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휘 방언/양정제공 미백 휘 방언 연구

지촌집에 기록된 양정제공 휘 방언

아베베1 2014. 1. 31. 08:34

 

 

 

芝村先生文集卷之九 원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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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君美 邦彦○辛丑 a_170_194a


自哭遂菴。卽擬奉一書於執事以相慰。緣有病故。遷就至此。恒用歉歎。乃蒙先辱書存。辭意特深。至其所以悼遂菴者。則實同此心。而至於山頹以來。惟遂菴與區區爲依云者。則雖荷見待之出尋常萬萬。而抑亦以不敢當爲惧焉。况以不得從游於太極亭下。今日戀昂尤倍爲敎。讀來益不勝感佩也。然其所謂却羨遂菴好奉先生杖屨於泉㙜者。尤使人悲愴哽咽。170_194b 殆無以爲懷也。拜書後。宜卽修敬。而適兒子因渠職事入城。適甚怱卒。未暇修候。令其先往以謁。及歸細詢動靜之狀。無異此身之親承良誨也。信後亦多日。伏惟閑養氣候增福。竊聞顔貌不衰。精力尙健。眞所謂蓍龜益神者。不知行何術。而乃能如此耶。若區區者。居常薾然昏憊。幾於委頓。一日之內。起坐時絶少。只有瞻仰羨歎而已。姑以此昂復。追當更候。不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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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書)
이여구(李汝九)에게 답함 - 갑자년(1684) 6월 1일

여러 번의 애서(哀書 상중에 보낸 편지)를 받고 삼가 상중에 그런대로 견디어 감을 알게 되어 자못 위로가 되네. 다만 병중에 인편이 없어 오랫동안 답장이 지체되어 늘 미안하던 차에 오늘 인편에 또다시 지난달 16일에 부친 편지를 받으니 말뜻이 정중하여 부끄러움이 더욱 깊었네.
윤(尹 윤증을 가리킴)의 일은 모두가 약석(藥石)이니 스스로를 깨우치는 계책으로 삼을 따름이네. 주자를 탄핵하는 소장에 더럽고 추한 것이 낭자하였음에도 주자는 오히려 하나하나 예를 들어 시인하며 옳은 말이라 하였고, 모두 그 핵심을 고증하며 거짓이라고 아니하였는데, 더구나 지금은 모두 참으로 있는 일이 아닌가.
선명(先銘)은 오랫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으나 근래에 틈을 타 초고를 완성하여 적당한 인편에 보내겠네.
정서(程書)의 분편(分編) 작업은 최우(崔友 최방언(崔邦彦)을 가리킴)가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하여 항상 마음에 잊히지 않네. 이 벗에게서도 편지가 있었으나 병으로 답장을 마련치 못하였으니 보거든 말이나 전해 주기를 바라네.
날씨가 매우 덥네. 슬픔을 절제하고 상례(喪禮)대로 따라서 멀리서 걱정하는 이 정성을 위로해 주게.

별지

별지의 내용은 잘 알았네.
대체로 경계해 주거나 규찰하여 주던 도리가 쇠한 지 오래되어 붕우(朋友)란 이름만 헛되이 남았고 허물이 있어도 그르단 말을 듣지 못하니 아름답지 못한 세태가 더욱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오늘날 상중에 있는 그대에게서 옛사람의 도리를 보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네. ‘너무 박절하게 드러내 혼연(渾然)함이 없다.’고 지적한 말은 참으로 그러함이 있네. 그러나 ‘박절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아마 말하는 바가 박절하여 쉽게 드러난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바로 ‘깊고 두텁다.’는 말과 서로 반대되는 것이네. 따라서 주자의 말씀이 생각이 나네. 대저 이번 일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네. 이제 대략 말해 보겠네.
대체로 윤휴가 주자를 공격하여 배척하여도 세상에서는 괴이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나는 내 힘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서 망녕되이 배척하였네. 저 주자의 도는 마치 중천의 해와 같으니 휴 같은 무리가 백 명 천 명인들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마는 온 세상이 풍미하여 주자보다 낫다라는 지경에 이르러선 그 해로움은 홍수나 맹수의 피해보다 심한 것이었네. 나머지 사람들은 족히 말할 것도 없고, 저 대윤(大尹 윤선거를 가리킴)은 파산(坡山 성혼(成渾)을 가리킴)의 여파요 팔송(八松 윤황(尹煌))의 어진 아들로서, 도리어 윤휴를 돌봐 주고 무리짓기에 매우 힘을 기울였네. 내가 근심과 탄식을 이기지 못하여 만나면 반드시 힘을 다하여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는 말은 다하였네.

