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호조참의공 휘 담/조선호조참의 월당공 유허비문

全州 한벽당 관련자료

아베베1 2019. 8. 16. 15:00

 全州 한벽당은 조전초기 戶曹參議를 역임하신 전주최공 문성공 4세손  

휘 담(21대할아버지께서)건축 하신 것이다 전주 8경중의 한곳으로 여러번의 

중수를 한후에 오늘날 까지 5백여년을  지켜오고 있다   

  歸鹿集卷之十八 / 記

寒碧堂重修記       

寒碧堂之名於國久矣。己酉。余以奉安使。過宿豊沛館。與李方伯匡德。乘夜肩輿以往。時初月微明。但見山色蒼然四圍。檻外溪聲。泠然滿聽也。其後七年癸丑。余又按節來。乘暇往遊之。槩有削壁臨水而止。其半腰而堂棲焉。後楹安於壁。前楹則壘高石承之。而檻出虗空。其制作之妙。殆若鬼斧成之。通判具侯聖弼。以屋老傾敗。捐俸鳩工而新之。與萬化,拱辰諸樓。一時董始。不閱月咸告訖焉。所需盖千金云。夫魯縞至薄也。弩不能穿者。力盡故也。本府近凋弊甚。侯又新莅無節蓄。以徒手活數萬飢口。斯已難矣。然侯之力則宜已盡矣。顧又穿過重革。何其能也。斯堂也無異觀。而惟其架也。故見其工。侯之斯擧也非異績。而惟堂板蕩也。故見其能。夫非韓昌黎所謂因難而見巧者耶。侯本綺紈家。而居官惡衣食。觀其操尙所存。雖山陰一錢。盖將搖手而謝之矣。然則侯之淸政。當與斯堂也爭寒而競碧。豈直因難見巧之爲。相同而已也哉

  한벽당 중수기

勉菴先生文集卷之二十 / 記

寒碧堂重修記     

             
粤若永樂景泰年間。月塘崔公諱霮。以直提學。棄官而去。已而公之子烟村先生諱德之。踵公而退。父子相爲知己。而老於江湖之上。時人服其淸節。比擬二䟽。今全州府鄕校之東。石灘之上。邃密爽塏。而堂曰寒碧者。月塘公杖屨之所也。堂西北。有參議井。井傍刻鳶飛戾天魚躍于淵八大字。公之手蹟也。十五世孫銓九。以其重修有日。不余鄙夷。來謀所以記之者。余謂先人弊廬。子孫肯構之。是職耳。不足言。園林陂澤之勝。風烟雲物之景。登斯堂者。目擊焉不待言。其以後人淺見。揣摩數百年往事而軒輊低仰。又極僭易也。惟士君子出處大義。古與今無異同。則對其賢祖之雲仍。而亦安敢默然而已乎。蓋幼而學。強而仕。老而退。禮經之明訓。恒物之大情。或者怵迫勢利。睠睠於軒冕印紱之間。而不能退。或退矣而酣豢之餘。厭苦淡泊。回顧疇昔。不能忘情。方且咨嗟戚促。自以爲不得其所。復豈知退之爲十分時義而無憾乎。故進而不辭其進者。必其有可行之道者也。退而能安其退者。必其有內守之固者也。而况我朝英顯。文明之會也。聖人在上。萬物咸覩。俊良登庸。於斯爲盛。而乃公浩然斂退。不俟終日者。其微意所在。固不可知。第其亭亭皎皎。有鳳凰翔于千仞氣象。則百世之後。猶有使人興起者。若䂓䂓焉務爲小廉曲謹。翺翔徘徊以投世俗之耳目而已。則其何能名於一時。而垂無窮如此哉。然則公之淸風高節。固非有資於斯堂。而若夫後人之興慕觀感。非斯堂無所於寓矣。重修之役。又惡可已乎。朱子詩曰。削成蒼石稜。倒影寒潭碧。堂之命名。豈或有取於斯歟。

한벽당 중수기(寒碧堂重修記)       

