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 산행 /2011.11.13. 관악산 (산행)

2011.11.13. 관악산 산행 (과천역 7번출구 -과천향교 -약수터 -산장 -관악사지 연주대 -관모봉 )

아베베1 2011. 11. 14. 08:38

연주대(戀主臺)

 

통일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의상(義湘)이 경기도 과천(果川) 연주봉(戀主峯) 절벽 위에 세운 절. 677년(문무왕 17) 관악사(冠岳寺)와 함께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이름 붙이고 그곳에서 좌선함.

시대: 통일신라
연도: 677

 

 

 

 

 

 

 

 

 

 

 

 

 

 

 

 

 

 

 

 

 

 

 

 

 

 

 

 

 

 

 

 

 

 

 

 

속동문선 제5권
 칠언고시(七言古詩)
산으로 돌아가는 의근(義根) 선종(禪宗)을 보내며[送義根禪宗還山]


성현(成俔)

스님의 숙덕은 인천에 높아 / 上人宿德人天尊
가슴속이 물 거울, 맑아서 안 흐리네 / 胷中水鏡淸不渾
여여히 안 움직여 근원이 항상 맑으나 / 如如不動常澄源
부딪쳐 빛을 발하면 삼연히 번쩍번쩍 / 發光觸處森焞焞
아래로 탁세와 어울려도 세속 때를 벗어나니 / 下與濁世離垢氛
무한한 중생들이 선근을 의지하네 / 無限衆生依善根
관악산이 높아 대지를 짓누르고 / 冠岳山高壓厚坤
관악사는 낡은 절, 산을 문으로 삼았으니 / 冠岳寺古山爲門
산문이 울툭불툭 돌에 이끼가 감겼고 / 山門犖确縈苔痕
다래덩굴ㆍ겨우살이를 범인이 만지지 못하네 / 蘿蔦不許庸人捫
알씬한 나무들이 봄에 한창 무성하고 / 樹木葱蘢春正蕃
바윗돌은 우뚝우뚝 교룡이 쭈그린 듯 / 岩嶅突兀蛟龍蹲
영롱한 정계에 시끄럼이 없어 / 玲瓏淨界無塵喧
패엽을 항시 한가히 뒤적이더니 / 貝葉常向閑中翻
이 땅의 흙 먹는 몸, 임금의 은명 받자와 / 有身食土承君恩
석장을 안고 부득이 진세로 내려오니 / 抱錫未免塵寰奔
산이 비고 방이 고요, 거친 담도 비어 / 山窮室靜空荒垣
바위의 학이 울고 숲의 원숭이도 슬퍼했으나 / 呼號岩鶴悲林猿