“왕통(王通)의 학문이 여러 선비들이 따를 수 없이 훌륭하였으나 그가 《춘추》에 비겨 책을 지어 여러 나라를 포폄(褒貶)한 점에 이르러서는 주자는 제왕을 참칭하는 죄라고 배척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휴가 감히 주자의 주설(註說)을 쓸어 버리고 스스로 새로운 책을 만들어 천하를 바꾸어 보려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사문(斯文)의 난적(亂賊)이네. 《춘추》의 법에서는 모든 난적은 반드시 먼저 그와 무리지은 사람부터 다스렸으니 이제 공이 당연히 휴에 앞서 법에 복주될 것이다.”
나의 말이 아프고 간절함이 이 같았는데도, 그는 끝내 머리를 돌리지 않았고 그가 죽자 그의 아들들은 휴의 전의(奠儀 초상난 집에 보내는 돈이나 물건)를 받아들였으니, 그들이 사귄 도리가 끝까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네.
언제나 세도(世道)를 위해서 깊은 근심과 긴 탄식은 자주 말로 나타났고 그럴 때마다 반드시 격하게 입에서 튀어나와 나도 모른 사이에 너무 심한 말이 되었네. 그리하였으니 그 집안 후생들이 성을 내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네. 이제 그 집안 후생들도 나의 심술과 언행을 배척하는데 온 힘을 다 쏟고 있네.
내가 어려서부터 선생의 문하를 따라 공부하면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에 반드시 그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분별을 삼가하란 말을 귀에 익게 들었으면서도 행실에 힘쓰지 못하고 이치를 궁구하여 극기(克己)를 하지 못하였네. 이치를 궁구하지 못한 때문에 혹 인욕을 천리라고 여겼으며 극기를 하지 못한 때문에 인욕을 따라 행동한 것도 많았네. 저들이 하는 말은 참으로 내게는 정문(頂門)의 일침(一針)이니 이제 당연히 깊이 반성하여 빨리 고쳐야 할 따름이지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그의 아버지의 덕(德)을 내세워 협박하려는 꾀를 삼고자 하는 생각은 잘못이네. 그런데도 그들 무리가 팔뚝을 걷어붙이며 분분하는 데에는 더욱 가소롭기만 하네.
지금의 논자들이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편벽한 행위를 막고 음탕한 말을 내치는 것으로 자임하려 든단 말인가.’ 한다면, 내 당연히 말만 나오면 죄에 자복할 것이네. 그러나 맹자가 ‘능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자고 말하는 사람은 성인의 무리이다.’고 하였는데, 주자는 주석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지향하는 바가 옳으니 도를 모른다 하더라도 성인의 무리이다.’고 말씀하셨으니, 마구간이나 치는 천한 사람일지라도 감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자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고 한 말은 다름이 아니라, 주자가 일찍이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가 이단을 공격하지 않는 것을 ‘깊고 두터운 뜻이다.’ 하면서도 그 해가 적지 않을 것을 병통으로 여기셨네. 이제 자네가 참으로 동래(東萊)처럼 깊고 두터웁기를 나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좋은 뜻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깊고 두텁다는 것이 내 몸을 도모하기에는 편한 것이나 세도(世道)에는 편한 것이 아니네. 만일 내가 과연 몸이나 편히 하려는 꾀를 하려 하였다면 당초 휴의 주장이 나올 무렵에 당연히 흐릿한 말을 내놓아 스스로 저번의 큰 화를 모면하였을 것이네. 큰 화를 겪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뉘우칠 줄 모르니, 한번 타고난 기질은 변화할 수 없는 것이 이 같음을 알 수 있네. 이제 우러러 선철(先哲)을 생각하여 느끼는 바가 있으니 만일 주자 역량의 만에 하나라도 가졌다면 반드시 오늘 같은 시끄러움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어떤 사람은 ‘남의 자제들을 대하여 그 부형의 잘못을 의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말하나 나는 또 생각건대 주자가 동래(東萊)에게 한 편지에 여 형공(呂滎公 여희철(呂希哲)의 봉호) 가학(家學)의 잘못을 극언하면서도 혐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동래도 성내지 않았었네. 때문에 당초 이 일이 발단되면서 저들과 조용히 헤아려 보려고 공손한 말로 편지를 써 그 실마리를 열어 보려 하였으나 저들은 화를 잔뜩 내 꾸짖는 말이 더욱 더하여졌고 이내 끝없는 갈등이 빚어졌네. 이는 내가 일을 살피는 것이 분명치 못한 소치이니 후회하여도 소용없는 일이네.
이러한 여러 말은 참으로 그대의 규찰하여 주는 성심에 감동되어 감히 그 전말을 털어놓은 것이니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말게.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풍병이 들어 정신을 잃었다고 하여 또 말썽만 더 일어날 것이네. 절대 깊이 간직하게.