            
영락(永樂)ㆍ경태(景泰) 연간에 월당(月塘) 최공 담(崔公湛)이 직제학(直提學)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오니, 공의 아들 연촌 선생(烟村先生) 휘(諱) 최덕지(崔德之)도 얼마 후 공을 뒤따라 물러났다. 그리하여 부자는 서로 지기(知己)가 되어 강호에서 늙으니 당시의 사람들이 청절(淸節)에 감복하여 옛날 소광(疏廣)ㆍ소수(疏受)에 비유하였다.
지금 전주부(全州府) 향교에서 동쪽으로 가면 석탄(石灘) 가에 숲이 우거져 상쾌한 곳에 있는데, 여기에 한벽당(寒碧堂)이 있다. 이곳은 월당공(月塘公)이 평소에 거처하던 곳이다. 당의 서북쪽에 참의정(參議井)이라는 우물이 있으며 우물가에는,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 鳶飛戾天 ,물고기는 못에서 뛰노네 / 魚躍于淵
라는 8자를 크게 새겼는데, 이는 공의 필적이라 한다.
공의 15세손 최전구(崔銓九)가 한벽당을 중수한 뒤에 나를 비루하다 여기지 않고 기문 쓰는 문제를 상의해 왔다.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선조의 집이 낡으면 자손들이 보수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이니 말할 것이 못 되며,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의 아름다움이나 풍연(風烟)과 운물(雲物)의 경치에 대한 것은 이 당에 오르는 자가 직접 목격할 것이므로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후인의 천박한 식견으로 수백 년 전의 일을 놓고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참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직 사군자(士君子)가 나아가 벼슬하고 물러나 은퇴하는 대의(大義)는 예나 지금이 다름없는데, 그 현조(賢祖)의 자손을 대하고 어떻게 묵묵히 있겠는가.
대체로 어려서 공부를 하고 장년이 되어 벼슬하여 늙어서 물러나는 것은 예경(禮經)의 밝은 교훈이요 상물(常物)의 대정(大情)이다. 그런데도 혹자는 세리(勢利)에 급급하고 높은 관작에 연연하여 물러나지를 못한다. 혹 물러났다 하더라도 맛있는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던 끝이라서 담박한 음식을 싫어하고 옛날 호화롭던 것을 회고하여 잊지 못한다. 그리고 한숨 쉬며 애통하여 스스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이런 사람이 어찌 다시 물러남이 십분 시의(時義)임을 알아서 유감이 없을 것인가. 그러므로 벼슬에 나아가면서 나아감을 사양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행할 만한 도가 있는 자요, 물러나면서 물러남을 편안히 여기는 자는 반드시 견고한 내수(內守)가 있는 자이다.
아조(我朝)의 세종(世宗)ㆍ문종(文宗) 연간은 문명한 시대로 성인이 위에 있어 만물이 모두 우러러 준량(俊良)의 등용이 이때보다 성한 때가 없었는데 공이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호연히 물러난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절조가 높고도 밝아서 봉황(鳳凰)이 천길을 나는 듯한 기상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백세 후에 오히려 사람을 흥기시킬 만한 것이 있다. 만일 그가 자잘하게 작은 청렴이나 삼가는 데 힘써서 어치렁거리며 세속의 이목에 잘 보이려고 분주했을 뿐이라면 어떻게 당대에 이름이 나서 이처럼 후세까지도 무궁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본다면, 공의 청풍(淸風)과 고절(高節)이 진실로 이 당(堂)으로 해서 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후인들이 보고 느끼며 흠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이 당이 아니고는 부칠 곳이 없으니, 이 당의 중수하는 일을 어찌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 주자(朱子)의 시에, 깎아 세운 푸른 모서리 / 削成蒼石稜 ,찬 못에 비쳐 푸르도다 / 倒影寒潭碧
라는 시구가 있으니, 한벽당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혹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한다.




