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추강 남효은 기행(紀行) 24수

추강 남효은 선생의 시(詩) ○오언고시(五言古詩)

아베베1 2011. 7. 13. 19:35

 

 

 

 

 

    이미지 사진은 도봉산 원통사 사찰위의 우이암 의 모습이다  (암벽하시는 분의 모습)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추강집 제2권
기행(紀行) 24수


아침에 청학동을 떠나와서 / 朝離靑鶴洞
저물 무렵 장단수를 건넜네 / 晩渡長湍水
바위벼랑 그림 병풍 펼쳐서 / 石壁開畫屛
이십 리나 두루 에워쌌도다 / 周遭二十里
단풍은 바위 사이에 밝게 빛나고 / 丹楓明石間
물가 풀은 추위에도 죽지 않았네 / 渚草寒不死
저문 강 물결 위로 기러기 울 때 / 鴻鳴暮江波
나그네 찾아와서 행장을 머무르네 / 客來駐行李



여기가 바로 당시의 보현원이라 / 當年普賢院
그때 일을 부로에게 물어보았네 / 遺事問父老
백관들이 모두 고기 밥 되었거늘 / 百官沒魚腹
지난 일 어찌 이리도 초초하던가 / 往事何草草
갯버들 동산에 맑은 시내 흐르고 / 淸川蒲柳鄕
소 양 다니는 길에 달빛 떨어지네 / 落月牛羊道
가을바람 쓸쓸히 말갈기에 부니 / 西風吹馬鬣
조상하는 나그네 공연히 슬퍼지네 / 弔客空潦倒



옛 궁궐 어느 해에 무너졌던가 / 故闕何年廢
푸른 소나무 열 아름 넘는구나 / 蒼松過十圍
동지와 좌장을 어디서 찾을까 / 東池與左藏
시든 풀숲 곳곳이 여긴가 하노라 / 衰艸處處疑
고려 왕손 이미 하늘로 떠나가고 / 龍孫已朝天
곡령엔 공연히 저녁 햇살 비치네 / 鵠嶺空晩暉
고려의 종묘사직 땅속에 묻혔으니 / 七廟委黃壤
이제는 역대 임금 뵈올 길 없도다 / 無由見玉衣



허공에 걸려 있는 두 개의 돌다리 / 橫空二石橋
이부교와 병부교라 이름 전하누나 / 名傳吏兵部
왕조의 전성기에 처음 만들었더니 / 肇構全盛時
백년 뒤에는 부서지고 무너졌도다 / 摧頹百年後
당시엔 나라 그르친 무리도 있고 / 當時誤國徒
또한 나라 경영할 인재도 있었지 / 亦有調羹手
모두 다 이 다리로 다녔을 터이니 / 皆由此橋行
공경할 만하고 또한 미워할 만하네 / 可敬亦可醜

다섯

신선들 노닐었던 노을빛 자하동 / 遊仙紫霞洞
신선 떠난 뒤 땔나무 풀밭 되었네 / 仙去樵牧場
그 곁 왕륜사는 반 넘어 퇴락하여 / 王輪半頹落
음침한 방 안에 큰 불상이 울고 있네 / 丈六啼陰房
떨어지는 달빛이 붉은 잎 비추는데 / 落月照紅葉
말 울음소리에 솔바람이 길게 부네 / 馬鳴松風長
시를 짓느라 밤늦도록 앉았노라니 / 尋詩坐到夜
그 옛날 일들이 처량할 뿐이로다 / 古事成凄凉

여섯

여흥왕이 고려 왕가 망친 뒤로 / 驪興破家後
호화롭던 풍경이 옛 모습 아니라 / 豪華非昔時
화원에는 산의 달만 밝게 떠 있고 / 花園山月明
팔각전은 단지 옛터만 남았구나 / 八角但故基
나그네 찾아와선 풀 깔고 앉아서 / 客來藉艸坐
애끊는 심사로 〈서리〉 시를 읊노라 / 腸斷詠黍離
거칠고 음란했던 당시의 일들 / 荒淫當日事
노인들이 입으로 서로 전하네 / 故老相傳之

일곱

아아 깊고도 그윽한 대성전이여 / 於穆大成殿
선사의 광채가 새롭게 드러났네 / 先師冠冕新
만세의 이 땅에 성왕으로 오셔서 / 王臨萬歲土
눈멀고 귀먹은 우리들 계도하셨네 / 啓我聾盲人
마음 아프게 사당과 뜰은 비어 / 傷心廟庭空
쓸쓸히도 배알하는 사대부 없네 / 艸艸無搢紳
용상의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여 / 如聞龍象泣
소자의 눈물 하염없이 흐른다오 / 小子淚無津

