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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서지 |
권수제 |
존재집(存齋集) |
판심제 |
없음 |
간종 |
괘인사본(罫印寫本) |
간행년 |
철종 연간 필사(哲宗年間筆寫) |
권책 |
26권 13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20.6×14.2(cm) |
어미 |
上黑魚尾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
소장도서번호 |
奎12463 |
총간집수 |
한국문집총간 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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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성명 |
박윤묵(朴允默) |
생년 |
1771년(영조 47) |
몰년 |
1849년(헌종 15) |
초명 |
지묵(趾默) |
자 |
사집(士執) |
호 |
존재(存齋) |
본관 |
밀양(密陽) |
특기사항 |
정이조(丁彛祖)의 문인(門人). 천수경(千壽慶), 왕태(王太), 최면(崔沔), 지석관(池錫觀) 등과 교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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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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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거 : 行狀(金周敎 撰), 墓碣(尹定鉉 撰), 墓表(尹定鉉 撰, 梣溪遺稿 卷7), 朴弘梓墓碣(朴允默 撰) 등에 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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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력 |
왕력 |
서기 |
간지 |
연호 |
연령 |
기사 |
영조 |
47 |
1771 |
신묘 |
乾隆 |
36 |
1 |
10월 22일, 태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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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山 丁彝祚에게 배우다. ○ 스승 정이조가 癘疾에 걸렸을 때, 피하지 않고 곁에서 救護하다. |
정조 |
7 |
1783 |
계묘 |
乾隆 |
48 |
13 |
3월, 부친상을 당하다. |
정조 |
8 |
1784 |
갑진 |
乾隆 |
49 |
14 |
利安朴氏 朴載夏의 딸과 婚姻하다. |
정조 |
14 |
1790 |
경술 |
乾隆 |
55 |
20 |
규장각에서 교정 일을 시작하다. 正祖의 知遇를 받다. |
정조 |
17 |
1793 |
계축 |
乾隆 |
58 |
23 |
5월, 모친상을 당하다. |
정조 |
24 |
1800 |
경신 |
嘉慶 |
5 |
30 |
정조가 승하하다. ○ 이후 정조의 忌辰이 되면 王太와 함께 北山에 올라 健陵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
순조 |
3 |
1803 |
계해 |
嘉慶 |
8 |
33 |
夫人 朴氏의 喪을 당하다. |
순조 |
14 |
1814 |
갑술 |
嘉慶 |
19 |
44 |
8월, 「弘齋全書」를 강화 외규장각에 봉안하러 가다. ○ 장남 朴基福이 태어나다. |
순조 |
15 |
1815 |
을해 |
嘉慶 |
20 |
45 |
金剛山을 유람하다. |
순조 |
18 |
1818 |
무인 |
嘉慶 |
23 |
48 |
千壽慶을 곡하다. |
순조 |
19 |
1819 |
기묘 |
嘉慶 |
24 |
49 |
4월, 谷山 馳馬臺에 御製 비문을 세우다. ○ 5월, 監蕫한 공으로 通政大夫가 되다. ○ 북한산 太古寺에 보관 중인 四書三經의 板本을 중수하는 일에 참여하다. |
순조 |
20 |
1820 |
경진 |
嘉慶 |
25 |
50 |
12월, 차남 朴基祜가 태어나다. |
순조 |
21 |
1821 |
신사 |
道光 |
1 |
51 |
盧允迪을 곡하다. |
순조 |
24 |
1824 |
갑신 |
道光 |
4 |
54 |
9월, 李愼民, 金洛瑞, 王太와 佛巖山을 유람하다. |
순조 |
25 |
1825 |
을유 |
道光 |
5 |
55 |
김낙서를 곡하다. |
순조 |
26 |
1826 |
병술 |
道光 |
6 |
56 |
10월, 장남 朴基福의 冠禮를 치르다. |
순조 |
27 |
1827 |
정해 |
道光 |
7 |
57 |
御製를 글씨로 써 바친 공으로 嘉善大夫가 되다. |
순조 |
28 |
1828 |
무자 |
道光 |
8 |
58 |
張混을 곡하다. |
순조 |
31 |
1831 |
신묘 |
道光 |
11 |
61 |
6월, 景福宮 衛將이 되다. ○ 7월, 同知中樞府事가 되다. ○ 8월, 永禧殿 殿監이 되다. |
순조 |
32 |
1832 |
임진 |
道光 |
12 |
62 |
華城을 重修하는 데 監蕫이 되다. |
순조 |
34 |
1834 |
갑오 |
道光 |
14 |
