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퇴계 이황 유편

퇴계선생이 산거에서 사계절 각각네수를 읊다

아베베1 2014. 4. 19. 20:33

 

 

 

 
산거(山居)에서 사계절을 각각 네 수씩 읊으니, 모두 16절이다

아침


안개 걷힌 봄 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 霧捲春山錦繡明
진기한 새 화답하며 갖가지로 울어대네 / 珍禽相和百般鳴
산집에는 요즈음에 찾는 손님 없으니 / 山居近日無來客
푸른 풀이 뜰 안 가득 제멋대로 나는구나 / 碧草中庭滿意生


뜨락에는 비 갠 뒤에 고운 볕이 더딘데 / 庭宇新晴麗景遲
꽃향기는 물씬물씬 옷자락에 스미누나 / 花香拍拍襲人衣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뜻 말하는데 / 如何四子俱言志
시 읊고 돌아옴을 성인이 감탄했나
/ 聖發咨嗟獨詠歸

저녁


동자가 산을 찾아 고사리를 캐었으니 / 童子尋山採蕨薇
반찬이 넉넉하여 시장기를 푸노라 / 盤飧自足療人飢
비로소 알겠구나, 당시 전원 돌아온 객 / 始知當日歸田客
저녁 이슬 옷 적셔도 소원에 어김없음을
/ 夕露衣沾願不違


꽃빛이 저녁 맞아 달이 동에 떠오르니 / 花光迎暮月昇東
꽃과 달 맑은 밤에 의미가 끝이 없네 / 花月淸宵意不窮
다만 달이 둥글고 꽃이 지지 않으면 / 但得月圓花未謝
꽃 밑에 술잔 비울 걱정이 없어라 / 莫憂花下酒杯空

이상은 봄을 읊은 네 절이다.

아침


새벽 빈 뜰 거닐자니 대 이슬이 맑았어라 / 晨起虛庭竹露淸
헌함 열고 멀리 보니 첩첩 산들 푸르러라 / 開軒遙對衆山靑
작은 아이 으레 빨리 물을 길어 가져오니 / 小童慣捷提甁水
세수하면 탕의 반에 나날의 계명있네 / 澡頮湯盤日戒銘


고즈넉한 한낮 산당 햇빛도 밝을시고 / 晝靜山堂白日明
우거진 고운 나무 처마 끝에 둘렀구나 / 蔥瓏嘉樹遶簷楹
북창 아래 높이 누워 희황씨 이전인 듯 / 北窓高臥羲皇上
시원한 산들바람 새소리를 보내오네 / 風送微涼一鳥聲

저녁


석양의 고운 빛깔 시내와 산 움직이니 / 夕陽佳色動溪山
바람 자고 구름 한가한데 새는 절로 돌아오네 / 風定雲閒鳥自還
홀로 앉은 깊은 회포 뉘와 얘기할꼬 / 獨坐幽懷誰與語
바위 언덕 고요하고 물은 졸졸 흐르누나 / 巖阿寂寂水潺潺


텅 빈 산 고요한 집 달은 절로 밝은데 / 院靜山空月自明
이부자리 말쑥해라 꿈도 역시 맑구나 / 翛然衾席夢魂淸
깨어나 말 않으니 알괘라 무슨 일고 / 寤言弗告知何事
한밤중 학의 소리 누워서 듣노라 / 臥聽皐禽半夜聲

이상은 여름을 읊은 네 절이다.

아침


어젯밤 바람 불어 남은 더위 사라지고 / 殘暑全銷昨夜風
아침 되어 서늘함이 가슴속에 스미누나 / 嫩涼朝起灑襟胸
영균이 원래 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면 / 靈均不是能言道
어이하여 천년 뒤에 회옹이 느끼겠나 / 千載如何感晦翁


서리 내려 하늘 비고 매는 한창 호기 나고 / 霜落天空鷹隼豪
물가의 바위 끝에 서당 하나 높구나 / 水邊巖際一堂高
요즘 와서 삼경이 유난히도 쓸쓸하여 / 近來三徑殊牢落
국화를 쥐고 앉아 도연명을 생각하네 / 手把黃花坐憶陶

