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 시조공에 대한 기록/高麗國大匡完山君諡文眞崔公墓誌銘

혜소전(慧昭傳)

아베베1 2012. 1. 20. 00:23

 

  이미지사진은 문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의 모습 (2012.1.18. 삼각산 산행시)

 

 

간본 아정유고 제3권

문(文) - 전(傳)
혜소전(慧昭傳)


혜소의 성은 최씨(崔氏)이다. 그의 선조는 중국 사람이었는데 수(隋) 나라 군사가 요동(遼東)을 정벌할 때에 여맥(驪貊)에서 많이 전몰(戰沒)하니 이때 항복하여 거주하였으며 현재는 전주(全州) 금마군(金馬郡 지금의 익산군(益山郡)) 사람이다. 아버지는 창원(昌元)이며 어머니는 고씨(顧氏)이다. 고씨가 일찍이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는, 이어 유리(琉璃)로 된 병을 주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선사(禪師)를 임신하였다.
8세쯤 되어 소꿉장난을 할 때면 반드시 나뭇잎을 태워 향(香)으로 하고 꽃을 꺾어 공양(供養)하는 시늉을 하며 혹 서쪽을 향하여 무릎 꿇고 전혀 얼굴을 움직이지 않기도 하였다. 장성하자 부모를 봉양하는 뜻이 간절하였지만 집에는 1두(斗)의 곡식도 없었다. 이에 생선장수를 하여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봉양하였다.
정원(貞元 당 덕종(唐德宗)의 연호) 20년(804)에 뱃사공이 되어 당 나라에 가는 공사(貢使)를 따라 바다를 건너 창주(滄洲)에 이르러 신감대사(神鑑大師)를 뵈니, 대사가 기뻐하며,
“희롱으로 작별한 지 오래지 아니하였는데 다시 서로 만난 것을 기뻐한다.”
하고는, 빨리 머리를 깎고 승복(僧服)을 입게 하고 심인(心印)과 계(契)를 주었다. 선사의 얼굴이 구리빛처럼 검으니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흑두타(黑豆陀)라 하였다.
원화(당 헌종(唐憲宗)의 연호) 5년(810)에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 유리단(琉璃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으니 어머니의 꿈과 완연히 서로 합하였다. 드디어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잣을 먹으며 망심(妄心)을 그치고 진리를 관찰하여 도를 닦았다.
태화(太和 당 문종(唐文宗)의 연호) 4년(830)에 본국으로 돌아오니 흥덕대왕(興德大王)이 친필로 환영하기를,
“하늘에 닿는 자비(慈悲)와 위력(威力)으로 온 나라가 기쁘게 힘입을 것입니다. 과인(寡人)은 장차 동쪽 계림(鷄林 경주(慶州)의 이칭) 땅에 길상(吉祥)의 집을 만들리라.”
하였다. 처음에 석장(錫杖)을 상주(尙州)의 노악산(露岳山) 장백사(長柏寺)에 멈추었는데, 방장(方丈)이 비록 넓으나 물정이 군색하였다. 이에 보행으로 강주(康州) 지리산(智異山)에 이르러 옛날 삼법화상(三法和尙)이 수행하던 화개곡(花開谷)의 절터에 절을 지었다.
개성(開成 당 문종(唐文宗)의 연호) 3년(838)에 민애대왕(愍哀大王)이 즉위하자 새서(璽書 왕의 친서(親書)를 말한다)를 내려 특별히 발원(發願)할 것을 청하니, 선사는,
“부지런히 선정(善政)을 베풀 뿐이니 무엇 때문에 발원을 하십니까?”
하였다. 사신(使臣)이 돌아가 이 말을 아뢰니, 왕은 부끄러워하고 깨달아 선사가 ‘색(色)과 공(空)이 모두 없어지고 정(定)과 혜(慧)가 원만(圓滿)하다.’ 하여 호를 혜소(慧昭)라 하였는데, 조(照)자로 고친 것은 성조(聖祖)의 묘호(廟號 소성대왕(昭聖大王)을 가리킨 것)의 휘(諱)를 피하여 바꾼 것이다. 이어 대황룡사(大皇龍寺)에 적(籍)을 두게 하고 서울로 불러오게 하였으나 굳게 지키고 옮기지 아니하였다. 드디어 기이한 절경(絶境)을 골라 남령(南嶺)의 산기슭에다가 선려(禪廬)를 지었다.
대중(大中 당 선종(唐宣宗)의 연호) 4년(850) 1월에 문인에게 고하기를,
“만법(萬法)이 모두 공(空)이니 나는 장차 이 세상을 떠나 멀리 갈 것이다. 탑을 만들어 사리(舍利)를 넣어두거나 비를 세워 행적을 기록하지 말라.”
하고, 세상을 떠나니 승랍이 77이었다. 이때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는데 바람과 천둥이 갑자기 일며 호랑이가 으르릉대고 울부짖었다. 얼마 뒤 붉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공중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났는데 회장(會葬)하는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
선사는 성품이 질박(質樸)함을 잃지 아니하고 말은 기변(機變)을 부리지 아니하며, 의복은 솜누더기를 따뜻이 여기고 음식은 겨나 보리싸라기를 먹었다. 언제나 왕이 사람을 시켜 역말을 타고 명을 전하여 멀리 법력(法力)을 기원하면, 선사는,
“왕의 토지에 살며 불일(佛日)을 받들고 있는 사람이면 누군들 호국(護國)하는 일념에 마음을 기울여 임금을 위하여 복을 쌓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굳이 마른 나무나 썩은 나무와 같은 저에게 임금님의 말씀을 멀리 보내십니까?”
하였다. 누가 호향(胡香)을 선물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왓장에 잿불을 담아 환(丸)을 만들지 않은 채로 태우면서,
“나는 이것이 어떤 냄새인지 모르겠다. 마음만 경건히 할 뿐이다.”
하였으며, 또 중국에서 나온 차를 선물하는 자가 있으면 돌솥에 섶을 태우며 가루를 만들지 않은 채로 끓여 마시면서,
“나는 이것이 어떤 맛인지 모르겠다. 창자를 적실 뿐이다.”
하였는데, 진(眞)을 지키고 속(俗)을 싫어함이 모두 이런 정도였다.
본래 범패(梵唄)를 잘하여 음성이 금옥(金玉) 같았다. 독특한 곡조와 날아가는 듯한 소리가 상쾌하고 아름다우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어산(魚山)의 묘한 곡조를 익히는 자들이 다투어 ‘손으로 코를 가리듯’ 본받았다.
선사가 열반(涅槃)하고 3년이 지난 뒤에 문인이 세월이 오래되면 유적이 없어질까 염려하여 법을 사모하는 제자들이 길이 썩지 않게 할 인연을 의논하니, 내공봉(內供奉) 일길간(一吉干) 양진방(楊晉方)과 숭문대랑(崇文臺郞) 정순일(鄭詢一)이 비석을 새길 것을 주청하였다. 헌강대왕(獻康大王)은 진감선사(眞鑑禪師)라 추시(追諡)하고 탑을 대공허(大空虛)라 이름하였으며 전각(篆刻)을 허락하였으나 거북등에 비석을 얹기 전에 왕이 승
하(昇遐)하였다. 정강왕(定康王)이 즉위하여 선사가 있던 절 문이 복간(複澗)에 임하였다 하여 쌍계(雙溪)라는 제호(題號)를 주고, 최치원(崔致遠)에게 명하여 비명(碑銘)을 짓게 하였다.


 

[주D-001]수(隋) 나라 …… 전몰(戰沒)하니 : 수 양제(隋煬帝)가 1백 13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정벌하러 왔다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에게 살수(薩水)에서 크게 패하였다.
[주D-002]흑두타(黑頭陀) : 옛날 도안법사(道安法師)는 얼굴이 검었으므로 칠도인(漆道人)이라 부르기도 하고 흑두타라 부르기도 하였다. 즉 선사는 도안법사와 같다는 뜻이다.
[주D-003]석장(錫杖) …… 멈추었는데 : 승려가 짚는 지팡이로 즉 장백사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주D-004]어산(魚山)의 묘한 곡조 : 구슬픈 염불 소리를 말한다. 삼국 때 조식(曹植)은 불경을 잘 외었는데 하루는 어산(魚山)에 유람하였다. 이때 공중에서 맑고 구슬픈 소리가 나기에 따라 했더니 염불 소리가 되었다 한다.
[주D-005]손으로 코를 가리듯 : 흉내 내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사안(謝安)은 콧병이 있어서 음성이 탁하였다. 선비들은 그가 읊는 소리를 좋아하여 손으로 코를 가리고 흉내냈다 한다.

 

靑莊館全書卷之六十八 完山李德懋懋官著男光葵奉杲編輯德水李畹秀蕙隣校訂
寒竹堂涉筆[上]
慧昭 a_259_254c


慧昭姓崔氏。其先漢族。隋師征遼。多沒驪貊。今爲全州金馬人也。父昌元。母顧氏。氏常晝假寐。夢一梵僧謂曰。吾願爲阿㜷之子。因寄琉璃罌。未幾娠。禪師旣齓。爲戱必焚葉爲香。採花爲供。或西向危坐。未嘗動容。及長。志切反哺。家無斗儲。裨販娵隅。爲贍甘滑之養。貞元二十年。爲榜人。隨貢使渡海。行至滄洲。謁神鑑大師。師怡然曰。戱別匪遙。喜再相遇。遽令染削。頓受印契。師形皃黯然。衆不名而目爲黑頭陁。永和五259_254d年。受具於嵩山少林寺琉璃壇。聖善前夢。宛若合符。遂入終南。餌松實而止觀。大和四年。來歸。興德大王飛鳳筆迎之曰。彌天慈威。擧國欣賴。寡人行當以東雞林之境。成吉祥之宅也。始憇錫於尙州露岳長栢寺。方丈雖寬。物情自隘。乃步至康州智異山。仍於花開谷。故三法和尙蘭若遺基。纂修堂宇。開成三年。愍哀大王卽位。降璽書。別求見願。師曰。在勤修善政。何用願爲。使復于王。王聞之愧悟。以師色空雙泯。定慧俱圓。賜號爲慧昭。照字避聖祖廟諱易之也。仍貫籍于大皇龍寺。徵詣京邑。岳立不移。遂歷銓奇境。得南259_255a嶺之麓。經始禪廬。大中四年正月。告門人曰。萬法皆空。吾將行矣。無以塔藏形以銘紀。跡臘七十七。于時天無纖雲。風雷歘起。虎狼號咽。俄而紫雲翳空。空中有彈指聲。會葬者。無不入耳。師性不散樸。言不由機。服煖縕黂。食甘糠麧。每有王人乘馹傳命。遙祈法力。則曰凡居王土而戴佛日者。孰不傾心護念爲君貯福。亦何必遠紆綸音於枯木朽株。或有以胡香爲贈者。則以瓦載穅灰。不爲丸而焫之曰。吾不識是何臭。處心而已。復有以漢茗爲供者。則以薪爨石釜。不爲屑而煑之曰。吾不識是何味。沾腹而已。守眞忤俗。皆259_255b此類也。雅善梵唄。金玉其音。側調飛聲。爽快哀婉。至今東國習魚山之妙者。競如掩鼻。師泥洹越三紀。門人以陵谷爲慮。扣不朽之緣於慕法弟子。內供奉一吉干楊晉方。崇文㙜郞鄭詢一。勒石。是請獻康大王。追謚眞鑑禪師。塔號大空虛。仍許篆刻。龜未戴石。龍遽昇天。定康王卽位。以招提之門臨複澗。乃鈞題爲雙溪。命崔致遠。爲銘。

 


성호사설 제30권
시문문(詩文門)
동방석각(東方石刻)

우리나라의 석각(石刻)에도 고적이 역시 많으나 삼한(三韓) 이전에 이르러는 상고할 길이 없는데, 근세에 와서 왕손(王孫)인 낭원군(朗原君)이 편집한 《대동금석록(大東金石錄)》이 자못 누락됨이 없다. 경주(慶州)에는 신라(新羅)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가 있고 또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의 묘비(墓碑)가 있고 삼수현(三水縣)에는 초방원비(草房院碑)가 있으니, 바로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순수(巡狩)한 기록이다. 생각건대 실직(悉直)이 처음에는 신라에 소속되었으니, 그렇다면 영동(嶺東)의 땅도 다 옛날에는 신라의 소유이었든 동시에 철령(鐵嶺)의 밖에까지도 역시 그 순수(巡狩)가 미쳐 갔던 모양인데, 그 후에 고구려가 땅을 개척하여 바다에까지 미치게 되어서는 다시 이 땅을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부여현(扶餘縣)에는 백제(百濟)를 평정한 탑명(塔銘)이 있는데 당(唐) 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세운 것이요, 또 백제를 평정한 비(碑)가 있는데 역시 당 나라 유인원(劉仁願)이 세운 것이다.
진주(晉州) 지리산(智異山) 단속사(斷俗寺)에는 신행선사비(神行禪師碑)가 있는데 석(釋) 영업(靈業)이 쓴 것이다. 그 글씨가 좋아서 사대부들이 많이 모탑(摸搨)하여 완상 한다. 그리고 쌍계사(雙磎寺)에는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가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짓고 아울러 글씨를 쓴 것이며, 양양(襄陽) 설악산(雪嶽山)에는 홍각선사비(弘覺禪師碑)가 있는데 왕우군(王右軍)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며, 합천(陜川) 가야사(伽倻寺) 홍류동(紅流洞)에는 최치원의 시각(詩刻)이 있고, 보령(保寧) 성주산(聖住山)에는 낭혜화상비(朗慧和尙碑)가 있는데,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광양(光陽) 백학산(白鶴山) 옥룡사(玉龍寺)에는 도선비(道詵碑)가 있고, 봉화(奉火) 태자산(太子山)에는 낭공대사(朗空大師)의 백월서운탑비(白月棲雲塔碑)가 있는데,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며, 문경(聞慶) 희양산(曦陽山)에 지증선사비(智證禪師碑)가 있는데,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것이다. 이상은 모두 신라의 고적이다.
원주(原州) 건등산(建登山) 흥법사(興法寺)에는 진공대사비(眞空大師碑)가 있는데, 당 문황(唐文皇)의 글에 고려 태조(太祖)의 글씨로 된 것이요,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에는 도선(道詵)의 창사비(創寺碑)가 있고, 직산(稷山) 소사평(素沙坪)에는 홍경사비(弘慶寺碑)가 있고, 금산(金山)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에 대장당기비(大藏堂記碑)가 있는데, 왕우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요, 의흥(義興) 화산(華山) 인각사(麟角寺)에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가 있는데, 민지(閔漬)의 글에 왕우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요, 고성(高城) 삼일포(三日浦)에 매향비(埋香碑)가 있으며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나옹화상비(懶翁和尙碑)가 있으며 지공대사비(指空大師碑)가 있는데 다 이색(李穡)의 글로 된 것이다.
그리고 또 본조(本朝)의 무학(無學)의 비가 있다. 임천(林川) 보광사(普光寺)에 원명국사비(圓明國師碑)가 있는데 원(元) 나라 사람 게법(揭法)의 글씨에 위소(危素)의 글로 된 것이다. 대략 채집하여 기록에 실어서 옛 것을 좋아하는 자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바이다.

