으로 흘러 100여 리를 가다가 합해진 다음, 동쪽으로 흘러 반룡산(盤龍山)과 문천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10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문천의 배기이천(配岐伊川)을 말한 것인 듯한데, 용흥강과 합류하는 물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간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덕원성(德源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안변성(安邊城) 동북쪽의 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으로 평강성(平康城) 동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검화산(劍華山) 남쪽, 황룡산(黃龍山) 북쪽을 지나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안변성의 북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안변부의 남대천(南大川)이다. 그 근원이 평강(平康)의 분수령(分水嶺)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안변의 북쪽에 이르러서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가면 흡곡성(歙谷城)과 통천성(通川城) 동쪽을 지나고, -남북 간의 거리가 모두 50리이다.- 조금 남쪽으로 가면 고성(高城) 동북쪽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추지령(秋池嶺)의 남쪽 기슭에서 나와 동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추지령은 추지령(楸池嶺)으로 되어야 한다.- ○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가면 금성(金城)의 동쪽을 지나고, -금성의 서쪽은 바로 금성산(金城山)이며, 금성산의 서쪽은 바로 회양성(淮陽城)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회양부는 금성의 동쪽에 있는바, 여기에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양양성(襄陽城)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두사산(頭蛇山)이 있는데, 수구가 있다. -두사산은 바로 금성산 남쪽에 있는 행간산(行幹山)이다. 그 서쪽은 바로 금강산(金岡山)이며, 또 그 남쪽은 장산(張山)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두사산은 두타산(頭陀山)으로 되어야 한다. 두타산의 물이 서쪽으로 흘러 소양강(昭陽江)에 합해지는바, 여기에서 양양의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금강산은 마땅히 금강산(金剛山)으로 되어야 한다. 금강산은 두타산의 동쪽에 있는바, 여기에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역시 잘못된 것이다. 장산은 어느 산인지 상고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강릉성(江陵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삼섭포(三涉浦) -삼가 살펴보건대, 삼척포(三陟浦)로 되어야 한다.- 의 동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울진성(蔚珍城)의 동쪽을 지나게 되는데, 그 동남쪽 바다 건너에는 천산도(千山島) -삼가 살펴보건대, 우산도(于山島)로 되어야 한다.- 가 있으며, 완릉도(菀陵島)라고도 한다. -동경 130도, 북위 36도 8분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평해성(平海城) 동남쪽을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에 있는 봉화성(奉化城)의 동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두 개의 근원이 합해져서 동쪽으로 10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는 바로 천산도가 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영해성(寧海城) 동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에 있는 예안성(禮安城) 동쪽의 백석산(白石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영덕성(盈德城) 동남쪽으로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에 있는 진보현(眞寶縣) 동쪽의 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영덕성의 남쪽에 이르러서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오포(烏浦)로 들어가는 영덕현의 오십천(五十川) 하류를 가리키는 것인 듯하다. 직보현(直寶縣)은 마땅히 진보현(眞寶縣)으로 되어야 한다.- 이곳의 남쪽 해안은 청하성(淸河城)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흥해성(興海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연일성(延日城)의 동남쪽을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남쪽에 있는 영천성(永川城) 동쪽의 모자산(母子山)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보현산(普賢山)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연일성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연일의 남쪽 해안은 장로일성(長老日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장기성(長鬐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지역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좌병성(左兵城)의 동쪽 경계를 지나고,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태화강(太和江)이다. 태화강조에 상세하게 나온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소수구가 있다. -바로 양산성(梁山城) 북쪽에 있는 산에서 나오는 물로,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좌수성(左水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다가 -조선 경계의 동남쪽 끝모서리인데, 동경 14도가 약간 못 되고, 북위 35도 2분이 조금 넘는다.-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또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동남쪽 모서리가 끝나는 지역이 된다. -동경 14도가 조금 못 되고, 북위 34도 9분이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3백 수십 리 되는 바다 건너편에 대마도(對馬島)가 있는데, 큰 섬이다. -대마도의 모양새는 서북쪽으로부터 비스듬하게 굽었으며, 서남쪽은 뾰족하고 길면서 안으로 굽었다. 그 가운데에는 가지가 있어서 서쪽으로 꺾여 큰 칼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북쪽 뾰쪽한 곳부터 서남쪽 뾰족한 곳까지에는 긴 산이 죽 뻗어 있어서 마치 등뼈와도 같다. 길이가 300리가량 되고, 너비는 가운데는 100리이고 앞부분과 뒷부분은 수십 리이며, 뾰족한 곳은 10여 리이다. 동경 14도, 북위 33도 8분에서부터 동경 15도가 약간 못 되고, 북위 34도 4분까지 이른다. 대개 조선 동남쪽 해방(海防)의 요충지로, 서북쪽으로는 절영도(絶影島) 및 동래현(東萊縣)과 정면으로 마주해 있고, 서남쪽으로 김해(金海)의 동쪽에 있는 대수구(大水口)까지가 400리가량 된다.- 바다는, 좌수성의 동남쪽 지역에서 비로소 서쪽으로 꺾인다. 서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기장성(機長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바로 기장 서쪽 경계의 물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면 동래성(東萊城)의 남쪽을 지나는데, 동래성의 남쪽에서 30리 되는 해안이 바로 부산이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절영도가 있다. -해안에서 30리 떨어져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김해성(金海城)의 동쪽에 대수구가 있다. -동경 13도, 북위 34도 6분이다.- 이것은 조선 동남쪽의 큰 하천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낙동강(洛東江)으로, 낙동강조에 상세하게 나온다.- ○ 바다는, 김해성 남쪽에서 서쪽으로 100리를 가면 웅천성(熊川城) 남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수십 리나 되는 큰 섬이 있는데, 가덕(加德)과 천성(天城)이라고 한다. -서로 간의 거리가 50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가덕과 천성은 바로 두 진의 이름으로, 모두 가덕도(加德島) 안에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창원성(昌原城) 남쪽 경계 및 우병성(右兵城) 남쪽을 지난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큰 섬이 있는데, 영등도(永登島)라고 한다. -섬은 길이가 70리이고 너비가 30리이다. 섬의 동쪽을 우수영(右水營)이라 하고 섬의 서북쪽을 거제(巨濟)라 하며, 섬의 남쪽은 지설포(知泄浦)이다. 역시 조선 남방(南防)의 요충지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거제도로, 영등(永登)은 바로 섬 안에 있는 진(鎭) 이름이다. 지설포는 지세포(知世浦)로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진해성(鎭海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사천(泗川)의 남쪽 경계에 있는 고성(固城)의 남쪽을 지난다. 또다시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곤양성(昆陽城) 남쪽을 지난다. 또다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큰 섬이 있다. -섬 주위를 돌자면 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가고, 다시 동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며, 여기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동북쪽으로 간다. 한 뾰족한 부분은 북쪽 해안을 향하여 있고, 한 뾰족한 부분은 남쪽을 향하여 있다. 너비는 100리이고, 길이는 80리이며, 섬 가운데는 50리이다. 북쪽에 있는 것을 남해성(南海城)이라 하고, 서쪽에 있는 것을 진조항(珍助項)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것을 평산포(平山浦)라고 한다. 북쪽 해안까지의 거리가 30리이고, 서북쪽으로는 하동성(河東城)까지의 거리가 50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큰 섬은 바로 남해부(南海府)로, 남해부는 섬 안에 있다. 진조항은 미조항(彌助項)으로 되어야 한다. 미조항 및 평산포는 모두 섬 안에 있는 진 이름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하동성(河東城)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두치강(豆恥江)으로, 두치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100리를 가면 좌수성의 남쪽에서 조금 서쪽을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북쪽에 있는 낙안성(樂安城)의 동북쪽 송경산(松京山) 기슭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송경산은 바로 송광산(松廣山)의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흥양성(興陽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가면 천관산(天冠山)의 수구가 있다. -천관산은 흥양성 서북쪽에 있는 낙안(樂安) 및 보성(寶城)의 남쪽에 있다. 물은 천관산의 서북쪽 기슭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장흥성(長興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병성(兵城)의 동남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길이는 수십 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예양강(汭陽江)으로, 그 근원이 나주(羅州)의 쌍계산(雙溪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장흥부를 감싼 다음, 서쪽으로 흘러 강진현(康津縣)의 남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병성(兵城) 및 강진성(康津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해남성(海南城)을 지난다. 또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하나의 수구가 있다. -물은 동북쪽에 있는 창평(昌平)의 동북쪽 큰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광주(光州)의 남쪽 경계를 지나 무목산(無木山)의 북쪽에 이른다. 또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있는데, 서북쪽에 있는 정읍(井邑) 서쪽의 용잠산(龍岑山) 남쪽 언덕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 무목산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화순(和順) 남쪽과 능주(綾州)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흘러 영암(靈巖)의 북쪽을 지난다. 또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있는데, 능주의 남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우수성(右水城)의 서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다가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넓어서 수십 리나 된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호강(沙湖江)이다. 사호강은 근원이 담양부(潭陽府)의 용천산(龍泉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광주의 동쪽에 이르러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황룡천(黃龍川)과 만나는데, 이것이 바로 이른바 정읍의 서쪽에서 온다고 하는 물이다.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나주(羅州)의 치소(治所)를 감싼 다음, 또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영암의 북쪽에 이르러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덕진포(德津浦)의 물과 합류한다. 이것이 이른바 능주의 남쪽 산에서 온다고 하는 물이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무목산은 바로 무등산(無等山)의 잘못된 표기이고, 용잠산은 바로 용천산(龍泉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곳 해구(海口)에서 서남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을 흑산도(黑山島)라고 하며, 그 남쪽에 있는 조금 큰 섬을 여도(㻌島) -삼가 살펴보건대, 진도(珍島)의 잘못된 표기이다.- 라고 한다. 또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먼 곳에 가장 큰 섬이 있는데, 제주도(濟州道)라고 한다. -흑산도는 해구의 서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남해성(南海城) 해안과의 거리가 100리이며, 북쪽으로 무안(務安)의 남쪽 해안과의 거리가 50리이다. 모양새가 거위알처럼 생겼는데, 가운데에 흑산(黑山)이 있으며, 둘레가 50여 리이다. ○ 진도는 흑산도에서 동남쪽으로 50리 되는 곳에 있으며, 남해성 해안과의 거리가 90리이다. 모양새가 길면서도 네모지게 생겼다. 남쪽에 금이산(金伊山)이 있으며, 그 북쪽을 남도포(南桃浦)라고 한다. 둘레가 100리가량 된다. ○ 삼가 살펴보건대, 여도(㻌島)는 진도(珍島)로 되어야 한다. 금이산은 바로 금갑(金甲)의 글자가 잘못된 것으로, 이는 섬 안에 있는 진(鎭) 이름이다. ○ 제주도는 진도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되는 곳에 있으며, 남해성 해안과의 거리가 1백 수십 리이다. 모양새는 세모지게 생겼으며, 동서 간의 거리가 130리이고, 동남쪽에서 서북쪽까지의 거리는 100여 리이고, 북쪽에서 서남쪽까지는 90여 리이다. 섬 가운데에 한라산(漢拏山)이 있으며, 북쪽을 제주(濟州)라 하고, 동남쪽을 정의(旌義)라 하고, 서쪽을 대정(大靜)이라 하는데, 조선의 서남쪽 바다를 방비하는 요충지이다. 동경은 4도 5분에서 9도 약간 못 미치는 데까지 이르고, 북위는 34도에서 34도 3분까지 이른다.- ○ 해구(海口)의 서쪽에는 무안성(務安城) 남쪽 경계인데, 조선 서남쪽의 모퉁이 지역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꺾어져서 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무안성 서쪽을 지나고, 또다시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산기슭을 지나며,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남평성(南平城) -삼가 살펴보건대, 함평성(咸平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서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동북쪽에 있는 용잠산(龍岑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장성(長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이 물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는바, 본문이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무장성(茂長城) 서쪽을 지나고, 또다시 북쪽으로 가다가 조금 길게 꺾어져서 서쪽으로 간 다음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고창성(高敞城) 서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조금 굽어들면 부안성(扶安城) 서쪽 경계를 지나며, 조금 북쪽으로 가면 수구가 있는데, 바로 옥구성(沃溝城) 서남쪽 경계이다. -물은 근원이 두 개이다. 남쪽 근원의 물은 동남쪽에 있는 추월산(秋月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금구성(金溝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만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고부성(古阜城)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만전성(萬塡城)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부안(扶安)의 북쪽 경계를 지나서 북쪽 근원에서 나오는 물과 만난다. ○ 북쪽 근원의 물은 추월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김제성(金堤城)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임피(臨陂) 남쪽과 만전성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부안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남쪽 근원에서 나오는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의 길이는 300여 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남쪽 근원의 물은 바로 동진강(東津江)으로, 근원이 정읍현(井邑縣)의 내장산(內藏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김제에 이르러서 태극포천(太極浦川)의 물과 만나 만경(萬頃)의 남쪽 경계를 지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북쪽 근원의 물은 바로 사수강(泗水江)으로, 근원이 용담현(龍潭縣)의 주줄산(珠崒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김제의 북쪽과 임피의 남쪽 경계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만전성(萬塡城)은 바로 만경(萬頃)의 잘못된 표기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옥구성(沃溝城) 서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과 바다를 격해 30리 되는 곳에 섬이 있어 군산도(羣山島)라고 한다. -섬은 타원형으로 둘레가 60리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에서 조금 동쪽으로 가면 서천(舒川) 남쪽의 수구가 있는데, 바로 옥구에서 서북쪽으로 50리 되는 곳에 있는 물로, 역시 조선의 큰 하천 가운데 하나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금강(錦江)으로, 금강조(錦江條)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강 입구에서 바다를 격해 정서쪽으로 100리 되는 곳에 있는 섬을 원산도(元山島)라고 한다. 그 남쪽에서 조금 동쪽에 있는 섬을 군산도라고 하는데, 앞에서 나왔다. 원산도의 모양새는 길이가 60리이고, 폭이 20리이다. 북쪽으로는 요아량(要兒梁) 지역과의 거리가 40리이고, 서북쪽으로는 오평도(烏平島)와의 거리가 90리이다. 이 섬들은 모두 이 강 서쪽면의 수구이다.- ○ 바다는, 수구에서 북쪽으로 가면 기해저(岐海渚)이고, 다시 북쪽으로 가면 시인성(施仁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비인성(庇仁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과 수성(水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수영(水營)이다.- 서쪽을 지나고,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결성(結城)의 서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가면 태산성(泰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태안성(泰安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동남쪽 경계의 해저(海渚)를 지나고,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꺾어져서 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요아량(要兒梁)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안흥량(安興梁)의 잘못된 표기이다.- 지역을 지나는데, 바로 태산현 남쪽 지역이 한 줄기로 뻗어서 바다로 들어간 곳으로, 모양새가 코끼리의 코처럼 생겼다. 동쪽으로는 수성, 시인성의 해안을 바라보는데, 거리가 3, 4십 리이다. 바다는, 요아량의 남쪽으로부터 돌아서 서북쪽으로 가면 요아량의 서쪽을 지나는데, 그 서쪽은 오평도이다. -섬은 둘레가 50리이고 동쪽으로 요아량 해안과의 거리가 60리이다.- 바다는 또다시 북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가면 태산성의 서쪽을 지나는데, 그 바깥은 덕물도(德勿島)이다. -섬은 거위알처럼 생겼으며, 둘레가 5, 6십 리이고, 동쪽으로 태산 해안과의 거리가 50리이다.- 여기에서 또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가면 태산의 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그 바깥쪽은 용도(龍島)이다. -섬의 모양새는 약간 길게 생겼으며, 둘레는 50여 리이고, 남쪽으로 해안과의 거리는 30여 리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북쪽으로 가면 단산성(端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서산성(瑞山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산 북쪽으로 지나는데, 조금 동쪽에 수구가 있으며, 수구의 서쪽이 바로 대부도(大富島)이다. -물은 동쪽에 있는 청주(淸州)의 서쪽 큰 산에서 나오며, 전의(全義)의 동북쪽에 이르러서 서북쪽으로 흘러 천안성(天安城)의 동북쪽 경계를 경유한 다음 동북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안성(安城)과 양성(陽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직산성(稷山城)의 서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에 있는 차현산(車見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진위(振威)의 남쪽과 평택(平澤)의 북쪽을 지난 다음 또 서북쪽으로 흐른다. 여기에서 북쪽에 있는 금천성(衿川城) 동북쪽의 관악산(冠岳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수원성(水原城)의 남쪽, 아산성(牙山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부평성(富平城)의 북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부터 흘러오는 물이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신창(新昌)의 남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예산성(禮山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면서 서남쪽에 있는 가야산(加邪山)에서 흘러온 물과 만난 다음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덕산성(德山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면서 서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하여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아산성의 서쪽, 면천성(沔川城)의 동북쪽을 지나 흘러오는 물과 이곳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면천성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남양성(南陽城)의 남쪽, 당진성(唐津城)의 북쪽을 지나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수성의 남쪽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발원지에서부터 500여 리를 흐른다. ○ 삼가 살펴보건대, 경기와 호서(湖西) 두 도가 나뉜 경계의 대진(大津)은 그 근원이 세 개가 있다. 하나는 선원천(禪院川)으로 양지현(陽智縣) 곡돈현(曲頓峴)에서 나오고, 하나는 돈곶진(頓串津)으로 청양현(靑陽縣) 백월산(白月山)에서 나오고, 하나는 미륵천(彌勒川)으로 공주(公州)의 차현(車峴)에서 나온다. 선원천은 서남쪽으로 흘러 소사(素沙)의 들판에 이르러서 왼쪽에서 흘러오는 아주천(牙洲川)의 물과 합류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오른쪽에서 흘러오는 항곶천(亢串川)의 물과 합류한 다음 평택현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공진포(貢津浦)에 이른다. 돈곶진은 남쪽으로 금마천(金馬川), 미륵천(彌勒川), 승선천(昇仙川) 등 여러 물과 합류하여 아산(牙山)과 면천(沔川) 두 현의 사이로부터 오는 물과 합류하여 대진(大津)이 되어서 또다시 서쪽으로 당진현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수도제강》에서 이른 바 근원이 청주(淸州)의 서쪽 산에서 나온다고 한 것은 아주천을 가리키는 듯하다. 또 흘러가다가 천안성(天安城)의 경계를 지나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만난다고 한 것은 바로 선원천이다. 또 차현산(車見山)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이 있어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미륵천이다. 차현산은 바로 차현(車峴)의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또 한 물이 관악산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항곶천으로, 그 근원이 수원부의 광교산(光敎山)에서 나오는바, 관악산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으니, 잘못된 것이다. 또 신창(新昌)의 남쪽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있어서 예산의 북쪽 경계를 지난다고 한 것은 바로 돈곶진이다. 또 가야산에서 흘러나오는 한 물이 있어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금마천으로, 그 근원이 홍주(洪州)의 오서산(烏棲山)에서 나오는바, 가야산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니, 역시 잘못된 것이다. 또 덕산의 경계를 지나서 서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승선천이다. ○ 수구에서 정서쪽으로 바다에 있는 섬이 대부도인데, 섬의 모양새는 둥글고, 둘레가 50여 리 된다. 동북쪽으로 수성 해안과의 거리가 40리이다.- ○ 바다는, 수구가 있는 수성(水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수원부이다.- 서쪽으로부터 또다시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가면 인천성(仁川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조금 동쪽에 조선의 대수구(大水口)가 있는데, 이는 큰 하천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한강(漢江)이다. 한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수구의 동남쪽 바다에 대부도(大富島)가 있으며, 수구의 정서쪽에서 약간 북쪽에 정포(井浦)가 있는데, 큰 섬으로 둘레가 200리이며, 가운데에 강화성(江華城)이 있다. 섬의 모양새는 네모졌으면서도 서남쪽이 뾰족하다. 동쪽으로는 교하성(交河城) 해안까지의 거리가 40리이다. 바로 예전에 각화도(覺華島)라고 하던 섬이다. 이 섬에서 서남쪽으로 60리 되는 곳에 있는 섬이 연자도(硯子島)인데, 섬의 모양새는 둥글면서도 긴 벼루 모양으로 생겼다. 남쪽으로 용도(龍島)ㆍ덕물도(德勿島)와 100여 리를 떨어져서 서로 바라보고 있으면서 바깥쪽 대수구가 된다. ○ 바다는, 강 입구에 있는 교하성(交河城)의 서쪽에서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100리가량 가면 임진강(臨津江) 입구가 되는데, 임진강 역시 큰 하천이다. -해구(海口)의 바깥쪽은 동남쪽에 있는 강화도(江華島)와 북쪽에 있는 교동성(喬桐城) 큰 섬으로 대수구(大水口)를 삼는다. ○ 임진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바다는, 임진강 입구에서 북쪽으로 가면 풍덕성(豐德城)의 서남쪽 지역이 되는데, 조금 서북쪽에 하나의 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예성강으로, 예성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해구의 동남쪽은 바로 바다 가운데에 교동성이 있는데, 큰 섬이다. 섬의 모양새는 길게 네모졌는데, 서남쪽이 뾰족하다. 둘레는 200리로 강화도와 비슷하며, 해안까지의 거리는 40리이다.- ○ 바다는, 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90리를 가면 연산(延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연안(延安)의 잘못된 표기이다.- 남쪽이 되는데, 하나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동북쪽에 있는 구잠산(駒岑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건수성(建水城) 서북쪽과 봉산성(鳳山城)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배천성(白川城) 남쪽으로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수양산(首陽山) 남쪽 기슭 및 연산성(延山城)의 남쪽을 돈 다음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길이는 300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해주(海州)의 삼탄(三灘)으로, 근원이 평산부(平山府)의 성불산(成佛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청단역(靑丹驛)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구잠산은 황주(黃州)에 있는 구현(駒峴)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나, 구현은 삼탄의 근원이 아닌바 상세히는 알 수가 없다. 건수(建水)는 검수(劍水)의 음이 와전된 것인 듯하다.- ○ 바다는, 연산성의 남쪽으로부터 꺾어져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강익성(康翊城) -삼가 살펴보건대, 강령성(康翎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다가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가면 옹진성(瓮津城)의 서남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가면 장연성(長淵城)의 서남쪽을 지나는데, 바다 가운데에 초도(椒島)가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풍천성(豐川城)의 서쪽을 지나는데, 바다 가운데에 백령도(白翎島)가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동쪽으로 100리가량 가면 은율성(殷栗城)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북쪽으로 8, 9십 리를 가면 삼화성(三和城) 남쪽이 되는데, 패수구(浿水口)가 있다. -동쪽으로 봉산(鳳山), 배천(白川)에서 서쪽으로 연산, 강령, 옹진, 장연에 이르기까지는 뒤쪽으로 모두 산을 등지고 있는데, 산이 끊이지 않고 연속되어 뻗어 있다. 여기에서 또 꺾어져서 북쪽으로 가면 풍천(豐川), 송화(松花), 장련(長連)이 되며, 동쪽으로 가면 안악(安岳)에 이르는데, 여기도 역시 산들이 서려 있다. 그러므로 이곳 수백 리의 지역은 서쪽, 남쪽, 북쪽 삼면이 모두 바닷가에 닿아 있다. ○ 삼가 살펴보건대, 송화는 바로 송화(松禾)의 잘못된 표기이다.- 패수는 지금 대동강(大同江)이라고 한다. -대동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바다는, 삼화성(三和城) 남쪽에 있는 수구에서부터 꺾어져서 북쪽으로 200여 리를 가면 함종성(咸從城)과 증산성(曾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증산성(甑山城)으로 되어야 한다.- 두 성의 서쪽을 지나고,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가면 영유성(永柔城) 서북쪽을 지나며, 또다시 동북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바로 순안성(順安城) 서북쪽에 있는 큰 산의 북쪽에서 나오는 물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통덕천(通德川)으로, 그 근원이 순안에 있는 법홍산(法弘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숙천부(肅川府)의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숙천성의 서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안주(安州)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청천강(靑泉江) 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청천강(淸川江)으로, 청천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대정강(大定江) 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령강(大寧江)으로, 대령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바다는,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쪽으로 가면 나청하(那靑河) 소수구가 있다. -나청하는 가산성(嘉山城) 서북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봉두산(鳳頭山) 동쪽과 나청청(那靑廳) 서쪽을 지나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대천하(大川河)의 소수구가 있다. -대청하는 북쪽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봉두산의 서쪽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흘러 정주성(定州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이상의 두 수구는 대정강과 청천강 두 수구와의 서로 간의 거리가 100리 사이에 있다. ○ 삼가 살펴보건대, 대천하는 바로 정주(定州)의 달천(㺚川)인 듯하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정주의 서남쪽 경계 및 곽산성(郭山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동래천(東來川) 소수구가 있다. -동래천은 삭주(朔州) 북쪽에 있는 산과 개막산(蓋幕山)이 서로 연결된 곳에서 나오는데, 여기에서 북쪽으로 산 너머가 바로 압록강 남쪽 둔치에 있는 오등성(敖登城), 요곽이성(遼郭爾城), 창성(昌城)의 세 성이다. 이 물은 서남쪽으로 흘러 곽산성(郭山城) 서쪽과 선천성(宣川城) 동쪽을 지나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동로강(東路江)으로, 그 근원이 구성(龜城)의 마구리산(馬仇里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선천부(宣川府)의 동쪽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오등성과 요곽이성 두 성에 대해서는 압록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선천성(宣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며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가면 선천하(宣川河) 소수구가 있다. -선천하는 북쪽 산에서 나오며, 그 산 너머의 서북쪽이 바로 압록강 남쪽 둔치에 있는 숙주성(宿州城)이다. 이 물은 서남쪽으로 흘러 철산(鐵山)의 동쪽 기슭을 돌아서 선천성의 서남쪽 경계 지점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선천부의 청강(淸江)으로, 그 근원이 보리산(菩提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철산군의 동쪽 경계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숙주는 삭주(朔州)의 음이 와전된 듯하다.- ○ 바다는,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철산성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수십 리를 가다가 꺾어져서 북쪽으로 가면 용천성(龍川城)의 서남쪽을 지나는데, 삭천하(朔川河) 소수구가 있다. 용천성에서 하천 건너편의 북쪽 둔치에 바로 의주성(義州城)이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바로 압록강 남쪽 둔치의 애주(愛州)이다. -삭천하는 동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용천성의 북쪽과 의주성의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고진강(古津江)으로, 그 근원이 천마산(天磨山)의 동남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양책관(良策館)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애주는 바로 의주이다.- ○ 바다는, 삭천하의 수구로부터 의주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그 서쪽은 바로 압록강 수구이며, 서북쪽 둔치는 성경(盛京)과의 경계가 된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막혀 있다. 그러므로 차풍(次風) 제소남(齊召南)이 수도(水道)를 서술함에 있어서는 바다를 강(綱)으로 삼아 두만강 입구부터 시작하여 바다를 따라서 남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올라가 압록강 입구까지 이르렀는데, 매번 해구(海口)로부터 원류(源流)를 거슬러 올라갔는바, 마치 강(綱)을 쳐들면 목(目)이 따라 올라오는 것과 같아 자못 치밀하고 상세하다. 이는 본국의 여도(輿圖)를 살펴보고서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산 이름과 군(郡)의 호칭에 있어서는 잘못된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제 조목에 따라서 변정(辨正)하였다. 큰 강 중에 다른 서책에도 나와서 각각의 목(目)을 세운 것은 각 목의 아래에다 나누어 붙였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경계는 동쪽, 서쪽, 남쪽 삼면이 모두 바다에 닿아 있으며, 그 동해의 물은 맑고 깨끗하여 10길 남짓의 아래에까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송사(宋史)》 고려열전에 이르기를, “고려의 동쪽에 임해 있는 바다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10길 아래에까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명주(明州)가 바라다보이는데, 물이 모두 푸르다.” 하였다.- 구지(舊志)를 보면, 서쪽의 큰 바다에는 황주(黃州)의 장명진(長命鎭)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대통강(大通江)으로 들어간다. 또 백주(白州)와 해주(海州)의 서쪽은 모두 바닷가와 가깝다. 강희(康煕) 50년(1711)에 조선국의 섬인 몽금도(夢金島), 정족도(鼎足島), 사야질구미(沙也叱九味) 등지가 모두 봉천부(奉天府)의 금주(金州)ㆍ복주(復州)ㆍ개주(蓋州)ㆍ해주(海州)와 서로 가깝다는 이유로, 봉천부의 장군(將軍) 및 부윤(府尹)에게 자문(咨文)을 보내어서 연해(沿海)에 사는 백성들이 조선과 가까운 바다에 가 고기잡이하는 것을 엄금하라고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동문휘고(同文彙考)》를 보면, “강희 49년(1710)에 중국 예부(禮部)에 보낸 자문에, ‘오차포진(吾叉浦鎭)과 몽금도(夢金島) 앞바다, 초도진(椒島鎭)과 정족도(鼎足島) 앞바다, 소청도(小靑島)와 사야구미(沙也九味) 앞바다에 중국의 고기잡이 배가 끊임없이 오가서 변경에 사는 백성들이 놀라 소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칙령을 내려 금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는데, 강희 50년에 예부에서 봉천부의 부윤에게 자문을 보내어 금령(禁令)을 신칙하게 하였다.” 하였다. 《대청일통지》에서 이른 바는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오차포(吾叉浦)는 장연현(長淵縣)에 있으며, 초도(椒島)는 풍천부(豐川府)에 있다.
○ 한강(漢江) -옛날에는 열수(列水)라고 하였으며, 혹 여강(驪江)이라고도 한다. ○ 습수(濕水)와 산수(汕水)를 덧붙인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맥국(貊國)은 한수(漢水)의 동북쪽에 있다. ○ 조선은 열양(列陽)에 있다. ○ 주(注)에 이르기를, “열(列)은 물 이름으로, 지금 대방(帶方)에 있다.”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열수는 예로부터 혹 한수라고 하였음이 명백하다.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낙랑군(樂浪郡) 탄열현(呑列縣)의 분려산(分黎山)은 열수(列水)가 근원하는 곳이다. 열수는 서쪽으로 점제(黏磾)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820리를 흘러간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 세 강이 합해져 열수(列水)가 된다. 아마도 낙랑이니 조선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이름을 취한 듯하다. -삼가 살펴보건대, 습수와 산수는 아마도 한강의 별원(別源)으로 회양(淮陽)과 보은(報恩)에서 나오는 물인 듯하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한강은 국성(國城)에서 남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는데, 근원은 금강산(金剛山)과 오대산(五臺山)에서 나와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남쪽은 바로 옛 백제국이다. ○ 양화도(楊花渡)는 왕성의 서남쪽, 한강 가에 있는데, 각도에서 올라오는 곡식을 이곳에서 모두 모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한강은 또 웅진강(熊津江)이라고도 하는데, 국성에서 남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다. 근원은 금강산과 오대산(五台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오대산(五臺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두 산에서 나와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 왕성(王城)은 이 강을 의지하여 험고함으로 삼는다. 한강의 남쪽은 바로 옛 백제국 지역이다. 명(明)나라 만력 연간에 이여송(李如松)이 조선을 구원하자 왜적들이 왕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에 이여송이 성안에 들어가서 군사를 거느리고 한강에 임하여 왜적의 후미를 뒤쫓아가 철수하는 자들을 치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 양화도는 국성의 서남쪽, 한강 가에 있는데, 각도에서 올라오는 곡식을 모두 이곳에서 모은다. 혹자는 바로 임진도(臨津渡)라고 한다.