寒碧堂十二曲

今日不留來日至。來日又去花滿地。人生幾何非百年。寒碧堂中每日醉。一曲
全羅使道上營新。寒碧堂中別看春。借問敎坊誰第一。錦屛紅燭夜來人。二曲
全州兒女學男裝。寒碧堂中劒舞長。轉到瀏漓看不見。滿堂回首氣如霜。三曲
春城聯袂踏輕埃。寒碧堂中習樂回。齊唱完山新別曲。判官來日壽筵開。四曲
輭色紅綾時體宜。裁成裙㨾學京師。綺筵催上多羞澁。寒碧堂中對舞遲。五曲
寒碧堂中各官行。現身依例帖子呈。花押着成紅踏印。錢文叄兩作人情。六曲
寒碧堂中夜宴歸。松都估客到多時。又被案前催入直。背人燈下著羅衣。七曲
韓山白苧梨花白。削作雙針衫袖窄。寒碧堂中五月時。風多力弱不堪着。八曲
二十衙客面如玉。奪取銀釵多戱劇。寒碧堂中不肯歸。滿堂明月要人宿。九曲
中營令監夾袖綠。寒碧堂中賭雙陸。少年豪氣勝文官。拋擲粧刀百金直。十曲
寒碧堂前曲曲水。闌干臨照如花人。無端打起䲶鴦隊。賺得使君回首嗔。十一曲
寒碧堂中罷宴曲。黃花亭北春草綠。此地年年多別離。送郞迎郞日不足。十二曲

題最樂堂八景屛風圖後     

      
靑山玉液坼何年。異境怳然來眼前。一泒銀河天半落。題詩却憶李靑蓮。右朴淵
龜潭奇勝久聞名。畫裏猶堪忘世情。安得扁舟載我去。結茅靑嶂送餘生。右龜潭
甄萱城外萬川流。寒碧堂涵水面浮。白月淸風無盡處。綠窓朱戶夜如秋。寒碧堂
淸涼山色落毫端。萬壑松聲佛骨寒。淨界諸天花雨後。白雲猶鎖碧巑岏。右淸涼山
城上高樓樓下水。水搖樓影月涵波。夜來淸興知難禦。庾亮南樓較孰多。右月波樓
王孫遣畫煙霞色。憐我尋眞病未能。孤負名山身已老。案頭空對玉層層。右金剛山
樓如飛翼水如練。雪後寒山月下灘。一幅丹靑能起我。十年陳迹畫中看。右練光亭
三山鰲背杳茫中。一片飛來碧海風。天下壯觀無過此。彩雲呑吐日輪紅。右國島

 

 南高寺     

             
不意招提境。相隣節度營。積糧傳故國。散磬入春城。雲石頻扶馬。
風林近失鶯。全州高處望。氣勢更崢嶸。

其二
直對南高寺。初登寒碧堂。春城絶鷄犬。野水浴䲶鴦。玉殿典亡易。
靑山冠盖忙。書生憑落日。回首古今長。

 

石北先生文集卷之一 靈川申光洙聖淵甫著 / 詩

寒碧堂十二曲    

     
今日不留來日至。來日又去花滿地。人生幾何非百年。寒碧堂中每日醉。一曲
全羅使道上營新。寒碧堂中別看春。借問敎坊誰第一。錦屛紅燭夜來人。二曲
全州兒女學男裝。寒碧堂中劒舞長。轉到瀏漓看不見。滿堂回首氣如霜。三曲
春城聯袂踏輕埃。寒碧堂中習樂回。齊唱完山新別曲。判官來日壽筵開。四曲
輭色紅綾時體宜。裁成裙㨾學京師。綺筵催上多羞澁。寒碧堂中對舞遲。五曲
寒碧堂中各官行。現身依例帖子呈。花押着成紅踏印。錢文叄兩作人情。六曲
寒碧堂中夜宴歸。松都估客到多時。又被案前催入直。背人燈下著羅衣。七曲
韓山白苧梨花白。削作雙針衫袖窄。寒碧堂中五月時。風多力弱不堪着。八曲
二十衙客面如玉。奪取銀釵多戱劇。寒碧堂中不肯歸。滿堂明月要人宿。九曲
中營令監夾袖綠。寒碧堂中賭雙陸。少年豪氣勝文官。拋擲粧刀百金直。十曲
寒碧堂前曲曲水。闌干臨照如花人。無端打起䲶鴦隊。賺得使君回首嗔。十一曲
寒碧堂中罷宴曲。黃花亭北春草綠。此地年年多別離。送郞迎郞日不足。十二曲

