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 신도비 등/좌의정 청음 김상헌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의 졸기

아베베1 2011. 7. 8. 10:24

효종 3년 임진(1652,순치 9)
 6월25일 (을축)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의 졸기

대광 보국 숭록 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金尙憲)이 양주(楊州)의 석실(石室) 별장에서 죽었다. 죽음에 임해서 상소하기를,
“신은 본래 용렬한 자질로 여러 조정에서 다행히도 은혜를 입어 지위가 숭반(崇班)에 이르렀는데도 작은 공효도 이루지 못하고 한갓 죄만 쌓아 왔습니다. 병자년 정축년 난리 이후로는 벼슬에 뜻을 끊었는데 중간에 다시 화를 당하여 온갖 어려움을 갖추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도 선왕(先王)께서 초야에 있던 신을 부르시어 태사(台司)에다 두시기에, 은명에 감격하여 힘든 몸을 이끌고 한번 나아갔으나, 흔단만 쌓은 여생이 힘을 다할 희망이 없어, 조상의 묘소가 있는 고향 땅에 물러나 지내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조(聖朝)에 이르러서는 남다른 은총을 과분하게 받아 노쇠한 몸이 보답할 길이 없기에, 다만 사류(士類)를 현양하고 강유(綱維)를 진작시켜 새로운 교화의 정치에 만에 하나라도 보답코자 하였는데, 불행히도 일이 마음과 어긋나서 뜻을 조금도 펴보지 못하고 외로이 성덕을 저버린 채 낭패하여 돌아왔습니다. 질병과 근심 걱정이 점점 깊이 고질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목숨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거듭 천안(天顔)을 뵙기에는 이 인생 이제 희망이 없으니 멀리 대궐을 우러러보며 점점 죽어갈 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처음 왕위를 물려받으시던 때의 뜻을 더욱 가다듬으시고 어진이를 좋아하는 정성을 바꾸지 마시어,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 훌륭한 정치를 이루시고 실제적인 덕업을 잘 닦아 왕업을 넓히소서. 그리하여 우리 동방 억만 년 무궁한 아름다움의 기반을 크게 마련하시면 신이 비록 죽어 지하에 있더라도 거의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죽음에 임해 기운이 없어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정원에 하교하기를,
“하늘이 사람을 남겨두지 않고 내게서 원로를 앗아갔으니 매우 슬프고 슬프다. 이 유소(遺疏)를 보니 말이 간절하고 훈계가 매우 지극하다. 나라 위한 충성이 죽음에 이르러서 더욱 독실하니 매우 가상하다. 가슴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근신에게 하유한다.”
하였다.
김상헌은 자는 숙도(叔度)이고, 청음(淸陰)이 그의 호이다. 사람됨이 바르고 강직했으며 남달리 주관이 뚜렷했다. 집안에서는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였고, 안색을 바루고 조정에 선 것이 거의 오십 년이 되었는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말을 다하여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며 말이 쓰이지 않으면 번번이 사직하고 물러갔다. 악인을 보면 장차 자기 몸을 더럽힐까 여기듯이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였고 어렵게 여겼다. 김류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숙도를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등이 땀에 젖는다.” 하였다.
광해군 때에 정인홍(鄭仁弘)이 선정신(先正臣) 이황(李滉)을 무함하여 욕하자 이에 진계하여 변론하였다. 윤리와 기강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문을 닫고 세상에 나오지 않고, 《야인담록(野人談錄)》을 저술하여 뜻을 나타냈다.
인조 반정(仁祖反正)이 있자, 대사간으로서 차자를 올려 ‘여덟 조짐[八漸]’에 대하여 논한 것이 수천 마디였는데, 말이 매우 강개하고 절실하였다. 대사헌으로서, 추숭(追崇)이 예에 어긋난다고 논하여, 엄한 교지를 받고 바로 시골로 돌아갔는데, 오래지 않아 총재(冢宰)와 문형(文衡)에 제수되었다가 상의 뜻을 거슬러 또 물러나 돌아갔다.
병자년 난리에 남한산성에 호종해 들어가, 죽음으로 지켜야 된다는 계책을 힘써 진계하였는데, 여러 신료들이, 세자를 보내 청나라와 화해를 이루기를 청하니, 상헌이 통렬히 배척하였다. 출성(出城)의 의논이 결정되자, 최명길(崔鳴吉)이 항복하는 글을 지었는데, 김상헌이 울며 찢어버리고, 들어가 상을 보고 아뢰기를,
“군신(君臣)은 마땅히 맹세하고 죽음으로 성을 지켜야 합니다. 만에 하나 이루지 못하더라도 돌아가 선왕을 뵙기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는 물러나 엿새 동안 음식을 먹지 아니했다. 또 스스로 목을 매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구하여 죽지 않았다.
상이 산성을 내려간 뒤 상헌은 바로 안동(安東)의 학가산(鶴駕山) 아래로 돌아가 깊은 골짜기에 몇칸 초옥을 지어놓고 숨어 목석헌(木石軒)이라 편액을 달아놓고 지냈다. 늘 절실히 개탄스러워하는 마음으로 한밤중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풍악문답(豊岳問答)》을 지었는데, 그 글에,