산신령은 손뼉 치며 웃고 떠드는 말이 / 山靈拍手笑相誼
“왜 하필 옹색하게 우리[籠] 속에 갇혀 있으리” / 何用局促嬰籠樊
흥천사 큰 절이 지원과도 같은데 / 興天大刹如祗園
국리를 비는 큰 절, 시설도 장엄할싸 / 設利傑閣粧璵璠
향등이 늘어서고 동번이 즐비 / 篝燈列舍羅幢幡
경 논하며 글자 묻는 이 모두 다 명석 / 踏鐵問字皆名髡
성명 아래 훌륭한 제자도 많건마는 / 盛名之下多芳蓀
선심은 오히려 번루를 싫어했네 / 禪心却厭遭敲煩
가을 바람에 높은 날개가 치솟기만 생각하니 / 秋風逸翮思騰騫
번쩍이는 명성은 마음에도 없는 일 / 聲華燀赫非心存
몸을 던져 다시 본원으로 돌아가자 / 不如投身還本元
근심도 즐거움도 은원도 없는 데로 / 身無憂樂無恩冤
마음의 큰 지혜요 불도의 큰 원인 / 心之大智道大原
‘불이 무명언’으로 끝내 들어가니 / 竟入不二無名言
옛 선방의 송월은 그대로 아리땁고 / 舊房松月還嬋媛
나는 샘이 시원히 뿜어 내장을 씻어 주네 / 洗臟更快飛泉噴
산신령이 형제처럼 반가이 맞고 / 山靈邀迓如弟昆
원학이 동기처럼 흔들고 좇는구나 / 猿鶴掀啄諧箎塤
조용한 한 방에 아침 해가 떠오르니 / 翛然一室升朝暾
박산 향로에 연기도 맑고 따스할싸 / 博山煙縷淸而溫
진계를 굽어보니 시커먼 구름 둔쳤는 듯 / 下視塵界頑雲屯
나무들이 냉이마냥 마을을 둘러 있네 / 野樹如薺環孤村
산도 높고, 사람도 높고, 도도 두터우니 / 山高人高道亦敦
이 즐거움 영원히 잊지 않기 맹세하네 / 永矢此樂終不諼
부끄러워라, 내 신세는 미욱하고 어두워 / 愧我身世憨而惛
공리로 가는 곳마다 남모르게 속태우고 / 功利到處潛消魂
일생에 동으로 서로 날치고 다니면서 / 一生役役東西轅
탐전과 번뇌에 무찔리며 사니 / 貪嗔熱惱相屠呑
법문에 귀의하여 묘한 구원 바라나 / 歸依法門希妙援
메추리가 어찌 붕새 날개를 더위잡으리 / 尺鷃安得攀鵬鵾
선탑 선선한 바람에 귀밑머리를 흩날리며 / 鬢絲禪榻風掀掀
삼승 묘리를 토론하고 싶으나 / 三乘妙理要討論
홍진에 골몰한 몸 고의 속의 이인 양 / 汨沒紅塵虱處褌
몸 기울여 부질없이 강가만 바라보네 / 側身空望淸江濆
임술년 칠월 기망날 저녁에 / 壬戌七月旣望昏
격물제 난간 안에서 이 글을 써 보냄 / 書于格物齋中軒


