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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의 보은 참배

아베베1 2008. 12. 28. 16:58
대전일보

300년전 보은의 참배

기사입력 2006-06-14 11:33 |최종수정2006-06-14 11:33


해주 정씨와 전주 최씨 두 문중이 300년전 인연을 계기로 ‘보은의 정’을 나누는 뜻깊은 행사가 13일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서 진행됐다.

일제에 의해 약탈됐다 100년만에 돌아온 뒤 원래 장소인 북한에 인도된 북관대첩비의 주인공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 장군 후손들이 이 전승비를 세운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1669-1720) 선생의 대율리 묘소를 찾아 예를 갖춘 것.

전주 최씨 집성촌인 대율리 등에 살고 있는 곤륜의 후손 10여명도 먼곳을 마다않고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곤륜의 묘를 참배하고 제를 올린 이들은 농포와 그의 동생 후손인 해주 정씨 화수회(회장 정순섭·70) 회원 40여명.

대부분 경남 진주에 주소를 두고 있는데 300년 전 선조가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관광버스를 빌려 낯선 청원땅을 찾게 됐다.

두 가문의 인연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문부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28세의 나이에 함경도 북평사로 재직중 반란을 진압한데 이어 의병장으로 추대돼 곳곳에서 왜군과 싸워 전승을 거뒀고 북방 오랑캐들의 침입도 막아냈으나 공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농포는 사후 43년이 지나서야 함경도 북평사 이단하 부자 등의 노력으로 복권돼 충의(忠毅) 시호를 받았으며 1700년 함경도 북평사에 부임한 최창대는 농포의 공적을 기려 9년 뒤 길주군(지금의 김책시)에 대첩비를 건립했다.

최씨 문중에 곤륜집의 시 한수를 액자로 만들어 선물한 화수회측은 “곤륜 선생은 시를 70여수 남긴 대문호”라며 “선생은 농포 할아버지와 우리 문중을 빛내주신 분”이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최씨 문중측 관계자는 “곤륜 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주화론을 주장했던 지천 최명길 대감의 증손으로 암행어사, 사간, 대사성 등을 지냈다”며 “정씨 가문의 훌륭한 점을 후손 대대로 강조하겠다”고 화답했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반출해 야스쿠니신사에 보관했던 북관대첩비는 지난해 10월 환국했으며 지난 3월 북한으로 넘겨져 제자리에 복원됐다.<淸原=嚴在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