“묻기를 ‘대가(大駕)가 남한산성을 나갈 때에 그대가 따르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하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대의(大義)가 있는 곳에는 털끝만큼도 구차스러워서는 안 된다. 나랏님이 사직에 죽으면, 따라 죽는 것이 신하의 의리이다. 간쟁하였는데 쓰이지 않으면 물러나 스스로 안정하는 것도 역시 신하의 의리이다. 옛 사람이 한 말에, 신하는 임금에 대해서 그 뜻을 따르지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군자(士君子)의 나가고 들어앉은 것이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 오직 의를 따를 뿐이다. 예의를 돌보지 않고 오직 명령대로만 따르는 것은 바로 부녀자나 환관들이 하는 충성이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의리가 아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적이 물러간 뒤에 끝내 문안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뜻은 무엇인가?’ 하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변란 때에 초야에 낙오되어 호종하지 못했다면 적이 물러간 뒤에는 의리로 보아 마땅히 문안을 해야 하겠거니와, 나는 성안에 함께 들어갔다가 말이 행해지지 않아 떠난 것이니,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어찌 조그마한 예절에 굳이 구애되겠는가. 자가기(子家羈)가 말하기를 「겉으로 따라나온 자는 들어가는 것이 옳고 계손씨(季孫氏)를 적으로 여겨 나온 자는 떠나는 것이 옳다.」고 했으니, 옛 사람들은 출입하는 즈음에 의로써 결단함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 또 묻기를 ‘자네가 대의는 구차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그 말은 옳으나, 대대로 봉록을 받은 집안으로서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조종조의 은택을 생각지 않는가?’ 하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내가 의리를 따르고 명령을 안 따라 이백 년의 강상(綱常)을 부지하려 하는 것은 선왕께서 가르치고 길러주신 은택을 저버리지 아니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나라가 평소 예의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하루아침에 재난을 만나 맹세코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임금에게 다투어 권하여 원수의 뜨락에 무릎을 꿇게 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천하의 사대부를 볼 것이며 또한 지하에서 어떻게 선왕을 뵙겠는가. 아, 오늘날 사람들은 또한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했다.”
하였다. 상소하여 산성(山城)의 상자(賞資)를 사양하였는데, 그 상소에,
“신은 머리를 뽑으며 죄를 청한 글에서【항복하는 글.】 마음이 떨어졌고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는 즈음에 천성을 잃었습니다. 형체는 있으나 정신은 죽어 토목과 같습니다. 바야흐로 성상께서 산성에 계실 때에 대신과 집정자들이 출성(出城)을 다투어 권했는데도 신은 감히 죽음으로 지켜야 된다고 탑전에서 망령되이 아뢰었으니 신의 죄가 하나요, 항복하는 글이 차마 볼 수 없는 것이어서 그 초고를 손으로 찢어버리고 묘당에서 통곡했으니 신의 죄가 둘이요, 양궁(兩宮)이 몸소 적의 진영으로 갈 때에 신은 말 앞에서 머리를 부딪쳐 죽지도 못하였고 병이 들어 따라가지도 못했으니 신의 죄가 셋입니다. 이 세 가지 죄를 지고도 아직 형장(刑章)을 면하고 있으니 어찌 끝까지 말고삐를 잡고 수행한 자들과 더불어 감히 은수를 균등히 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 신은 삼가 듣건대, 추위와 더위가 없어지지 않으면 가죽옷과 갈포옷을 없앨 수 없고 적국이 없어지지 않으면 전쟁과 수비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와신상담하는 뜻을 가다듬으시고 보장(保障)의 땅을 증수하시어, 국가로 하여금 다시 욕을 당하는 일을 면케 하소서.
아, 한때의 강요에 의했던 맹약을 믿지 마시고 전일의 큰 덕을 잊지 마소서. 범이나 이리같은 나라의 인자함을 지나치게 믿지 마시고 부모와 같은 나라를 가벼이 끊지 마소서. 누가 이것으로써 전하를 위해 간절히 진계하겠습니까. 대저 천리 강토로 원수의 부림을 받는 일은 고금에 부끄러운 바입니다. 매양 선왕(先王)의 주문(奏文)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이 있음을 생각하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옷깃을 적십니다.”
하였다. 그 뒤 유석(柳碩)·이도장(李道長)·이계(李烓) 등이, 임금을 버렸다는 것으로 논하여 멀리 귀양보낼 것을 청하였는데, 삭직하라고만 명하였다.
청인(淸人)이 장차 우리 군대로 서쪽 명나라를 치려 했는데, 김상헌이 글을 올려 의리로 보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극언하였다. 그 상소에,