신증동국여지승람 제8권
 경기(京畿)
과천현(果川縣)


동쪽으로 광주(廣州) 경계까지 13리이고, 남쪽으로 수원부(水原府)까지 34리이며, 서쪽으로 금천현(衿川縣) 경계까지 20리이고, 안산군(安山郡) 경계까지 28리이며, 북쪽으로 노량(露梁)까지 20리이고, 서울까지 33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고구려의 율목군(栗木郡)인데 하나는 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율진군(栗津郡)으로 고쳤고, 고려 초년에 과주(果州)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9년에 광주(廣州)에 예속시켰고,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 태종 1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예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삼았으며, 14년에 금천(衿川)과 병합하여 금과(衿果)라고 일컬었다가 두어 달 뒤에 파하였다. 세조 때에 금천으로 와서 현에 합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각각 복구하였다.
【관원】 현감ㆍ훈도 각 1인. 【군명】 율목(栗木)ㆍ동사힐(冬斯肹)ㆍ율진(栗津)ㆍ부림(富林)ㆍ부안(富安)ㆍ과주(果州).
【성씨】 본현 손(孫)ㆍ이(李)ㆍ전(田)ㆍ신(愼)ㆍ안(安)ㆍ변(邊)ㆍ최(崔).
【형승】 산은 관악(冠岳)과 연하고, 물은 청계(淸溪)로 흘러간다 변계량(卞季良)의 시에, “산은 관악과 연하여 평야를 둘렀고, 물은 청계로 내리어 큰 하수로 들어간다.” 하였다.
【산천】 관악산(冠岳山) 현 서쪽 5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 청계산(淸溪山) 현 동쪽 8리 지점에 있는데, 일명 청룡산(靑龍山)이다. 수리산(修理山) 현 남쪽 25리 지점에 있다. 노량진(露梁津) 현 북쪽 20리 지점에 있는데 한강(漢江)의 하류이다. 공수천(公需川) 현 남쪽 1리 되는 곳에 있다. 인덕원천(仁德院川) 현 남쪽 14리 지점에 있다. 학고개천(鶴古介川) 현 서쪽 19리 지점에 있다.
【학교】 향교(鄕校) 현 서쪽 2리 지점에 있다.
【역원】 양재역(良才驛) 이규보(李奎報)의 문집에는 양재(楊梓)라고 일컬었는데, 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 본도를 찰방(察訪)한다. 예속된 역참이 열 둘인데, 낙생(樂生)ㆍ구흥(駒興)ㆍ금령(金嶺)ㆍ좌찬(佐贊)ㆍ분행(分行)ㆍ무극(無極)ㆍ강복(康福)ㆍ가천(加川)ㆍ청호(菁好)ㆍ장족(長足)ㆍ동화(同化)ㆍ해문(海門)이다.
○ 찰방은 1명인데, 종 6품(從六品)이며 다른 도(道)도 같다.
○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한 길 석양에 말에 맡겨 돌아가니, 가을 바람이 홀연히 일어나, 초 나라 사람이 슬프도다. 푸른 산과 푸른 물은 처량한 땅이요, 붉은 잎과 누른 꽃은 쓸쓸한 때로다. 시구(詩句)를 생각하니, 다만 머리 위의 따오기를 더하고, 형상을 잊었으니 어찌 꿈속의 삵을 기억하랴. 흰 구름이 시야에 들어오니, 돌아가는 흥이 흔들리네. 머리를 하늘 가에 돌리니 느끼는 생각이 배나 되네.” 하였다.
흑석참(黑石站) 현 북쪽 25리 지점에 있다. 좌도(左道) 수운판관(水運判官)에 속한다. 노량원(露梁院) 노량진 남쪽 언덕에 있다. 인덕원(仁德院) 현 남쪽 15리 지점에 있다. 미륵원(彌勒院) 현 북쪽 15리 저점에 있다. 오금원(吾金院) 현 북쪽 10리 지점에 있다. 요광원(要光院) 현 북쪽 5리 지점에 있다.
【불우】 청계사(淸溪寺) 청계산에 있는데, 이곡(李穀)이 지은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인규(趙仁規)의 사당기(祠堂記)가 있다.
○ 이색(李穡)의 시에, “청룡산(靑龍山) 밑 오래된 절 얼음과 눈에 끊어진 언덕이 들 계곡에 임하였도다. 단정히 남창(南窓)에 앉아 《주역(周易)》을 읽노라니, 종소리는 처음으로 움직이고 닭은 깃들이려 하네.” 하였다.
