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自北漢回至洗劍亭 戲爲六言

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

아베베1 2010. 2. 18. 23:50

나무는 뿌리를 흙 속에 감추어야만 봄에 잎이 성하게 피고, 사람은 몸을 감추어야만 정신이 속으로 살찐다.

[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는 이 말은 주 부자가 일생 동안 자신에 수용(受用)했던 말이다

한수제문집

 

우암 선생(尤菴先生)의 수필(手筆)에 발함


“나무는 뿌리를 흙 속에 감추어야만 봄에 잎이 성하게 피고, 사람은 몸을 감추어야만 정신이 속으로 살찐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는 이 말은 주 부자가 일생 동안 자신에 수용(受用)했던 말이다. 그런데 우리 우암 선생이 손수 쓰신 처회(處晦) 두 글자가 지금 최우 성중(崔友成仲 최징후(崔徵厚))에게 보장(寶藏)되어 있으니, 선생께서 이것을 손수 쓰신 것 또한 혹 주 부자의 뜻과 같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아, 무이정사(武夷精舍)는 아득히 멀고 화양동(華陽洞)은 적막하기만 하니, 후생들로서 가슴에 새겨 잃지 말아야 할 것이 그 서로 전해 온 이 요어(要語)에 있지 않겠는가. 성중이 나에게 한마디 기록해달라고 하기에 삼가 절하고 공경히 제(題)한다. - 최성중의 이름은 징후(徵厚)이다.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권
 시(詩)
산중사(山中辭)


산은 그윽하여 하도나 깊고 / 山之幽兮深深
수목은 울창하여 깊숙도 해라 / 鬱蕭森兮潭潭
황곡도 꼭대기를 넘어갈 수 없음이여 / 黃鵠尙不得過其顚兮
우뚝 서서 가파르게 깎아질렀네 / 截然屹立乎嶄巖
깊어서 엿볼 수 없어라 산의 음지쪽 / 邃莫覷兮山之陰
흐릿하게 서리 이슬 흠뻑 젖었네 / 曖霜露兮濡霑
표범과 원숭이는 갈음하여 나와 울고 / 文豹玄猿兮迭出以噑
나는 새는 빙빙 돌며 깃을 드리우도다 / 飛禽回翔兮毛羽之毿毿
요란한 우레는 밑 없는 구멍에서 분출하여 / 殷其雷奔于無底之竇兮
바람까지 곁들여 깊은 숲 흔들어 대누나 / 振蕩林莽翼之以飛廉
돌 모서리는 삐죽 나와 옷을 끌어당기고 / 石出角以鉤衣兮
나뭇가지는 길 가로막고 서로 찔러 대네 / 橫枝截路以相攙
이웃도 없이 적막하게 서 있음이여 / 立寂寞以無隣兮
기초의 온화함은 희미하기만 하도다 / 怳祈招之愔愔
멀어서 찾을 수 없어라 산의 중앙을 / 夐不可討兮山之中
동서가 아득한데 기식만 헐떡거리네 / 東西冥迷兮氣奄奄
폭포가 흘러 절벽에 쏟아져 내려라 / 淙飛泉以瀉于崖兮
폐부를 씻어 주고 맛 또한 좋구려 / 淸肺腑而味甘
차가운 얼음을 손에 움켜쥐어라 / 掬之手中兮氷寒
쇠한 낯을 비추어 바로 거울이로세 / 照衰顔以是監
이리저리 거닐며 물소리를 들으니 / 爰流憩以聽其聲兮
쟁글쟁글 패옥 소리도 함께 울리네 / 鏘玉佩之相參
부싯불 켜서 차를 달이려 하노니 / 將敲火而煎茶兮
육우의 입 침 흘린 게 비루하여라 / 鄙陸羽之口饞
부러워라 반곡이 배회할 만함이여 / 羨盤谷之可沿兮
더구나 그 글은 나의 지남이 됨에랴 / 矧其文爲我之指南

