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 시조공에 대한 기록/휘 문도 고려 평장사기록

최 시승(崔寺丞)이 등제(登第)한 것을 축하한 시의 서문

아베베1 2012. 2. 9. 22:33

 

 

 지원(至元) 6년(1340, 충혜왕 복위 1) 겨울에 삼사사(三司使) 김공(金公 김영돈(金永旽))과 전법 판서(典法判書) 안공(安公 안축(安軸))이 춘관(春官 예조(禮曹))에서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이때 춘헌(春軒 최문도(崔文度)) 최공(崔公)의 아들 예경(禮卿 최사검(崔思儉))이 그 시험에 급제하였다. 최공은 손님을 좋아하기로 동방에서 제일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축하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칠 정도였다

 

가정집 제9권

서(序)
최 시승(崔寺丞)이 등제(登第)한 것을 축하한 시의 서문


인재를 뽑는 제도가 시행된 지 오래되었다. 그 과목을 늘리고 줄인 것은 시대에 따라 같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인재를 빈객으로 예우하고 작록을 수여하면서 문호(文虎 문신과 무신)로 임용한 것은 일찍이 다른 적이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초에는 육예(六藝)가 삼물(三物)의 하나를 차지하면서 사(射)와 어(御)도 그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인데, 후세에 와서 호예(虎藝 무예)의 과가 별도로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문호의 경로를 통하지 않고 들어와서 벼슬하는 자들을 이(吏)라고 하였으니, 이는 대개 고대에 도필(刀筆 문서 기록)의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벼슬하는 길이 마침내 셋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각 시대마다 숭상하는 풍조에 따라서 경중의 차이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唐)나라 진신(搢紳)의 경우에는 인신(人臣)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진사과(進士科)의 고시를 거치지 않은 자들은 그다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송(宋)나라의 전성기에 이르러서는 이 과거 출신자들을 특히 더 중시하였다.
본국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대대로 문사(文士)를 존중해 왔다. 그리하여 시종(侍從)과 헌체(獻替)의 관직이나 선거(選擧)와 전사(銓仕)의 직책 등은 실제로 문사들이 모두 독점하였고, 호반(虎班)이나 이속(吏屬) 등은 감히 이 자리를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지금은 성스러운 원나라가 문치를 숭상하여 과거에 대한 조칙을 거듭 내리고 있는 때인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글공부를 하는 선비들이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하고 용맹심을 한껏 과시하며 서로 다투어 기예를 다투는 시험장에 나아가 실력을 겨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지원(至元) 6년(1340, 충혜왕 복위 1) 겨울에 삼사사(三司使) 김공(金公 김영돈(金永旽))과 전법 판서(典法判書) 안공(安公 안축(安軸))이 춘관(春官 예조(禮曹))에서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이때 춘헌(春軒 최문도(崔文度)) 최공(崔公)의 아들 예경(禮卿 최사검(崔思儉))이 그 시험에 급제하였다. 최공은 손님을 좋아하기로 동방에서 제일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축하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칠 정도였다.
내가 춘헌에게 나아가 축하한 다음에 물러 나와 예경에게 말하기를,
“과거에 등제하려고 하는 것은 벼슬길에 오르려고 해서이다. 본국의 옛날 제도를 보건대, 관직이 일단 6품에 이른 자는 더 이상 유사에게 나아가서 시험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대는 일찍이 낭장(郞將)을 거쳐 감찰 규정(監察糾正)을 겸임하였고 전객시 승(典客寺丞)에 전임되었으며, 나이도 한창 장년(壯年)으로서 날로 발전해 마지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근래의 규례를 원용하여 백의의 무리와 함께 과거 시험장에서 붓과 종이를 희롱하였다. 그대는 장차 녹명(鹿鳴)의 노래를 부르고는 계해(計偕 연경(燕京)의 회시(會試) 응시생들)와 함께 천자의 뜰에 나아가서 대책을 묻는 시험 문제를 쏘아 맞히려고 하는 것인가? 그대는 장차 헌체하여 우리 임금의 허물을 보완하고 아름다운 점을 받들어 따르려고 하는 것인가? 그대는 장차 전선(銓選 인사 행정)에 참여하여 사류(士流)를 품평하면서, 혹 꾸짖고도 벼슬을 주고 혹 웃고도 주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호부(虎夫)가 호기를 부리며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괴롭게 여기고, 이원(吏員)이 정신없이 경쟁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징계된 나머지, 우리 유자(儒者)의 오활한 점에 몸을 기대고서 사림(詞林)이나 취향(醉鄕)으로 달아나 스스로 숨으려고 하는 것인가?”
하니, 예경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임금을 섬기고 어버이를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원래 가훈이 있다. 하지만 부귀와 이달(利達) 같은 것은 구하는 데에 방법이 있고 얻는 데에 명이 있는 것이니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집안은 예부공(禮部公) 휘 균(均) 이하로부터 서로 잇따라 5대에 걸쳐서 등제하였다. 그리고 예부공의 아들인 문정공(文定公) 휘 보순(甫淳)은 충헌왕(忠憲王 고종(高宗))의 명상(名相)으로서 네 차례나 예위(禮圍 과거 시험)를 관장하였고, 조부 문간공(文簡公 최성지(崔誠之))은 또 덕릉(德陵 충선왕(忠宣王))의 재상으로서 문형(文衡)을 주관하였다. 그러다가 존공(尊公 부친) 때에 와서는 어려서 국자제(國子弟 왕세자와 공경대부의 자제)를 따라 천조(天朝)에서 숙위(宿衛)하였기 때문에 과거 공부를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조모 김씨(金氏)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르시기를 ‘네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업을 회복하는 것을 본다면 여한이 없겠다.’라고 하신 것이다. 자애로운 그 모습은 지금 뵐 수 없게 되었어도 그때 해 주신 말씀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구구하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는 의롭게 여겨지기에 술잔을 들어 권하면서 말하기를,
군자의 가르침을 보면, 옛날로 회귀하여 시조를 추모하게 하였으니, 이는 대개 자기가 태어난 근원을 잊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더군다나 부지런히 배우기를 좋아하면서 기필코 가업을 이으려고 하는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뒷날에 입신양명할 것을 이를 통해서 알 수가 있겠다. 사람들은 거자가 올해 주사(主司)를 제대로 만났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주사가 올해 거자를 제대로 얻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예경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다.”
하였더니, 객들도 모두 그렇다고 하고는 각자 시를 짓고 나서 나의 말을 시권(詩卷)의 첫머리에 적어 넣게 하였다.


