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다산 정약용 기성잡기

초봄에는 흰 털이 두 개가 났었지만 / 初春兩個白毛新 (다산 문집4권)

아베베1 2010. 2. 11. 21:31

다산시문집 제4권
 시(詩)
기성잡시(鬐城雜詩) 27수


3월 9일 장기(長鬐)에 도착하여 그 이튿날 마산리(馬山里)에 있는 늙은 장교(莊校) 성선봉(成善封)의 집을 정하여 있게 됐다. 긴긴 해에 할 일이 없어 때로 짧은 시구나 읊곤 하였는데 뒤섞여 순서가 없다.
성산포 포구에는 바위가 수문인데 / 星山浦口石爲門
동으로 부상까지 물만이 아스라하다 / 東直扶桑水氣昏
용이 와서 섬 없앴다는 말 믿을 수 있겠는가 / 豈有龍來平島嶼
계림의 육부 역시 황폐한 마을이었다네 / 鷄林六部亦荒村
성산(星山)은 경주에 있는데, 지방인들 전설에 의하면 신용(神龍)이 포구 에서 나와 모든 섬들을 다 깎아 없애버렸기 때문에 동해에는 섬이 없다는 것임.
모려령 위엘랑은 제발이지 가지 말게 / 莫向毛黎嶺山行
우거진 숲 험한 비탈이 시름을 자아낸다 / 蓁蓁厓崿使愁生
눈앞에 펼쳐진 끝도 없는 푸른 물이 / 眼前一碧無邊水
하이필련성을 연상케 만든다네 / 如見蝦夷匹練城
산꼭대기 쓸쓸하게 사십 채 있는 인가 / 峯頂蕭條四十家
비뚤어진 거적문이 지다 남은 꽃 속에 있네 / 縣門敧側倚殘花
물을 마실 샘이라곤 도무지 없어서 / 都無一眼泉供飮
성 위에다 줄 매달고 수차를 쓰리라네 / 將謂縋城用水車
조해루 용마루에 석양빛이 붉을 무렵 / 朝海樓頭落日紅
관리가 나를 몰아 성 동쪽에 나왔더니 / 官人驅我出城東
시냇가 자갈밭에 오막살이 한 채 있고 / 石田茅屋春溪上
농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집 주인일레 / 也有佃翁作主翁
집집마다 두 길 넘게 울짱을 세워두고 / 樹柵家家二丈强
처마 머리에 그물 치고 긴 창들을 꽂아놓았다 / 櫩頭施罟揷長槍
왜 이다지 방비가 심하냐고 물었더니 / 問渠何苦防如許
예부터 기성에는 범과 이리가 많아서라네 / 終古鬐城壯虎狼
여인들 말씨 화가 난 듯 또 어쩌면 애교스러워 / 女音如慍復如嬌
손목처럼 쓴다 해도 묘사를 다 못해 / 孫穆書中未盡描
한 푼도 돈을 들여 다리 살 생각을 않고 / 不用一錢思買髢
두 가닥 머리채를 이마 앞에다 매둔다네 / 額前紅髮揷雙條
새로 짠 생선기름 온 집안이 비린 냄새 / 新榨魚油腥滿家
들깨도 안 심는데 참깨가 있을쏜가 / 靑蘇不種況芝麻
김 무침 접시에선 머리카락 끌려나오고 / 石苔充豆朼牽髮
가마솥에 지은 돌벼밥 모래가 있네그려 / 山穭烹銼飯有沙
구름 바다 사이의 한 조각 외로운 돛 / 一片孤帆雲海間
울릉도 갔던 배가 이제 막 돌아왔다네 / 藁砧新自鬱陵還
만나자 험한 파도 어떻던가는 묻지 않고 / 相逢不問風濤險
가득 실은 대쪽만 보고 웃으면서 기뻐한다 / 刳竹盈船便解顔
울릉도는 강릉(江陵) 바다 속에 있음.
애들은 항구에 가 고기잡게 말지어다 / 休放兒童港口漁
여덟 발 문어에게 걸려들까 무서워야 이 고기는 사람을 만나면 다리로 사람을 휘감아 물 속으로 끌어들임. / 怕他纏著八梢魚
근년에는 해구신이 이상하게 값이 뛰어 / 年來膃肭逢刁踊
서울에서 재상들이 서신 자주 보낸다네 / 頻有京城宰相書
동산의 뇌록도 그 역시 진기하여 / 東山磊碌亦奇珍
돌에 박힌 파란 줄기가 복신처럼 생겼구나 / 石髓靑筋似茯神
염국에서 공물로 그를 받지 않았기에 / 染局不曾充歲貢
영릉의 종유혈이 천 년 내내 계속이라네 / 零陵乳穴自千春
뇌성산(磊城山)에서 녹석(綠石)이 나는데, 염료(染料)로 쓸 수 있는 돌로 그 지방 사람들이 그를 일러 뇌록(磊碌)이라고 하였음.
마산 남쪽에 자리잡은 죽림서원 / 竹林書院馬山南
느릅나무 대나무가 궂은비 속에 있네 / 脩竹新楡宿雨含
멀리서 온 납촉을 줘도 받지 않으면서 / 蠟燭遙來投不受
그래도 마을 사람들 송우암은 들먹인다 / 村人猶說宋尤庵
온돌방 한 칸에다 시원한 마루 한 칸 / 炕室涼軒各一間
주인과 마주 보면 서로 웃는 얼굴이지 / 主人相對有歡顔
새로 막은 대나무 울 엉성하기 그물 같아 / 新補竹籬疏似網