 

梧墅集冊二 / 南棠錄

寒碧堂聯句     

             
城會仍樓集。辰風下客鷰。梧墅。 野瀨灌淸駛。山翠儵昏晛 雲槐。趙秉常。 時靄滁亭樽。座高山陰硯。德隱。尹公圭。 層閣到縈紆。林椒復回戀。秋山。金?憲。 離俗波堪聽。思詩月顧眄。海夫。卞持淳。 焜晃燭搖紗。丁東漏催箭。梧。 爽朗虗白生。流暎金碧眩。槐。 物態好供眼。形勝此半面。德。 淸漪漾天光。脩薄帶雲片。秋。 角聲魚龍動。村容草樹遍。海。 馬可深谷量。鶯宜崇樹囀。梧。 溪山此爲最。亭障莫或先。槐。 吹帽夕風輕。展袖紅娥倩。德。 盃到不自辭。詩成許人擅。秋。 白髮還捫釰。紅妓誰通線。海。 芝蘭席留香。糠粃句慚弁。梧。 樓閣通寒水。笙歌歸夜浣。槐。 燈光塡街纈。嵐氣入袖濺。德。 芳草望逾迷。輕寒睡難倦。秋。 吾伯攬轡夕。且開楊仁扇。海。

 



眉山先生文集卷之八 淸州韓章錫稚綏 / 記

江南幹事錄 于役志

歲甲戌殷春。國有元良之慶。設增廣試。某膺湖南左道之命。三月上旬壬子。詣闕辭陛。承別飭於啓板前。又特命入對重煕堂奉面諭。勉之以恢公。勞之以利旋。仍問程途遠近。往返遲速。辭旨懇嚴。恩眷肫摯。盖異數也。退竊自念。賤臣數十年操觚。積苦場屋。對揚一念。早已矢之心曲。況今咫尺天語。可泣豚魚。寧敢懷一毫私意。不思惕然感奮。殫竭誠力。仰副簡寄之至意乎。有詩一首以見志。拜辭二闈。渡鷺梁津傔從金煕祥,崔景淳。率隷金元吉從焉。故吏吳容默因事南下。亦偕焉。日曛歷拜文星洞先墓。宿始興縣。城主李侯根集出見。癸丑早發。省富谷諸先墓。午飯店舍。廣州厨傳也。歷拜栗田王考墓。夕次華城府。傳令所經列邑凡親知人士。勿令來見。戒閽者勿通書凾名刺。所至肅然。甲寅午次振威縣。縣令睦侯養錫出見。夕宿成歡驛。稷山厨傳也。乙卯午憩天安郡。郡守李侯敏性出見。夕宿廣亭驛。丙辰午炊錦江。夕宿魯城縣。丁巳午憩恩津縣。縣令趙侯鍾弼出見。到皇華亭。湖南初境也。營邑逢迎之儀。自此甚盛。夕次礪山府。宿近民軒。府使權侯寅秉入見叙舊。戊午關移試邑和順縣。布告多士。使各盡心精工。勿事詭遇。午次參禮驛院。夕到全州府。判官金侯啓鎭前一日來莅。傾盖罄歡。己未按使趙公性敎出見。邀入宣化堂。置酒設妓樂相待。阻雨仍留。庚申雨止。晩發。午飯鍮店。全州厨供也。山行六七里。刺舟雲巖江。峽湍悍甚。經雨益壯。舟小人多。向晩風高競渡。至日西始登岸。自此夾水度嶺。棧路偪仄。而巖棲谷庄。畦落相望。桑竹柴荊。隱約如畫。幾欲携雞犬以入。夜深到葛覃店。宿任實地也。辛酉又舟渡雲巖下流。午憩淳昌郡。郡守趙侯台永出見。携妓與樂。共登凝香閣。閣在牙門內大池上。丹楹鏡波。碧藕扇風。蔭以嘉木。對以畫舫。軒豁淸敻。萬象俱涵。稱其爲湖南名榭。而粉黛管絃之盛麗。亦甲於一省云。檀板未歇。驪駒已唱。口占一詩爲別。夜二皷抵潭陽府。