 

[주D-001]인재를 빈객으로 예우하고 : 주(周)나라 때에 향대부(鄕大夫)가 소학(小學)에서 현능(賢能)한 인재를 천거할 적에 그들을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빈객으로 예우하며 국학(國學)에 올려 보낸 것을 말한다. 《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 “향학(鄕學)의 삼물 즉 세 종류의 교법(敎法)을 가지고 만민을 교화한다. 그리고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에 올려 보낸다. 첫째 교법은 육덕이니 지ㆍ인ㆍ성ㆍ의ㆍ충ㆍ화요, 둘째 교법은 육행이니 효ㆍ우ㆍ목ㆍ연ㆍ임ㆍ휼이요, 셋째 교법은 육예이니 예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이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 一曰六德 知仁聖義忠和 二曰六行 孝友睦婣任恤 三曰六藝 禮樂射御書數〕”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진사과(進士科) : 조선 시대의 문과(文科)와 유사한 형태의 과거 제도이다. 참고로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전집(前集) 권26 사진부(仕進部) 중진사과(重進士科)에 “진사과는 수나라 대업(大業) 연간에 시작되어, 당나라 정관ㆍ영휘 연간에 전성기를 맞았다. 인신(人臣)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진사과의 고시를 거치지 않은 자는 그다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급제자들을 추중하여 백의 경상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백의의 신분에서 경상의 지위에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었다.〔進士科始隋大中 盛貞觀永徽之際 縉紳雖位極人臣 不由進士者 不以爲美 其推重謂之白衣卿相 以白衣之士卽卿相之資也〕”라는 말이 나오는데, 가정이 본문에서 이 글의 일부분을 그대로 인용해서 쓰고 있다.
[주D-003]헌체(獻替) : 행해야 할 일을 진헌(進獻)하고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을 폐지하도록 임금에게 건의한다는 헌가체부(獻可替否)의 준말로, 중대한 국사를 조정에서 의논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4]녹명(鹿鳴) :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본래는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에 급제한 거인(擧人)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주D-005]임금의 …… 것인가 : 《효경(孝經)》 사군(事君)에 “군자가 임금을 섬김에,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완할 것을 생각하여,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받들어 따르고 임금의 잘못된 점은 바로잡아 구제한다.〔君子之事上也 進思盡忠 退思補過 將順其美 匡救其惡〕”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6]구하는 …… 것이니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구하는 데에 방법이 있고 얻는 데에 명이 있는데도, 이런 것을 구하려 든다면 꼭 얻는다고 할 수가 없으니, 이것은 구하는 대상이 나 자신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군자의 …… 것이다 : 제사를 지내는 목적에 대해서 말한 《예기》 제의(祭義)의 내용을 풀어서 인용한 것이다.

 

가정집 제16권
율시(律詩)
최춘헌(崔春軒)이 새로 전법 판서(典法判書)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는 시를 지어 부치다


남포에서 한가로이 이십 년 세월을 보내면서 / 南浦閑居二十年
꿈속에서도 명리 쪽엔 관심을 두지 않으신 분 / 夢魂不到利名邊
판서는 제조의 중망인에게 돌아가는 직책이요 / 判書望重諸曹選
봉익은 이품의 반열에 서는 고위 관계(官階)라 / 奉翊官高二品聯
지금의 일을 어찌 가볍게 손댈 수 있으리까 / 時事豈堪輕出手
후생이 또 어깨를 감히 나란히 하게 됐나이다 / 後生聊復與齊肩
춘헌기를 어떻게 써서 부쳐야 할는지요 / 何當寫寄春軒記
출처가 지금껏 우연의 소산일 뿐이외다 / 出處從來只偶然


 

[주C-001]최춘헌(崔春軒) : 춘헌은 최문도(崔文度 : ?〜1345)의 호이다.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 권2에 〈춘헌기(春軒記)〉가 실려 있다.

 

가정집 제2권
기(記)
춘헌기(春軒記)


어떤 객이 춘헌(春軒)에 와서 춘(春)이라고 이름 붙인 뜻을 물어보았으나, 주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객이 다시 앞으로 나앉으며 말하였다.
“우주 사이의 원기가 조화의 힘에 의해 퍼져서 땅에 있는 양(陽)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 하늘과 막힘없이 통하게 되면, 만물의 생동하는 뜻이 발동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활짝 펴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봄이 오면 온갖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니, 봄의 풍광은 사람의 기분을 마냥 들뜨게 하고 봄의 경치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주는 법이다. 그래서 봄 누대에 오른 듯도 하고 봄바람 속에 있었던 듯도 하다는 그 뜻을 취해서 이렇게 이름 붙인 것인가?”
주인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객이 또 말하였다.
“원(元)은 천지가 만물을 내는 근본이요, 춘은 천지가 만물을 내는 시절이요, 인(仁)은 천지가 만물을 내는 마음이니, 이름은 비록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이치는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노쇠하고 병든 자들이 봉양을 받을 수 있고 곤충과 초목이 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러한 이치 때문이라는 그 뜻을 취해서 이렇게 이름 붙인 것인가?”
이에 주인이 말하기를,
“아니다. 굳이 그 이유를 대야 한다면 온화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여름에는 장맛비가 지겹게 내리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고 가을에는 썰렁해서 몸이 으스스 떨리니, 사람에게 맞는 것은 온화한 봄이 아니겠는가. 객이 말한 것이야 내가 어떻게 감히 감당하겠는가.”
하자, 객이 웃으면서 물러갔다.
내가 그때 자리에 있다가,
“그만한 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자처하지 않는 것은 오직 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알기에 주인은 흉금이 유연(悠然)해서 자기를 단속하고 남을 대할 적에 속에 쌓였다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화기(和氣) 아닌 것이 없으니, 대개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바람 쐬며 노래하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주인이 취한 뜻이 어찌 온화하다고 하는 정도로 그치겠는가. 그런데 객이 어찌하여 그런 것은 물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고는, 마침내 붓을 잡고 이 내용을 벽에다 써 붙였다.
주인은 완산 최씨(完山崔氏)로, 문정공(文定公)의 후손이요 문간공(文簡公)의 아들이다. 박학강기(博學强記)한 데다가 특히 성리(性理)의 글에 조예가 깊어서, 동방의 문사들이 질의할 것이 있으면 모두 그를 찾아가서 묻곤 한다.


 

[주D-001]봄 누대에 …… 하고 : 《노자(老子)》 제 20 장에 “사람들 기분이 마냥 들떠서, 흡사 진수성찬을 먹은 듯도 하고 봄 누대에 오른 듯도 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봄바람 …… 하다 : 주희의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권4에 “주공섬(朱公掞)이 여주(汝州)에 가서 명도(明道) 선생을 만나 보고 돌아와서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한 달 동안이나 봄바람 속에 앉아 있었다.〔某在春風中坐了一月〕’라고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
[주D-003]기수(沂水)에 …… 부류 :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무우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 선진(先進)에 나온다.
[주D-004]주인은 …… 아들이다 : 주인의 이름은 최문도(崔文度)이다.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문정공(文定公) 최보순(崔甫淳)의 5세손이요, 광양군(光陽君)에 봉해진 문간공(文簡公) 최성지(崔誠之)의 아들이다. 자는 희민(羲民)이고, 관직은 첨의 평리(僉議評理)에 이르렀다. 1345년(충목왕 1)에 죽었으며,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아들의 이름은 사검(思儉)이다.