64 |
魂殿都監 別看役으로 정성을 다하다. ○ 7월, 次男 朴基祜의 冠禮를 치르다. ○ 王太를 곡하다. |
헌종 |
1 |
1835 |
을미 |
道光 |
15 |
65 |
윤6월, 별간역으로 수고한 공으로 특별히 平薪鎭 僉使가 되다. ○ 부임한 후, 私財를 써서 기근을 당한 백성들을 구호하고 가난하여 혼인하지 못한 남녀들을 혼인시켜 주다. |
헌종 |
2 |
1836 |
병신 |
道光 |
16 |
66 |
첨사로 있으면서 南洲 崔沔과 교유하다. |
헌종 |
3 |
1837 |
정유 |
道光 |
17 |
67 |
4월, 잠시 上京하여 純祖와 翼宗의 御眞을 경복궁으로 移奉할 때 別看役 差備官이 되다. |
헌종 |
4 |
1838 |
무술 |
道光 |
18 |
68 |
봄, 僉使에서 체직되다. ○ 兼山 崔瑗과 금강산을 유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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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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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晩年에는 高陽 淸潭里 墳菴에서 대부분 거처하다. |
헌종 |
15 |
1849 |
기유 |
道光 |
29 |
79 |
2월 15일, 졸하다. 고양 청담리에 장사 지내다. |
철종 |
2 |
1851 |
신해 |
咸豐 |
1 |
― |
金周敎가 행장을 짓다. |
철종 |
3 |
1852 |
임자 |
咸豐 |
2 |
― |
尹定鉉이 묘갈을 짓다. |
철종 |
7 |
1856 |
병진 |
咸豐 |
6 |
― |
徐俊輔가 묘지명을 짓다. |
고종 |
17 |
1880 |
경진 |
光緖 |
6 |
― |
2월, 戶曹 判書에 추증되다. | 기사전거 : 行狀(金周敎 撰), 墓碣(尹定鉉 撰), 墓誌銘(徐俊輔 撰), 序(崔沔 撰), 跋(朴綺壽 撰), 本集內容 등에 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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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 및 간행 |
저자는 시와 글씨로 이름난 閭巷詩人으로, 오랫동안 奎章閣에서 書吏로 봉직하면서 많은 서적의 간행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여항 시인인 王太와 함께 正祖의 知遇를 받았다. 만년에는 平薪鎭 僉使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편에 서서 善政을 베풀었고, 백성들의 생활을 그린 사실적인 시들을 남겼다. 본집은 26권 13책으로 이루어진 罫印寫本이다. 이것은 저자 생존시에 이미 상당 부분 편차가 이루어진 自編稿를 바탕으로, 저자 사후에 아들들이 만년의 작품들을 보충 정리하여 완성한 것이다. 서문은 저자가 평신진 첨사로 있던 시기인 1836년에 崔沔이 쓴 것인데, 아마도 당시까지의 작품을 모아서 최면에게 보이고 서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徐俊輔가 쓴 저자의 묘지명에서 “君이 은퇴하여 나와 한가로이 지내면서 거의 매일 서로 만나 酬唱한 詩文이 수백 편이었는데, 내가 「存齋集」의 序文을 써 주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면, 평신진 첨사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저술을 정리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筆寫는 저자의 세 아들 朴基福ㆍ朴基祜ㆍ朴基祚가 분담하였다. 各冊 끝에 작은 글씨로 謄寫者가 표시되어 있는데, 장남인 朴基福은 2ㆍ6ㆍ8ㆍ9ㆍ10ㆍ11冊과 13冊의 卷26을 등사하였고, 次男인 朴基祜는 1ㆍ4ㆍ7冊을 등사하였으며 三男인 朴基祚가 3ㆍ5ㆍ12冊과 13冊의 卷25를 등사하였다. 謄寫 時期는 哲宗年間으로 추정된다. 부록 중 가장 나중에 쓴 저자의 墓誌銘(徐俊輔 撰)이 철종 7년인 1856년에 지어진 것이고, 권1의 목록 끝에 장남 朴基福이 보충한 詩 한 수의 필사 연도가 곧 철종 13년인 1862년이기 때문에 필사 시기를 1856년과 1862년 사이의 철종 연간으로 추정한 것이다. 부록 끝에 있는 〈追錄〉은 저자의 死後 1880년에 고종이 저자에게 내린 敎旨이지만, 필체로 보아 成冊된 이후 부록에 追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본은 현재 규장각(奎12463)에 소장되어 있다. 이본으로는 장서각장본(4-6480)인 「存齋稿」와 국립중앙도서관장본 「存齋詩集」(한45-가48)이 있다. 「존재고」는 규장각본과 동일하게 26권 13책이고, 저자의 손자 朴昌善이 등사한 것인데, 내용과 체재가 규장각본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규장각본을 祖本으로 謄寫한 寫本으로 판단된다. 「존재시집」은 저자의 손자 朴昌善이 1874년에 본집의 詩賦 중에서 일부만을 選別하여 등사한 것이다. 본서의 저본은 저자의 自編稿를 바탕으로 편차되어 哲宗 연간에 謄寫된 罫印寫本으로, 규장각장본이다. 본 영인 저본 중 권8의 목록은 卷尾題의 編次가 ‘七’로 誤記되어 있다.
