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 산행 /2011.2.16 도봉산

2011.2.22. 삼각산 도선사 탐방

아베베1 2011. 2. 22. 20:01

  삼각산 도선사

  1100여년을 자랑하는 삼각산 도선사를 몇개월많에 다녀 왔다

  호국사찰인 도선사는 신라말엽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삼각산 산행시에도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

   친구와 돌아본 삼각산 도선사는 여기 저기 들려 보았다 ...    ()()()  

 

 

 

  도선사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일주문에서 친구..

 

 

 

   자비무적 방생도장

 

 

  명부전

  대웅전 의 모습

 

 

 

 

 

 

  12지상

 

 

 

 출처 : 가장행복한 공부에서 (아래) 

      도선사 호국참회원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산264번지 북한산 중턱에 위치한 삼각산 도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862년(경문왕 2) 도선(道詵)이 창건했으며 1863년(철종 14)
      김좌근(金佐根)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했다.
      1887년(고종 24) 임준(任準)이 5층석탑을 세우고
      그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1903년 혜명(慧明)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했으며,
      1904년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았다.
      (절까지 차량통행가능/삼각산은 북한산의 옛이름)



      도선사 호국참회원 전경

      도선사 가람의 기단 역할을 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건물로,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다.
      1층은 공양간, 2층은 천불전 겸 종무소, 강당으로 사용되며, 3층은 법당이다.
      이 건물은 한국불교의 중흥과 통일조국의 성취를 위하여
      참회를 통한 호국을 제창한 청담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졌으며,
      196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77년에 완공되었다.

      현재 실천불교와 생화불교운동을 전개하는 종합포교센터로,
      건물 내부에는 법당, 영상실, 도서실, 신앙상담실, 수련원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3층 법당은 대웅전 앞뜰에서 곧바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곳에 청담대종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일요선원ㆍ실달승가학원ㆍ불교어린이회
      ㆍ불교학생회ㆍ불교청년회 ㆍ신도회 등 여러 신행단체가 개설되어
      마음 수련을 쌓는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법당 내부에는 조선시대 조성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높이 67㎝, 구경 40㎝의 소형범종이 봉안되어 있다.
      2층은 현재 실달승가학원과 합창단원의 포교원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강당 내부에 근래 조성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또 호국참회원 옆에는 가람을 지탱하는 천불전이 있다.
      이곳은 도선사의 안내 및 신도 관리 등 일체의 종무행정을 처리하는 곳으로,
      건물 내부에는 천불이 봉안되어 있어
      도선사가 많은 신남신녀들의 신앙 귀의처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도선사 호국참회원 안내 표지


      도선사 호국참회원 편액



      도선사 호국참회원 주련

        탐진치 악업은 끝없어도 한 생각 돌이키면 참회
        호국참회도량 도선사, ‘108 산사순례’로 신행바람

          아석소조제악업        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        皆由無始貪嗔痴
          종신구의지소생        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        一切我今皆懺悔
          백겁적집죄              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             一念頓湯除
          여화분고초             如火焚枯草

          내가 예부터 지어온 악업은
          끝없는 탐진치에서 비롯되었다
          몸과 입과 뜻에 따라 지은 허물,
          내가 이제 속속들이 참회 하나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쌓인 죄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문득 사라지네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듯이.

    [선해(禪解)]
    지난 3년 동안 불교 포교의 최대 이슈는 바로 ‘선묵 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 가는 108 산사 순례기도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국 불교 포교의 일대 혁명이었다.
    이 순례기도회는 108산사에서 108배와 108불공을 올려 인간이 가진 108번뇌를 소멸하여
    108선행과 108공덕을 쌓아 108염주를 만들어 가는 인연공덕을 쌓아가자는 데 있다.
    사찰 하나를 찾을 때 마다 이러한 행을 실천하는 일은
    마치 보현(普賢)행을 실천하는 일과 같다.

    이러한 시발점의 모태(母胎)가 된 곳이 바로 삼각산 호국참회도량 도선사이다.
    이곳에서 처음 2006년 10월 통도사에 첫 발을 내 디딘 이래,
    2,500여명으로 시작된 순례기도회는 평균 5,000여명으로 늘어나
    벌써 37회를 넘기고 있으며 참가 인원만 해도 무려 20여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71회 하고도 7년의 긴 세월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불교 포교의 신기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비단, 순례기도회의 업적은 한국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스리랑카, 네팔에도 결연을 맺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선묵 혜자 스님이 이러한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이끈 연유는
    바로 청담 스님과의 무언(無言)의 약속 때문이다.
    청담 스님이 평소 주창하신 것은 바로 한국불교 포교였다.
    청담 스님은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최일선에 나서
    오늘의 한국불교를 있게 만든 대선사이다.
    평소 청담 스님의 유지를 받들었던 선묵 혜자 스님은 도선사 첫 소임을 맡은 후
    7관세음 33일 기도를 봉행 하던 날,
    꿈속에서 도선사의 포대 화상이 모셔진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청담 스님을 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7월 또 한 번의 7관세음 33일 기도를 봉행하던 중
    기도 회향 당일 청담 스님 석상(石像) 뒤편 하늘에 ‘일심(一心)의 형상을
    띤 무지개가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에게 있어 이 형상의 의미는 다름 아닌 청담 스님과 불보살님이
    자신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고.
    그 후부터 스님은 모든 일을 자신 있게 추진해 나갔다.
    그 가운데 시작한 것이 바로 ‘108산사 순례기도회‘의 발족이었던 것이다.