○ 변계량(卞季良)의 시에, “돌 길은 1천 언덕에 궁진하였고, 향 연기는 한 방이 맑도다. 손은 와서 차 끓이기를 구하고, 중은 앉아 스스로 불경을 뒤적이네. 나무는 늙었으니 어느 해에 심었으며, 종은 쇠잔하니 밤 중의 소리로다. 공(空)을 깨달아 인사가 끊어졌으니, 높이 누워서 생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네.” 하였다.
백화사(百華寺) 청계산에 있다.
○ 변계량의 시에, “절 방에 일찍이 속사(俗士) 오는 이가 없으니, 객중(客中)에 이것을 힘입어 오래 배회하네. 푸르고 푸른 묵은 잣나무는 창 앞에 곧게 서 있고, 희고 희게 갠 구름은 산 얼굴에 쌓였도다. 한 줌의 묘한 향기 사람의 참선 가운데 있고, 반(半) 처마 비낀 날에 학(鶴)이 날아 돌아오네. 살고 있는 중 본래 정회(情懷)가 게을러, 이끼가 쌍 사립에 껴도 낮에도 열지 않네.” 하였다.
관악사(冠岳寺) 관악산에 있다.
○ 변계량의 시에, “절 집을 한가히 찾으니 해질 무렵이로구나. 중중한 바위 사이로 이끼 낀 사립이 멀리 보이네. 길은 묵은 산벽(山壁)에 둘렀으니 공중을 서려 오르고, 등 덩굴은 새 가지에 길었으니, 자리에 들어와 늘어졌도다. 뜰 나무는 고요하게 외로운 학의 꿈을 흔들고, 병풍 같은 구름은 나직하게 참선하는 중 옷 떨치네. 10년의 형설(螢雪)이 마침내 무슨 일인가. 산이 좋아도 일찍이 한 수(首)의 시가 없네.” 하였다.
○ 성간(成侃)의 유북암기(遊北岩記)에, “여름 6월에 나는 관악사에 더위를 피하여, 날마다 중들과 같이 산의 깊은 숲과 기기한 돌을 모조리 구경하고, 이 산의 기절하고 이상한 것은 모두 나의 소유라 하였다. 하루는 중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산수를 싫도록 보았으나, 산의 북쪽을 연기가 가리켜 이상하게만 여기고, 실지로 구경하지 못하였는데, 왜 앞장서서 인도하지 않는가.’ 하였다. 대답하기를 ‘산 북쪽은 숲이 더욱 깊고 돌이 더욱 높아, 길이 막혀서 끝까지 찾을 수 없네. 그러나 시험삼아 인도하리다.’ 하고 드디어 얽힌 덤불을 베고 먼저 서쪽 언덕에서 올라, 숲 사이로 행하여 들어가 꺾어져 북쪽으로 향하니 산 형세가 가파르게 솟았다. 더위잡고 기어오르다가 지치면, 손으로 칡덩굴을 붙잡고 쉬면서 가까스로 올라가니, 바위가 집 천장같이 되어 있고, 그 아래는 빙 둘려서 천 길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정신이 아찔하였다. 드디어 함께 두 다리를 뻗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조금 있다가 솔 바람 소리가 소슬하게 1만 구렁으로부터 불어오니, 무더운 더위는 머물지 못하였고, 아래에는 고기ㆍ새ㆍ풀ㆍ나무 따위 무성한 것과, 놀고 헤엄치는 것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또 서쪽을 가리켜 바라보니, 큰 바다가 하늘에 닿아 구름과 안개가 희미하고 아득하며, 해가 바다에 들어가려 하니, 광선이 환하게 반사하여 붉은 것도 같고 푸른 것도 같으며 검은 것도 같고 흰 것도 같아서 형세가 기괴하였다. 아, 이 산에서 노닌 선비가 얼마며, 중은 얼마인데, 이 바위를 칭찬하여 말한 자가 없고, 다행히 나에게 스스로 드러나게 되었으니, 조물주가 나를 위하여 베풀어 놓은 것이 아닌가. 장주씨(莊周氏)의 말에, ‘큰 숲과 높은 산이 사람에게 좋은 것은 신(神)한 것만 못하다.’ 하였다. 그러나 장주(莊周)가 한 이 말은 반드시 잘 안 말이 못 된다. 대개 사람이 세상에 처하니, 밖으로는 만가지 일이 모이고 안으로는 백 가지 생각을 경영하여, 기운이 막히고 뜻이 통하지 않는 데까지 이르렀다가, 산림의 큼과 시내의 좋음을 본 뒤에 솟은 산이 눈과 꾀하고, 샘 소리가 귀와 꾀하면, 지난번 가슴속의 막히고 뭉클하여 퍼지지 못하던 것이 사라지고 풀리어 남은 것이 없게 된다. 옛날의 산수의 도움을 얻은 자가, 어찌 장주의 말을 족히 믿으랴.” 하였다.