 

가정집 제18권
율시(律詩)

오십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는 / 五十而知命
성인의 말씀이 느껴지는 금년 / 今年感聖言
구구하게 한 자 한 치를 다투느라 / 區區爭尺寸
죽을 고생을 해 가며 허비한 아침저녁 / 役役度晨昏
그저 이 한 몸 위하는 계책일 뿐 / 祗是爲身計
언제 나라 은혜 갚은 적 있었던가 / 何曾報國恩
지금부터는 요절했다 말하지 않을 테니 / 從玆不稱夭
만 가지 일을 한잔 술에 부쳐 보련다 / 萬事付山尊

오십이 되도록 알려짐이 없으니 / 五十而無聞
성인의 지적이 부끄러운 금년
/ 今年愧聖言
참으로 손에 서툰 문장을 가지고서 / 文章眞手拙
결국은 이욕에 마음이 어두워졌다네 / 利欲竟心昏
자리를 훔쳐 빈번히 녹봉을 받고 / 竊位頻霑祿
온 집안이 거저 은혜를 입었을 뿐 / 渾家謾被恩
후생은 정말 두려워해야 할 존재 / 後生誠可畏
한 바가지 막걸리 함께 들려 할는지 / 肯伴擧匏尊


[주D-001]오십이……금년 : 《논어》〈자한(子罕)〉에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할 것이니, 앞으로 후생들이 지금의 나보다 못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짐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가정집 잡록
《시경》의 구절을 뽑아서 가정(稼亭)에 제하다


문왕 무왕을 이은 성스러운 원나라 / 下武維聖元
문덕으로 성교가 널리 미치게 했네 / 思文溥漸被
은나라의 광대한 땅을 차지하여 / 宅殷土芒芒
해외에서 문궤를 같이하게 되매 / 海外同文軌
두릅나무 가지 무성하게 우거지고 / 棫樸枝芃芃
길가의 갈대 잎도 윤택이 난다네
/ 行葦葉泥泥
더부룩이 다북쑥 벽옹에 가득하고 / 菁莪盛辟廱
미나리며 마름풀 반수에 넘치나니
/ 芹藻彌泮水
많고 많은 상서로운 인재들이여 / 藹藹多吉人
모두 임금님이 등용할 만하다네 / 共惟君子使
실로 저 삼한산으로 말하면 / 信彼三韓山
푸른 바다 물결이 밀려오는 곳 / 宛在滄溟沚
잘 일군 양지쪽 언덕의 전지 / 畇畇陽坡田
구획하여 두둑과 고랑을 냈다네 / 迺場迺彊理
밭 가운데 새로 세운 하나의 정자 / 中田有新亭
처마가 발꿈치 들고 양팔을 편 듯 / 簷宇翼如跂
어떤 분이 거기에 살고 계시는가 / 其居何人斯
명성도 아름다운 준걸스러운 선비 / 有美譽髦士
그 선비는 바로 동방의 영걸로서 / 士也東方英
사립문 안에서 한가히 소요한다네 / 考盤衡門裏
집안이 대대로 가색을 좋아하여 / 家世好稼穡
대식하는 이것을 보배로 여겼나니
/ 代食維寶此
청학이 그들의 할 일은 아니었지만 / 請學匪其功
소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지라 / 素餐是所恥
농민과 함께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면서 / 力民務昏作
애면글면 애쓸 뿐 벼슬길은 꺼려했다네 / 黽勉畏從仕
황제가 이르기를 아 그대 신하들이여 / 帝曰咨臣工
간모처럼 향리의 인재를 천거하라 하시자 / 干旄擧鄕里
빈객의 예우 받고 녹명의 노래 부르면서 / 賓興歌鹿鳴
압록강 물가에서 전별의 술잔을 들었다네 / 飮餞鴨江涘
거침없이 상국으로 들어올 적에 / 奔然來上國
머리에 의젓이 쓴 절풍의 가죽 관이여 / 折風弁有頍
수륙의 길이 험난하고도 멀어서 / 川陸阻且長
길 가는 것이 날마다 더디기만 하였다네 / 行邁日靡靡
남궁에 숲처럼 모인 인사들 속에서 / 南宮士如林
장기를 발휘하여 삼장을 연승하였나니 / 三捷獻長技
책문을 쏘아 하늘의 아름다움을 선양하고 / 射策揚天休
버들잎 꿰뚫는 솜씨로 사시를 거듭 맞혔다네 / 穿楊反四矢
이름난 명망이 급제자 중에 으뜸이요 / 聞望冠黃甲
비범한 재능이 천자를 감동시킨 결과 / 龍光動丹扆
시종으로 옥당에서 근무하면서 / 從祿毗玉堂
경건히 국사를 살피게 되었다네 / 靖恭閱國史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몇 해가 지나면서 / 載離幾寒暑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 / 悠悠憶桑梓
부인은 채록을 노래할 것이요 / 婦兮賦采綠
모친은 척기의 탄식을 하시리 / 母也嗟陟屺
성랑에 임명되어 동으로 가게 되었나니 / 徂東拜省郞
찬란하게 빛나는 저 비단옷이여 / 錦衣爛玼玼
과하구에게 꼴을 먹이고서 / 言秣果下駒
돌아가는 수레에 행리를 실었다네 / 還車載行李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이 / 有暳列宿光
휘황하게 비춰 주는 동쪽 변두리 / 煌煌照東鄙
생각하면 저 구도의 사람들이 / 維彼九都人
첨언을 오래도록 서서 기다렸는지라
/ 瞻言佇相俟
이에 동방에서 잠깐 소요하며 / 於焉暫逍遙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동의하였다네 / 畫諾聊與爾
본디 진실한 왕도를 바탕으로 / 王猶固允塞
원대한 경륜을 끊임없이 이룩하고 / 訏謀成亹亹
퇴근하면 농업을 밝힐 일을 강구하리니 / 退公思明農
민로의 뜻이 어찌 끝이 있으리오 / 民勞曷其已
칠월의 시편을 반복해 읽으면서 / 三復七月篇
의식의 근본을 길이 생각한다네 / 永言衣食始
봄철에 단비가 일단 내리면 / 方春靈雨零
일찍 멍에 얹고 일을 재촉해야 할 터
/ 夙駕催擧趾
초자는 바로 재삼을 하고 / 楚茨斯載芟
대전은 양사로 갈아엎는다네 / 大田有良耟
좋은 곡물의 종자를 얻었으니 / 嘉種得黃茂
심고 덮는 것도 신중히 해야 하고말고 / 耰播亦勤止
생기 머금고서 쑥쑥 자라나더라도 / 厭厭實含活
구석구석 꼼꼼히 김매고 북돋워야지 / 綿綿或耘耔
들밥을 광주리에 담아서 가져오면 / 野餉載筐筥
좌우의 것을 취하여 맛을 보기도 한다네
/ 左右嘗旨否
아 풍성해라 신과 여의 사이에 / 於皇新畬間
원근을 막론하고 끝내 좋게 되었나니 / 終善無遠邇
벼도 있고 보리도 있고 / 有稻有來牟
검은 기장 붉은 기장 흰 차조도 있고 / 有秬有穈芑
오이와 콩과 들깨도 있고 / 有瓜有菽荏
늦벼와 올벼도 있다네 / 有穜有稑䄫
메기장 바야흐로 의젓하게 자라나고 / 有黍方與與
찰기장도 따라서 꿋꿋하게 자라나고 / 有稷又薿薿
무성하게 우거지며 열매도 잘 여물어 / 幪幪旣堅好
차곡차곡 쌓아 가니 쭉정이도 별로 없다네 / 栗栗少糠秕
농기구 갖추어 가을걷이할 적에 / 秋穫庤錢鎛
잠깐 들러서 구경을 하노라면 / 薄言往觀視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기도 하고 / 或積若丘崇
빗살처럼 빽빽이 늘어서 있기도 하고 / 或密若擳比
타작마당에 천상을 들여놓고서 / 築場納千廂
곳간을 열어 억자의 곡식을 저장도 하네 / 開室儲億秭
염소를 구워 빈객을 접대하고 / 炮羔御賓客
술을 걸러서 조비를 즐겁게 하며 / 釃酒衎祖妣
장중과 같은 효성과 우애로 / 張仲齊孝友
잔치하며 기뻐함이 길보와 같으리
/ 吉甫同燕喜
바라건대 계속 풍년이 들어 / 所願屢豐年
상제의 복을 많이 받는 가운데 / 多受上帝祉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시어 / 父母壽而康
머리도 검어지고 치아도 새로 나시기를 / 黃髮更兒齒
그리고 부지런히 떠맡은 짐을 도와 / 勉勉佛仔肩
한 방역의 기강이 됨은 물론이요 / 一方是綱紀
나아가 바닷가의 이 백성을 인도하여 / 率時海隅氓
대대로 밝은 천자를 떠받들게 하시기를 / 世奉明天子
노군(魯郡) 왕사성(王思誠) 지음

