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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북한산 산행 리딩 노적봉 구천폭포 2

아베베1 2015. 11. 1. 16:41

 

 

 

 

 

 

 

 

 

 

 

 

 

 

 

 

 

 

 

 

 

 

기언 별집 제15권

 

갑인기행(甲寅記行)

금상 15년(1674, 현종15) 중하(仲夏) 임진일에 도성문을 나와서 대흥사(大興寺)에서 하룻밤 묵었다. 이 절은 대궐 동북부 석록소동(石麓小洞)에 있으며, 과거에 금상의 숙부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조계동(曹溪洞) 별업(別業)이었다. 대흥사는 석계(石溪)를 굽어보고 있으며, 석계에는 계당(溪堂)이 있다. 계당 앞에는 돌을 포개어 만든 다리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높은 것을 비홍지교(飛虹之橋)라 한다. 이 홍교(虹橋)를 지나면 석정(石亭)이 나오는데, 아스라이 높이 서 있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다리 위로 폭포가 아주 멀리서 내려오는데 멀찍이서 바라보면 마치 물이 구천(九天) 위에서 떨어지는 듯이 보이므로 ‘구천은폭(九天銀瀑)’이라고 새겨 놓았다.
폭포의 곁에는 ‘송계별업(松溪別業)’이라 새겨져 있으며, 돌다리 아래위에 또 ‘창벽(蒼壁)’과 ‘한담(寒潭)’이란 두 단어를 크게 새겨 놓았다. 산 너머로 펼쳐진 너른 들과 평평한 개천을 멀리 바라보니 절경이었다.
나와 함께 온 사람이 몇 명 되는데, 완산(完山) 이운태 대래(李云泰大來), 한양(漢陽) 조감 국보(趙瑊國寶), 광릉(廣陵) 이담명 이로(李聃命耳老)이다. 또 조카 허후(許䎁)가 나를 따라왔는데, 자는 자여(子如)이다.
팔십 노인 미수 쓰다.

4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지금까지 50여 일이나 지속되어 냇물이 마르고 벼의 싹이 시들어 버렸다. 조계(曹溪)에서 나와 30리를 가면 회룡사(回龍寺)가 나온다. 전날 밤에 비로소 비가 내려 시냇가 바위 사이로 물소리가 들리고, 빗속에 산새들이 서로 재잘대었다. 시내의 폭포 아래에는 물이 맑고 바위가 깨끗하여 그 위에서 놀 만했다. 회룡사는 산수가 아름다운 절로서, 세워진 지 오래되었다. 불전(佛殿)의 정문 옆에 큰 석조(石槽)가 있는데 ‘홍치(弘治) 14년(1501, 연산군7)’이라고 새겨져 있다.
조계에서 나와 이 학록(李學錄)이 먼저 돌아가고, 조군(趙君)은 회룡사까지 전송 나와 이별을 고하였다.
갑오일에 한산(寒山)에서 묵었다. 아침에 비가 왔다. 마차산(磨嵯山) 협곡의 입구를 지나왔다. 대래(大來)가 나를 남계(楠溪)에 있는 자신의 초가집에 묵게 해 주었다. 다음 날 빗속에 집으로 돌아와 〈대장구행(大葬匶行)〉 수백 언(言)을 지었다.

[주D-001]인평대군(麟坪大君) : 1622~1658.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시서화(詩書畫)를 잘하였으며 중국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교유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노승하관도(老僧遐觀圖), 고백도(古栢圖) 등이 있으며, 저술로는 《송계집(松溪集)》, 《연행록(燕行錄)》, 《산행록(山行錄)》 등이 있다.
[주D-002]석조(石槽) : 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석기로, 큰 절에서 잔치를 하고 나서 그릇 따위를 닦을 때 사용한다.
[주D-003]이 학록(李學錄) :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을 이른다.
[주D-004]조군(趙君) : 조감(趙瑊)을 이른다.