府使李丈承敬出見。亦有歌鬟侑酒席。壬戌行五十里。止光州牧宿焉。未抵邑五里。大渠長林夾路左。藕花開時。不減西湖勝賞。牧使朴丈鳳夏父友也。相見歡甚。南平倅李友渭在副試官。扶安倅李友?永俱來會。千里萍合。洵可樂也。癸亥發向和順縣。雨驟作。踰板峙峻絶。疾馳十餘里而到邑。乘高轎具公服。入瑞陽館。行望闕禮。棘圍外二十五邑儒冠負笈者。夾路雨立如堵墻觀。入東廳。與副試官及參試官同福縣監李侯鶴來本縣監姜侯文永。相見如禮。號令吏士。部署旣嚴。翌日甲子大昕。諸生畢集場屋。揭題收卷。雪堆浪翻。須臾與熊耳山齊。試筆淋漓。一任朱衣。秉心如衡。注眼如鏡。天君洞徹。百邪自遁。自午達曙。考定旣畢。越翌日丙寅試終場。亦如初。丁卯坼號揭榜。戊辰修啓。己巳封發。冒雨至同福縣宿。爲觀赤壁也。庚午與知縣李靑田。共上無盡樓。樓上有外王考淵泉先生詩板。昔在純廟癸亥春。先生以京試官過此。今爲七十二年。而某又以是任適來是地。事不偶然。俯仰興感。次韻刻揭于下。與地主偕遊赤壁。踰嶺十里而遠。丹崖嶙峋。壁立爲屛。峭拔雕鏤。葱蒨被之。一道淸澗。縈帶其下。可以方舟。山紅澗碧。演涵蒙披。其頂有鶴巢臺支機石。壁下稍寬處。鐫曰降仙臺。曰赤壁洞天。苔蘚中丹字。隔水可見。北岸數株盤松。臨水如偃盖。虬蟠龍伏。不知其年。小構翼然。與壁相對。額曰望美。舊名喚仙。崇禎丁丑丁氏之儁。聞難擧義。旣而入山。考槃以終老。亭起於是時。子孫世守。屢經興廢而今一新矣。前輩題詠頗多。外王考次農巖詩亦在焉。敬步其韵。屬地主鏤板。以寄鴻爪之迹。酒未醒。復向勿染亭。遵溪環山。灣廻六七里。忽開小洞。奇峰環擁若城墉。小邱突然當中。帶以澄川。綴以蒼松。飛甍兀然其上。奧而實曠。淸而實麗。入其中者。如游壺中之九華焉。作亭者滄洲翁是也。至今爲羅氏有。有詩次澤堂。別同福倅。行三十里。到光州無等山。入山十里而抵元曉庵。山徑極險。日且曛黑。地主朴丈送厨吏歌妓。以助山行。辛未便輿探勝。山僧告曰右循山趾十許里而爲立石。數百武而爲瑞石。又五六里而登上峯。此山最高處也。又十里而降窺風穴。憩于廣石臺。觀止矣。次第登覽如僧言。立石色靑黝。四稜繩削。嶄然騈跱山脊上。高者十餘丈。圍繞若屛障。累積若笙簫堆玉柱拔金笋。令人心肺俱淸。擊皷吹笛。響不知從何來。良久乃歇。瑞石編石爲大阜。負土爲平臺數層。而自下仰視。始覺其高。上峯尤節然高大。束數萬樷湧出平地。其狀如游龍赴海。鱗鬐怒張。攢蹙槎牙。隆然爲三峰者。或稱天地人三皇峯。登其頂。石齒齒可容屐。左右無地如跨馬。俯視海上。列郡纍纍碁置。殘麓斷港。乍起乍伏。指示天際雲烟漭沆處。盖南海云。赫日炙之。倚盖行觴。酒後命歌。蒼厓欲裂。浩浩然有羾寒門拍洪崖之思。盤桓良久而去。循玆路漸下。苦竹壽藤。罥鉤衣帶。傴僂擇地而度。幾及山腰。鉅石森列。釰拔爲峰嶂。而有竅當頂。透漏天光。望之如門焉。躡雲根探月窟。