    도선사 하면 청담 스님의 공덕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스님의 생애는 한국불교 근세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한국불교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수행자였으며
    결코 산 속에서만 은거하는 소극적인 수행자가 아니었다.
    세상 속에서 불타의 정견(正見)을 펴기를 서원한 행동하는 수행자였다.
    따라서 근세의 고승들이 그들대로의 투철한 정진을 통해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면 청담 스님은 그러한 내면적 견성(見性)보다는
    중생 속에서 자기의 원력을 성취함으로써 성불에 도달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볼 때 선묵 혜자 스님을 보면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옳을 정도로
    거침이 없고 어떤 일에도 주저하는 법이 없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회향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도선사의 유래를 살펴보자.
    도선사가 있는 삼각산은 예로부터 수도로 건립된 곳이며
    조선왕조 오백년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유서 깊은 곳으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호국참회기도 도량이다.
    이 사찰을 최초로 창건한 개산조(開山祖)는 신라말엽의 도선 국사이다.
    그는 신라의 국운이 쇠퇴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
    흥덕왕 원년에 영암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에 혜철(惠哲) 대사에게 불도를 전해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어 그 후 백계산에
    옥룡사(玉龍寺)를 창건했는데 제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 때 스님의 명성을 들은 헌강왕은 스님을 대궐로 모셔 법문을 듣곤 했다.
    스님이 입적하시자 왕은 요공 국사(了空國師)의 칭호를 내렸다.
    대방중창기(大方重創記)에 따르면 불법과 천문,
    지리의 심오한 이치를 통달한 도선 국사가 명산 승지를 두루 답사 하다가
    삼각산에 이르러 산세가 절묘하고 풍경이 수려한 이곳에서 천년 후 말세 불법이
    재흥하리라 예견하고 사찰을 건립한 뒤 신통력으로 사찰 옆에
    우뚝 서있는 큰 바위를 반으로 잘라 그 한쪽 면에다 주장자로 새겼다고 한다.
    불가사의 한 것은 정으로 쪼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석불전(石佛殿)이다.

    그 후 조선조 광무(光武) 7년에 황제로부터 정식으로
    국가 기원도량으로 지정받은 후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선각자인 청담 대선사가
    불교의 역사적 사명인 민족적인 문화과업과 불교중흥
    그리고 조국통일 성취를 위하여 참회를 통한 호국을 제창하는 원력을 세웠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여러 신도들의 도움으로
    호국불교의 의지가 한데 모아져 세워진 것이 오늘날의 도선사이다.

    주련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내가 저 먼 과거로부터 지은 바 여러 가지 악업들은 모두가 다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과거로부터의 탐진치 때문이라는 뜻이다.
    참회라는 말은 원래 불교용어이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조석으로 외우는 <천수경>에는 ‘참회게’가 있다.
    여기에 ‘십악참회’가 있다.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몸과 입과 뜻에 따라 지은 허물, 내가 이제 속속들이 참회 하나이다.
    불교는 참회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즉 참회란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마(ksama)’를 음역한 참(懺)과 의역한 회(悔)로 이루어져 있다.
    의미는 포살과 자자 의식을 통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친다는 뜻이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아무리 오래 동안 쌓인 죄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문득 사라지네.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듯이. 불교의 참회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회의 내용은 <천수경>에 잘 나와 있는데
    모든 악업들은 ‘신구의’ 삼업으로 생기며 이제 이 일체를 다 참회한다는 내용이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항목이 바로 십악참회인데
    마지막으로 ‘옴 살바 못자 사다야 사바하’하고 진언을 외운다.

    한국 불교 포교에 있어 매우 현실적이며 불교운동가였던 청담 스님이 떠난 지 25년,
    오늘의 한국불교는 어떠한가. 스님의 원력은 얼마나 큰 결실을 맺고 있는가.
    청담 스님의 행동하는 위대한 수행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한국불교에 자양(滋養)이 되어 불교 중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 월서스님 주련이야기 /조계종 원로의원



      도선사 호국참회원 주련

          멸진무유여              滅盡無有餘
          죄무자성종심기        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        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        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        是則名爲眞懺悔

          남김없이 없애지이다
          죄의 자성 본래 없고 마음에서 일어나나니
          마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없어지이다
          죄가 없어지고 마음이 사라져 흔적없이 모두가 공하여야
          이것을 이름하여 참회라 하나이다