“근래 거리에 떠도는 말을 듣건대, 조정에서 북사(北使)의 말을 따라 장차 군대 오천 명을 발동하여 심양(瀋陽)을 도와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 합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과 의혹스러움이 진정되지 않은 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저 신하가 임금에 대해서는 따를 만한 일도 있고 따라서는 안 될 일도 있습니다. 자로(子路)와 염구(冉求)가 비록 계씨(季氏)에게 신하 노릇을 하였으나,, 공자(孔子)는 오히려 그들도 따르지 않을 바가 있음을 칭찬했습니다. 당초 국가가 형세가 약하고 힘이 모자라 우선 목전의 위급한 상황을 넘길 계책을 했던 것인데, 난을 평정하고 바름으로 돌이키신 전하의 큰 뜻으로 와신상담한 것이 이제 3년이 흘러, 치욕을 풀고 원수를 갚는 일을 거의 손꼽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 갈수록 더욱 희미해져서 일마다 굽혀 따라 결국 못하는 일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예로부터 죽지 않는 사람은 없었고 또한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죽는 것과 망하는 것은 차마 할 수 있지만 반역을 따르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하께 아뢰기를 ‘원수를 도와 부모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전하께서는 필시 유사에게 명하여 다스리게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비록 말을 잘 꾸며 스스로를 해명하더라도 전하께서는 용서하지 않으시고 필시 왕법으로 처단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에 통용되는 도리입니다. 오늘날 일을 계획하는 자들은, 예의는 지킬 것이 없다고 합니다만, 신이 예의에 근거하여 변론할 겨를도 없이, 비록 이해만으로 논해 보더라도, 강한 이웃의 일시의 포악함을 두려워하고 천자(天子)의 육사(六師)의 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원대한 계책이 아닙니다. 정축년 이후로부터 중국 사람들은 하루도 우리 나라를 잊지 않고, 그 구제하지 못하고 패하여 융적(戎賊)에게 절한 것이 본심이 아니었음을 특별히 이해해 주었습니다. 관하(關下) 열둔(列屯)의 병사들과 바다 배 위의 수졸들이 비록 가죽 털옷이나 걸치고 다니는 오랑캐를 소탕하여 요동 땅을 회복하기에는 부족하나, 우리 나라가 근심거리가 되는 것을 막기에는 넉넉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 나라 사람이 호랑이 앞에서 창귀(倀鬼) 노릇을 한다는 것을 들으면 죄를 묻는 군대가 우레나 번개처럼 치고 들어와 바람을 타고 하루만에 해서(海西) 기도(圻島) 사이에 곧바로 도달할 것이니, 두려워할 만한 것이 오직 심양에만 있다고 하지 마소서.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저들의 형세가 바야흐로 강하니 어기면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다.’고 합니다만, 신은 명분 대의가 매우 중하니 범하면 또한 재앙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대의를 저버리고 끝내 위망을 면치 못할 바엔 바른 것을 지켜서 하늘에 명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명을 기다린다는 것은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이 순리를 따르면 민심이 기뻐하고 민심이 기뻐하면 근본이 단단해집니다. 이것으로 나라를 지키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태조 강헌 대왕께서 거의(擧義)하여 회군(回軍)을 하시어 이백 년 공고한 기반을 세우셨고, 선조 소경 대왕께서 지극한 정성으로 대국을 섬겨 임진년에 구해주는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만약 의리를 버리고 은혜를 잊고서 차마 이 거조를 한다면, 비록 천하 후세의 의논은 돌아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차 어떻게 지하에서 선왕을 뵐 것이며 또한 어떻게 신하들로 하여금 국가에 충성을 다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컨대 전하께서는 즉시 생각을 바꾸시고 큰 계책을 속히 정하시어 강한 이웃에게 빼앗기는 바 되지 마시고 사악한 의논을 두려워 마시어, 태조와 선조의 뜻을 이으시고 충신과 의사의 여망에 부응하소서.”
하였다.
흉인(兇人)이 유언 비어로 청인에게 모함하여, 구속되어 심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길이 서울을 지나게 되자 상이 특별히 초구(貂裘)를 내려 위로하였다. 심양에 이르러 청인이 심하게 힐문하니 상헌은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말하기를,
“내가 지키는 것은 나의 뜻이고 내가 고하는 분은 내 임금뿐이다. 물어도 소용없다.”
하니, 청인들이 서로 돌아보며 혀를 차고 말하기를,
“정말 어려운 늙은이다. 정말 어려운 늙은이다.”
하였다. 오랜 뒤 비로소 만상(灣上)으로 나왔는데, 그 뒤 신득연(申得淵)·이계(李烓)의 무함을 받아 또 심양에 잡혀가 있게 되었다. 모두 6년 동안 있으면서 끝내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청인이 의롭게 여기고 칭찬해 말하기를 ‘김상헌은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인조 말년에 좌상에 발탁되었는데, 와서 사례하고 바로 돌아갔다.
상이 즉위하여 큰 일을 해보려고 다시 불러 정승을 삼았는데, 청인이 잘못된 논의를 하는 신하를 다시 등용하였다고 책망을 하여, 상헌이 드디어 속 시원히 벼슬을 털어버리고 시골로 돌아갔다. 끝내 그 뜻을 펴보지 못했으므로 조야가 애석히 여겼다.
그의 문장은 간엄(簡嚴)하고 시는 전아(典雅)했다. 《청음집(淸陰集)》이 있어 세상에 행한다. 일찍이 광명(壙銘)을 지었는데, 그 명에,
지성은 금석에 맹서했고
대의는 일월처럼 걸렸네
천지가 굽어보고
귀신도 알고 있네
옛것에 합하기를 바라다가
오늘날 도리어 어그러졌구나