[주C-001]동방석각(東方石刻) : 우리나라의 석각. 《類選》 卷5下 人事篇8 技藝門.
[주D-001]낭원군(朗原君) : 조선조 선조(宣祖)의 손자인 인흥군(仁興君) 영(瑛)의 아들로 이름은 간(偘), 호는 최락당(最樂堂). 형 낭선군(郞善君)과 함께 전서(篆書)ㆍ예서(隸書)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음. 작품에 보월사 중수비(寶月寺重修碑)ㆍ송광사사원사적비(松廣寺嗣院寺蹟碑) 등이 있음.
적중 봉소(賊中封疏)
록(錄)
적중 문견록(賊中聞見錄)


왜국 백관도(倭國百官圖)
제왕((帝王) 천자(天子)
바로 왜의 황제인데, 머리를 자르지도 않고 당(堂)에 내려가지도 않으며, 보름 전에는 채소를 먹고 보름 후에는 생선을 먹으며, 전세(前世)에 있어서는 위복(威福)을 그 자신이 행사했고, 섭정(攝政)ㆍ관백(關白)ㆍ대납언(大納言) 등의 관을 두어 임금의 일을 섭행(攝行)하게 하였습니다. 중세 이후로는 섭정이 국가의 명령을 독차지하고, 이른바 천황이란 것은 호령을 내리지 못하였으며, 왕성(王城)에 봉행(奉行)한 사람을 두어 왕성의 안팎을 경호하게 하였습니다. 수길(秀吉)의 세상에는 덕선원(德善院)의 현이(玄以)란 자가 왕경(王京)의 봉행이 되었으니, 봉행이란 것은 맡아 지킨다는 칭호입니다.
섭정(攝政) 전하(殿下)관백(關白) 전하(殿下)장군(將軍) 막부(幕府)대정대신(大政大臣) 대상국(大相國)대납언(大納言) 아상(亞相)중납언(中納言) 황문(黃門)소납언(小納言) 급사(給事)재상(宰相) 삼의(三議)이위(貳位) 특진(特進)삼위(三位) 삼품(三品)좌우대변(左右大弁) 상윤(尙尹)좌우중변(左右中弁) 낭중(郞中)좌우소변(左右小弁) 원외랑(員外郞)시종(侍從) 습유(拾遺)좌우대장(左右大將) 막하(幕下)중장(中將) 우림(羽林)소장(小將) 우림검비위생(檢非違栍) 대리(大理)중칙(中勅) 중윤(中尹)판관(判官) 정위(廷尉)외기(外記) 외사(外史)내기(內記) 주하내사(柱下內史)봉전(縫殿) 식부(式部) 이부(吏部)대학(大學) 좨주(祭酒)치부(治部) 예부(禮部)병부(兵部) 평부(平部)형부(刑部) 토부(討部)민부(民部) 호부(戶部)궁내(宮內) 사농(司農)소부(掃部) 쇄소(灑掃)아악(雅樂) 대악(大樂)현번(玄番) 홍려(鴻臚)대장(大藏) 대부(大府)직부(織部) 겸직염서(兼織染署)대선대부(大膳大夫) 광록(光祿)목공(木工) 장작(匠作)대취(大炊) 대창(大倉)주전(主殿) 상창(尙倉)전약(典藥) 대의(大醫)채녀(采女) 채녀(采女)탄정(彈正) 상대(霜臺)좌우경(左右京) 경조(京兆)주마(主馬) 구서(廐署)좌우(左右) 위부(衛府)장감(將監) 신위(新衛)좌우위문(左右衛門) 금오(金吾)좌우마(左右馬) 전작구(典作廐)병고(兵庫) 무고(武庫)좌우병위(左右兵衛) 무위(武衛)수리(修理) 장작(匠作)□해유(解由) 향□(向) 이란 글자는 무슨 글자인지 미상하므로 우선 왜의 본서(本書)대로 써서 메꾸었음수(帥) 도독(都督)대무(大武) 대경(大卿)대력(帶力) 월법(月法)도서(圖書) 지윤(祗尹)준인(準人) 포의반(布議反)주계(主計) 탁지(度支)주세대사(主稅大使) 이천석(二千石)권수(權守) 판관대(判官代)감물(監物) 성문랑(城門郞)주수(主水) 상림서(上林署)대사(大舍) 문복(門僕)
전세(前世)에 있어서는 관함(官啣)을 띤 사람이 그 직무를 맡았는데, 중세(中世) 이후로는 토지를 관직이 있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관이 그 이름만 있고 그 직무를 다스리지 아니했고, 근세 이래에는 드디어 관명(官名) 및 주명(州名)으로 사람의 명칭을 삼았으므로, 장왜(將倭) 집의 부곡(部曲)이나 시양(厮養) 등이 모두 달관(達官)과 주수(主守)의 칭호를 띠었습니다.

왜국 팔도 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용명천황(用明天皇) 시대에 오기(五畿)와 칠도(七道)를 정했고, 문무천황(文武天皇)이 육십육국(國)으로 나누었음. 왜승(倭僧)의 기록이 간혹 문리(文理)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가 있으나, 본문에 의하지 아니하면 그 실상을 잃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모두 구본(舊本)에 의해 등초하고, 제주(諸州)의 말미에 다시 새로 듣고 본 것을 부록하여 참고에 편리하게 하였음.


기내 5국(畿內五國)
산성(山城) 옹성(甕城), 심주(尋州)상(上)이다. 관할이 8개 군(郡) 을훈부(乙訓府)ㆍ갈야(葛野)ㆍ애탕(愛宕)ㆍ기이(紀伊)ㆍ우치(宇治)ㆍ구세(久世)ㆍ철희(綴喜)ㆍ습락(拾樂 습(拾)은 상(相)이라고도 한다)이다. 거리는 남북이 백여 리이다. 짐적(朕跡)에는 약방(藥房)이 많다. 심으면 백 배나 나며 맛이 달다. 크고, 상상(上上)에 드는 나라이다. 상관(上管)의 상(上)은 토품(土品)의 상을 이른 것이요, 대상(大上)의 대(大)는 지방(地方)이 큼을 이르고, 상상국(上上國)의 상은 역시 토품을 말한 것이다. 아래도 모두 이와 같음. ○ 왕경(王京) 및 적괴가 쌓은 복견(伏見)의 신경(新京)이 있음.
태화(太和) 화주(和州)대(大)이다. 관할이 15개 군 첨상(添上)ㆍ첨하(添下)ㆍ평부(平部)ㆍ광뢰(廣賴)ㆍ갈상(葛上)ㆍ갈하(葛下)ㆍ인해(忍海)ㆍ우지(宇智)ㆍ길야(吉野)ㆍ우타(宇陀)ㆍ성상(城上)ㆍ성하(城下)ㆍ고시(高市)ㆍ십시부(十市府)ㆍ산변(山邊)이다. 남북이 2백여 리이다. 산이 둘러섰으며, 토산(土産)이 다른 나라보다 10배가 되고, 명승지와 고적이 많다. 크고, 상상(上上)에 드는 나라이다. 왜의 남도(南都)이다. 왜왕(倭王)이 예전에 이곳에 도읍하고 이름을 화국(和國)이라 했다. 또한 야마대(野馬臺)라고도 하는데, 야마대란 양 무제(梁武帝)가 명명(命名)한 것이다. 왜인들의 행위가 경박하여 야마(野馬)와 같기 때문에 그 도읍을 이름한 것인데, 왜인들이 지금도 태화를 야마대라고 칭한다. 4백 80개의 사찰(寺刹)이 있는데, 매우 화려하다.증전위문정(增田衛門正)이란 자가 봉행(奉行)으로서 30만 석을 받아 먹고, 신장준하수(新庄駿河守)가 3만 석을 받아 먹고, 지전 손사랑(池田孫四郞)이 2만 석을 받아 먹는데, 토지가 기름지고 도미(稻米)가 대단히 희다.
하내(河內) 하주(河州)대(大)이다. 관할이 15개 군 금군(錦郡)ㆍ석천(石川)ㆍ고시(古市)ㆍ안복부(安福府)ㆍ대현(大縣)ㆍ고안(高安)ㆍ하내(河內)ㆍ찬량(讚良)ㆍ자전(茨田)ㆍ교야(交埜)ㆍ약강(若江)ㆍ삽하(澁河)ㆍ지기(志紀)ㆍ단북부(丹北府)ㆍ단남(丹南)이다. 사방이 이틀 길 남짓하다. 제방ㆍ소(沼)ㆍ못ㆍ우물이 많으며, 심으면 5배(倍)가 난다. 시전(市廛)이 허다하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 영귀(靈龜) 2년(716, 신라 성덕왕 15년)에 하내(河內) 대조군(大鳥郡)을 떼어내고, 신호(神護) 경운(慶雲) 4년(707, 신라 성덕왕 6)에 해내의 도국(島國)을 정지시켰다.수길의 여러 소장(小將)들이 갈라서 받아 먹는다.
화천(和泉) 천주(泉州)하(下)이다. 관할이 3개 군 대조(大鳥)ㆍ화천(和泉)ㆍ일근(日根)이다. 남북이 백여 리이다. 산을 지고 바다를 안고 있기 때문에 오곡(五穀)이 냉삽(冷澁)한 기운을 띠어 맛이 없다. 나라가 넓다. 장해(醬醢)ㆍ어별(魚鼈)이 많다. 크고, 하(下)에 드는 나라다.소출파마수(小出播摩守)와 석전목공두(石田木工頭)가 받아 먹는다.
섭진(攝津) 섭주(攝州)상(上)이다. 관할이 13개 군 주길(住吉)ㆍ백제(百濟)ㆍ동성(東城)ㆍ서성부(西成府)ㆍ팔부(八部)ㆍ도하(島下)ㆍ도상(島上)ㆍ풍도(豐島)ㆍ하변(河邊)ㆍ무고(武庫)ㆍ토원(兎原)ㆍ유마(有馬)ㆍ능세(能勢)이다. 이틀 반 길이다. 황성(皇城)을 끼고 서해(西海)를 안고 있다. 남쪽은 따스하고 북쪽은 차기 때문에 오곡(五穀)이 빨리 익고, 어염(魚鹽)이 풍부하다.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왜의 서경(西京)인 대판(大坂)이 있는데다, 삼하(三河)를 띠고 큰 바다를 내려다 보아 형승(形勝)이 복견(伏見)보다 낫다. 토지는 모두 관백(關白)에게 속해 있다.