 


15년(1674, 현종15) 중하(仲夏 음력 5월을 말함) 임진일(29일). 도성 문을 나가 은관(銀關) 동북 석록소동(石麓小洞)에 있는 대흥불우(大興佛宇)에서 묵었는데, 상의 숙부(叔父) 인평대군(獜坪大君) 조계별업(曹溪別業)이다. 대흥불우는 석계(石溪)를 굽어보고 있으며, 계당(溪堂)이 있고 당(堂) 앞에는 포개 놓은 돌다리가 있는데, 그중에 최고인 것은 비홍지교(飛虹之橋)라 한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석정(石亭)이 아득히 있어 더욱 아름답다. 다리 위에 폭포가 아주 멀리 있는데, 바라보면 물이 구천(九天)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아 ‘구천은폭(九天銀瀑)’이라고 새겼다.
폭포 옆에 송계별업(松溪別業)이라 새겨져 있고, 돌다리 아래위에 또 창벽(蒼壁), 한담(寒潭)이라고 크게 둘을 새겨 놓은 것이 있다.
산 밖을 바라보면, 넓은 들판과 질펀한 냇물이 절경(絶景)을 이룬다.
손님으로 상종하는 사람이 몇 사람인데, 완산(完山) 이운태 대래(李云泰大來), 한양(漢陽) 조함 국보(趙瑊國寶), 광릉(廣陵) 이담명 이로(李聃命耳老)였고, 또 나를 따르는 자는 조카 허고(許䎁)인데, 자(字)는 자여(子如)이다.
80세 노인 미수(眉叟)는 제(題)한다.

4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지 오늘에 이르기까지 50여 일이나 되어 냇물의 근원은 마르고, 못자리도 말랐다. 조계(曹溪)를 나와 30리를 가면 회룡사(回龍寺)인데, 지난밤에 비로소 비가 왔다. 냇가 돌 사이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빗속에서 그윽한 새는 서로 부르며, 시내 폭포 아래 물은 맑고 돌은 희어 놀 만하였다.
그 위 회룡사(回龍寺)는 산수(山水)가 아름다운 절로, 절은 오래되어 불전(佛殿) 정문 옆에 석조(石槽)가 있는데, ‘홍치(弘治) 14년(1501, 연산군7)’이라고 새겨져 있다.
조계(曹溪)를 나오니, 이 학록(李學錄 학록은 벼슬 이름으로 이담명을 말함)이 먼저 돌아가므로, 조군(趙君 조함(趙瑊)을 말함)을 회룡까지 와서 전송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6월 1일(갑오). 한산(寒山)에서 묵었는데, 아침에 비가 왔다. 마차 협구(磨嵯峽口)를 지나, 대래(大來)는 나의 남계(楠溪) 초려(草廬)에 묵고, 다음날 빗속을 뚫고 집에 돌아가 대장구행(大葬匶行) 수백 언을 지었다.

 

十五年仲夏壬辰。出都門。宿於大興佛宇。在銀闕東北石麓小洞。上叔父獜坪大君曹溪別業。大興下臨石溪。有溪堂。堂前有重石矼。其最高者曰飛虹之橋。過虹橋。有石亭。縹緲尤佳。橋上瀑布甚遠。望之若水落九天之上。刻曰九天銀瀑。瀑布傍。刻松溪別業。石矼上下。又有蒼壁寒潭二大刻。山外望曠野平川。爲絶景。客相從者數人。完山李云泰大來,漢陽趙瑊國寶,廣陵李聃命耳老。又從我者。從子䎁。字子如者也。八十老人眉叟。題。
099_133a自四月不雨旱乾。至今五十餘日。川源涸。禾苗枯。出曹溪三十里回龍寺。前宵始雨。溪石間聞水聲。雨中幽鳥相號。溪瀑下。水淸石白。可遊其上。回龍寺。山水佳寺。寺舊遠。佛殿正門傍。有石槽。刻弘治十四年。出曹溪。李學錄先返。趙君送至回龍。話別。甲午。宿寒山。朝雨。過磨嵯峽口。大來宿我於枏溪草廬。明日雨中。還至家。作大葬匶行累百言