《유서찬요(類書纂要)》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국의 경기(京畿)에 여강(驪江)이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한강의 물이 여주(驪州)의 경계에 이르면 혹 여강이라고 하기도 한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인천성(仁川城)의 북쪽에서 조금 동쪽은 조선의 대수구이다. 대수의 근원은 남파(南派)와 북파(北派)가 있다. 남파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오대산(五臺山)의 우통(于筒)에서 나오는 한강의 정원(正源)이다.- 는 동쪽으로 장산(張山) -삼가 살펴보건대, 장산에 대해서는 상고할 수가 없다.- 에서 나와 두 개의 물이 합해져서 서쪽으로 흘러 우두산(牛頭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용두산(龍頭山)의 잘못된 표기로, 제천현(堤川縣)의 북쪽에 있다.- 남쪽 기슭, 청풍성(淸風城) 북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또 서쪽에 한 개의 강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섬강(蟾江)이다.- 이 있어, 동북쪽에 있는 영시촌(寧市村) 서쪽의 공작산(孔雀山) -삼가 살펴보건대, 공작산은 홍천현(洪川縣)의 남쪽에 있다.- 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섬강의 근원은 횡성현(橫城縣)의 덕고산(德高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흥원진(興元津)에 이르러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제천성(堤川城)의 서남쪽에 있는 치악산(雉岳山)의 남쪽 기슭을 지난다.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가 원주의 동남쪽 경계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 있는 음성(陰城)의 동북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충주(忠州)의 서쪽 및 여주(呂州)의 동쪽을 지나 북쪽으로 흐르는 물이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천민천(天民川)으로, 그 근원이 충주의 소속리산(小俗離山)에서 나와 북동쪽으로 흘러 여주의 경계에 이르러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원주성(原州城)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이주성(利州城) -삼가 살펴보건대, 이천(利川)으로 되어야 한다.- 의 북쪽을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물과 만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신은천(新恩川)으로, 그 근원이 지평현(砥平縣)의 부동산(不動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한강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광주성(廣州城)의 북쪽과 양근(楊根)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비정(碑亭)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조선의 국성(國城) 동남쪽에 있는 삼각산(三角山) 앞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북쪽 근원에서 나온 물이 동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은 양근의 경계에서 한강에 합해지는바, 여기에서는 국성의 동남쪽에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틀린 것이다.- ○ 북쪽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신연강(新淵江)으로, 그 근원이 회양부(淮陽府)의 금강산(金剛山) 만폭동(萬瀑洞)에서 나온다.- 은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동북쪽의 금성(金城) 동남쪽에 있는 추지령(秋池嶺) -삼가 살펴보건대, 추지령(楸池嶺)으로 되어야 한다.- 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이 물은 바로 신진(新津)으로, 근원이 회양의 말휘령(末暉嶺)에서 나온다.- 서쪽으로 흘러 서북쪽에서 흘러온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철령(鐵嶺)의 은계천(銀溪川)이다.- 과 합류한 다음, 서남쪽으로 흘러 낭주(狼州) -삼가 살펴보건대, 낭천(狼川)으로 되어야 한다.- 의 동남쪽 경계에 이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신진은 북서쪽으로 흘러 은계천과 합류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신연강에 들어간다.- 하나는 회양성의 북쪽 산 및 남쪽의 금성산(金城山)에서 나온 두 개의 물이 합류해서 서쪽으로 흘러 양구성(楊口城) 및 인제성(麟蹄城)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회양의 북쪽 산과 금성산에서 나오는 두 개의 물은 상세히 알 수가 없다.- 두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이 이미 합류해서 서남쪽으로 흘러 가평성(加平城) 남쪽 경계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남쪽 근원에서 흘러오는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소양강(昭陽江)이다.- 이 동남쪽에 있는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한다. 그런 다음 동북쪽으로 흘러 평창성(平昌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여기에서 서북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소양강은 근원이 오대산의 북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춘천부(春川府)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 신연강과 합류하는바, 여기에서 가평군에 이르러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 개의 근원에서 흘러온 물이 이미 합해진 다음에는 서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오갑산(五甲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오신산(五申山)의 잘못된 표기로, 오신산은 김화현(金化縣)에 있다. 세 근원에서 흘러온 물이 이미 합해져서 오신산을 지난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 남쪽 기슭과 홍천성(洪川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춘천성(春川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횡성(橫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홍천강(洪川江)으로, 그 근원이 강릉부(江陵府)의 백치(柏峙)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신연강에 유입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저평성(底平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지평(砥平)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 경계와 포천성(抱川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양근성(楊根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그 북쪽 둔치에 있는 산은 바로 양주성(楊州城)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산기슭을 돌아서 삼각산(三角山) 앞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 있는 광주(廣州)에서 흘러온 남파(南派)의 물과 합류한다. ○ 남파와 북파 두 개의 강이 이미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서는 국성(國城)의 안산(案山)의 남쪽 기슭 -국성은 동북쪽으로부터 동쪽, 남쪽, 서쪽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북쪽에 동경 10도 6분이 조금 넘고, 북위 37도 6분인 작은 산이 있는데, 산 너머 동쪽이 양주(楊州)이며, 그 북쪽 80리 되는 곳에 백악산(白岳山)이 있다. 백악산의 동북쪽은 적성(積城)이다. 또 북쪽으로 30리 되는 곳이 바로 임진강(臨津江)이다. 백악산에서 서북쪽으로 60리 되는 곳이 고양성(高陽城)이고, 또 서북쪽으로 50리 되는 곳이 파주(坡州)이다. 파주에서 북쪽으로 20리 되는 곳이 바로 임진강이다. 국성의 서남쪽에는 산이 가로질러 있으면서 안산(案山)이 되는데, 동서쪽으로 수백 리에 뻗쳐 있으면서 강물을 따라서 안대(案對)가 되었다. 굉자원(宏滋院)이 성에서 서남쪽으로 50여 리 되는 곳의 산 사이에 있다. ○ 강물은 또 서쪽으로 흘러 안산의 남쪽 기슭을 돈 다음 과천성(果川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과천성은 국성의 서남쪽에 있으며, 또 과천의 서남쪽에는 용인성(龍仁城)이 있다. 또 서남쪽에는 관악산(冠岳山)과 수리산(修理山)이 있다.- 을 지나 1백 수십 리를 흘러 양천성(陽川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안산성(安山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아마도 앵봉천(鸎峯川)을 말하는 듯하다. 앵봉천은 근원이 삼각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공암진(孔巖津)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을 받고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흘러 김포성(金浦城)의 서쪽을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 있는 수원성(水原城)의 북쪽 산에서 흘러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부평성(富平城)의 동북쪽 경계를 지나는 물이 남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흘러 통진성(通津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海口)의 남쪽 둔치에는 인천성(仁川城)이 있고, 북쪽 둔치에는 교하성(交河城)이 있는데, 서로 간의 거리가 100리이다. ○ 이 물은 근원에서부터 종횡(縱橫)으로 1000여 리를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보면, 한강 외에는 800리나 되는 큰 강이 없으니 아마도 한수(漢水)가 열수(列水)인 듯하다. 《산해경》을 보면, 맥국(貊國)은 한수의 동북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맥국은 지금의 관동(關東) 지방인바, 과연 한수의 동북쪽에 있다. 또 세 근원에서 나온 물이 합해져서 구불구불 800리를 흐르는바, 열수가 한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강은 그 근원에 세 개가 있는데, 하나는 오대산의 우통(于筒)에서 나오고, 하나는 회양(淮陽)의 금강산에서 나오는데 이를 신연강이라고 하고, 하나는 그 근원이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문장대(文藏臺)에서 나오는데 이를 달천(達川)이라고 한다. 오대산에서 나오는 물은 남쪽으로 흘러 정선군(旌善郡)을 지나고, 서쪽으로 흘러 충주(忠州)에 이른다. 여기에서 달천이 괴산(槐山)과 연풍(延豐) 두 현 사이를 지나 남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한다. 충주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여주(驪州)를 지나고 양근군(楊根郡)에 이른다. 여기에서 신연강이 북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부터는 서남쪽으로 흘러 광주(廣州)의 경계를 감돌고,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경성(京城)의 남쪽을 감돌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교하군(交河郡)의 남쪽에 이른다. 여기에서 임진강(臨津江)이 북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하여 풍덕부(豐德府)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또 살펴보건대, 《무비지(武備志)》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도에 팔도의 여러 강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청일통지》에서는 한강을 또 웅진(熊津)이라고 하였고, 또 양화도(楊花渡)가 바로 임진도(臨津渡)라고 하였고, 또 백마강(白馬江) 하류가 한강에 합류된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비류강(沸流江)이 한강으로부터 나뉘어 흘러 대동강(大同江)에 합해진다.” 하였는데, 이는 모두가 잘못된 것을 다시 잘못 전하면서 바로잡지 않은 탓에 그렇게 된 것이다.
○ 달천(達川)
《삼재도회속집(三才圖會續集)》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 속리산의 산꼭대기에는 문장대가 있는데, 문장대 위에서 한 물이 나와 서쪽으로 흘러 달천이 되어 금천(金遷)으로 들어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한강의 별파(別波)로, 앞에 나오는 안설(按說)에 상세하게 나온다.
○ 임진강(臨津江) -옛날에는 대수(帶水)라고 하였으며, 혹 호로하(瓠蘆河), 청강(淸江)이라고도 하였다.
《한서》 지리지(地理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낙랑군 함자현(含資縣)에는 대수(帶水)가 있다. 대수는 서쪽으로 흘러 대방(帶方)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구당서(舊唐書)》 열전(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상원(上元) 2년(675)에 유인궤(劉仁軌)가 군사를 거느리고 호로하를 건너가서 신라의 칠중성(七重城)을 격파하였다.
《황명세법록(皇明世法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산동(山東) 문등현(文登縣)의 성산위(成山衛)로부터 바다를 건너가서 호로하로 들어가 신라로 들어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대수는 지금의 임진강으로, 옛날의 칠중하(七重河)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사군강역 대방군조(四郡疆域帶方郡條)에 나온다.- 칠중성은 바로 적성현(積城縣)이다. 지금 임진강이 흐르다가 적성의 서쪽에 이르러서 호로탄(瓠蘆灘)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유인궤가 강물을 건넌 곳이다.
《요사(遼史)》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통화(統和) 28년(1010)에 야율분노(耶律盆奴) 등이 고려를 정벌하면서 개경(開京)에 들어가서 왕경(王京)을 크게 약탈하고 불사른 다음 청강(淸江)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야율분노가 이미 개경을 약탈하고서 청강에 이르렀으니, 청강은 개경 남쪽에 있는 강임이 분명하다. 《명시종(明詩綜)》에 실려 있는 조선 이행(李荇)의 임진강(臨津江) 시에 이르기를, “임진에서 아침 일찍 길을 재촉해, 나루터를 물으면서 청강에 가네.[臨津催早發 問渡卽淸江]” 하였다. 이에 의거하면 청강이 바로 임진강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조선부(朝鮮賦)》의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임진강은 장단부(長湍府)에 속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왜적이 임진을 건너서 개성을 약탈하였는데, 얼마 뒤에 이여송(李如松)이 개성에 주둔해 별장(別將) 사대수(査大受)를 파견하여 임진을 지키면서 동쪽과 서쪽으로 책응(策應)하게 하였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임진강은 동북쪽에 있는 이천성(伊川城)의 서북쪽 큰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한다.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안협(安峽)의 북쪽을 지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큰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정산탄(靜山灘)으로, 그 근원이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안협현(安峽縣)의 북쪽에 이르러서 임진강에 합류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삭녕성(朔寧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한 개의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마룡연(馬龍淵)이다.- 이 있어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철원(鐵原)의 남쪽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마룡연은 그 근원이 평강현의 상현(霜峴)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철원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삭녕의 남쪽에 이르러서 임진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하나의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탄강(大灘江)이다.- 이 있어서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가평(加平)의 북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홀러 김화성(金化城)의 남쪽 경계와 영평성(永平城)의 북쪽 경계 및 연천성(連川城) -삼가 살펴보건대, 연천성(漣川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탄강은 그 근원이 회양부(淮陽府)의 쌍령(雙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철원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연천현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마전성(麻田城)의 남쪽 경계와 적성(積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 큰 산의 남쪽 기슭에 이르러서 꺾어져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여기에서 남쪽으로 30리 되는 곳이 바로 백악산(白岳山)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파주(坡州)의 북쪽 경계와 장단성(長湍城)의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한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천(沙川)이다.- 이 동북쪽에 있는 개창부(開昌府)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개성부의 잘못된 표기이다.- 동쪽의 송악산(松岳山) 남쪽 기슭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장단의 북쪽 경계 및 개성부의 남쪽 경계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을 서쪽으로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사천은 그 근원이 송도(松都)의 성거산(聖居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송도천(松都川)과 판적천(板積川)을 지나서 남쪽으로 흘러 임진강에 들어간다.- 송악(松岳)은 바로 조선의 중악(中岳)으로, 백악(白岳)에서 서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곳에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임진강이 되어 다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이 강은 근원에서 700여 리를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임진강은 그 근원이 안변부(安邊府) 영풍고현(永豐故縣)의 방장동(防墻洞)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이천부(伊川府)의 경계로 들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흘러 삭녕군(朔寧郡)의 경계로 들어갔다가 서남쪽으로 흘러 장단부(長湍府)의 남쪽을 돌아 교하군(交河郡)에 이르러서 한강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예성강(禮成江) -저탄(豬灘)을 덧붙인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예성강은 두 산 사이에 있는데, 돌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데, 이것이 이른바 급수문(急水門)으로 몹시 험악하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급수문은 그 문이 바다 섬과는 닮지 않았으며, 흡사 무협(巫峽)의 강로(江路)와 같았다. 산이 둘러싸고 굴곡을 이루면서 앞뒤로 서로 이어졌는데, 그 양쪽 사이가 바로 물길이다. 수세가 산협에 묶여 놀란 파도가 해안을 치고 구르는 돌이 벼랑을 뚫어, 요란하기가 우레가 울리는 것과 같다.
《조선부》 주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일로(一路)에 시냇물이 있는 곳에는 모두 소나무를 베어다가 다리를 놓았다. 보산관(寶山館) 근처에 시내가 있어 저탄(楮灘)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저탄(豬灘)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라고 하는데, 폭이 20여 길이나 되는데도 역시 소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예성항(禮成港)은 개성부의 남쪽에 있는데, 예성강의 하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또 급수문이 있는데, 《대명일통지》를 보면, 개성부의 남쪽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흡사 무협과 같이 생겼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풍덕성(豐德城)에서 조금 서북쪽에 한 수구(水口)가 있다. 그 물의 근원은 동북쪽에 있는 곡산성(谷山城)의 동북쪽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서 곡산성의 남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쪽에서 흘러온 하나의 작은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신계성(新溪城) 북쪽을 지난 다음,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흘러 수산성(遂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수안성(遂安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서남쪽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쪽에서 흘러온 큰 물과 합류하는데, 이 물은 두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이 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토산성(兎山城)을 지나 북쪽으로 흐르다가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송악산 개창부(開昌府)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개성부(開城府)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북쪽 산의 남쪽 기슭을 돈 다음 서쪽으로 흘러 동금천성(東金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서금천성(西金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난다. 이곳에서 금천하(金川河)와 합쳐지는데, 금천하는 동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동금천성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온 두 개의 근원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평산성의 남쪽을 지나는 물과 합류한다. 서쪽에서 흘러온 금탄하(金灘河)는 서쪽으로 흘러 서금천성을 지나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만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풍덕성의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 물은 바로 예성강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원류(源流)가 지나는 바와 별파(別派)가 합류되는 바에 대해서 모두 뒤섞어서 말하여 어거지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금천성은 하나일 뿐인데, 이곳에서는 동금천성과 서금천성 두 개로 말하였으니 더욱더 잘못된 것이다. 이른바 금탄하라는 것도 역시 어느 물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 이 물은 근원에서부터 500여 리를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예성강은 그 근원이 수안군(遂安郡)의 언진산(彦眞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신계현(新溪縣)의 서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평산부(平山府)의 동쪽에 이르러서 저탄(豬灘)이 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도경》에서 이른 바 급수문은 아마도 이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을 가리키는 것인 듯하다.
○ 오조천(吾助川) -박연(朴淵)을 덧붙인다.
《허문목집(許文穆集)》의 회란석시(廻瀾石詩) 서문(序文) -허국(許國)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적에 지은 것이다.- 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오조천 가에 병풍처럼 생긴 돌이 있어서 오조천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는데, 예전에는 이 돌의 이름이 없었다. 이에 내가 그 돌을 명명하여 ‘회란석(廻瀾石)’이라 하였다.
《삼재도회속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박연(朴淵)은 천마산(天磨山)과 성거산(聖居山) 사이에 있는데, 모양이 마치 석옹(石甕)과 같이 생겼으며,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검은색이다. 반석이 있어 그 가운데에서 물이 솟아나는데, 이를 도암(島巖)이라고 한다. 물이 절벽에 이르러서는 성난 폭포가 되어 아래로 떨어지는데, 높이가 10여 길이나 되어 마치 흰 무지개가 허공에 걸린 듯하고, 눈발이 흩날리는 듯하며,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전설에, “옛날에 박 진사(朴進士)라는 사람이 연못가에서 젓대를 불고 있었는데, 용녀(龍女)가 그 소리를 듣고는 감동하여 그를 불러서 남편으로 삼았으므로 이름을 박연이라고 한다.” 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오조천은 바로 어조천(語早川)이 와전된 것이다. 그 근원은 송도의 천마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고연담(姑煙潭)과 박연폭(朴淵瀑)이 되고,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금천군(金川郡)의 서쪽을 돌아 조읍포(助邑浦)에 이르러서 예성강으로 들어간다.
○ 금강(錦江) -혹은 웅진강(熊津江), 백강(白江), 백마강(白馬江)이라고 하기도 한다.
《구당서》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현경(顯慶) 5년(660)에 소정방(蘇定方)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成山)에서 바다를 건너 웅진강(熊津江)의 어귀에 이르렀다. 백제가 온 나라를 기울여서 와서 저항하였는데, 크게 싸워서 격파하고는 백제를 모두 평정하였다. ○ 용삭(龍朔) 1년(661)에 백제의 옛 장수 복신(福信)이 주류성(周留城)을 점거한 채 반란을 일으켰다. 2년에 유인궤(劉仁軌)가 수군을 거느리고 웅진강에서 백강(白江)으로 가서 백강의 입구에서 왜병(倭兵)들을 만나 네 번 싸워서 모두 승리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웅진은 국성의 남쪽에 있다. 옛 백제의 해구(海口)로, 당나라에서 이곳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하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백강은 웅진의 동남쪽에 있는데, 역시 큰 바다를 접하고 있으며, 전주(全州)의 서쪽 경계에 닿아 있다. 당나라 용삭 3년(663)에 유인궤가 수군을 이끌고 웅진에서 주류성으로 나아가면서 백강의 입구에 이르러서 왜병과 만나 네 번을 싸워 모두 이겼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 백마강은 청주(淸州)의 남쪽에 있다. 《고려도경》을 보면, 긍주(矜州)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서천(舒川)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에 백마강이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 청주의 경계를 들어갔다가 꺾어져서 동쪽으로 흐르고, 또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천안군(天安郡)의 경계를 지나고, 여기에서 꺾어져서 북쪽으로 흐르는데, 그 하류는 한강에 합해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백강이 일본의 서적에는 백촌강(白村江)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이르기를, “천지천황(天智天皇) 2년(663)에 백촌강(白村江)에서 당나라 군사와 싸웠다.” 하였다.- 지금의 백마강이다. 지금 백마강의 상류를 웅진(熊津)이라고 하는데, 《당서》에서 칭한 웅진은 백강의 하류에 있는바, 이는 바로 고금(古今)의 칭호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청일통지》에서는 백강과 백마강을 나누어서 두 강으로 하였으며, 또 백마강을 한강에 끌어대어 합하였으니, 몹시 잘못되었다.
《삼재도회속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속리산에서 나오는 한 물은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된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서천(舒川)의 남쪽 수구 역시 조선의 하나의 큰 하천이다. 강물은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하나는 동남쪽에 있는 금산성(錦山城) 동남쪽 경계의 적암(赤巖) 서북쪽 기슭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적천(赤川)으로, 그 근원이 무주부(茂朱府)의 적상산(赤裳山) 동쪽에서 나오는바, 적암은 바로 적상(赤裳)의 잘못된 표기이다. 금강은 그 근원이 장수현(長水縣) 분수치(分水峙)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무주의 서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적천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금산성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제원천(濟源川)으로, 그 근원이 금산군 월봉산(月峯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금강으로 들어간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진산성(珍山城)의 동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서남쪽에 있는 고산성(高山城)에서 나와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흘러 영동성(永同城)의 서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송천(松川)이다.- 이 동남쪽에 있는 파음산(巴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웅이산(熊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웅이산은 상주(尙州)에 있다.- 의 북쪽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황간성(黃磵城)의 북쪽을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송천은 그 근원이 상주의 구봉산(九峯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황간현의 북쪽을 지나 영동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흘러 옥천성(沃川城)의 북쪽을 지나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회덕성(懷德城)의 북쪽과 문의성(文義城)의 남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진잠성(珍岑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진잠성(鎭岑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을 지나며,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공주(公州)의 동쪽 경계를 지나서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 북쪽의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동진강(東津江)으로, 그 근원이 충주(忠州)의 망이산(望夷山)에서 나온다.- 은 동북쪽에 있는 조령(鳥嶺)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청안성(淸安城)의 서쪽 경계와 진천성(鎭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쪽에 있는 음성(陰城)과 괴산(槐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청주(淸州)의 서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에 있는 보은(報恩)의 동쪽, 개경(開慶)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문경(聞慶)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청주의 남쪽 경계와 회인(懷仁)의 북쪽 경계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상의 두 물은 모두 동진강의 별파(別派)인데,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전의(全義)의 남쪽 경계와 문의(文義)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공주의 동쪽에 이르러서 남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동진강은 망이산으로부터 나와 남쪽으로 흘러 진천현(鎭川縣)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연기현(燕岐縣)의 남쪽에 이르러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 두 근원에서 흘러온 물이 이미 합해져서는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흐른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공주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연기성(燕岐城)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지난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부여성(扶餘城)의 북쪽을 지나고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100리가량을 흐른다. 여기에서 또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석성(石城)의 북쪽 경계와 정산성(定山城)과 임천(林川)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 강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초포(草浦)로, 그 근원이 계룡산(鷄龍山)에서 나온다.- 은 동쪽에 있는 연산(連山)의 동북쪽, 진잠(珍岑)의 남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이산(泥山) -삼가 살펴보건대, 지금의 노성현(魯城縣)이다.- 의 남쪽 경계와 여산(礪山)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은진성(恩津城)의 북쪽을 지난다. 이곳에서 또 서남쪽에 한 물이 있어서 남쪽에 있는 전주(全州) 서남쪽의 모악산(母岳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익산성(益山城)의 서쪽을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 보건대, 이 물은 어느 물인지 상세하지 않다.- 여기에서 또다시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용안(龍安)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함열(咸悅)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남쪽과 북쪽에서 흘러온 작은 물을 각각 만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큰 산의 남쪽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정산과 임천의 큰 물과 만난다. -삼가 살펴보건대, 초포는 서쪽으로 은진현 서쪽의 강경(江景)에 이르러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 이미 합류한 다음에는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청양(靑陽)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한산성(韓山城)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서천성(舒川城)의 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주현(州縣)에서 흘러오는 수십 개 근원의 물을 합하여 거의 1000리나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금강의 근원은 장수현(長水縣)의 분수치(分水峙)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영동현(永同縣) 경계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송천(松川)의 물이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흘러 옥천현(沃川縣)의 경계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용천(龍川) -바로 《고려도경》에서 칭한 물이다.- 이 속리산 문장대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청산현(靑山縣)의 남쪽 경계를 돌아서 흘러와 합류된다.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진강이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된다.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웅진(熊津)이 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부여현(扶餘縣)의 동쪽에 이르러서 백마강(白馬江)이 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초포(草浦)의 물을 모은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두치강(豆恥江) -전탄(錢灘)과 광탄(廣灘)을 덧붙인다.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1597) 7월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원균(元均)의 수군을 습격하여 한산도(閑山島)를 빼앗았다. 이에 왜적들이 수로와 육로로 한꺼번에 나와 왜선이 2, 3일도 되지 않아 광양(光陽)의 두치진(豆恥津)에 정박하였는데, 두치진은 남원(南原)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 우리나라의 각 장수들이 여러 차례 왜적들을 참획하였다. 12월에 광양의 전탄(錢灘)에서 싸워 왜적 4명의 수급을 참획하였고, 11월에 보성군(寶城郡) 광탄(廣灘)에서 싸워 왜적 1명을 참획하였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하동성(河東城)의 서쪽에 소수구(小水口)가 있다. 물은 북쪽에 있는 남원성(南源城) -삼가 살펴보건대, 남원(南原)으로 되어야 한다.- 서북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곡성(谷城)의 동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이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요천(蓼川)으로, 그 근원이 장수현(長水縣)의 장안산(長安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두치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흘러 영례성(永禮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구례(求禮)의 잘못된 표기이다.- 서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서북쪽에서 흘러오는, 무목산(無木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무등산(無等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 나와 송경산(松京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송광산(松廣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및 순천성(順天城)의 북쪽을 거쳐 동남쪽으로 흐르는 한 물이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낙수(洛水)로, 그 근원은 장흥부(長興府)의 웅치(熊峙)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무등산의 서쪽을 돈 다음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구례현의 남쪽 경계에 이르러 두치진에 합류한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흘러 광양성(光陽城)의 동쪽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海口)에서 동쪽으로 10여 리 되는 곳이 바로 하동성(河東城)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두치강은 일명 섬강(蟾江)이라고도 한다. 그 근원이 진안(鎭安)의 마이산(馬耳山) 중대(中臺) 및 전주(全州)의 웅치(熊峙)에서 나와 이 두 물이 합해져서 남쪽으로 흘러 남원부의 서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왼쪽으로 요천(蓼川)을 지난 다음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압록진(鴨綠津)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낙수(洛水)가 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흘러 광양현의 동쪽을 지나서 전탄(錢灘)이 되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양조평양록》에서 칭한 광탄(廣灘)은 바로 낙수(洛水)의 상류이다.
○ 낙동강(洛東江) -진강(晉江)을 덧붙인다.
《삼재도회속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속리산에서 나오는 한 줄기 물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저곡천(豬谷川)으로, 그 근원이 속리산 문장대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김해성(金海城)의 동쪽에 대수구(大水口)가 있는데, 조선국 동남쪽의 큰 하천으로, 바로 진강(晉江) -삼가 살펴보건대, 낙동강을 진강으로 잘못 알았다.- 이다. 진강의 물은 북쪽의, 왕경(王京)에서 동남쪽으로 500리 되는 곳에 있는 영천현(榮川縣)의 북쪽 큰 산에서 나오는데, 그 산맥은 북쪽으로 장백산(長白山)과 소백산(小白山)으로부터 꾸불꾸불 서리면서 2000여 리를 내려오다가 봉화현(奉化縣)의 서쪽, 예안현(禮安縣)의 서북쪽에서 봉우리를 일으키며, 지봉(支峯)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두 줄기로 갈라져 남쪽으로 가 각 군현(郡縣)의 경락(經絡)이 되면서 바다까지 닿는다. 이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천(沙川)을 가리키는 듯한데, 사천의 근원은 안동부의 백병산(白屛山) 및 봉화현의 문수산(文殊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은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영천현의 동쪽을 지나고,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합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안동성의 서남쪽을 지나고,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백석산(白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백암산(白巖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백암산은 영양현(英陽縣)의 동쪽에 있다.- 의 물을 받아들인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소천(小川)으로, 그 근원이 영양현의 검마산(劍磨山)에서 나온다. 낙동강의 정원(正源)이 태백산(太白山)의 황지(黃池)에서 나와 남쪽으로 흐르다가 소천(小川)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청량산(淸涼山)의 서쪽 기슭을 지나고, -삼가 살펴보건대, 소천이 이미 황지에서 나온 물과 합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청량산의 서쪽, 안동부의 동남쪽을 지난 뒤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사천과 합류한다.-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의성(義城)의 서쪽 경계와 용궁성(龍宮城)의 동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의 북안성(北安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비안성(比安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서쪽에서 흘러온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위수(渭水)이다.- 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위수는 그 근원이 의흥현(義興縣) 화산(華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비안현(比安縣)의 동쪽을 감싸고 다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풍유천(豐酉川)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예천군(醴川郡)의 와전으로, 천(川)의 이름으로 잘못 안 것이다.- 이 있어 와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북쪽에 있는 함창성(咸昌城)의 북쪽 산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저곡천(豬谷川)으로, 속리산에서 흘러나온다. 이미 앞에 나왔다.- 서쪽에서 온 상주(尙州) 서북쪽의 파음산(巴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웅이산(熊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동쪽에서 나온 물과 만나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이수(伊水)로, 그 근원이 상주의 웅이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인동성(仁同城)의 서쪽과 선산(善山)의 동쪽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개령성(開寧城)의 동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감천(甘川)이다.- 이 있어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북쪽에 있는 적암(赤巖)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적상산(赤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오다가 서남쪽에서 흘러온 거창(居昌)의 물과 합류한 다음 또다시 동쪽으로 금산(金山)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온 한 물과 합류하여 성주(星州)의 북쪽, 개령(開寧)의 남쪽을 지나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감천은 그 근원이 지례현(知禮縣)의 대덕산(大德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르면서 직지천(直旨川)과 아천(牙川)을 모으고, 꺾어져서 동쪽으로 흘러 선산부(善山府) 옥산(玉山)의 동쪽에 이르러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금호강(琴湖江)이다.- 이 있어 합류한다. 이 물은 동북쪽에 있는 경주(慶州) 서북쪽과 영천(永川) 동남쪽의 모자산(母子山) 서쪽 기슭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하양성(河陽城)의 남쪽을 경유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공곡성(恭谷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칠곡성(漆谷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 경계를 지나 꺾어져서 정남쪽으로 흐르다가 대구성(大邱城)의 서쪽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금호강은 그 근원이 청송부(靑松府)의 보현산(普賢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영천(永川)과 하양(河陽) 두 현 사이를 지나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대구부의 북쪽을 지나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에서 조금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가야천(伽倻川)이다.- 이 와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남쪽에 있는 협천성(浹川城)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고령성(高靈城)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가야천은 그 근원이 합천군(陜川郡) 가야산(伽倻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원풍성(元風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현풍성(玄風城)이다.- 남쪽과 의령성(宜寧城) 북쪽으로 지나 다시 동쪽으로 흘러 창녕(昌寧)의 남쪽을 지나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진강(晉江)이다.- 이 있어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남쪽에 있는 운봉(雲峯)의 지리산(智異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함양(咸陽)의 남쪽과 단성(丹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산음(山陰)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산청현(山淸縣)이다.- 의 물을 받아들이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삼가(三嘉)의 남쪽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양천(梁川)으로, 그 근원이 삼가현의 화지현(花旨峴)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진강에 합류한다.- 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 흘러 진주(晉州)의 남쪽을 지나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공원성(恭原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칠원성(漆原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을 지나 굽이굽이 동북쪽으로 700리를 흘러와서 합류하는데, 이 물이 바로 사천(泗川)인 듯하다. -삼가 살펴보건대, 진강은 그 근원이 무주부(茂朱府)의 덕유산(德裕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지리산에서 나오는 임천(瀶川)의 물과 합류해 동쪽으로 흘러 단성현(丹城縣)의 북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양천(梁川)을 지나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진주의 남쪽을 지나며,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사천은 바로 현 이름인데, 잘못 진강이라고 하였다.- ○ 여기에서 또다시 동쪽으로 흐르다가 동남쪽으로 흘러 영산성(靈山城)의 서쪽을 지난다. -영산(靈山)은, 큰 산맥(山脈)이 모자산(母子山)에서 구불구불 내려오다가 경주(慶州), 손인(蓀仁), 경산(慶山), 화랑(火郞), 청도(靑道)의 다섯 성을 지난 다음 남쪽으로는 창녕(昌寧)에 이르러서 무계산(武溪山)이 되고, 동남쪽으로는 영산성(靈山城)의 북쪽에 이르러서 화악산(華岳山)이 되는데, 조선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손인은 바로 자인(慈仁)의 잘못된 표기이며, 화랑은 아마도 화왕(火王)의 와전인 듯하다. 화왕산성(火王山城)은 창녕의 북쪽에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응천(凝川)이다.- 이 있어서 합류한다. 이 물은 동북쪽에 있는 밀양(密陽)의 북쪽에서 나와 경산(慶山)의 서남쪽 산 및 동북쪽에 있는 손인(蓀仁) 동쪽의 금오산(金鼇山)에서 나오는 물과 만난 다음 남쪽으로 흘러 언양(彦陽)과 양산(梁山)의 서쪽 경계와 밀양의 동쪽 경계를 지나서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응천은 그 근원이 현풍(玄風)의 비슬산(琵瑟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청도군(淸道郡)을 감싸 흐른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밀양부의 앞을 지나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김해성(金海城)의 동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 동쪽 언덕은 동래(東萊)의 서쪽 경계이다. 동래의 북쪽에는 윤산(輪山)이 있고, 김해의 서쪽에는 웅산(熊山)이 있다. 강구(江口)의 동남쪽은 바로 절영도(絶影島)이고, 또 큰 바다 건너편의 동남쪽에는 대마대도(對馬大島)가 있다. 이 물은 근원으로부터 길게 1000리를 흐르면서 수십 성의 산에서 나오는 물을 모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진강(晉江)은 경주(慶州) 서남쪽에 있는 사주성(泗州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천성(泗川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북쪽에 있는데, 혹 서강(西江)이라고도 하며,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마귀(麻貴)가 울산성(蔚山城)을 공격하면서 군사를 파견해 서강(西江) 입구에 주둔해 있으면서 왜적의 수로(水路)를 막게 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진강이 과연 사천현 북쪽을 지나기는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경주의 서남쪽에 있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마귀가 막은 수로는 바로 울산부의 태화강(太和江)인데, 진강이라고 하였으니, 더욱더 잘못되었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낙동강은 그 근원이 안동(安東) 태백산(太白山)의 황지(黃池)에서 나와 여러 물을 모은 다음 서남쪽으로 흘러 예천군(醴川郡)의 남쪽에 이르러서 오른쪽으로 속리산에서 나오는 저곡천(豬谷川)의 물과 합류한다. 그런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대구의 북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금호강(琴湖江)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영산현(靈山縣)의 경계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진강(晉江)이 무주(茂朱)의 덕유산(德裕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부터 꺾어져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김해부(金海府)의 동쪽에 이르러서 흩어져 삼차하(三叉河)가 되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랑강(三浪江)
《명사(明史)》 조선전(朝鮮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1597) 7월에 왜적들이 양산(梁山)과 삼랑(三浪)을 탈취하고서 마침내 경주(慶州)로 들어가 한산(閑山)을 침입하였다.
《양조평양록》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에 왜적이 송도(松島), 울산(蔚山), 부산(釜山)에 나누어 주둔해 있었다. 경략(經略) 형개(邢玠)가 군사를 출동시키는 일에 대해 상의하면서 말하기를, “소서행장(小西行長)의 군영은 부산에 있고,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영은 서생포(西生浦)에 있다. 부산을 격파하고자 할 경우에는 육로로는 반드시 양산(梁山)의 서북쪽을 경유해야 하는데, 이곳에는 높은 산과 험한 고개가 있어 단지 말 한 필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몹시 험악하다. 남원(南原) -삼가 살펴보건대, 원(原) 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을 경유할 경우에는 삼랑(三浪)의 큰 강이 있어서 곧장 김해(金海)와 죽도(竹島)로 통한다. 이 두 곳은 모두 인후(咽喉)에 해당되는 요충지이다.”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삼랑은 아마도 낙동강 하류의 삼차하(三叉河)를 가리키는 듯하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삼랑강(三浪江)은 양산군(梁山郡)의 남쪽에 있다. 구지(舊志)를 보면, 양산(梁山)의 서북쪽에는 험준한 고개가 있어 단지 말 두 필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몹시 험하며, 남쪽에는 삼랑의 큰 강이 있어서 곧장 김해(金海)와 죽도(竹島)로 통한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 왜적들이 양산과 삼랑을 탈취하고서 마침내 경주로 들어갔다.