동해도 15국(東海道十五國)
이하(伊賀) 이주(伊州)하(下)이다. 관할이 4개 군 하배부(下拜府)ㆍ산전(山田)ㆍ이하(伊賀)ㆍ명장(名張)이다. 사방이 하룻길이다. 동남은 바다고 북에는 산이 많으므로 온화한 기운을 의지하고 생겨나 초목(草木)과 죽탕(竹蕩)이 많다. 작으나,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통정(筒井)씨가 받아 먹는데, 대화(大和)의 대성(大姓)이다. 순경(順慶)이란 자가 매우 용맹스러웠는데, 수길이 독살하였다. 그 아들이 이하(伊賀)로 이식(移食)하여 장속대장(長束大藏)의 아우 이하수(伊賀守)와 분식(分食)한다.
이세(伊勢) 세주(勢州)대(大)이다. 관할이 16개 군 상명(桑名)ㆍ조명(朝明)ㆍ영록(鈴鹿)ㆍ하곡(河曲)ㆍ일지(壹志)ㆍ암예(菴藝)ㆍ다도(多度)ㆍ금도(錦島)ㆍ어좌도(御坐島)ㆍ원변(員辨)ㆍ삼중(三重)ㆍ안농(安濃)ㆍ반고(飯高)ㆍ반야(飯野)ㆍ도회(渡會)ㆍ다기(多氣)이다. 남북이 사흘 길 남짓하다. 산과 바다가 반반씩으로 다른 고을보다 나으므로 국친(國親)의 것이 되어 원공(原貢)이 많다. 심으면 백 배의 수확을 한다. 매우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경극(京極)이 받아 먹는다. 그 땅에 이세대명신궁(伊勢大明神宮)이 있는데, 토인(土人)들이 부모처럼 섬긴다. 토산은 백금(白金)이다.
지마(志摩) 지주(志州)하(下)이다. 관할이 3개 군 답영(答英)ㆍ지우부(志虞府)ㆍ옹도(甕島)이다. 이 안의 1군(郡)은 이세(伊勢)에 속한다. 사방이 반 나절 길이다. 1군은 지주(志州)를 합쳐 일 국(國)이다. 해조(海藻)가 많이 난다. 하하(下下)에 드는 나라다.구귀대우수(九鬼大隅守) 부자(父子)가 받아 먹는다.
미장(尾張) 미주(尾州)하(下)이다. 관할이 9개 군 해부부(海部府)ㆍ중도(中島)ㆍ우율(羽栗)ㆍ단우(丹羽)ㆍ춘일부(春日府)ㆍ산전(山田)ㆍ애지(愛智)ㆍ지다(智多)ㆍ당자도(當資島)이다. 남북이 사흘 길이다. 토지가 비옥하여 심으면 천배가 나고, 마을에는 좋은 경치가 많아 일본국에서도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 복도 대부(福島大夫)가 받아 먹고, 군소 장수들이 역시 나누어 받아 먹는다.
참하(參河) 참주(參州)하(下)이다. 관할이 8개 군 벽해(碧海)ㆍ하무(賀茂)ㆍ액전(額田)ㆍ번두(旛頭)ㆍ보반부(寶飯府)ㆍ팔명(八名)ㆍ설악(設樂)ㆍ악미(渥美)이다. 동서가 반 나절 길이다. 산하(山河)가 많은데 한 자[尺] 가량 얕다. 그렇기 때문에 오곡(五穀)이 익지 아니한다. 나라로서는 하하(下下)에 드는 작은 나라다.생전삼좌위문(生田三左衛門)과 전중병부(田中兵部)가 받아 먹는다.
원강(遠江) 원주(遠州)상(上)이다. 관할이 13개 군 빈명(濱名)ㆍ부지(敷智)ㆍ인좌(引左)ㆍ추옥(麤玉)ㆍ장상(長上)ㆍ장하(長下)ㆍ반전부(盤田府)ㆍ주지(周知)ㆍ산명(山名)ㆍ좌야(左野)ㆍ성사(城飼)ㆍ진원(蓁原)ㆍ산향(山香)이다. 산하(山河)와 향리(鄕里)가 서로 어울린다. 땅이 칠척(七尺)이나 깊어, 심으면 천 배, 또는 만만 배나 난다. 크고 상상(上上)에 드는 나라다.굴미 대협(掘尾帶脇)이 받아 먹는다.
준하(駿河) 준심(駿尋)상(上)이다. 관할이 7개 군 지대(志大)ㆍ익두(益頭)ㆍ유도(有度)ㆍ안배부(安倍府)ㆍ노원(盧原)ㆍ부사(富士)ㆍ준하(駿河)이다. 상하(上下)는 인접국과 동등하다. 동서가 이틀 반 길이다. 산ㆍ원ㆍ야ㆍ리(山原野里)가 균등하며 바다를 안고 산을 띠어, 살찐 산물이 많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이다.중촌식부소보(中村式部少輔)가 받아 먹는다.이 땅에 부사산(富士山)이 있는데, 형상이 부부(覆瓿)와 같고 마루턱에 큰 구멍이 있어 그 깊이가 바닥이 없다. 따뜻한 기운이 아래로부터 곧장 올라와 운무(雲霧)와도 같으며, 6월에도 항상 눈이 있다. 명(明) 나라 태사(太史) 송경렴(宋景濂)의 시(詩)에 이르기를,

만 송이 연꽃인 양 저 부사산이 / 萬朶蓮花富士山
얽힌 뿌리 땅을 눌러 삼주 사이에 벋었네 / 蟠根壓地三州間
6월에도 눈꽃이 새털처럼 휘날리니 / 六月雪花飄素竁
어디메 깊은 숲에서 백한을 찾아볼꼬 / 何處深林求白鷴

라는 것이 바로 이를 이른 것이다. 왜놈 중에 복건(福建)ㆍ남만(南蠻) 여러 나라에서 무판(貿販)하는 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부사산의 절정(絶頂)을 바라본 연후에야 마침내 돛을 올린다. 왜승(倭僧)이 항상 이세(伊勢)의 열전(熱田)과 기이(紀伊)의 웅야(熊野)와 부사를 삼신산(三神山)이라 했다. 혹자는, 근강주(近江州)의 태호(太湖)가 하루만에 생겼고, 준하주의 부사산이 하루만에 저절로 호수의 모래흙에서 솟아올라 산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방의 구경꾼들이 부사산에 갈 적에는 반드시 미리 열흘 동안을 재계해야 마침내 재앙이 없으며, 근강(近江) 사람은 비록 하루 동안만 재계를 해도 절대로 발이 미끄러져 떨어져 죽을 염려가 없다 했다. 왜놈들의 괴이한 말을 좋아하는 것이 이와 같다.
이두(伊豆) 두주(豆州)하(下)이다. 관할이 3개 군 전방(田方)ㆍ나하(那賀)ㆍ하무(賀茂)이다. 이 밖에 대도(大島)ㆍ질도(蛭島)가 있다. 동서가 하루 남짓한 길이다. 산전(山田)이 많고 수전(水田)은 적으며 산이 높고 바다가 크다. 소금ㆍ생선의 유가 많아 판공(辨貢)이 많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이다. 내부 가강(內府家康)과 그 아들 강호 중납언(江戶中納言)이 받아 먹는다.
갑비(甲斐) 갑주(甲州)상(上)이다. 관할이 4개 군 산리(山梨)ㆍ산대부(山代府)ㆍ팔대성(八代城)ㆍ거마(巨麻)이다. 남북이 이틀 남짓한 길이다. 수전은 얕고 산전은 깊다. 사방이 차고 양기(陽氣)가 없다. 초목이 번식하고 우마(牛馬)가 많다. 중간 크기이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천야탄정(淺野彈正) 및 그 아들 좌경 대부(左京大夫)가 받아 먹는다.
상모(相模) 상주(相州)상(上)이다. 관할이 9개 군 족병상(足柄上)ㆍ족병하(足柄下)ㆍ대주(大柱)ㆍ도릉(淘綾)ㆍ애갑(愛甲)ㆍ고좌(高座)ㆍ겸창(鎌倉 왜 나라 중의 명부(名府))이다. 이 지역에 명검(名劍)을 만드는 사람이 많다)ㆍ삼포(三浦)ㆍ강도(江島)이다.사방이 사흘 길이다. 땅의 두께가 1길이나 되어 생산이 많고, 결(缺)산이 얕아 목재가 없으며, 단지 해조(海藻)와 어별(魚鱉)이 많다. 중간 크기이고, 하(下)에 드는 나라다. 내부 가강(內府家康)이 받아먹는다.
무장(武藏) 무주(武州)대(大)이다. 관할이 21개 군 구량기(久良岐)ㆍ도축(都築)ㆍ다마부(多麻府)ㆍ귤수(橘樹)ㆍ신창(新倉)ㆍ입간(入間)ㆍ고려(高麗)ㆍ비금(比金)ㆍ횡견(橫見)ㆍ기옥(崎玉)ㆍ아옥(兒玉)ㆍ남금(男衾)ㆍ번라(旛羅)ㆍ진택(榛澤)ㆍ나하(那賀)ㆍ하미(賀美)ㆍ족립(足立)ㆍ질부(秩父)ㆍ임원(荏原)ㆍ풍도(豐島)ㆍ대리(大里)이다. 사방으로 닷새 반 길이다. 들은 큰데 산이 없어서 좋은 목재가 부족하다. 전답은 풍부하여 야채(野菜)의 유가 많다. 크고, 상상(上上)에 드는 나라이다. 내부가강(內府家康)이 받아 먹는다.
안방(安房) 방주(房州)중(中)이다. 관할이 4개 군 주군부(周郡府)ㆍ안방(安房)ㆍ조이(朝夷)ㆍ장협(長俠)이다. 남북이 하루 반 길이다. 산하(山河)와 원야(原野)와 전리(田里)가 균평(均平)하다. 어패(魚貝)가 많기 때문에 논의 비료로 사용한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 내부 가강과 이견(里見)씨가 받아 먹는다.
상총(上總) 총주(總州)대(大)이다. 관할이 11개 군 주집(周集)ㆍ천우(天羽)ㆍ시원(市原)ㆍ해상부(海上府)ㆍ반산(畔蒜)ㆍ망타(望陁)ㆍ이우(夷隅)ㆍ식생(埴生)ㆍ장병(長柄)ㆍ산변(山邊)ㆍ무사(武射)이다. 남북이 사흘 길이다. 해안(海岸)이 넓고 벽조(碧藻)가 많으며, 견포(絹布)ㆍ등초(鐙鍬) 등이 유명하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이다. 내부 가강이 받아 먹는다.
하총(下總) 총주(總州)대(大)이다. 관할이 12개 군 갈식부(葛飾府)ㆍ천엽(千葉)ㆍ인번(印旛)ㆍ상마(相馬)ㆍ원도(猿島 원(猿)은 또한 협(狹)으로도 쓴다)ㆍ결성(結城)ㆍ풍전(豐田)ㆍ갑차(匣瑳)ㆍ해상(海上)ㆍ향취(香取)ㆍ식생(埴生)ㆍ강전(岡田)이다. 남북이 사흘 길이다. 산과 바다가 똑같이 많아 금수(禽獸)가 가득 찼지만, 그러나 먹을 만한 맛이 없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이다. 내부 가강이 받아 먹는다
상륙(常陸) 상심(常尋)대(大)이다. 관할이 11개 군 신치(新治)ㆍ진벽(眞壁)ㆍ축파(筑波)ㆍ하내(河內)ㆍ신태(信太)ㆍ자성부(茨城府)ㆍ행방(行房)ㆍ녹도(鹿島)ㆍ나가(那珂)ㆍ구하(久河)ㆍ다하(多河)이다. 우(右)는 먼 나라이다. 사방이 나흘 길이다. 전택(田宅)과 시전(市廛)이 날로 번성하고, 우마(牛馬)가 목장(牧場)에 가득하며 누에도 많이 치고 면화(綿花)도 풍요하다. 매우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좌죽(佐竹)이 받아 먹는다.