희중이 해 뜰 때 공손히 맞이하여 / 羲仲賓出日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렸었지
/ 平秩東作事
이군은 바로 조선 사람이니 / 李君朝鮮人
가정이라 명명한 것도 연유가 있다 하리 / 稼亭名有自
근본을 두터이 하고 예교를 숭상하는 일을 / 敦本崇禮敎
몇 년 안에 금방 이룰 수도 있을 터 / 有年可立致
농사를 지을 마음이 없지 않아서 / 負耒非無心
뗏목 타고 나갈 뜻을 밝혔는지도
/ 乘桴或有志
경사(京師) 송경(宋褧) 지음

화성의 낭관께선 머리카락 새카만데도 / 畫省郞官鬢髮靑
돌아가 신정 짓고 농사를 배우려 한다네 / 歸來學稼葺新亭
옥당에서 시초하며 연촉(蓮燭)을 나눠 받은 분 / 玉堂視草曾頒燭
녹야에서 김맬 때도 여전히 경서를 휴대하리 / 綠野耘苗尙帶經
연무가 자욱해도 부상에서 해는 뜨고 / 日出扶桑煙漠漠
물은 차가워도 고도에 봄빛이 일렁이네 / 春生孤島水冷冷
옷자락 떨치고 그대 따라 곧장 가고 싶어 / 拂衣便欲從君逝
조모의 풍류로 유명한 관녕도 찾아뵐 겸 / 皁帽風流謁管寧
조군(趙郡) 소천작(蘇天爵) 지음

사군이 서주 옆에 띳집을 엮어 놓고 / 使君結屋傍西疇
고관의 신분으로 때때로 촌로와 어울린다네 / 冠蓋時從野老遊
동작을 소중히 여겨 양곡에 관원을 두었나니 / 暘谷官因東作重
신농의 책을 원방에서 지금도 거두어들인다오 / 神農書自遠方收
상마 심는 땅이 더워서 농사철이 이른 곳 / 桑麻地燠民時早
가을에 익는 벼 곡식 향내가 해도에 그윽하리 / 稉稻秋香海島幽
봉각의 고인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 鳳閣故人天上望
신주와 격한 삼한의 푸른빛 속에 있네 / 三韓蒼翠隔神州
안성(安成) 유문(劉聞) 지음

돌아가 농사짓기 좋은 삼한의 구름 낀 산기슭이요 / 三韓雲麓好歸田
바다의 하늘 맞아들이는 우리 원외의 새 정자라 / 員外新亭納海天
북성의 청쇄객으로 더 이상 머물기 어려워서 / 北省難留靑瑣客
압록강의 배에 오르니 동인이 다투어 환영하네 / 東人爭迓綠江船
백제 땅 봄날의 산속에서 활짝 피는 꽃이라면 / 花開百濟春山裏
부상의 해 뜨는 해변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이로세 / 鷄唱扶桑曉日邊
농사일을 급히 여겨 보국할 줄만 알았을 뿐 / 報國但知農務急
귀향한 뒤에야 세월의 변천을 비로소 알았다네 / 還鄕始覺歲華遷
잡초를 모조리 제거하고 장포를 가꾼 뒤에 / 盡鋤蔓草修場圃
좋은 모종 많이 심어 죽거리를 마련해야지 / 多種良苗備粥饘
기러기 쏘러 왕자 모시고 간혹 나가기도 하고 / 射雁偶陪王子出
소에 걸터앉은 김에 목동처럼 채찍질도 해 보고 / 跨牛仍學牧童鞭
뽕나무 숲에서 쟁기를 지고 비에 옷도 적시고 / 桑陰負耒衣沾雨
솔 밖 난간에 기대어 모자로 연무도 털어 내고 / 松外憑闌帽拂煙
동산 숲에 제계가 올까 항상 걱정이지 / 長恐園林鶗鴂至
창호에 길고가 걸리는 거야 상관없다네 / 不妨窓戶桔槹懸
아손은 삼동에 글 배우기를 달가워하고 / 兒孫喜向三冬學
부녀는 칠월의 시편 노래를 잘한다오 / 婦女能歌七月篇
찬 이슬 젖은 부용꽃에 상원이 생각날 것이요 / 露冷芙蓉懷上苑
누런 구름 뒤덮인 벼 곡식에 풍년을 경축하리 / 雲黃䆉稏慶豐年
때때로 가양주 개봉하여 손님을 접대하고 / 時時款客開家釀
해마다 봉록 떼 내어 관아에 또 보내겠지 / 歲歲輸官割俸錢
그리고 웃으리라 두 마지기의 땅이 없어서 / 却笑蘇秦無二頃
초구가 진토 되도록 삭풍을 맞았던 소진을
/ 貂裘塵土朔風前
안성(安成) 유열(劉閱) 지음

삼한의 산 아래에서 생산된 황금이요 / 三韓山下黃金産
오색구름 뒤덮인 궁궐의 서금과로세 / 五色雲中瑞錦窠
게다가 가을에 벼 익으면 더더욱 좋을시고 / 好是秋來粳稻熟
시대가 태평하니 길상가 불러야 하고말고 / 安時應有吉祥歌

봄바람에 정자에는 눈처럼 붉은 꽃 휘날리고 / 春風臺榭飛紅雪
간밤의 비로 연못에는 녹색 물결이 일렁이네 / 夜雨陂塘生綠波
현량방정의 대책문을 이제 다 읽고 / 讀罷賢良方正策
사람 만나면 역전과를 또 이야기한다오 / 逢人又說力田科

흰 말에 황금 안장 그리고 자줏빛 옥 굴레 / 白馬金鞍紫玉珂
봄날에 찾는 정자 여기가 바로 행와로세 / 春來亭上是行窩
국인이 신 원외를 두고 공통으로 하는 말 / 國人共說新員外
중원에서 배웠는지 말씀이 자상해지셨다나 / 學得中原語較多

당년에 소골을 중대하는 일이야 많겠지만 / 重戴當年蘇骨多
어느 날에나 국왕이 한아를 내려 주실는지 / 國王何日賜韓娥
봄바람 속에 말을 타고 한가히 왔다 갔다 하며 / 春風馬上閒來往
천산곡답답가를 배워서 불러도 보련마는 / 學唱天山踏踏歌

경성에서 우리 서로 이별한 뒤에 / 底是京城離別後
소식 묻는 글자 하나 없다니 이럴 수가 / 更無一字問如何
고인과 천상에서 어울려 노닐던 추억이여 / 故人天上相從處
헤어진 기간의 반절에도 훨씬 못 미치오그려 / 不及當年一半多
정익(程益) 지음