○ 태화강(太和江)
《양조평양록》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에 왜적들이 울산(蔚山)에 진을 치고 모여 있었다. 울산의 남쪽에 도산성(島山城)이 있는데, 도산성은 산세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견고함으로 삼았다. 성 한가운데에 강이 하나 있어 부채(釜寨)와 통할 수 있으며, 육로로는 언양(彦陽)을 거쳐 부산과 통할 수 있다. 왜적들이 연이어서 세 개의 성채(城寨)를 쌓았는데, 반구정(伴鷗亭), 성황당(城隍堂), 태화강(太和江)이 모두 도산(島山)의 앞에 있었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장로일성(長老日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장기성(長鬐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소수구(小水口)가 있다. 이 물은 서북쪽에 있는 위산성(尉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울산성(蔚山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서쪽 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울산성의 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쪽으로 흘러 좌병(左兵)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좌병영(左兵營)이다.- 의 남쪽 경계를 지나 1백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태화강은 그 근원이 경주의 단석산(斷石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울산부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아리나예하(阿利那禮河)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신라에 도착하자, 신라의 왕이 즉시 흰 끈으로 얼굴을 묶고 앞에 와서 강화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러고는 거듭 맹세하기를, “동쪽에서 뜨는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또 아리나예하가 거꾸로 흐르고 냇물의 돌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지 않는 한, 봄가을로 조공을 빠뜨릴 경우에는 하늘의 신령과 땅의 귀신이 함께 우리들을 토벌할 것입니다.” 하였다. -송하견림(松下見林)이 말하기를, “압록강(鴨綠江)은 삼한(三韓)에 있다.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보면, 황하(黃河), 장강(長江), 압록강은 천하의 세 대하(大河)라고 하였는바, 압록강은 세 대하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서기》에서 이른 바 아리나예하는 바로 압록강이다.” 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신라 나해왕(奈解王) 때의 일이다. 이 당시에 신라의 강역은 경상좌도(慶尙左道)에 그쳤는바, 아리나예하는 마땅히 한나라의 대수(大水)로, 만일 태화강이 아니라면 과연 낙동강을 가리킬 것이다. 일본인이 아리나예하가 압록강이라고 한 것은 망녕된 설이다.
○ 대동강(大同江) -옛날에는 패수(浿水), 대통강(大通江)이라고 하였다. ○ 비류강(沸流江)과 흑하(黑河)를 덧붙인다.
《사기(史記)》 조선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한(漢)나라가 천하를 평정하고는 요동고새(遼東故塞)를 수축하고서 패수(浿水)까지를 경계로 하였다.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가 진나라의 옛 공지(空地)에 살았다.
《한서》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패수현(浿水縣)의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增地)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수경(水經)》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패수는 낙랑의 누방현(鏤方縣)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臨浿縣) -삼가 살펴보건대, 《한서》 지리지를 보면 임패현이 없다.- 동쪽을 지나서 바다로 들어간다.
《수경주(水經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허신(許愼)이 이르기를, “패수는 누방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浿水出鏤方東入海]” 하였고, 어떤 데에는 “패수현에서 나온다.” 하였으며, 십삼주지(十三州志)에는 이르기를, “패수현은 낙랑의 동북쪽에 있으며, 누방현은 낙랑군의 동쪽에 있다.” 하였다. 패수는 대개 패수현에서 나와 누방현을 경유하는 것이다. 옛날에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패수로부터 조선에 이르렀다. 만약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를 건널 리가 없다. 그 지역은 지금 고구려의 국성(國城)이다. 내가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을 찾아가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평양성은 패수의 남쪽에 있다.” 하였다. 그 물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의 조선현(朝鮮縣)을 경유하는데, 조선현은 바로 낙랑군의 치소로, 한나라 무제(武帝) 때 설치하였다. 그런데 서북쪽으로 흐르므로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增地縣)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고금(古今)의 일을 상고해 보건대, 일이 어긋난다. 이는 대개 《수경》에서 잘못 증험한 것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東入於海]’ 한 곳의 동(東) 자를 위 구절에 붙이면 《수경》의 글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주서(周書)》 고구려열전(高句麗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치소(治所)는 평양성(平壤城)이다. 그 성의 남쪽은 패수에 임해 있다.
《수서(隋書)》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도읍은 평양성인데, 산을 따라서 굽이지게 쌓았으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임해 있다. 매년 초에 패수 가에 모여서 놀이를 하는데, 왕이 요여(腰輿)를 타고 나가 우의(羽儀)를 펼쳐 놓고 이를 관람한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왕이 사는 곳은 평양성인데,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다. 성은 산의 굴곡을 따라 외성(外城)을 쌓았으며, 남쪽은 패수에 임해 있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지리지에 이르기를, “패수는 요동(遼東)의 새외(塞外)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낙랑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통강(大通江)은 평양성의 동쪽에 있다. 옛 이름은 패수이며, 강 가운데에 조천석(朝天石)이 있다. 당나라 때 소정방(蘇定方)이 패수에서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여 사로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조선부》 주(注)에 이르기를, “평양의 기린석(麒麟石)은 부벽루(浮碧樓) 아래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명왕(東明王)이 기린마(麒麟馬)를 타고 이 굴에 들어왔다가 땅속에서 조천석 위로 나와 승천하였다.’ 하는데, 지금도 그 당시의 말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하였다.
《조선부》 주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동강은 바로 옛날의 패수이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통강은 평양성의 동쪽에 있는데, 대동강이라고도 하며, 옛 이름은 패수이다. 《사기》를 보면, “진(秦)나라 때 요동고새를 수리하고는 패수까지를 경계로 삼았으며, 한나라 초기에는 연인(燕人) 위만이 망명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가서는 진나라의 옛 공지(空地)인 상장(上障)과 하장(下障)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점차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의 여러 종족 및 연(燕)나라에서 망명해 온 자들을 역속(役屬)시킨 다음 그들의 왕이 되었다. 원봉(元封) 3년(기원전 108)에는 한나라의 순체(荀彘)가 요동에서 나와 조선을 쳐서 조선의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격파하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서 왕험성(王險城) 아래에 이르렀다.” 하였다. 《한서》 지리지를 보면, “낙랑군에 패수현(浿水縣)이 있는데, 패수가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增地縣)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대개 왕험성은 패수의 남쪽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경》을 보면, “패수는 낙랑의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8년(612)에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는 내호아(來護兒)가 강호(江湖)의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동래로부터 바다를 건너 먼저 진군하여 패수로 들어갔는데, 평양과의 거리가 600리 되는 곳이었다. 얼마 뒤에 고구려의 군사에게 패하여 도로 해포(海浦)로 돌아와서 주둔하였다. 당나라 용삭(龍朔) 1년(661)에는 소정방(蘇定方)이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패수 가에서 고구려의 군사를 격파하고 마침내 평양으로 들어갔다. 명나라 만력 21년(1593)에는 이여송(李如松)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하여 평양에 이르자, 왜적들이 온 힘을 다해 막아 지켰다. 이여송이 그곳의 지형을 헤아려 보고는, 동쪽과 남쪽은 모두 강에 임하여 있고, 서쪽은 산을 타고 있어 가파르며, 북쪽은 모란봉(牧丹峯)이 높이 솟아 있어서 최고의 요해처임을 알아내었다. 이에 이여송이 장수를 보내어 모란봉을 공격하게 하고는 군사들을 독려하여 사면에서 성에 기어 올라가게 해 마침내 함락시켰다. 얼마 뒤에 이여송이 개성(開城)에 주둔해 있으면서는 별장(別將) 양원(楊元)을 평양에 주둔시켜 대동강을 제압해 군량을 운송할 수 있게 하였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 비류강(沸流江)은 강동군(江東郡)의 남쪽에 있는데, 한강(漢江)에서 갈라져 나와 서쪽으로 흘러 대동강에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한강에서 갈라져 나온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미 한강조(漢江條)의 안설(按說)에 나왔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패수는 지금 대동강이라고 하는데, 바로 대통강(大通江)이다.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큰 근원이 있다. 남쪽의 근원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동쪽에 있는 문천성(文川城)에서 서북쪽으로 16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의 서쪽 기슭에서 나온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비류강(沸流江)으로, 그 근원은 양덕현(陽德縣)의 오강산(吳江山)에서 나온다.- 산에서 나온 근원이 하나는 서쪽으로 흐르고 하나는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조금 북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초천(草川)이다.- 이 와서 합류한다. 이 물은 북쪽에 있는 덕양(德陽) -삼가 살펴보건대, 양덕(陽德)으로 되어야 한다.- 의 동남쪽 큰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초천은 그 근원이 양덕현 삼방령(三方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비류강에 유입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이것이 패수가 되어 성천성(成川城)의 동남쪽 경계에 이르러 다른 남쪽 근원의 물과 합류한다. 남쪽 근원의 다른 하나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능성강(能成江)이다.- 는 동남쪽에 있는 곡산성(谷山城)에서 서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 다음 다시 굽이굽이 서북쪽으로 200리를 흘러 다른 남쪽 근원의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비류강은 서쪽으로 흘러 성천부의 북쪽에 이르러서 대동강과 합해지는바, 이곳에서 비류강이 성천의 동남쪽에 이르러서 능성강과 합해진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곡산성 -삼가 살펴보건대, 곡산(谷山)은 오자(誤字)인 듯하다.- 의 남쪽을 지난 다음,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 삼등성(三登城) 대목산(大木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박산(大朴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 경계와 상원성(祥原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서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만난다. -삼가 살펴보건대, 북쪽 근원의 물은 바로 대동강의 정원(正源)이다. 능성강은 그 근원이 두류산(豆流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곡산부의 북쪽 경계를 감싸 흐른 다음에 서쪽으로 흘러 삼등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대동강과 합류한다.- ○ 북쪽의 근원은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동북쪽에 있는 양덕현(陽德縣) 북쪽의 우선산(遇仙山) 서쪽 기슭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금계(錦溪)로, 그 근원이 옛 순천(順川)의 강서산(江西山)에서 나온다.- 서쪽으로 흘러 동북쪽에서 흘러온 맹산성(孟山城) 동남쪽 산에서 나온 물과 합류한다. 그런 다음 서쪽에서 조금 남쪽으로 굽이굽이 200리를 흘러 은산성(殷山城)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금계는 서쪽으로 흘러 은산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북쪽의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막탄강(瘼灘江)이다.- 은 정평성(定平城)의 서북쪽에 있는 비백산(鼻白山) 서쪽 기슭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맹산성의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덕천성(德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개천성(价川城)의 동북쪽 경계에 이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막탄강은 그 근원이 맹산현의 안도리산(安都里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맹산현의 북쪽 경계를 지나 대동강에 들어간다.- 또 다른 정북쪽의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동강의 정원(正源)으로, 영원군(寧遠郡)의 내낙림(內樂林)에서 나온다.- 은 영원성(寧遠城)에서 동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큰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영원성의 동쪽 경계와 덕천성의 서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개천성의 동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다른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 다음 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또 다른 근원에서 나온 물이 동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내낙림에서 나온 대동강이 서남쪽으로 흘러 덕천현의 동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막탄강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은산현(殷山縣)의 서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금계를 지나고서 다시 서쪽으로 흐른다.- ○ 여기에서 약간 서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은산성의 서남쪽 경계를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연산성(燕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자산(慈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동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강동성(江東城)의 서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상원(祥原)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 남쪽 근원에서 나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남쪽 근원에서 나온 물은 바로 능성강이다.- ○ 여기에서 서쪽으로 100리를 흘러 중화성(中和城)의 동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평양성(平壤城)의 동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쪽으로 흘러 평양성 남쪽을 지난다. -평양은 바로 옛 왕험성(王險城)으로, 기자(箕子)의 고도(故都)이다. 한나라 때에는 일찍이 낙랑군의 치소(治所)를 두었으며, 진(晉)나라 이후로는 고구려가 이곳에 도읍하였다. 당나라가 평양을 함락하자 고구려가 비로소 평정되었다. 오대(五代) 때에는 왕건(王建)이 고구려 지역을 차지하고는 비로소 서경(西京)이라고 불렀다. 지금 성에서 동북쪽으로 60리 되는 곳에 금수산(錦繡山)이 있으며, 그 북쪽에는 순천성(順川城)이 있고, 또 그 북쪽에는 큰 산이 있다. 이 산은 동북쪽에 있는 영원(寧遠)에서부터 뻗어 내려와 서남쪽으로 향산(香山)이 되고, 태조산(太祖山)이 되고, 순안성(順安城)이 되며,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내려와 무학산(舞鶴山)이 되며, 다시 남쪽으로 강 입구에 이르는데, 총 500리를 끊이지 않고 남쪽으로 패수를 감싸고서 내려온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은 중화성의 북쪽 산이 되어 안산(案山)이 되며, 여기에서 남쪽은 황주(黃州) 및 봉산(鳳山)이다.- 평양성 남쪽에서부터는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30리를 흐르는데, 이곳을 대동강이라고 한다. 대동강은 강서성(江西城)과 용강성(龍岡城) 두 성의 동남쪽을 지나 삼화성(三和城)의 동남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황주(黃州) 북쪽에서 흘러오는 흑하(黑河)가 동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에서 흘러오는 안악(安岳)의 물을 합한 다음 다시 서쪽에서 조금 남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 흑하는 그 근원이 상원(祥原) 동남쪽의 경계에 있는 큰 산에서 나오는데, 세 개의 근원에서 나오는 물이 합해져서 서쪽으로 총 300리를 흐른 다음 상원의 남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황주의 북쪽 경계와 중화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다시 서쪽에서 조금 남쪽으로 흘러 삼화성(三和城)의 동남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안악에서 흘러온 물이 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흑하는 아마도 흑교천(黑橋川)인 듯하다. 대동강이 남쪽으로 흘러 중화현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흑교천을 지난 다음 급수문(急水門)을 통해 나가는데, 남쪽으로 황주(黃州), 재령(載寧), 안악(安岳) 등처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 절양해(絶瀼海)를 이룬다.- ○ 안악에서 흘러오는 물은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어초천(於草川)이다.- 은 동북쪽에 있는 황주의 동쪽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황주의 남쪽과 봉산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재령성(載寧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안악의 동북쪽에 이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어초천은 그 근원이 수안군(遂安郡) 천자산(天子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황주의 남쪽을 지난 다음 급수문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대동강과 절양해에서 만난다.- 또 다른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영진(迎津)이다.- 은 서남쪽에 있는 바닷가의 장연성(長淵城) 동북쪽에 있는 부석산(傅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박석산(縛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 나와 동쪽으로 100리를 흘러 송화성(松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송화성(松禾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남쪽과 신산성(信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신천성(信川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북쪽을 지나는데, -삼가 살펴보건대, 영진(迎津)은 그 근원이 송화현(松禾縣)의 달마산(達摩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신천군의 북쪽을 돌아 절양해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신천(信川)의 남쪽 산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해주성(海州城)의 북쪽을 지나오는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전방천(箭防川)으로, 그 근원이 해주의 수양산(首陽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월당강(月唐江)과 만나 절양해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안악성의 동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다른 근원의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어초천(於草川)이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90리를 흘러 동쪽에서 흘러온 흑하와 합류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 대동강은 이미 남쪽에서 흘러온 물을 합한 다음에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근원에서 800리를 흘러가는바, 조선의 서북쪽에 있는 큰 하천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대동강은 바로 패수로, 그 근원은 영원군 내낙림의 백산(白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막탄과 금계 등 여러 물을 합하여 성천부의 북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비류강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오른쪽으로 사천(蛇川)을 지난다. 여기에서부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삼등현의 서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능성강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합류한 물은 평양성의 남쪽을 돌아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왼쪽으로 발로하(發蘆河)를 지나고, 다시 꺾어져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급수문을 통과하면서 왼쪽으로 어초천을 지나고, 남쪽으로 월당강과 만나서 절양해가 되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또 살펴보건대, 《위략(魏略)》을 보면, “한(漢)나라가 노관(盧綰)을 연왕(燕王)으로 삼고는 격수(湨水)를 조선과 연의 경계로 하였다.” 하였다. 격수는 하내(河內)의 물 이름으로, 《춘추(春秋)》를 보면, 양공(襄公) 16년 3월에 양공이 진후(晉侯), 송공(宋公), 위후(衛侯), 정백(鄭伯), 거자(莒子), 주자(邾子), 설백(薛伯), 기백(杞伯), 소주자(小邾子)와 더불어 격량(湨梁)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이곳이 연(燕)과 조선(朝鮮)의 경계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격수는 패수(浿水)의 오자(誤字)이다. 그리고 《당서(唐書)》를 보면, 현경(顯慶) 5년(660)에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계필하력(契苾何力)이 저강(沮江), 요동(遼東), 평양(平壤)의 길로 나아갔으며, 지리지(地理志)에는 이르기를, “패강(貝江) 입구의 초도(椒島)를 지나서 신라 서북쪽을 얻었다.” 하였다. 저강(沮江)이니 패강(貝江)이니 하는 것도 패강(浿江)이 와전된 것이다.

부(附) 패수(浿水)에 대해 잘못된 것을 밝히다.

《요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동경도(東京道) 요양현(遼陽縣)은 본디 한(漢)나라의 패수현(浿水縣)이었다. ○ 패수는 또한 이하(泥河)라고도 하며, 또 헌우락(蓒芋濼)이라고도 하는데, 물에는 헌우초가 많이 자란다.
《성경통지(盛京通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어니하(淤泥河)는 해성현(海城縣) 성에서 서남쪽으로 65리 되는 곳에 있다. 살펴보건대, 《요사》를 보면, “요양현은 한나라 때 패수현으로, 그 북쪽에 패수가 있는데, 또한 어하(淤河)라고도 하며, 또 헌우락이라고도 하는데, 물 안에는 헌우초가 많이 자란다.” 하였는데, 《대명일통지》에서는 이 설을 그대로 따랐으며, 이어 또 조선의 대통강(大通江)을 패수라고 하였다. 지금 살펴보건대, 어니하는 그 근원이 성수산(聖水山)에서 나와 흘러 미진산(迷眞山)의 서쪽에 이르러서 흩어지는바, 이 물이 바로 요동 지방의 헌우락으로, 조선의 경계 안에 있는 패강(浿江)과는 같지 않다.
《사군지(四郡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계 안에는 세 개의 패수가 있는 듯하다. 그 첫 번째는 《사기》에 나오는 패수로, “위만(衛滿)이 동쪽으로 패수를 건넜다.” 하였는데, 이것은 압록강을 패수라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당서》에 나오는 패수로, “평양부의 남쪽 가는 패수이다.” 하였는데, 이것은 대동강을 패수라고 한 것이다. 세 번째는 《고려사(高麗史)》에 나오는 패수로, 평산부(平山府)의 저탄(豬灘)을 패강(浿江)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세 개의 패수이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압록강은 마자수(馬訾水)이지 패수가 아님을 밝혔는데, 이것은 제대로 된 설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문헌비고》를 보면, “압록강은 바로 마자수이다. 마자수와 패수가 동시에 낙랑군과 현도군 두 군에 나누어 보이고 있으니, 압록강이 패수가 아님은 매우 분명하다.” 하였다.- 그리고 또 《요사》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요양(遼陽)의 패수는 참으로 한(漢)나라 때의 패수이다.” 하였는데, 이것은 그렇지가 않다. 《요사》는 요양부(遼陽府)를 평양(平壤)이라고 하였으므로, 또다시 어느 한 물을 가리켜 패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요사》가 찬수되기 전에 나온 《당서》에 평양의 남쪽 가가 패수임을 분명하게 말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요사》 지리지는 태반이 두찬(杜撰)인데,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른바 고기(古記) 및 《요사》 지리지는 모두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나라의 여지(輿地)를 밝힐 수가 있다. 저탄(豬灘)을 가리켜 패수라고 한 것은, 이것은 가탁하여 이름한 것이니 따지고 말고 할 것도 못 된다. -삼가 살펴보건대, 《고려사》에서 저탄을 패수라고 한 것은, 백제의 온조(溫祚)가 북쪽으로 패강을 경계로 삼았기 때문이다. 백제의 패강은 바로 곡산부(谷山府)의 능성강(能成江)이 대동강에 합해지는 곳이다.- 그렇다면 단지 평양부의 한 패수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견이 좁아서 《사기》를 읽으면서는 문득 연(燕)과 진(秦)의 동쪽 경계가 지나치게 먼 것을 의심하고, 또 위만이 건넌 강이 대동강이 아닌 듯하다고 의심한다. 이것이 바로 세 개의 패수 설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연과 진의 동쪽 경계가 어디까지이며, 위만이 동쪽으로 건너와 어디에서 살았는지는 지금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나라 때에서 멀지 않은 시대에 나온 《수경주》나 《주서》, 《수서》, 《당서》에서 평양성의 남쪽 물을 패수라고 한 것을 정확하다고 믿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는가. -삼가 살펴보건대, 연과 진의 동쪽 경계가 대동강을 지난 것과 위만이 살았던 왕검성(王儉城)이 평양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조선조(朝鮮條)에서 상세하게 밝혔다.
○ 월당강(月唐江)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월불당강(月不唐江)은 황주(黃州) 안악현(安岳縣)의 동쪽에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큰 바다로 들어간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월불당강은 황주 안악현의 동쪽에 있는데, 그 물은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구지(舊志)를 보면, 안악현은 황주에서 남쪽으로 150리 되는 곳에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월불당강은 바로 월당강이다. 그 근원은 서흥부(瑞興府) 웅파산(熊坡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서흥부의 남쪽을 경유하여 다시 서쪽으로 흘러 봉산군의 남쪽을 경유하고서 북쪽으로 흘러 대동강과 급수문(急水門)에서 만난다.
○ 사수(蛇水) -어떤 데에는 다하(茶河)로 되어 있다-ㆍ타하(陀河)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당나라 용삭(龍朔) 2년(662)에 좌효위 장군(左驍衛將軍) 방효태(龐孝泰)가 고구려와 사수(蛇水) 가에서 싸웠는데, 싸움에 패하여 전사하였다. 소정방(蘇定方)이 평양성의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요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개태(開泰) 7년(1018)에 고려를 정벌할 적에 소배압(蕭排押)이 고려와 다하(茶河)와 타하(陀河) 두 하천 사이에서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익사한 자가 많았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사수는 평양의 서쪽 경계에 있다. 당나라 용삭 초에 방효태 등이 고구려를 칠 적에 영남(嶺南)의 군사로써 사수에서 벽을 쌓았다. 송나라 천희(天禧) 2년(1018)에 거란이 고려를 정벌할 적에 사하(蛇河)와 타하(陀河) 두 물에서 싸워 패하고서 돌아왔다. 구지(舊志)를 보면, 두 물은 모두 평양의 서북쪽에 있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사수는 그 근원이 자산부(慈山府) 웅초덕산(熊草德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요사》에서 이른 바 다하(茶河)를 《대청일통지》에서는 사수라고 하였는데, 이는 음이 비슷하여서 그런 것인가? 타하 역시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물인데, 상고할 수가 없다.
○ 발로하(發蘆河)
《신당서》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총장(總章) 2년(669)에 고구려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근행(李謹行)에게 조서를 내려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근행이 발로하(發蘆河)에서 격파하였다. 이에 평양성의 패잔병들이 쇠약해져서 서로 이끌고 신라로 도망갔는바, 4년 만에 평정된 것이다.
《자치통감》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당나라 함형(咸亨) 4년(673)에 연산도 총관(燕山道摠管) 이근행이 고구려의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호로하(瓠蘆河)의 서쪽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호삼성(胡三省)의 《자치통감》 주에 이르기를, “내가 《당서》 유인궤열전(劉仁軌列傳)을 살펴보건대, 호로하는 고구려의 남쪽 경계, 신라의 칠중성(七重城) 북쪽에 있어야 한다.” 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발로하는 평양성의 서쪽에 있는데, 당나라 때 이근행이 이곳에서 신라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발로하는 경주(慶州) 서쪽 경계에 있다. 구지(舊志)를 보면, 고구려의 남쪽 경계, 신라의 칠중성 북쪽에 있다. 당나라 함형 4년에 이근행이 호로하의 서쪽에서 고구려를 격파하였고, 함형 5년에는 유인궤가 동쪽으로 신라를 정벌하면서 군사를 거느리고 가 호로하를 끊고서 신라의 대진(大鎭)인 칠중성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발로하는 그 근원이 자산부의 자모산(慈母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순안현(順安縣)의 서쪽을 지나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평양부의 서쪽을 지나 대동강에 들어간다. 유인궤가 건넌 호로하는 바로 장단부(長湍府)의 임진강(臨津江)인바, 발로하와 혼동하여 칭해서는 안 된다. 《자치통감》에서는 발로하를 잘못 호로하라고 하였는데, 호삼성의 주(注)에서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여 유인궤가 건넌 물이라고 하였으며, 《대청일통지》에서는 또다시 잘못된 호삼성의 주를 답습하였으니, 전혀 틀렸다.
○ 청천강(淸川江) -옛날에는 살수(薩水)라고 칭하였다.
《수서》 열전(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업(大業) 8년(612)에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우문술(宇文述)이 동쪽으로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산을 의지하여 진영을 쳤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사신을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면서 우문술에게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기를 청하자, 우문술이 돌아왔다. 우문술이 살수를 건널 적에 고구려의 군사가 후군(後軍)을 습격하였다. 이에 크게 무너져서 하루 낮 하룻밤 만에 압록수(鴨綠水)에 이르렀는바, 450리를 행군한 셈이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살수는 압록강의 동쪽,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 수나라의 장수 신세웅(辛世雄)이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 청천강(淸川江)은 안주(安州)에 있는데,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옛 이름은 살수이다. -《성경통지》에 이르기를, “살수는 《대명일통지》를 보면, 압록강의 동쪽,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는바, 지금 성경(盛京)의 경계 바깥에 있다.” 하였다.
《조선부》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안주성은 아래로 살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바로 수나라 군사들이 고구려를 칠 적에 패한 곳이다. 또 청천강이라고도 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청천강은 안주성의 동쪽에 있는데,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역시 살수라고도 한다. 수나라 대업 8년에 우문술 등이 고구려를 칠 적에 압록수를 건너서 고구려의 대신인 을지문덕을 추격하였다. 우문술이 동쪽으로 살수를 건넌 다음 평양성에서 30리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산을 의지하여 진영을 쳤는데, 평양성이 험고하여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우문술이 군사를 철수하면서 살수에 이르러서 군사가 반쯤 건넜을 적에 고구려 군사의 습격을 받아 여러 군사가 모두 무너졌다. 장사(將士)들이 앞을 다투어 도망쳐 하루 낮 하룻밤 만에 압록수에 이르렀는바, 450리를 행군하였다. 지금은 대령강(大寧江)이라고도 한다. 구지(舊志)를 보면, 평양과 황주는 서쪽으로 대령강으로 막혀 있고, 동쪽은 대통강(大通江)으로 막혀 있어서 ‘양쪽 강의 중간’이라고 이른다. 본조(本朝) 강희(康煕) 37년(1698)에 조선에 흉년이 들자, 조선에서 표문을 올려 중강 개시(中江開市)를 열 것을 청하였는데, 황지(皇旨)를 받드니, “저축해 둔 미곡(米穀)을 수로와 육로로 4만 석을 운송하여 중강(中江)에 이르러서 매매하라.”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청천강과 대령강을 한 강이라고 한 것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개시(開市)를 한 중강(中江)은 바로 압록강인데, 잘못 청천강이라고 하였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안주의 서남쪽 경계에 청천강(靑泉江)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청천강(淸川江)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수구(水口)가 있다. 청천강은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한 근원은 동북쪽에 있는 영원성(寧遠城) 동북쪽의 큰 산에서 나오는데,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청천강의 정원(正源)으로, 강계부(江界府)의 갑현(甲峴)에서 나온다.- 덕천(德川)의 동북쪽 근원에서 나와 흘러서 패수로 들어가는 물과 단지 한 산을 격하여 있다. 이 물은 서남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서천성(西川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희천성(煕川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으로 지나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산기슭을 끼고 돈 다음 영변성(寧邊城)의 남쪽에 이르러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악산(岳山) -삼가 살펴보건대, 아마도 약산(藥山)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다.- 의 남쪽 기슭을 돌아 안주의 동북쪽에 이르러서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 북쪽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공포(孔浦)이다.- 은 남쪽 근원에서 북쪽으로 9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하고, 다시 서쪽으로 굽이굽이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천성의 북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여러 산의 북쪽 기슭과 이산(耳山)의 뒤쪽과 영변성의 북쪽 경계를 돈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악산의 서쪽 기슭을 돌아 남쪽 근원에서 나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공포는 그 근원이 운산군(雲山郡) 유동령(柳洞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영변부(寧邊府)를 돈 다음 남쪽으로 흘러 청천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안주성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근원에서 500리를 흘러간다. ○ 두 근원의 물은 근원에서부터 합해지는 곳까지가 400리이며, 가운데에는 단지 20여 리의 사이를 두고 산으로 막혀 있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청천강은 옛날의 살수이다. 그 근원은 강계부의 갑현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희천군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영변부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서북쪽에서 흘러온 공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안주의 북쪽을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해망(海望)의 모퉁이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부터 흘러온 대령강과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 대령강(大寧江) -혹은 대정강(大定江)이라고도 한다. ○ 박천군(博川郡)에 있는 강이다.
《조선부》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정강(大定江)은 박천군(博川郡)에 있으니, 바로 옛날에 주몽(朱蒙)이 남쪽으로 도망치다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준 곳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것은 동사(東史)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또 박천강이라고도 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박천군의 서쪽에는 대정강이 있는데, 혹 대령강이라고도 한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정강은 동북쪽에 있는 청천강(靑泉江) 북쪽 근원의 서쪽을 격해 있는 산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창성강(昌城江)으로, 그 근원이 벽동군(碧潼郡) 구계령(九階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태천현(泰川縣) 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대령강으로 들어간다.-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령강의 정원(正源)으로, 의주의 천마산(天磨山)에서 나온다.- 과 합류한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박천성(博川城)의 남쪽에 있는 백벽산(白碧山)의 남쪽을 지나 북쪽에서 흘러온 운산(雲山)의 물 -삼가 살펴보건대, 송림천(松林川)을 가리키는 듯하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구성(龜城) 동북쪽 산의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구성강(龜城江)으로, 그 근원이 구성부 팔영령(八營嶺)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태천현(泰川縣)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대령강으로 들어간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받아들인 다음 남쪽으로 흘러 큰 산의 북쪽 기슭을 돌아 가산성(嘉山城)의 남쪽 경계와 안주성의 서북쪽 경계를 지나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근원에서부터 400여 리를 흐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령강은 창성강, 구성강 등 여러 강의 물을 모은 다음 남쪽으로 흘러 청천강과 합류한다.- ○ 해구(海口)의 동남쪽은 청천강(靑泉江)과의 거리가 20리이다. 근원으로부터 흘러오면서 청천강과는 단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데 불과하다.
○ 압록강(鴨綠江) -옛날에는 마자수(馬訾水)라고 하였으며, 혹 애강(靉江), 익주강(益州江)이라고도 한다. ○ 독로강(禿魯江)을 덧붙인다.
《한서》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현도군(玄菟郡)의 서개마현(西蓋馬縣)에는 마자수(馬訾水)가 있다. 마자수는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鹽難水) -삼가 살펴보건대, 지금의 파저강(婆豬江)이다.- 로 들어가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지나는 고을이 둘이고, 1200리를 흘러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서안평현(西安平縣)은 요동군(遼東郡)에 속하며,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의 북쪽에 있다.
《신당서》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자수가 있는데, 그 근원은 말갈(靺鞨)의 백산(白山)에서 나온다. 물의 빛깔이 마치 오리 머리와 같이 푸르므로 압록(鴨綠)이라고 부른다. 강물은 국내성(國內城)의 서쪽을 지나서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안시(安市)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안평(安平)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리고 평양은 압록강의 동남쪽에 있는데, 큰 배를 타고 건너야 하므로 이를 의지하여 참호로 삼는다.
《통전(通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자수는 일명 압록강이라고도 하는데, 그 근원은 말갈의 백산에서 나온다. 물의 빛깔이 마치 오리 머리와 같이 푸르므로 압록이라고 한 것이다. 요동에서의 거리가 500리이다. 국내성의 남쪽을 지나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한 물과 합류하는데, 바로 염난수이다. 두 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의 물 가운데에서 이 물이 가장 커서 푸르고 맑은 물결이 일렁이며, 지나가는 나루에는 모두 대선(大船)을 놓아둔다. 그 나라에서는 이 강을 의지하여 천참(天塹)으로 삼는다. 물의 너비는 300보이다.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450리 되는 곳에 있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쪽으로 480리 되는 곳에 있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는 서북쪽으로 거란과 접해 있다. 압록강을 의지하여 험고함으로 삼는데, 강은 너비가 300보이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요동도사성(遼東都司城)에서 동쪽으로 560리 되는 곳에 있으며,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안시(安市)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압록수에서 무위(武威)를 뽐내었는데, 거기가 바로 이곳이다. ○ 압록강은 조선 국성(國城)에서 서북쪽으로 1450리 되는 곳에 있다. ○ 큰 강이 영주(靈州)의 동쪽에 있는데, 서북쪽으로 흘러 대통강(大通江)으로 들어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영주는 지금의 의주(義州)이고, 큰 강은 바로 압록강 하류의 별파(別派)이며, 대통강은 바로 대총강(大總江)의 음이 변한 것이다. 뒤의 안설(按說)에 상세하게 나온다.
《명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전요지(全遼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요양성(遼陽城)에서 동쪽으로 530리 되는 곳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長白山)에서 나와 협주성(夾州城)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흘러 독로강(禿魯江) -삼가 살펴보건대, 독로강은 그 근원이 함흥부(咸興府) 설한령(雪寒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강계부(江界府)의 남쪽을 경유한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흘러 위원군(渭原郡)의 북쪽을 지나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과 합류한 다음 애주(艾州)에 이르러서 파저강(婆豬江)과 함께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성경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일명 익주강(益州江)이라고도 하며, 혹 애강(靉江)이라고도 부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익주(益州)는 지금의 의주(義州)로, 중국의 음으로는 같다.- 장백산 남쪽의 여러 시냇물이 남쪽으로 모여들어 큰 강을 이루어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동가강(佟家江)과 만난 다음 다시 500리를 흘러 봉황성(鳳凰城)의 동남쪽을 돌아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동남쪽은 조선과의 경계이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길림(吉林), 오라(烏喇)에서 남쪽으로 977리 되는 곳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조선과의 경계를 나누며, 봉황성의 동남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바로 옛날의 마자수이다.
《황여고(皇輿考)》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천하에는 세 개의 대수(大水)가 있으니, 황하(黃河), 장강(長江), 압록강(鴨綠江)이 그것인데, 압록강은 또한 외이(外夷) 지역에 있다.
《조선부》 주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바로 화이(華夷)의 경계가 된다.