[주D-001]선명(先銘) : 이기홍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연거푸 잃고 연 6년 상을 입으니 이해는 할아버지 상중이었으며, 이 선명은 아버지의 묘지명을 말한 듯함.
[주D-002]박절하게 …… 없다 : 이는 이기홍이 송시열에게 보낸 편지에서 송시열이 윤증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가 ‘박절하게 드러내 혼연함이 없는 듯하다.’면서 대군자의 말하는 절도에 잘못이 아니겠느냐고 한 것을 말한다. 《直齋集 卷5》
[주D-003]동래(東萊)에게 …… 잘못 : 주자가 동래에게 “여 형공은 불로(佛老)에 젖었다”라는 말을 하였다. 여 형공은 정자(程子)의 제자이다.

 答李汝九

屢承哀書。謹悉孝履支勝。殊用慰幸。只緣病且無便。久稽謝復。尋常歉歎。今於褫中。又拜前月十六日書。辭意鄭重。愧感冞深。尹事。無非藥石。只自警策而已。朱子彈章。醜穢狼藉。而猶且一一引伏。以爲是皆考核而非誣。矧今無非實有者耶。先銘。久未奉副。近當111_204d偸隙草定。仍的便呈納也。程書分編。崔友己未卒業。常自耿耿。此友有書。而病未裁答。見時說及如何。日氣甚熱。惟冀節哀順變。以慰遠誠。

別紙
別紙謹悉。蓋久矣。箴規之道衰也。是以徒有朋友之名。而過不聞非不格。世道愈至於不可爲矣。何幸今於哀侍而得見古人之道也。迫露不渾然。誠有之矣。第所謂迫露者。豈所言迫切而淺露之意耶。然則正與所謂深厚相對矣。因記朱子之說而有感焉。大抵此事。煞有不得已者。今請略陳之。蓋自鑴也攻斥朱111_205a子。世不以爲怪。愚不自量力。妄加觝排。夫朱子之道。如日中天。雖鑴輩百千。有何所損耶。惟是擧世風靡。至以爲勝於朱子。則其爲害甚於洪水猛獸矣。餘人不足說。彼大尹。乃以坡山餘派。八松賢子。顧反黨助甚力。愚不勝憂歎。相見必極力竭論。以爲王通之學。非諸儒之所可及。而至其擬春秋作書。褒貶諸國。則朱子斥之以爲僭王之罪。況鑴乃敢掃去朱子註說。而自爲新書。思所以易天下。此實斯文之亂賊。春秋之法。凡亂賊。必先治其黨與。今公當先鑴而伏法。愚言痛切如此。而彼終不回頭。及其沒而其諸子受鑴111_205b之奠儀。則其交道之終始不渝。可知矣。尋常爲世道深憂永歎。而屢形於言。言之必衝口而出。不覺其已甚。其逢怒於其後人。無怪也。今其後人。斥我之心術言行。不遺餘力。愚也少從師門。雖熟聞心術隱微之處。必當謹其天理人欲之辨。然行之不力。不能窮理克己。理未窮。故或以人欲爲天理。己未克。故從人欲去者常多。彼之所言。實我頂門上一針。今當猛省而亟改之矣。復有何說。惟其提起其先德。以爲迫脅之計則誤矣。而其徒之攘臂紛紜。尤可笑矣。今之論者。若曰渠是何人。而敢以距詖放淫。自任云爾。則愚當111_205c言出而自服矣。然孟子以能言距楊墨爲聖徒。而朱子釋之云云。則雖廝徒之賤。未知其不敢言也。夫所謂因記朱子之說而有感者。何也。朱子嘗以東萊不攻異端爲深厚。而亦病其爲害不小。今哀侍實以深厚望我。此固善意。然竊以爲深厚之云。便於身圖。而不便於世道也。如使此漢。果爲便身之圖。則當初鑴說之行也。當爲依違之言。以自免於曩日之大禍矣。雖經大禍而猶不知悔。可知氣質一定而不可變也如是矣。此則不得不仰思先哲而有感。以爲若有朱子力量之萬一。則必無今日之紛紛矣。或以爲對人111_205d子弟。議其父兄之失。殊非道理。愚又以爲朱子與東萊書。極言滎公家學之謬。而不以爲嫌。東萊亦不以爲怒。故當初此事之發也。欲與彼從容商量。以遜辭爲書。以開其端。而彼乃盛氣如山。罵詈層加。仍生無限葛藤。此則此漢見事不明之致也。雖悔莫及。凡此所言。實感哀侍見規之誠心。敢竭其顚末。幸切勿示人也。不知者以爲病風喪心。而又益其唇舌也。千萬祕之。


子六月一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