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휘 덕지 등/5세 휘 덕지 연촌공 왕조실록

연촌공 송별시 (성삼문)

아베베1 2009. 1. 8. 19:51

최 제학 덕지 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崔提學 德之 還鄕]

전원에 돌아감이 은둔의 계교 아니로세 / 歸田非隱計
나오고 드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 出處政如斯
한 나라 임금께선
소광을 생각하고 / 漢主思疏廣
당 나라 조정에선
공규를 중시했네 / 唐朝重孔戣
강산이 그를 기다리는 듯 / 江山如有待
원숭이와 새도 또한 알아주네 / 猿鳥亦相知
처음에서 끝까지 의리를 다했으니 / 終始能全義
공 같은 사람 바로 나의 스승일세 / 如公我所師

 

최덕지(崔德之)는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존양당(存養堂)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태종(太宗) 때에 급제하여 누차 고을을 맡았었는데 가는 곳마다 명성을 쌓았다. 세종(世宗) 때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으며, 시로 이름이 났다. 문종(文宗)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물러가 영암(靈巖)에서 늙으려 하니, 당시 명사들이 모두 전송하는 시를 지었다. 희현당 책에 제(題)하기를,
이윤(伊尹 탕(湯) 임금을 도와 상(商) 나라를 세운 어진 신하)의 자임하는 것과 안회(공자의 수제자)의 현명함으로 / 尹之任回也賢
혹은 즐겁게 요순의 도를 즐기고 / 或囂然而樂堯舜
혹은 길게 한숨 쉬며 높고 굳은 경지를 탄식하였다 / 或喟然而歎高堅
이 같은 행동하면 역시 이 사람이 되거늘 / 有爲亦若是
내가 어찌 홀로 그렇지 아니하리 / 余何獨不然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