삼한의 산 앞에 봄풀이 푸르른데 / 三韓山前春草綠
여지(荔枝)는 촌에 가득 뽕은 골에 가득 / 柘枝連村桑滿谷
큰 소는 밥을 먹자 두 뿔을 비비대고 / 大牛飯罷礪雙角
송아지는 신이 나서 사슴처럼 팔짝팔짝 / 小犢跳梁野如鹿
밤사이에 동쪽 언덕 흡족하게 내린 비 / 夜來東原雨新足
구호는 사람들에게 포곡처럼 재촉하네 / 九扈向人催布穀
고급 수레 타고 오신 화성의 낭관 / 畫省郎官朱兩轂
명왕을 보좌하여 번방을 다스린다오 / 歸佐明王理藩服
쟁기를 대자 눈 녹듯 풀어지는 기름진 땅 / 土膏初起如雪沃
얕게 심고 깊이 가는 건 고루 잘 익으라고 / 淺種深耕貴勻熟
어찌 유독 근신하여 풍속을 바꿀 뿐이리오 / 豈獨勤身化成俗
동방이 모두 풍족하게 먹고 살게 함이로세 / 要使扶餘皆菽粟
푸른 바다 물가에 우뚝 선 신정이여 / 新亭翼翼滄海濱
손에 술과 고기 들고 친히 어루만지면서 / 手持酒肉親撫循
피리 불고 북 치고 다시 빈시를 연주하네 / 鳴竽擊鼓更吹豳
넓은 들에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기장들 / 大田多黍高過人
수레에 실어 나르나니 바퀴 소리 덜컹덜컹 / 車載輦負聲轔轔
고지대 저지대 곡식들 한데 뒤섞인 가운데 / 甌寠汙邪錯雜陳
집 밖에는 노적이요 집 안에는 곳집에 가득
/ 露處有積居有囷
울금으로 달인 술 감치면서도 순수하고 / 鬱金煮酒旨且醇
나물국에 향긋한 밥 온갖 양념 다 맞췄네 / 葵羹香飯調酸辛
동방은 전준 귀신에게 창가하겠지만 / 句驪唱歌田畯神
나는야 고기 구워 귀한 손님 드려야지 / 我有炰炙供嘉賓
취하면 모자 삐딱한 채로 다시 번갈아 춤추리니 / 醉來欹帽更迭舞
산이 달을 토하면 한아도 손뼉을 치며 웃으리라 / 韓娥拍手山月吐
선성(宣城) 공사태(貢師泰) 지음

천문 관원은 이제 막 해그림자 재려고 / 天官初候景
들판에 머물며 날이 맑기를 기다리는데 / 稅野待新晴
바닷가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밭을 갈아 / 海上人耕早
눈 속에서 봄풀이 벌써 돋아난다나요 / 雪中春草生
호미나 메고 공무는 모두 잊어버린 채 / 荷鋤忘吏役
문을 닫고 향청을 즐기고 계실 터인데 / 掩戶愛香淸
도성에 돌아와 조정에 복귀하는 그날에는 / 還省京華日
조복 차림에 창정을 제사해야 하겠네요 / 朝服祀蒼精

동년은 바야흐로 높이 출세하건마는 / 同年方貴顯
은자의 정을 언제나 품고 있는지라 / 常懷隱者情
틈만 나면 분성에서 뛰쳐나와서 / 時從粉省出
혼자 꾀꼬리 찾아 밭을 간다나요 / 自尋黃鳥耕
따사로운 봄볕이 들판에 떠돌기 시작하고 / 春陽初泛野
멀리 성을 가리며 자욱이 가랑비 내릴 때 / 小雨逈遮城
궁금하오 쟁기 놔두고 돌아와서는 / 想子還釋耒
누구와 더불어 술잔을 기울일는지 / 芳尊誰與傾
무위(武威) 여궐(余闕) 지음

나의 집이 있는 곳은 양광도 시골 / 我家楊廣道
농촌을 떠나 왕경에서 벼슬하다가
/ 釋耒仕王京
책을 끼고 서쪽으로 유학을 가서 / 挾策西游去
오래도록 황제의 도성에 머물렀다오 / 久住鳳皇城
대군이 변방의 신하를 어루만져 주어 / 大君懷遠臣
한림원의 관원으로 봉직하게 하였는데 / 令臣官玉署
내성에서 세월 보내며 체류하다 보니 / 內省聊淹留
다시 고향에 가고 싶은 간절한 생각 / 還思故鄕去
계림에 중서성의 분성이 있는지라 / 鷄林分省治
그곳의 원외랑으로 임명을 받았다오 / 拜詔作新郞
고향의 전원도 물론 멀지 않아서 / 田園應不遠
틈을 내어 날마다 소요하나니 / 乘暇日旁皇
관사 주위로는 푸른 산이요 / 靑山環館舍
밭두둑 사이로는 맑은 물이라 / 淥水界溝塍
내 집 옆에 사는 많은 이웃들이 / 我宇多隣竝
내가 농사를 전혀 짓지 못하자 / 耕耘殊未能
소 끌고 와서 보리밭을 쟁기질하고 / 牽牛耕麥隴
수확까지 해 주는데 감히 말릴 수야 / 穫刈敢妨功
농부들은 워낙 오래전부터 부지런해서 / 佃夫勤已久
농사일을 끝까지 자기 일처럼 해 주는데 / 登場我稼同
나는야 아동 시절에는 경사를 읽고 / 束髮讀經史
조정에 벼슬하면서는 화언을 익혔을 뿐이라오 / 入仕習華言
경전착정이 임금님 힘임을 생각하고서 / 耕鑿思帝力
높은 언덕에 가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세웠는데 / 新亭立高原
황궁 안에는 각종 꽃나무들이 많아 / 蘭省多花卉
무더기무더기 향기와 색깔을 뽐내는 것과는 달리 / 叢叢香色殊
새로 지은 나의 정자 아래에서는 / 那知新亭下
음식 마련에 힘이 많이 들 줄 어찌 알았으리오 / 飮食多所需
나도 이제 고서를 보고서 씨도 뿌리고 / 播種效古書
버려진 밭도 날마다 조금씩 개간하면서 / 閒田日以墾
말방울 소리 울리며 성부에 출근하더라도 / 鳴珂趨省府
종용히 농업을 감히 망각하지 않으리다 / 從容敢忘本
동평(東平) 왕사점(王士點) 지음

입조하는 말방울 소리 해마다 울리다가 / 朝馬年年響佩珂
고향에 돌아가 밭갈이하는 즐거움이 어떠하오 / 歸耕故里樂如何
해 뜨는 부상과 가까우니 수확도 이르고 / 扶桑日近收成早
압록강 물이 깊어서 관개하기도 쉬운 곳 / 鴨綠江深灌漑多
푸른 솥의 향긋한 밥알은 낱낱이 옥 구슬이요 / 翠釜香粳瓊作粒
금낭 안의 봄고치는 눈빛 물결로 출렁이리 / 錦囊春繭雪生波
낭관의 사무실이 또 신정의 곁에 있으니 / 郞官署在新亭側
쟁기 놓고서 하루에 한 번씩 들러도 무방하리라 / 釋耒無妨日一過
남양(南陽) 성준(成遵) 지음


 