《향조필기(香祖筆記)》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남쪽의 장강과 북쪽의 황하 두 물줄기 외에 북쪽으로 고려에 있는 것을 혼동강(混同江)이라 하고 압록강이라 하는데, 이들은 모두 먼 변방 바깥에 있어서 우(禹) 임금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다.
《장거유서(莊渠遺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지(大地)의 산맥(山脈)은 모두 곤륜산(崑崙山)을 조산(祖山)으로 삼는데, 남쪽의 산맥과 북쪽의 산맥이 가장 크다. 북쪽의 산맥은 유연(幽燕) 지방에서 끝나는데, 대하(大河)가 이곳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 압록강과 만난다. 동쪽에는 하사(下沙)가 있는데, 이곳은 산과 물이 한 번 크게 모여 만나는 곳이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바로 옛날의 마자수이다. 그 근원은 장백산 남쪽 기슭에서 나오는데, 두 개의 근원에서 나누어 나와 합류한다. 그런 다음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소백산(小白山)에서 나온 물이 동쪽에서 와 모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왼쪽으로 조선의 북쪽 경계에서 나온 몇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인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장백산 서쪽 지역의 이어진 산들의 남쪽 기슭에서 나온 모든 물이 십이도구(十二道溝)로부터 두도구(頭道溝)에 이르기까지 모두 몰려들어 수세가 비로소 왕성해진다. -강물이 남쪽으로 흘러 조선의 사산성(謝山城) 동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건천구(建川溝)가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사산성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쪽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든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인선위(因禪衛), 낙언성(諾言城), 소진성(小辰城)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신갈이보(新噶爾堡)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남쪽에 있는 삼산성(三山城)에서 나온 한 물이 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옛 보(堡)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십이구(十二溝) 및 십일구(十一溝)의 물을 받아들이고, 남쪽으로 충천령(沖天嶺) 동쪽의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으로 십구(十溝), 구구(九溝), 팔구(八溝)의 물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으로 두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이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칠구, 육구, 오구, 사구의 물을 받아들이고, 남쪽으로 두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삼구, 이구 및 두구(頭溝)의 물을 받아들인다. ○ 삼가 살펴보건대, 사산성은 혜산진(惠山鎭)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고, 건천구는 아마도 허천강(虛川江)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며, 인선위는 인차외보(仁遮外堡)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다. 낙언성은 바로 나난보(羅暖堡)의 음이 변한 것이며, 소진성은 바로 소농보(小農堡)의 잘못된 표기이고, 신갈이보는 바로 신갈파지보(新噶坡知堡)의 음이 변한 것이다. 삼산성은 아마도 삼수부(三水府)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다. 그 ‘삼산성에서 나온 물이 와서 합류한다.’ 한 것은 아마도 장진강(長津江)을 가리키는 듯하고, 옛 보는 바로 옛 갈파지보(葛坡知堡)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모아산(帽兒山)의 동쪽 기슭을 지나 다시 남쪽으로 굽이져 흐르다가 서북쪽으로 30리를 흐른 다음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가운데에 모래밭이 있어서 서쪽으로는 이자구(李子溝)의 물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는 해낙이(該諾爾)의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으로 이하(里河)의 물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 한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만포성(滿浦城), 발등성(發登城), 고산리성(高山里城) 세 성 -삼가 살펴보건대, 발등성은 바로 벌등성(伐登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 세 진(鎭)은 모두 위원군(渭原郡)의 북쪽에 있다.- 의 서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네 개의 작은 물이 흘러와서 모인다. -그 가운데 큰 것을 백마령하(白馬嶺河)와 파성자하(破城子河)라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도로하(圖魯河)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독로강(禿魯江)의 음이 변한 것이다. 앞글에 나온다.- 가 동쪽에 있는 장걸성(張傑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강계부(江界府)의 음이 변한 것이다.- 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조금 남쪽에 마역하(馬驛河)가 있어 서쪽에서 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미원촌(未源村)의 서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오로량수(五老梁水)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위수(渭水)로, 그 근원이 강계부의 두읍령(杜邑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위원군의 남쪽을 지나서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가 동남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지고이성(地古爾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직동보(直洞堡)로, 중국음으로는 서로 비슷하다.- 이산(理山)의 서북쪽을 지나는데, 세 개의 작은 물이 서북쪽에서 와서 합류한다. -지고이성 북안(北岸)에 곧장 있는 것을 유수하(楡樹河)라고 한다. 또 그 남쪽에 작은 물이 있으며, 또 그 남쪽에 있는 것을 차구(叉溝)라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가강(佟家江)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산양공성(山陽公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산양회보(山羊會堡)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서남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금하(東金河) -삼가 살펴보건대, 아마도 동건강(童巾江)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다. 동건강은 그 근원이 초산부(楚山府)의 유도막령(踰都幕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산양회진(山羊會鎭)을 지나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가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소비성(小丕城), 대비성(大丕城), 필동성(必東城) 세 성의 서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해하(東垓河) -삼가 살펴보건대, 소비성과 대비성 두 성은 바로 소파아진(小坡兒鎭)과 대파아진(大坡兒鎭) 두 진의 음이 변한 것이고, 필동성은 벽동군(碧潼郡)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다. 동해하는 아마도 벽동천(碧潼川)을 가리키는 듯하다.- 가 동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필동성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이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소거류성(小巨流城) -삼가 살펴보건대, 소길호리진(小吉號里鎭)의 잘못된 표기이다.- 과 대수고성(大水高城), 대길로성(大吉魯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길호리진(大吉號里鎭)이다.- 의 서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창성부(昌城府)의 자잔천(自潺川)이다.- 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상주걸하(常州傑河)가 동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오등성(敖登城)과 요곽이성(遼郭爾城) -삼가 살펴보건대, 오등성은 어정진(於汀鎭)인 듯하다. 요곽이성은 바로 묘동보(廟洞堡)로, 중국음으로는 서로 비슷하다.- 과 창성(昌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객점하(客店河)가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장점하(長店河)가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면서 왼쪽으로 한 작은 물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소자가하(蘇子街河)가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왼쪽으로 한 작은 물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포서하(浦西河)가 서북쪽에 있는 대전(大甸)으로부터 흘러나와 남쪽으로 흘러 합류하며, 그 남쪽에 작은 물이 있어 흘러와서 모인다. 여기에서 숙주성(宿州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이 동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아포하(阿布河)가 서북쪽에 있는 봉황성(鳳凰城)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아포하는 바로 애합하(愛哈河)로, 그 근원이 애합변문(愛哈邊門) 바깥의 동북쪽에서 나오는데, 세 개의 근원이 합해져 서남쪽으로 흘러 유조변(柳條邊)으로 들어가 석두성(石頭城)의 서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동남쪽으로 흘러 유조변을 나가 다시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애주성(愛州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 -삼가 살펴보건대, 의주의 옥강천(玉江川)인 듯하다.- 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세 갈래로 갈라져서 20리를 흘러간 다음 다시 합해져 구련성(九連城)의 동남쪽을 지난다. -구련성은 조선의 애주성과 강안을 마주하여 경계를 나누고 있는데, 바로 강물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영아하(永阿河)가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의주의 서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합련하(哈連河)가 서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장백산(長白山)의 위치는 동경 11도 8분 북위 41도 9분이며, 강어귀의 위치는 동경 8도 북위 40도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압록강은 그 근원이 백두산의 큰 연못에서 나와 땅속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나와 혜산진(惠山鎭)을 지나고, 다시 서쪽으로 흘러 삼수부(三水府)의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옛 무창(茂昌)의 경계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꺾어져 서남쪽으로 흘러 위원군(渭原郡)의 북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독로강(禿魯江)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초산부(楚山府)의 서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파저강(婆豬江)이 새외(塞外)로부터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의주(義州)의 북쪽에 이르러서 세 갈래로 갈라져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검동도(黔同島)에 이르러 다시 합해져 하나가 된다. 청수량(淸水梁)에 이르러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한 갈래는 서쪽으로 흘러 적강(狄江) -중국 쪽에 있다.- 과 합해지고 한 갈래는 남쪽으로 흘러 대강(大江)이 된다. 이 두 갈래가 위화도(威化島)를 감싸 흐르다가 다시 합해져서 대총강(大總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 덕래하(德來河) -바로 대령강(大寧江)의 상류이다-ㆍ대매하(大梅河)ㆍ소매하(小梅河) -대매하와 소매하는 바로 압록강 상하의 요충지가 되는 진(津)이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서북계 연혁 취청천강이북지조(取淸川江以北地條)에 나온다.
○ 이하(泥河) -덕원군(德源郡)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어야 한다.
《신당서》 발해열전(渤海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신라 북계 연혁 여발해접계조(與渤海接界條)에 나온다.
○ 활녈수(活涅水) -어떤 데에는 활녜수(活禰水)로 되어 있다-ㆍ벽등수(闢登水)ㆍ을리골수(乙離骨水)ㆍ삼잔수(三潺水) -이상의 여러 물은 정평부(定平府) 등지에 있다.
《금사(金史)》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 연혁 오국성조(五國城條)에 나온다.
○ 이록고수(移鹿古水) -함흥부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금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 연혁 합라로조(合懶路條)에 나온다.
○ 복간수(僕幹水) -함흥부 이북의 지역에 있다-ㆍ주아문수(注阿門水) -정평부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다-ㆍ도온수(陶溫水) -어떤 데에는 토온수(土溫水)로 되어 있다. 마땅히 온성부(穩城府) 등지에 있어야 한다-ㆍ도롱고수(徒籠古水) -바로 종성부(鍾城府)의 오롱소수(吾籠所水)이다.
《금사》 세기(世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 연혁 여여진위계조(與女眞爲界條) 및 오국성조(五國城條)에 나온다.
○ 혼동수(渾疃水)ㆍ성현수(星顯水)ㆍ잔준수(僝蠢水)ㆍ소빈수(蘇濱水) -이상의 여러 물은 삼수부 등지에 있다.
《금사》 본기(本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 동북계 연혁 휼품로조(恤品路條) 및 오국성조(五國城條)에 나온다.
○ 알목하(斡木河)
《쌍괴잡초(雙槐雜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건주위(建州衛), 해서위(海西衛), 올자위(兀者衛) 등의 사람들은 먼저 알목하에 살면서 칠성(七姓)의 야인(野人)들과 원수 관계가 되어 조선으로 달아나 투항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알목하는 그 근원이 회령부(會寧府) 무산령(茂山嶺)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회령부의 서쪽에 이르러서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당초에 알목하 지역은 여진의 알타리부락(斡朶里部落)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조선 세종(世宗) 14년(1432)에 칠성(七姓)의 야인들이 알목하를 침공하여 맹가첩목아(孟哥帖木兒)를 살해하자, 그의 동생인 범찰(凡察) 등이 경원부(慶源府) 근처의 지역으로 옮겨 와서 살기를 원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허락하지 않고 마침내 빈틈을 타 알목하에 회령부를 설치하였다.
○ 두만강(豆滿江) -혹은 토문강(土門江), 도문수(徒門水), 통문하(統門河), 아야고하(阿也苦河), 애호강(愛滹江)이라고도 한다. ○ 팔하천(八下川)을 덧붙인다.
《금사》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열전에 이르기를, “고려가 갈라전(曷懶甸)에 9성을 수축하자, 혼탄(渾坦)이 석적환(石適歡)과 도문수(徒門水)에서 군사를 합하여 고려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금사》 석토문열전(石土門列傳)을 보면, 석토문은 한자(漢字)로는 신도문(神徒門)이라고 쓰는바, 이를 근거로 해서 보면 도문(徒門)이 토문(土門)임은 분명하다.- ○ 세기에 이르기를, “요나라에서 경조(景祖)를 생여진절도사(生女眞節度使)로 삼으니, 통문수(統門水)의 온적흔부(溫迪痕部), 신은수(神隱水)의 완안부(完顔部)가 모두 서로 뒤를 이어 와서 귀부하였다.” 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장백산 꼭대기에는 연못이 있는데, 동쪽으로 흘러 아야고하(阿也苦河)가 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토문강은 영고탑성(寧古塔城)에서 남쪽으로 600여 리 되는 곳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조선의 북쪽 경계를 감싸고 흐른 다음 다시 동남쪽으로 꺾어져서 여러 물을 모아 바다로 들어간다. 《성경통지》에 이르기를, “《대명일통지》를 보면, 아야고하가 있는데, 그 근원이 장백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지금 장백산의 물 가운데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토문강이 있을 뿐 아야고하라는 이름은 없다. 살펴보건대, 《금사》의 유가열전(留可列傳)을 보면, 유가(留可)는 통문(統門)과 혼준수(渾蠢水)가 합류하는 지역의 오고륜부(烏古倫部) 사람이다. 지금 혼춘하(渾春河)가 남쪽으로 흘러 토문강과 합해지니, 통문은 바로 토문(土門)의 음이 변한 것이다. 또 《명사》 지리지를 보면, 도문하(徒門河)가 있는데, 강물은 건주위(建州衛)의 동남쪽을 지나 100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는바, 이 강이 바로 도문하로, 아야고하와는 당연히 같은 한 물이다.” 하였다. ○ 토문강은 조선국의 서북쪽 경계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 동남쪽 기슭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양조평양록》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萬曆) 20년(1592)에 왜병들이 평양에 모여 있으면서 격문(檄文)을 보내어 조선에 고하기를, “부산에서 평양까지 오는 데 한 달도 채 안 걸렸다. 그런 데다가 풍신수길과 가등청정을 평안도에 보내어 두만강(豆滿江) 가에 이르게 하였는바, 그 일대가 모두 우리의 수중에 들어왔다.” 하였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토문강은 그 근원이 장백산 꼭대기의 동쪽 기슭에서 나오는데, 이를 토문색금(土門色禽)이라고 한다. 동쪽으로 흘러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수십 리를 흐른 다음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또 수십 리를 흐른다. 이곳에서 한 물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하고, 또 두 근원이 합해진 한 물이 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하는데, 이 두 물은 모두 장백산의 지봉(支峯)에서 나오는 물이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 한 물이 있어 두 근원의 물을 합하여 서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이 물 남쪽은 바로 조선국이다.- 여기에서 꺾어져 동북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남쪽 둔치로 작은 물 두 개와 큰 물 하나를 받아들인다. -두 개의 작은 물은 모두 증산(甑山) 북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100리가량을 흐른다. 하나의 큰 물은 홍단하(洪丹河)라고 하는데, 그 근원은 서남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세 연못에서 근원하는 물을 합하여 동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른 다음,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한 작은 물을 합한 다음 다시 북쪽으로 흘러 증산의 동쪽 기슭을 지나고 다시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홍단하는 바로 홍단하(紅丹河)의 잘못된 표기이다.- 여기에서 조금 동쪽에 아궤개토문(阿几个土門)이 있어 서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합한 다음 동남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아궤개색금(阿几个色禽)은 장백산 산꼭대기에서 동북쪽으로 10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 있다. 그 서쪽은 바로 이아모색금(泥牙母色禽)과 이아고색금(泥牙庫色禽)인데, 서북쪽으로 흘러 송화강(松花江)이 되는 물이다. 이 물은 산 동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는데, 두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이 합해진 한 물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동남쪽으로 100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가는데, 역시 토문강의 별원(別源)이다.- 여기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100리를 흐르며 남쪽 둔치에서 두 개의 물을 받아들인다. -한 물은 어순하(魚順河)라고 하는데, 남쪽으로부터 두 근원에서 나온 물을 합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한 물을 합하여 300여 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또 한 물은 파하천(波下川)이라고 하는데, 세 근원에서 나온 물이 합해져 북쪽으로 굽이굽이 2백 수십 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파하천은 바로 팔하천(八下川)으로, 그 근원이 회령부(會寧府) 원산(圓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르다가 회령부성 북쪽으로 지나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큰 산의 동쪽 기슭에 이르러 꺾어져 북쪽으로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온 두 개의 물을 받아들이는데, 그 동쪽 언덕에는 조선의 무산성(茂山城)이 있다. 여기에서 꺾어져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을 받아들이는데, 그 동쪽 언덕에는 조선의 양옹성(良雍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양영보(梁永堡)의 음이 변한 것이다.- 이 있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동북쪽으로 평지(平地) 가운데를 1백 수십 리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오는 물 세 개를 받아들이는데, 그 동남쪽 언덕에는 바로 조선의 방산보(方山堡) 및 회령(會寧), 고령(高岭)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고령진(高嶺鎭)이다-, 왕탄(王坦)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방원보(防垣堡)의 잘못된 표기이다.- 종성(鍾城), 동관(潼關), 옹대(雍大)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영달보(永達堡)의 음이 변한 것이다.- 등 일곱 성이 있는데, 모두 강가에 있다. 이곳에서 한 작은 물이 서북쪽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 북쪽 언덕에서 큰 산의 남쪽 기슭에 이르기까지 사이에는 갈합리하(噶哈里河)가 있다. 갈합리하는 북쪽의 흥안령(興安嶺) 서남쪽 기슭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여러 물을 합한 다음 꺾어져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복아합토하(卜兒哈兔河)를 합하고,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하는데, 이 역시 큰 하천이다. 이곳과 마주한 남쪽 둔치에 바로 조선의 온성(穩城)이 있다. -갈합리하는 흥안령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합하고, 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 합달하(哈達河)가 있어, 서북쪽에 있는 마아호리령(馬兒呼里嶺)의 큰 산에서 나와 몇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을 합한 다음 동남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활혼산(活渾山)에서 나온 애의육하(艾衣六河)를 합한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활궤하(活几河) 및 동쪽에서 흘러오는 살기고하(薩其庫河)를 받아들이고,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살극득향령(薩克得享嶺)의 부아합하(付兒哈河)를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합순하(哈順河)를 받아들인다. 갈합리하는 근원에서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미 400여 리를 흘러왔는데, 이곳에서 다시 복아합토하가 서쪽에서 와서 합해져, 두 개의 큰 물이 와서 모이는 것이다. ○ 갈합리하는 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토문강과 합류한다.- 토문강은 여기에서 꺾어져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세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인다. -한 물은 이름이 없고, 한 물은 호란하(呼蘭河)라고 하고, 한 물은 미첨하(米瞻河)라고 한다.- 여기의 남쪽 둔치에는 조선의 미천진성(美踐鎭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미전진성(美錢鎭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 있다. 여기에서 꺾어져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 또 동영액하(東英額河)가 있어 흘러 와서 합류한다. 이곳의 서쪽 둔치에는 바로 조선의 순진성(循鎭城)이 있고, 남쪽은 경원부성(慶源府城)이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휘춘촌(輝春村)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혼춘촌(渾春村)이다.- 의 서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휘춘하(輝春河)가 있어 동북쪽에서 나와 10여 개의 물을 합한 다음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휘춘하는 동북쪽에 있는 여러 산속에서 나와 서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우비첨사리하(牛非尖舍利河)와 서쪽에서 흘러오는 부답족혼하(夫答足渾河)를 합한다. 그런 다음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면서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서백하(西白河)와 서북쪽에서 흘러오는 심계랍고하(心鷄拉庫河)를 합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합이달산(哈爾達山)의 물 및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 남쪽에서 흘러오는 호로하(虎魯河), 이아하(你牙河), 하화리하(下禾里河)를 합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합달하(哈達河), 늑특하(勒忒河)를 합하고, 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합달하를 합한다. 그러고는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토문강은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100리를 흐르면서 조선의 서쪽 언덕에서 흘러오는 물 두 개를 받아들인다. -한 물은 경원부(慶源府)의 남쪽 물로, 서남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가고, 한 물은 전원포(前元舖) 앞 물로,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가는데, 길이가 100여 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경원부의 남쪽 물은 바로 오룡천(五龍川)으로, 그 근원이 회령부(會寧府)의 갈성령(葛城嶺)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건원보(乾原堡)에 이르러서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전원포(前元舖)는 바로 안원보(安原堡)의 잘못된 표기이다.- 여기에서 꺾어져 남쪽으로 20리를 흐른 다음 다시 꺾어져 동쪽으로 흐르면서 남쪽 둔치의 한 물 -바로 아산포(阿山舖)의 남쪽에 있는 한 물로, 길이가 1백 수십 리이다.- 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동북쪽으로 20여 리를 흐르면서 -바로 오아곤산(烏兒滾山)의 남쪽에서 80리쯤 되는 곳이다.- 동쪽 둔치에는 무산성(茂山城)이 있는데 -삼가 살펴보건대, 무산(茂山)은 아마도 중국쪽의 성 이름인 듯하다.- 북쪽의 물을 받아들인다. 이 물 이름은 서수락천(西水洛川)으로, 그 근원이 동원(東源) -삼가 살펴보건대, 동해(東海)로 되어야 한다.- 가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물 두 개를 받아들이고, 다시 북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무산성의 동쪽을 지난 다음 꺾어져서 무산성 북쪽으로 지나서 서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또 북쪽에 한 물이 있는데, 이름은 없으며, 그 남쪽 둔치의 물굽이진 곳에 바로 조선의 경흥성(慶興城)이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큰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海口)의 위치는 동경 14도 5분, 북위 42도 5분이다. 해구의 남쪽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그 동쪽에 있는 하나의 산이 바로 대도살합(代都薩哈)이다. 또 동쪽으로 수십 리 되는 곳이 바로 서사하도(西思河島)이다. 섬과 산의 북쪽은 바로 화탁화하(火擢火河)의 해구이다. 이 강은 근원에서부터 1000여 리를 흐르는데, 서쪽 둔치의 경흥성에서 남쪽 물가까지를 색봉파(索鳳坡)라고 하고, 다시 남쪽으로 대해구(大海口)까지를 서수락성(西水洛城)이라고 한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토문강, 도문강, 통문강, 두만강은 모두 한 강으로, 음이 변한 것이다. 《대청개국방략(大淸開國方略)》을 보면, 장백산은 압록강, 혼동강(混同江), 애호강(愛滹江) 세 강의 물이 나오는 곳이라고 하였다. 애호강은 바로 《대명일통지》에서 말한 아야고하(阿也苦河)가 음이 변한 것으로, 역시 두만강이다. 두만강의 근원은 백두산의 남쪽, 갑산부(甲山府)의 천평(天坪)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무산부의 서쪽으로 지나고 회령부의 경계에 이르러서 오른쪽으로 알목하(斡木河)와 팔하천(八下川)을 지난다. 여기에서 꺾어져 북쪽으로 흘러 온성부의 북쪽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갈합리하(葛哈里河) -중국쪽 지역에 있다.- 를 지나고,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경원부(慶源府)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후춘강(後春江) -바로 혼춘하(渾春河)로, 중국쪽 지역에 있다.- 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오룡천(五龍川)을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동쪽으로 흘러 경흥부의 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 합란하(合蘭河)
《원사(元史)》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합란부(合蘭府), 수달달로(水達達路) 등지에 5개의 군민만호부(軍民萬戶府)를 설치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호리개(胡里改)로, 이곳에는 호리개강(胡里改江)과 혼동강(混同江)이 있으며, 또 합란하(合蘭河)가 있어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호리개는 금나라의 호리개로(胡里改路)로, 지금 우리나라 육진(六鎭) 북쪽, 영고탑(寧古塔) 동쪽 지역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연혁 합란부조(合蘭府條)에 상세하게 나온다.- 호리개강은 바로 오소리강(烏蘇哩江)이다. 지금 육진 북쪽의 물로써 스스로 바다에까지 도달하면서 크기로도 오소리강과 나란히 칭할 만한 강으로는 두만강이 있을 뿐이다. 그런즉 합란하는 바로 두만강인 듯하다.
부(附)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북쪽인 달단(韃靼)과의 경계 지역에 큰 강이 있는데, 이름을 보려천(保呂川)이라고 하며, 그 너비가 15리이다. 매년 8월에서 3월까지는 강물이 굳게 얼어 강을 메우는데, 얼음의 두께가 세 자 남짓이나 되어 육지에서와 같이 배 밑에 수레바퀴를 달아 밀고서 다닐 수가 있으며, 사람들은 신발 바깥쪽에 못을 박고서야 걸어다닐 수가 있다. 3월 이후에는 얼음이 풀려서 다시 큰 강이 된다. -삼가 살펴보건대, 보려천은 두만강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너비가 15리나 된다고 한 것은 망녕된 것으로, 상고할 수가 없다.


 

[주D-001]그 동쪽의 바닷물은 : 원문에는 ‘其東南海水’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其東面海水’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2]수구가 …… 있다 : 원문에는 ‘縣海中有島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懸海中有島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하도 같다.
[주D-003]우선산(遇仙山) : 원문에는 ‘右仙山’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4]여도(㻌島) : 원문에는 진도(鎭島)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5]및 …… 다음 : 원문에는 ‘之延山城之南’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及延山城之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6]홍천현(洪川縣) : 원문에는 홍주현(洪州縣)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7]칠중성(七重城) :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積城)이다. 칠중성은 진평왕(眞平王)과 선덕왕(善德王) 때 신라 북경(北境)의 요충지로써 신라와 고구려 간 교통로의 중심이었다.
[주D-008]무협(巫峽) : 양자강의 상류에 있는 세 협곡 가운데 하나로, 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주D-009]성산(成山) :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동쪽 끝에 있는 산동성 영성현(榮成縣)이다. 성산(城山)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주D-010]주류성(周留城) : 지금의 충청남도 한산(韓山) 지방에 있던 백제의 성으로, 지라성(支羅城)이라고도 한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금강(錦江) 하류의 한산 부근에 있는 건지산성(乾至山城)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주D-011]백촌강(白村江) : 《당서》에는 백강(白江), 《삼국사기》에는 기벌포(伎伐浦)로 되어 있다. 강경(江景) 근처의 금강(錦江)이라는 설과 변산반도(邊山半島) 남쪽의 줄포만(茁浦灣)이라는 설이 있다.
[주D-012]서남쪽으로 …… 지나 : 원문에는 ‘西南流經黃磵縣山’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西南流經黃磵縣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3]또다시 …… 이르러서 : 원문에는 ‘又西南置燕岐縣之南’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又西南至燕岐縣之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4]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 : 원문에는 ‘兩朝平壤錄’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하도 같다.
[주D-015]임천(瀶川) : 원문에는 ‘臨川’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6]아리나예하(阿利那禮河) : 낙동강(洛東江)이나 알천(閼川)이라는 설이 있으나, 반드시 고유명사로 보이지는 않고 대하(大河), 대수(大水)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인 듯하다.《韓國學基礎資料選集 古代篇, 227쪽 주》
[주D-017]요동고새(遼東故塞) : 이병도(李丙燾)는 요동고새는 바로 번한새(番汗塞)라고 하였다.《韓國古代史硏究 71쪽)》
[주D-018]공지(空地)인 상장(上障)과 하장(下障) : 이병도는, “공지는 일종의 완충 지대로서, 인민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은 까닭에 공지라 한 것이다. 그리고 상하장(上下障)은 상하 두 곳의 장새(障塞)를 말한 것으로, 상장은 번한새(番汗塞), 즉 박천(博川)을 말한 것이고, 하장은 열수(列水), 즉 대동강(大同江) 북안(北岸)에 비정(比定)되어야 한다.” 하였다.《韓國古代史硏究 71~72쪽》
[주D-019]600리 : 60리의 잘못된 표기이다. 《수서(隋書)》에는 60리로 되어 있다.
[주D-020]다시 …… 이르는데 : 원문에는 ‘又西經南至三和城東南’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又西稍南至三和城東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1]격수(湨水) : 패수(浿水)의 잘못된 표기이다. 패수는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그 위치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서로 달라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패수의 위치에 대해, 안정복(安鼎福)은 대동강으로, 정약용(丁若鏞)은 압록강으로, 이병도(李丙燾)는 청천강으로, 북한의 학자들은 대릉하(大凌河)로 비정하여 일정하지 않다.
[주D-022]이곳이 …… 말인가 : 원문에는 ‘河與於燕朝鮮之界耶’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何與於燕朝鮮之界耶’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3]다하(茶河)와 타하(陀河) 두 하천 : 이에 대해서 김상기(金庠基)는, “이는 고려 측의 기록에 보이는 석천(石川) 즉 지금의 황화천(皇華川)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하와 타하 두 강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다타이(茶陀二)의 이(二)를 숫자로 본 데서 나온 착오이다.” 하였다.《高麗時代史 99쪽 주》
[주D-024]살수(薩水) : 오늘날의 청천강(淸川江)이다. 북한의 《조선전사》에는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라 소자하라고 하였다.《조선전사 제3권, 244쪽》
[주D-025]중강 개시(中江開市) : 의주(義州)의 건너편인 중강(中江), 즉 지금의 마자대(馬子臺)에서 열었던 중국과의 무역을 말한다. 임진왜란 중에 기황(飢荒)을 계기로 요동의 미곡(米穀)을 수입하기 위하여 선조 26년(1593)에 처음 열었으며, 난이 끝나고 선조 34년(1601)에 폐지하였다. 다음 해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다시 열었으며,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폐지하였다. 그 뒤 청나라가 개국하자 인조 24년(1646)에 다시 열었는데, 이를 중강 후시(中江後市)라 한다.
[주D-026]유가열전(留可列傳) : 원문에는 ‘有可傳’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7]홍단하(紅丹河) : 원문에는 ‘洪丹’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8]심계랍고하(心鷄拉庫河) : 원문에는 ‘心難拉庫河’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지리고(地理考) 14 원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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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고(地理考) 14
산수(山水) 2 경내(境內)의 수(水)


○ 바다 -제수(諸水)의 총설(總說)을 덧붙인다.
