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의 의병활동/나의고향에대한글

내고향지명에 대한 설명

아베베1 2008. 12. 28. 15:18
 

수부마을

시부리

 

칠곡면 소재지인 신데이(신당)서 약 1km거리다.  제법 높은 산이 서남북을 에워싼 채 동쪽만

 

이 열린 골마을인데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고촌이다. 기록상으론 수동이라 돼있는데 속칭 시

 

부리 수부령이다. 연세 높은 어른들은 지금도 치실(칠곡의 옛말인데 칠실<일곱골>의 받침소

 

리 리을(ㄹ)이 탈락된 말)의 시부리라 부르고 있다. 농사 짓기에 알맞도록 때맞추어 오는 비

 

를 시우라는데  이 시우란 말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앞글자는 독음대로 읽고

 

뒷글자는 훈을 따라 시비라 부른것이 시비리-시부리-시부령등으로 변음된 것으로 보자는 설

 

명이다.

 

마을 앞뒤쪽에 산고개 이름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수소문 해봤지만 그럴만한 자료가 없었

 

다. 또 다른 얘기로는 원래 물이 좋은 골이라서 수도이라 했는데 풍수설 음양오행으로 보아

 

서북쪽이 막혀서 장수하는 이가 드물고 재물이 불어날 수 없는 곳이라 수(壽)로 바꾸었다고

 

하며 그런 뒤로는 살림도 늘고 수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뒤 오복 중의 버금복이

 

란 부를 덧붙여 수부동으로 했으니 소지명으로서는 다시 없는 것이라 하겠다. 마을 앞으로

 

길게 흐르는 낙산도랑은 여간 가뭄이 아니면 물길 끊어지는 일이 없다. 또 마을 서쪽 약새미

 

(약샘) 물은 사철 그대로 솟는 물이며 여름철엔 얼음물이지만 삼동에는 따신 숭냥(숭늉)처럼

 

좋은 물이란다.

 

처음 마을터는 지금 동네 위쪽 야밭골(또는 외밭골)이었다고 하며 집이 늘어나면서 낮은 지

 

대로 내려앉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 중간쯤 임좌로 야트막한 산줄기가 뻗었는데 여러대의 묘

 

소다. 그래서 맷등(묏등)이라 부르며 동네 꼬맹이들의 놀이터가 돼 있다. 동구밖에 아래 새정

 

지라는 오목한 골은 옛날 큰 정자목이 있어서 이들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그 아래 독재골은

 

독산으로 적고 있어 민둥산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건 아닌것 같다. 논밭두렁에 큼직한 바위

 

돌이 많은 걸 보면 돌자갈이 많았던 산자락이었던 같다. 마을 조금위 부치골이 있는데 한때

 

토와 토기류등이 발굴되었던 곳이라고하니 절터였거나 주거지였던 것이라 추정된다. 부처란

 

말은 보통 부치라고 발음하니  언젠가 불상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 지명이 쓰인것 같다.

 

마을 앞 높고 긴 산골짜기가 뿔땅골인데 아마 불교 번성기에 절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불당

 

이 된소리가 되어 뿔당이 된게 분명하다. 그리고 골안으로 들어가면 패랑마지골이 있다.

 

옛날 잦은 난리를 당하여 노약자와 부녀자를 숨겨 피난시켰던 피란골이란 말이 변음된 것으

 

로 보이며 지형사으로도 피난처로서 적당한 곳이다. 골안 조금더 가면 가파른 산고개가 가로

 

막는데 질티고 질티재 또는 감바구재다 진양땅 미천면으로 연결되는 옛소로로 사람들 내왕

 

이 많은 잿길이라서 길이 질로 발음되고 티는 고개(치)란 옛말이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고

 

개란 뜻이다. 마을에서 빤히 보이는 산고개가 고지미재다. 확실한 뜻을 모르는 고개이름이다

 

일설에는 그 재를 옛사람들은 짐으로 발음했던 탓에 고집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그

 

저 우스갯소리로 여길 수 밖에 없고 필자 나름의 생각으로는 옛한옥 중에 지붕 복판이 특히

 

불쑥 높아 높은 집을 고주라는데 이 재가 높고 가파른 길이라서 고줏재라 했던 것이 세월따

 

라 와음변음을 하면서 고줏재-고줌재-고주미재-고짐이재가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숯을 구웠던 곳이라 숯굴(술골)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솔밭

 

골 큰 돌감나무가 있던 골짜기라서 감남골 아주 솔직한 골이라 송골(손골) 산등대의 모양이

 

누에를 닮았다고 니비등 산이 울창했들때 여우가 자주 나타나 울던 곳은 영시바구라고 부른

 

다.

 

치실 일곱골중 역사가 오래된 동네에 속하며 서당을 겸했던 문화 류씨 재실 시우재가 있었으

 

나 근래에 와서 철거 되었다. 재실 마당에는 수백년된 모감주나무가 있었는데 그놈마저 죽고

 

말았다. 마을 주위에 회산황씨 선대묘가 많은 걸로 보아서 맨먼저 입촌한 것 같다. 도처 매일

 

반으로 이동네도 뜬사람이 많고 눌러사는 이는 적다.

 

지금은 허씨, 전씨, 김씨, 오씨, 박씨, 강씨, 최씨, 이씨, 여씨, 남씨등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