[주D-001]문덕(文德)으로……했네 : 원나라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 맨 마지막의 “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풍성(風聲)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舜) 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 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해외에서……되매 : 천하가 통일되어 중국의 문화권 안으로 모두 편입되었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지금 온 천하가 같은 수레를 타고 같은 문자를 쓰게 되었다.〔今天下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두릅나무……난다네 : 통치자의 덕이 초목에까지 미칠 정도로 훌륭하여 인심이 귀의한다는 말이다.
[주D-004]더부룩이……넘치나니 :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말이다. 벽옹(辟廱)과 반수(泮水)는 모두 학교를 의미한다.
[주D-005]사립문……소요한다네 : 산림에 은거하며 안빈낙도하는 은사의 생활을 즐긴다는 말이다. 고반(考盤)은 고반(考槃)과 같다. 《시경》〈위풍(衛風) 고반(考槃)〉에 “산골 시냇가에서 한가히 소요하나니, 현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澗 碩人之寬〕”라는 말이 나오고, 〈진풍(陳風) 형문(衡門)〉에 “사립문 아래에서 충분히 쉬고 노닐 수 있다.〔衡門之下 可以棲遲〕”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집안이……여겼나니 : 가정의 집안은 벼슬하여 녹봉을 받기보다는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가색(稼穡)은 심고 수확하는 것으로 농사짓는 것을 뜻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가정이라는 호도 그렇지만, 아들의 이름이 색(穡)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식(代食)은 농사짓는 소득으로 녹식(祿食)을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대아(大雅) 상유(桑柔)〉에 “가색을 좋아하여, 농민과 함께 일하면서 대식하노니, 이는 가색을 보배로 여기고, 대식하는 것을 좋아함이로다.〔好是稼穡 力民代食 稼穡維寶 代食維好〕”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청학(請學) : 농사일 배우기를 청한다는 ‘청학가(請學稼)’의 준말이다. 《논어》 〈자로(子路)〉에, 번지(樊遲)가 “농사일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請學稼〕”, 공자가 “그 일은 내가 노농보다 못하다.〔吾不如老農〕”라고 대답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8]소찬(素餐) :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준말로, 자격도 없이 벼슬자리를 차지하고서 국록을 축낸다는 뜻인데, 흔히 겸사로 쓰인다.
[주D-009]간모(干旄) : 《시경》〈용풍(鄘風)〉의 편명인데, 현군인 위 문공(衛文公)의 신하가 쇠꼬리로 장식한 간모를 수레에 꽂고서 현인의 훌륭한 말을 듣기 위해 만나러 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D-010]빈객의……부르면서 : 가정이 정동행성 향시에 급제하고 원나라의 제과에 응시하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는 말이다. 주나라 때에 향대부가 소학에서 현능한 인재를 천거할 적에 그들을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빈객으로 예우하며 국학에 올려 보낸 것에서 유래하여, 향시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례》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 “향학(鄕學)의 삼물, 즉 세 종류의 교법을 가지고 만민을 교화하는데,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에 올려 보낸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라는 말이 나온다. 〈녹명(鹿鳴)〉은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본래는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鄕試)에 급제한 거인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前途)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양소윤서(送楊少尹序)〉에 “양후(楊侯)가 향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뒤에 녹명을 부르면서 올라왔다.〔擧於其鄕 歌鹿鳴而來〕”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D-011]절풍(折風) : 모자의 이름이다. 《북사(北史)》 권94〈고려열전(高麗列傳)〉에 “사람들 모두 머리에 절풍을 착용하는데, 모양은 변과 같으며, 사인은 새의 깃털 두 개를 더 꼽는다. 귀한 자들의 경우는 그 관을 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보라색 비단으로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다.〔人皆頭著折風 形如弁 士人加揷二鳥羽 貴者 其冠曰蘇骨 多用紫羅爲之 飾以金銀〕”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2]남궁(南宮) : 상서성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회시를 거행하는 예부의 뜻으로 쓰였다.
[주D-013]버들잎……맞혔다네 : 춘추 시대 초 공왕(楚共王)의 장군인 양유기(養由基)가 100보 떨어진 거리에서 버들잎을 활로 쏘아 백발백중시켰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4 周本紀》 그리고 옛날에 활을 쏠 때에는 네 개의 화살을 발사하는 것이 예법이었는데, 《시경》〈제풍(齊風) 의차(猗嗟)〉에 “쏘기만 하면 과녁을 꿰뚫으며, 네 개의 화살을 한곳에 거듭 맞혔네.〔射則貫兮 四矢反兮〕”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4]채록(采綠) : 《시경》〈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멀리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심정을 읊고 있다.
[주D-015]척기(陟屺) : 효자가 부역을 나가서 어버이를 잊지 못하는 심정을 노래한 《시경》〈위풍(魏風) 척호(陟岵)〉에 “저 민둥산에 올라가서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본다. 어머님은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아, 내 막내아들이 부역에 나가서 밤낮으로 잠도 자지 못할 터인데, 부디 몸조심해서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기만 해라.〔陟彼屺兮 瞻望母兮 母曰嗟予季行役 夙夜無寐 上愼旃哉 猶來無棄〕’”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6]성랑(省郞) : 정동행성의 원외랑을 가리킨다.
[주D-017]과하구(果下駒) : 과일나무 밑으로 타고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망아지라는 말이다.
[주D-018]생각하면……기다렸는지라 : 동방의 사람들이 가정과 같은 경륜지사(經綸之士)를 오래전부터 고대하였다는 말이다. 구도(九都)는 동이(東夷)를 뜻하는 구이(九夷)의 도회지라는 말로, 요동 일대를 포함한 옛 고구려의 땅을 가리킨다. 참고로 당 태종의 〈요성망월(遼城望月)〉 시에 “잠시 머물러 구도를 굽어보나니, 서서 보는 사이에 요망한 기운이 사라지네.〔駐蹕俯九都 佇觀妖氛滅〕”라는 말이 나온다. 첨언(瞻言)은 식견이 원대한 사람을 가리킨다. 《시경》〈대아(大雅) 상유(桑柔)〉에 “이 성스러운 사람은 멀리 백리 밖을 내다보고 말을 한다.〔維此聖人 瞻言百里〕”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9]민로(民勞) : 권신을 책망하고 동료를 서로 권면하며 고생하는 백성을 위로하려는 뜻이 담겨 있는 《시경》〈대아〉의 편명이다.
[주D-020]칠월(七月) : 《시경》〈빈풍(豳風)〉의 편명으로, 농민의 생활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국풍(國風) 중 가장 긴 시편이다.