《수도제강(水道提綱)》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국(朝鮮國) -지형은 정북쪽의 장백산(長白山)에서 산맥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전라도의 경계를 지나 서남쪽으로 바다에 닿았으며, 일본의 대마도(對馬島) 등 여러 섬이 바다의 동남쪽에 널려 있으면서 경상도의 부산(釜山)과 마주 바라보고 있다.- 은 동쪽, 서쪽, 남쪽의 삼면이 모두 바다에 닿아 있으며, 남북은 길고 동서는 좁다. -북쪽으로는 동경(東經) 11도(度) 4분(分), 북위(北緯) 42도가 약간 못 되는 장백산으로부터 남쪽으로는 동남쪽 모퉁이의 바다에 있는 대마도와 서남쪽 모퉁이의 바다에 있는 한라산(漢拏山)까지에 이르는데, 북위는 34도이다. 그러나 그 실제 지역은 바닷가에 있는 진해성(鎭海城)과 고성(固城)으로, 북위가 34도 4분인바, 거리가 7도 반으로 1870여 리이다. 서쪽으로는 동경 8도, 북위 40도인 압록강(鴨綠江) 해구(海口)로부터 동북쪽으로는 동경 14도 반, 북위 42도 반인 토문강(土門江) 입구에 이르는바, 거리가 6도 반으로, 1600여 리이다. 왕경(王京)에서 동쪽으로는 동경 12도 6분, 북위 37도 5분인 양양(襄陽)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동경 9도, 북위 37도 4분인 강화도(江華島)에 이르는바, 동서 간의 거리는 900리이며, 양쪽 모두 바다에 닿아 있다. 오직 남쪽 경계만이 조금 넓은데, 그 동남쪽 모퉁이의 동경 13도 8분, 북위 35도 3분인 좌수성(左水城)에서부터 서남쪽 모퉁이의 동경 8도 6분, 북위 34도 7분인 무안성(務安城)까지는 거리가 1300여 리이다.- 토문강(土門江) 남쪽 둔치에서부터가 조선의 동북쪽 경계이다. -나라에서 동북쪽으로 가장 먼 곳은 경원부(慶源府)의 서북쪽에 있는, 동경은 13도를 넘어 14도에 가깝고, 북위는 42도 조금 넘는 온성(穩城) 및 미천진성(美踐鎭城)이고, 가장 동쪽에 있는 곳은 경원부 동남쪽에 있는 경흥성(慶興城) 및 이봉파(李鳳坡)로, 동경 14도 5분, 북위 42도 5분인 토문강 입구에 해당된다. 또 남쪽은 해안에 있는 서수락성(西水洛城)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미천진(美踐鎭)은 바로 미전진(美錢鎭)의 잘못된 표기이다. 동북쪽의 여러 물줄기가 모여서 토문강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토문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바다는, 토문강 입구에서 이봉파(李鳳坡) 동쪽을 경유하여 조금 남쪽으로 가면 서수락성(西水洛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서수라성(西水羅城)의 음이 변한 것이다.- 이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간 다음, 또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가면 큰 산의 기슭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200리가량 가다가 꺾어져서 남쪽으로 굽이굽이 300여 리를 간 다음, 다시 꺾어져서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서 조금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간다. 여기에서 비로소 꺾어져서 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단천성(端川城)의 동쪽을 지난다. -동경 12도 6분, 북위 40도 7분이다. 서수락성에서 이곳까지는 바닷가에 성곽이 없고 큰 산이 많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다. 단천에 이르러서야 조금 넓어지는데, 그 동쪽의 바닷물은 맑고 깨끗하여 10여 길 아래까지 훤히 들여다보여 다른 곳의 바다와는 다르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하나의 소수구(小水口)가 있다. -한 물은 단천에서 서북쪽으로 30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중간에 세 개의 근원에서 나오는 물과 합해져 동남쪽으로 200리를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단천부(端川府)의 남대천(南大川)으로, 근원은 원산(圓山)에서 나와 가덕천(加德川)과 합류하여 단천부의 치소 남쪽에 이르고, 또다시 서쪽에서 흘러온 복대천(福大川)과 합류한 다음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가다가 이성(利城)의 동쪽을 지나 -이성의 서쪽에 회산(檜山)과 성대산(聖代山)이 있다.- 또다시 남쪽으로 가면 북청성(北靑城) 북쪽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성대산 서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세 개의 물이 합해져서 동남쪽으로 2백 수십 리를 흘러 북청성 동북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낙강(洛江)으로, 근원이 성대산(聖代山)에서 나온다. 또 하나의 물이 회산에서 나오고 하나의 물은 성의산(聖義山)에서 나와 합류하여 북청부의 동쪽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면 홍원성(洪源城) -삼가 살펴보건대, 홍원성(洪原城)으로 되어야 한다.- 동쪽의 소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요원수(要原水)로, 근원이 북청부의 중산(中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홍원현(洪原縣) 동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수구가 있는 앞바다에는 도서(島嶼)가 있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입원산(入元山)의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면 함흥성(咸興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오는 두 개의 물이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정평현(定平縣)의 북쪽 경계를 지나며,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도안산(道安山)의 동쪽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성천강(城川江)으로, 근원이 함흥부의 낙림산(樂林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에서 흘러온 원천(元川)과 합류한 다음,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영흥성(永興城) 동북쪽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근원이 두 개인데, 하나는 서북쪽으로 정평현 서쪽에 있는 비백산(鼻白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흐른다. 여기에서 양덕(陽德)의 우선산(遇仙山) 동쪽에서 흐르는 물이 서쪽에서 와서 합해진 다음, 동쪽으로 흘러 영흥의 북동쪽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용흥강(龍興江)으로, 근원이 영흥부의 철옹산(鐵瓮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면서 오른쪽으로는 운곡천(雲谷川)의 물을 합하고 왼쪽으로는 요덕천(耀德川)과 비류천(沸流川)의 물을 합한 다음, 영흥부의 북쪽을 경유해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우선산(遇仙山)은 어느 산인지 상세하지 않다.- 수구가 있는 앞바다에는 바로 화도(花島), 사도(沙島)가 있으며, 그 동쪽에는 웅도(熊島), 연도(連島)가 있고, 그 동남쪽에는 신도(薪島), 묘도(卯島), 저도(猪島), 국도(國島)가 있어서 원근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다. -연도는 홍원의 동쪽에 있는데 가장 북쪽에 있으며, 묘도는 조금 큰데 가장 동쪽에 있으며, 국도는 가장 남쪽에 있다. 나머지 섬들은 모두 함흥이나 영흥과 가까운 바다에 있다. ○ 삼가 살펴보건대, 묘도는 아마도 난도(卵島)의 글자가 잘못된 듯하다.- 바다는, 영흥의 동북쪽에 있는 수구에서 동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대박산(大博山) 북쪽의 평지(平地)를 지나고, -여기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이 바로 국도(國島)이다.- 또다시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고원성(高源城) -삼가 살펴보건대, 고원성(高原城)으로 되어야 한다.- 동쪽을 지난다. -동경 12도 5분, 북위 39도이다.- 여기에서 또 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문천성(文川城) 동북쪽의 경계에 소수구가 있다. -물은 큰 근원이 두 개인데, 문천성 서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하나는 동남쪽으로 흐르고 하나는 동쪽으로 흘러 100여 리를 가다가 합해진 다음, 동쪽으로 흘러 반룡산(盤龍山)과 문천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10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문천의 배기이천(配岐伊川)을 말한 것인 듯한데, 용흥강과 합류하는 물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간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덕원성(德源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안변성(安邊城) 동북쪽의 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으로 평강성(平康城) 동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검화산(劍華山) 남쪽, 황룡산(黃龍山) 북쪽을 지나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안변성의 북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안변부의 남대천(南大川)이다. 그 근원이 평강(平康)의 분수령(分水嶺)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안변의 북쪽에 이르러서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가면 흡곡성(歙谷城)과 통천성(通川城) 동쪽을 지나고, -남북 간의 거리가 모두 50리이다.- 조금 남쪽으로 가면 고성(高城) 동북쪽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추지령(秋池嶺)의 남쪽 기슭에서 나와 동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추지령은 추지령(楸池嶺)으로 되어야 한다.- ○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가면 금성(金城)의 동쪽을 지나고, -금성의 서쪽은 바로 금성산(金城山)이며, 금성산의 서쪽은 바로 회양성(淮陽城)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회양부는 금성의 동쪽에 있는바, 여기에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양양성(襄陽城)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두사산(頭蛇山)이 있는데, 수구가 있다. -두사산은 바로 금성산 남쪽에 있는 행간산(行幹山)이다. 그 서쪽은 바로 금강산(金岡山)이며, 또 그 남쪽은 장산(張山)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두사산은 두타산(頭陀山)으로 되어야 한다. 두타산의 물이 서쪽으로 흘러 소양강(昭陽江)에 합해지는바, 여기에서 양양의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금강산은 마땅히 금강산(金剛山)으로 되어야 한다. 금강산은 두타산의 동쪽에 있는바, 여기에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역시 잘못된 것이다. 장산은 어느 산인지 상고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강릉성(江陵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삼섭포(三涉浦) -삼가 살펴보건대, 삼척포(三陟浦)로 되어야 한다.- 의 동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울진성(蔚珍城)의 동쪽을 지나게 되는데, 그 동남쪽 바다 건너에는 천산도(千山島) -삼가 살펴보건대, 우산도(于山島)로 되어야 한다.- 가 있으며, 완릉도(菀陵島)라고도 한다. -동경 130도, 북위 36도 8분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평해성(平海城) 동남쪽을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에 있는 봉화성(奉化城)의 동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두 개의 근원이 합해져서 동쪽으로 10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는 바로 천산도가 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영해성(寧海城) 동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에 있는 예안성(禮安城) 동쪽의 백석산(白石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영덕성(盈德城) 동남쪽으로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쪽에 있는 진보현(眞寶縣) 동쪽의 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영덕성의 남쪽에 이르러서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오포(烏浦)로 들어가는 영덕현의 오십천(五十川) 하류를 가리키는 것인 듯하다. 직보현(直寶縣)은 마땅히 진보현(眞寶縣)으로 되어야 한다.- 이곳의 남쪽 해안은 청하성(淸河城)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흥해성(興海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연일성(延日城)의 동남쪽을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서남쪽에 있는 영천성(永川城) 동쪽의 모자산(母子山)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보현산(普賢山)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연일성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연일의 남쪽 해안은 장로일성(長老日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장기성(長鬐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지역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좌병성(左兵城)의 동쪽 경계를 지나고,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태화강(太和江)이다. 태화강조에 상세하게 나온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소수구가 있다. -바로 양산성(梁山城) 북쪽에 있는 산에서 나오는 물로,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가면 좌수성(左水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다가 -조선 경계의 동남쪽 끝모서리인데, 동경 14도가 약간 못 되고, 북위 35도 2분이 조금 넘는다.-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또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동남쪽 모서리가 끝나는 지역이 된다. -동경 14도가 조금 못 되고, 북위 34도 9분이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3백 수십 리 되는 바다 건너편에 대마도(對馬島)가 있는데, 큰 섬이다. -대마도의 모양새는 서북쪽으로부터 비스듬하게 굽었으며, 서남쪽은 뾰족하고 길면서 안으로 굽었다. 그 가운데에는 가지가 있어서 서쪽으로 꺾여 큰 칼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북쪽 뾰쪽한 곳부터 서남쪽 뾰족한 곳까지에는 긴 산이 죽 뻗어 있어서 마치 등뼈와도 같다. 길이가 300리가량 되고, 너비는 가운데는 100리이고 앞부분과 뒷부분은 수십 리이며, 뾰족한 곳은 10여 리이다. 동경 14도, 북위 33도 8분에서부터 동경 15도가 약간 못 되고, 북위 34도 4분까지 이른다. 대개 조선 동남쪽 해방(海防)의 요충지로, 서북쪽으로는 절영도(絶影島) 및 동래현(東萊縣)과 정면으로 마주해 있고, 서남쪽으로 김해(金海)의 동쪽에 있는 대수구(大水口)까지가 400리가량 된다.- 바다는, 좌수성의 동남쪽 지역에서 비로소 서쪽으로 꺾인다. 서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기장성(機長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바로 기장 서쪽 경계의 물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면 동래성(東萊城)의 남쪽을 지나는데, 동래성의 남쪽에서 30리 되는 해안이 바로 부산이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절영도가 있다. -해안에서 30리 떨어져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김해성(金海城)의 동쪽에 대수구가 있다. -동경 13도, 북위 34도 6분이다.- 이것은 조선 동남쪽의 큰 하천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낙동강(洛東江)으로, 낙동강조에 상세하게 나온다.- ○ 바다는, 김해성 남쪽에서 서쪽으로 100리를 가면 웅천성(熊川城) 남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수십 리나 되는 큰 섬이 있는데, 가덕(加德)과 천성(天城)이라고 한다. -서로 간의 거리가 50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가덕과 천성은 바로 두 진의 이름으로, 모두 가덕도(加德島) 안에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창원성(昌原城) 남쪽 경계 및 우병성(右兵城) 남쪽을 지난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큰 섬이 있는데, 영등도(永登島)라고 한다. -섬은 길이가 70리이고 너비가 30리이다. 섬의 동쪽을 우수영(右水營)이라 하고 섬의 서북쪽을 거제(巨濟)라 하며, 섬의 남쪽은 지설포(知泄浦)이다. 역시 조선 남방(南防)의 요충지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거제도로, 영등(永登)은 바로 섬 안에 있는 진(鎭) 이름이다. 지설포는 지세포(知世浦)로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진해성(鎭海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100여 리를 가면 사천(泗川)의 남쪽 경계에 있는 고성(固城)의 남쪽을 지난다. 또다시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곤양성(昆陽城) 남쪽을 지난다. 또다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큰 섬이 있다. -섬 주위를 돌자면 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가고, 다시 동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며, 여기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동북쪽으로 간다. 한 뾰족한 부분은 북쪽 해안을 향하여 있고, 한 뾰족한 부분은 남쪽을 향하여 있다. 너비는 100리이고, 길이는 80리이며, 섬 가운데는 50리이다. 북쪽에 있는 것을 남해성(南海城)이라 하고, 서쪽에 있는 것을 진조항(珍助項)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것을 평산포(平山浦)라고 한다. 북쪽 해안까지의 거리가 30리이고, 서북쪽으로는 하동성(河東城)까지의 거리가 50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큰 섬은 바로 남해부(南海府)로, 남해부는 섬 안에 있다. 진조항은 미조항(彌助項)으로 되어야 한다. 미조항 및 평산포는 모두 섬 안에 있는 진 이름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하동성(河東城)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두치강(豆恥江)으로, 두치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100리를 가면 좌수성의 남쪽에서 조금 서쪽을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북쪽에 있는 낙안성(樂安城)의 동북쪽 송경산(松京山) 기슭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송경산은 바로 송광산(松廣山)의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흥양성(興陽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가면 천관산(天冠山)의 수구가 있다. -천관산은 흥양성 서북쪽에 있는 낙안(樂安) 및 보성(寶城)의 남쪽에 있다. 물은 천관산의 서북쪽 기슭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장흥성(長興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병성(兵城)의 동남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길이는 수십 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예양강(汭陽江)으로, 그 근원이 나주(羅州)의 쌍계산(雙溪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장흥부를 감싼 다음, 서쪽으로 흘러 강진현(康津縣)의 남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병성(兵城) 및 강진성(康津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해남성(海南城)을 지난다. 또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하나의 수구가 있다. -물은 동북쪽에 있는 창평(昌平)의 동북쪽 큰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광주(光州)의 남쪽 경계를 지나 무목산(無木山)의 북쪽에 이른다. 또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있는데, 서북쪽에 있는 정읍(井邑) 서쪽의 용잠산(龍岑山) 남쪽 언덕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 무목산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화순(和順) 남쪽과 능주(綾州)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흘러 영암(靈巖)의 북쪽을 지난다. 또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있는데, 능주의 남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우수성(右水城)의 서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가다가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넓어서 수십 리나 된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호강(沙湖江)이다. 사호강은 근원이 담양부(潭陽府)의 용천산(龍泉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광주의 동쪽에 이르러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황룡천(黃龍川)과 만나는데, 이것이 바로 이른바 정읍의 서쪽에서 온다고 하는 물이다.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나주(羅州)의 치소(治所)를 감싼 다음, 또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영암의 북쪽에 이르러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덕진포(德津浦)의 물과 합류한다. 이것이 이른바 능주의 남쪽 산에서 온다고 하는 물이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무목산은 바로 무등산(無等山)의 잘못된 표기이고, 용잠산은 바로 용천산(龍泉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곳 해구(海口)에서 서남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을 흑산도(黑山島)라고 하며, 그 남쪽에 있는 조금 큰 섬을 여도(㻌島) -삼가 살펴보건대, 진도(珍島)의 잘못된 표기이다.- 라고 한다. 또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먼 곳에 가장 큰 섬이 있는데, 제주도(濟州道)라고 한다. -흑산도는 해구의 서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남해성(南海城) 해안과의 거리가 100리이며, 북쪽으로 무안(務安)의 남쪽 해안과의 거리가 50리이다. 모양새가 거위알처럼 생겼는데, 가운데에 흑산(黑山)이 있으며, 둘레가 50여 리이다. ○ 진도는 흑산도에서 동남쪽으로 50리 되는 곳에 있으며, 남해성 해안과의 거리가 90리이다. 모양새가 길면서도 네모지게 생겼다. 남쪽에 금이산(金伊山)이 있으며, 그 북쪽을 남도포(南桃浦)라고 한다. 둘레가 100리가량 된다. ○ 삼가 살펴보건대, 여도(㻌島)는 진도(珍島)로 되어야 한다. 금이산은 바로 금갑(金甲)의 글자가 잘못된 것으로, 이는 섬 안에 있는 진(鎭) 이름이다. ○ 제주도는 진도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되는 곳에 있으며, 남해성 해안과의 거리가 1백 수십 리이다. 모양새는 세모지게 생겼으며, 동서 간의 거리가 130리이고, 동남쪽에서 서북쪽까지의 거리는 100여 리이고, 북쪽에서 서남쪽까지는 90여 리이다. 섬 가운데에 한라산(漢拏山)이 있으며, 북쪽을 제주(濟州)라 하고, 동남쪽을 정의(旌義)라 하고, 서쪽을 대정(大靜)이라 하는데, 조선의 서남쪽 바다를 방비하는 요충지이다. 동경은 4도 5분에서 9도 약간 못 미치는 데까지 이르고, 북위는 34도에서 34도 3분까지 이른다.- ○ 해구(海口)의 서쪽에는 무안성(務安城) 남쪽 경계인데, 조선 서남쪽의 모퉁이 지역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꺾어져서 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무안성 서쪽을 지나고, 또다시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산기슭을 지나며,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남평성(南平城) -삼가 살펴보건대, 함평성(咸平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서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소수구가 있다. -물은 동북쪽에 있는 용잠산(龍岑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장성(長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이 물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는바, 본문이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무장성(茂長城) 서쪽을 지나고, 또다시 북쪽으로 가다가 조금 길게 꺾어져서 서쪽으로 간 다음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고창성(高敞城) 서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조금 굽어들면 부안성(扶安城) 서쪽 경계를 지나며, 조금 북쪽으로 가면 수구가 있는데, 바로 옥구성(沃溝城) 서남쪽 경계이다. -물은 근원이 두 개이다. 남쪽 근원의 물은 동남쪽에 있는 추월산(秋月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금구성(金溝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만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고부성(古阜城)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만전성(萬塡城)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부안(扶安)의 북쪽 경계를 지나서 북쪽 근원에서 나오는 물과 만난다. ○ 북쪽 근원의 물은 추월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김제성(金堤城)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임피(臨陂) 남쪽과 만전성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부안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남쪽 근원에서 나오는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의 길이는 300여 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남쪽 근원의 물은 바로 동진강(東津江)으로, 근원이 정읍현(井邑縣)의 내장산(內藏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김제에 이르러서 태극포천(太極浦川)의 물과 만나 만경(萬頃)의 남쪽 경계를 지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북쪽 근원의 물은 바로 사수강(泗水江)으로, 근원이 용담현(龍潭縣)의 주줄산(珠崒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김제의 북쪽과 임피의 남쪽 경계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만전성(萬塡城)은 바로 만경(萬頃)의 잘못된 표기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옥구성(沃溝城) 서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과 바다를 격해 30리 되는 곳에 섬이 있어 군산도(羣山島)라고 한다. -섬은 타원형으로 둘레가 60리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에서 조금 동쪽으로 가면 서천(舒川) 남쪽의 수구가 있는데, 바로 옥구에서 서북쪽으로 50리 되는 곳에 있는 물로, 역시 조선의 큰 하천 가운데 하나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금강(錦江)으로, 금강조(錦江條)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강 입구에서 바다를 격해 정서쪽으로 100리 되는 곳에 있는 섬을 원산도(元山島)라고 한다. 그 남쪽에서 조금 동쪽에 있는 섬을 군산도라고 하는데, 앞에서 나왔다. 원산도의 모양새는 길이가 60리이고, 폭이 20리이다. 북쪽으로는 요아량(要兒梁) 지역과의 거리가 40리이고, 서북쪽으로는 오평도(烏平島)와의 거리가 90리이다. 이 섬들은 모두 이 강 서쪽면의 수구이다.- ○ 바다는, 수구에서 북쪽으로 가면 기해저(岐海渚)이고, 다시 북쪽으로 가면 시인성(施仁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비인성(庇仁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과 수성(水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수영(水營)이다.- 서쪽을 지나고,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결성(結城)의 서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가면 태산성(泰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태안성(泰安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동남쪽 경계의 해저(海渚)를 지나고,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꺾어져서 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요아량(要兒梁)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안흥량(安興梁)의 잘못된 표기이다.- 지역을 지나는데, 바로 태산현 남쪽 지역이 한 줄기로 뻗어서 바다로 들어간 곳으로, 모양새가 코끼리의 코처럼 생겼다. 동쪽으로는 수성, 시인성의 해안을 바라보는데, 거리가 3, 4십 리이다. 바다는, 요아량의 남쪽으로부터 돌아서 서북쪽으로 가면 요아량의 서쪽을 지나는데, 그 서쪽은 오평도이다. -섬은 둘레가 50리이고 동쪽으로 요아량 해안과의 거리가 60리이다.- 바다는 또다시 북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가면 태산성의 서쪽을 지나는데, 그 바깥은 덕물도(德勿島)이다. -섬은 거위알처럼 생겼으며, 둘레가 5, 6십 리이고, 동쪽으로 태산 해안과의 거리가 50리이다.- 여기에서 또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가면 태산의 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그 바깥쪽은 용도(龍島)이다. -섬의 모양새는 약간 길게 생겼으며, 둘레는 50여 리이고, 남쪽으로 해안과의 거리는 30여 리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북쪽으로 가면 단산성(端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서산성(瑞山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산 북쪽으로 지나는데, 조금 동쪽에 수구가 있으며, 수구의 서쪽이 바로 대부도(大富島)이다. -물은 동쪽에 있는 청주(淸州)의 서쪽 큰 산에서 나오며, 전의(全義)의 동북쪽에 이르러서 서북쪽으로 흘러 천안성(天安城)의 동북쪽 경계를 경유한 다음 동북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안성(安城)과 양성(陽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직산성(稷山城)의 서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에 있는 차현산(車見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진위(振威)의 남쪽과 평택(平澤)의 북쪽을 지난 다음 또 서북쪽으로 흐른다. 여기에서 북쪽에 있는 금천성(衿川城) 동북쪽의 관악산(冠岳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수원성(水原城)의 남쪽, 아산성(牙山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부평성(富平城)의 북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부터 흘러오는 물이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신창(新昌)의 남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예산성(禮山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면서 서남쪽에 있는 가야산(加邪山)에서 흘러온 물과 만난 다음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덕산성(德山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면서 서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하여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아산성의 서쪽, 면천성(沔川城)의 동북쪽을 지나 흘러오는 물과 이곳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면천성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남양성(南陽城)의 남쪽, 당진성(唐津城)의 북쪽을 지나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수성의 남쪽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발원지에서부터 500여 리를 흐른다. ○ 삼가 살펴보건대, 경기와 호서(湖西) 두 도가 나뉜 경계의 대진(大津)은 그 근원이 세 개가 있다. 하나는 선원천(禪院川)으로 양지현(陽智縣) 곡돈현(曲頓峴)에서 나오고, 하나는 돈곶진(頓串津)으로 청양현(靑陽縣) 백월산(白月山)에서 나오고, 하나는 미륵천(彌勒川)으로 공주(公州)의 차현(車峴)에서 나온다. 선원천은 서남쪽으로 흘러 소사(素沙)의 들판에 이르러서 왼쪽에서 흘러오는 아주천(牙洲川)의 물과 합류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오른쪽에서 흘러오는 항곶천(亢串川)의 물과 합류한 다음 평택현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공진포(貢津浦)에 이른다. 돈곶진은 남쪽으로 금마천(金馬川), 미륵천(彌勒川), 승선천(昇仙川) 등 여러 물과 합류하여 아산(牙山)과 면천(沔川) 두 현의 사이로부터 오는 물과 합류하여 대진(大津)이 되어서 또다시 서쪽으로 당진현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수도제강》에서 이른 바 근원이 청주(淸州)의 서쪽 산에서 나온다고 한 것은 아주천을 가리키는 듯하다. 또 흘러가다가 천안성(天安城)의 경계를 지나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만난다고 한 것은 바로 선원천이다. 또 차현산(車見山)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이 있어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미륵천이다. 차현산은 바로 차현(車峴)의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또 한 물이 관악산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항곶천으로, 그 근원이 수원부의 광교산(光敎山)에서 나오는바, 관악산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으니, 잘못된 것이다. 또 신창(新昌)의 남쪽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있어서 예산의 북쪽 경계를 지난다고 한 것은 바로 돈곶진이다. 또 가야산에서 흘러나오는 한 물이 있어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금마천으로, 그 근원이 홍주(洪州)의 오서산(烏棲山)에서 나오는바, 가야산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니, 역시 잘못된 것이다. 또 덕산의 경계를 지나서 서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고 한 것은 바로 승선천이다. ○ 수구에서 정서쪽으로 바다에 있는 섬이 대부도인데, 섬의 모양새는 둥글고, 둘레가 50여 리 된다. 동북쪽으로 수성 해안과의 거리가 40리이다.- ○ 바다는, 수구가 있는 수성(水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수원부이다.- 서쪽으로부터 또다시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가면 인천성(仁川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조금 동쪽에 조선의 대수구(大水口)가 있는데, 이는 큰 하천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한강(漢江)이다. 한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수구의 동남쪽 바다에 대부도(大富島)가 있으며, 수구의 정서쪽에서 약간 북쪽에 정포(井浦)가 있는데, 큰 섬으로 둘레가 200리이며, 가운데에 강화성(江華城)이 있다. 섬의 모양새는 네모졌으면서도 서남쪽이 뾰족하다. 동쪽으로는 교하성(交河城) 해안까지의 거리가 40리이다. 바로 예전에 각화도(覺華島)라고 하던 섬이다. 이 섬에서 서남쪽으로 60리 되는 곳에 있는 섬이 연자도(硯子島)인데, 섬의 모양새는 둥글면서도 긴 벼루 모양으로 생겼다. 남쪽으로 용도(龍島)ㆍ덕물도(德勿島)와 100여 리를 떨어져서 서로 바라보고 있으면서 바깥쪽 대수구가 된다. ○ 바다는, 강 입구에 있는 교하성(交河城)의 서쪽에서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100리가량 가면 임진강(臨津江) 입구가 되는데, 임진강 역시 큰 하천이다. -해구(海口)의 바깥쪽은 동남쪽에 있는 강화도(江華島)와 북쪽에 있는 교동성(喬桐城) 큰 섬으로 대수구(大水口)를 삼는다. ○ 임진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바다는, 임진강 입구에서 북쪽으로 가면 풍덕성(豐德城)의 서남쪽 지역이 되는데, 조금 서북쪽에 하나의 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예성강으로, 예성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해구의 동남쪽은 바로 바다 가운데에 교동성이 있는데, 큰 섬이다. 섬의 모양새는 길게 네모졌는데, 서남쪽이 뾰족하다. 둘레는 200리로 강화도와 비슷하며, 해안까지의 거리는 40리이다.- ○ 바다는, 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90리를 가면 연산(延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연안(延安)의 잘못된 표기이다.- 남쪽이 되는데, 하나의 소수구가 있다. -물은 동북쪽에 있는 구잠산(駒岑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건수성(建水城) 서북쪽과 봉산성(鳳山城)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배천성(白川城) 남쪽으로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수양산(首陽山) 남쪽 기슭 및 연산성(延山城)의 남쪽을 돈 다음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길이는 300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해주(海州)의 삼탄(三灘)으로, 근원이 평산부(平山府)의 성불산(成佛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청단역(靑丹驛)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구잠산은 황주(黃州)에 있는 구현(駒峴)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나, 구현은 삼탄의 근원이 아닌바 상세히는 알 수가 없다. 건수(建水)는 검수(劍水)의 음이 와전된 것인 듯하다.- ○ 바다는, 연산성의 남쪽으로부터 꺾어져서 서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강익성(康翊城) -삼가 살펴보건대, 강령성(康翎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가다가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가면 옹진성(瓮津城)의 서남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가면 장연성(長淵城)의 서남쪽을 지나는데, 바다 가운데에 초도(椒島)가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풍천성(豐川城)의 서쪽을 지나는데, 바다 가운데에 백령도(白翎島)가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동쪽으로 100리가량 가면 은율성(殷栗城)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동북쪽으로 8, 9십 리를 가면 삼화성(三和城) 남쪽이 되는데, 패수구(浿水口)가 있다. -동쪽으로 봉산(鳳山), 배천(白川)에서 서쪽으로 연산, 강령, 옹진, 장연에 이르기까지는 뒤쪽으로 모두 산을 등지고 있는데, 산이 끊이지 않고 연속되어 뻗어 있다. 여기에서 또 꺾어져서 북쪽으로 가면 풍천(豐川), 송화(松花), 장련(長連)이 되며, 동쪽으로 가면 안악(安岳)에 이르는데, 여기도 역시 산들이 서려 있다. 그러므로 이곳 수백 리의 지역은 서쪽, 남쪽, 북쪽 삼면이 모두 바닷가에 닿아 있다. ○ 삼가 살펴보건대, 송화는 바로 송화(松禾)의 잘못된 표기이다.- 패수는 지금 대동강(大同江)이라고 한다. -대동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바다는, 삼화성(三和城) 남쪽에 있는 수구에서부터 꺾어져서 북쪽으로 200여 리를 가면 함종성(咸從城)과 증산성(曾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증산성(甑山城)으로 되어야 한다.- 두 성의 서쪽을 지나고,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가면 영유성(永柔城) 서북쪽을 지나며, 또다시 동북쪽으로 가면 소수구가 있다. -바로 순안성(順安城) 서북쪽에 있는 큰 산의 북쪽에서 나오는 물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통덕천(通德川)으로, 그 근원이 순안에 있는 법홍산(法弘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숙천부(肅川府)의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숙천성의 서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안주(安州)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청천강(靑泉江) 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청천강(淸川江)으로, 청천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대정강(大定江) 수구가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령강(大寧江)으로, 대령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 바다는,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쪽으로 가면 나청하(那靑河) 소수구가 있다. -나청하는 가산성(嘉山城) 서북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봉두산(鳳頭山) 동쪽과 나청청(那靑廳) 서쪽을 지나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대천하(大川河)의 소수구가 있다. -대청하는 북쪽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봉두산의 서쪽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흘러 정주성(定州城)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이상의 두 수구는 대정강과 청천강 두 수구와의 서로 간의 거리가 100리 사이에 있다. ○ 삼가 살펴보건대, 대천하는 바로 정주(定州)의 달천(㺚川)인 듯하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정주의 서남쪽 경계 및 곽산성(郭山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동래천(東來川) 소수구가 있다. -동래천은 삭주(朔州) 북쪽에 있는 산과 개막산(蓋幕山)이 서로 연결된 곳에서 나오는데, 여기에서 북쪽으로 산 너머가 바로 압록강 남쪽 둔치에 있는 오등성(敖登城), 요곽이성(遼郭爾城), 창성(昌城)의 세 성이다. 이 물은 서남쪽으로 흘러 곽산성(郭山城) 서쪽과 선천성(宣川城) 동쪽을 지나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동로강(東路江)으로, 그 근원이 구성(龜城)의 마구리산(馬仇里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선천부(宣川府)의 동쪽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오등성과 요곽이성 두 성에 대해서는 압록강조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선천성(宣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며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가면 선천하(宣川河) 소수구가 있다. -선천하는 북쪽 산에서 나오며, 그 산 너머의 서북쪽이 바로 압록강 남쪽 둔치에 있는 숙주성(宿州城)이다. 이 물은 서남쪽으로 흘러 철산(鐵山)의 동쪽 기슭을 돌아서 선천성의 서남쪽 경계 지점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선천부의 청강(淸江)으로, 그 근원이 보리산(菩提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철산군의 동쪽 경계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숙주는 삭주(朔州)의 음이 와전된 듯하다.- ○ 바다는,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철산성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수십 리를 가다가 꺾어져서 북쪽으로 가면 용천성(龍川城)의 서남쪽을 지나는데, 삭천하(朔川河) 소수구가 있다. 용천성에서 하천 건너편의 북쪽 둔치에 바로 의주성(義州城)이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가면 바로 압록강 남쪽 둔치의 애주(愛州)이다. -삭천하는 동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용천성의 북쪽과 의주성의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고진강(古津江)으로, 그 근원이 천마산(天磨山)의 동남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양책관(良策館)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애주는 바로 의주이다.- ○ 바다는, 삭천하의 수구로부터 의주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그 서쪽은 바로 압록강 수구이며, 서북쪽 둔치는 성경(盛京)과의 경계가 된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막혀 있다. 그러므로 차풍(次風) 제소남(齊召南)이 수도(水道)를 서술함에 있어서는 바다를 강(綱)으로 삼아 두만강 입구부터 시작하여 바다를 따라서 남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올라가 압록강 입구까지 이르렀는데, 매번 해구(海口)로부터 원류(源流)를 거슬러 올라갔는바, 마치 강(綱)을 쳐들면 목(目)이 따라 올라오는 것과 같아 자못 치밀하고 상세하다. 이는 본국의 여도(輿圖)를 살펴보고서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산 이름과 군(郡)의 호칭에 있어서는 잘못된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제 조목에 따라서 변정(辨正)하였다. 큰 강 중에 다른 서책에도 나와서 각각의 목(目)을 세운 것은 각 목의 아래에다 나누어 붙였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경계는 동쪽, 서쪽, 남쪽 삼면이 모두 바다에 닿아 있으며, 그 동해의 물은 맑고 깨끗하여 10길 남짓의 아래에까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송사(宋史)》 고려열전에 이르기를, “고려의 동쪽에 임해 있는 바다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10길 아래에까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명주(明州)가 바라다보이는데, 물이 모두 푸르다.” 하였다.- 구지(舊志)를 보면, 서쪽의 큰 바다에는 황주(黃州)의 장명진(長命鎭)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대통강(大通江)으로 들어간다. 또 백주(白州)와 해주(海州)의 서쪽은 모두 바닷가와 가깝다. 강희(康煕) 50년(1711)에 조선국의 섬인 몽금도(夢金島), 정족도(鼎足島), 사야질구미(沙也叱九味) 등지가 모두 봉천부(奉天府)의 금주(金州)ㆍ복주(復州)ㆍ개주(蓋州)ㆍ해주(海州)와 서로 가깝다는 이유로, 봉천부의 장군(將軍) 및 부윤(府尹)에게 자문(咨文)을 보내어서 연해(沿海)에 사는 백성들이 조선과 가까운 바다에 가 고기잡이하는 것을 엄금하라고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동문휘고(同文彙考)》를 보면, “강희 49년(1710)에 중국 예부(禮部)에 보낸 자문에, ‘오차포진(吾叉浦鎭)과 몽금도(夢金島) 앞바다, 초도진(椒島鎭)과 정족도(鼎足島) 앞바다, 소청도(小靑島)와 사야구미(沙也九味) 앞바다에 중국의 고기잡이 배가 끊임없이 오가서 변경에 사는 백성들이 놀라 소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칙령을 내려 금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는데, 강희 50년에 예부에서 봉천부의 부윤에게 자문을 보내어 금령(禁令)을 신칙하게 하였다.” 하였다. 《대청일통지》에서 이른 바는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오차포(吾叉浦)는 장연현(長淵縣)에 있으며, 초도(椒島)는 풍천부(豐川府)에 있다.
○ 한강(漢江) -옛날에는 열수(列水)라고 하였으며, 혹 여강(驪江)이라고도 한다. ○ 습수(濕水)와 산수(汕水)를 덧붙인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맥국(貊國)은 한수(漢水)의 동북쪽에 있다. ○ 조선은 열양(列陽)에 있다. ○ 주(注)에 이르기를, “열(列)은 물 이름으로, 지금 대방(帶方)에 있다.”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열수는 예로부터 혹 한수라고 하였음이 명백하다.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낙랑군(樂浪郡) 탄열현(呑列縣)의 분려산(分黎山)은 열수(列水)가 근원하는 곳이다. 열수는 서쪽으로 점제(黏磾)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820리를 흘러간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 세 강이 합해져 열수(列水)가 된다. 아마도 낙랑이니 조선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이름을 취한 듯하다. -삼가 살펴보건대, 습수와 산수는 아마도 한강의 별원(別源)으로 회양(淮陽)과 보은(報恩)에서 나오는 물인 듯하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한강은 국성(國城)에서 남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는데, 근원은 금강산(金剛山)과 오대산(五臺山)에서 나와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남쪽은 바로 옛 백제국이다. ○ 양화도(楊花渡)는 왕성의 서남쪽, 한강 가에 있는데, 각도에서 올라오는 곡식을 이곳에서 모두 모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한강은 또 웅진강(熊津江)이라고도 하는데, 국성에서 남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다. 근원은 금강산과 오대산(五台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오대산(五臺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두 산에서 나와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 왕성(王城)은 이 강을 의지하여 험고함으로 삼는다. 한강의 남쪽은 바로 옛 백제국 지역이다. 명(明)나라 만력 연간에 이여송(李如松)이 조선을 구원하자 왜적들이 왕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에 이여송이 성안에 들어가서 군사를 거느리고 한강에 임하여 왜적의 후미를 뒤쫓아가 철수하는 자들을 치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 양화도는 국성의 서남쪽, 한강 가에 있는데, 각도에서 올라오는 곡식을 모두 이곳에서 모은다. 혹자는 바로 임진도(臨津渡)라고 한다.