 

 

 

 

 

一代襟懷合爽靈。擬將稧事續蘭亭。因君不取今人薄。爲我多敎去路停。今軒爲我留住者屢 久聞松筠存道力。饒看山水鍊眞形。春風挈榼前期在。楊柳東風欲放靑。
岳色河聲似効靈。愛君詩筆特亭亭。已輸好句皆先得。愈見奇思尙不停。夙好商量山水友。閒居贈答影神形。林泉長享無量福。那識紆朱與拖靑。
到處詩心境合靈。不論山榭與溪亭。尋津寶筏同拈解。轉世飈車孰敎停。花影香塵收息息。黍珠圓鏡叩形形。烏雲萬里憑新義。知否嵩陽眼拭靑。
301_170b九天銀瀑有仙靈。宜爾誅茅置小亭。過去片雲無處覓。淋漓元氣此間停。定携巖下芝三秀。已佩囊中岳五形。不遣名山容俗駕。春來芳草塞蹊靑。此詩專屬曹溪。
區區文字有精靈。舊買仙人白石亭。謂余北墅。有古白石亭舊址。 廿四泉聲心印合。王秋史一號廿四泉草堂。余又號秋史故云。 三千偈子墨輪停。搜雲覓翠俱成境。飮淥餐膏已度形。夢裏松風留息壤。蟠蛟丹篆剔苔靑。
飛斝劈箋此已遲。憶從氷齒誦君詩。至交朋友如同氣。易別心情欲自痴。水月拈來應並照。文章論定各相知。異時禪榻花風處。一屐一筇隨所之。
相逢未覺春暉遲。仍到忘言仍忘詩。輸子才慚淘礫後。愛余文似嗜痂痴。俗情黃蘗苦還苦。遐想白雲知不知。別業東西分華半。秪憐邱壑實過之。
301_170c東門芳草路遲遲。看取眉間去後詩。未勒歸雲空悵望。欲膠斜日本情痴。痕餘雪爪終難覓。趣合苔岑許共知。尊淥盈盈春似海。君今時復一中之。
林泉晩福詎云遲。且計方來幾首詩。五嶽他時終結願。時有令嗣婚說。 百花隨處未刪痴。此中不足爲人道。天下何甞出戶知。耳食紛紛竟陵體。雲山韶頀 聽之。
忽憶閒中歲月遲。千鴟酒又百篇詩。松風院落追眞逸。茆屋溪山憶大痴。今日莫商明日在。萬人獨有一人知。政憐跌宕淋漓處。韓海蘇潮上下之。

 

 

 

 

 

한 시대 품은 생각 상령에 어울리니 / 一代襟懷合爽靈
계사를 함께 가져 난정풍류 이었으면 / 擬將稧事續蘭亭
그대 보니 이젯사람 박하단 말 못 믿겠소 / 因君不取今人薄
나를 위해 여러 번 갈 길을 멈추다니 / 爲我多敎去路停
금헌이 나를 위하여 머문 것이 여러 번이었음.
오랜 세월 송균 속에 도의 힘을 간직했고 / 久聞松筠存道力
평생을 산수따라 참얼굴을 달궜구려 / 饒看山水鍊眞形
봄바람에 잔 나눠라 그날이 머잖으니 / 春風挈榼前期在
동녘 다리 능수버들 푸른 빛을 내치련다 / 楊柳東橋欲放靑

뫼 빛깔 가람소리 신령을 물려준 듯 / 岳色河聲似效靈
어쩌면 임의 시필 저렇게도 줄기찰꼬 / 愛君詩筆特亭亭
좋은 글귀 다 빼앗아 하마 먼저 불러 놓고 / 已輸好句皆先得
신기한 발상 더욱 멈출 줄 모르다니 / 愈見奇思尙不停
타고난 기호라면 산과 물 벗일진대 / 夙好商量山水友
한가한 때 주고받는 그림자ㆍ신ㆍ거풀일레 / 閒居贈答影神形
숲샘에 고이 누워 맑은 복 누리나니 / 林泉長享無量福
붉은 인끈 청창옷 귀찮다 알 게 무삼 / 那識紆朱與拖靑

