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대장 관련 자료/2015.7.7. 수락산 산행리딩 49차

2015.7.7 수락산 석천동기

아베베1 2015. 7. 8. 12:51

 

 

 

서계집 제8권 원문  원문이미지  새창띄우기
확대 원래대로 축소
 기(記) 4수(四首)
석천동기(石泉洞記)


석천동(石泉洞)은 잠수(潛叟)가 사는 곳이다. 잠수가 조정에서 시종(侍從)으로 벼슬한 지 10년이었는데, 어느 날 병으로 물러나 선부봉(仙鳧峯) 아래에 은거하고는 사는 곳의 샘물을 ‘석천(石泉)’이라 이름하고 이어 그 골짜기를 ‘석천동(石泉洞)’이라 이름하였다. 이 지역이 도성의 동쪽에 해당되기 때문에 또 그 산등성이를 ‘동강(東岡)’이라 하고, 시내를 ‘동계(東溪)’라 하였으며, 또 이곳에 잠수가 산다고 하여 그 물을 ‘잠수(潛水)’라 하고 언덕을 ‘잠구(潛丘)’라 하였다.
‘석천’이라 이름한 까닭은 산속의 뭇 샘물이 모여 이 시내가 되었고, 온 산이 모두 바위인데 시냇물이 구불구불 흘러서 바위를 따라 오르내리며 담(潭)이 되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석천’이라 이름한 것이다. 맑은 샘물이 바위 위로 흐르고 하얀 바위가 샘물에 씻겨 샘물은 바위 때문에 더욱 맑고 바위는 샘물 때문에 더욱 희니, 아름답고 즐겁도다. 잠수가 사는 곳이여. 잠수는 날마다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끌며 아침저녁으로 수석(水石) 사이를 소요(逍遙)하는데, 질병과 우환이 있지 않으면 이곳에 거닐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즐거워 늙음이 닥쳐오는 줄도 모르는 자라 하겠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8, 9보 떨어진 곳에 집이 있으니 곧 잠수가 거처하는 집이요, 집에서 동쪽으로 수백 보 떨어진 곳에 언덕이 있으니 곧 잠수의 무덤자리이다. 이 언덕을 ‘낙구(樂丘)’라 하고, 이 집을 ‘정사(精舍)’라 하였으니, 잠수가 살아서는 여기에 거처하고 죽으면 이곳에 묻힐 것이다. 비록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한 유령(劉伶)과는 다를 법하지만, 잠수의 경우 또한 자신을 위한 도모를 잘 하였다고 할 만할 것이다.
그 회일(回日)ㆍ영월(迎月)ㆍ백학(白鶴)ㆍ채운(彩雲)ㆍ선부(仙鳧) 등 봉우리들의 기이함과, 선유(仙游)ㆍ도장(道藏)ㆍ토운(吐雲)ㆍ서하(栖霞) 등 계곡들의 빼어남과, 취선대(聚仙臺)ㆍ초학대(招鶴臺)와 수옥정(漱玉亭)ㆍ난가정(爛柯亭)과, 객성기(客星磯)와 음우담(飮牛潭)과 크고 작은 폭포와 샘물의 빼어난 경치로 말하면 도성 근교에서 보기 드문 경치인데, 잠수가 골라서 이름을 붙인 곳까지 합하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선 그중에 한두 곳을 기록하여 후인(後人)들로 하여금 잠수가 이곳에서 즐거워한 바를 알게 하노라.


 

[주D-001]잠수(潛叟) : 잠수는 박세당의 호이다. 무신년(1668, 현종 9) 1월 40세에 벼슬을 버리고 양주 수락산(水落山) 석천동(石泉洞)에 은거하였다.
[주D-002]삽을 …… 유령(劉伶) : 유령은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성품이 남달리 술을 좋아하여 늘 녹거(鹿車)를 타고 술을 담은 호로병 하나를 가지고 다녔는데, 한 사람에게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하여 자기가 죽으면 그 자리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그가 지은 주덕송(酒德頌)이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에 실려 있다. 《晉書 卷49 劉伶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