《유서찬요(類書纂要)》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국의 경기(京畿)에 여강(驪江)이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한강의 물이 여주(驪州)의 경계에 이르면 혹 여강이라고 하기도 한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인천성(仁川城)의 북쪽에서 조금 동쪽은 조선의 대수구이다. 대수의 근원은 남파(南派)와 북파(北派)가 있다. 남파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오대산(五臺山)의 우통(于筒)에서 나오는 한강의 정원(正源)이다.- 는 동쪽으로 장산(張山) -삼가 살펴보건대, 장산에 대해서는 상고할 수가 없다.- 에서 나와 두 개의 물이 합해져서 서쪽으로 흘러 우두산(牛頭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용두산(龍頭山)의 잘못된 표기로, 제천현(堤川縣)의 북쪽에 있다.- 남쪽 기슭, 청풍성(淸風城) 북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또 서쪽에 한 개의 강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섬강(蟾江)이다.- 이 있어, 동북쪽에 있는 영시촌(寧市村) 서쪽의 공작산(孔雀山) -삼가 살펴보건대, 공작산은 홍천현(洪川縣)의 남쪽에 있다.- 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섬강의 근원은 횡성현(橫城縣)의 덕고산(德高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흥원진(興元津)에 이르러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제천성(堤川城)의 서남쪽에 있는 치악산(雉岳山)의 남쪽 기슭을 지난다.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가 원주의 동남쪽 경계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 있는 음성(陰城)의 동북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충주(忠州)의 서쪽 및 여주(呂州)의 동쪽을 지나 북쪽으로 흐르는 물이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천민천(天民川)으로, 그 근원이 충주의 소속리산(小俗離山)에서 나와 북동쪽으로 흘러 여주의 경계에 이르러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원주성(原州城)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이주성(利州城) -삼가 살펴보건대, 이천(利川)으로 되어야 한다.- 의 북쪽을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물과 만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신은천(新恩川)으로, 그 근원이 지평현(砥平縣)의 부동산(不動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한강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광주성(廣州城)의 북쪽과 양근(楊根)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비정(碑亭)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조선의 국성(國城) 동남쪽에 있는 삼각산(三角山) 앞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북쪽 근원에서 나온 물이 동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은 양근의 경계에서 한강에 합해지는바, 여기에서는 국성의 동남쪽에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틀린 것이다.- ○ 북쪽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신연강(新淵江)으로, 그 근원이 회양부(淮陽府)의 금강산(金剛山) 만폭동(萬瀑洞)에서 나온다.- 은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동북쪽의 금성(金城) 동남쪽에 있는 추지령(秋池嶺) -삼가 살펴보건대, 추지령(楸池嶺)으로 되어야 한다.- 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이 물은 바로 신진(新津)으로, 근원이 회양의 말휘령(末暉嶺)에서 나온다.- 서쪽으로 흘러 서북쪽에서 흘러온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철령(鐵嶺)의 은계천(銀溪川)이다.- 과 합류한 다음, 서남쪽으로 흘러 낭주(狼州) -삼가 살펴보건대, 낭천(狼川)으로 되어야 한다.- 의 동남쪽 경계에 이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신진은 북서쪽으로 흘러 은계천과 합류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신연강에 들어간다.- 하나는 회양성의 북쪽 산 및 남쪽의 금성산(金城山)에서 나온 두 개의 물이 합류해서 서쪽으로 흘러 양구성(楊口城) 및 인제성(麟蹄城)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회양의 북쪽 산과 금성산에서 나오는 두 개의 물은 상세히 알 수가 없다.- 두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이 이미 합류해서 서남쪽으로 흘러 가평성(加平城) 남쪽 경계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남쪽 근원에서 흘러오는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소양강(昭陽江)이다.- 이 동남쪽에 있는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한다. 그런 다음 동북쪽으로 흘러 평창성(平昌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여기에서 서북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소양강은 근원이 오대산의 북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춘천부(春川府)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 신연강과 합류하는바, 여기에서 가평군에 이르러서 합류한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 개의 근원에서 흘러온 물이 이미 합해진 다음에는 서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오갑산(五甲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오신산(五申山)의 잘못된 표기로, 오신산은 김화현(金化縣)에 있다. 세 근원에서 흘러온 물이 이미 합해져서 오신산을 지난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 남쪽 기슭과 홍천성(洪川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춘천성(春川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횡성(橫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홍천강(洪川江)으로, 그 근원이 강릉부(江陵府)의 백치(柏峙)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신연강에 유입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저평성(底平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지평(砥平)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 경계와 포천성(抱川城)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양근성(楊根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그 북쪽 둔치에 있는 산은 바로 양주성(楊州城)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산기슭을 돌아서 삼각산(三角山) 앞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 있는 광주(廣州)에서 흘러온 남파(南派)의 물과 합류한다. ○ 남파와 북파 두 개의 강이 이미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서는 국성(國城)의 안산(案山)의 남쪽 기슭 -국성은 동북쪽으로부터 동쪽, 남쪽, 서쪽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북쪽에 동경 10도 6분이 조금 넘고, 북위 37도 6분인 작은 산이 있는데, 산 너머 동쪽이 양주(楊州)이며, 그 북쪽 80리 되는 곳에 백악산(白岳山)이 있다. 백악산의 동북쪽은 적성(積城)이다. 또 북쪽으로 30리 되는 곳이 바로 임진강(臨津江)이다. 백악산에서 서북쪽으로 60리 되는 곳이 고양성(高陽城)이고, 또 서북쪽으로 50리 되는 곳이 파주(坡州)이다. 파주에서 북쪽으로 20리 되는 곳이 바로 임진강이다. 국성의 서남쪽에는 산이 가로질러 있으면서 안산(案山)이 되는데, 동서쪽으로 수백 리에 뻗쳐 있으면서 강물을 따라서 안대(案對)가 되었다. 굉자원(宏滋院)이 성에서 서남쪽으로 50여 리 되는 곳의 산 사이에 있다. ○ 강물은 또 서쪽으로 흘러 안산의 남쪽 기슭을 돈 다음 과천성(果川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과천성은 국성의 서남쪽에 있으며, 또 과천의 서남쪽에는 용인성(龍仁城)이 있다. 또 서남쪽에는 관악산(冠岳山)과 수리산(修理山)이 있다.- 을 지나 1백 수십 리를 흘러 양천성(陽川城)의 북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안산성(安山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아마도 앵봉천(鸎峯川)을 말하는 듯하다. 앵봉천은 근원이 삼각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공암진(孔巖津)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을 받고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흘러 김포성(金浦城)의 서쪽을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 있는 수원성(水原城)의 북쪽 산에서 흘러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부평성(富平城)의 동북쪽 경계를 지나는 물이 남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흘러 통진성(通津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海口)의 남쪽 둔치에는 인천성(仁川城)이 있고, 북쪽 둔치에는 교하성(交河城)이 있는데, 서로 간의 거리가 100리이다. ○ 이 물은 근원에서부터 종횡(縱橫)으로 1000여 리를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보면, 한강 외에는 800리나 되는 큰 강이 없으니 아마도 한수(漢水)가 열수(列水)인 듯하다. 《산해경》을 보면, 맥국(貊國)은 한수의 동북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맥국은 지금의 관동(關東) 지방인바, 과연 한수의 동북쪽에 있다. 또 세 근원에서 나온 물이 합해져서 구불구불 800리를 흐르는바, 열수가 한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강은 그 근원에 세 개가 있는데, 하나는 오대산의 우통(于筒)에서 나오고, 하나는 회양(淮陽)의 금강산에서 나오는데 이를 신연강이라고 하고, 하나는 그 근원이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문장대(文藏臺)에서 나오는데 이를 달천(達川)이라고 한다. 오대산에서 나오는 물은 남쪽으로 흘러 정선군(旌善郡)을 지나고, 서쪽으로 흘러 충주(忠州)에 이른다. 여기에서 달천이 괴산(槐山)과 연풍(延豐) 두 현 사이를 지나 남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한다. 충주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여주(驪州)를 지나고 양근군(楊根郡)에 이른다. 여기에서 신연강이 북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부터는 서남쪽으로 흘러 광주(廣州)의 경계를 감돌고,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경성(京城)의 남쪽을 감돌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교하군(交河郡)의 남쪽에 이른다. 여기에서 임진강(臨津江)이 북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하여 풍덕부(豐德府)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또 살펴보건대, 《무비지(武備志)》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도에 팔도의 여러 강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청일통지》에서는 한강을 또 웅진(熊津)이라고 하였고, 또 양화도(楊花渡)가 바로 임진도(臨津渡)라고 하였고, 또 백마강(白馬江) 하류가 한강에 합류된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비류강(沸流江)이 한강으로부터 나뉘어 흘러 대동강(大同江)에 합해진다.” 하였는데, 이는 모두가 잘못된 것을 다시 잘못 전하면서 바로잡지 않은 탓에 그렇게 된 것이다.
○ 달천(達川)
《삼재도회속집(三才圖會續集)》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 속리산의 산꼭대기에는 문장대가 있는데, 문장대 위에서 한 물이 나와 서쪽으로 흘러 달천이 되어 금천(金遷)으로 들어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한강의 별파(別波)로, 앞에 나오는 안설(按說)에 상세하게 나온다.
○ 임진강(臨津江) -옛날에는 대수(帶水)라고 하였으며, 혹 호로하(瓠蘆河), 청강(淸江)이라고도 하였다.
《한서》 지리지(地理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낙랑군 함자현(含資縣)에는 대수(帶水)가 있다. 대수는 서쪽으로 흘러 대방(帶方)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구당서(舊唐書)》 열전(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상원(上元) 2년(675)에 유인궤(劉仁軌)가 군사를 거느리고 호로하를 건너가서 신라의 칠중성(七重城)을 격파하였다.
《황명세법록(皇明世法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산동(山東) 문등현(文登縣)의 성산위(成山衛)로부터 바다를 건너가서 호로하로 들어가 신라로 들어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대수는 지금의 임진강으로, 옛날의 칠중하(七重河)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사군강역 대방군조(四郡疆域帶方郡條)에 나온다.- 칠중성은 바로 적성현(積城縣)이다. 지금 임진강이 흐르다가 적성의 서쪽에 이르러서 호로탄(瓠蘆灘)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유인궤가 강물을 건넌 곳이다.
《요사(遼史)》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통화(統和) 28년(1010)에 야율분노(耶律盆奴) 등이 고려를 정벌하면서 개경(開京)에 들어가서 왕경(王京)을 크게 약탈하고 불사른 다음 청강(淸江)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야율분노가 이미 개경을 약탈하고서 청강에 이르렀으니, 청강은 개경 남쪽에 있는 강임이 분명하다. 《명시종(明詩綜)》에 실려 있는 조선 이행(李荇)의 임진강(臨津江) 시에 이르기를, “임진에서 아침 일찍 길을 재촉해, 나루터를 물으면서 청강에 가네.[臨津催早發 問渡卽淸江]” 하였다. 이에 의거하면 청강이 바로 임진강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조선부(朝鮮賦)》의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임진강은 장단부(長湍府)에 속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왜적이 임진을 건너서 개성을 약탈하였는데, 얼마 뒤에 이여송(李如松)이 개성에 주둔해 별장(別將) 사대수(査大受)를 파견하여 임진을 지키면서 동쪽과 서쪽으로 책응(策應)하게 하였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임진강은 동북쪽에 있는 이천성(伊川城)의 서북쪽 큰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한다.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안협(安峽)의 북쪽을 지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큰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정산탄(靜山灘)으로, 그 근원이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안협현(安峽縣)의 북쪽에 이르러서 임진강에 합류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삭녕성(朔寧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한 개의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마룡연(馬龍淵)이다.- 이 있어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철원(鐵原)의 남쪽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마룡연은 그 근원이 평강현의 상현(霜峴)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철원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삭녕의 남쪽에 이르러서 임진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하나의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탄강(大灘江)이다.- 이 있어서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가평(加平)의 북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홀러 김화성(金化城)의 남쪽 경계와 영평성(永平城)의 북쪽 경계 및 연천성(連川城) -삼가 살펴보건대, 연천성(漣川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탄강은 그 근원이 회양부(淮陽府)의 쌍령(雙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철원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연천현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마전성(麻田城)의 남쪽 경계와 적성(積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 큰 산의 남쪽 기슭에 이르러서 꺾어져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여기에서 남쪽으로 30리 되는 곳이 바로 백악산(白岳山)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파주(坡州)의 북쪽 경계와 장단성(長湍城)의 남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여기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한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천(沙川)이다.- 이 동북쪽에 있는 개창부(開昌府)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개성부의 잘못된 표기이다.- 동쪽의 송악산(松岳山) 남쪽 기슭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장단의 북쪽 경계 및 개성부의 남쪽 경계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을 서쪽으로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사천은 그 근원이 송도(松都)의 성거산(聖居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송도천(松都川)과 판적천(板積川)을 지나서 남쪽으로 흘러 임진강에 들어간다.- 송악(松岳)은 바로 조선의 중악(中岳)으로, 백악(白岳)에서 서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곳에 있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임진강이 되어 다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이 강은 근원에서 700여 리를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임진강은 그 근원이 안변부(安邊府) 영풍고현(永豐故縣)의 방장동(防墻洞)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이천부(伊川府)의 경계로 들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흘러 삭녕군(朔寧郡)의 경계로 들어갔다가 서남쪽으로 흘러 장단부(長湍府)의 남쪽을 돌아 교하군(交河郡)에 이르러서 한강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예성강(禮成江) -저탄(豬灘)을 덧붙인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예성강은 두 산 사이에 있는데, 돌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데, 이것이 이른바 급수문(急水門)으로 몹시 험악하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급수문은 그 문이 바다 섬과는 닮지 않았으며, 흡사 무협(巫峽)의 강로(江路)와 같았다. 산이 둘러싸고 굴곡을 이루면서 앞뒤로 서로 이어졌는데, 그 양쪽 사이가 바로 물길이다. 수세가 산협에 묶여 놀란 파도가 해안을 치고 구르는 돌이 벼랑을 뚫어, 요란하기가 우레가 울리는 것과 같다.
《조선부》 주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일로(一路)에 시냇물이 있는 곳에는 모두 소나무를 베어다가 다리를 놓았다. 보산관(寶山館) 근처에 시내가 있어 저탄(楮灘)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저탄(豬灘)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라고 하는데, 폭이 20여 길이나 되는데도 역시 소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예성항(禮成港)은 개성부의 남쪽에 있는데, 예성강의 하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또 급수문이 있는데, 《대명일통지》를 보면, 개성부의 남쪽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흡사 무협과 같이 생겼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풍덕성(豐德城)에서 조금 서북쪽에 한 수구(水口)가 있다. 그 물의 근원은 동북쪽에 있는 곡산성(谷山城)의 동북쪽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서 곡산성의 남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쪽에서 흘러온 하나의 작은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신계성(新溪城) 북쪽을 지난 다음,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흘러 수산성(遂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수안성(遂安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서남쪽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쪽에서 흘러온 큰 물과 합류하는데, 이 물은 두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이 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토산성(兎山城)을 지나 북쪽으로 흐르다가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송악산 개창부(開昌府)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개성부(開城府)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북쪽 산의 남쪽 기슭을 돈 다음 서쪽으로 흘러 동금천성(東金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서금천성(西金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난다. 이곳에서 금천하(金川河)와 합쳐지는데, 금천하는 동북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동금천성의 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온 두 개의 근원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평산성의 남쪽을 지나는 물과 합류한다. 서쪽에서 흘러온 금탄하(金灘河)는 서쪽으로 흘러 서금천성을 지나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만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풍덕성의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 물은 바로 예성강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원류(源流)가 지나는 바와 별파(別派)가 합류되는 바에 대해서 모두 뒤섞어서 말하여 어거지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금천성은 하나일 뿐인데, 이곳에서는 동금천성과 서금천성 두 개로 말하였으니 더욱더 잘못된 것이다. 이른바 금탄하라는 것도 역시 어느 물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 이 물은 근원에서부터 500여 리를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예성강은 그 근원이 수안군(遂安郡)의 언진산(彦眞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신계현(新溪縣)의 서쪽을 지난 다음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평산부(平山府)의 동쪽에 이르러서 저탄(豬灘)이 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도경》에서 이른 바 급수문은 아마도 이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을 가리키는 것인 듯하다.
○ 오조천(吾助川) -박연(朴淵)을 덧붙인다.
《허문목집(許文穆集)》의 회란석시(廻瀾石詩) 서문(序文) -허국(許國)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적에 지은 것이다.- 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오조천 가에 병풍처럼 생긴 돌이 있어서 오조천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는데, 예전에는 이 돌의 이름이 없었다. 이에 내가 그 돌을 명명하여 ‘회란석(廻瀾石)’이라 하였다.
《삼재도회속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박연(朴淵)은 천마산(天磨山)과 성거산(聖居山) 사이에 있는데, 모양이 마치 석옹(石甕)과 같이 생겼으며,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검은색이다. 반석이 있어 그 가운데에서 물이 솟아나는데, 이를 도암(島巖)이라고 한다. 물이 절벽에 이르러서는 성난 폭포가 되어 아래로 떨어지는데, 높이가 10여 길이나 되어 마치 흰 무지개가 허공에 걸린 듯하고, 눈발이 흩날리는 듯하며,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전설에, “옛날에 박 진사(朴進士)라는 사람이 연못가에서 젓대를 불고 있었는데, 용녀(龍女)가 그 소리를 듣고는 감동하여 그를 불러서 남편으로 삼았으므로 이름을 박연이라고 한다.” 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오조천은 바로 어조천(語早川)이 와전된 것이다. 그 근원은 송도의 천마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고연담(姑煙潭)과 박연폭(朴淵瀑)이 되고,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금천군(金川郡)의 서쪽을 돌아 조읍포(助邑浦)에 이르러서 예성강으로 들어간다.
○ 금강(錦江) -혹은 웅진강(熊津江), 백강(白江), 백마강(白馬江)이라고 하기도 한다.
《구당서》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현경(顯慶) 5년(660)에 소정방(蘇定方)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成山)에서 바다를 건너 웅진강(熊津江)의 어귀에 이르렀다. 백제가 온 나라를 기울여서 와서 저항하였는데, 크게 싸워서 격파하고는 백제를 모두 평정하였다. ○ 용삭(龍朔) 1년(661)에 백제의 옛 장수 복신(福信)이 주류성(周留城)을 점거한 채 반란을 일으켰다. 2년에 유인궤(劉仁軌)가 수군을 거느리고 웅진강에서 백강(白江)으로 가서 백강의 입구에서 왜병(倭兵)들을 만나 네 번 싸워서 모두 승리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웅진은 국성의 남쪽에 있다. 옛 백제의 해구(海口)로, 당나라에서 이곳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하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백강은 웅진의 동남쪽에 있는데, 역시 큰 바다를 접하고 있으며, 전주(全州)의 서쪽 경계에 닿아 있다. 당나라 용삭 3년(663)에 유인궤가 수군을 이끌고 웅진에서 주류성으로 나아가면서 백강의 입구에 이르러서 왜병과 만나 네 번을 싸워 모두 이겼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 백마강은 청주(淸州)의 남쪽에 있다. 《고려도경》을 보면, 긍주(矜州)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서천(舒川)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에 백마강이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 청주의 경계를 들어갔다가 꺾어져서 동쪽으로 흐르고, 또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천안군(天安郡)의 경계를 지나고, 여기에서 꺾어져서 북쪽으로 흐르는데, 그 하류는 한강에 합해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백강이 일본의 서적에는 백촌강(白村江)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이르기를, “천지천황(天智天皇) 2년(663)에 백촌강(白村江)에서 당나라 군사와 싸웠다.” 하였다.- 지금의 백마강이다. 지금 백마강의 상류를 웅진(熊津)이라고 하는데, 《당서》에서 칭한 웅진은 백강의 하류에 있는바, 이는 바로 고금(古今)의 칭호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청일통지》에서는 백강과 백마강을 나누어서 두 강으로 하였으며, 또 백마강을 한강에 끌어대어 합하였으니, 몹시 잘못되었다.
《삼재도회속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속리산에서 나오는 한 물은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된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서천(舒川)의 남쪽 수구 역시 조선의 하나의 큰 하천이다. 강물은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하나는 동남쪽에 있는 금산성(錦山城) 동남쪽 경계의 적암(赤巖) 서북쪽 기슭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적천(赤川)으로, 그 근원이 무주부(茂朱府)의 적상산(赤裳山) 동쪽에서 나오는바, 적암은 바로 적상(赤裳)의 잘못된 표기이다. 금강은 그 근원이 장수현(長水縣) 분수치(分水峙)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무주의 서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적천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금산성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제원천(濟源川)으로, 그 근원이 금산군 월봉산(月峯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금강으로 들어간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진산성(珍山城)의 동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서남쪽에 있는 고산성(高山城)에서 나와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흘러 영동성(永同城)의 서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송천(松川)이다.- 이 동남쪽에 있는 파음산(巴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웅이산(熊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웅이산은 상주(尙州)에 있다.- 의 북쪽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황간성(黃磵城)의 북쪽을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송천은 그 근원이 상주의 구봉산(九峯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황간현의 북쪽을 지나 영동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흘러 옥천성(沃川城)의 북쪽을 지나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회덕성(懷德城)의 북쪽과 문의성(文義城)의 남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진잠성(珍岑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진잠성(鎭岑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을 지나며,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공주(公州)의 동쪽 경계를 지나서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 북쪽의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동진강(東津江)으로, 그 근원이 충주(忠州)의 망이산(望夷山)에서 나온다.- 은 동북쪽에 있는 조령(鳥嶺)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청안성(淸安城)의 서쪽 경계와 진천성(鎭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쪽에 있는 음성(陰城)과 괴산(槐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청주(淸州)의 서북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에 있는 보은(報恩)의 동쪽, 개경(開慶)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문경(聞慶)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청주의 남쪽 경계와 회인(懷仁)의 북쪽 경계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상의 두 물은 모두 동진강의 별파(別派)인데,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전의(全義)의 남쪽 경계와 문의(文義)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흘러 공주의 동쪽에 이르러서 남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동진강은 망이산으로부터 나와 남쪽으로 흘러 진천현(鎭川縣)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연기현(燕岐縣)의 남쪽에 이르러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 두 근원에서 흘러온 물이 이미 합해져서는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흐른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공주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연기성(燕岐城)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지난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부여성(扶餘城)의 북쪽을 지나고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100리가량을 흐른다. 여기에서 또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석성(石城)의 북쪽 경계와 정산성(定山城)과 임천(林川)의 동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과 합류한다. ○ 강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초포(草浦)로, 그 근원이 계룡산(鷄龍山)에서 나온다.- 은 동쪽에 있는 연산(連山)의 동북쪽, 진잠(珍岑)의 남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이산(泥山) -삼가 살펴보건대, 지금의 노성현(魯城縣)이다.- 의 남쪽 경계와 여산(礪山)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은진성(恩津城)의 북쪽을 지난다. 이곳에서 또 서남쪽에 한 물이 있어서 남쪽에 있는 전주(全州) 서남쪽의 모악산(母岳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익산성(益山城)의 서쪽을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 보건대, 이 물은 어느 물인지 상세하지 않다.- 여기에서 또다시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용안(龍安)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함열(咸悅)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남쪽과 북쪽에서 흘러온 작은 물을 각각 만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큰 산의 남쪽 기슭을 지나고, 또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정산과 임천의 큰 물과 만난다. -삼가 살펴보건대, 초포는 서쪽으로 은진현 서쪽의 강경(江景)에 이르러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 이미 합류한 다음에는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청양(靑陽)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한산성(韓山城)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서천성(舒川城)의 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주현(州縣)에서 흘러오는 수십 개 근원의 물을 합하여 거의 1000리나 흐른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금강의 근원은 장수현(長水縣)의 분수치(分水峙)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영동현(永同縣) 경계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송천(松川)의 물이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흘러 옥천현(沃川縣)의 경계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용천(龍川) -바로 《고려도경》에서 칭한 물이다.- 이 속리산 문장대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청산현(靑山縣)의 남쪽 경계를 돌아서 흘러와 합류된다.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진강이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된다.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웅진(熊津)이 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부여현(扶餘縣)의 동쪽에 이르러서 백마강(白馬江)이 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초포(草浦)의 물을 모은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두치강(豆恥江) -전탄(錢灘)과 광탄(廣灘)을 덧붙인다.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1597) 7월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원균(元均)의 수군을 습격하여 한산도(閑山島)를 빼앗았다. 이에 왜적들이 수로와 육로로 한꺼번에 나와 왜선이 2, 3일도 되지 않아 광양(光陽)의 두치진(豆恥津)에 정박하였는데, 두치진은 남원(南原)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 우리나라의 각 장수들이 여러 차례 왜적들을 참획하였다. 12월에 광양의 전탄(錢灘)에서 싸워 왜적 4명의 수급을 참획하였고, 11월에 보성군(寶城郡) 광탄(廣灘)에서 싸워 왜적 1명을 참획하였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하동성(河東城)의 서쪽에 소수구(小水口)가 있다. 물은 북쪽에 있는 남원성(南源城) -삼가 살펴보건대, 남원(南原)으로 되어야 한다.- 서북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곡성(谷城)의 동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이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요천(蓼川)으로, 그 근원이 장수현(長水縣)의 장안산(長安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두치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흘러 영례성(永禮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구례(求禮)의 잘못된 표기이다.- 서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서북쪽에서 흘러오는, 무목산(無木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무등산(無等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 나와 송경산(松京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송광산(松廣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및 순천성(順天城)의 북쪽을 거쳐 동남쪽으로 흐르는 한 물이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낙수(洛水)로, 그 근원은 장흥부(長興府)의 웅치(熊峙)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무등산의 서쪽을 돈 다음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구례현의 남쪽 경계에 이르러 두치진에 합류한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흘러 광양성(光陽城)의 동쪽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海口)에서 동쪽으로 10여 리 되는 곳이 바로 하동성(河東城)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두치강은 일명 섬강(蟾江)이라고도 한다. 그 근원이 진안(鎭安)의 마이산(馬耳山) 중대(中臺) 및 전주(全州)의 웅치(熊峙)에서 나와 이 두 물이 합해져서 남쪽으로 흘러 남원부의 서쪽 경계를 지나고, 또다시 동쪽으로 흘러 왼쪽으로 요천(蓼川)을 지난 다음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압록진(鴨綠津)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낙수(洛水)가 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흘러 광양현의 동쪽을 지나서 전탄(錢灘)이 되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양조평양록》에서 칭한 광탄(廣灘)은 바로 낙수(洛水)의 상류이다.
○ 낙동강(洛東江) -진강(晉江)을 덧붙인다.
《삼재도회속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속리산에서 나오는 한 줄기 물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저곡천(豬谷川)으로, 그 근원이 속리산 문장대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김해성(金海城)의 동쪽에 대수구(大水口)가 있는데, 조선국 동남쪽의 큰 하천으로, 바로 진강(晉江) -삼가 살펴보건대, 낙동강을 진강으로 잘못 알았다.- 이다. 진강의 물은 북쪽의, 왕경(王京)에서 동남쪽으로 500리 되는 곳에 있는 영천현(榮川縣)의 북쪽 큰 산에서 나오는데, 그 산맥은 북쪽으로 장백산(長白山)과 소백산(小白山)으로부터 꾸불꾸불 서리면서 2000여 리를 내려오다가 봉화현(奉化縣)의 서쪽, 예안현(禮安縣)의 서북쪽에서 봉우리를 일으키며, 지봉(支峯)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두 줄기로 갈라져 남쪽으로 가 각 군현(郡縣)의 경락(經絡)이 되면서 바다까지 닿는다. 이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천(沙川)을 가리키는 듯한데, 사천의 근원은 안동부의 백병산(白屛山) 및 봉화현의 문수산(文殊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은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영천현의 동쪽을 지나고,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합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안동성의 서남쪽을 지나고,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백석산(白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백암산(白巖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백암산은 영양현(英陽縣)의 동쪽에 있다.- 의 물을 받아들인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소천(小川)으로, 그 근원이 영양현의 검마산(劍磨山)에서 나온다. 낙동강의 정원(正源)이 태백산(太白山)의 황지(黃池)에서 나와 남쪽으로 흐르다가 소천(小川)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청량산(淸涼山)의 서쪽 기슭을 지나고, -삼가 살펴보건대, 소천이 이미 황지에서 나온 물과 합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청량산의 서쪽, 안동부의 동남쪽을 지난 뒤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사천과 합류한다.-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의성(義城)의 서쪽 경계와 용궁성(龍宮城)의 동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남쪽의 북안성(北安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비안성(比安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서쪽에서 흘러온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위수(渭水)이다.- 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위수는 그 근원이 의흥현(義興縣) 화산(華山)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비안현(比安縣)의 동쪽을 감싸고 다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풍유천(豐酉川)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예천군(醴川郡)의 와전으로, 천(川)의 이름으로 잘못 안 것이다.- 이 있어 와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북쪽에 있는 함창성(咸昌城)의 북쪽 산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흐르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저곡천(豬谷川)으로, 속리산에서 흘러나온다. 이미 앞에 나왔다.- 서쪽에서 온 상주(尙州) 서북쪽의 파음산(巴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웅이산(熊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동쪽에서 나온 물과 만나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이수(伊水)로, 그 근원이 상주의 웅이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흘러 인동성(仁同城)의 서쪽과 선산(善山)의 동쪽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개령성(開寧城)의 동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감천(甘川)이다.- 이 있어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북쪽에 있는 적암(赤巖)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적상산(赤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오다가 서남쪽에서 흘러온 거창(居昌)의 물과 합류한 다음 또다시 동쪽으로 금산(金山)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온 한 물과 합류하여 성주(星州)의 북쪽, 개령(開寧)의 남쪽을 지나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감천은 그 근원이 지례현(知禮縣)의 대덕산(大德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르면서 직지천(直旨川)과 아천(牙川)을 모으고, 꺾어져서 동쪽으로 흘러 선산부(善山府) 옥산(玉山)의 동쪽에 이르러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금호강(琴湖江)이다.- 이 있어 합류한다. 이 물은 동북쪽에 있는 경주(慶州) 서북쪽과 영천(永川) 동남쪽의 모자산(母子山) 서쪽 기슭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하양성(河陽城)의 남쪽을 경유한 다음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공곡성(恭谷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칠곡성(漆谷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 경계를 지나 꺾어져서 정남쪽으로 흐르다가 대구성(大邱城)의 서쪽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금호강은 그 근원이 청송부(靑松府)의 보현산(普賢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영천(永川)과 하양(河陽) 두 현 사이를 지나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대구부의 북쪽을 지나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다시 남쪽에서 조금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가야천(伽倻川)이다.- 이 와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남쪽에 있는 협천성(浹川城)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고령성(高靈城)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가야천은 그 근원이 합천군(陜川郡) 가야산(伽倻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원풍성(元風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현풍성(玄風城)이다.- 남쪽과 의령성(宜寧城) 북쪽으로 지나 다시 동쪽으로 흘러 창녕(昌寧)의 남쪽을 지나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진강(晉江)이다.- 이 있어서 합류한다. 이 물은 서남쪽에 있는 운봉(雲峯)의 지리산(智異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함양(咸陽)의 남쪽과 단성(丹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산음(山陰)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산청현(山淸縣)이다.- 의 물을 받아들이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삼가(三嘉)의 남쪽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양천(梁川)으로, 그 근원이 삼가현의 화지현(花旨峴)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진강에 합류한다.- 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 흘러 진주(晉州)의 남쪽을 지나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공원성(恭原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칠원성(漆原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북쪽을 지나 굽이굽이 동북쪽으로 700리를 흘러와서 합류하는데, 이 물이 바로 사천(泗川)인 듯하다. -삼가 살펴보건대, 진강은 그 근원이 무주부(茂朱府)의 덕유산(德裕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지리산에서 나오는 임천(瀶川)의 물과 합류해 동쪽으로 흘러 단성현(丹城縣)의 북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양천(梁川)을 지나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진주의 남쪽을 지나며,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사천은 바로 현 이름인데, 잘못 진강이라고 하였다.- ○ 여기에서 또다시 동쪽으로 흐르다가 동남쪽으로 흘러 영산성(靈山城)의 서쪽을 지난다. -영산(靈山)은, 큰 산맥(山脈)이 모자산(母子山)에서 구불구불 내려오다가 경주(慶州), 손인(蓀仁), 경산(慶山), 화랑(火郞), 청도(靑道)의 다섯 성을 지난 다음 남쪽으로는 창녕(昌寧)에 이르러서 무계산(武溪山)이 되고, 동남쪽으로는 영산성(靈山城)의 북쪽에 이르러서 화악산(華岳山)이 되는데, 조선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손인은 바로 자인(慈仁)의 잘못된 표기이며, 화랑은 아마도 화왕(火王)의 와전인 듯하다. 화왕산성(火王山城)은 창녕의 북쪽에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응천(凝川)이다.- 이 있어서 합류한다. 이 물은 동북쪽에 있는 밀양(密陽)의 북쪽에서 나와 경산(慶山)의 서남쪽 산 및 동북쪽에 있는 손인(蓀仁) 동쪽의 금오산(金鼇山)에서 나오는 물과 만난 다음 남쪽으로 흘러 언양(彦陽)과 양산(梁山)의 서쪽 경계와 밀양의 동쪽 경계를 지나서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응천은 그 근원이 현풍(玄風)의 비슬산(琵瑟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청도군(淸道郡)을 감싸 흐른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밀양부의 앞을 지나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김해성(金海城)의 동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 동쪽 언덕은 동래(東萊)의 서쪽 경계이다. 동래의 북쪽에는 윤산(輪山)이 있고, 김해의 서쪽에는 웅산(熊山)이 있다. 강구(江口)의 동남쪽은 바로 절영도(絶影島)이고, 또 큰 바다 건너편의 동남쪽에는 대마대도(對馬大島)가 있다. 이 물은 근원으로부터 길게 1000리를 흐르면서 수십 성의 산에서 나오는 물을 모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진강(晉江)은 경주(慶州) 서남쪽에 있는 사주성(泗州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사천성(泗川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북쪽에 있는데, 혹 서강(西江)이라고도 하며,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마귀(麻貴)가 울산성(蔚山城)을 공격하면서 군사를 파견해 서강(西江) 입구에 주둔해 있으면서 왜적의 수로(水路)를 막게 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진강이 과연 사천현 북쪽을 지나기는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경주의 서남쪽에 있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마귀가 막은 수로는 바로 울산부의 태화강(太和江)인데, 진강이라고 하였으니, 더욱더 잘못되었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낙동강은 그 근원이 안동(安東) 태백산(太白山)의 황지(黃池)에서 나와 여러 물을 모은 다음 서남쪽으로 흘러 예천군(醴川郡)의 남쪽에 이르러서 오른쪽으로 속리산에서 나오는 저곡천(豬谷川)의 물과 합류한다. 그런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대구의 북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금호강(琴湖江)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영산현(靈山縣)의 경계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진강(晉江)이 무주(茂朱)의 덕유산(德裕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부터 꺾어져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김해부(金海府)의 동쪽에 이르러서 흩어져 삼차하(三叉河)가 되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 삼랑강(三浪江)
《명사(明史)》 조선전(朝鮮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1597) 7월에 왜적들이 양산(梁山)과 삼랑(三浪)을 탈취하고서 마침내 경주(慶州)로 들어가 한산(閑山)을 침입하였다.