동산도 8국(東山道八國)
근강(近江) 강주(江州)대(大)이다. 관할이 13개 군 하자(賀滋 자(滋)는 지(志)로도 쓴다)ㆍ율본(栗本)ㆍ야주(野洲)ㆍ포생(蒲生)ㆍ신기(神崎)ㆍ견상(犬上)ㆍ판전(坂田)ㆍ수지상하(受智上下)ㆍ천정(淺井)ㆍ이향(伊香 향(香)은 갑(甲)으로도 쓴다)ㆍ고도(高島)ㆍ갑하(甲賀)ㆍ선적상하(善積上下)이다. 사방이 사흘 반 길이다. 산하(山河)와 전답이 보강(保疆)하고 윤택하여 심으면 천 배가 난다. 서울과 이웃이며 봄기운이 일찍 온다. 일본의 넷째번 가는 나라이다. 사번(四番)은 상사등(上四等) 안에 드는 것을 이른다. 경극 시종(京極侍從), 석전 치랑소보(石田治郞少輔), 장속대장두(長束大藏頭)가 나누어 받아 먹는다.
미농(美濃) 농주(濃州)상(上)이다. 관할이 18개 군 석진(石津)ㆍ불파부(不破府)ㆍ안팔(安八)ㆍ지전(池田)ㆍ대야(大野)ㆍ본소(本巢)ㆍ석전(席田)ㆍ방현(方縣)ㆍ후견(厚見)ㆍ각무(各務)ㆍ산현(山縣)ㆍ무의(武義)ㆍ군상(群上)ㆍ하무(賀茂)ㆍ가아(可兒)ㆍ토기(土岐)ㆍ혜내(惠奈)ㆍ다세(多勢)이다. 우(右)는 가까운 나라이다. 남북이 사흘 길이다. 산원(山原)과 전포(田圃)가 많으며 면화가 풍족하고 오곡(五穀)이 만 배가 난다.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기부중납언(岐阜中納言) 및 군소 장수들이 받아 먹는다. 토산물은 상품지(上品紙)이다.
비탄(飛彈) 비주(飛州)하(下)이다. 관할이 4개 군 대후(大厚)ㆍ익전(益田)ㆍ천야(天野 천(天)은 대(大)로도 쓴다)ㆍ황성(荒城)이다. 남북이 이틀 길이다. 산이 깊어 목재가 많으므로 공상(貢上)이 시신(柴薪)이 많다. 소금이 맛이 적고, 5곡이 잘 익지 아니한다. 나라로는 하하(下下)에 드는 나라다.금삼법인(金森法印)과 그 양자 출운수(出雲守)가 받아 먹는다. 법인이란 것은 승려의 관명(官名)이다. 토산물은 황금(黃金)이다.
신농(信濃) 신주(信州)상(上)이다. 관할이 10개 군 수내(水內)ㆍ고정(高井)ㆍ식과(埴科)ㆍ소현(小縣)ㆍ좌구(佐久)ㆍ이나(伊那)ㆍ취방(諏訪)ㆍ축마부(筑麻府)ㆍ안중(安重 일운(日雲)이라고도 한다)ㆍ경급(更級)이다. 우(右)는 중간에 있는 나라다. 남북이 닷새 길이다. 음기가 많아 풀이 자라지 않으며, 바다가 막고 있는데 염미(鹽味)가 적다. 땅 깊이가 1길이나 되어 상마(桑麻)가 잘 되고 백면(帛綿)이 많다. 매우 크고 하(下)에 드는 나라다.진전(眞田)씨가 받아 먹는다. 천각월전수(千刻越前守)가 그 이름이다. 토산은 명마(名馬)다.
상야(上野) 야주(野州)대(大)이다. 관할이 14개 군 대빙(碓氷)ㆍ오처(吾妻)ㆍ이근(利根)ㆍ세전(勢田 ‘勢多’로도 쓴다)ㆍ좌위(佐位)ㆍ신전(新田)ㆍ편강(片岡)ㆍ읍락(邑樂)ㆍ군마부(郡馬府)ㆍ감라(甘羅 ‘甘樂’으로도 쓴다)ㆍ다호(多胡)ㆍ녹야(綠野)ㆍ나파(那波)ㆍ산전(山田)이다. 동서가 나흘 길이다. 온기가 족하여 뽕나무가 많고 견ㆍ면(絹綿)이 풍부하다. 황()을 상공(上貢)한다. 매우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내부 가강(內府家康)과 좌야수리대부(佐野修理大夫)가 받아 먹는다.
하야(下野) 야주(野州)상(上)이다. 관할이 9개 군 족리(足利)ㆍ양전(梁田)ㆍ안소(安蘇)ㆍ도하부(都賀府)ㆍ방하(芳賀)ㆍ한천(寒川)ㆍ염옥(鹽屋)ㆍ나수(那須)ㆍ직벽(直壁)이다. 동서가 사흘 반의 길이다. 산이 적고 들이 깊으며, 땅이 두텁고 초목(草木)이 많다. 심으면 백 배가 난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내부 가강이 받아 먹는다.
육오(陸奧) 오주(奧州)대(大)이다. 관할이 49개 군 백천(白川 백하관(白河關)이 있는 곳인데, 관동(關東)이란 것은 백하의 동쪽이다)ㆍ흑하(黑河)ㆍ반뢰(盤瀨)ㆍ궁성부(宮城府)ㆍ회진(會津)ㆍ나마(那麻)ㆍ소전(小田)ㆍ안적(安積)ㆍ안달(安達)ㆍ시전(柴田)ㆍ애전(刈田)ㆍ원전(遠田)ㆍ명취(名取)ㆍ신부(信夫)ㆍ국다(菊多 ‘菊田’이라고도 쓴다)ㆍ표엽(標葉)ㆍ하회(河會)ㆍ행방(行方)ㆍ반수(磐手)ㆍ화하(和賀)ㆍ하내(河內)ㆍ패계(稗繼)ㆍ고야(高野)ㆍ일리(日理 ‘日利’라고도 쓴다)ㆍ강차(江差)ㆍ첨택(瞻澤)ㆍ장강(長岡)ㆍ등미(登米)ㆍ도생(桃生)ㆍ모록(牡鹿)ㆍ군재(郡載)ㆍ녹각(鹿角)ㆍ계상(階上)ㆍ진경(津輕)ㆍ우다(宇多)ㆍ이구(伊具)ㆍ본길(本吉)ㆍ석천(石川)ㆍ대치(大治)ㆍ색마(色摩)ㆍ도아(稻我)ㆍ사파(斯波)ㆍ반전(磐前)ㆍ금원(金原)ㆍ갈전(葛田 갈(葛)은 신(新)으로도 쓴다)ㆍ이달(伊達)ㆍ두록(杜鹿)ㆍ폐이(閉伊)ㆍ기선(氣仙)이다. 동서가 60일 길이다. 옛날에는 출우(出羽)의 한 나라로서 시성(市城)과 궁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선굴(仙窟)도 이미 마련되었으며, 새ㆍ짐승이 충족하다. 칠(漆)을 공상(貢上)한다. 매우 크고, 상상(上上)에 드는 나라다. 중장 정종(中將政宗)과 월후납언 경승(越後納言景勝)과 남부 송간(南部松間)이 받아 먹는다.바다 가운데 금산(金山)이 있어서, 지키는 장수가 목욕 재계하고 그 캐낼 숫자를 청한 연후에 배를 타고 가서 캐어 오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그 청한 숫자를 초과할 경우에는 그 배가 돌아오다 반드시 부서지게 된다고 한다. 땅이 하이(蝦蛦)와 연접하였는데, 한없이 광막하여 왜국을 다 쳐도 이 한 주의 장광(長廣)만 못하다. 그 도로가 통행된 곳이 54군이나 되는데, 산융(山戎)들이 스스로 부락을 이루어 호령하고 절제하는 사람이 없으며, 지방이 또 54군보다 넓다. 사람들은 장대하고 몸에 털이 있는데, 왜인들이 하이(蝦跠)라 칭한다. 오주(奧州)의 평화천(平和泉)에서 이해(夷海)까지가 겨우 30리다. 왜의 이수(里數)임혹자는 말하기를,
“하이란 데는 곧 우리나라 야인(野人)의 땅인데, 그 땅에서 문어(文魚)와 초피(貂皮) 등의 물건이 많이 난다고 들었다.”
하니, 혹시 그럴는지도 모른다. 왜놈들이 항상 하는 말이,
“오주에서 곧장 조선으로 건너간다면 동북(東北)의 이수(里數)가 아주 가까운데, 북해의 바람이 높아 감히 건너지 못하는 것 같다.”
라고 하는데, 말이 괴이하고 허황한 듯하나, 우선 모두 기록하여 전의(傳疑)의 예를 본뜬다.
출우(出羽) 우주(羽州)상(上)이다. 관할이 13개 군 포해(鮑海)ㆍ하변(河邊)ㆍ촌산(村山)ㆍ치사(置賜)ㆍ웅승(雄勝)ㆍ평록(平鹿)ㆍ전하(田河)ㆍ출우부(出雨府)ㆍ추전(秋田)ㆍ유리(由理)ㆍ산핍(山乏)ㆍ최상(最上)ㆍ산본(山本)이다. 동서가 50일 길이다. 일찍 따뜻해지므로 농사가 풍후하다. 크고, 상상(上上)에 드는 나라다. 월후납언 경승(越後納言景勝)과 최상우시 출우수(最上羽柴出羽守)와 추전 등태랑(秋田藤太郞)이 받아 먹는다.


북륙도 7국(北陸道七國)
이 땅은 심히 추워 매년 겨울이면 눈이 여러 길이나 쌓인다.
약협(若狹) 약주(若州)중(中)이다. 관할이 3개 군 원부(遠敷)ㆍ대반(大飯)ㆍ삼방(三方)이다. 남북이 하루 반 길이다. 바다가 가까워 습기가 있고, 어별(魚鱉)과 이철(利鐵)이 많다. 칠(漆)을 공상(貢上)한다. 작으나, 상(上)에 드는 나라다. 소장 승준(小將勝俊)과 그 아우 궁내 소보(宮內少輔)가 받아 먹는데, 축전 중납언 금오(築前中納言金吾)의 형이요, 적괴(賊魁) 수길(秀吉)의 본처의 조카이다.
가하(加賀) 하주(賀州)중(中)이다. 관할이 4개 군 결(缺)남북이 이틀 반 길이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 축전 대납언(筑前大納言)이 받아 먹는데, 무술년 섣달에 죽고 그 아들 재상 비전수(宰相肥前守)와 작은아들 손사랑(孫四郞)이 받아 먹는다.
월전(越前) 월주(越州)대(大)이다. 관할이 12개 군 돈하(敦賀)ㆍ단생부(丹生府)ㆍ금립(今立)ㆍ족우(足羽)ㆍ대야(大野)ㆍ판정(坂井)ㆍ흑전(黑田)ㆍ지상(池上)ㆍ신전(榊田)ㆍ길전(吉田)ㆍ판북(坂北)ㆍ남조(南條)이다. 남북이 사흘 반 길이다. 산이 남쪽에 있고 북해를 띠고 있으므로 오곡이 잘 익지 않는다. 상마(桑痲)가 많다. 어느 본(本)에는 오곡이 만 배라 하였음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전 관백(前關白) 신장(信長)의 아들 신웅(信雄)과 대곡형부소보(大谷刑部少輔)가 받아 먹는다.
월중(越中) 월주(越州)상(上)이다. 관할이 4개 군 여파(礪波)ㆍ사수(射水)ㆍ부부(婦負)ㆍ신천(新川)이다. 우는 중앙에 있는 나라다. 사방이 사흘 길이다. 염(鹽)ㆍ조(藻)ㆍ어별(魚鱉)이 많으며, 곡물과 기계(器械)가 많이 난다. 칠(漆)을 공상(貢上)한다. 매우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전전비전수(前田肥前守)와 그 아우 손사랑(孫四郞)이 받아 먹는다.
월후(越後) 월주(越州)상(上)이다. 관할이 7개 군 경성(頸城 이보야(伊保野)라고도 한다)ㆍ고지(古志)ㆍ삼도(三島)ㆍ어치(魚治 소(沼)로도 쓴다)ㆍ포원(蒲原)ㆍ치수(治垂)ㆍ반선(磐船)이다. 사방이 엿새 길이다. 산이 남쪽에 있고 북해를 띠고 있으므로 오곡이 잘 익지 않는다. 상마(桑麻)가 많다. 매우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굴리씨 구태랑(掘里氏久太郞)이 받아 먹는다. ○ 토산은 백세포(白細布)인데 항상 눈 속에서 표백하고 말린다.
능등(能登) 능주(能州)중(中)이다. 관할이 4개 군 우색(羽咋)ㆍ능등부(能登府)ㆍ봉지(鳳至)ㆍ주주(珠洲)이다. 동서가 이틀 반 길이다. 토질이 냉하여 오곡의 발육이 더디다. 이철(利鐵)이 많아 큰 그릇을 주조한다. 뽕나무가 많아 옷이 풍족하다. 작으나, 상(上)에 드는 나라다.전전비전수(前田肥前守)가 받아 먹는다.
좌도(佐渡) 좌주(佐州)중(中)이다. 관할이 3개 군 우무(羽茂)ㆍ잡태부(雜太府)ㆍ하무(賀茂)이다. 또 견부도(見付島)와 상상도(上上島)가 있다. 우(右)는 먼 나라이다. 사방이 사흘 반 길이다. 초목(草木)의 승지(勝地)로서 우마(牛馬)가 귀한 줄을 모르며, 어별과 오곡이 많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월후 납언 경승(越後納言景勝)이 받아 먹는다.


산음도 8국(山陰道八國)
단파(丹波) 단심(丹尋)상(上)이다. 관할이 6개 군 상전부(桑田府)ㆍ선정(船井)ㆍ다기(多紀)ㆍ천전(天田)ㆍ빙상(氷上)ㆍ하록(何鹿)이다. 사방이 이틀 길이다. 왕성(王城)의 부용(附庸)의 나라다. 곡미(穀米)ㆍ시신(柴薪)이 많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덕선원현이(德善院玄以) 부자(父子)가 받아 먹는다.
단후(丹後) 단주(丹州)중(中)이다. 관할이 5개 군 가좌(伽佐)ㆍ여사(與謝)ㆍ단후(丹後)ㆍ편야(片野 편(片)은 죽(竹)으로도 쓴다)ㆍ웅야(熊野)이다. 남북이 하루 반 길이다. 어별(魚鱉)과 상마(桑麻)가 풍족한데, 정하고 좋은 것을 국산(國産)으로 삼는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유재 등효(幽齋藤孝)와 그 아들 장강월중수(長岡越中守)가 받아 먹는다. 토산은 후면주(厚綿紬)인데 대단히 딱딱하고 질겨 능히 10여 년을 지낸다고 함.
단마(但馬) 단주(但州)상(上)이다. 관할이 8개 군 조래(朝來)ㆍ양부(養父)ㆍ출석(出石)ㆍ기다부(氣多府)ㆍ성기(城崎)ㆍ이방(二方)ㆍ칠미(七美)ㆍ미함(美含 함(含)은 념(念)으로도 쓴다)이다. 동서가 이틀 길이다. 전(田)은 두텁고 크며, 속(粟)ㆍ피[稗]가 번성하고 시목(柴木)이 풍족하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소출태화수(小出太和守)와 신촌좌병위(新村左兵衛)와 별소풍후수(別所豐後守)가 받아 먹는다. 토산(土産)은 백금(白金)임.
인번(因幡) 인주(因州)상(上)이다. 관할이 7개 군 법미(法美)ㆍ팔상(八上)ㆍ지두(智頭)ㆍ읍미(邑美)ㆍ고초(高草)ㆍ기다(氣多)ㆍ거농(巨濃)이다. 남북이 이틀 반 길이다. 북으로는 바다가 많고 산이 깊고, 해조(海藻)와 견포(絹布)가 많다. 중간 크기이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 궁부 병부(宮部兵部)가 받아 먹는다. 시로성(始路城)은 우위대부(右衛大夫)가 받아 먹으니, 금오(金五)의 형임.
백기(伯耆) 백주(伯州)상(上)이다. 관할이 6개 군 하촌(河村)ㆍ구미(久米)ㆍ팔번(八幡)ㆍ한입(汗入)ㆍ회견(會見 미(美)라고도 쓴다)ㆍ일야(日野)이다. 남북이 이틀 길이다. 산이 깊고 땅이 두터우며, 오곡과 의백(衣帛)이 두 바퀴가 돈다. 중간 크기이고, 중(中)에 드는 나라이다. 안예 중납언 휘원(安藝中納言輝元)이 받아 먹는다.
출운(出雲) 운주(雲州)상(上)이다. 관할이 5개 군 의우부(意宇府)ㆍ능미(能美)ㆍ도근(島根)ㆍ추록(秋鹿)ㆍ순(楯)이다. 동서가 이틀 반 길이다. 수목(樹木)에 과가(瓜蓏)가 서로 얽혀 있다. 야채(野菜)가 토산이며, 철로 만든 농기구와 견포(絹布)가 많다.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 안예 중납언 휘원(安藝中納言輝元)이 받아 먹는다.
석견(石見) 석주(石州)중(中)이다. 관할이 6개 군 안농(安濃)ㆍ근마(近摩)ㆍ나하(那賀)ㆍ읍지(邑智)ㆍ미농(美濃)ㆍ녹족(鹿足)이다. 남북이 이틀 길이다. 조(藻)ㆍ포(布)ㆍ소금의 이익이 많아 세공(稅貢)이 다른 나라보다 배나 된다. 중간 크기이고, 하(下)에 드는 나라이다. 안예 중납언 휘원이 받아 먹는다.
은기(隱岐) 은주(隱州)하(下)이다. 관할이 4개 군 지천(知天)ㆍ해부(海部)ㆍ주길(周吉)ㆍ온지(穩地)이다. 사방이 이틀 길이다. 오곡이 부족하나 조(藻)ㆍ밀(蜜)이 많다. 포(鮑)로 유명하다. 작고, 하(下)에 드는 나라이다. 안예 중납언 휘원이 받아 먹는다. 석견(石見)ㆍ은기(隱岐) 등 일대가 우리나라 관동(關東)의 영동(嶺東) 등의 지방과 가깝다고 한다.