관음사(觀音寺) 관악산에 있다.
○ 변계량의 시에, “관악산 남쪽, 청계산 북쪽에 절집이 우뚝하여 긴 숲을 눌렀네. 밤비에 고함 지르니 주린 호랑이가 부르짖는 듯하고, 해돋이에 조잘거리니 그윽한 새가 우는 듯하네. 구름이 창밑에서 나니 담장이 덩굴이 얽히고, 길이 돌 모퉁이로 도니 소나무 회(檜)나무가 우거졌도다. 멀리 생각하건대, 혜사(惠師)는 응당 잘 있을 것이고, 산 가운데서 밤마다 꿈에 서로 찾네.” 하였다.
송천사(松泉寺) 수리산(修理山)에 있다.
【사묘】 사직단(社稷壇) 현 서쪽에 있다. 문묘(文廟) 향교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현 서쪽 3리 지점에 있다. 여단(厲壇) 현의 북쪽에 있다.
【총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墓) 현 북쪽 동적리(同積里)에 있다.
유정현(柳廷顯)의 묘 현 서쪽 15리 지점에 있다. 정역(鄭易)의 묘 현 동쪽 20리 지점에 있다. 성석인(成石因)의 묘 현 북쪽 5리 지점에 있다. 이승소(李承召)의 묘 현 북쪽 20리 지점에 있다.
【열녀】 본조 봉금(奉今) 일수(日守) 예명(芮命)의 아내이다. 그의 남편이 나쁜 병을 앓으니, 손가락을 잘라 먹이어 병이 나았다. 일이 조정에 들리자 문려(門閭)를 정표(旌表)하고 요역(徭役)을 면제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연혁】 고종 32년에 군(郡)으로 고쳤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토산】 뱅어[白魚]ㆍ게[蟹]ㆍ밤[栗]ㆍ백토(白土)ㆍ 잉어[鯉魚].
【궁실】 행궁(行宮) 노량도(露梁渡) 남쪽 언덕에 있는데,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라 불렀으며, 나루 건너 행차할 때 여러 임금들이 멈추고 잠시 머물렀으므로 좌우에 배다리[舟橋]와 별장소(別將所)가 있었다.
【방면】 현내(縣內) 끝이 5리이다. 동면(東面) 처음이 5리, 끝이 15리이다. 남면 처음이 20리, 끝이 30리이다. 상서(上西) 처음이 10리, 끝이 20리이다. 하서(下西) 서남쪽으로 끝이 25리이다. 상북(上北) 끝이 20리이다. 하북(下北) 처음이 5리, 끝이 20리이다.
【진도】 동작진(銅雀津) 북으로 18리인데, 나루[渡] 위에는 모노리탄(毛老里灘)과 기도(棋島)가 있다. 노량도(露梁渡) 북쪽으로 20리인데 전에는 흑석진(黑石津)이라 칭했다.
【사원】 민절서원(愍節書院) 숙종 신유년에 세웠고, 임신년에 사액하였다. 백팽년(朴彭年) 자는 인수(仁叟),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벼슬은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지냈으며,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성삼문(成三問)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벼슬은 승지(承旨)였으며,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개(李塏) 자는 청보(淸甫), 호는 백옥(白玉)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이었으며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유성원(柳誠源) 자는 태초(太初), 본관은 문화(文化)인데, 벼슬은 사예(司藝)였다.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하위지(河緯地) 자는 중장(仲章), 호는 단계(丹溪)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벼슬은 예조 참판(禮曹參判)이었으며,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유응부(兪應孚) 자는 신지(信之), 본관은 기계(杞溪), 벼슬은 총관(摠管)이었으며,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 이상 여섯 선비는 세조(世祖) 병자년에 화를 당하였는데, 숙종 때 벼슬과 시호를 추증하였다.
노강서원(鷺江書院) 숙종 을해년에 세웠고, 정축년에 사액하였다. 박태보(朴泰輔) 파주 편에 붙였다.
○ 사충서원(四忠書院) 영조 을사년에 세웠고, 병오년에 사액하였다. 김창집(金昌集) 경도묘정(京都廟庭) 편에 보라. 이희명(李熙命) 자는 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벼슬은 좌의정,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조태채(趙泰采)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 본관은 양주(楊州), 벼슬은 우의정이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이건명(李健命) 자는 강중(剛仲), 호는 한포재(寒圃齋), 본관은 완산(完山)인데, 벼슬은 좌의정이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묘소 창빈묘(昌嬪墓) 상북면(上北面)에 있다. 중종(中宗)조 때 창빈(昌嬪) 안씨(安氏)의 묘인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을 낳았다.