《양조평양록》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에 왜적이 송도(松島), 울산(蔚山), 부산(釜山)에 나누어 주둔해 있었다. 경략(經略) 형개(邢玠)가 군사를 출동시키는 일에 대해 상의하면서 말하기를, “소서행장(小西行長)의 군영은 부산에 있고,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영은 서생포(西生浦)에 있다. 부산을 격파하고자 할 경우에는 육로로는 반드시 양산(梁山)의 서북쪽을 경유해야 하는데, 이곳에는 높은 산과 험한 고개가 있어 단지 말 한 필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몹시 험악하다. 남원(南原) -삼가 살펴보건대, 원(原) 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을 경유할 경우에는 삼랑(三浪)의 큰 강이 있어서 곧장 김해(金海)와 죽도(竹島)로 통한다. 이 두 곳은 모두 인후(咽喉)에 해당되는 요충지이다.”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삼랑은 아마도 낙동강 하류의 삼차하(三叉河)를 가리키는 듯하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삼랑강(三浪江)은 양산군(梁山郡)의 남쪽에 있다. 구지(舊志)를 보면, 양산(梁山)의 서북쪽에는 험준한 고개가 있어 단지 말 두 필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몹시 험하며, 남쪽에는 삼랑의 큰 강이 있어서 곧장 김해(金海)와 죽도(竹島)로 통한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 왜적들이 양산과 삼랑을 탈취하고서 마침내 경주로 들어갔다.
○ 태화강(太和江)
《양조평양록》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 25년에 왜적들이 울산(蔚山)에 진을 치고 모여 있었다. 울산의 남쪽에 도산성(島山城)이 있는데, 도산성은 산세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견고함으로 삼았다. 성 한가운데에 강이 하나 있어 부채(釜寨)와 통할 수 있으며, 육로로는 언양(彦陽)을 거쳐 부산과 통할 수 있다. 왜적들이 연이어서 세 개의 성채(城寨)를 쌓았는데, 반구정(伴鷗亭), 성황당(城隍堂), 태화강(太和江)이 모두 도산(島山)의 앞에 있었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장로일성(長老日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장기성(長鬐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 동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가면 소수구(小水口)가 있다. 이 물은 서북쪽에 있는 위산성(尉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울산성(蔚山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서쪽 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울산성의 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쪽으로 흘러 좌병(左兵)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좌병영(左兵營)이다.- 의 남쪽 경계를 지나 1백 수십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태화강은 그 근원이 경주의 단석산(斷石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울산부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아리나예하(阿利那禮河)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신라에 도착하자, 신라의 왕이 즉시 흰 끈으로 얼굴을 묶고 앞에 와서 강화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러고는 거듭 맹세하기를, “동쪽에서 뜨는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또 아리나예하가 거꾸로 흐르고 냇물의 돌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지 않는 한, 봄가을로 조공을 빠뜨릴 경우에는 하늘의 신령과 땅의 귀신이 함께 우리들을 토벌할 것입니다.” 하였다. -송하견림(松下見林)이 말하기를, “압록강(鴨綠江)은 삼한(三韓)에 있다.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보면, 황하(黃河), 장강(長江), 압록강은 천하의 세 대하(大河)라고 하였는바, 압록강은 세 대하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서기》에서 이른 바 아리나예하는 바로 압록강이다.” 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신라 나해왕(奈解王) 때의 일이다. 이 당시에 신라의 강역은 경상좌도(慶尙左道)에 그쳤는바, 아리나예하는 마땅히 한나라의 대수(大水)로, 만일 태화강이 아니라면 과연 낙동강을 가리킬 것이다. 일본인이 아리나예하가 압록강이라고 한 것은 망녕된 설이다.
○ 대동강(大同江) -옛날에는 패수(浿水), 대통강(大通江)이라고 하였다. ○ 비류강(沸流江)과 흑하(黑河)를 덧붙인다.
《사기(史記)》 조선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한(漢)나라가 천하를 평정하고는 요동고새(遼東故塞)를 수축하고서 패수(浿水)까지를 경계로 하였다.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가 진나라의 옛 공지(空地)에 살았다.
《한서》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패수현(浿水縣)의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增地)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수경(水經)》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패수는 낙랑의 누방현(鏤方縣)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臨浿縣) -삼가 살펴보건대, 《한서》 지리지를 보면 임패현이 없다.- 동쪽을 지나서 바다로 들어간다.
《수경주(水經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허신(許愼)이 이르기를, “패수는 누방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浿水出鏤方東入海]” 하였고, 어떤 데에는 “패수현에서 나온다.” 하였으며, 십삼주지(十三州志)에는 이르기를, “패수현은 낙랑의 동북쪽에 있으며, 누방현은 낙랑군의 동쪽에 있다.” 하였다. 패수는 대개 패수현에서 나와 누방현을 경유하는 것이다. 옛날에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패수로부터 조선에 이르렀다. 만약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를 건널 리가 없다. 그 지역은 지금 고구려의 국성(國城)이다. 내가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을 찾아가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평양성은 패수의 남쪽에 있다.” 하였다. 그 물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의 조선현(朝鮮縣)을 경유하는데, 조선현은 바로 낙랑군의 치소로, 한나라 무제(武帝) 때 설치하였다. 그런데 서북쪽으로 흐르므로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增地縣)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고금(古今)의 일을 상고해 보건대, 일이 어긋난다. 이는 대개 《수경》에서 잘못 증험한 것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東入於海]’ 한 곳의 동(東) 자를 위 구절에 붙이면 《수경》의 글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주서(周書)》 고구려열전(高句麗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치소(治所)는 평양성(平壤城)이다. 그 성의 남쪽은 패수에 임해 있다.
《수서(隋書)》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도읍은 평양성인데, 산을 따라서 굽이지게 쌓았으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임해 있다. 매년 초에 패수 가에 모여서 놀이를 하는데, 왕이 요여(腰輿)를 타고 나가 우의(羽儀)를 펼쳐 놓고 이를 관람한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왕이 사는 곳은 평양성인데,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다. 성은 산의 굴곡을 따라 외성(外城)을 쌓았으며, 남쪽은 패수에 임해 있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지리지에 이르기를, “패수는 요동(遼東)의 새외(塞外)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낙랑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통강(大通江)은 평양성의 동쪽에 있다. 옛 이름은 패수이며, 강 가운데에 조천석(朝天石)이 있다. 당나라 때 소정방(蘇定方)이 패수에서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여 사로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조선부》 주(注)에 이르기를, “평양의 기린석(麒麟石)은 부벽루(浮碧樓) 아래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명왕(東明王)이 기린마(麒麟馬)를 타고 이 굴에 들어왔다가 땅속에서 조천석 위로 나와 승천하였다.’ 하는데, 지금도 그 당시의 말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하였다.
《조선부》 주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동강은 바로 옛날의 패수이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통강은 평양성의 동쪽에 있는데, 대동강이라고도 하며, 옛 이름은 패수이다. 《사기》를 보면, “진(秦)나라 때 요동고새를 수리하고는 패수까지를 경계로 삼았으며, 한나라 초기에는 연인(燕人) 위만이 망명하여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가서는 진나라의 옛 공지(空地)인 상장(上障)과 하장(下障)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점차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의 여러 종족 및 연(燕)나라에서 망명해 온 자들을 역속(役屬)시킨 다음 그들의 왕이 되었다. 원봉(元封) 3년(기원전 108)에는 한나라의 순체(荀彘)가 요동에서 나와 조선을 쳐서 조선의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격파하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서 왕험성(王險城) 아래에 이르렀다.” 하였다. 《한서》 지리지를 보면, “낙랑군에 패수현(浿水縣)이 있는데, 패수가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增地縣)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대개 왕험성은 패수의 남쪽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경》을 보면, “패수는 낙랑의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8년(612)에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는 내호아(來護兒)가 강호(江湖)의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동래로부터 바다를 건너 먼저 진군하여 패수로 들어갔는데, 평양과의 거리가 600리 되는 곳이었다. 얼마 뒤에 고구려의 군사에게 패하여 도로 해포(海浦)로 돌아와서 주둔하였다. 당나라 용삭(龍朔) 1년(661)에는 소정방(蘇定方)이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패수 가에서 고구려의 군사를 격파하고 마침내 평양으로 들어갔다. 명나라 만력 21년(1593)에는 이여송(李如松)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하여 평양에 이르자, 왜적들이 온 힘을 다해 막아 지켰다. 이여송이 그곳의 지형을 헤아려 보고는, 동쪽과 남쪽은 모두 강에 임하여 있고, 서쪽은 산을 타고 있어 가파르며, 북쪽은 모란봉(牧丹峯)이 높이 솟아 있어서 최고의 요해처임을 알아내었다. 이에 이여송이 장수를 보내어 모란봉을 공격하게 하고는 군사들을 독려하여 사면에서 성에 기어 올라가게 해 마침내 함락시켰다. 얼마 뒤에 이여송이 개성(開城)에 주둔해 있으면서는 별장(別將) 양원(楊元)을 평양에 주둔시켜 대동강을 제압해 군량을 운송할 수 있게 하였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 비류강(沸流江)은 강동군(江東郡)의 남쪽에 있는데, 한강(漢江)에서 갈라져 나와 서쪽으로 흘러 대동강에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한강에서 갈라져 나온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미 한강조(漢江條)의 안설(按說)에 나왔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패수는 지금 대동강이라고 하는데, 바로 대통강(大通江)이다.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큰 근원이 있다. 남쪽의 근원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동쪽에 있는 문천성(文川城)에서 서북쪽으로 16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의 서쪽 기슭에서 나온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비류강(沸流江)으로, 그 근원은 양덕현(陽德縣)의 오강산(吳江山)에서 나온다.- 산에서 나온 근원이 하나는 서쪽으로 흐르고 하나는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동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조금 북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초천(草川)이다.- 이 와서 합류한다. 이 물은 북쪽에 있는 덕양(德陽) -삼가 살펴보건대, 양덕(陽德)으로 되어야 한다.- 의 동남쪽 큰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초천은 그 근원이 양덕현 삼방령(三方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비류강에 유입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이것이 패수가 되어 성천성(成川城)의 동남쪽 경계에 이르러 다른 남쪽 근원의 물과 합류한다. 남쪽 근원의 다른 하나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능성강(能成江)이다.- 는 동남쪽에 있는 곡산성(谷山城)에서 서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 다음 다시 굽이굽이 서북쪽으로 200리를 흘러 다른 남쪽 근원의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비류강은 서쪽으로 흘러 성천부의 북쪽에 이르러서 대동강과 합해지는바, 이곳에서 비류강이 성천의 동남쪽에 이르러서 능성강과 합해진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곡산성 -삼가 살펴보건대, 곡산(谷山)은 오자(誤字)인 듯하다.- 의 남쪽을 지난 다음,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흘러 삼등성(三登城) 대목산(大木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박산(大朴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 경계와 상원성(祥原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서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만난다. -삼가 살펴보건대, 북쪽 근원의 물은 바로 대동강의 정원(正源)이다. 능성강은 그 근원이 두류산(豆流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곡산부의 북쪽 경계를 감싸 흐른 다음에 서쪽으로 흘러 삼등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대동강과 합류한다.- ○ 북쪽의 근원은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동북쪽에 있는 양덕현(陽德縣) 북쪽의 우선산(遇仙山) 서쪽 기슭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금계(錦溪)로, 그 근원이 옛 순천(順川)의 강서산(江西山)에서 나온다.- 서쪽으로 흘러 동북쪽에서 흘러온 맹산성(孟山城) 동남쪽 산에서 나온 물과 합류한다. 그런 다음 서쪽에서 조금 남쪽으로 굽이굽이 200리를 흘러 은산성(殷山城)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금계는 서쪽으로 흘러 은산현의 서쪽에 이르러서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북쪽의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막탄강(瘼灘江)이다.- 은 정평성(定平城)의 서북쪽에 있는 비백산(鼻白山) 서쪽 기슭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맹산성의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덕천성(德川城)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개천성(价川城)의 동북쪽 경계에 이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막탄강은 그 근원이 맹산현의 안도리산(安都里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맹산현의 북쪽 경계를 지나 대동강에 들어간다.- 또 다른 정북쪽의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동강의 정원(正源)으로, 영원군(寧遠郡)의 내낙림(內樂林)에서 나온다.- 은 영원성(寧遠城)에서 동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큰 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영원성의 동쪽 경계와 덕천성의 서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개천성의 동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다른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 다음 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또 다른 근원에서 나온 물이 동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내낙림에서 나온 대동강이 서남쪽으로 흘러 덕천현의 동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막탄강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은산현(殷山縣)의 서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금계를 지나고서 다시 서쪽으로 흐른다.- ○ 여기에서 약간 서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은산성의 서남쪽 경계를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연산성(燕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자산(慈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동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강동성(江東城)의 서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상원(祥原)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 남쪽 근원에서 나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남쪽 근원에서 나온 물은 바로 능성강이다.- ○ 여기에서 서쪽으로 100리를 흘러 중화성(中和城)의 동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평양성(平壤城)의 동쪽을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쪽으로 흘러 평양성 남쪽을 지난다. -평양은 바로 옛 왕험성(王險城)으로, 기자(箕子)의 고도(故都)이다. 한나라 때에는 일찍이 낙랑군의 치소(治所)를 두었으며, 진(晉)나라 이후로는 고구려가 이곳에 도읍하였다. 당나라가 평양을 함락하자 고구려가 비로소 평정되었다. 오대(五代) 때에는 왕건(王建)이 고구려 지역을 차지하고는 비로소 서경(西京)이라고 불렀다. 지금 성에서 동북쪽으로 60리 되는 곳에 금수산(錦繡山)이 있으며, 그 북쪽에는 순천성(順川城)이 있고, 또 그 북쪽에는 큰 산이 있다. 이 산은 동북쪽에 있는 영원(寧遠)에서부터 뻗어 내려와 서남쪽으로 향산(香山)이 되고, 태조산(太祖山)이 되고, 순안성(順安城)이 되며,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내려와 무학산(舞鶴山)이 되며, 다시 남쪽으로 강 입구에 이르는데, 총 500리를 끊이지 않고 남쪽으로 패수를 감싸고서 내려온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은 중화성의 북쪽 산이 되어 안산(案山)이 되며, 여기에서 남쪽은 황주(黃州) 및 봉산(鳳山)이다.- 평양성 남쪽에서부터는 서쪽에서 조금 북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30리를 흐르는데, 이곳을 대동강이라고 한다. 대동강은 강서성(江西城)과 용강성(龍岡城) 두 성의 동남쪽을 지나 삼화성(三和城)의 동남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황주(黃州) 북쪽에서 흘러오는 흑하(黑河)가 동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에서 흘러오는 안악(安岳)의 물을 합한 다음 다시 서쪽에서 조금 남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 흑하는 그 근원이 상원(祥原) 동남쪽의 경계에 있는 큰 산에서 나오는데, 세 개의 근원에서 나오는 물이 합해져서 서쪽으로 총 300리를 흐른 다음 상원의 남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황주의 북쪽 경계와 중화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다시 서쪽에서 조금 남쪽으로 흘러 삼화성(三和城)의 동남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안악에서 흘러온 물이 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흑하는 아마도 흑교천(黑橋川)인 듯하다. 대동강이 남쪽으로 흘러 중화현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왼쪽으로 흑교천을 지난 다음 급수문(急水門)을 통해 나가는데, 남쪽으로 황주(黃州), 재령(載寧), 안악(安岳) 등처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 절양해(絶瀼海)를 이룬다.- ○ 안악에서 흘러오는 물은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어초천(於草川)이다.- 은 동북쪽에 있는 황주의 동쪽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황주의 남쪽과 봉산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한 물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재령성(載寧城)의 북쪽 경계를 지나고 안악의 동북쪽에 이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어초천은 그 근원이 수안군(遂安郡) 천자산(天子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황주의 남쪽을 지난 다음 급수문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대동강과 절양해에서 만난다.- 또 다른 한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영진(迎津)이다.- 은 서남쪽에 있는 바닷가의 장연성(長淵城) 동북쪽에 있는 부석산(傅石山)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박석산(縛石山)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서 나와 동쪽으로 100리를 흘러 송화성(松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송화성(松禾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남쪽과 신산성(信山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신천성(信川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북쪽을 지나는데, -삼가 살펴보건대, 영진(迎津)은 그 근원이 송화현(松禾縣)의 달마산(達摩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신천군의 북쪽을 돌아 절양해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신천(信川)의 남쪽 산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해주성(海州城)의 북쪽을 지나오는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전방천(箭防川)으로, 그 근원이 해주의 수양산(首陽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월당강(月唐江)과 만나 절양해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안악성의 동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다른 근원의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어초천(於草川)이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90리를 흘러 동쪽에서 흘러온 흑하와 합류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 대동강은 이미 남쪽에서 흘러온 물을 합한 다음에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근원에서 800리를 흘러가는바, 조선의 서북쪽에 있는 큰 하천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대동강은 바로 패수로, 그 근원은 영원군 내낙림의 백산(白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막탄과 금계 등 여러 물을 합하여 성천부의 북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비류강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오른쪽으로 사천(蛇川)을 지난다. 여기에서부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삼등현의 서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능성강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합류한 물은 평양성의 남쪽을 돌아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왼쪽으로 발로하(發蘆河)를 지나고, 다시 꺾어져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급수문을 통과하면서 왼쪽으로 어초천을 지나고, 남쪽으로 월당강과 만나서 절양해가 되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또 살펴보건대, 《위략(魏略)》을 보면, “한(漢)나라가 노관(盧綰)을 연왕(燕王)으로 삼고는 격수(湨水)를 조선과 연의 경계로 하였다.” 하였다. 격수는 하내(河內)의 물 이름으로, 《춘추(春秋)》를 보면, 양공(襄公) 16년 3월에 양공이 진후(晉侯), 송공(宋公), 위후(衛侯), 정백(鄭伯), 거자(莒子), 주자(邾子), 설백(薛伯), 기백(杞伯), 소주자(小邾子)와 더불어 격량(湨梁)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이곳이 연(燕)과 조선(朝鮮)의 경계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격수는 패수(浿水)의 오자(誤字)이다. 그리고 《당서(唐書)》를 보면, 현경(顯慶) 5년(660)에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계필하력(契苾何力)이 저강(沮江), 요동(遼東), 평양(平壤)의 길로 나아갔으며, 지리지(地理志)에는 이르기를, “패강(貝江) 입구의 초도(椒島)를 지나서 신라 서북쪽을 얻었다.” 하였다. 저강(沮江)이니 패강(貝江)이니 하는 것도 패강(浿江)이 와전된 것이다.

부(附) 패수(浿水)에 대해 잘못된 것을 밝히다.

《요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동경도(東京道) 요양현(遼陽縣)은 본디 한(漢)나라의 패수현(浿水縣)이었다. ○ 패수는 또한 이하(泥河)라고도 하며, 또 헌우락(蓒芋濼)이라고도 하는데, 물에는 헌우초가 많이 자란다.
《성경통지(盛京通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어니하(淤泥河)는 해성현(海城縣) 성에서 서남쪽으로 65리 되는 곳에 있다. 살펴보건대, 《요사》를 보면, “요양현은 한나라 때 패수현으로, 그 북쪽에 패수가 있는데, 또한 어하(淤河)라고도 하며, 또 헌우락이라고도 하는데, 물 안에는 헌우초가 많이 자란다.” 하였는데, 《대명일통지》에서는 이 설을 그대로 따랐으며, 이어 또 조선의 대통강(大通江)을 패수라고 하였다. 지금 살펴보건대, 어니하는 그 근원이 성수산(聖水山)에서 나와 흘러 미진산(迷眞山)의 서쪽에 이르러서 흩어지는바, 이 물이 바로 요동 지방의 헌우락으로, 조선의 경계 안에 있는 패강(浿江)과는 같지 않다.
《사군지(四郡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계 안에는 세 개의 패수가 있는 듯하다. 그 첫 번째는 《사기》에 나오는 패수로, “위만(衛滿)이 동쪽으로 패수를 건넜다.” 하였는데, 이것은 압록강을 패수라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당서》에 나오는 패수로, “평양부의 남쪽 가는 패수이다.” 하였는데, 이것은 대동강을 패수라고 한 것이다. 세 번째는 《고려사(高麗史)》에 나오는 패수로, 평산부(平山府)의 저탄(豬灘)을 패강(浿江)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세 개의 패수이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압록강은 마자수(馬訾水)이지 패수가 아님을 밝혔는데, 이것은 제대로 된 설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문헌비고》를 보면, “압록강은 바로 마자수이다. 마자수와 패수가 동시에 낙랑군과 현도군 두 군에 나누어 보이고 있으니, 압록강이 패수가 아님은 매우 분명하다.” 하였다.- 그리고 또 《요사》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요양(遼陽)의 패수는 참으로 한(漢)나라 때의 패수이다.” 하였는데, 이것은 그렇지가 않다. 《요사》는 요양부(遼陽府)를 평양(平壤)이라고 하였으므로, 또다시 어느 한 물을 가리켜 패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요사》가 찬수되기 전에 나온 《당서》에 평양의 남쪽 가가 패수임을 분명하게 말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요사》 지리지는 태반이 두찬(杜撰)인데,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른바 고기(古記) 및 《요사》 지리지는 모두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나라의 여지(輿地)를 밝힐 수가 있다. 저탄(豬灘)을 가리켜 패수라고 한 것은, 이것은 가탁하여 이름한 것이니 따지고 말고 할 것도 못 된다. -삼가 살펴보건대, 《고려사》에서 저탄을 패수라고 한 것은, 백제의 온조(溫祚)가 북쪽으로 패강을 경계로 삼았기 때문이다. 백제의 패강은 바로 곡산부(谷山府)의 능성강(能成江)이 대동강에 합해지는 곳이다.- 그렇다면 단지 평양부의 한 패수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견이 좁아서 《사기》를 읽으면서는 문득 연(燕)과 진(秦)의 동쪽 경계가 지나치게 먼 것을 의심하고, 또 위만이 건넌 강이 대동강이 아닌 듯하다고 의심한다. 이것이 바로 세 개의 패수 설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연과 진의 동쪽 경계가 어디까지이며, 위만이 동쪽으로 건너와 어디에서 살았는지는 지금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나라 때에서 멀지 않은 시대에 나온 《수경주》나 《주서》, 《수서》, 《당서》에서 평양성의 남쪽 물을 패수라고 한 것을 정확하다고 믿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는가. -삼가 살펴보건대, 연과 진의 동쪽 경계가 대동강을 지난 것과 위만이 살았던 왕검성(王儉城)이 평양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조선조(朝鮮條)에서 상세하게 밝혔다.
○ 월당강(月唐江)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월불당강(月不唐江)은 황주(黃州) 안악현(安岳縣)의 동쪽에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큰 바다로 들어간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월불당강은 황주 안악현의 동쪽에 있는데, 그 물은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구지(舊志)를 보면, 안악현은 황주에서 남쪽으로 150리 되는 곳에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월불당강은 바로 월당강이다. 그 근원은 서흥부(瑞興府) 웅파산(熊坡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서흥부의 남쪽을 경유하여 다시 서쪽으로 흘러 봉산군의 남쪽을 경유하고서 북쪽으로 흘러 대동강과 급수문(急水門)에서 만난다.
○ 사수(蛇水) -어떤 데에는 다하(茶河)로 되어 있다-ㆍ타하(陀河)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당나라 용삭(龍朔) 2년(662)에 좌효위 장군(左驍衛將軍) 방효태(龐孝泰)가 고구려와 사수(蛇水) 가에서 싸웠는데, 싸움에 패하여 전사하였다. 소정방(蘇定方)이 평양성의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요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개태(開泰) 7년(1018)에 고려를 정벌할 적에 소배압(蕭排押)이 고려와 다하(茶河)와 타하(陀河) 두 하천 사이에서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익사한 자가 많았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사수는 평양의 서쪽 경계에 있다. 당나라 용삭 초에 방효태 등이 고구려를 칠 적에 영남(嶺南)의 군사로써 사수에서 벽을 쌓았다. 송나라 천희(天禧) 2년(1018)에 거란이 고려를 정벌할 적에 사하(蛇河)와 타하(陀河) 두 물에서 싸워 패하고서 돌아왔다. 구지(舊志)를 보면, 두 물은 모두 평양의 서북쪽에 있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사수는 그 근원이 자산부(慈山府) 웅초덕산(熊草德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요사》에서 이른 바 다하(茶河)를 《대청일통지》에서는 사수라고 하였는데, 이는 음이 비슷하여서 그런 것인가? 타하 역시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물인데, 상고할 수가 없다.
○ 발로하(發蘆河)
《신당서》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총장(總章) 2년(669)에 고구려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근행(李謹行)에게 조서를 내려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근행이 발로하(發蘆河)에서 격파하였다. 이에 평양성의 패잔병들이 쇠약해져서 서로 이끌고 신라로 도망갔는바, 4년 만에 평정된 것이다.
《자치통감》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당나라 함형(咸亨) 4년(673)에 연산도 총관(燕山道摠管) 이근행이 고구려의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호로하(瓠蘆河)의 서쪽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호삼성(胡三省)의 《자치통감》 주에 이르기를, “내가 《당서》 유인궤열전(劉仁軌列傳)을 살펴보건대, 호로하는 고구려의 남쪽 경계, 신라의 칠중성(七重城) 북쪽에 있어야 한다.” 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발로하는 평양성의 서쪽에 있는데, 당나라 때 이근행이 이곳에서 신라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발로하는 경주(慶州) 서쪽 경계에 있다. 구지(舊志)를 보면, 고구려의 남쪽 경계, 신라의 칠중성 북쪽에 있다. 당나라 함형 4년에 이근행이 호로하의 서쪽에서 고구려를 격파하였고, 함형 5년에는 유인궤가 동쪽으로 신라를 정벌하면서 군사를 거느리고 가 호로하를 끊고서 신라의 대진(大鎭)인 칠중성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발로하는 그 근원이 자산부의 자모산(慈母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순안현(順安縣)의 서쪽을 지나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평양부의 서쪽을 지나 대동강에 들어간다. 유인궤가 건넌 호로하는 바로 장단부(長湍府)의 임진강(臨津江)인바, 발로하와 혼동하여 칭해서는 안 된다. 《자치통감》에서는 발로하를 잘못 호로하라고 하였는데, 호삼성의 주(注)에서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여 유인궤가 건넌 물이라고 하였으며, 《대청일통지》에서는 또다시 잘못된 호삼성의 주를 답습하였으니, 전혀 틀렸다.
○ 청천강(淸川江) -옛날에는 살수(薩水)라고 칭하였다.
《수서》 열전(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업(大業) 8년(612)에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우문술(宇文述)이 동쪽으로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산을 의지하여 진영을 쳤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사신을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면서 우문술에게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기를 청하자, 우문술이 돌아왔다. 우문술이 살수를 건널 적에 고구려의 군사가 후군(後軍)을 습격하였다. 이에 크게 무너져서 하루 낮 하룻밤 만에 압록수(鴨綠水)에 이르렀는바, 450리를 행군한 셈이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살수는 압록강의 동쪽,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 수나라의 장수 신세웅(辛世雄)이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 청천강(淸川江)은 안주(安州)에 있는데,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옛 이름은 살수이다. -《성경통지》에 이르기를, “살수는 《대명일통지》를 보면, 압록강의 동쪽,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는바, 지금 성경(盛京)의 경계 바깥에 있다.” 하였다.
《조선부》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안주성은 아래로 살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바로 수나라 군사들이 고구려를 칠 적에 패한 곳이다. 또 청천강이라고도 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청천강은 안주성의 동쪽에 있는데,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역시 살수라고도 한다. 수나라 대업 8년에 우문술 등이 고구려를 칠 적에 압록수를 건너서 고구려의 대신인 을지문덕을 추격하였다. 우문술이 동쪽으로 살수를 건넌 다음 평양성에서 30리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산을 의지하여 진영을 쳤는데, 평양성이 험고하여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우문술이 군사를 철수하면서 살수에 이르러서 군사가 반쯤 건넜을 적에 고구려 군사의 습격을 받아 여러 군사가 모두 무너졌다. 장사(將士)들이 앞을 다투어 도망쳐 하루 낮 하룻밤 만에 압록수에 이르렀는바, 450리를 행군하였다. 지금은 대령강(大寧江)이라고도 한다. 구지(舊志)를 보면, 평양과 황주는 서쪽으로 대령강으로 막혀 있고, 동쪽은 대통강(大通江)으로 막혀 있어서 ‘양쪽 강의 중간’이라고 이른다. 본조(本朝) 강희(康煕) 37년(1698)에 조선에 흉년이 들자, 조선에서 표문을 올려 중강 개시(中江開市)를 열 것을 청하였는데, 황지(皇旨)를 받드니, “저축해 둔 미곡(米穀)을 수로와 육로로 4만 석을 운송하여 중강(中江)에 이르러서 매매하라.”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청천강과 대령강을 한 강이라고 한 것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개시(開市)를 한 중강(中江)은 바로 압록강인데, 잘못 청천강이라고 하였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안주의 서남쪽 경계에 청천강(靑泉江)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청천강(淸川江)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수구(水口)가 있다. 청천강은 두 개의 근원이 있다. 한 근원은 동북쪽에 있는 영원성(寧遠城) 동북쪽의 큰 산에서 나오는데,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청천강의 정원(正源)으로, 강계부(江界府)의 갑현(甲峴)에서 나온다.- 덕천(德川)의 동북쪽 근원에서 나와 흘러서 패수로 들어가는 물과 단지 한 산을 격하여 있다. 이 물은 서남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서천성(西川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희천성(煕川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남쪽으로 지나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산기슭을 끼고 돈 다음 영변성(寧邊城)의 남쪽에 이르러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악산(岳山) -삼가 살펴보건대, 아마도 약산(藥山)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다.- 의 남쪽 기슭을 돌아 안주의 동북쪽에 이르러서 북쪽 근원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한다. ○ 북쪽 근원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공포(孔浦)이다.- 은 남쪽 근원에서 북쪽으로 9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한 작은 물과 합류하고, 다시 서쪽으로 굽이굽이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천성의 북쪽 경계를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여러 산의 북쪽 기슭과 이산(耳山)의 뒤쪽과 영변성의 북쪽 경계를 돈 다음 꺾어져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악산의 서쪽 기슭을 돌아 남쪽 근원에서 나온 물과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공포는 그 근원이 운산군(雲山郡) 유동령(柳洞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영변부(寧邊府)를 돈 다음 남쪽으로 흘러 청천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안주성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근원에서 500리를 흘러간다. ○ 두 근원의 물은 근원에서부터 합해지는 곳까지가 400리이며, 가운데에는 단지 20여 리의 사이를 두고 산으로 막혀 있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청천강은 옛날의 살수이다. 그 근원은 강계부의 갑현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희천군의 남쪽을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영변부의 남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서북쪽에서 흘러온 공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안주의 북쪽을 지나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해망(海望)의 모퉁이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부터 흘러온 대령강과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 대령강(大寧江) -혹은 대정강(大定江)이라고도 한다. ○ 박천군(博川郡)에 있는 강이다.
《조선부》 주(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정강(大定江)은 박천군(博川郡)에 있으니, 바로 옛날에 주몽(朱蒙)이 남쪽으로 도망치다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준 곳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것은 동사(東史)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또 박천강이라고도 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박천군의 서쪽에는 대정강이 있는데, 혹 대령강이라고도 한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정강은 동북쪽에 있는 청천강(靑泉江) 북쪽 근원의 서쪽을 격해 있는 산에서 나와,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창성강(昌城江)으로, 그 근원이 벽동군(碧潼郡) 구계령(九階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태천현(泰川縣) 북쪽 경계에 이르러서 대령강으로 들어간다.-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령강의 정원(正源)으로, 의주의 천마산(天磨山)에서 나온다.- 과 합류한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박천성(博川城)의 남쪽에 있는 백벽산(白碧山)의 남쪽을 지나 북쪽에서 흘러온 운산(雲山)의 물 -삼가 살펴보건대, 송림천(松林川)을 가리키는 듯하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구성(龜城) 동북쪽 산의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구성강(龜城江)으로, 그 근원이 구성부 팔영령(八營嶺)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태천현(泰川縣)의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대령강으로 들어간다.- 과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받아들인 다음 남쪽으로 흘러 큰 산의 북쪽 기슭을 돌아 가산성(嘉山城)의 남쪽 경계와 안주성의 서북쪽 경계를 지나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근원에서부터 400여 리를 흐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령강은 창성강, 구성강 등 여러 강의 물을 모은 다음 남쪽으로 흘러 청천강과 합류한다.- ○ 해구(海口)의 동남쪽은 청천강(靑泉江)과의 거리가 20리이다. 근원으로부터 흘러오면서 청천강과는 단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데 불과하다.
○ 압록강(鴨綠江) -옛날에는 마자수(馬訾水)라고 하였으며, 혹 애강(靉江), 익주강(益州江)이라고도 한다. ○ 독로강(禿魯江)을 덧붙인다.
《한서》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현도군(玄菟郡)의 서개마현(西蓋馬縣)에는 마자수(馬訾水)가 있다. 마자수는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鹽難水) -삼가 살펴보건대, 지금의 파저강(婆豬江)이다.- 로 들어가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지나는 고을이 둘이고, 1200리를 흘러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서안평현(西安平縣)은 요동군(遼東郡)에 속하며,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의 북쪽에 있다.