산양도 8도(山陽道八道)
우리나라로부터 출입하는 바다 길임.
파마(播摩) 파주(播州)대(大)이다. 관할이 14개 군 명석(明石)ㆍ하고동서(賀古東西)ㆍ하무(賀茂)ㆍ인남(印南)ㆍ식마(飾磨)ㆍ읍보동서(揖保東西)ㆍ적수(赤穗)ㆍ좌용(佐用)ㆍ완속(完粟)ㆍ신기동서(神崎東西)ㆍ다하(多河)ㆍ미호(美壺)ㆍ읍동(揖東)ㆍ읍서(揖西)이다. 사방이 사흘 반 길이다. 지대가 따뜻해 우박ㆍ눈을 보지 못한다. 견포(絹布)ㆍ종이ㆍ비단이 많이 생산되어 의식이 풍족하다.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 적괴의 군소 장수들이 나누어 받아 먹는다.
미작(美作) 작주(作州)상(上)이다. 관할이 7개 군 영전(英田)ㆍ승전(勝田)ㆍ점서(苫西)ㆍ점동부(苫東府)ㆍ구미(久米)ㆍ대정(大庭)ㆍ진도(眞島)이다. 동서가 사흘 남짓의 길이다. 사방이 에워싸여 찬 겨울에도 바람이 없다. 초목과 의식(衣食)이 번성하여 풍족하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 안예 중납언 휘원, 비전 중납언 수가(備前中納言秀家)가 나누어 받아 먹는다.
비전(備前) 비주(備州)상(上)이다. 관할이 11개 군 소도(小島)ㆍ화기(和氣)ㆍ반리(磐梨)ㆍ읍구(邑久)ㆍ적판(赤坂)ㆍ상도(上道)ㆍ어야(御野)ㆍ아도(兒島)ㆍ소족(小足)ㆍ진고(津高)ㆍ부도(釜島)이다. 사방이 사흘 남짓한 길이다. 남해의 따스한 기운을 띠고 있어, 초목ㆍ오곡이 일찍 익으므로 공상(貢上)도 이르다. 이도(利刀)ㆍ총극(銃戟)과 비단이 많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 비전 중납언 수가(秀家)가 받아 먹는데, 적괴의 수양딸 사위로서 한산도(閑山島)에서 싸움을 독려하던 자임.
비중(備中) 비주(備州)상(上)이다. 관할이 11개 군 도우(都宇)ㆍ와옥(窪屋)ㆍ하옥부(賀屋府)ㆍ하도(下道)ㆍ천구(淺口)ㆍ소전동서(小田東西)ㆍ후일(後日)ㆍ철다(喆多)ㆍ영하상하(英賀上下)ㆍ삼랑도(三郞島)ㆍ기도(寄島)이다. 동서가 사흘 반 길이다. 이도(利刀)ㆍ운리(耘犁)가 많고, 오곡ㆍ조(藻)ㆍ포(布)가 가득하여 날마다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 크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수가(秀家)와 휘원(輝元)이 나누어 먹는다.
비후(備後) 비주(備州)상(上)이다. 관할이 14개 군 안부(安部)ㆍ심진(深津)ㆍ신석(神石)ㆍ노가(奴可)ㆍ소우(沼隅 외(隈)라고도 쓴다)ㆍ품치(品治)ㆍ위전부(葦田府)ㆍ갑노(甲奴)ㆍ삼상(三上)ㆍ상계(上谿 상(上)은 삼(三)으로도 쓴다)ㆍ어조(御調)ㆍ혜소(惠蘇)ㆍ세라(世羅)ㆍ삼원(三原 자(茨)로도 쓴다)이다. 우(右)는 중앙에 있는 나라다. 동서가 이틀 남짓한 길이다. 밭두렁이 길고, 천맥(阡陌)이 얽혀 있다. 오곡이 일찍 익고, 주해(酒醯)가 오래된 것이 있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휘원의 아들 예주 재상 수원(藝州宰相秀元)이 받아 먹는데, 적괴의 수양딸 사위이다.
안예(安藝) 예주(藝州)상(上)이다. 관할이 8개 군 소전(沼田)ㆍ고전(高田)ㆍ풍전(豐田)ㆍ사전(沙田)ㆍ하무(賀茂)ㆍ좌백(佐伯)ㆍ안예부(安藝府)ㆍ고궁(高宮)이고, 엄도(嚴島)는 군 밖이다. 남북이 이틀 반 길이다. 산이 깊어 목재가 많으며, 바다가 가까워 소금ㆍ해태(海苔)가 풍족하다. 오곡이 패지 않는다. 크고, 하(下)에 드는 나라이다.휘원이 받아 먹는다. 지금의 광도(廣島)가 안예의 안에 있다.
주방(周防) 방주(防州)상(上)이다. 관할이 6개 군 대도(大島)ㆍ구하(玖賀)ㆍ웅수(熊手 모(毛)라고도 쓴다)ㆍ도농(都濃)ㆍ좌파부(佐波府)ㆍ길부(吉敷)이다. 동서가 사흘 길이다. 초밀(草藌)ㆍ인갑(鱗甲)의 유가 많다. 토산이 다른 나라보다 십 배나 된다. 청(鯖)으로 유명하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이다.휘원이 받아 먹는다.
장문(長門) 장주(長州)중(中)이다. 관할이 6개 군 후협(厚狹)ㆍ풍포부(豐浦府)ㆍ미칭(美稱)ㆍ대진(大津)ㆍ하무(河武)ㆍ견도(見島)이다. 동서가 이틀 반의 길이다. 남쪽은 바다에다 북쪽은 산인지라, 어별(魚鱉)이 충족하고 직곡(稷穀)이 다른 나라보다 배나 된다. 중간 크기이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휘원이 받아 먹는다.


남해도 6국(南海道六國)
기이(紀伊) 기주(紀州)상(上)이다. 관할은 7개 군 이도(伊都)ㆍ나하(那賀)ㆍ명초부(名草府)ㆍ해부(海部)ㆍ재전(在田)ㆍ일고(日高)ㆍ연루(年樓 ‘年婁’로도 쓴다)이다. 남북이 나흘 반의 길이다. 삼방(三方)이 바다이고 평지가 적다. 오곡이 잘 익지 않는다. 작고, 하(下)에 드는 나라다. 적괴(賊魁)의 군소 장수가 받아 먹는다.
담로(淡路) 담주(淡州)하(下)이다. 관할은 4개 군 진명(津名)ㆍ삼원(三原)ㆍ육도(六島)ㆍ회도(繪島)이다. 사방이 하룻길이다. 나라의 어미이니, 왜속(倭俗)에 유전하는 말이, 왜의 시조가 이 섬에 내려왔다 한다. 그러므로 나라의 어미라 한다.호칭이 이주의(二柱衣)다. 소금이나 생선이 부족하지 않고 좋은 목재가 또한 많다. 작으나, 상(上)에 드는 나라다.협판 중칙(脇坂中勅)이 받아 먹는다.
아파(阿波) 파주(波州)상(上)이다. 관할은 9개 군 삼호(三好)ㆍ마식(麻植)ㆍ명동(名東)ㆍ명서(名西)ㆍ승포(勝浦)ㆍ나하(那賀)ㆍ판야(板野)ㆍ아파(阿波)ㆍ미마(美馬)이다. 사방이 이틀 길이다. 토질이 후하여 직도(稷稻)가 풍성하게 여문다. 산이 깊어 어린(魚鱗)ㆍ금수(禽獸)의 유가 많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봉수하아파수 가정(蜂須賀阿波守家政)이 받아 먹는다.
찬기(讚岐) 찬주(讚州)상(上)이다. 관할은 11개 군 대내(大內)ㆍ한천(寒川)ㆍ삼목(三木)ㆍ삼야(三野)ㆍ산전(山田)ㆍ신전(神田 신(神)은 예(刈)로도 쓴다)ㆍ아야부(阿野府)ㆍ제족(鵜足)ㆍ나하(那賀)ㆍ다도(多度)ㆍ향아(香阿)이다. 동서가 사흘 길이다. 산과 내와 밭이 균등하다. 오곡이 풍성하고 어패(魚貝)의 유가 많다. 유명한 사람이 이 땅에서 많이 난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생구아악(生駒雅樂)과 그 아들 찬기수 일정(讚岐守一正)이 나누어 받아 먹는다.
이예(伊豫) 예주(豫州)상(上)이다. 관할은 14개 군 신거(新居)ㆍ주부(周敷)ㆍ상촌(桑村)ㆍ월지(越智)ㆍ풍한(風旱)ㆍ야간(野間)ㆍ지기(智器)ㆍ온천(溫泉)ㆍ구미(久米)ㆍ부혈(浮穴)ㆍ이예(伊豫)ㆍ희다(喜多)ㆍ우화(宇和)ㆍ우마(宇麻)이다. 사방이 이틀 길이다. 원야(原野)와 화전[畑田]이 많다. 화속전(火粟田)이 전(畑)이다.뽕나무, 삼[麻], 소금과 풀이 풍성하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등당좌도수(藤堂佐渡守)와 가등좌마조(加藤左馬助)와 소천좌마조(小川左馬助)가 받아 먹는다. 이예수 수웅(伊豫守秀雄)이 죽자 소천(小川)이 대신하였다.
토좌(土佐) 토주(土州)중(中)이다. 관할은 7개 군 토좌(土佐)ㆍ오천(吾川 오(吾)는 오(五)로도 쓴다)ㆍ고강(高岡)ㆍ번다(旛多)ㆍ장강(長岡)ㆍ전도(畑島)ㆍ향미(香美)이다. 동서가 이틀 길이다. 토질이 비옥하여 오곡이 잘 익으며 좋은 목재도 많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장증아부토좌수 성친(長曾我部土佐守盛親)이 받아 먹는다. 기해년 봄에 죽자 그 아들이 대신했다.


