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 분의 문집/용재 이행

가을 회포 3수(三首) 용재 이행 선생

아베베1 2012. 9. 14. 16:00

 

 

 

 

 

 

 

용재집 제2권
 오언율(五言律)
가을 회포 3수(三首)


맑은 가을에 한줄기 비 내리니 / 高秋還一雨
뜰에 갑자기 서늘한 기운 일도다 / 庭戶斗生涼
겹옷을 입으니 몸 비로소 안온하고 / 御裌身方穩
새 음식 맛보매 수저 홀연 향긋해라 / 嘗新匙忽香
동산의 숲에는 장차 잎이 질 터이고 / 園林將隕蘀
머리털 수염은 하마 하얗게 세었구나 / 鬚髮已蒼浪
하늘은 공평하게 사철을 배분하건만 / 天道平分爾
사람들 부질없이 스스로 상심하는구나 / 人情謾自傷

 

 


무단히 비가 내리는 깊은 밤 / 無端殘夜雨
짧은 걸이 등잔이 반쯤 어둑해라 / 半翳短檠燈
쓸쓸한 빗소리는 바람 소리 보태고 / 淅瀝添虛籟
푸른 반딧불은 팔베개를 비추누나 / 靑熒照曲肱
나이는 어느덧 불혹에 가까운데 / 齒齡垂不惑
근력은 줄어 이제 일이 두려워라 / 筋力謝多能
몸을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데 / 輾轉眠難定
닭들은 일찍 일어나라 울어 대누나 / 群鷄報夙興

 

 


늙어 가매 그윽한 아취 알지만 / 漸老知幽趣
쓸쓸한 우리 집 거리 텅 비었어라 / 蕭條門巷空
높은 바람에 잎새는 떨어질 듯 / 風高將落木
먼 하늘에 기러기는 오지 않구나 / 天遠未賓鴻
앉아서 그저 광음만 보내나니 / 坐使光陰晩
나와 회포 같이 나눌 이 누구런고 / 憑誰懷抱同어쩌다 좋은 시구를 지을 때면 / 時能有佳句
거문고에 기대어 낭랑히 읊조린다 / 朗詠倚梧桐


 

 

용재집 제6권
 해도록(海島錄) 정덕(正德) 병인년 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
시냇가에서 연구(聯句)하다.


천석은 삼생에 걸친 꿈이요 / 泉石三生夢
조롱에 갇힌 만리 밖 몸이로세 / 樊籠萬里身
오늘 높은 흥에 이끌렸나니 -공석(公碩)- / 今朝高興引
예전부터 좋은 벗들 친하였도다 / 夙昔勝流親
죽장으로 푸른 벼랑 두드리고 -군미(君美)- / 竹杖敲蒼壁
짚신으로 고운 풀을 밟고 가노라 / 芒鞋踏細辛
층층인 그늘에 삼복더위가 없고 -택지(擇之)- / 曾陰遺伏暑
빽빽한 나무는 노니는 사람 숨긴다 / 密樹祕遊人
다리가 떨리니 이끼 흔적 껄끄럽고 -공석- / 脚戰苔痕澁
옷이 젖으니 물 기운이 새로워라 / 衣霑水氣新
괴이한 새는 울되 보이지 않고 -군미- / 怪禽鳴不見
남은 비는 오히려 자주 뿌리누나 / 餘雨洒猶頻
험한 곳 만나 전진하기에 지쳤고 -택지- / 遇險疲前陟
근원을 찾아가매 후진을 끊었어라 / 窮源絶後塵
벼랑은 깎아지른 병풍처럼 섰고 -공석- / 列屛崖削立
폭포는 성난 우박처럼 울부짖으니 / 驟雹瀑喧嗔
가로 펼친 열 길의 비단을 보겠고 -군미- / 十丈看橫練
푸른 허공에 드리운 띠인가 놀라라 / 靑空訝拖紳
그 세찬 위세에 산 귀신이 피하고 -택지- / 威稜山鬼避
웅장한 광경에 적선이 이웃하누나 / 壯觀謫仙隣
그윽한 모임 창졸간에 어려운 법 -공석- / 幽事妨倉卒
열흘도 전에 좋은 기약을 맺어 뒀지 / 佳期待浹旬
와준은 그야말로 하늘이 준 것이요 -군미- / 窪尊天所假
균천광악을 상제가 다시금 베푸누나 / 廣樂帝還陳
무성한 초목을 먼저 베어 내야겠나니 -택지- / 翳薈須先剔
풍류가 없어진 지 오랜 것이 애석해라 / 風流惜久堙
함께 뱃놀이하여 모두 해후하는 자리 -공석- / 同舟俱邂逅
한 번 만나자는 허락 어이 주저하랴 / 一諾肯逡巡
초목에는 가을빛이 벌써 돌아왔고 -군미- / 物色回秋序
관하에는 둥근 달이 떠서 돌도다 / 關河輾月輪
다시금 몇몇 벗들과 어울려야겠고 -택지- / 更宜携數子
또한 이 좋은 날에 답해야겠구나 / 且可答良辰
적막한 신세 머리털 온통 세어도 -공석- / 寂寞頭渾白
간난 속에서 뜻은 절로 참되어라 / 艱難意自眞
시정은 질탕하게 마음껏 부리고 -군미- / 詩情從跌宕
우리의 우정은 결코 변치 않으리 / 交道未緇磷
그 옛날 오문의 저자 생각하노니 -택지- / 尙憶吳門市
끝내 북해의 물가는 아니로다 / 終非北海濱

건곤 사이 외로이 신고 겪는 몸 / 乾坤莽牢落
날 저물 때 솔과 대에 기대노라 -공석- / 日暮倚松筠
이달 4일, 공석과 군미가 시냇가로 나를 찾아와 함께 시내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가 한 절벽에 이르렀는데 폭포가 몹시 기이하고 웅장하기에 서로 감탄하며 오래도록 구경하였다. 그리고 보름날 자백(子伯), 자진(子眞), 대요(大曜), 직경(直卿), 공좌(公佐) 등 제군과 함께 구경 오기로 다시 약속하고는, 드디어 연구(聯句)를 지어 그 약속을 굳혔다.


 

 

 

 

 

 

[주D-001]근원을 …… 끊었어라 : 용재 일행이 산속 깊이 들어왔으므로, 이후 누구도 자신들이 온 곳까지 이를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주D-002]웅장한 …… 이웃하누나 : 폭포의 장관을 보러 용재 일행이 온 것을 형용한 것이다.
[주D-003]와준(窪尊) : 고인 물을 동이에 담긴 것으로 간주한 표현으로, 상고(上古) 시대의 순박한 삶을 나타낸다. 《예기》 예운(禮運)에, “웅덩이에 고인 물을 손으로 움켜서 마신다.[汚尊而抔飮]” 하였다.
[주D-004]균천광악(鈞天廣樂) : 천상의 음악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심히 즐거웠으며,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列子 周穆王 註》
[주D-005]그 옛날 …… 아니로다 : ‘오문(吳門)의 저자’는 한(漢)나라 때 고사(高士) 매복(梅福)이 문지기로 신분을 감추고 은거했던 곳이고, ‘북해의 물가’는 한나라 때 소무(蘇武)가 흉노에 억류되어 숫양을 치던 곳이다. 여기서는, ‘우리는 매복에 비길 만하지 소무와 같은 신세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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