 

[주D-001]꿈속의 삵 : 증자(曾子)가 죽을 임시에 꿈을 꾸었는데, 살쾡이가 머리도 없이 뛰노는 것을 보고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여 노래를 지은 일이 있는데, 그것을 잔형조(殘形操)라고 한다.
[주D-002]형설(螢雪) : 진(晉) 나라의 차윤(車胤)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에 집이 가난하여 여름이면 반딧불을 수십 개 모아서 그 불빛에 비추어서 글을 읽었다 한다. 그 후에 손강(孫康)이라는 사람은 겨울밤에는 눈을 창가에 쌓아 놓고, 그 눈에 비추어 글을 읽어서 모두 후일에 영귀하게 되었으므로, 공부하는 것을 형설(螢雪)의 공(功)이라 하게 되었다.

동문선 제82권
 기(記)
관악사 북암 기(遊冠岳寺北巖記)


성간(成侃)

여름 6월에 나는 관악사에서 피서하면서 날마다 중의 무리와 더불어 산의 깊은 숲과 괴이한 돌을 찾아 말하기를, “이 산의 기절하고 특이한 것 치고 내가 못 본 것은 없다.” 하였다. 하루는 그 무리에게 말하기를, “나는 산수(山水)는 싫증나도록 보았다. 그러나 이 산의 북쪽은 내가 기이하다고 생각하면서 가보지 못하였으니 앞서 인도하지 않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산 북쪽은 숲이 더욱 깊고 돌이 더욱 험준하여 길이 막혔으니 끝까지 다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인도해 보겠습니다.” 하고 가려진 가시 덩굴을 베어내면서 앞장 서기에 서쪽 비탈로부터 오르기 시작하여 가시밭 사이로 가다가 또 북으로 휘어 드니 산 형세가 날카롭게 솟았다. 그래서 넝쿨을 부여잡고 오르다가 피곤하면 손으로 칡덩쿨을 잡고 쉬며 겨우 올라가 보니, 집채같은 바위가 빙 둘러 있는데, 그 밑은 거의 천 길이나 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정신이 아찔했다. 드디어 두 다리를 펴고 그 위에 걸터앉아 보니, 이윽고 솔바람이 소소히 온 골짝으로부터 불어 와서 더위를 씻은 듯이 물리치고, 내려다보면 어조(魚鳥)의 유영(遊泳)하는 것과 초목의 무성한 것이 모두 눈앞에 역연하며, 또 서쪽을 바라보면 바다가 하늘과 맞닿고 구름 안개는 자욱하며, 해가 바다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광망(光芒)이 쏘이어 붉은 것도 같고 푸른 것도 같으며, 검은 것도 같고 흰 것도 같아 형세가 귀신이 모인 듯도 하였다. 아, 이 산에 노닌 선비가 몇이며, 중이 몇인지 모르나 이 바위를 언급하는 자가 없었는데, 내가 노닐어 다행히 발견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조물주가 나를 위해서 마련해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장주(莊周)가 말하기를, “대림(大林)이나 구산(丘山)이 사람에게 좋기는 하지만 너무 신묘한 것은 감당할 수가 없다.” 하였다. 그러나 장주의 말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처할 때에 밖으로는 온갖 일이 모여들고, 안으로 온갖 생각이 떠올라서 기운이 막히고 뜻이 침체하다가 크나큰 산림과 뛰어난 계간(溪澗)을 만나서 우뚝한 자세가 눈에 보이고 장쾌한 소리가 귀에 들리면, 지난 날에 답답하던 가슴속이 홀연히 풀릴 것이니, 예로부터 산수의 도움을 얻은 자가 어찌 장주의 말이라서 족히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달 16일에 기록한다.

춘정집 제1권
 시(詩) 문인 통훈대부(通訓大夫) 판승문원사 겸 춘추관편수관(判承文院事兼春秋館編修官) 정척(鄭陟)이 편집하고, 중직대부(中直大夫) 집현전직제학 지제교 세자좌보덕 겸 춘추관기주관(集賢殿直提學知製敎世子左輔德兼春秋館記注官) 신 유의손(柳義孫)이 하교를 받들어 교정함
관악사(冠岳寺)에 올라