[주D-021]봄철에……터 : 《시경》〈용풍(鄘風) 정지방중(定之方中)〉에 “단비가 일단 내리거든, 저 관인에게 명하여, 별을 보고서 일찍 멍에를 얹게 하고는, 뽕나무 밭에 나아가 멈춘다.〔靈雨旣零 命彼倌人 星言夙駕 說于桑田〕”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2]초자(楚茨)는……하고 : 〈초자〉와 〈재삼(載芟)〉은 각각 《시경》〈소아〉와 〈주송(周頌)〉의 편명인데, 초자는 가시덤불을 뜻하고, 재삼은 잡초를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참고로 〈초자〉에 “무성한 찔레꽃 밭, 그 가시덤불 제거함은, 예로부터 무엇 때문이었는가, 우리가 곡식을 가꾸려 해서라오.〔楚楚者茨 言抽其棘 自昔何爲 我藝黍稷〕”라는 구절이 나오고, 〈재삼〉에 “풀을 베고 나무를 벤 뒤에, 밭갈이를 하니 흙이 잘 풀어지네.〔載芟載柞 其耕澤澤〕”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3]대전(大田)은 양사(良耟)로 갈아엎는다네 : 〈대전〉과 〈양사〉 역시 각각 《시경》〈소아〉와 〈주송〉의 편명인데, 대전은 큰 밭이라는 뜻이고 양사는 날카로운 쟁기라는 뜻이다.
[주D-024]들밥을……한다네 : 참고로 《시경》〈소아(小雅) 보전(甫田)〉에 “저 남녘 두렁에 들밥을 내니, 권농관이 와서 기뻐하며, 좌우의 것을 취해서,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맛을 보네.〔饁彼南畝 田畯至喜 攘其左右 嘗其旨否〕”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5]신(新)과 여(畬) : 개간한 지 2년 된 전답과 3년 된 전답을 말한다. 《시경》〈주송 신공(臣工)〉에 “아 보개여, 저물어 가는 이 봄날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신과 여는 어찌해야 하는가.〔嗟嗟保介 維莫之春 亦又何求 如何新畬〕”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26]농기구……적에 : 참고로 《시경》〈주송 신공(臣工)〉에 “너희 농기구를 갖추어라, 곧 낫으로 추수함을 보리니.〔庤乃錢鎛 奄觀銍艾〕”라는 말이 나온다. 전(錢)은 가래인데 지금의 삽과 같고, 박(鎛)은 호미 등의 농기구를 가리킨다.
[주D-027]장중(張仲)과……같으리 : 주나라 선왕(宣王) 때 윤길보(尹吉甫)가 북방의 험윤(玁狁)을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우자, 시인이 시를 지어서 그의 공로를 찬양하고, 아울러 그가 잔치를 벌일 적에 효성과 우애로 유명한 장중을 불러서 함께 즐긴 것을 찬미한 내용이 《시경》〈소아(小雅) 유월(六月)〉에 나온다.
[주D-028]부지런히……도와 : 고려의 왕을 잘 보필하여 선정을 행하라는 말이다. 《시경》〈주송 경지(敬之)〉에 “임금인 내가 떠맡은 이 짐을 도와주어, 나에게 밝은 덕행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佛時仔肩 示我顯德行〕”라는 말이 나온다.
[주D-029]희중(羲仲)이……다스렸었지 : 《서경》〈요전(堯典)〉에 “희중에게 따로 명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게 하니 그곳이 바로 해 뜨는 양곡인데, 해가 떠오를 때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0]농사를……밝혔는지도 : 공자가 동방에 와서 살면서 농사지으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논어》〈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난세를 개탄하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또〈자한(子罕)〉에는 공자가 구이(九夷) 즉 동이족의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표명한 대목이 나온다.
[주D-031]옥당(玉堂)에서……분 : 황제의 측근에서 근무하며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다. 연촉(蓮燭)은 황금 연꽃 모양의 촉등(燭燈)으로, 신하에 대한 왕의 특별 예우를 표현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다. 당나라 영호도(令狐綯)가 궁궐에서 밤늦게까지 황제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갈 무렵에 촛불이 거의 다 꺼지자, 황제가 자신의 수레와 황금 연촉을 주어 보냈는데, 관리들이 이것을 보고는 황제의 행차로 여겼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66 令狐綯列傳》 시초(視草)는 문서를 검토하고 수정한다는 뜻이다.
[주D-032]녹야(綠野)에서……휴대하리 : 밭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인데, 한나라의 예관(倪寬)과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상림(常林)과 진(晉)나라의 황보밀(皇甫謐) 등이 모두 ‘경서를 휴대하고〔帶經〕’ 농사를 지으면서 쉴 때마다 독서했던 고사가 있다.
[주D-033]관녕(管寧) : 후한 말의 고사(高士)이다. 황건적의 난리를 피해 요동 땅으로 건너간 뒤 조정의 거듭된 부름에도 일절 응하지 않은 채 3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청빈하게 살면서 언제나 ‘검은 모자〔皂帽〕’를 쓰고 유유자적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주D-034]서주(西疇) : 농지를 뜻하는 시어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다고 말해 주니, 서쪽 밭에 장차 할 일이 있으리라.〔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라는 말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D-035]동작(東作)을……두었나니 : 옛날 동방의 바닷가에 농관을 두게 된 연유를 말한 것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희중에게 따로 명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게 하니 그곳이 바로 해 뜨는 양곡인데, 해가 떠오를 때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6]신농(神農)의 책 : 농사에 관한 서적을 말한다. 태곳적에 신농씨가 백성들에게 쟁기 사용법 등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주D-037]북성(北省)의 청쇄객(靑瑣客) : 궁중에 출입하며 황제의 측근에서 청요(淸要)의 직책을 수행하는 신하를 말한다. 북성은 대궐 북쪽의 상서성을, 청쇄는 궁중의 문을 가리킨다.
[주D-038]동산……걱정이지 :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제계가 먼저 울까 걱정일세, 온갖 풀이 향기롭지 못하게 될 테니까.〔恐鶗鴂之先鳴兮 使夫百草爲之不芳〕”라는 말이 나온다. 제계(鶗鴂)는 두견이라고도 하고 때까치라고도 하는데, 이 새가 춘분에 앞서 미리 울면 초목이 시든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충직한 인사를 모함하는 보통 참인(讒人)의 대명사로 쓰이곤 한다.
[주D-039]창호(窓戶)에……상관없다네 : 길고(桔橰)는 두레박틀이다. 길고를 이용하면 쉬운 줄을 알면서도 굳이 우물 속으로 들어가 어렵게 항아리에 물을 퍼 담아 밭에 물을 주면서 “기계가 있으면 기교를 부리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일이 있으면 기교 부리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하고, 자공(子貢)의 권유를 뿌리친, 이른바 한음 장인(漢陰丈人)의 이야기가 《장자》〈천지(天地)〉에 나온다.
[주D-040]아손(兒孫)은……달가워하고 : 겨울철 농한기에 학문에 매진하는 것을 말한다. 동방삭(東方朔)이 한 무제에게 올린 글에 “나이 13세에 글을 배워 겨울 석 달간 익힌 문사의 지식이 응용하기에 충분하다.〔年十三學書 三冬文史足用〕”고 하였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주D-041]칠월(七月) :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으로, 농민의 생활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국풍(國風) 중 가장 긴 시편이다.
[주D-042]상원(上苑) : 상림원(上林苑) 즉 궁중의 비원(秘苑)이다.