앞산이 막혀서 못 볼 걱정은 없다네 / 不愁遮斷面前山
제주도산 말총모자로 소나무와상 기대앉아 / 乇羅騣帽據松牀
일본산 자기 잔에다 보리숭늉을 마신다 / 日本瓷杯進麥湯
금년에는 해초들이 모두 잘 말랐는데 / 海菜今年都善曬
이른봄 날씨가 맑고 시원한 덕이라네 / 早春風日幸淸涼
밥은 쌀로 국은 고기로 그것이면 그만이고 / 飯稻羹魚事便休
꽃과 나무 그걸 놓고 한가한 시름 않아 / 不將花木費閒愁
울 사이에 울퉁불퉁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가 / 籬間擁腫知何木
잎 피기에 보았더니 그게 바로 석류였네 / 新葉看來是海榴
금화전에 오르고 옥당에 있을 생각 말게 / 休上金華倚玉堂
고기잡이 생리는 부러운 게 어부라네 / 魚蠻生理羨漁郞
아내 맞이할 때에는 고래수염 자를 주고 / 迎妻好贈鯨鬚尺
자식 분가시킬 때는 게딱지솥 나눠준다 작은 솥을 시속에서는 게딱지(蟹甲)라고 함. / 析子皆分蟹甲鐺
밥 먹고는 잠을 자고 잠을 깨면 배가 고파 / 飯罷須眠眠罷飢
배고프면 술 찾는데 금사주를 데우라지 / 飢來命酒爇金絲
도무지 소일을 할 만한 일은 없고 / 都無一事堪銷日
이웃 영감 때로 와서 장기 두는 게 고작이야 / 隣叟時來著象棋
봄을 나자 습증이 중풍으로 변했는데 / 病濕經春癱瘓成
북녘 태생이 남쪽 음식에 적응을 못해서지 / 北脾不慣喫南烹
비방인 창출술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 思服禁方蒼朮酒
약솥 들고 종은 와서 고향을 묻네그려 / 小奴持鑱問鄕名
이 인생 그르친 것 책인 줄을 잘 알기에 / 書卷深知誤此生
여생 동안은 맹세코 그 은정 끊으렸더니 / 餘生逝與割恩情
아직도 마음속엔 그 뿌리가 남아 있어 / 心根苦未消磨盡
이웃 아이 책 읽는 소리 누워서 듣노라네 / 臥聽隣兒讀史聲
놀도 아니요 구름도 아닌 보리가 크는 하늘 / 非靄非雲養麥天
복숭아는 술 취한 듯 버들눈은 조는 듯 / 小桃如醉柳如眠
슬슬 걸어 산 구경갈 생각이야 없으랴만 / 緩豈無步看山意
틀어박혀 지은 죄를 생각할 뿐이라네 / 只得深居念罪愆
옛날에는 오서에 올라 지는 해를 보았더니 / 憶上烏棲落日看
오늘은 또 동해에서 뜨는 해를 보네그려 / 桑溟又見浴金盤
내 어찌 동해 서해 다 구경하는 몸이던가 / 吾遊豈盡東西海
강토가 원래 그리 넓지를 않아서지 / 疆場由來未許寬
옛날 금정(金井)에서 귀양살이할 때 오서산(烏棲山)에 올라가 해지는 것을 구경한 일이 있었음.
초봄에는 흰 털이 두 개가 났었지만 / 初春兩個白毛新
한 개는 검은 편이고 하나만 하얗더니 / 一個猶玄一個純
이곳에 와서는 또 하나가 더 보태져서 / 此地又來添一個
세 개 모두 천연스레 하얗기가 은빛 같네 / 天然三個白如銀
푹푹 찌는 비린내에 파리가 너무 많아 / 鮑腥蒸鬱苦多蠅
밥은 늘 늦게 들고 잠은 늘 일찍 깨네 / 飯每徐抄睡早興
이는 분명 하늘이 게으름을 징계함이리 / 天意分明懲懶散
옛사람이 무단히 부를 써서 미워했지 / 昔人詞賦枉相憎
살 깨무는 빈대 통에 잠을 잘 수가 없고 / 鼈蝨噆肌睡不成
벽에는 또 지네가 다녀 사람을 놀라게 하지 / 吳公行壁又堪驚
작은 벌레들 이빨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 須知䘌齒非吾有
그렇게 생각하고 저들 멋대로 하랄 수밖에 / 念此怡然順物情
날 따뜻해 작은 밭에 장다리꽃 활짝 피니 / 小園風暖菜花開
노랑나비 퍼렁벌레 번갈아 드나든다 / 黃蝶靑蟲遞去來
저걸 보면 장주가 물화를 알았나봐 / 證得莊生知物化
죽장 짚고 느릿느릿 거닐면서 서성대네 / 徐携竹杖悄徘徊
옛날에 검정실로 짠 작은 은낭 너를 / 疇昔烏繩小隱囊
나 혼자서 끌어안고 이곳저곳 다 갔었지 / 隻身携汝到殊方
누우나 서나 네가 꼭 필요해서뿐 아니라 / 非唯臥起相須切
아버지가 만지시던 손때가 묻어서란다 / 爲是摩挲手澤方
은낭은 선인(先人)께서 쓰시던 것임.
서남해 바다 물빛 금릉과 맞닿아서 / 西南海色接金陵
장사배가 며칠이면 이곳까지 닿는다네 / 商舶東來數日能
경뢰가 바라보인다 그 말 믿지 못했더니 / 未信瓊雷解相望
빽빽하게 모인 섬들 푸르르고 험하구나 / 叢攢島嶼碧崚嶒