여덟

영통사에는 누각이 높고 / 靈通寺樓高
가을 산은 사면이 붉도다 / 秋山四面紫
맑은 시내 섬돌 돌며 울고 / 淸川繞砌鳴
떨어지는 바람 문풍지 울리네 / 落風啼囱紙
경 스님은 젊어서 사귄지라 / 瓊老少年交
그림 속으로 나를 맞이하네 / 迎我畫圖裏
안뜰에는 달빛이 분분한데 / 中庭月紛紛
석탑에서 바둑돌 두드리네 / 石榻敲棊子

아홉

맑은 새벽 험한 길 밟고 오르니 / 淸晨躋險艱
철벽 바위 사면으로 둘러쳐졌네 / 鐵壁四面周
대숲 길 구불구불 샘으로 통하고 / 竹徑曲通泉
누른 국화는 가을 햇살에 밝구나 / 黃花明素秋
덩굴 숲 뚫고 사오 리 지나서야 / 穿蘿四五里
그윽한 숲 속을 비로소 벗어났네 / 方出叢林幽
돌아보건대 하늘과 땅이 큰지라 / 回看天地大
유람객 홀연히 눈동자 밝아지네 / 遊子忽明眸



빼어난 청량산 봉우리 하나 / 淸凉一峰秀
그 위에 나직한 소나무 있네 / 上有不長松
푸른 바위 떨어질 듯 위태롭고 / 蒼石危欲落
거친 이끼 만 겹으로 붙어 있네 / 荒苔封萬重
올라 보건대 푸른 바다 더 넓고 / 登臨靑海闊
구름 사이 햇발이 서로 부딪치네 / 日脚相撞舂
인간 세상 아득히 멀리 있으니 / 人寰邈無涯
내 먼지 낀 흉중을 쓸어버리네 / 蕩我塵土胸

열하나

구월산 대흥동 한번 들어온 뒤 / 一入大興洞
십 리 지나도 하늘 보지 못하네 / 十里不見天
나뭇잎 떨어져 석문이 깊숙하고 / 葉落石門深
시냇물 감돌아 마연에 들어가네 / 溪回入馬淵
지팡이 짚고서 걷다가 읊조리니 / 扶笻行且吟
바위가 험준하여 삼신이 뚫렸네 / 石峻麻鞋穿
이리저리 거닐며 산과일 따니 / 徘徊摘山果
나뭇가지 끝에 날다람쥐 달리네 / 飛鼠走木顚

열둘

박연폭포 천고로 흘러내려 / 朴淵流千古
가파른 벼랑에 흰 비단 걸쳤네 / 懸巖白練橫
신령한 용이 그 못에 서렸는지 / 神龍據其潭
대낮에도 바람과 우레 울리누나 / 白日風霆鳴
서리가 짙어 나무 돌 미끄러우니 / 霜濃木石滑
한번 헛디디면 생사가 갈리리라 / 一跌關死生
나뭇가지 잡고 정신이 아찔하니 / 攀林魄已禠
감히 굽어보며 갓끈 씻지 못하네 / 不敢俯濯纓

열셋

숲 사이에 자리한 관음굴 / 林間觀音窟
늙은 선승 처소가 청정하네 / 老禪方丈淸
산신령 저녁에 조화를 부려 / 山靈作晩意
밤중에 비바람 소리 들리네 / 夜聞風雨聲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께서 / 有麗王太祖
복을 구하려 이 절 지었더니 / 求福此經營
고려가 망하고 일백 년 뒤엔 / 麗亡一百年
절은 낡고 부처는 영험 없네 / 寺古佛無靈

열넷

지팡이 짚고 찾은 황연 유허지 / 策杖黃延墟
천 길 절벽에 덩굴이 예스럽네 / 千尋藤蔓古
바람 울어 그윽한 골짝 울리고 / 風鳴幽谷響
떨어지는 잎새 비처럼 나부끼네 / 落葉零如雨
마음도 놀라고 몸도 두려우니 / 神驚體魄竦
어지러운 숲에 곰과 범이 우네 / 亂樹啼熊虎
손 흔들며 천마산을 떠나려니 / 揮手謝天摩
이별의 눈물 수풀에 떨어지네 / 別淚迸林莽