幾不通人徑。鵲步猱攀。迫而察之。石大小臥起錯置。其縫之未合者。自成嵌空。而其寬縱橫數笏。俛而入。出而登其頂危甚。且無奇觀。以鄭松江杖屨所及故名焉。此所謂風穴也。其下爲廣石臺。亂石四圍立。高皆數十丈。臺據其中。可數十人坐。如金剛明鏡臺而沉邃過之。淸峭不及也。巖溜林葩。晻碧曜丹。揮觴度曲。有風潚然。如入碧落洞。凜乎不可久留也。湖南之山少奇者。惟環海諸山。頗稱瓌偉。而地愈低下。獨此山以高峻雄於南服。無等之名以此也。然無嘉樹淸泉。赫然一邱耳。而特以石窮其變。第其逞露無常。忽於餘地。彫刻太巧。離乎天眞。譬之於人。平居碌碌未有奇節。出則有驚世之行。詩云威儀棣棣。不可選也。可選者豈良士也哉。晩至證心寺宿。寺在山門。有竹林澗壑之勝。壬申曉雨朝開。過光州辭朴丈。行到東倉午飯。夕次長城府。十八年前家君所莅也。小子未曾趨陪。甞以未見奇徵士與白羊山爲大恨。徵士名正鎭。南方儒宗也。白羊亦南方名山也。此行爲償夙願也。宿濟民軒廨宇。吏卒皆欣然如舊面。聞其名。往往有昔日服事者。而今皆老矣。詢奇徵士所居。已過焉。明日癸酉。屛騶從。單騎迂路至下沙訪焉。豐幹偉貌。頎然可敬。年今七十餘。老且病。而樂易莊重。可知爲有道者。與語移時。議論醇正。城府坦然。臨別問何以敎我。曰一命之士。存心愛物。必有所濟。君旣出身事君。願努力國家事。又曰近世儒者開口便說心性理氣。矻矻一生。何補於事。當謹守程朱緖言。躬行實踐而已。至若爭長挈短。紛如聚訟。鄙人所掩耳而不欲聞也。聽其言。盖篤志守約。至老不變之士也。今世豈易得哉。還府發向白羊。李雅在國舊知也。聞居喪在家。家在官途旁。歷入吊焉。過靑巖驛。至白羊山下。路夷地僻。林木翳然。茅茨映帶。甚有幽致。兩山夾束爲洞。洞口畫棟跨澗。是名雙溪樓。老釋印正乞詩。次圃翁板上韵以贈。命肩輿穿林度溪。迤邐而上。叢翠中石峰競秀。往往呈露一半。皎然如白雲起碧空。投白蓮庵。懸厓高絶。有出塵意。欄楯外數峰儼臨如拱揖。夜半磬唄。衆山皆響。足以發人深省。甲戌訪雲門寺。一僧先之。積翠中天。人影上下。望之如白鳥往來。密林蔽景。幽泉答響。棧磴曲折。屢與勝會。雨後益蒨潤。淸駛可喜。到寺地高曠。眺望豁如也。山人號鏡潭者。聦明能通內典。頗有戒行。尋前路趨而左。石徑陡絶。捨輿而徒。陟一岡。寬平若除墠。大松挺其上。日光不到地。風至璆然有聲。降觀物外藥師二庵。至靈泉庵。皆托棲絶壁下。向所見叢翠中石峰一半也。穹然其腹。簷牙呑吐。望之如鶴巢虎穴。而靈泉窟尤奇。寬中翕外。呀然爲門。佛宇深藏。可蔽風雨。入其中沉黝悄冷。澄溜從石竇點滴。刳竹承之。味冽可品。出門而右。連峯之顚。忽歧爲橢。如門脫梁。不著一土。巉然奮出。攀梯登窺。其外卽白蓮庵一區耳。草樹峯壑。皆向所徧歷。而穴中之觀。若別界焉。還到雙溪樓。促飯出山。踰葛峴入內藏山。井邑地也。嶺路縈紆。魚貫蟻旋。纔到平地。