천재에 도통(道統)의 실마리를 이음이여 / 續道緖於千載兮
그 시내를 염계(濂溪)라고 명명했는데 / 乃命其溪曰濂
오직 산중에 짝할 이가 없어서 / 惟山中之無偶兮
위로 염계를 스승으로 삼았노라 / 尙摳衣於丈函
한마디 말 듣고 도를 깨달아서 / 聞一言以悟道兮
탐하는 이욕을 깨끗이 씻었어라 / 洗利欲之貪婪
마음의 근원을 열어 밝게 하는 데는 / 開心源之瑩淨兮
오직 태극을 깊이 궁구할 뿐이로다 / 惟太極之泳涵
만일 잠깐 사이에 우합함이 있으면 / 若有遇於介然之頃兮
진실로 천지인 삼재를 이루리라 / 諒天地其可三
어찌하여 당우의 빈 터는 잡초와 연기뿐인데 / 胡唐虞之遺墟蔓草寒煙兮
우리의 도가 남쪽까지 입혀졌으며 / 吾道被于南炎
어찌하여 물을 깊이 가두고 쏟아 내지 않는데 / 胡泓渟之而不霈兮
북방의 눈은 재를 넘어 서로 달라붙는고 / 朔雪越嶺之交粘
진정 남긴 도로 천하를 다스릴 만함이여 / 信餘緖可以理天下兮
노재가 홀로 그 수레를 달리었도다 / 魯齋獨騁其征驂
그러나 파급됨이 매우 주도하였음이여 / 然波及者靡不周兮
상삼처럼 만나지 못함을 어찌 한하랴 / 夫何恨於商參
오직 후생이 두려움직하여라 / 惟後生之可畏兮
청색이 바로 쪽에서 나온 거라오 / 靑乃出乎其藍
다행히 그 도가 일월처럼 게시되어서 / 幸其道之揭日月兮
내 그 광명 의지해 만족히 여기었네 / 吾依光兮心焉甘
장차 형세 잊고 속으로 도 즐기며 / 將忘勢而內樂兮
남쪽 난간 기대어 날로 읊조리노니 / 日嘯倚於南櫩
벗이 애써 서로 불러 마지않아서 / 苦相招而不止
갑자기 눈살을 펴고 우러러보노라 / 忽軒眉而載瞻
아 처음 먹은 마음 이루지 못했으니 / 欸初心之弗竟兮
세월 다하도록 이곳에 머무르리라 / 終歲月以聊淹


 

[주D-001]기초(祈招)의 온화함 : 기초의 기(祈)는 주(周)나라 때의 사마관(司馬官)이고, 초(招)는 당시 사마관의 이름인데, 주 목왕(周穆王)이 일찍이 천하(天下)를 주행(周行)하려 하자, 당시 경사(卿士)였던 채공 모보(祭公謀父)가 왕의 출행을 만류하고자 하여, 왕의 출행에 반드시 수행하게 되는 사마관 초를 의탁해서 시(詩)를 지어 왕을 간(諫)하였는바, 그 시에 이르기를, “기초는 온화하여 왕의 덕음을 밝히는지라, 우리 왕의 법도를 생각하여, 민력을 옥과 같이 여기고 금과 같이 여기니, 왕께서 백성의 힘 헤아리어 취하고 배부를 마음 없으시도다.[祈招之愔愔 式昭德音 思我王度 式如玉 式如金 形民之力 而無醉飽之心]”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昭公12年》
[주D-002]육우(陸羽) : 당(唐)나라 때의 은사(隱士)인데, 차(茶)를 매우 즐겨 후인(後人)들에게 다신(茶神)으로 일컬어졌고, 《다경(茶經)》을 지었다.
[주D-003]부러워라 …… 됨에랴 : 반곡(盤谷)은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있는 지명(地名)이고, 그 글이란 바로 당나라 때 한유(韓愈)가 속세를 떠나 반곡에 은거하러 가는 이원(李愿)을 보내면서 지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가리키는데, 그 글의 내용은 대략 위태롭고 구차한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고 산수(山水) 속에 조용히 마음 편하게 지내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D-004]염계(濂溪) : 송(宋)나라 때 주돈이(周敦頤)가 자기가 살던 곳을 염계라 명명한 데서 즉 주돈이를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송나라 이학(理學)의 개조(開祖)로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 등을 지었다.
[주D-005]노재(魯齋) : 원(元)나라 초기의 유학자(儒學者)로 특히 정주학(程朱學)에 깊이 통했던 허형(許衡)의 호이다. 저서로 《독역사언(讀易私言)》과 《노재심법(魯齋心法)》 등이 있다.
[주D-006]상삼(商參) : 상성(商星)과 삼성(參星)을 합칭한 말인데, 이 두 별은 동쪽과 서쪽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두 별을 동시에 볼 수 없으므로, 전하여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한 데에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