백년 뒤에
사람들 내 마음을 알 것이네
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는 여든 셋이요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사신은 논한다. 옛 사람이 “문천상(文天祥)이 송(宋)나라 삼백 년의 정기(正氣)를 거두었다.” 고 했는데, 세상의 논자들은 “문천상 뒤에 동방에 오직 김상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원전】 35 집 562 면
【분류】 *인물(人物) / *정론-정론(政論) / *출판-서책(書冊) / *역사-사학(史學) / *외교-명(明) / *외교-야(野)


[주D-001]자가기(子家羈)가 말하기를 「겉으로 따라나온 자는 들어가는 것이 옳고 계손씨(季孫氏)를 적으로 여겨 나온 자는 떠나는 것이 옳다.」고 했으니, : 노(魯)나라 소공(昭公)이 계평자(季平子)를 토벌하다가 실패하여 제나라로 망명할 때 자가기가 따라갔다. 소공이 간후(乾侯)에서 죽은 뒤, 노나라 세도가인 계손씨가 자가기를 불러들여 함께 정치를 하려 하였는데, 자가기가 이런 말을 하였다. 《좌전(左傳)》 정공(定公) 원년(元年).
[주D-002]자로(子路)와 염구(冉求)가 비록 계씨(季氏)에게 신하 노릇을 하였으나,, 공자(孔子)는 오히려 그들도 따르지 않을 바가 있음을 칭찬했습니다. : 자로와 염구는 공자의 제자로서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었다.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이들을 대신(大臣)이라고 할 만하냐고 물으니, 공자가 답하기를 “대신이라는 것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의 자로와 염구는 구신(具臣)이라고 하겠다.” 하였다. 그러자 묻기를 “그렇다면 계씨가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자들입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아비나 임금을 시해하는 일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들이 비록 대신 노릇은 제대로 못하나, 군신의 의리를 잘 알기 때문에 시역하는 일은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해동역사 제49권
 예문지(藝文志) 8
우리나라 시(詩) 3 본조(本朝) 하(下)



곽산(郭山) 운흥관(雲興館)에 있는 그림 병풍에 제(題)하다 [박문창(朴文昌)]
만경창파 푸른 바다 날 저물려 하는데 / 萬頃滄波欲暮天
다리 곁선 물고기를 술과 서로 바꾸네 / 將魚換酒柳橋邊
누가 와서 나에게 흥망의 일 묻기에 / 客來問我興亡事
갈대꽃과 달 아래 배 웃으면서 가리키네 / 笑指蘆花月一船
《명시종(明詩綜)》

벗에게 주다 [신흠(申欽)]
광릉에는 삼월이라 꽃잎 져서 날리는데 / 廣陵三月已飛花
한강에 뜬 외론 배에 석양빛 기울었네 / 漢水孤帆落日斜
골짜기 한 구석에 초가집 짓고서는 / 深結茅茨分洞府
노루 사슴 어울려서 한평생 살려 하네 / 欲隨麋鹿作生涯
들판에는 이슬비 와 밭갈기를 재촉하고 / 平波細雨催輕犢
물굽이서 노는 고기 낚싯대로 올리누나 / 曲水游魚上釣叉
온 세상 사람들 바쁘게들 살아가니 / 擧世盡從忙裏過
그대의 그 즐거움 자랑할 만도 하이 / 似君行樂獨堪誇
《상동(上仝)》

청명절(淸明節) [권필(權韠)]
봄기운은 꽃 소식 재촉을 하고 / 淑氣催花信
연노란 싹 버들가지 달라붙었네 / 輕黃着柳絲
한식 뒤라 인가에선 연기 오르고 / 人煙寒食後
저녁나절 날 맑아서 새들은 우네 / 鳥語晩晴時
늙을수록 도리어 일이 많아서 / 老去還多事
봄 왔으나 시 읊기도 귀찮아지네 / 春來嬾賦
십 년간의 서울살이 허망했던 꿈 / 京華十年夢
그 서글픔 단지 나의 맘만이 알리 / 惆悵只心知
《상동》

벗에게 주다 [김류(金瑬)]
버들꽃은 다 지고 봄풀은 무성한데 / 楊花落盡草萋萋
마음 상한 나그네 서글픈 생각드네 / 楚客傷離思轉悽
일 년 중에 좋은 시절 한식날 지났는데 / 佳節一年寒食過
천겹 만겹 겹친 산서 두견새가 우누나 / 亂山千疊子規啼
우번은 나라 뜬 뒤 몸 온통 다 늙었고 / 虞飜去國身全老
왕찬은 누각 올라 부질없이 시 읊었네 / 王粲登樓賦
천애 밖서 떠돌다가 머리 세어 돌아가면 / 想得天涯回白首
소양강 강가에는 석양빛이 깔렸으리 / 昭陽江上夕陽低
《상동 및 지북우담(池北偶談)》