기사전거 : 序(崔沔 撰), 跋(朴綺壽 撰), 行狀(金周敎 撰), 墓碣(尹定鉉 撰), 墓誌銘(徐俊輔 撰) 등에 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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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본의 구성과 내용 |
본집은 26권 13책으로 되어 있다. 卷首에 1836년에 崔沔이 지은 서문이 있고, 卷尾에 1842년에 朴綺壽가 지은 跋이 있다. 각 권마다 앞에 목록이 있다. 권1 앞부분에 賦 3편, 律賦 2편이 있다. 賦는 〈異鳥賦〉, 〈春鳥賦〉, 〈楸廬賦〉인데, 그중 〈이조부〉는 孝子로 旌閭된 저자의 증조 朴泰星에 얽힌 일화를 소재로 지은 것이다. 권1 중간부터 권22까지 2,600여 題의 詩가 실려 있다. 본집 중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시는 年代順으로 배열되었다. 저자는 주로 抒情的인 시들을 많이 지어 “맑고 깨끗하며 참신하다.”, “간결하고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년에 平薪鎭 僉使로 부임하면서는 〈寡婦歎〉, 〈海民〉 등과 같이 백성의 편에 서서 世態를 관찰한 寫實的인 작품도 많이 남겼다. 唱和하던 인물로 보아 千壽慶, 王太, 盧允迪, 張混, 金洛瑞 등 松石園을 중심으로 모이던 閭巷詩人들과 교유하였으며, 후반기에는 池錫觀의 七松亭에서 모이던 시인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권1 목록 末尾에 저자가 7세 때 지은 〈楸行望三角山有作〉이 별도로 부기되어 있는데, 文稿에서 누락된 것을 아들 박기복이 1862년에 추가한 것이다. 권6에 실린 〈內閣二十詠〉은 내각에 恩賜한 特鐘, 特磬, 琴, 瑟, 投壺, 八環盃, 畫盤, 玉盒, 革帿, 衣桁, 髮拂, 書案, 硯匣, 竹筆架와 새로 제조한 牙牌, 書籍牌, 金牌, 玉燈, 測雨器, 銅字를 소재로 지은 시이며, 권8에 실린 〈挽而已广張翁〉은 張混을 애도하는 3首로 된 만시이다. 권10에 실린 〈七賢悼亡詩〉는 예전에 松石園에서 노닐던 千壽慶, 金洛瑞, 張混, 李宜秀, 金泰郁, 王太, 盧允迪을 그리워하며 저자가 65세 때 지은 시이다. 권23에는 序(20), 記(9), 跋(4)이 실려 있다. 序에는 〈密陽朴氏族譜序〉와 〈玉溪詩史序〉, 〈平薪錄序〉 등이 있다. 記에는 水聲洞, 金仙菴, 日涉園을 유람하고 기록한 王太의 玉磬山房에 붙인 〈玉磬山房記〉, 千壽慶의 松石園에 붙인 〈松石園記〉 등이 있다. 跋에는 저자의 증조 朴泰星의 효행을 기록한 「旌孝錄」에 쓴 발, 詩社에서 지어진 白戰詩를 모은 「白戰帖」에 쓴 발 등이 있다. 권24에는 贊(7), 銘(11), 說(10), 論(2), 墓碣(2)이 있다. 贊에는 저자가 근무하던 鑄字所에 보관되어 있던 활자인 衛夫人字, 韓構字, 生生字, 整理字에 대해 지은 〈鑄字贊〉, 명필이었던 黃運祚의 글씨에 대해 지은 〈道谷黃公運祚筆贊〉, 德山 伽倻山을 여행하다 우연히 얻은 사자 모양의 그루터기에 대한 〈木獅贊〉 등이 있다. 銘에는 저자 신변에서 볼 수 있던 紙器, 文房四友, 깨진 그릇 등에 대한 〈紙祭器銘〉, 〈文房四友銘〉, 〈破盂銘〉 등이 있다. 