서해도 9국(西海道九國)
축전(筑前) 축주(筑州)상(上)이다. 관할이 20개 군 지마(志摩)ㆍ가마(嘉麻)ㆍ야수상하(夜須上下)ㆍ지하도(志賀島)ㆍ어립(御笠)ㆍ종상(宗像)ㆍ원하(遠賀)ㆍ석전(席田)ㆍ수파(穗波)ㆍ조량(早良)ㆍ나가(那珂)ㆍ석가(釋迦)ㆍ모도(牟島)ㆍ조옥(糟屋)ㆍ이토(怡土)ㆍ석내(席內)ㆍ안수(鞍手)ㆍ잔도(殘島)ㆍ하좌부(下座府)ㆍ상좌부(上座府 대재(大宰)와 합병했다)남북이 나흘 길이다. 쌀ㆍ조ㆍ진보(珍寶)ㆍ기기(器機)가 풍비하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 축전 중납언 목하금오(筑前中納言木下金吾)가 받아 먹는다. 적괴의 본처의 조카다. 지하도(志賀島)는 중천수리대부 수성(中川修理大夫秀成)이 받아 먹는다.
축후(筑後) 축주(筑州)상(上)이다. 관할이 10개 군 어원(御原)ㆍ어정부(御井府)ㆍ생상(生桑 엽(葉)으로도 쓴다)ㆍ삼저(三猪)ㆍ삼모(三毛)ㆍ상처(上妻)ㆍ하처(下妻)ㆍ산문(山門)ㆍ산하(山下)ㆍ죽야(竹野)이다. 남북이 닷새 길이다. 곡식과 어별(魚鱉)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진보(珍寶)와 기기(器機)도 많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금오(金吾)가 받아 먹는다.
풍전(豐前) 풍주(豐州)상(上)이다. 관할이 8개 군 전하(田河)ㆍ금구(金救)ㆍ경도부(京都府)ㆍ중진(仲津)ㆍ축성(筑城)ㆍ상모(上毛)ㆍ하모(下毛)ㆍ우좌(宇佐)이다. 남북이 나흘 길이다. 중국을 이웃하여 약종(藥種)과 기구(器具)가 충족하다. 금백(金帛)을 공(貢)으로 바친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흑전갑비수(黑田甲斐守)와 모리일기수(毛利壹岐守)가 받아 먹는다.
풍후(豐後) 풍주(豐州)상(上)이다. 관할이 8개 군 일전(日田)ㆍ구주(球珠)ㆍ직입(直入)ㆍ대야(大野)ㆍ해부(海部)ㆍ대방(大方)ㆍ속견(速見)ㆍ국기(國崎)이다. 사방이 사흘 길이다. 뽕나무와 삼이 많아 의복이 충족하다. 오곡과 중국 물건이 많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복원우마조(福原右馬助)ㆍ대전비탄수(大田飛彈守)ㆍ모리민부대보(毛利民部大輔)ㆍ중천수리대부 수성(中川修理大夫秀成)ㆍ조천주마두 장정(早川主馬頭長政)ㆍ죽중원개(竹中源介) 등이 받아 먹는다. 우마조(右馬助)는 뒤에 중이 되어 토지를 삭제했다.
비전(肥前) 비주(肥州)상(上)이다. 관할이 12개 군 기휘(基諱)ㆍ양부(養父)ㆍ삼근(三根)ㆍ소성부(小城府)ㆍ신기(神崎)ㆍ좌하(佐賀)ㆍ송포(松浦)ㆍ저도(杵島)ㆍ등진(藤津)ㆍ파저(波杵)ㆍ갈목(葛木)ㆍ고래(高來)이다. 남북이 닷새 길이다. 토질이 후하여 심으면 백 배가 난다. 상자(桑柘)ㆍ농산ㆍ의복이 풍성하고, 어조(魚鳥)를 갖추어 먹을 수 있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용장사(龍藏寺)가 대성(大姓)이 되어 그 토지를 받아 먹는다. 중국 배와 유구(琉球)ㆍ남만(南蠻)ㆍ여송(呂宋) 등의 상선(商船) 내왕이 끊어지지 않는다. 당진(唐津)ㆍ명호옥(名濩屋) 등지는 사택지마수 정성(寺澤志摩守政成)이 차지하고, 인하여 수로 봉행(水路奉行)이 되어 우리나라 사람의 왕래와 접대 등의 일을 주관한다. 평호도(平戶島)는 송포법인(松浦法印)이 받아 먹는다. 양천 입귤좌근(楊川立橘左根)이란 사람이 또한 비전의 한 모퉁이를 차지했는데, 땅은 작아도 군사는 강하다고 한다.
비후(肥後) 비주(肥州)대(大)이다. 관할이 14개 군 옥명(玉名)ㆍ산록(山鹿)ㆍ산본(山本)ㆍ국지(菊池)ㆍ아소(阿蘇)ㆍ합지(合志)ㆍ탁마(託摩)ㆍ구마(球磨)ㆍ포전부(鮑田府)ㆍ익성(益城)ㆍ우토(宇土)ㆍ팔대(八代)ㆍ천초(天草)ㆍ위북(葦北)이다. 사방이 닷새 길이다. 목재ㆍ시신(柴薪)이 풍족하고, 오곡ㆍ어별ㆍ종이ㆍ면화가 많다. 크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가등주계 청정(加藤主計淸正) 및 소서섭진수 행장(小西攝津守行長)이 나누어 받아 먹는다.
일향(日向) 향주(向州)중(中)이다. 관할이 5개 군 구저(臼杵)ㆍ아탕부(兒湯府)ㆍ나가(那珂)ㆍ궁기(宮琦)ㆍ제현(諸縣)이다. 사방이 사흘 길이다. 상마(桑麻)ㆍ오곡이 평균하여 기한(飢寒)을 모른다. 중간 크기이고, 중(中)에 드는 나라다.도진병고 의홍(島津兵庫義弘)이 받아 먹는다.
대우(大隅) 우주(隅州)중(中)이다. 관할이 8개 군 대우(大隅)ㆍ능예(菱刈)ㆍ상원(桑原)ㆍ증어부(贈於府)ㆍ시라(始羅 시(始)는 고(姑)라고도 쓴다)ㆍ간속(肝屬 속은 부(附)로도 됨)ㆍ구로(駒路)ㆍ웅미(熊尾)ㆍ다미도(多彌島 군(郡)의 바깥으로 바다 가운데 있다)이다. 동서가 이틀 길이다. 비록 소국이지만 식류(食類)가 풍성하고 어별이 많으며, 종이ㆍ비단이 특히 풍족하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의홍(義弘)이 받아 먹는다.
살마(薩摩) 살주(薩州)중(中)이다. 관할이 14개 군 출수(出水)ㆍ고성(高城)ㆍ살마(薩摩)ㆍ일치(日置)ㆍ이좌(伊佐)ㆍ아다(阿多)ㆍ아변(阿邊)ㆍ관와(款娃)ㆍ지숙(指宿)ㆍ결려(結黎)ㆍ계산(溪山)ㆍ흥소도(興小島)ㆍ녹아도(鹿兒島)ㆍ증도(甑島)이다. 사방이 이틀길이다. 비록 작은 나라이나, 중국과 이웃했기 때문에 기구(器具)를 갖추어 사용한다. 그러나 상마(桑麻)의 의복(衣服)은 없다. 중간 크기이고, 상(上)에 드는 나라다.의홍이 받아 먹는다. ○ 시사(市肆)는 태반이 중국 사람이다. 중국 배와 남만 배가 왕래하여 정박하지 않는 날이 없다.
일기(壹岐) 일주(壹州)하(下)이다. 관할이 2개 군 일기(壹岐)ㆍ석전(石田)이다. 사방이 하룻길이다. 이 주(州)와 대마도를 2도(島)라 이른다. 서융(西戎)이 와서 침범하므로 청수좌(淸守佐)를 권하여 공(貢)을 갖추게 하는데, 모두 기이한 보배다.송포법인(松浦法印)이 받아 먹는데, 아울러 비전(肥前)의 평호도(平戶島)까지 받아 먹는다.
대마(對馬) 대주(對州)하(下)이다. 관할이 2개 군 상현(上縣)ㆍ하현(下縣)이다. 사방이 하룻길이다. 일본의 땅과 격리되었으므로 도(島)라 부르며, 진기한 보배의 유가 있다. 청신(淸神)을 권유하여 중국에 따르게 했다. 그러므로 ‘탐제(探題)’라는 관직을 두게 된 것이다. 작고, 하(下)에 드는 나라다.우시대마수 의지(羽柴對馬守義智)가 받아 먹는다.
우시(羽柴)라는 것은 수길(秀吉)의 본성(本姓)이다. 수길이 의지(義智)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향도(鄕導)를 삼았기 때문에 자기 성을 주어 그 공을 상준 것이다. 평조신(平調信)은 의지의 가로(家老)로서 왜인들이 양천하야수(陽川下野守)라 칭하는데, 온 도(島)를 차지하여 지키는 일을 주관한다. 현소(玄蘇)란 사람은 의지의 모사(謀士)인 중[僧]으로서 왜인들이 안국사 서당(安國寺西堂) 중의 관명(官名)임.이라 칭하는데, 우리나라와의 서계(書啓) 등의 일을 주관하고 있다. 그 읍(邑)을 방진(芳津)이라 칭하는데, 지세가 비록 좋기는 하지만 왜의 성곽(城郭)과는 아주 다르다. 큰 산의 아래 큰 바다의 어구에 있어, 방어하고 수비할 만한 높은 성이나 깊은 못이 없고, 사면이 모두 울창한 산 언덕이라, 급한 일이 있을 적에는 단지 도망가 숨기에 족할 따름이다.
동쪽으로 일기도(壹岐島)와는 반드시 하루 종일 부는 바람을 만나야만 건널 수 있으며, 남쪽으로 평호도(平戶島)와는 일기도보다 약간 가까우나 풍랑이 더욱 사납고, 서쪽으로 풍기(豐崎)와는 육지로 가자면 이틀이 걸리고 배로 가면 순풍(順風)에는 하루가 걸리고 노질해 가면 이틀이 걸리며, 풍기에서 서쪽으로 우리나라 해면까지는 단지 한나절의 순풍이면 된다. 그 산세는 동서는 길고 남북은 짧으며, 그 토질은 척박하여 수전(水田)이라곤 한 이랑도 없으며, 소채(蔬菜)ㆍ모맥(牟麥)을 모두 다 사석(沙石) 위에 심으므로 길이가 두어 치에 지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시에 있어서는 오직 우리나라의 관시(關市)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흑각(黑角)ㆍ후추[胡椒] 등의 물건은 남만(南蠻)에서 나오고, 달피(獺皮)ㆍ호피(狐皮) 등의 물건은 왜국에 있어서는 소용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왜놈들에게서 싼 값으로 사 우리나라에 비싸게 판다. 사라(紗羅)ㆍ능단(綾緞)ㆍ계포(罽布)ㆍ금은(金銀) 같은 것은 그 나라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에 내다 팔지 않는다. 그 여자들은 우리나라 의상을 많이 입고 그 남자들은 거의 우리나라 언어를 이해하며, 왜국을 말할 때는 반드시 일본이라 하고, 우리나라를 말할 때는 반드시 조선이라 하며 당초부터 아주 일본으로 자처하지 않는다.
평상시에 우리나라에서 이득을 입는 것이 많고, 일본에서는 적기 때문에, 장수로부터 졸병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추대할 마음이 일본에 부속하는 것보다 더하였다. 그래서 항상 도로가 멀고 파도가 험악하다는 것을 들어, 깊이 들어앉아 있는 왜에게 말해 오다가, 급기야 수길(秀吉)이 66주를 합병하게 되자, 의지가 죄를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우리나라를 수길에게 팔아 전봉(前鋒)이 되었다. 수길이 축전(筑前)ㆍ박다(博多)의 땅을 떼어 그 공로에 대한 상으로 주자, 대마도의 장왜(將倭)가 비로소 쌀밥을 먹게 된 것이니, 이전에는 오직 우리나라에서 내려준 쌀만을 먹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왜경(倭京)에 있을 적에 오히려 자기 집을 갖지 못하고 자기 장인인 행장(行長)의 집과 가까운 한 시루(市樓)를 택하여 잠시 세들어 살았으며, 여러 장왜(將倭)들과 같은 반열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대개 깊이 들어앉아 있는 왜들이 날쌔고 독하기는 하지만 심히 교활하지는 않았고, 우리나라와의 일에는 또한 동서(東西)를 알지 못하여, 전쟁한 지 8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우리나라 변장(邊將)들의 성명을 알지 못한다. 대마도의 왜들은 날쌔고 독하지는 못하지만 교활하기 그지없고, 우리나라 일에도 또한 두루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평시부터 섬 안의 영리한 아이들을 선택하여 우리나라 언어를 가르치고, 또 우리나라 서계(書啓)와 간독(簡牘)의 낮추고 올리는 곡절(曲節)을 가르쳐, 비록 눈이 밝은 사람으로도 창졸간에 보면 선뜻 왜서(倭書)인 것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와 틈이 없으면 전적으로 내부(內附)할 생각을 갖고, 왜가 강성하면 우리나라를 팔아 향도(嚮導)가 되기를 자청하니, 그 흉악하고 간사한 음모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변장들의 무마와 제어가 만약 혹시라도 방법을 잃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다시 이놈들에게 기만 당하게 될 것이다. 기미(覊縻)하는 정책을 조만간 실시한다면, 북도(北道)의 야인(野人)을 연향(宴享)하는 예에 의거하여 감사(監司)ㆍ병사(兵使)가 미리 그 올 시일에 앞서 부산(釜山)ㆍ동래(東萊)에 집합하여 대응하는 것이 좋다. 굳이 서울로 끌어들이느라 번거로운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도성(都城)의 허실을 알게 할 필요는 없다. 북도의 야인을 상사(賞賜)하는 예에 의거하여 대략 토산품으로 그 예물(禮物)에 응하는 것이 좋고, 반드시 영남(嶺南)의 전세(田稅)를 수송해서 도적놈의 식량을 싸줄 필요는 없다. 그들이 가지고 온 흑각(黑角)ㆍ단목(丹木)ㆍ후추[胡椒]ㆍ유황(硫磺)ㆍ호피(狐皮)ㆍ달피(獺皮) 등의 물건은 감사ㆍ병사가 부산 태수에게 엄밀히 지시하여 그 상ㆍ중ㆍ하에 따라 값을 작정해서 부산에서 처분해 보내는 것이 좋고, 서울까지 인마(人馬)를 괴롭혀 가며 수송하여 도성 사람에게 억지로 사게 하여 분노와 원망의 기색이 맺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와서 공납(貢納)하는 기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일정한 달을 정하여 때없이 왕래하는 폐단이 없게 하고, 공납하기 위해 오는 선박에 있어서도 반드시 미리 척수를 정하여 배가 연달아 와 의아스러운 점이 없게 하여야 한다. 그들이 머무는 곳을 철저히 지켜서 간교한 백성들이 변방수비에 관한 허와 실을 알려 주지 못하게 하고, 그놈들로 하여금 성지(城池)의 험악과 평이를 알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약속이 정해져 있는데다가 방금(防禁)을 분명하게 하면서, 예모(禮貌)로써 대해 주고 은신(恩信)으로써 무마하면 이놈들이 장차 위엄을 꺼려 덕을 갚기에 겨를이 없을 것인데, 어찌 서울로 불러들이지 아니하고 세미(歲米)를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써 원망을 할 것인가? 오직 깊이 들어앉아 있는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할 음모가 있을 때에는, 수시로 내왕하여 보고하도록 하고 공납하는 달에 구애받지 않도록 해준다면, 이놈들이 우리나라에 신임을 얻어 전일에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죄를 보상하려고 하여, 반드시 미리 와 말해 주며 예비하기를 청할 것이다. 왜들을 대비하는 데는 대마도보다 중요한 곳이 없고 대마도를 대비하는 데에도 이 계책보다 나은 것이 없다. 후일에 변방을 대비하는 장수 중에 이놈들의 정세를 잘 아는 사람이 국가를 위하여 이놈들에 대비할 적에는 반드시 선택할 바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밖에 또 영량부(永良部)ㆍ평호도(平戶島)ㆍ오도(五島)ㆍ칠도(七島)ㆍ다미도(多彌島)ㆍ일수도(一艘島)ㆍ증도(甑島)ㆍ팔장도(八丈島)가 있는데, 면적이 더러 일기도ㆍ대마도보다 큰 것도 있다.


[주D-001]하이(蝦蛦) : 옛 일본의 관동(關東) 지방 이북에서 북해도(北海道) 일대에 걸쳐서 살던 종족인 아이누의 옛 이름.
[주D-002]산융(山戎) : 고대의 종족 이름으로서 중국 춘추 시대(春秋時代)에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북방, 천안현(遷安縣) 산간에 살던 번족(蕃族).
[주D-003]전의(傳疑)의 예 : 자기의 의심스러운 바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말한다.