견정인(牽情引) 《명시종》에는 ‘웅주인(熊州引)’으로 되어 있다. ○ 《열조시집(列朝詩集)》에 이르기를, “조선에서는 당송(唐宋)의 고사(故事)를 따라서 역정(驛亭)마다 모두 관기(官妓)를 두었는데, 허봉이 홍문관에 있다가 대간(臺諫)으로 옮겨져 각 고을을 순행하다가 만난 기생이 이와 같다.” 하였다. [허봉(許篈)]
웅주 고을 누대는 뜬구름 밖 솟아 있고 / 熊州樓觀飛雲外
서릿발 같은 백간 일산을 능질렀네 / 白簡霜威凌皀蓋
삼천 명의 조련이 수놓은 옷을 끌고 / 組練三千引繡衣
열여섯 명 미녀가 구슬 띠를 울리네 / 羅裙二八鳴珠帶
화려한 장막 안엔 향기가 서리었고 / 九華之帳香氤氳
적적한 누각에는 오야가 나뉘는데 / 寂寂瓊樓午夜分
저리의 가인은 교태로이 자리 펴고 / 苧里佳人嬌薦枕
무산의 선녀는 구름 타고 멀어지네 / 巫山仙子渺行雲
정 끌리는 꿈 깨어나 돌아온 길 쳐다보니 / 牽情夢罷看歸路
이별의 한 아득한데 연기 안개 막혀 있네 / 別恨迢迢隔煙霧
소첩 맘은 괴로워서 연뿌리 속 실 됐는데 / 妾心苦作藕中絲
낭군 뜻은 어찌하여 연잎 위의 이슬인가 / 郞意何如荷上露
금강의 양쪽에는 버들잎 새로 피어 / 錦水東西楊柳新
오가자니 수심 깊어 애간장이 끊어지네 / 往來愁殺斷腸人
이내 심사 푸른 새에 부치어 보낼 제 / 欲將心事寄靑鳥
꽃다운 풀 자라나서 봄 다시 한창이네 / 芳草年年空復春
《열조시집(列朝詩集) 및 명시종》

산을 나가면서 원 참학(元參學)과 이별하다 [허봉]
화궁과 북두성이 찬 빛 서로 비추는데 / 花宮星斗寒相映
-《사조시선(四朝詩選)》에는 ‘花’가 ‘北’으로 되어 있다.
첩첩 겹친 봄산에 경쇠 소리 들려오네 / 疊疊春山聞夜磬
초나라 객은 처음 만리의 혼 부르고 / 楚客初招萬里魂
호승은 한 해 넘게 선정(禪定) 든 몸 일으키네 / 胡僧暫起經年定
푸르른 왕손초는 점점 우거지는데 / 王孫綠草漸芳菲
솔과 달에 머문 사람 가려나 안 가려나 / 松月留人歸未歸
환희령 고개 마루 계수나무 우거졌고 / 歡喜嶺頭叢桂暗
부용봉 산 아래엔 이름 모를 새가 나네 / 芙蓉峯下怪禽飛
연잎 옷 난초 띠는 구름 감겨 축축한데 / 荷衣蕙帶宿雲濕
불전은 침침하여 귀신이 울음 우네 / 寶殿沈沈鬼神泣
내일 아침 소양강 강가를 지날 적에 / 明日朝陽江上行
그대는 시냇가에 처량히 서 있을 거네 / 知君惆悵溪頭立
《열조시집》

경낭사(鏡囊詞) [허봉]
강남 사는 어린 처녀 창가에서 베를 짜서 / 江上女兒當窓織
천길 깊은 연못처럼 검은빛 물들였네 / 染得深潭千丈黑
열 겹으로 포장해서 상방궁에 들인 것을 / 什襲珍包入尙方
오정이 싣고서 동국으로 가져왔네 / 五丁輸取歸東國
몇 년 동안 상자에 그 향기 남았는데 / 幾年箱篋有餘香
낭군 위해 거울 넣을 주머니를 만들었네 / 爲君裁作明鏡囊
주머니 속 청동 거울 밝기가 달 같아서 / 囊裏靑銅明似月
거울 속에 비친 얼굴 봄꽃처럼 빛나네 / 鏡中玉貌春花光
거울은 갈 수 있고 돌은 굴릴 수 있지만 / 靑鏡可磨石可轉
오로지 제 맘만은 끝내 변치 않을 테니 / 唯有此心終不變
그대 모습 그리는 이내 마음 알려거든 / 欲識中情長憶君
날마다 주머니 속 거울 꺼내 보소서 / 日日揭囊看鏡面
《상동》