어디 가도 시상은 경과 영이 어울리니 / 到處詩心境合靈
산다락 시냇 정자 굳이 따져 무엇하리 / 不論山榭與溪亭
나루 찾는 보벌염해와 한가진데 / 尋津寶筏同拈解
세상 도는 바람 수레 뉘라서 멈출 건고 / 停轉世飆車孰敎
꽃 그림자 향가루는 숨과 숨에 거둔다면 / 花影香塵收息息
좁쌀 구슬 둥근 거울 형에 형을 두드리네 / 黍珠圓鏡叩形形
만리라 오운첩(烏雲帖)에 새론 뜻을 비겨보니 / 烏雲萬里憑新義
숭양거사
푸른 눈을 아는가 모르는가 / 知否嵩陽眼拭靑

하늘에서 떨어지는 싱그러운 하얀 폭포 / 九天銀瀑有仙靈
잔디 베고 작은 정자 지었으면 좋겠구만 / 宜爾誅茅置小亭
지나간 조각 구름 찾을 곳 어디메뇨 / 過去片雲無處覓
임리한 큰 기운은 이 사이 멈췄구려 / 淋漓元氣此間停
바위 밑에 세 번 빼난 지초를 캐들 게고 / 定携巖下芝三秀
염낭 속에 오악의 그림 형을 찼으리다 / 已佩囊中岳五形
명산이라 속된 사람 받아줄 리 있으리까 / 不遣名山容俗駕
봄이 오니 고운 풀만 길을 메워 우거졌네 / 春來芳草塞蹊靑
이 시는 오로지 조계(曹溪)에 속함.
하찮은 문자에도 정령이 배었으니 / 區區文字有精靈
신선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네 / 舊買仙人白石亭
나의 북서(北墅)를 이름인데 백석정의 옛터가 있음.
입사천 샘 소리에 심인이 어울리고 / 卄四泉聲心印合
왕추사(王秋史)의 한 호는 입사천초당인데 나도 추사라 호했기 때문에 이름.
삼천이라 게자엔 묵륜이 멈추었네 / 三千偈子墨輪停
구름 뒤져 안개 찾아 모두 지경 이루었고 / 搜雲覓翠俱成境
진액 먹고 약물 마셔 하마 형을 바꾸었네 / 飮淥餐膏已度形
꿈속이라 솔바람에 안식의 곳 머무르니 / 夢裏松風留息壤
서린 교룡 붉은 전자 푸른 이끼 갉아내네 / 蟠蛟丹篆剔苔靑

잔 날리고 종이 베는 이 일 하마 늦었나니 / 飛斝劈箋此已遲
이가 슬슬 녹아라 임의 시 외었다오 / 憶從氷齒誦君詩
깊이 사귄 벗이란 동기나 마찬가지 / 至交朋友如同氣
쉽게 갈린 심정은 절로 얼이 빠지련다 / 易別心情欲自癡
물 달을 잡아 오니 응당 함께 비칠 게고 / 水月拈來應並照
문장 논평 정해지니 각기 서로 알 거로세 / 文章論定各相知
다른 날 선(禪)의 자리 꽃 바람 어디라도 / 異時禪榻花風處
나막신 지팡이는 가는 대로 따를 걸세 / 一屐一筇隨所之

만나 보니 봄날이 길다는 걸 모르겠군 / 相逢未覺春暉遲
할말도 잊었어라 시도 따라 잊었는 걸 / 仍到忘言仍忘詩
그대 재주 못 따라라 뒤진 자갈 부끄럽고 / 輸子才慙淘礫後
내 글을 사랑하니 부럼 먹는 천치로세 / 愛余文似嗜痂癡
세상맛은 누른 소태 쓰고 또 쓰다며는 / 俗情黃蘖苦還苦
먼 생각은 흰 구름을 아는가 모르는가 / 遐想白雲知不知
별업이라 동쪽 서쪽 절반을 나눴으니 / 別業東西分華半
구학보다 나은 것이 실지로 어여쁘네 / 秪憐邱壑實過之