[주D-043]두 마지기의……소진(蘇秦)을 : 전국 시대 낙양인(洛陽人) 소진(蘇秦)이 합종책(合縱策)을 주장하면서 제후를 설득하러 돌아다닐 적에, 조나라의 대신 이태(李兌)로부터 ‘검은 담비 가죽옷〔黑貂之裘〕’과 황금 100일(鎰)을 받고서 진(秦)나라에 들어갔는데, 오래도록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가죽옷도 모두 해지고 황금도 다 떨어져서 꾀죄죄한 몰골로 초라하게 돌아온 ‘구폐금진(裘敝金盡)’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趙策1, 秦策1》 또 소진이 산동 6국의 종약장(縱約長)이 된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 “가령 내가 낙양성 교외에 좋은 땅 두 마지기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여섯 나라 정승의 인을 꿰찰 수 있었겠는가.〔且使我有洛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라고 말했던 고사도 전한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주D-044]서금과(瑞錦窠) : 당나라 때에 성중(省中)의 문한을 맡는다고 해서 예부의 원외랑이나 낭중을 부르던 호칭이다. 남궁 사인(南宮舍人)이라고도 하였다.
[주D-045]현량방정(賢良方正)의 대책문(對策文) : 가정이 정시(廷試)의 책문에 응한 답안지를 말한다. 현량방정은 한 문제 때부터 시작된 과거 제도로, 책문을 통해 직언과 극간(極諫)을 잘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현량문학(賢良文學)이라고도 한다.
[주D-046]역전과(力田科) :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경작에 힘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관리를 선발하던 과거 고시 과목의 하나이다. 참고로 당나라 때에는 무재이행(茂才異行), 안빈낙도(安貧樂道), 효제역전(孝悌力田), 고도불사(高蹈不仕) 등의 사과(四科)로 관원을 뽑기도 하였다. 《舊唐書 卷11 代宗本紀》
[주D-047]행와(行窩) : 소옹(邵雍)이 처음 낙양에 와서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정도의 누옥(陋屋)에 살면서도 그곳을 안락와(安樂窩)라고 이름 짓고는, 가끔씩 자그마한 수레를 타고 외출하여 즐기곤 하였는데, 사람들이 서로 접대하려고 안락와와 비슷한 집을 지어 놓고는 행와(行窩)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史 卷427 邵雍列傳》
[주D-048]당년에……많겠지만 : 가정이 현재 고려에서 중하게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골(蘇骨)은 옛날 우리나라에서 귀인이 쓰던 모자의 이름이다. 《북사(北史)》 권94 〈고려열전(高麗列傳)〉에 “사람들 모두 머리에 절풍을 착용하는데, 모양은 변과 같으며, 사인은 새의 깃털 두 개를 더 꼽는다. 귀한 자들의 경우는 그 관을 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보라색 비단으로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다.〔人皆頭著折風 形如弁 士人加揷二鳥羽 貴者 其冠曰蘇骨 多用紫羅爲之 飾以金銀〕”라는 말이 나온다. 중대(重戴)는 절상건(折上巾) 위에 다시 관을 쓰는 식으로 머리에 이중으로 모자를 착용한다는 말인데, 송나라 때에 어사대(御史臺)의 관원은 모두 이런 식으로 모자를 썼다고 한다. 《宋史 卷153 輿服志5》
[주D-049]한아(韓娥) : 고대 한국(韓國)의 가곡을 잘하는 명인으로, 한번 노래를 부르면 그녀가 떠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여음(餘音)이 건물 안에 감돌았다고 한다. 보통 가기(歌妓)의 뜻으로 쓰인다.
[주D-050]천산곡(天山曲) : 당나라 설인귀(薛仁貴)가 천산(天山)의 돌궐(突厥)을 공격할 적에 화살 세 발을 발사하여 세 명을 잇달아 사살하자 10여 만이나 되는 돌궐의 군사들이 사기가 꺾여 모두 항복하였는데, 이에 군중(軍中)이 “장군이 화살 셋으로 천산을 평정하니, 장사들이 길이 노래하며 한관에 들어가네.〔將軍三箭定天山 壯士長歌入漢關〕”라고 노래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11 薛仁貴列傳》 이 노래로 가정이 과거 고시의 삼장을 통과하여 제과에 급제하였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51]답답가(踏踏歌) : 전설상의 팔선(八仙)의 하나인 당인(唐人) 남채화(藍采和)가 항상 취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할 때마다 불렀다는 노래 이름이다. 《續神仙傳 踏踏歌》
[주D-052]큰……비비대고 : 공사태(貢師泰)의 문집인 《완재집(玩齋集)》 권2〈제고려이중보원외가(題高麗李衆甫員外稼)〉에는 ‘여(礪)’가 ‘즙(濈)’으로 되어 있다. ‘즙’으로 고쳐서 번역하면 두 뿔이 온순하다고 해야 할 텐데, 이 뜻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시경》〈소아 무양(無羊)〉에 “너의 양이 오니, 그 뿔이 온순하고, 너의 소가 오니, 그 귀가 촉촉하도다.〔爾羊來思 其角濈濈 爾牛來思 其耳濕濕〕”라는 말이 나오는데, “양은 잘 떠받는 것이 걱정이다. 그래서 온순하다고 말한 것이다.〔羊以善觸爲患 故言其和〕”라는 해설이 나와 있다.
[주D-053]구호(九扈)는……재촉하네 : 구호는 사람들에게 농사철을 알려 준다는 새 이름인데, 농관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포곡(布穀)은 뻐꾸기의 별칭으로, 봄철에 우는 소리가 ‘씨앗을 뿌려라〔布穀〕’라고 재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D-054]고급……낭관(郎官) : 가정이 정동행성의 원외랑으로 고려에 온 것을 말한다. 원래 《가정집》에는 이 구절이 없고 《완재집》에 들어 있는데, 포함해서 번역하는 것이 더 좋겠기에 삽입하였다.
[주D-055]어찌……뿐이리오 : 《완재집》에는 ‘성(成)’이 ‘수(殊)’로 되어 있다.
[주D-056]피리……연주하네 : 《완재집》에는 ‘우(竽)’가 ‘쟁(箏)’으로 되어 있다. 빈시(豳詩)는 농민의 생활을 읊은 《시경》〈빈풍(豳風) 칠월(七月)〉의 시를 가리키는데, 《주례》〈춘관(春官) 종백(宗伯)〉에 “중춘이 되면 낮에 토고를 치고 피리로 빈시를 연주하여 더위를 맞는다.〔中春晝擊土鼓 吹豳詩以逆暑〕”라는 말이 나온다.
[주D-057]고지대……가득 : 대풍(大豊)이 든 것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 권126〈골계열전(滑稽列傳)〉에 “고지대 밭의 수확도 그릇에 가득, 저지대 밭의 수확도 수레에 가득, 오곡이 모두 잘 여물어서, 집 안에 가득 차게 해 주시기를.〔甌寠滿篝 汙邪滿車 五穀蕃熟 穰穰滿家〕”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D-058]전준(田畯) 귀신 : 《주례》〈춘관 종백〉에 “나라에서 전조에게 풍년을 기원할 때에는 빈아를 피리로 연주하고 토고를 쳐서 전준을 기쁘게 한다.〔凡國祈年于田祖 則吹豳雅 擊土鼓 以樂田畯〕”라고 하였는데, 이 전준은 바로 농신(農神)을 말한다. 참고로 《주례》에 나오는 전준은 귀신 즉 후직(后稷)을 가리키고, 《시경》에 나오는 전준은 관원을 가리킨다.
[주D-059]한아(韓娥) : 고대 한국(韓國)의 가곡을 잘하는 명인으로, 한번 노래를 부르면 그녀가 떠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여음(餘音)이 건물 안에 감돌았다고 한다. 보통 가기(歌妓)의 뜻으로 쓰인다.
[주D-060]향청(香淸) : 보통 난초와 같은 꽃이나 청주와 같은 술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꽃을 비유한 말이 아닐까 한다.
[주D-061]창정(蒼精) : 창정지제(蒼精之帝)의 준말로, 봄을 맡은 신을 가리킨다. 참고로 여름을 맡은 신은 적정(赤精), 가을은 백정(白精), 겨울은 흑정(黑精)이다.
[주D-062]나의……벼슬하다가 : 이 시는 작자가 가정의 입장에서 술회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양광도(楊廣道)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 지역과 충청도 대부분을 차지한 고려의 행정 구역이다. 왕경(王京)은 개경을 가리킨다.
[주D-063]경전착정(耕田鑿井)이……생각하고서 : 오늘날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된 것은 모두 황제의 덕분이라는 말이다.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샘을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을
가정집 제15권
율시(律詩)
완산(完山)의 최 장원(崔壯元)에게 부치다

시골집에 누운들 대단할 게 뭐 있겠소 / 退臥田廬未足多
산천을 경계로 모두가 호가의 땅인걸 / 山川爲界入豪家
그래도 낫지 않겠소 이름이나 치달리며 / 算來猶勝馳名客
만길 누런 먼지 속에 백발이 되려는 객보다는 / 萬丈黃埃鬢欲華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