우연히 느낌이 있어서 《열조시집》에 이르기를, “허봉(許篈)의 여동생이 김성립(金成立)에게 시집갔는데, 착하였으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하였다. [허봉]
낭군께선 둑가 버들 좋아하였고 / 君好堤邊柳
소첩은 고개 위 솔 좋아했지요 / 妾好嶺頭松
바람 따라 홀연히 흩날리어서 / 柳絮忽飄蕩
이리저리 쓸려가는 저 버들개지 / 隨風無定蹤
겨울에도 그 자태 변하지 않는 / 不如歲寒姿
늘 푸른 소나무와 같지 않아서 / 靑靑傲窮冬
좋아하고 싫어함이 늘 변하기에 / 好惡苦不定
걱정스런 마음만이 가득하다오 / 憂心徒忡忡
《상동》

편수(編修) 황공(黃公)이 시를 쓴 부채를 보내 준 데 대해 사례하다 [허봉]
월탁 열고 부채를 보내어 주니 / 越槖傳輕箑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든 것이네 / 良工制作勞
등나무는 섬계에서 베어 온 거고 / 苦藤分剡曲
찬 대는 상수에서 베어 온 거네 / 寒竹截湘皐
쇄락하니 쓰여 있는 맑은 시구는 / 灑落留淸什
화려한 붓 휘날려 써 생동하누나 / 飄揚動彩毫
글씨는 일소의 중함이 남아 있고 / 書留逸少重
값은 사안으로 인해 더 높아졌네 / 價爲謝安高
선사해 준 좋은 시구 내 얻고 보니 / 自得雙金贈
도리어 한 글자의 기림과 같네 / 還同一字褒
해마다 무더운 여름철 되면 / 年年火雲日
길이길이 선조를 생각하리라 / 長是憶仙曹
《명시종》

정사(正使) 황공(黃公)에게 이별하면서 바치다 [허봉]
아득하니 사신 깃발 중국으로 들어갈 제 / 迢遞飛旗入漢關
압록강엔 눈 그쳐서 하얀 비단 펼쳐졌네 / 鴨江晴雪展氷紈
신선 자취 흰 구름 밖 저 너머에 있는데 / 仙蹤已隔雲霄外
나눈 말은 아직도 꿈속에 남아 있네 / 晤語猶存夢寐間
중년 되어 자주 길손 전송함이 괴롭거니 / 中歲不堪頻送客
이내 생에 다시금 모시기가 어려우리 / 此生難卜再承歡
손에는 주고 가신 포규선이 남아 있어 / 空餘一握蒲葵扇
나눠 주신 맑은 바람 소매 가득 담고 오네 / 分得淸風滿袖還
《상동》

참군(參軍) 오자어(吳子魚) 대형(大兄)이 중국 조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 [허균(許筠)]
나라야 중외의 구별 있지만 / 국國유有듕中외外슈殊
사람은 구별이 없는 법이네 / 인人무無이夷하夏별別
태어난 곳 달라도 모두 형제니 / 낙落디地皆뎨弟형兄
초 땅 월 땅 나눌 필요 뭐가 있으리 / 하何필必분分초楚월越
간담을 매번 서로 밝게 비추고 / 간肝담膽每샹相조照
빙호를 찬 달이 내려 비추네 / 빙氷호壺영映한寒월月
옥을 보고 나의 추함 알아차렸고 / 의依옥玉각覺아我예穢
타주는 그대를 따를 수가 없었네 / 타唾쥬珠복復군君졀絶
오랫동안 등룡하길 기대했는데 / 방方긔期구久등登뇽龍
갑작스레 이별을 하게 되었네 / 거遽此셩成니離결訣
관하로 가는 길은 험난도 한데 / 관關하河노路험險희巇
가을이라 교외에는 더위 꺾였네 / 추秋교郊방方견蠲열熱
가실 적에 조심조심 길을 가시어 / 此거去신愼行휴休
돌아가는 길 막히지 말게 하소서 / 무毋령令조阻회回텰轍
동국 땅엔 아직 전쟁 끝나지 않아 / 동東슈陲샹尙용用병兵
바닷가엔 날마다 피 흐르는데 / 海교嶠일日뉴流혈血
모름지기 믿는 것은 노중련으로 / 슈須빙馮노魯년連子
진나라를 물리쳤던 세 치의 혀네 / 각却진秦도掉촌寸셜舌
구이의 땅 우리나라 더럽다 말고 / 물勿험嫌구九이夷누陋
대장부의 절개 힘써 지키옵소서 / 면勉슌徇쟝壯부졀節
《열조시집》

자야(子野)의 거문고 소리를 듣다 [허균]
가을바람 높은 나뭇가지에 불고 / 秋風入高樹
서재에는 맑은 소리 들려오누나 / 幽齋聞淸音
시냇가에 있는 줄로 착각을 하고 / 誤疑在溪壑
거문고가 곁에 있는 줄을 몰랐네 / 不知傍有琴
나는야 강자야를 사랑하노니 / 我愛康子野
세상 물결 가는 대로 몸 맡기었네 / 與世任浮沈
아름답네 담박한 자질 가져서 / 美哉恬澹質
더러운 나의 맘을 씻어 주누나 / 滌我塵垢心
《상동》