동문이라 고운 풀 갈 길이 머나 머니 / 東門芳草路遲遲
문미(門楣) 사이 붙은 시를 떠난 뒤에 갖다 보네 / 看取楣間去後詩
가는 구름 못 멈추니 바라본들 무엇하리 / 未勒歸雲空悵望
비낀 해를 당기잔[膠] 건 이야말로 바보 생각 / 欲膠斜日本情癡
눈에 남은 발톱 자국 끝내 찾기 어려워라 / 痕餘雪爪終難覓
태잠의 같은 취미 응당 함께 알 거로세 / 趣合苔岑許共知
동잇 술 넘실넘실 바다 같은 깊은 봄에 / 尊淥盈盈春似海
그댄 지금 한번씩 취향(醉鄕)에 빠져들리 / 君今時復一中之

임천이라 만연 복을 어찌하여 늦다하리 / 林泉晩福詎云遲
장래에 몇 수 시를 지을 건가 헤아리네 / 且計方來幾首詩
오악의 다른 날에 끝내 소원 맺고 말고 / 五嶽他時終結願
이때에 아들 혼인 말이 있었음.
온갖 꽃은 곳에 따라 치정(癡情)을 못 없애네 / 百花隨處未刪癡
예야말로 남에게 말할 곳이 되지 못해 / 此中不足爲人道
천하 일은 문밖을 나가야만 안다던가 / 天下何嘗出戶知
이식배들 떠드는 경릉첼랑 그만두고 / 耳食紛紛竟陵體
운산이라 소호소리 한바탕 들어 보소 / 雲山韶頀聽之

한가이 살다 보니 세월도 더디어라 / 忽憶閒中歲月遲
천 동이 술에다 또 백 편의 시로구려 / 千鴟酒又百篇詩
뜨락이라 솔바람에 진일을 추억하고 / 松風院落追眞逸
띠집이라 제산에 대치를 기리누나 / 笷屋溪山憶大癡
오늘은 오늘이라 내일을 생각 마소 / 今日莫商明日在
만 사람에 한 사람만 알아 주면 그만이지 / 萬人獨有一人知
어여쁘다 질탕하고 임리한 이 마당에 / 政憐跌宕淋漓處
퇴지(退之) 바다 동파(東坡) 조수 오르락내리락 해 / 韓海蘇潮上下之

 

 


 