열다섯

가파르고 가파른 성거산 사인봉 / 峭峭舍人峰
신선은 떠나고 높은 봉만 남았네 / 鬼去餘高岡
산은 청명하고 수목은 빽빽한데 / 山明樹木稠
높은 바위는 푸른 하늘에 닿았네 / 危石磨穹蒼
사인봉 앞쪽에 인달암 있었더니 / 峰前因達庵
이제는 거칠어져 노루가 뛰노네 / 草草麋鹿場
이름도 적으며 이곳에 쉬노라니 / 題名此流憩
가을 이끼 승방에 두루 덮였구나 / 秋蘚遍僧房

열여섯

높고 높은 성거산 금신봉 / 巍巍金神峰
그 아래에 금신사 있다네 / 下有金神寺
허리 잘려버린 석불 존자 / 斷腰石尊者
산중에 그 영험 독차지하네 / 山中擅靈異
공경대부로부터 백성들까지 / 公卿及齊民
소원 비는 소지 매일 백 장이라 / 願疏日百紙
그렇지만 오복 맡은 권한이란 / 雖然五福權
그대 돌부처에게 있지 않다네 / 不在爾大士

열일곱

낙산이 단청처럼 열렸는데 / 洛山金碧開
흙부처가 그 가운데 있다네 / 土佛在其中
해마다 귀신이 보호해 오다가 / 年年鬼物護
큰 바위 동쪽으로 옮겨졌다네 / 大石徙而東
아첨하는 선비 불교 찬양하니 / 諂儒贊象敎
비석에 새긴 문장 공교롭구나 / 有碑文墨工
시서로써 교묘히 무덤 파헤쳐 / 詩書巧發冢
대낮에 어리석은 무리 속였네 / 白日欺群瞢

열여덟

붉은 단풍나무 가을빛에 취하니 / 紅樹醉秋色
북바위 그 모습 빼어나고 곱구나 / 鼓巖秀而麗
승려의 방은 온갖 생각 적막하니 / 僧房寞萬慮
세상의 잡념을 누가 다시 알리오 / 世念誰復知
잠 못 이루며 한밤중을 지나는데 / 不寐過夜半
창 앞엔 싸늘한 빗줄기 몰아치네 / 囱前凍雨吹
푸른 등불 타들어 새벽 되려 하건만 / 靑燈燒欲曉
스님은 억지로 시 짓기를 권하누나 / 釋子强覓詩

열아홉

시냇가에 자리한 차일암 바위 / 溪邊遮日巖
평평하여 백여 명 앉을 만하네 / 平可坐百夫
옛날 고려왕이 예불하러 가다가 / 麗王昔拜佛
이 바위에 멈추어 도시락 먹었지 / 此石駐行廚
맑은 시냇물 쉬지 않고 흘러가듯 / 淸川流不舍
백년 세월이란 순식간의 일이로다 / 百年卽須臾
옛 자취 돌아보며 망연자실했더니 / 撫古已惘然
바위에 앉아서는 거듭 탄식한다오 / 坐石重嗚呼

스물

효자 문충이 고려를 섬겼는데 / 文忠事高麗
오관산 서쪽에 그의 집 있었지 / 家在五冠西
출퇴근길 개경까지 삼십 리지만 / 晨昏三十里
혼정신성 한번도 어기지 않았네 / 定省行不迷
지금의 이 전원 그 옛날 집터라 / 田園此舊基
거친 명아주만 석양에 무성하네 / 夕陽長荒藜
이백 년 세월 구름처럼 흐른 뒤 / 雲行二百年
익재의 소악부에 당계곡 전하네 / 樂府傳唐鷄

스물하나

생각건대 정릉이 처음 생겼을 때 / 憶昔正陵初
이 계단서 백관들 조회 받았으리
/ 玆階朝百官
호화로운 무덤 백년 지난 뒤 / 豪華百年後
옛 물건이라곤 돌난간뿐이라 / 古物獨石闌
능침 앞에는 농부가 밭 갈고 / 陵前野人耕
능침 뒤에는 낙엽이 차갑구나 / 陵後落木寒
목은이 지은 비석 만지노라니 / 摩挲牧隱碑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네 / 不覺涕汍瀾