[주D-001]하이(蝦夷) : 고대 일본 북단에 거주하던 미개 종족.
[주D-002]필련성(匹練城) : 백마(白馬)를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곳.
[주D-003]손목(孫穆) : 송(宋) 나라 사람. 그가 쓴 《계림유사(鷄林類事)》에 고려 시대의 어휘 3백 50 단어가 한자(漢子)로 표기되어 있음.
[주D-004]복신(茯神) : 식물 이름. 산 속의 소나무 뿌리 밑에서 기생하는 식물로 겉은 검고 속은 희거나 혹은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괴구상(塊球狀)이며 속에 소나무 뿌리의 심이 박혀있는 것을 복신(茯神)이라 하고, 심이 없는 것은 복령(茯苓)이라고 함.《本草 茯苓》
[주D-005]영릉의 …… 계속이라네 : 국가에서 뇌록을 공물(貢物)로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시달림을 받지 않고 뇌록은 뇌록대로 흥청망청 있음. 중국 영주(永州) 영릉현(零陵縣)에서 석종유(石鍾乳)가 생산되는데, 국가에서는 그것을 공물로 받았기 때문에 해마다 힘들여 그것을 채취하고서도 별 보상도 받지 못한 지방민들이 그에 싫증을 느끼고는, 그곳 석종유가 이제 바닥이 나고 없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다가 그 후 5년이 지나서 최민(崔敏)이 영주 자사(永州刺史)로 부임하여 선정(善政)을 베풀자 그곳 백성들이, 이제 석종유가 되살아났다고 보고하였다는 것이다. 유종원(柳宗元)의 〈영릉복유혈기(零陵復乳穴記)〉
[주D-006]금사주 : 닭을 넣어 함께 삶은 술.
[주D-007]옛사람이 …… 미워했지 : 송(宋)의 구양수(歐陽脩)가 〈증창승부(憎蒼蠅賦)〉를 써 파리의 구차하고 얄미운 몰골을 역력히 그려 놓았음.
[주D-008]물화 : 만물의 자연법칙에 따라 변화하는 것.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옛날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나비로서 마냥 즐겁기만 하여 그것이 전부이고 다시 장주가 있음을 몰랐다가, 막상 깨고 보니 놀랍게도 또 그대로 장주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분간할 길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 장주는 장주이고, 나비는 나비라는 구별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일러 물화(物化)라고 하는 것이다.” 하였음.
[주D-009]은낭 : 주머니 모양으로 된 몸을 기대는 도구. 곡침(靠枕).
[주D-010]경뢰(瓊雷) : 해협(海峽) 이름. 중국 광동성 뇌주반도(雷州半島)와 남해도(南海島) 사이에 위치한 경주해협(瓊州海峽). 일명 뇌주해협(雷州海峽)이라고도 하는데 홍콩[香港] 등지나 원남해협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