《신당서》 고구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자수가 있는데, 그 근원은 말갈(靺鞨)의 백산(白山)에서 나온다. 물의 빛깔이 마치 오리 머리와 같이 푸르므로 압록(鴨綠)이라고 부른다. 강물은 국내성(國內城)의 서쪽을 지나서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안시(安市)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안평(安平)의 잘못된 표기이다.- 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리고 평양은 압록강의 동남쪽에 있는데, 큰 배를 타고 건너야 하므로 이를 의지하여 참호로 삼는다.
《통전(通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자수는 일명 압록강이라고도 하는데, 그 근원은 말갈의 백산에서 나온다. 물의 빛깔이 마치 오리 머리와 같이 푸르므로 압록이라고 한 것이다. 요동에서의 거리가 500리이다. 국내성의 남쪽을 지나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한 물과 합류하는데, 바로 염난수이다. 두 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의 물 가운데에서 이 물이 가장 커서 푸르고 맑은 물결이 일렁이며, 지나가는 나루에는 모두 대선(大船)을 놓아둔다. 그 나라에서는 이 강을 의지하여 천참(天塹)으로 삼는다. 물의 너비는 300보이다.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450리 되는 곳에 있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쪽으로 480리 되는 곳에 있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는 서북쪽으로 거란과 접해 있다. 압록강을 의지하여 험고함으로 삼는데, 강은 너비가 300보이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요동도사성(遼東都司城)에서 동쪽으로 560리 되는 곳에 있으며,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안시(安市)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고구려를 정벌할 적에 압록수에서 무위(武威)를 뽐내었는데, 거기가 바로 이곳이다. ○ 압록강은 조선 국성(國城)에서 서북쪽으로 1450리 되는 곳에 있다. ○ 큰 강이 영주(靈州)의 동쪽에 있는데, 서북쪽으로 흘러 대통강(大通江)으로 들어간다. -삼가 살펴보건대, 영주는 지금의 의주(義州)이고, 큰 강은 바로 압록강 하류의 별파(別派)이며, 대통강은 바로 대총강(大總江)의 음이 변한 것이다. 뒤의 안설(按說)에 상세하게 나온다.
《명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전요지(全遼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요양성(遼陽城)에서 동쪽으로 530리 되는 곳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長白山)에서 나와 협주성(夾州城)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흘러 독로강(禿魯江) -삼가 살펴보건대, 독로강은 그 근원이 함흥부(咸興府) 설한령(雪寒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강계부(江界府)의 남쪽을 경유한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흘러 위원군(渭原郡)의 북쪽을 지나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과 합류한 다음 애주(艾州)에 이르러서 파저강(婆豬江)과 함께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성경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일명 익주강(益州江)이라고도 하며, 혹 애강(靉江)이라고도 부른다. -삼가 살펴보건대, 익주(益州)는 지금의 의주(義州)로, 중국의 음으로는 같다.- 장백산 남쪽의 여러 시냇물이 남쪽으로 모여들어 큰 강을 이루어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동가강(佟家江)과 만난 다음 다시 500리를 흘러 봉황성(鳳凰城)의 동남쪽을 돌아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동남쪽은 조선과의 경계이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길림(吉林), 오라(烏喇)에서 남쪽으로 977리 되는 곳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조선과의 경계를 나누며, 봉황성의 동남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바로 옛날의 마자수이다.
《황여고(皇輿考)》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천하에는 세 개의 대수(大水)가 있으니, 황하(黃河), 장강(長江), 압록강(鴨綠江)이 그것인데, 압록강은 또한 외이(外夷) 지역에 있다.
《조선부》 주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바로 화이(華夷)의 경계가 된다.
《향조필기(香祖筆記)》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남쪽의 장강과 북쪽의 황하 두 물줄기 외에 북쪽으로 고려에 있는 것을 혼동강(混同江)이라 하고 압록강이라 하는데, 이들은 모두 먼 변방 바깥에 있어서 우(禹) 임금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다.
《장거유서(莊渠遺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지(大地)의 산맥(山脈)은 모두 곤륜산(崑崙山)을 조산(祖山)으로 삼는데, 남쪽의 산맥과 북쪽의 산맥이 가장 크다. 북쪽의 산맥은 유연(幽燕) 지방에서 끝나는데, 대하(大河)가 이곳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 압록강과 만난다. 동쪽에는 하사(下沙)가 있는데, 이곳은 산과 물이 한 번 크게 모여 만나는 곳이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압록강은 바로 옛날의 마자수이다. 그 근원은 장백산 남쪽 기슭에서 나오는데, 두 개의 근원에서 나누어 나와 합류한다. 그런 다음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소백산(小白山)에서 나온 물이 동쪽에서 와 모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왼쪽으로 조선의 북쪽 경계에서 나온 몇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인 다음 꺾어져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꺾어져서 서북쪽으로 흐른다. 이곳에서 장백산 서쪽 지역의 이어진 산들의 남쪽 기슭에서 나온 모든 물이 십이도구(十二道溝)로부터 두도구(頭道溝)에 이르기까지 모두 몰려들어 수세가 비로소 왕성해진다. -강물이 남쪽으로 흘러 조선의 사산성(謝山城) 동북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건천구(建川溝)가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사산성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쪽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든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인선위(因禪衛), 낙언성(諾言城), 소진성(小辰城)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신갈이보(新噶爾堡)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남쪽에 있는 삼산성(三山城)에서 나온 한 물이 북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옛 보(堡)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십이구(十二溝) 및 십일구(十一溝)의 물을 받아들이고, 남쪽으로 충천령(沖天嶺) 동쪽의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으로 십구(十溝), 구구(九溝), 팔구(八溝)의 물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으로 두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이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칠구, 육구, 오구, 사구의 물을 받아들이고, 남쪽으로 두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삼구, 이구 및 두구(頭溝)의 물을 받아들인다. ○ 삼가 살펴보건대, 사산성은 혜산진(惠山鎭)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고, 건천구는 아마도 허천강(虛川江)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며, 인선위는 인차외보(仁遮外堡)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다. 낙언성은 바로 나난보(羅暖堡)의 음이 변한 것이며, 소진성은 바로 소농보(小農堡)의 잘못된 표기이고, 신갈이보는 바로 신갈파지보(新噶坡知堡)의 음이 변한 것이다. 삼산성은 아마도 삼수부(三水府)의 잘못된 표기인 듯하다. 그 ‘삼산성에서 나온 물이 와서 합류한다.’ 한 것은 아마도 장진강(長津江)을 가리키는 듯하고, 옛 보는 바로 옛 갈파지보(葛坡知堡)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모아산(帽兒山)의 동쪽 기슭을 지나 다시 남쪽으로 굽이져 흐르다가 서북쪽으로 30리를 흐른 다음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가운데에 모래밭이 있어서 서쪽으로는 이자구(李子溝)의 물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는 해낙이(該諾爾)의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으로 이하(里河)의 물을 받아들이고, 동쪽으로 한 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만포성(滿浦城), 발등성(發登城), 고산리성(高山里城) 세 성 -삼가 살펴보건대, 발등성은 바로 벌등성(伐登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 세 진(鎭)은 모두 위원군(渭原郡)의 북쪽에 있다.- 의 서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네 개의 작은 물이 흘러와서 모인다. -그 가운데 큰 것을 백마령하(白馬嶺河)와 파성자하(破城子河)라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도로하(圖魯河)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독로강(禿魯江)의 음이 변한 것이다. 앞글에 나온다.- 가 동쪽에 있는 장걸성(張傑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강계부(江界府)의 음이 변한 것이다.- 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조금 남쪽에 마역하(馬驛河)가 있어 서쪽에서 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미원촌(未源村)의 서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오로량수(五老梁水)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위수(渭水)로, 그 근원이 강계부의 두읍령(杜邑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위원군의 남쪽을 지나서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가 동남쪽에서 흘러와서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지고이성(地古爾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직동보(直洞堡)로, 중국음으로는 서로 비슷하다.- 이산(理山)의 서북쪽을 지나는데, 세 개의 작은 물이 서북쪽에서 와서 합류한다. -지고이성 북안(北岸)에 곧장 있는 것을 유수하(楡樹河)라고 한다. 또 그 남쪽에 작은 물이 있으며, 또 그 남쪽에 있는 것을 차구(叉溝)라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가강(佟家江)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산양공성(山陽公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산양회보(山羊會堡)의 잘못된 표기이다.- 의 서남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동금하(東金河) -삼가 살펴보건대, 아마도 동건강(童巾江)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다. 동건강은 그 근원이 초산부(楚山府)의 유도막령(踰都幕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산양회진(山羊會鎭)을 지나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가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흘러 소비성(小丕城), 대비성(大丕城), 필동성(必東城) 세 성의 서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동해하(東垓河) -삼가 살펴보건대, 소비성과 대비성 두 성은 바로 소파아진(小坡兒鎭)과 대파아진(大坡兒鎭) 두 진의 음이 변한 것이고, 필동성은 벽동군(碧潼郡)의 음이 변한 것인 듯하다. 동해하는 아마도 벽동천(碧潼川)을 가리키는 듯하다.- 가 동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서쪽으로 흘러 필동성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이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소거류성(小巨流城) -삼가 살펴보건대, 소길호리진(小吉號里鎭)의 잘못된 표기이다.- 과 대수고성(大水高城), 대길로성(大吉魯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길호리진(大吉號里鎭)이다.- 의 서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창성부(昌城府)의 자잔천(自潺川)이다.- 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상주걸하(常州傑河)가 동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흘러 오등성(敖登城)과 요곽이성(遼郭爾城) -삼가 살펴보건대, 오등성은 어정진(於汀鎭)인 듯하다. 요곽이성은 바로 묘동보(廟洞堡)로, 중국음으로는 서로 비슷하다.- 과 창성(昌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객점하(客店河)가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장점하(長店河)가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면서 왼쪽으로 한 작은 물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소자가하(蘇子街河)가 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왼쪽으로 한 작은 물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포서하(浦西河)가 서북쪽에 있는 대전(大甸)으로부터 흘러나와 남쪽으로 흘러 합류하며, 그 남쪽에 작은 물이 있어 흘러와서 모인다. 여기에서 숙주성(宿州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이 동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아포하(阿布河)가 서북쪽에 있는 봉황성(鳳凰城)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아포하는 바로 애합하(愛哈河)로, 그 근원이 애합변문(愛哈邊門) 바깥의 동북쪽에서 나오는데, 세 개의 근원이 합해져 서남쪽으로 흘러 유조변(柳條邊)으로 들어가 석두성(石頭城)의 서북쪽을 지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꺾어져서 동남쪽으로 흘러 유조변을 나가 다시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남쪽으로 흘러 애주성(愛州城)의 북쪽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작은 물 -삼가 살펴보건대, 의주의 옥강천(玉江川)인 듯하다.- 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세 갈래로 갈라져서 20리를 흘러간 다음 다시 합해져 구련성(九連城)의 동남쪽을 지난다. -구련성은 조선의 애주성과 강안을 마주하여 경계를 나누고 있는데, 바로 강물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영아하(永阿河)가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의주의 서쪽을 지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합련하(哈連河)가 서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장백산(長白山)의 위치는 동경 11도 8분 북위 41도 9분이며, 강어귀의 위치는 동경 8도 북위 40도이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압록강은 그 근원이 백두산의 큰 연못에서 나와 땅속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나와 혜산진(惠山鎭)을 지나고, 다시 서쪽으로 흘러 삼수부(三水府)의 북쪽 경계를 지난 다음 서북쪽으로 흘러 옛 무창(茂昌)의 경계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꺾어져 서남쪽으로 흘러 위원군(渭原郡)의 북쪽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독로강(禿魯江)이 동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초산부(楚山府)의 서쪽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파저강(婆豬江)이 새외(塞外)로부터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의주(義州)의 북쪽에 이르러서 세 갈래로 갈라져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검동도(黔同島)에 이르러 다시 합해져 하나가 된다. 청수량(淸水梁)에 이르러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한 갈래는 서쪽으로 흘러 적강(狄江) -중국 쪽에 있다.- 과 합해지고 한 갈래는 남쪽으로 흘러 대강(大江)이 된다. 이 두 갈래가 위화도(威化島)를 감싸 흐르다가 다시 합해져서 대총강(大總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 덕래하(德來河) -바로 대령강(大寧江)의 상류이다-ㆍ대매하(大梅河)ㆍ소매하(小梅河) -대매하와 소매하는 바로 압록강 상하의 요충지가 되는 진(津)이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서북계 연혁 취청천강이북지조(取淸川江以北地條)에 나온다.
○ 이하(泥河) -덕원군(德源郡)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어야 한다.
《신당서》 발해열전(渤海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신라 북계 연혁 여발해접계조(與渤海接界條)에 나온다.
○ 활녈수(活涅水) -어떤 데에는 활녜수(活禰水)로 되어 있다-ㆍ벽등수(闢登水)ㆍ을리골수(乙離骨水)ㆍ삼잔수(三潺水) -이상의 여러 물은 정평부(定平府) 등지에 있다.
《금사(金史)》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 연혁 오국성조(五國城條)에 나온다.
○ 이록고수(移鹿古水) -함흥부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금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 연혁 합라로조(合懶路條)에 나온다.
○ 복간수(僕幹水) -함흥부 이북의 지역에 있다-ㆍ주아문수(注阿門水) -정평부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다-ㆍ도온수(陶溫水) -어떤 데에는 토온수(土溫水)로 되어 있다. 마땅히 온성부(穩城府) 등지에 있어야 한다-ㆍ도롱고수(徒籠古水) -바로 종성부(鍾城府)의 오롱소수(吾籠所水)이다.
《금사》 세기(世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 연혁 여여진위계조(與女眞爲界條) 및 오국성조(五國城條)에 나온다.
○ 혼동수(渾疃水)ㆍ성현수(星顯水)ㆍ잔준수(僝蠢水)ㆍ소빈수(蘇濱水) -이상의 여러 물은 삼수부 등지에 있다.
《금사》 본기(本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 동북계 연혁 휼품로조(恤品路條) 및 오국성조(五國城條)에 나온다.
○ 알목하(斡木河)
《쌍괴잡초(雙槐雜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건주위(建州衛), 해서위(海西衛), 올자위(兀者衛) 등의 사람들은 먼저 알목하에 살면서 칠성(七姓)의 야인(野人)들과 원수 관계가 되어 조선으로 달아나 투항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알목하는 그 근원이 회령부(會寧府) 무산령(茂山嶺)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회령부의 서쪽에 이르러서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당초에 알목하 지역은 여진의 알타리부락(斡朶里部落)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조선 세종(世宗) 14년(1432)에 칠성(七姓)의 야인들이 알목하를 침공하여 맹가첩목아(孟哥帖木兒)를 살해하자, 그의 동생인 범찰(凡察) 등이 경원부(慶源府) 근처의 지역으로 옮겨 와서 살기를 원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허락하지 않고 마침내 빈틈을 타 알목하에 회령부를 설치하였다.
○ 두만강(豆滿江) -혹은 토문강(土門江), 도문수(徒門水), 통문하(統門河), 아야고하(阿也苦河), 애호강(愛滹江)이라고도 한다. ○ 팔하천(八下川)을 덧붙인다.
《금사》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열전에 이르기를, “고려가 갈라전(曷懶甸)에 9성을 수축하자, 혼탄(渾坦)이 석적환(石適歡)과 도문수(徒門水)에서 군사를 합하여 고려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금사》 석토문열전(石土門列傳)을 보면, 석토문은 한자(漢字)로는 신도문(神徒門)이라고 쓰는바, 이를 근거로 해서 보면 도문(徒門)이 토문(土門)임은 분명하다.- ○ 세기에 이르기를, “요나라에서 경조(景祖)를 생여진절도사(生女眞節度使)로 삼으니, 통문수(統門水)의 온적흔부(溫迪痕部), 신은수(神隱水)의 완안부(完顔部)가 모두 서로 뒤를 이어 와서 귀부하였다.” 하였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장백산 꼭대기에는 연못이 있는데, 동쪽으로 흘러 아야고하(阿也苦河)가 된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토문강은 영고탑성(寧古塔城)에서 남쪽으로 600여 리 되는 곳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조선의 북쪽 경계를 감싸고 흐른 다음 다시 동남쪽으로 꺾어져서 여러 물을 모아 바다로 들어간다. 《성경통지》에 이르기를, “《대명일통지》를 보면, 아야고하가 있는데, 그 근원이 장백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지금 장백산의 물 가운데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토문강이 있을 뿐 아야고하라는 이름은 없다. 살펴보건대, 《금사》의 유가열전(留可列傳)을 보면, 유가(留可)는 통문(統門)과 혼준수(渾蠢水)가 합류하는 지역의 오고륜부(烏古倫部) 사람이다. 지금 혼춘하(渾春河)가 남쪽으로 흘러 토문강과 합해지니, 통문은 바로 토문(土門)의 음이 변한 것이다. 또 《명사》 지리지를 보면, 도문하(徒門河)가 있는데, 강물은 건주위(建州衛)의 동남쪽을 지나 1000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는바, 이 강이 바로 도문하로, 아야고하와는 당연히 같은 한 물이다.” 하였다. ○ 토문강은 조선국의 서북쪽 경계에 있다. 그 근원은 장백산 동남쪽 기슭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양조평양록》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만력(萬曆) 20년(1592)에 왜병들이 평양에 모여 있으면서 격문(檄文)을 보내어 조선에 고하기를, “부산에서 평양까지 오는 데 한 달도 채 안 걸렸다. 그런 데다가 풍신수길과 가등청정을 평안도에 보내어 두만강(豆滿江) 가에 이르게 하였는바, 그 일대가 모두 우리의 수중에 들어왔다.” 하였다.
《수도제강》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토문강은 그 근원이 장백산 꼭대기의 동쪽 기슭에서 나오는데, 이를 토문색금(土門色禽)이라고 한다. 동쪽으로 흘러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수십 리를 흐른 다음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또 수십 리를 흐른다. 이곳에서 한 물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하고, 또 두 근원이 합해진 한 물이 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하는데, 이 두 물은 모두 장백산의 지봉(支峯)에서 나오는 물이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 한 물이 있어 두 근원의 물을 합하여 서남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이 물 남쪽은 바로 조선국이다.- 여기에서 꺾어져 동북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서 남쪽 둔치로 작은 물 두 개와 큰 물 하나를 받아들인다. -두 개의 작은 물은 모두 증산(甑山) 북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100리가량을 흐른다. 하나의 큰 물은 홍단하(洪丹河)라고 하는데, 그 근원은 서남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세 연못에서 근원하는 물을 합하여 동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른 다음, 꺾어져서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한 작은 물을 합한 다음 다시 북쪽으로 흘러 증산의 동쪽 기슭을 지나고 다시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100여 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홍단하는 바로 홍단하(紅丹河)의 잘못된 표기이다.- 여기에서 조금 동쪽에 아궤개토문(阿几个土門)이 있어 서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합한 다음 동남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아궤개색금(阿几个色禽)은 장백산 산꼭대기에서 동북쪽으로 100리 되는 곳에 있는 큰 산에 있다. 그 서쪽은 바로 이아모색금(泥牙母色禽)과 이아고색금(泥牙庫色禽)인데, 서북쪽으로 흘러 송화강(松花江)이 되는 물이다. 이 물은 산 동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는데, 두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이 합해진 한 물이 서북쪽에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서 동남쪽으로 100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가는데, 역시 토문강의 별원(別源)이다.- 여기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100리를 흐르며 남쪽 둔치에서 두 개의 물을 받아들인다. -한 물은 어순하(魚順河)라고 하는데, 남쪽으로부터 두 근원에서 나온 물을 합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한 물을 합하여 300여 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또 한 물은 파하천(波下川)이라고 하는데, 세 근원에서 나온 물이 합해져 북쪽으로 굽이굽이 2백 수십 리를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 삼가 살펴보건대, 파하천은 바로 팔하천(八下川)으로, 그 근원이 회령부(會寧府) 원산(圓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르다가 회령부성 북쪽으로 지나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다시 큰 산의 동쪽 기슭에 이르러 꺾어져 북쪽으로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온 두 개의 물을 받아들이는데, 그 동쪽 언덕에는 조선의 무산성(茂山城)이 있다. 여기에서 꺾어져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을 받아들이는데, 그 동쪽 언덕에는 조선의 양옹성(良雍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양영보(梁永堡)의 음이 변한 것이다.- 이 있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동북쪽으로 평지(平地) 가운데를 1백 수십 리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오는 물 세 개를 받아들이는데, 그 동남쪽 언덕에는 바로 조선의 방산보(方山堡) 및 회령(會寧), 고령(高岭)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고령진(高嶺鎭)이다-, 왕탄(王坦)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방원보(防垣堡)의 잘못된 표기이다.- 종성(鍾城), 동관(潼關), 옹대(雍大)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영달보(永達堡)의 음이 변한 것이다.- 등 일곱 성이 있는데, 모두 강가에 있다. 이곳에서 한 작은 물이 서북쪽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 북쪽 언덕에서 큰 산의 남쪽 기슭에 이르기까지 사이에는 갈합리하(噶哈里河)가 있다. 갈합리하는 북쪽의 흥안령(興安嶺) 서남쪽 기슭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여러 물을 합한 다음 꺾어져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복아합토하(卜兒哈兔河)를 합하고,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하는데, 이 역시 큰 하천이다. 이곳과 마주한 남쪽 둔치에 바로 조선의 온성(穩城)이 있다. -갈합리하는 흥안령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다가 북쪽에서 흘러온 한 물을 합하고, 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 합달하(哈達河)가 있어, 서북쪽에 있는 마아호리령(馬兒呼里嶺)의 큰 산에서 나와 몇 개의 근원에서 나온 물을 합한 다음 동남쪽으로 흘러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꺾어져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활혼산(活渾山)에서 나온 애의육하(艾衣六河)를 합한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활궤하(活几河) 및 동쪽에서 흘러오는 살기고하(薩其庫河)를 받아들이고,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살극득향령(薩克得享嶺)의 부아합하(付兒哈河)를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합순하(哈順河)를 받아들인다. 갈합리하는 근원에서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미 400여 리를 흘러왔는데, 이곳에서 다시 복아합토하가 서쪽에서 와서 합해져, 두 개의 큰 물이 와서 모이는 것이다. ○ 갈합리하는 다시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흘러 토문강과 합류한다.- 토문강은 여기에서 꺾어져 동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세 개의 작은 물을 받아들인다. -한 물은 이름이 없고, 한 물은 호란하(呼蘭河)라고 하고, 한 물은 미첨하(米瞻河)라고 한다.- 여기의 남쪽 둔치에는 조선의 미천진성(美踐鎭城)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미전진성(美錢鎭城)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 있다. 여기에서 꺾어져 동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는데, 이곳에 또 동영액하(東英額河)가 있어 흘러 와서 합류한다. 이곳의 서쪽 둔치에는 바로 조선의 순진성(循鎭城)이 있고, 남쪽은 경원부성(慶源府城)이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휘춘촌(輝春村)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혼춘촌(渾春村)이다.- 의 서남쪽을 지난 다음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 휘춘하(輝春河)가 있어 동북쪽에서 나와 10여 개의 물을 합한 다음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합류한다. -휘춘하는 동북쪽에 있는 여러 산속에서 나와 서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우비첨사리하(牛非尖舍利河)와 서쪽에서 흘러오는 부답족혼하(夫答足渾河)를 합한다. 그런 다음 꺾어져서 서남쪽으로 100여 리를 흐르면서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서백하(西白河)와 서북쪽에서 흘러오는 심계랍고하(心鷄拉庫河)를 합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쪽으로 1백 수십 리를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합이달산(哈爾達山)의 물 및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한 물, 남쪽에서 흘러오는 호로하(虎魯河), 이아하(你牙河), 하화리하(下禾里河)를 합한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북쪽에서 흘러오는 합달하(哈達河), 늑특하(勒忒河)를 합하고, 다시 서남쪽으로 수십 리를 흐르면서 동쪽에서 흘러오는 합달하를 합한다. 그러고는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토문강은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100리를 흐르면서 조선의 서쪽 언덕에서 흘러오는 물 두 개를 받아들인다. -한 물은 경원부(慶源府)의 남쪽 물로, 서남쪽에 있는 산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가고, 한 물은 전원포(前元舖) 앞 물로,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가는데, 길이가 100여 리이다. ○ 삼가 살펴보건대, 경원부의 남쪽 물은 바로 오룡천(五龍川)으로, 그 근원이 회령부(會寧府)의 갈성령(葛城嶺)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건원보(乾原堡)에 이르러서 두만강으로 들어간다. 전원포(前元舖)는 바로 안원보(安原堡)의 잘못된 표기이다.- 여기에서 꺾어져 남쪽으로 20리를 흐른 다음 다시 꺾어져 동쪽으로 흐르면서 남쪽 둔치의 한 물 -바로 아산포(阿山舖)의 남쪽에 있는 한 물로, 길이가 1백 수십 리이다.- 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다시 꺾어져 동북쪽으로 20여 리를 흐르면서 -바로 오아곤산(烏兒滾山)의 남쪽에서 80리쯤 되는 곳이다.- 동쪽 둔치에는 무산성(茂山城)이 있는데 -삼가 살펴보건대, 무산(茂山)은 아마도 중국쪽의 성 이름인 듯하다.- 북쪽의 물을 받아들인다. 이 물 이름은 서수락천(西水洛川)으로, 그 근원이 동원(東源) -삼가 살펴보건대, 동해(東海)로 되어야 한다.- 가에 있는 큰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에서 흘러온 물 두 개를 받아들이고, 다시 북쪽으로 굽이굽이 흘러 무산성의 동쪽을 지난 다음 꺾어져서 무산성 북쪽으로 지나서 서쪽으로 흘러 토문강으로 들어간다. 또 북쪽에 한 물이 있는데, 이름은 없으며, 그 남쪽 둔치의 물굽이진 곳에 바로 조선의 경흥성(慶興城)이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큰 바다로 들어간다. -해구(海口)의 위치는 동경 14도 5분, 북위 42도 5분이다. 해구의 남쪽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그 동쪽에 있는 하나의 산이 바로 대도살합(代都薩哈)이다. 또 동쪽으로 수십 리 되는 곳이 바로 서사하도(西思河島)이다. 섬과 산의 북쪽은 바로 화탁화하(火擢火河)의 해구이다. 이 강은 근원에서부터 1000여 리를 흐르는데, 서쪽 둔치의 경흥성에서 남쪽 물가까지를 색봉파(索鳳坡)라고 하고, 다시 남쪽으로 대해구(大海口)까지를 서수락성(西水洛城)이라고 한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토문강, 도문강, 통문강, 두만강은 모두 한 강으로, 음이 변한 것이다. 《대청개국방략(大淸開國方略)》을 보면, 장백산은 압록강, 혼동강(混同江), 애호강(愛滹江) 세 강의 물이 나오는 곳이라고 하였다. 애호강은 바로 《대명일통지》에서 말한 아야고하(阿也苦河)가 음이 변한 것으로, 역시 두만강이다. 두만강의 근원은 백두산의 남쪽, 갑산부(甲山府)의 천평(天坪)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무산부의 서쪽으로 지나고 회령부의 경계에 이르러서 오른쪽으로 알목하(斡木河)와 팔하천(八下川)을 지난다. 여기에서 꺾어져 북쪽으로 흘러 온성부의 북쪽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갈합리하(葛哈里河) -중국쪽 지역에 있다.- 를 지나고,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경원부(慶源府)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후춘강(後春江) -바로 혼춘하(渾春河)로, 중국쪽 지역에 있다.- 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오룡천(五龍川)을 지난다. 여기에서 다시 동쪽으로 흘러 경흥부의 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 합란하(合蘭河)
《원사(元史)》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합란부(合蘭府), 수달달로(水達達路) 등지에 5개의 군민만호부(軍民萬戶府)를 설치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호리개(胡里改)로, 이곳에는 호리개강(胡里改江)과 혼동강(混同江)이 있으며, 또 합란하(合蘭河)가 있어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호리개는 금나라의 호리개로(胡里改路)로, 지금 우리나라 육진(六鎭) 북쪽, 영고탑(寧古塔) 동쪽 지역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 동북계연혁 합란부조(合蘭府條)에 상세하게 나온다.- 호리개강은 바로 오소리강(烏蘇哩江)이다. 지금 육진 북쪽의 물로써 스스로 바다에까지 도달하면서 크기로도 오소리강과 나란히 칭할 만한 강으로는 두만강이 있을 뿐이다. 그런즉 합란하는 바로 두만강인 듯하다.
부(附)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의 북쪽인 달단(韃靼)과의 경계 지역에 큰 강이 있는데, 이름을 보려천(保呂川)이라고 하며, 그 너비가 15리이다. 매년 8월에서 3월까지는 강물이 굳게 얼어 강을 메우는데, 얼음의 두께가 세 자 남짓이나 되어 육지에서와 같이 배 밑에 수레바퀴를 달아 밀고서 다닐 수가 있으며, 사람들은 신발 바깥쪽에 못을 박고서야 걸어다닐 수가 있다. 3월 이후에는 얼음이 풀려서 다시 큰 강이 된다. -삼가 살펴보건대, 보려천은 두만강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너비가 15리나 된다고 한 것은 망녕된 것으로, 상고할 수가 없다.


 

[주D-001]그 동쪽의 바닷물은 : 원문에는 ‘其東南海水’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其東面海水’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2]수구가 …… 있다 : 원문에는 ‘縣海中有島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懸海中有島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하도 같다.
[주D-003]우선산(遇仙山) : 원문에는 ‘右仙山’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4]여도(㻌島) : 원문에는 진도(鎭島)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5]및 …… 다음 : 원문에는 ‘之延山城之南’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及延山城之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6]홍천현(洪川縣) : 원문에는 홍주현(洪州縣)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7]칠중성(七重城) :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積城)이다. 칠중성은 진평왕(眞平王)과 선덕왕(善德王) 때 신라 북경(北境)의 요충지로써 신라와 고구려 간 교통로의 중심이었다.
[주D-008]무협(巫峽) : 양자강의 상류에 있는 세 협곡 가운데 하나로, 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주D-009]성산(成山) :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동쪽 끝에 있는 산동성 영성현(榮成縣)이다. 성산(城山)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주D-010]주류성(周留城) : 지금의 충청남도 한산(韓山) 지방에 있던 백제의 성으로, 지라성(支羅城)이라고도 한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금강(錦江) 하류의 한산 부근에 있는 건지산성(乾至山城)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주D-011]백촌강(白村江) : 《당서》에는 백강(白江), 《삼국사기》에는 기벌포(伎伐浦)로 되어 있다. 강경(江景) 근처의 금강(錦江)이라는 설과 변산반도(邊山半島) 남쪽의 줄포만(茁浦灣)이라는 설이 있다.
[주D-012]서남쪽으로 …… 지나 : 원문에는 ‘西南流經黃磵縣山’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西南流經黃磵縣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3]또다시 …… 이르러서 : 원문에는 ‘又西南置燕岐縣之南’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又西南至燕岐縣之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4]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 : 원문에는 ‘兩朝平壤錄’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하도 같다.
[주D-015]임천(瀶川) : 원문에는 ‘臨川’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6]아리나예하(阿利那禮河) : 낙동강(洛東江)이나 알천(閼川)이라는 설이 있으나, 반드시 고유명사로 보이지는 않고 대하(大河), 대수(大水)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인 듯하다.《韓國學基礎資料選集 古代篇, 227쪽 주》
[주D-017]요동고새(遼東故塞) : 이병도(李丙燾)는 요동고새는 바로 번한새(番汗塞)라고 하였다.《韓國古代史硏究 71쪽)》
[주D-018]공지(空地)인 상장(上障)과 하장(下障) : 이병도는, “공지는 일종의 완충 지대로서, 인민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은 까닭에 공지라 한 것이다. 그리고 상하장(上下障)은 상하 두 곳의 장새(障塞)를 말한 것으로, 상장은 번한새(番汗塞), 즉 박천(博川)을 말한 것이고, 하장은 열수(列水), 즉 대동강(大同江) 북안(北岸)에 비정(比定)되어야 한다.” 하였다.《韓國古代史硏究 71~72쪽》
[주D-019]600리 : 60리의 잘못된 표기이다. 《수서(隋書)》에는 60리로 되어 있다.
[주D-020]다시 …… 이르는데 : 원문에는 ‘又西經南至三和城東南’으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又西稍南至三和城東南’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1]격수(湨水) : 패수(浿水)의 잘못된 표기이다. 패수는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그 위치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서로 달라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패수의 위치에 대해, 안정복(安鼎福)은 대동강으로, 정약용(丁若鏞)은 압록강으로, 이병도(李丙燾)는 청천강으로, 북한의 학자들은 대릉하(大凌河)로 비정하여 일정하지 않다.
[주D-022]이곳이 …… 말인가 : 원문에는 ‘河與於燕朝鮮之界耶’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何與於燕朝鮮之界耶’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3]다하(茶河)와 타하(陀河) 두 하천 : 이에 대해서 김상기(金庠基)는, “이는 고려 측의 기록에 보이는 석천(石川) 즉 지금의 황화천(皇華川)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하와 타하 두 강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다타이(茶陀二)의 이(二)를 숫자로 본 데서 나온 착오이다.” 하였다.《高麗時代史 99쪽 주》
[주D-024]살수(薩水) : 오늘날의 청천강(淸川江)이다. 북한의 《조선전사》에는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라 소자하라고 하였다.《조선전사 제3권, 244쪽》
[주D-025]중강 개시(中江開市) : 의주(義州)의 건너편인 중강(中江), 즉 지금의 마자대(馬子臺)에서 열었던 중국과의 무역을 말한다. 임진왜란 중에 기황(飢荒)을 계기로 요동의 미곡(米穀)을 수입하기 위하여 선조 26년(1593)에 처음 열었으며, 난이 끝나고 선조 34년(1601)에 폐지하였다. 다음 해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다시 열었으며,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폐지하였다. 그 뒤 청나라가 개국하자 인조 24년(1646)에 다시 열었는데, 이를 중강 후시(中江後市)라 한다.
[주D-026]유가열전(留可列傳) : 원문에는 ‘有可傳’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광문회본 《해동역사》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7]홍단하(紅丹河) : 원문에는 ‘洪丹’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8]심계랍고하(心鷄拉庫河) : 원문에는 ‘心難拉庫河’로 되어 있는데, 《수도제강》 권26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