노 판관(盧判官)을 전송하다 [허균]
가을산에 석양빛 반쯤 걸리어 / 秋山懸夕照
나그네의 뜻 이미 처량도 한데 / 客意已悲涼
하물며 지금 같은 시절 당하여 / 況復當此時
고향으로 가는 그대 보내는 데랴 / 送君歸故鄕
초가 지붕 아래서 마주 대할 제 / 相對茅簷下
등불은 맑은 빛을 토해 내누나 / 燈火吐淸光
아름다운 사람 있어 거문고 안고 / 佳人抱瑤瑟
줄 당기며 술잔을 기울이누나 / 促柱傾壺觴
부탁노니 모름지기 잔뜩 취하라 / 殷勤須盡醉
내일 아침 떠난 뒤엔 아득할 테니 / 明發各茫茫
《상동》

평양(平壤)에서 남사(南士)가 중국 조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 2수(二首) [허균]
공자께선 중국의 빼어난 선비로 / 公子中州彦
아득하니 청운의 자태 지녔네 / 緬邈靑雲姿
시 솜씨는 사조와 맞설 만하고 / 詩情敵謝眺
부 읊는 솜씬 좌사 능가한다네 / 賦筆凌左思
강개한 맘에 먼 길 가길 청하여 / 慷慨請長纓
만리 먼 동해 가에 사신 나왔네 / 萬里東海涯
장한 뜻은 없어지지 아니했는데 / 壯志未
돌아가는 말은 서쪽 향해 달리네 / 歸驂忽西馳
기성 밖엔 늦더위가 아직 남았고 / 箕郊尙秋熱
가는 도중 험난한 데 많이 지나리 / 行李多嶮巇
마음 알아주는 이야 드문 법인데 / 知音旣云稀
더군다나 다시 멀리 떠나는 데랴 / 況復將遠離
기나긴 길은 괜히 멀기만 하여 / 長路漫浩浩
생각자니 두 눈에서 눈물 흐르네 / 念之涕雙垂

젊어서는 원대한 뜻을 품어서 / 弱齡有遐想
산골짜기 속에 숨어 살았었다네 / 棲遲在丘壑
세상 깔봐 동방삭을 조롱하였고 / 玩世笑東方
안석 기대 남곽을 본받았다네 / 隱几師南郭
중년 되어 시끄러운 성시로 나와 / 中年來城市
잘못해서 관직에 몸 매이게 됐네 / 誤爲簪組縛
누가 동관 꽂았다고 말을 하는가 / 誰言珥彤管
평소 뜻은 황각에 있지 않았네 / 素志非黃閣
공자는 회계산의 빼어난 인재라 / 公子稽山秀
회계산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네 / 爲說稽山樂
만 골짜기 좁은 새로 물이 흐르고 / 萬壑夾岸流
천 개 바위 물가에 솟아 있으며 / 千巖當鏡落
천태산 있는 데다 안탕산 있어 / 天台與鴈宕
마주 보며 하늘 향해 솟아 있다네 / 相峙對冥莫
한스런 건 하늘 한쪽 귀퉁이 살아 / 所恨天一方
변방 지역 벗어나지 못하는 거네 / 不得凌垠崿
바라는 건 거기 가는 길이 통해져 / 尙冀通關梁
동남으로 발걸음을 내달리어서 / 東南騁行脚
운문사 절간 안을 배회하다가 / 徘徊雲門寺
손 잡고서 허공 날아오르는 거네 / 携手翔寥廓
《상동》

강천효사(江天曉思) [허균]
서쪽으로 나는 제비 동쪽으로 흐르는 물 / 西飛燕東流水
인생살이 한순간의 봄꿈과도 같아라 / 人生倐忽春夢裏
하룻밤을 노래해도 기쁨은 다함 없고 / 一夜狂歌不盡歡
십 년간을 슬퍼해도 정은 그침 없어라 / 十年惆悵情無已
물안개 낀 물가 나무 봄이라 흐릿하고 / 渚煙汀樹春朦朧
굽은 난간 걸린 주렴 새벽별 동쪽 떴네 / 曲欄珠箔星在東
난대에 북 울리어 새벽녘에 출발하자 / 蘭臺鳴鼓逐曉發
한 조각배 돛을 달고 허공을 나누나 / 輕帆一片飛長空
《상동》

예주곡(蕊珠曲) [허균]
구름 창 안개 누각 어찌하여 밤은 긴가 / 雲牕霧閣何夜長
비단 휘장 밝은 달빛 침상에 스며드네 / 緗簾明月低銀牀
옥부 진인 지금 한창 나이가 젊어서 / 玉斧眞人年正少
비단 이불 가지고서 원앙새 잘 덮었네 / 羅衾好綰雙鴛鴦
휘황찬란 등불은 그림 누각 비추는데 / 蘭燈縈縈照畫閣
난간 밖의 은하수는 아직도 안 떨어졌네 / 欄外絳河猶未落
비취금엔 묵은 향기 잠시 동안 남아 있고 / 宿香乍染翡翠衾
부용막엔 교태로운 구름 아니 흩어졌네 / 嬌雲未散芙蓉幕
아름다운 그대 풍골 광한전의 신선이라 / 佳人風骨廣寒仙
노을 치마 여섯 잎새 연기 잘라 만들었네 / 霞裙六葉裁輕煙
우개 타고 아침마다 현포로 향하는데 / 羽蓋朝朝向玄圃
반도화 꽃이 피니 삼천 년이 흘렀구나 / 蟠桃花發三千年
《상동》