      도선사 호국참회원 주련

          약인욕요지           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           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           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           一切有心造 

          만약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진리)를 알고 싶거든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비추어 관할지니
          "일체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지어졌음"이라


      화엄경(華嚴經)의 사구게를 한 번 살펴 봅니다.
      다음은 "대방광불화엄경"의 제일사구게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를 알고 싶다면,
      다시 말해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두루 통용되는
      참된 진리, 참된 근본을 알고자 한다면 하는 말입니다.
      참된 근본이란 곧 나의 근본이기도 하고,
      온 우주 산하대지 두두만물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고,
      부처의 근본이기도 하며
      법계(法界)의 근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된 근본, 참 진리,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할 것이니
      '일체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지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법계의 성품이 바로 나의 성품이고,
      법계의 근본이 나의 근본이기 때문에...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는 말이 바로 나의 근본을 살피라는 말이며,
      나의 참성품 즉 불성(佛性)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그 근본이 '마음'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하고, 성품을 관하면...
      '일체유심조'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마음 하나 일으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만들어내고,
      마음으로 이 우주 법계 모든 세상을 만들어내며,
      마음으로 삼독심(三毒心)을 일으키고 마음으로 삼학(三學)을 닦아 나갑니다.
      마음으로 번뇌와 집착을 일으켜 육도(六道)를 윤회하게 되고,
      마음으로 집착을 끊고 해탈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음 자리 깨치면., 텅` 빈 충만이며,
      여여하고 적적한 부처요,
      깨치지 못하면., 두두만물 산하대지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중생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이든 부처든 그 근본은 마음 하나에 있는 것입니다.

      물은 인연따라 수많은 물결을 만들어내고,
      그 물결은 때론 거칠고 때론 고요하게 늘 변하지만,
      아무리 요동을 쳐도 물결은 그대로 물이고
      물이 그대로 물결이지 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물결이 중생이고 물이 부처라고 했을 때,
      그 둘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닌 한 몸입니다.
      그런데도 물결은 물이 되려고 늘 애를 씁니다.
      중생은 깨달으려고., 부처가 되려고., 애를 쓴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깨달아 보겠다고 애를 쓰고,
      마음으로 물결을 잠재워 보겠다고 그래서 물이 되겠다고 애씁니다.

      그러나 물결의 성품을 잘 관해 보면
      물결이 그대로 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본래부터 물결은 물이었고,
      물이 물결을 잠시 인연따라 만들어 냈을 뿐인데
      이 마음이란 놈이 자꾸 물이다 물결이다 분별하고 착각해서
      공연히 번뇌 망상만 키워놓았단 말입니다.

      그러니 물은 고요하다고 분별하고,
      물결은 요동친다고 분별하는 것은 우리 마음일 뿐
      근본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만 일어나지 않는다면(無心)...
      이 세상은 아무런 일어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천차만별로 세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은 그대로 고요합니다.
      마음이 있으면 중생이고, 무심(無心)이면 부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화엄경』"야마천궁보살설게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오온(五蘊, 세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마음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그려낸다.
      마음과 같이 부처 또한 그러하며, 부처 같이 중생 또한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똑같아서 차별이 없다.
      모든 것은 다 마음따라 변한다는 것을 부처는 잘 안다.
      만일 이렇게 바로 알면 그 사람은 부처를 볼 것이다.'

      마음 하나 깨치면 부처고
      마음 자리 깨치지 못하면 중생이기 때문에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한 몸인 것이란 말입니다.

      또한 징관(澄觀)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마음도 '부처 마음' 아님이 없어서
      곳곳에서 도를 이루나니, 한 티끌도 불국토 아닌 곳이 없도다.
      참과 거짓, 물건과 내가, '하나'를 들추면 '전체'가 거두어지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혼연히 일체가 되리라.

      『화엄경』의 가르침은 이처럼...
      두두물물 산하대지 온 우주 법계가 그대로 부처라고 말합니다.
      일체 모든 것은 그대로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인 것입니다.
      중생이 그대로 부처이며, 마음이 그대로 부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를 찾고자 애쓰고 멀리 찾아 나설 것이 없습니다.
      바깥으로 애써 찾아 나서려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 관한다면
      그대로 마음이 부처이며, 중생이 그대로 부처임을 깨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선사 호국참회원 주련

          일체유의법             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             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             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             應作如是觀

          모든 현상계의 법은 꿈과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라
                                            -금강경 사구게-

          천강유수천강월     千江有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     萬里無雲萬里天    

          천갈래 강마다 물이 있다면 천강마다 달이 떠 오르고
          만 리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청청 하늘은 만리에 뻗네. 
                                               -예장 종경(豫章 宗鏡)스님 -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사찰 중심으로 앞,뒤, 좌, 우 주련이 다 있습니다.
          순서대로 글순서 맞게 편집하여 올립니다.

      출처 : 글 가장행복한 공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