淸泉素石。稠樹疊岡。其境甚窈。山徑屢轉。不勝開闔。而一色蒼翠。不辨遠近。伽藍五六區。今皆荒落。惟碧蓮菴可憩。是行也。觀名山者三。而瑞石峭而赭。內藏幽而俗。兼泉石林巒之勝者。當以白羊爲甲。各有一詩以記勝。乙亥午憩立碑村。夕宿潭陽府。丙子雨甚。晡時到淳昌郡止宿。趙使君選歌舞妓作樂以爲娛。丁丑尙雨。晩飯別趙使君於凝香閣。渡赤城江。江上之山。淸婉可愛。舟中題詩寄趙使君。到南原宿。館宇城池。最稱雄麗。南門外有樓高敞。前臨大池。竹嶼蓮渚虹橋丹梯。飄然有登僊之想。右望蛟龍山城。蒼翠相糾。前有大野。曠遠淸塏。此古所稱廣寒樓也。前人題板滿壁。又有邀仙館瀛洲閣三神山烏鵲橋。排列左右。皆假冒神仙之名。而閭井太狎。恐未致眞仙也。有詩次林白湖。始自和順向任實也。取直路則信宿可至。而爲試期之尙遠。迂路至此。而猶有餘日。適値府使尹友宖善在京未遇。無留連之興。恨不及早南下。縱觀松廣月出之勝也。戊寅到獒樹驛。日未午。止宿。官舍東偏小樓名得月。亦淸曠可眺。己卯行三十里到任實縣。登敎閱樓。改公服行望闕禮于雲水館。館額卽從曾祖翼貞公筆也。開坐東廳。與縣監鄭侯駿和相見。扶安倅又以副試官來。參試則獒樹丞玉景鍊也。戊寅大會儒生。試論疑初場。己卯賦表一道。庚辰試策。三場旣畢。考卷坼榜。卽辛巳平朝也。比歲以朝令每合設東堂試於觀察營。分道復舊。自今年始。壬午竣事復路。二十里而渡五黿江。一帶依峽。淸澈見底。淺則可揭。又二十里而憩萬馬關。關在兩山之阨。南路之喉。舊傳甄萱所據。故城圮毁。無以捍禦。前觀察李公鎬俊刱修置堡。令南固鎭將分月守之。樓櫓廨舍。煥然若雄府。得詩二篇。行三十里。未及全州城。兩山對起。潨流夾瀉。石磊磊激成琴筑聲。纔廻一隈。望見丹楹縹緲。隔岸飛出。僕夫告曰寒碧堂也。渡水趨焉。高枕層巒。逈挹淸瀨。斜對南固山城。埤堄隱現。幽敻平遠。可以披襟。朗吟左太冲振衣千仞岡。濯足萬里流之句。詩未圓。夕陽在山。下樓驅車入南城。通判來見于館所。近地人士亦有來者。始洞開門。相接如平日。皆言屈者無怨。嗚呼。方寸雖微。人可欺乎。自欺而求信於人則難乎哉。癸未訪觀察通判李君禹善舊交也。自京卜居于南。不見有年矣。雲水揭曉之夕。以詩爲刺。握手叙阻。爲送行追到于此。至是別去。是日大風雨徹夜。營府送歌姬。有能琴詩畫者。甲申雨不霽。主人挽余行。念止舍有定期。一違則貽列邑弊。遂啓發。過拱北樓。拱北與萬景之臺勝金之湖。皆昔日所見。故略之。舟涉大川。午炊參禮院。渠漲泥滑。餘霏未開。僕御間關。黃昏抵礪山府。乙酉快晴。到皇華亭。營陪吏隷皆辭去。是日得古詩近體各一篇。夕宿擎天驛。丙戌宿廣亭驛。丁亥過木川地。訪朴君永來于山庄。夕宿成歡驛。宗人元敎來見。問其里距大路一牛鳴。戊子過焉。夕宿五山店。己丑宿果川縣。庚寅入城。復命還家。實四月中旬也。計日四十一。周行一千九百四十七里。以爲記。