저녁


가을 서당 조망을 뉘와 함께 즐길꼬 / 秋堂眺望與誰娛
단풍숲에 석양 드니 그림보다 낫구나 / 夕照楓林勝畫圖
갑자기 서쪽 바람 지나가는 기러기에게 부는데 / 忽有西風吹雁過
옛 친구는 편지를 보내 올란가 안 올란가 / 故人書信寄來無


차가운 못 달 비치고 하늘은 맑은데 / 月映寒潭玉宇淸
그윽한 이 한 칸 방이 고요하고 밝구나 / 幽人一室湛虛明
그 가운데 스스로 참된 소식 있나니 / 箇中自有眞消息
선의 공도 아니요, 도가의 명도 아니네 / 不是禪空與道冥

이상은 가을을 읊은 네 절이다.

아침


우뚝 솟은 봉우리들 찬 하늘을 찌르고 / 群峯傑卓入霜空
뜰 아래의 국화는 아직 떨기 남았는데 / 庭下黃花尙倚叢
땅을 쓸고 향 사르니 다른 일 전혀 없고 / 掃地焚香無外事
종이창에 해 비치니 밝기가 마음 같네 / 紙窓銜日皦如衷


추운 철 깊숙이 들앉으니 무슨 경영 있겠는가 / 寒事幽居有底營
꽃 가꾸고 대 돌보며 여윈 몸을 조섭하네 / 藏花護竹攝羸形
찾아오는 손님을 은근히 사절하니 / 慇懃寄謝來尋客
겨울 석 달 동안에 손님 영접 끊으려네 / 欲向三冬斷送迎

저녁


나무 모두 뿌리로 돌아가고 해는 짧은데 / 萬木歸根日易西
내 낀 수풀 쓸쓸한데 새는 깊이 깃들었네 / 烟林蕭索鳥深棲
옛날부터 저녁에 두려워함 무슨 뜻일까 / 從來夕惕緣何意
은미한 곳에서 게으름과 욕심을 막음이라 / 怠欲須防隱處迷


눈 흐려져 안 보이니 등불 대기 두려워라 / 眼花尤怕近燈光
늙고 병드니 잘 알겠네 겨울밤 길고 긺을 / 老病偏知冬夜長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읽기보다 나으리니 / 不讀也應猶勝讀
서리보다 차가운 달 앉아서 보았다오 / 坐看窓月冷於霜

이상은 겨울을 읊은 네 절이다.

[주D-001]네 …… 감탄했나 : 공자가 자로(子路)ㆍ증점(曾點)ㆍ염유(冉有)ㆍ공서화(公西華)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도록 하였는데, 늦봄에 목욕하고 바람 쐬며 시를 읊고 돌아오겠다는 증점의 대답에 유독 감탄하였다. 《論語 先進》
[주D-002]당시 …… 어김없음을 : 도잠(陶潛)의 시에, “달을 띠고 호미 메고 돌아오니, 저녁 이슬이 나의 옷에 젖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다만 소원이 어김없었으면……[帶月荷鋤歸 夕露沾我衣 衣沾不足惜 但使願無違]” 하였다.
[주D-003]탕(湯)의 …… 계명 : 탕 임금이 세수하는 반(盤)의 명(銘)에,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다.” 하였다.
[주D-004]북창 …… 듯 : 도잠이 6월에 북창 아래 누워서, “희황(羲皇) 이전의 사람이다.” 하였다. 희황은 태고 시대의 임금 복희씨(伏羲氏)를 말한 것이다.
[주D-005]영균(靈均)이 …… 느끼겠나 : 영균은 굴원(屈原)의 자로, 회옹(晦翁) 즉 주희가 《초사(楚辭)》를 주석하였다.
[주D-006]삼경(三徑) : 한(漢)나라 장허(蔣詡)가 대밭 속에 숨어 살면서, 세 길[三徑]을 내어 뜻맞는 친구 양중(羊仲)ㆍ구중(裘仲)과 왕래하였다. 도잠(陶潛)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삼경은 묵었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았네.” 하였다.
[주D-007]선(禪)의 …… 아니네 : 불교에서는 공(空)을 주장하고, 도가에서는 명(冥)을 주장한다. 명은 모든 정(情)과 생각을 초월(超越)한 이상경(理想境)이다.
[주D-008]나무 …… 돌아가고 : 가을에 나무들이 모두 잎이 떨어지는 것을 뿌리로 돌아간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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