 

청장관전서 제69권
한죽당섭필 하(寒竹堂涉筆下)
신라ㆍ고려의 석각(石刻)


성사집 대중(成士執大中 사집은 대중의 자)이 일찍이 성호(星湖) 이익(李瀷)의《사설(僿說)》에 실려 있는 고비(古碑)를 적어서 나에게 보여 주면서, 영남(嶺南)의 고적(古蹟)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성대중이 보여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한(三韓) 이전의 것은 상고할 길이 없으나 그 이후의 것은 근세에 왕손 낭선군(朗善君)이 편집한 《대동금석록(大東金石錄)》에 거의 다 실려 있다.
경주(慶州)에는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와 대각간 김유신묘비(大角干金庾信墓碑)가 있다.
삼수현(三水縣)에는 초방원비(草方院碑)가 있으니 바로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의 순수(巡狩)를 새긴 것이다. 생각건대 실직(悉直)이 처음에는 신라에 소속되었다. 그렇다면 영동(嶺東)의 땅도 다 옛날에는 신라의 소유였고 동시에 철령(鐵嶺)의 밖까지도 그 순수가 미쳤던 모양인데, 그후 고구려가 땅을 개척하여 바다에 미치게 되어서는 다시 이 땅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여현(扶餘縣)에는 평백제탑명(平百濟塔銘)이 있는데 이는 당(唐) 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세운 것이고, 또 평제비(平濟碑)가 있는데 이는 당(唐) 나라 유인원(劉仁願)이 세운 것이다.
진주(晉州) 지리산(智異山)의 단속사(斷俗寺)에는 신행선사비(神行禪師碑)가 있는데 승(僧) 영업(靈業)이 쓴 것이고, 쌍계사(雙溪寺)에는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가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짓고 직접 쓴 것이다.
양양(襄陽) 설악산(雪嶽山)에는 홍각선사비(弘覺禪師碑)가 있는데 왕우군(王右軍 우군(右軍)은 왕희지(王羲之)의 별칭)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다.
합천(陜川) 가야사(伽倻寺) 홍류동(紅流洞)에는 최치원(崔致遠)의 시각(詩刻)이 있고, 보령(保寧) 성주산(聖住山)에는 명혜화상비(明慧和尙碑)가 있는데 최치원이 지은 것이다.
광양(光陽) 백학산(白鶴山) 옥룡사(玉龍寺)에는 도선비(道詵碑)가 있고, 봉화(奉化) 태자산(太子山)에는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朗空大師白月棲雲塔碑)가 있는데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다.
문경(聞慶) 희양산(曦陽山)에는 지증선사비(智證禪師碑)가 있는데, 이는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것이다. 이상은 모두 신라(新羅)의 고적이다.
원주(原州) 건등산(建登山) 흥법사(興法寺)에는 진공대사비(眞空大師碑)가 있는데, 당 문황(唐文皇 문황은 당 태종(唐太宗)을 말한다)의 글에 고려 태조의 글씨로 된 것이다.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에는 도선(道詵)의 창사비(創寺碑)가 있고, 직산(稷山) 소사평(素沙坪)에는 홍경사비(弘慶寺碑)가 있고, 금산(金山)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에는 대장당기(大藏堂記)가 있는데 왕우군(王右軍)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다.
의흥(義興) 화산(華山) 인각사(麟角寺)에는 선각국사비(善覺國師碑)가 있는데, 민지(閔漬)의 글에 왕우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고성(高城) 삼일포(三日浦)에는 매향비(埋香碑)가 있고,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는 나옹화상비(懶翁和尙碑)와 지공대사비(指空大師碑)가 있는데 모두 이 색(李穡)의 글로 된 것이다. 또 본조(本朝 조선) 무학(無學)의 비가 있다.
임천(林川) 보광사(普光寺)에는 원명국사비(圓明國師碑)가 있는데 원(元) 나라 게 혜사(揭奚斯)의 글씨에 위소(危素)의 글로 된 것이다.”
사집(士執)이 말하기를,
“충추(忠州) 개천(開天) 내촌(內村)에 있는 개천사비(開天寺碑)는 진(晉) 나라 천복(天福 후진(後晉) 고조(高祖)의 연호) 연간에 세운 것이고, 금천(衿川) 안양면(安養面) 염불암(念佛庵) 아래에는 깨어진 안양사비(安養寺碑)가 있는데 이는 고려초의 것이다.”
하였다.


[주D-001]《사설(僿說)》에 실려 있는 고비(古碑) : 《성호사설》 제30권 시문문(詩文門)의 ‘동방석각(東方石刻)’ 참조.
[주D-002]《대동금석록(大東金石錄)》 : 신라 진흥왕(眞興王)의 순수비(巡狩碑)부터 조선 선조(宣祖) 때까지의 비(碑)ㆍ탑(塔)ㆍ석당(石幢)ㆍ석각(石刻) 등의 탁본집. 정편(正編) 5책, 속편 2책, 도합 7책이다. 저자인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는 서화(書畫)에 능하였으며 이 책 외에도 《대동명필첩(大東名筆帖)》 등 많은 책을 편했다. 《성호사설》에는 이의 저자가 낭원군(朗原君)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낭원군은 낭선군의 친 아우이다.《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주D-003]실직(悉直) : 강원도(江原道) 삼척(三陟)의 옛이름.

 

硏經齋全集卷之五十四
草榭談獻一
大朗慧,智證,慧昭。 a_275_123b


大朗慧和尙。新羅武烈王八世孫也。甞遊中原佛光275_123c寺。問道於如滿。如滿白居易空門友也。輒爲朗慧屈曰吾閱人多矣。無如子之善者。禪道其東乎。去謁寶徹和尙。寶徹曰昔吾師馬和尙訣我曰春蘤繁秋實寡。攀道樹者非所吒。今授若印。異日徒中有奇功者。封之東流之說。盖出釣讖。彼日出處善男子。根殆熟矣。師言在耳。今付若印。武宗會昌五年。沙汰僧尼。敕外國僧歸本國。朗慧隨使舶歸。住錦城之熊川寺。憲安王卽位乞言。對曰孔子對魯公之語具在。景文王卽位。召朗慧至京而師之。甞問曰劉勰文心雕龍曰滯有守無。徒銳偏解。欲詣眞源。其般若之絶境。敢問275_123d絶境云何。對曰境絶則理亦無。斯印也默行爾。後館深妙寺。王不豫召朗慧。朗慧曰山僧及王門。知者謂聖住爲無住。不知者謂無染爲有染。然顧與王有香火因緣。忉刹之行有期矣。庸無訣乎。遂詣王。王薨。憲康王卽位。泣留朗慧無遠去。朗慧曰古之師則六籍在。今之輔則三卿在。山僧何爲者。蝗蠧桂玉哉。以三言獻之曰能官人。翌日遂行。王甞問何以益國。朗慧以何尙之以心聲對宋文帝者爲對。王覽之曰三畏比三歸。五常均五戒。能踐王道。是符佛心。大師之言至矣。是時唐僖宗以黃巢之亂入蜀。王將使使奔問。275_124a邀朗慧爲天子徼福。王曰昔文考爲舍瑟之質。今寡人忝避席之子。繼體得崆峒之請。服膺開混沌之源。王雅善華言。發口成儷語。朗慧退謂王孫蘓判鎰曰昔人主有有遠體而無遠神者而吾君備。人臣有有公才而無公望者而吾子全。國其庶乎。以文德元年沒。僧臘八十九。眞聖王謚曰大朗慧。塔曰白月葆光。朗慧性恭謹。語不傷和氣。諭生徒曰彼所啜不濟我渴。彼所噉不救我餒。盍努力自飮且食。凡所營葺。役先衆人。每言祖師甞踏泥。吾豈暫安棲。
智證大師姓金氏。王都人。號道寧字智詵。母夢一巨275_124b人曰僕昔勝見佛。季世爲桑門。以嗔恚故久墮龍報。報旣矣。當爲法孫。因有娠。長慶甲辰生。儀狀魁岸。九歲喪其父。哀毁幾滅性。有追福僧憐之。喩曰幻體易滅。壯志難成。昔佛報恩有大方便。智證仍感寤輟哭。白母請爲僧不許。卽亡去。入瑞石山。年十七。受具始就壇。覺袖中有神光。探之得一珠。景文王寓書曰伊尹大通。宋纖小見。以儒譬釋。自邇陟遐。甸邑巖居。頗有佳所。木可擇矣。無惜鳳儀。選近侍中可人鵠陵昆孫。立言爲使。旣宣敎。因遂乞爲弟子。答曰修身化人。舍靜奚趣。獻康王召見于月池宮。時月色甚明。正當275_124c池中。智證俯而覬。仰而告曰是則是。餘無所言。王洗然契悟。遂拜爲忘言師。師欲行。王請少停。對曰謂牛戴牛。所直無幾。以鳥養鳥。爲惠不貲。請從此辭。王喟然以韻語歎曰。挽旣不留。空門鄧侯。師是支鶴。我非趙鷗。中和壬寅。泊然而逝。僧臘五十九。王賜謚智證。塔號塔照。
慧昭姓崔氏。其先隋人。從征遼沒。驪貃遂爲全州金馬人。母夢一梵僧謂曰吾願爲阿㜷子。因寄琉璃罌。未幾娠。生慧昭。自爲兒戱。必焚葉爲香。採花爲供。或西向危坐。未甞動容。貞元二十年。爲榜人隨貢使渡275_124d海。行至滄州。謁神鑑大師。師卽怡然令受誡。慧昭形貌黯然。衆呼爲黑頭陀。元和五年。受具於嵩山少林寺琉璃壇。其母所夢琉璃罌者始驗。遂入終南山。食松實而習禪。大和四年還本國。聖德王迎之曰彌天慈威。擧國欣賴。寡人行當以東鷄林之境。成吉祥之宅。慧昭自尙州長柏寺。至康州智異山花開谷。得三法和尙蘭若之址。修堂宇而居之。愍哀王立。降壐書別求見願。慧昭曰在勤修善政。何用願爲。使復于王。王愧悟以爲色空雙泯。定慧俱圓。賜號慧昭。避聖祖諱易照爲昭。晩居南嶺之麓。將逝告門徒曰萬法皆275_125a空。吾將行矣。無以塔藏形。無以銘紀跡。逝時法臘七十七。于時天無纖翳。忽風雷起而乕狼號咽。已而紫雲翳空。空中有彈指聲。慧昭性不散樸。每王人傳命遙祈法力。則曰凡居王土而戴佛日者。孰不傾心護念。爲君貯福。何必遠紆綸言於枯木朽株。或贈胡香。以瓦載糠灰。不丸而焫之曰吾不識是何臭。處心而已。或贈漢茗爲供。以薪炊石釜。不屑而煑之曰吾不識是何味。沾腹而已。守眞忤俗皆此類。雅善梵唄。音調爽快。東國習魚山之妙者宗之。献康王追謚眞鑑禪師。塔號太空虛。
275_125b智證等。新羅三名僧也。崔致遠並爲之銘。自新羅至高麗。崇尙佛法。王子爲僧。公主妃嬪聽法。麗末儒學之士如圃隱牧隱磊落相望。然未能悉闢之。如道詵,無學之說。或行於搢紳間。及至我朝。儒學大起。僧徒不期斥而自斥。佛宇並摧殘毁壞。物盛則衰。固其勢也。三名僧皆有禪理。如朗慧能引聖人之言以訓王。亦奇哉。