[주C-001]종경릉 : 종경릉은 명나라 경릉(竟陵) 사람 종성(鍾惺)인데 자는 백경(伯敬)임. 만력 연간에 진사(進士)로 벼슬은 복건제학(福建提學)에 이르렀으며, 그 시가 유심(幽深)하고 고초(古峭)하여 담원춘(譚元春)과 제명(齊名)하여 경릉체(竟陵體)라 불렀음.
[주D-001]상령(爽靈) : 《태미령서(太微靈書)》에 “人有三魂 一曰爽靈 二曰台光 三曰幽精”이라 하였음. 소식의 부용성시(芙蓉城詩)에 “天門夜開飛爽靈”의 구가 있음.
[주D-002]계사를 …… 난정 : 왕희지의 고사임. 왕희지 난정서(蘭亭序)에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라 하였음.
[주D-003]신령을 물려준[效靈] : 《송사(宋史) 》악지(樂志)에 “坤珍效靈”이 있음.
[주D-004]그림자ㆍ신ㆍ거풀[影神形] : 도연명 시에 형증영(形贈影)ㆍ영답형(影答形)ㆍ신석(神釋) 등의 편이 있음.
[주D-005]붉은 인끈 청창옷 : 우청타자(紆靑拖紫)와 같은 말인데 몸에 인수(印綬)를 찬 것을 이름.
[주D-006]나루 찾는 보벌[尋津寶筏] : 피안(彼岸)을 건너는 배를 말한 것인데 마음으로 통하기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고서 외래의 힘을 말미암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다 비유하여 이와 같이 말 할수 있음. 한유의 송문창사북유시(送文暢師北遊詩)에 “開張篋中寶 自可得津筏”의 구가 있음.
[주D-007]염해 : 선리(禪理)의 참오(叅悟)를 이름. 《전등록(傳燈錄)》에 “世尊在靈山會上 拈華示衆 是時 衆皆黙然 惟迦葉尊者破顔微笑”라 하였음.
[주D-008]바람 수레[飆車] : 어풍(御風)의 수레를 말함. 이백의 고풍시(古風詩)에 “羽駕滅去影 飆車絶回輪”의 글귀가 있음.
[주D-009]좁쌀 구슬 둥근 거울[黍珠圓鏡] : 서주(黍珠)는 지극히 작은 구슬을 이름인데 실상(實相)의 묘리를 비유한 것임. 원경은 대원경(大圓鏡)인데 불리사덕(佛理四德)의 하나임. 《대장법수(大藏法數)》에 “如來眞智本性淸淨 離諸塵念洞徹內外 無幽不燭 如大圓鏡洞照萬物無不明了”라 하였음.
[주D-010]만리라 …… 숭양거사 : 주 8) 참조.
[주D-011]세 번 빼난 지초[芝三秀] : 혜강(嵇康) 시에 “煌煌靈芝 一年三秀”가 있음.
[주D-012]오악의 그림 형[岳五形] : 고계(高啓)의 동정산시(洞庭山詩)에 “獨攀幽險不用扶 身佩五岳眞形圖”라 하였음.
[주D-013]조계(曹溪) : 《전등록(傳燈錄)》에 “梁天監元年有僧智藥泛舶至韶州曹溪水口 聞其香嘗其味曰 此水上流有勝地 遂開山立名寶林”이라 하였음.
[주D-014]안식의 곳[息壤] : 주 14) 참조.
[주D-015]서린 …… 전자 : 옛 비석을 말함.
[주D-016]이가 …… 녹아라[氷齒] : 소식의 시에 “毗陵高山錫無骨 陸子遺味泉氷齒”의 구가 있음.
[주D-017]뒤진 자갈 부끄럽고 : 《진서(晉書)》 손작전(孫綽傳)에 “淘之汰之 瓦礫在後”라 하였음. 정한 것은 앞서고 거친 것은 뒤에 있다는 것임.
[주D-018]부럼 먹는 천치 : 주 41) 참조.
[주D-019]오악의 …… 말고 : 후한 상자평(向子平)이 건무(建武) 중에 자녀의 혼가(婚嫁)를 끝마치고 오악(五嶽) 명산에 구경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음.《高士傳》
[주D-020]천하 …… 안다던가 : 《노자(老子)》 제 47장에 “不出戶 知天下”라 하였음.
[주D-021]이식배 : 전해 들은 것만으로 믿는 것을 말함. 《사기(史記)》 육국연포 서(六國年表序)에 “此與以耳食無異”라 하였음.
[주D-022]경릉첼랑[竟陵體] : 주 368-1) 참조.
[주D-023]운산이라 소호소리 : 운산의 풍악 소리를 말함. 소호는 고대의 악임.
[주D-024]진일 : 도홍경(陶弘景)은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릉(秣陵) 사람으로 자는 통명(通明)인데 구용현(句容縣)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하여 스스로 화양은거(華陽隱居)라 호하였다가 뒤에 화양진일이라 호하였음.
[주D-025]대치 : 황자구(黃子久)의 호인데 그림을 잘 그려 원 나라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임.
[주D-026]퇴지(退之) …… 조수 : 이기경(李耆卿)의 《문장정의(文章精義)》에 이르기를 “韓如海 柳如泉 歐如瀾 蘇如潮”라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