春亭先生詩集卷之一 門人通訓大夫判承文院事兼春秋館編修官鄭陟編次。中直大夫集賢殿直提學知製敎世子左輔德兼春秋館記注官臣柳義孫奉敎校正。
 
冠岳寺 a_008_021a


蘭若閒尋薄暮時。重巖遙見亞苔扉。徑緣古壁盤空上。藤長新枝入座垂。庭樹靜搖孤鶴夢。嶂雲低拂定008_021b僧衣。十年螢雪終何事。山好曾無一首詩。

 虛白堂補集卷之五 男世昌編輯
 
送義根禪宗還山 a_014_382c


上人宿德人天尊。胸中水鏡淸不渾。如如不動常澄源。發光觴處森焞焞。下與世濁離垢氛。無限衆生依善根。冠岳山高壓厚坤。冠岳寺古山爲門。山門犖硧縈苔痕。蘿蔦不許庸人捫。樹木蔥籠春正蕃。巖嶅突014_382d兀蛟龍蹲。玲瓏淨界無塵喧。貝葉常向閒中翻。有身食土承君恩。抱錫未免塵寰奔。山窮室靜空荒垣。呼號巖鶴悲林猿。山靈拍手笑相喧。何用局促嬰籠樊。興天大刹如祗園。設利傑閣粧璵璠。篝燈列舍羅幢幡。蹯鐵問字皆名髡。盛名之下多芳蓀。禪心却壓遭敲煩。秋風逸翮思騰騫。聲華焯赬非心存。不如投身還本元。身無憂樂無恩冤。心之大智道大原。竟入不二無名言。舊房松月還嬋媛。洗臟更快飛泉噴。山靈邀迓如弟昆。猿鶴掀喙諧篪塤。翛然一室升朝暾。博014_383a山煙縷淸而溫。下視塵界頑雲屯。野樹如薺環孤村。山高人高道亦敦。永矢此樂終不諼。愧我身世憨而惛。功利到處潛消魂。一生役役東西轅。貪嗔熱惱相屠呑。歸依法門希妙援。尺鷄安得攀鵬鵾。鬢絲禪榻風掀掀。三乘竗理要討論。汨沒紅塵蝨處褌。側身空望淸江濆。壬戌七月旣望昏。書于格物齋中軒。

 


석양에 한가롭게 절집을 찾는데 / 蘭若閒尋薄暮時
저 멀리 층암 밑에 사립문이 보이누나 / 重巖遙見亞苔扉
오솔길은 절벽의 반공 위에 나 있고 / 徑緣古壁盤空上
등나무 새 가지는 자리 위에 늘어졌네 / 藤長新枝入座垂
정원 나무 한들한들 학꿈을 망치었고 / 庭樹靜搖孤鶴夢
산 구름 내리뻗쳐 선승 옷을 스쳐가네 / 嶂雲低拂定僧衣
뭐 하러 십 년이나 공부를 닦았는지 / 十年螢雪終何事
산수는 좋지만 시 한 수 없었네 / 山好曾無一首詩


 