靑莊館全書卷之六十八 完山李德懋懋官著男光葵奉杲編輯德水李畹秀蕙隣校訂
寒竹堂涉筆[上]
慧昭 a_259_254c


孤雲先生文集卷之二

眞監和尙碑銘 並序 a_001_175c


夫道不遠人。人無異國。是以東人之子。爲釋爲儒。 此人爲釋。與我之爲儒同其勞。必也西浮大洋。重譯 通語不一 從學。命寄刳木。 黃帝刳木爲舟。心懸寶洲。 水中可居地曰洲○洲亦作主。西域記。南贍部州地有四主。南편001主。北馬主。東人主。西寶主。편002卽交趾。馬卽匃奴。人卽震旦。寶卽西域。今指中原曰寶洲。虛往實歸。先難後獲。亦猶采玉者不憚崑丘之峻。 治水經云。崑崙山。高五萬里。河源出其東。日月相碍而隱。其中多寶玉。探珠者不辭驪壑之深。 說文。河上翁之子。沒川而得千金之珠。翁曰。珠在驪龍頷下。汝遭其睡。若悟則當爲虀粉。遂得慧炬。則光融五乘。 聲聞,緣覺,菩薩,人乘,天乘。嘉肴則味飫六籍。 六經。 競使千門入善。能令一國興仁。而學者或謂身 音干印度別名。001_175d佛所生地。與闕里 孔子所居里 之說敎也。分流異體。圓鑿方枘。鑿枘。本相入之物。惟方枘圓鑿。則不相入。互相矛盾。 韓子曰。有賣矛與盾者。譽其矛曰。犀革無所不入。譽其盾曰。矢戟不能入。傍人曰。以子之矛。刺子之盾。入耶。不入耶。守滯一隅。嘗試論之。說詩者不以文害辭。不以辭害志。禮所謂言豈一端而已。夫各有所當。故廬峯慧遠著論。謂如來之與周孔。發致雖殊。所歸一揆。體極 體達至極之理 不能兼者。釋不兼儒。儒不兼釋。物不能兼受故也。沈約有云。孔發其端。釋窮其致。眞可謂識其大者。始可與言至道矣。 慧遠許沈約之言也 至若佛語心法。玄之又玄。名不可名。說無可說。雖云得月。指或坐忘。 見月休觀指。歸家罷問呈。終類係風。影難行捕。001_176a言佛說虛無 然陟遐自邇。取譬何傷。昔。尼父謂門弟子曰。予欲無言。天何言哉。 子曰。予欲無言。子貢曰。子如不言。則小子何述焉。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萬物生焉。則彼淨名之默對文殊。 文殊問。何等是不二法門。淨名默然不應。文殊曰。善哉善哉。乃至無有言語文字。直入不二法門。善逝之密傳迦葉。善逝。涅槃也。卽佛之十號中一數也。世尊在靈山會上。拈花示衆。獨迦葉微笑破顏。不勞鼓舌。能叶印心。言天不言。二字缺 奚適。而得遠傳妙道。廣耀吾鄕。亦豈異人哉。禪師是也。禪師法諱慧照。俗姓崔氏。其先漢族。冠盖山東。 卽華山之東。六國在焉。隋師征遼。多沒驪貊。 隋煬帝征遼東。爲乙支文德所敗。卒百二十萬。沒薩水以死。有降志而爲遐者。爰及聖唐。囊括四郡。 唐高宗遣蘇定方。與新羅合攻百濟滅之。又遣李繢001_176b等。合攻高麗滅之。置安東都護府。以嶭仁貴爲統官。今爲全州金馬人也。 金馬。今益山。舊屬全州。父曰昌元。在家有出家之行。母顧氏。嘗晝假寐 不脫衣冠而眠。夢一梵僧謂之曰。吾願爲阿㜷之子。 㜷音彌。楚人呼母曰阿㜷。江南人稱母曰阿嫗。以琉璃罌爲寄。未幾娠禪師焉。生而不啼。乃夙挺銷聲息言之勝芽也。曁齔 改齒也 從戲。必燌葉爲香。采花爲供。或西向危坐 跪也。移晷未嘗動容。是知善本固百千劫前所裁植。非可跂 舉足望也 而及者。自丱泉弁。 丱音貫。束髮在後也。弁。冠也。男二十而冠。志切反哺。 烏哺其雛。五十日而後。雛還哺其母。跬步不忘。而家無斗儲。又無尺壤可盜天時者。 列子。齊之國氏大富。宋之向氏問術焉。國氏曰。吾善爲盜也。向氏歸家。無所不盜。以藏獲罪而001_176c怨之。國氏曰。若只知爲盜之言。而不知爲盜之意也。吾乃盜天地之時與利。而生吾禾。植吾榢。築吾垣。建吾舍。陸盜禽獸。水盜魚鱉。此皆天之所生。非吾所有。然吾善盗天時。故富而無殃。口腹之養。惟力是視。乃裨販陬隅。 南蠻人以靑魚謂陬隅。郝隆詩云。陬隅躍淸池。爲贍滑甘之業。 以苦澁者自養。滑甘者奉親。乃孝子之事。手非勞於結網。心已契於忘筌。 網。捉兔具。筌。捕魚器。網筌喻能詮。兔魚喻所詮。言不假文字而得旨之意。能豐啜菽之資。 檀弓。啜菽飮水。能盡其歡。不違其志。故能令親歡。允叶采蘭之榮。詩云。循彼南山。言采其蘭。此是孝子養親之事。洎鍾艱棘。 居喪也。詩云。棘人欒欒。負土成墳。乃曰。鞠育之恩。聊將力報。希微之旨。盍以心求。道經云。目之不見曰希。搏之不得曰微。言至道玄玄。吾豈匏瓜。壯齡滯跡。 論語曰。吾豈匏瓜哉。焉能係而不食。遂於貞元二十年。 唐德宗年號。新羅元聖王元年。詣歲001_176d貢使 至使也 求爲枋人。 舟長也。 寓足西泛。多能鄙事。視險如夷 平也。揮楫慈航。超截苦海。及達彼岸。告國使曰。人各有志。請從此辭。遂行至滄洲。謁神鑑大師。 馬祖傍傳。鹽官齊安之嗣。投體方半。大師怡然曰。戲別非遙。喜再相遇。 通載。杯度在彭城。聞羅叶入關中。嘆曰。吾與此子戲別三百餘年。遽令剃染。頓受印戒。若火添燥艾。水走卑邍然。徒中相謂曰。東方聖人。於此復見。 前見道義。今見禪師。禪師形貌黯然。衆不名而目爲黑頭陀。斯則探玄處默。眞爲漆道人後身。 道安法師貌黑。故人謂之漆道人。亦曰黑頭陀。豈比夫邑中之黔。能慰衆心而已哉。 左傳。宋皇國父爲平公築臺。子罕請候農隙。築者謳曰。澤門之白。實興我役。邑中之黔。能慰我心。盖子罕貌黑而居001_177a邑中。永可與赤髭靑眼。以色相顯示矣。 佛陀耶舍赤髭。達麽靑眼。元和五年。 唐憲宗年號 受具於嵩山少林寺。 嵩山。中岳也。寺之窟前。有二株桂樹。故曰少林寺。琉璃壇側。聖善 詩云。母氏聖善。前夢。完若合符。旣瑩戒珠。復歸黌海。聞一知十。茜絳藍靑。 出淮南子。 雖止水澄心。 人莫鑑於流水。而鑑於止水。而斷雲浪跡。粤 於也 有鄕僧道義。先訪道於華夏。邂逅適願。西南得朋。 易坤卦。東北喪朋。西南得朋。邂逅相遇。適我願兮。四遠參尋。證佛知見。義公先歸故國。禪師卽入終南。 長安山名 登萬仞之峯。餌松實而止觀。寂寂者三年。後出紫閣。函谷關外池名。 當四達之道。織芒屩而廣施憧憧者又三年。 芒屩。藁鞋也。憧憧。往來不絶也。於是苦行旣已修。他001_177b方亦已遊。雖曰觀空。豈能忘本。乃於大和四年 唐文宗年號 來歸。大覺上乘。照我仁域。興德大王飛鳳筆迎勞曰。道義禪師。曏已歸止。上人繼至。爲二菩薩。昔聞黑衣之傑。 南朝齊武帝。敕沙門法獻,玄暢爲天下僧主。會于帝前。肩輿入殿。時稱黑依二傑。今見縷褐之英。 縷褐。弊衣也。彌天慈威。擧國欣賴。寡人行當以東鷄林之境。成吉祥之宅也。 行。將也。吉祥。卽薄伽梵。六義之一也。始憩錫於尙州露嶽長柏寺。 今南長寺。 醫門多病。來者如雲。方丈雖寬。物情自隘。遂步至康州 今晉州智異山。有數於莬 楚人稱虎之名 哮吼前導。避危從坦。不殊兪騎。 兪。仁也。如仁順馬在前去。書。帝曰。兪之先行騎。註。兪者。輿後相應之騎。從者無所怖畏。豢犬如001_177c也。則與善無畏, 三藏 佛名 結夏靈山。猛獸前路。深入山穴。見牟尼立像。完同事跡。彼竺曇猷之扣睡虎頭。令聽經。亦未專媺於僧史也。 晉沙門竺曇猷。一名法獻康居國人。在豐城赤石山石室誦經。有猛虎數十蹲在猷前。一虎獨睡。猷以如意杖扣睡虎頭。呵曰。何不聽經。俄而羣虎皆去。因於花開谷故三法和尙蘭若遺基。纂修堂宇。儼若化城。洎開成 唐文宗年號 三年。愍哀大王驟登寶位。 開成三年戊午。金明弑僖康王自立。四年己未。金陽等討金明誅之。立古微爲王。卽神武王也。追諡金明曰愍哀。深託玄慈。降璽書餽齋費。而別求見願。禪師曰。在勤修善政。何用願爲。使復于王。王聞之愧悟。以禪師色空雙泯。定惠俱圓。降使賜號爲惠照。昭字避聖祖廟諱001_177d易之也。 廟諱。卽昭聖大王也。名俊邕。仍貫籍편003大皇龍寺。 如無染碑。編錄興輪寺奴婢田地之意。徵詣京邑星使。 漢書。李郃善天文。和帝遣使觀風。郃見使。問京中消息。使曰。君何以知吾爲使也。郃曰。見有二使星來向益州。故知之。往復者交轡于路。而嶽立不移其志。昔僧稠非元魏之三召云。在山行道。不爽大通。 齊鄴西龍山雲門寺僧稠。拒元魏孝明帝之前後三召也。爽。差也忒也。栖幽養高。異代同趣。居數年。請益者。稻麻편004列。殆無錐地。遂歷銓 音全。言選擇也。奇境。得南嶺之麓。塽塏 地高明也 居最。經始禪廬。却倚霞岑。俯壓雲澗。淸眼界者。隔江遠岳。爽耳根者。逬石飛湍。至如春溪花。夏徑松。秋壑月。冬嶠雪。四時變態。萬象交光。百籟 凡有孔竅。皆曰籟。人籟則比竹是已。001_178a地籟則衆竅是已。天籟則人心自動者是已。見莊子齊物。和吟。千巖競秀。嘗遊西土者。至止咸愕視。謂遠公東林。晉惠遠。於廬山創東林寺。移歸海表。蓮花世界。非凡想可擬。壺中別有天地則信也。架竹引流。環階四注。始用玉泉爲榜。屈指法胤。則禪師迺曹溪之玄孫。是庸建六祖影堂。 今雙溪寺也。 彩飾粉墉。廣資導誘。經所謂 法華經偈 爲說衆生。故綺錯繪衆像者也。大中四年 唐宣宗年號 正月九日詰朝 平明。告門人曰。萬法皆空。吾將行矣。一心爲本。汝等勉之。無以塔藏形。無以銘記跡。言竟坐滅。報年七十七。積夏四十一。于時。天無纖雲。風雷欻起。虎狼號咽。杉栝變衰。俄而紫001_178b雲翳空。空中有彈指聲。會葬者無不入耳。則梁史載褚侍中翔。嘗請沙門爲母疾祈福。聞空中彈指。聖感冥應。豈誣也哉。凡志於道者。寄聲相吊。未忘情者。含悲以泣。天人痛悼。斷可知矣。靈函幽隧。 函。棺也。隧。墓道。預使備具。弟子法諒等。號奉色身。不踰日而窆于東峯之冢。山頂也。 遵遺命也。禪師性不散樸 不亂不質而得其中。言不由機 巧飾。服暖縕黂。 列子曰。父衣縕黂。縕。久絮。黂。雄麻也。言挾纊弊麻衣。食甘糠麧。音屹。漢書晉灼註。米屑也。又音劾。說文云。堅麥。音序。山栗。卽橡子也。菽雜糅。蔬佐無二。貴達時至。曾無異饌。門人以墋腹 墋音參。不澄淸之意。進難。則曰。有心至此。雖糲 麤米何害。尊卑耋穉。接之如一。每001_178c有王人 王使 乘馹傳命。遙祈法力。則曰。凡居王土而편005佛日者。孰不傾心護念。爲君貯福。亦何必遠汚綸言王言如絲。其出如綸。於枯木朽株。 自謙之辭。 傳乘之飢不得齕。渴不得飮。吁可念也。或有以胡香爲贈者。則以瓦載煻灰。不爲丸而焫之曰。吾不識是何臭。虔心而已。復有以漢茗爲供者。則以薪㸑石釜。不爲屑而煮之曰。吾不識是何味。濡편006而已。守眞忤俗。皆此類也。雅善梵唄。長聲편007 。金玉其音。側調飛聲。爽快哀婉。能使諸天歡喜。永於遠地流傳。學者滿堂。誨之不倦。至今東國習魚山之妙者。 曹子建喜讀佛經。一日遊魚山。聞有空聲特異。淸颺哀婉。因倣其聲。以爲梵唄。001_178d如掩鼻。 謝安有鼻病。故音濁。士子愛其詠。掩鼻而效之。效玉泉餘響。豈非以聲聞度之之化乎。禪師泥洹。當文聖大王之朝。上側仙衿。 王心也。凡人之心則塵衿。將寵淨諡。及聞遺戒。 坐滅時語 愧而寢之。越三紀。門人以陵谷爲慮。扣不朽之緣於慕法弟子。內供奉一吉干 音汗也。一品爵。楊進方。嵩文臺郞鄭詢一。斷金爲心。 易曰。二人同心。其利斷金。勒石是請。憲康大王恢弘至化。欽仰眞宗。追諡眞監禪師。大空靈塔。仍許篆刻。以永終譽。懿乎日出暘谷。無幽不燭。海岸植香。久而彌芳。或曰。禪師垂不銘不塔之戒。而降及西河之徒 弟子。不能確奉先志。求之歟。抑與之歟。適足爲白圭之玷。001_179a噫。非之者亦非也。不近名而名彰。盖定力之餘報。與其灰滅電絶。曷若爲可爲於可爲之時。使聲震大千之界。而龜未戴石。龍遽昇天。 獻康王薨。 今上 定康王也 繼興。塤篪相應。 小雅。伯氏吹塤。仲氏吹篪。 意諧付囑。善者從之。以隣岳招提有玉泉之號。 卽今之晉州玉泉寺。 爲名所累。衆耳致惑。將俾棄同卽異。則宜捨舊從新。使視其寺之所枕倚。則以門臨複澗爲對。乃錫題爲雙溪焉。 改玉泉爲雙溪 申命下臣曰。師以行顯。汝以文進。宜爲銘。致遠拜手曰。唯唯。退而思之。頃捕名中州。 先生十二入唐。十八登第。文名大振。二十八東還。乃僖宗光啓元年。而定康王嗣位之初載也。至翌年。僖宗遣使。特令先生撰中興功德頌一卷。嚼腴咀雋001_179b于章句間。 腴。肥魚臠。雋。肥鳥肉。比古人典籍深奧有味也。未能盡醉衢罇。 衢罇比聖人之道。杜詩云。聖人之道。猶中衢而致樽者。斟酌多少得其宜。惟媿深跧泥甃。 跧。就。泥。淤泥。甃。井也。言踐盡其勇。只就泥甃間。況法離文字。無地措言。 先生自言。北學中州。未能盡得聖人之道。則況於佛家文字。無所措言。苟或言之。北轅適郢。 道之相違也。 第以國主之外護。門人之大願。非文字。不能昭昭乎羣目。遂敢身從兩役。 兩。二也。以儒而役於佛。爲二役。力效五能。鼯鼠。一名夷由。有五能五不能。一能飛不能過屋。二能緣不能穿木。三能逾不能渡谷。四能穴不能掩身。五能走不能先人。喻述作之能反不能也。雖石或憑。言可慚可懼。 慚於心而懼於人也 而道強名也。何是何非。 字解曰。強。自是也。自是以道爲名。何必是非。音凡。莊子。掘若枯木。不動之意。筆藏鋒。則臣豈敢。 王命也。不敢不作。重宣前001_179c義。謹札銘云。 札。櫛也。編之如櫛齒相比。
杜口禪那。歸心佛陀。 禪那。靜慮。佛陀。覺也。根熟菩薩。弘之靡他。猛探虎窟。遠泛鯨波。去傳秘印。來化斯羅。 新羅之一稱。 尋幽選勝。卜築巖磴。水月澄懷。雲泉奇興。山與性寂。谷與梵應。觸境無閡。息機是證。道贊五朝。 憲德,興德,僖康,神武,文聖。威摧衆妖。默垂慈蔭。顯拒嘉招。海自飄蕩。山何動搖。無思無慮。匪斲匪雕。食不兼味。服不必備。風雨如晦。始終一致。慧柯方秀。法棟俄墜。洞壑凄涼。烟蘿憔悴。人亡道存。終不可諼。上士陳願。大君流恩。燈傳海裔。塔聳雲根。天衣拂石。永耀松門。 天衣拂石。取久遠之意。大劫頌云。有石長001_179d廣四萬里。長壽天人過百年。六銖袈裟磨鍊盡。是則名爲一大劫。

[편-001]衆 :
[편-002]衆 :
[편-003]干 :
[편-004]城 :
[편-005]載 :
[편-006]服 :
[편-007]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