說에는 〈知命說〉, 〈讀太極圖說〉, 〈明德說〉, 〈好靜說〉 등 성리학과 易學에 관한 설과 조카인 朴基直, 朴基誠, 장남 朴基福에 대한 命名說이 있다. 論에는 〈死生論〉, 〈筆論〉이 있는데, 〈필론〉에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筆體에 대해 언급하면서 筆勢를 터득하기 어려움을 말하였다. 墓碣에는 저자의 高祖妣인 淑夫人 金氏에 대한 것과 부친인 朴弘梓에 대한 것이 있다. 권25에는 雜著(19), 祭文(23), 上樑文(2)이 있고, 끝에 朴綺壽가 지은 跋이 있다. 잡저에는 자신을 경계하는 〈自警文〉과 새로 시집온 부인에게 당부하며 준 글인 〈閨誡〉 등이 있다. 특이한 것으로 종이, 붓, 먹, 벼루, 술을 비유한 5편의 假傳 〈楮白傳〉, 〈毛元鋒傳〉, 〈陳玄傳〉, 〈石坦中傳〉, 〈麴淸傳〉이 있다. 제문에는 친척과 교우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저자의 첫 아내 利安朴氏에 대한 제문은 특히 애절하다. 또한 제문에는 松石園에서 함께 노닐던 李宜秀, 池德龜, 金洛瑞, 王太에 대한 것이 실려 있다. 권26은 附錄으로, 金周敎가 지은 行狀, 徐俊輔, 權大肯 등이 지은 輓詞 7편, 尹定鉉이 지은 墓碣, 徐俊輔가 지은 墓誌銘이 실려 있다. 마지막에 있는 追錄은 저자 사후 32년이 되던 1880년에 아들 박기복이 資憲大夫에 오르자 법전에 의거하여 내려진 追贈 敎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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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김진옥(金鎭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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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鳥歌 爲淸潭孝子朴泰星作
高陽之山靑寂寞。澄潭一曲搖寒玉。上有孤松老兀然。墳西一枝春無綠。孝子廬墓西畔松樹。異鳥來坐。隨孝子晨昏啼哭。所坐之枝獨枯云。枝頭有鳥不知名。毛衣鮮白雜靑黑。啼來吊孤兒。孤兒相對哭。孤兒五更起。鳥亦五更集。一哭山石裂。再哭山月泣。三哭颯颯悲風作。空山百鳥驚蹢躅。淚盡心苦聲酸絶。口吻咽咽逾廹促。孤兒不在山。鳥去雲天上寥廓。孤兒復還山。鳥來繞樹鳴相逐。鳥來爾何意。不語對以臆。孤兒六十老爲翁。孺子之泣如一夕。終身慕父不識面。平居未改顔深墨。塚傍結廬終老計。徵辟不應諸公檄。主上嘉之表其閭。丹楣粉題耀窮峽。皦皦精忱質白日。天公下視一於邑。爲遣仙禽降翩然。獨托靑林月中宿。哀號似說落星心。淸血非爲山花色。倘微求爲歷山耘。無乃願作王祥炙。君不見精衛之鳥爲父塡海死。觜禿不辭啣木石。又不見蘓耽化鶴上太淸。戀母歸來聲痛廹。此鳥應知二鳥魂。不然胡爲孝子屋丘壠。秋啼霜露中。楟花未落陔蘭碧。嗚呼此鳥誠可異。吾將喚取黃荃畫手來盤礴。丹靑一寫此鳥眞。寄向山中喜事客。他年鄕社祭孝子。與掛祠中一面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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