龍洲先生遺稿卷之十二
 
冠岳寺古銅罏跋 a_090_199c


丙辰夏。大樓子棲于冠岳之佛聖寺。識寺僧大乘師。師知余好奇古也。一日。引余入于佛殿。閱寺中古器。得一器焉。蓋其任則佛前香罏也。其長約數尺。於其半而上。則形如腰鼓。其圓約數圍。圜以其巓。如鼎鉉090_199d焉。鉉上凸以一寸銅。又圜以立焉。卽罏吻也。其內則僅容灰一斗。於其半而下。則承上之底而爲下之始也。於其交。三屈戍而漸殺焉。形如鴟夷柄者咫有寸焉。趺以其末而圜屈焉。形則如伏盂。其圍則視上鉉而稍狹。故能安植也。大都其形如此。而其文其質者。則於腰鼓處。刻以梵字者四。皆用銀以塡焉。又每於一字。圜刻以銀者再。又於二字不合處。又鏤以雲氣。亦用銀焉。於三屈戍處。或鏤以雲氣。或鏤以荷葉。至于如鴟夷柄處。而其終也。又加鏤以蜿蜒狀。至于如伏盂上盤屈焉。無非用銀也。其極奇巧可見也。又邊090_200a于覆盂處而圜刻字者。蓋用功於鑄器時人名位姓字也。雖其字畫班班可見。而余不審其人之聞於後若今也。其器之古。亦可審矣。迺問于師曰。异哉是器。鑄自何代。傳自何人。居此幾年。非百年。必世也必矣。師曰。豈特百年哉。遂示余其底所刻紀年。則勝國之至正也。吁可異之大者也。夫物之傳於後而久於是者何限。然皆非寶於國。則爲其重難用與無用於人也。如鍾鼓大呂圭璧者是已。如九鼎之輓九萬人。如石鼓之頑然爲一石者是已。今是罏則不然。寶不能爲國寶也。重不能如九鼎也。頑不能如石鼓也。其重090_200b則一夫可擧。其大則一橐可容。其銅之可破爲財。其金之可取爲利也。自元至于今。幾年于茲。而不爲寇盜資而灰燼滅。宛然如昨日鑄者。其孰傳而孰守之耶。況曩者壬辰之歲。海寇生毒。毒痡我邦。火燒我廬舍。掘株我財寶。寺刹伽藍亦不得免焉。龍像之金。塔廟之藏。丹靑之飾。靡不刀刮而爪攫之。其獨於是而遺之耶。抑浮屠之能以死保之。如蘇內翰所謂惟簡之於菩薩版者有耶。抑師其人耶。師笑曰。是非是寺之素蓄者。向有一村夫賣之者。遂爲寺僧之有也。余又曰。是則尤異之大者也。不常于寺之藏。不常于僧090_200c徒之有。而之于野夫。則其無傳守而愛護之。可知矣。且方其野夫之得之也。其不竊取于寺。則偶然于道塗間者。亦可知矣。如使竊取則安知不利其金愛其銅。拊擊之破毀之。以滅其跡也。如使偶然於道塗間。則又安知不利其金愛其銅。拊擊之破毀之。以制其用也。假令免是二患。野夫之不於鑪錘者而賣之。不於射利者而賣之。不於都邑富好者而賣之。迺於幽蹊絶跡人外之境而賣之。是孰使之哉。無其或者鬼物呵護而全其器。且誘野夫之衷而斥其器之不當處。還其可處耶。噫。爲器於二百年之前。不過藏於名090_200d山之一刹。則山之陵谷變遷。刹之廢興存亡。不知其幾於二百年間。而獨能離之。幸之一也。能免乎壬辰海寇之灰燼而搜抉。則幸之二也。能不爲鑪錘之破。射利之有。則幸之三也。能使野夫斥于此寺。而竟得其所。則幸之四也。夫幸者一則固也。庸必其再乎。幸而至再。庸必其至三至四乎。可異也已。吾聞浮屠人善幻。是亦浮屠器也。吾未可知已。萬曆丙辰夏五月。大樓山人。跋。

 

西河先生集卷之五
 七言律詩
宿冠岳沙幕寺 a_144_077d


日望靑山在座隅。興來携策度崎嶇。谷深寒澗涓涓淨。寺陋殘燈炯炯孤。月下幽禽啼一箇。樓前古木立雙株。山行造次皆眞境。此樂誰知與衆殊。

 

명종 5년 경술(1550,가정 29)
 10월17일 (정축)
관악사의 중 계은이 예궐하여 호피를 바치니 상을 주게 하다

관악사(冠嶽寺)의 중 계은(戒誾)이 예궐(詣闕)하여 호피(虎皮)를 바치니 상을 주라고 명하였다.
【원전】 19 집 724 면
【분류】 *인사(人事) / *사상-불교(佛敎)

  명종 5년 경술(1550,가정 29)
 10월21일 (신사)
사간원에서 계은이 호피를 바친 일이 변괴임을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무릇 중과 이류(異類)가 도성 안을 출입하는 데는 본디 금법이 있는데 관악사의 중 계은은 정원에 들어가 감히 호피를 바쳤으니 이는 전에 없던 큰 변괴로서 조야에서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금부에 내려 끝까지 힐문(詰問)하여 그 죄를 통렬히 다스리소서. 또 왕자(王者)는 기이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법입니다. 하물며 요승(妖僧)이 바친 물건이겠습니까. 왕부(王府)에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청컨대 그가 바친 물건을 물리치고 값을 지급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어 물정(物情)을 쾌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해사(該司)로 하여금 추고하게 하였으니【병조가 이미 외람되게 대궐에 들어온 죄를 추고하라고 청하였다.】 지금 하옥(下獄)하여 소요스럽게 할 것은 없다. 호피는 되돌려 주라.”
하였다.
【원전】 19 집 724 면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