  全州道中 b086_03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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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雲垂野鳥喃喃。得雨山光欲放藍。流水浮雲二千里。春風匹馬向天南。
其二
全州四月雜花香。燈火家家似漢陽。拾翠佳人爭約伴。水頭屛帳賽龍王。州俗四月八日。設屛帳於水上。相與飮食遊嬉。以祭龍王云。
其三
寒碧堂高流水長。賞春太守綺筵張。貢花自是風流政。却恐村民穡事妨。路逢負花者甚多。以官令採納云。故末句及之。
其四
烏原驛路枕長川。渚草茸茸嶺樹圓。數戶孤村臨野靜。竹扉斜掩落花天。

 庸齋先生文集卷之一 / 詩

寒碧堂 全州 b081_029b

              
百尺畫樓蜃噓成。千甍張翼入雲靑。工開石髓山根動。影落潭心水府明。原野平分甄國壘。巖臺指點捴戎城。凮流太守閒無事。盡日笙歌戛畫欞

歸鹿集卷之二 / 詩

寒碧堂復用回字     

      
寒碧千年古。成虧閱幾回。淸流瀉峽出。危堞入雲來。禹斧巉巖斲。垂斤曲折裁。天敎留勝地。詩酒待吾開。

再疊
高亭臨水逈。細路入林回。峻級攀躋盡。危欄徙倚來。衿紳渾舊識。羅綺捴新裁。數斗榴花釀。今朝許撥開。

三疊
溪心魚隊出。簷角燕飛回。妙句賓筵得。微香妓席來。巖危從水嚙。雲弱被風裁。最愛欄邊樹。紅將百日開。

四疊
爲有溪亭約。寧敎五馬回。我方便服出。君莫禮容來。烏帽權宜脫。靑袍准備裁。平生故人酒。襟抱正堪開。

五疊
檻外游鱗躍。漁磯逐水回。諸君騎馬至。刺史打魚來。吹雪羹驚沸。如絲膾細裁。陶然成一醉。强喜病脾開。
右魚獵

六疊
出沒層潭裡。殆同陸往回。正如投杵落。應欲摘珠來。動植乾坤育。飛潛造物裁。漁僮獨底性。徒手劈波開。
右觀潛水

七疊
叔世無平路。羊膓九曲回。何如拂袖去。深悔按藩來。嚬笑皆招謗。經綸動見裁。人生須一醉。心事對樽開。

八疊
荊榛塞大道。側逕揔紆回。本欲由心得。云胡出脚來。行藏君子重。狂簡聖人裁。陶老中年退。終能任繼開。

九疊
投矢壺喉窄。分曺妓陣回。儀從涑水備。聲自竹樓來。遠近宜詳度。高低合妙裁。何由觀揖讓。須向序庠開。
右投壺

十疊
正好臨溪飮。徐當對月回。如斯三日會。無我百年來。逢便詩牋溢。歸頻尺素裁。京華那得此。要路眼難開。

十一疊
初逢李氏宅。花落小塘回。蓮榜吾同選。蟾宮子後來。蚊山慚弱擔。鷄刃有餘裁。不有萍逢會。那能笑口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