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춘(宜春)에 우거(寓居)하면서 자범(子範)에게 주다 |
산골짝에 비 내리는 날이 많더니 / 山峽日多雨
찬 나무에 가을바람 소슬하여라 / 颯颯寒木秋
사는 곳 궁벽하고 깊은 곳이라 / 寓居適深僻
높게 솟은 봉우리들 그윽하다오 / 崒嵂亂峯幽
쑥대 가린 낮은 집에 들어앉아서 / 濕蟄掩蓬蒿
울적하게 온갖 근심 안고 사누나 / 鬱悒抱百憂
반갑게도 암행 어사 상봉했는데 / 忻逢繡衣史
지난날 한마을에 살던 사이네 / 昔日同里遊
사막 건너 외국에서 해를 넘기니 / 經年沙漠外
푸른 눈길 대할 줄 짐작했으랴 / 豈料對靑眸
마주 앉아 내 처지를 위로해 주니 / 相對慰寒飢
두 사람의 정의가 극진하여라 / 情意兩綢繆
사나운 짐승 날로 핍박하지만 / 猛獸日逼人
가련케도 어느 누가 쫓아 주리오 / 咄咄誰能驅
바다제비 하직하고 남으로 가니 / 海鷰辭天霜
한 해도 어느새 다 저물었구나 / 蒼茫歲欲遒
아서라 다시 더 말하지 말고 / 已矣勿復道
술로 애써 근심을 잊으려 하네 / 得酒强寬愁
늙은 서생 허무함을 달랠 길 없어 / 書生老嵺廓
큰 소리로 길게 노래 불러 본다오 / 大吒仍長謳
[주D-001]푸른 눈길 :
반가운 눈길을 뜻한다. 진(晉)나라 완적(阮籍)이 미운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으로 보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청안(靑眼)으로 보았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모아(毛兒)에 우거하면서 산수에 노니는 승려 신욱(信旭)을 만나 그의 시권(詩卷)에 쓰다 |
욱공이라 불리는 사굴의 늙은이는 / 闍崛老翁號旭公
초의 입고 허리에 목탁을 찬 승려이니 / 身被草衣佩木魚
명리 끊고 속세 떠나 오묘한 경지 찾고 / 逃名絶俗遊杳冥
바위 파고 산을 뚫어 혈거를 닮았네 / 刳巖鑿翠類穴居
산속 깊이 지은 집 세월이 오래되어 / 山深築室日月久
스산한 비바람이 문 안으로 들이치니 / 風雨颯颯侵戶牖
이끼 낀 돌기둥엔 산기운이 축축하고 / 石柱靑苔山氣濕
법당에는 불상이 절반가량 무너졌네 / 禪堂象敎半頹朽
장차 새로 불당을 지으려는 생각으로 / 思將營築開新構
시주를 받으려고 여염집 문 두드릴 제 / 來叩閭閻百姓家
두 손에는 단정하게 《능가경》을 들었고 / 手持楞伽貝葉經
파란 눈에 흰머리 꽃 같은 모습이네 / 靑眸白髮貌如花
사람 따라 설법하여 민속을 움직이고 / 從人說法動氓俗
쏠리듯이 귀의했던 천자들을 열거하니 / 歷數萬乘皆趨波
불법이 전래된 후 천년의 세월 동안 / 此法傳來一千年
상서를 내려 주고 요귀 물리쳤다 하네 / 生祥降瑞驅妖魔
재앙이 들지 않아 농사는 풍년이요 / 災殄不作年穀穰
사람들 수를 누려 요절하는 이 없으며 / 群生至老無殀殤
집집마다 복을 심어 집안에 경사 많고 / 家家種福多懽喜
내생에도 수와 복록 이어진다 말을 하네 / 又道來生壽福長
돈과 비단 바치는 걸 아까워하지 마오 / 堆金委帛無所惜
천만 겁이 지나도록 재앙을 겪지 않고 / 去千萬劫常無殃
주고받듯이 분명한 보답이 내려져서 / 分明施報如授受
사람마다 길창을 바랄 수 있으리라 / 人人皆可望吉昌
그 말을 하나하나 다 믿을 수 있을진댄 / 其言一一倘可信
오래 주린 나 또한 배부름을 구하리라 / 吾亦長飢求飽嬉
예로부터 곤궁하고 영달했던 사람 중에 / 請看古來窮達人
부처 섬긴 이 누구며 비웃은 이 누구런가 / 何人事佛何人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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