스물둘

강가에 임해 있는 감로사 / 臨江甘露寺
높은 누각 반 이상 꺾였구나 / 高閣已半摧
승려 쇠잔하여 승방이 비었고 / 僧殘方丈空
석가세존도 먼지 속에 묻혔네 / 世尊亦塵埃
한밤중 달빛 강물에 가득하니 / 中宵月滿江
드넓은 물결은 유리가 쌓인 듯 / 萬頃琉璃堆
종소리 울리고 범향은 맑으니 / 鍾鳴梵香淸
나그네 마음 더욱더 아득하네 / 客思轉悠哉

스물셋

다경루를 이미 내려와서 / 已下多景樓
돌아오며 탁타교 건너네 / 歸渡槖駝橋
천수사는 석양빛에 누렇고 / 天水斜日黃
청태는 서리 뒤에 싱싱하네 / 靑苔霜後驕
말안장 풀고 앉아 시구를 찾다 / 卸鞍坐覓句
길게 탄식하며 전조의 일 묻네 / 長嘯問前朝
찢어진 모자에 가을바람 불고 / 西風吹破帽
한 해 저물어 매미 울음 껄끄럽네 / 歲晏澁鳴蜩

스물넷

파산이 구월로 바뀔 때 / 坡山九月交
낙하엔 물결이 일렁이네 / 洛河波不平
누른 구름 양안을 덮었고 / 黃雲覆兩岸
온갖 나무 파리한 모습이네 / 萬木消鑠形
해질 무렵 험한 길 걸어가니 / 坎壈薄暮中
나그네 마음 급하고 급하네 / 有客心怦怦
황혼 되어 압도에 당도하니 / 黃昏到鴨島
강 가득 갈대꽃 밝게 피었네 / 滿江蘆花明


 

[주D-001]보현원(普賢院) : 장단(長湍) 남쪽 25리에 있는 원(院)으로, 고려 의종(毅宗)이 못을 만들고 놀이하러 자주 거둥한 곳이다. 1170년(의종24)에 무신 정중부(鄭仲夫) 등이 보현원에서 문신을 살해하여 그 못에 버린 사건이 있었다.
[주D-002]곡령(鵠嶺) : 개성(開城)에 있는 송악산(松嶽山)의 별칭이다. 최치원(崔致遠)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날 것을 예측하여 “계림은 누른 잎이요, 곡령은 푸른 소나무라.〔鷄林黃葉 鵠嶺靑松〕”라고 읊은 적이 있다.
[주D-003]여흥왕(驪興王) : 고려 우왕(禑王)을 가리킨다. 당시 우왕이 여흥(驪興)에 유배되었기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주D-004]서리(黍離) : 《시경》〈왕풍(王風)〉의 편명이다. 주(周)나라가 낙양(洛陽)으로 동천(東遷)한 뒤 대부(大夫)가 옛 수도인 호경(鎬京)을 지나다가 종묘(宗廟)와 궁성의 터가 폐허가 되어 기장만 무성한 것을 보고 슬퍼하여 읊은 시이다.
[주D-005]시서(詩書)로써……파헤쳐 : 유가 경전을 인용하여 교묘하게 포장했다는 말이다. 《장자》〈외물(外物)〉에 “유가는 시례(詩禮)로써 무덤을 파헤친다.〔儒以詩禮發冢〕” 하였는데, 이에 대한 임희일(林希逸)의 주(註)에 “유세하는 선비가 시서(詩書)와 성인의 말을 빌려서 자신의 간교함을 꾸밈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6]익재(益齋)의……전하네 : 익재는 이제현(李齊賢)의 호이고, 당계곡(唐鷄曲)은 문충(文忠)이 지은 〈목계가(木鷄歌)〉 곧 〈오관산곡(五冠山曲)〉이다. 《고려사》 오관산조(五冠山條)에 “오관산은 효자 문충이 지은 것이다. 문충이 오관산 아래에 살면서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사는 곳이 서울과 30리 떨어졌으나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벼슬하였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조금도 혼정신성(昏定晨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늙음을 탄식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이제현이 이를 한역하여 시로 짓기를, ‘나무를 깎아서 당닭을 만들어, 젓가락으로 집어다 벽에 살게 하네. 이 새가 꼬끼오 울며 시간을 알릴 제야, 어머님 얼굴 비로소 기우는 해와 같으리.〔木頭雕作小唐鷄 筋子拈來壁上栖 此鳥膠膠報時節 慈顔始似日平西〕’ 하였다.” 하였다. 《高麗史 卷71 五冠山》
[주D-007]생각건대……받았으리 : 정릉(正陵)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갖가지 석물의 모습이 백관들에게 조회받는 형상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정릉은 공민왕의 비(妃)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