오자어(吳子魚)의 ‘남장귀흥(南庄歸興)’ 시에 차운하다 [허균]
솔숲과 대숲에 맑은 연기 끼어 있는 / 松關竹徑帶晴煙
집 있는 곳 명주 고을 두 번째 동천이네 / 家住溟州第二天
집 감도는 냇물 소리 가깝다가 멀어지고 / 遶屋溪聲來更遠
주렴 걷자 산기운은 저절로 아름답네 / 捲簾山色自堪憐
집사람은 불 피워서 울 밑의 채소 삶고 / 家人宿火炊籬菜
길손은 담소 속에 차 끓일 물을 긷네 / 坐客淸談汲茗泉
세속 일에 얽매이어 오리가 되었거니 / 偏縛塵纓爲傲吏
몇 번이나 고향 그려 귀전원부 읊었던가 / 幾將鄕思賦歸田
허균(許筠)의 집이 강릉(江陵)에 있었는데, 강릉은 옛 명주(溟州)로 오대산(五臺山) 아래에 있다. 삼한(三韓)에는 12개의 동천(洞天)이 있는데, 이곳은 제2동천이다.
《상동》

오자어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다 [허균]
황량한 들판 집 문은 반쯤 열렸는데 / 野館荒涼門半開
조각달 주렴 뚫고 스며들어 빛 비치네 / 入簾殘月影徘徊
이슬 젖은 풀벌레들 가을 숲서 우는데 / 露蟲偏向秋林織
오늘밤에 벗님께선 그 아니 오시려나 / 今夜故人來不來
《상동》

참군 오자어가 의성(義城)에 오르는 데 배종(陪從)하다 [허균]
먼 들판 하늘 저 끝 펼쳐져 있고 / 迥野垂天末
-《명시종》에는 ‘迥’이 ‘平’으로 되어 있다.
긴 강물 바다 접해 흘러가는데 / 長江接海流
비 온 뒤라 목동들은 피리를 불고 / 雨餘多牧笛
바람 급해 떠가는 배는 드무네 / 風急少行舟
한 물수리 구름 뚫고 날아오르고 / 一鶚穿雲去
-《명시종》에는 ‘一鶚穿’이 ‘獨鶴盤’으로 되어 있다.
짝 오리는 물가로 떠다니는데 / 雙鳧就渚浮
벗님을 그리는 맘 한이 없어서 / 相憐無恨思
-《명시종》에는 ‘思’가 ‘意’로 되어 있다.
괜스레 중선루에 올라 기대네 / 空倚仲宣樓
-《명시종》에는 ‘倚’가 ‘憶’으로 되어 있다.
《상동 및 명시종》

저녁에 읊조리다 [허균]
겹 주렴은 은은하고 해는 서산 비꼈는데 / 重簾隱映日西斜
작은 집 회랑은 굽이굽이 가려졌네 / 小院回廊曲曲遮
조창이 새로 그림 그려 놓은 것일런가 / 疑是趙昌新畫就
대숲 사이 쌍학이 가을꽃에 앉았구나 / 竹間雙坐秋花
《지북우담(池北偶談)》

오자어 선생에게 바치다 [이 수재(李秀才)]
새벽녘에 말 달려 외로운 성 들어가니 / 凌晨走馬入孤城
마을엔 사람 없고 살구 한창 열릴 때네 / 籬落無人杏子成
포곡은 왕사가 급한 줄도 모르고서 / 布穀不知王事急
저편 숲서 종일토록 씨 뿌리라 울어 대네 / 隔林終日勸春耕
《열조시집》

석상(席上)에서 오자어 선생에게 읊어서 바치다 [남 수재(藍秀才)]
평양성 북쪽 길은 구불구불 뻗었는데 / 平壤城北路偏賖
눈 가득한 연기 속에 해는 서산 넘어가네 / 滿目煙波日又斜
술잔을 앞에 두고 기쁜 웃음 못 짓는데 / 且向尊前惜歡笑
말 머리엔 해당화꽃 많이도 피어 있네 / 馬頭開遍海棠花
《상동》

감회가 있어서 자어(子魚) 오 참군(吳參軍)에게 바치다 [윤국형(尹國馨)]
베옷에는 이별하는 길의 먼지 스치우고 / 麻衣偏路岐塵
흰머리에 늙은 얼굴 거울 속에 새롭구나 / 鬢顔衰曉鏡新
중국의 좋은 꽃들 수심 속에 아름답고 / 上國好花愁裏豔
옛 동산의 꽃나무는 꿈속에서 봄이었네 / 故園芳樹夢中春
편주로 달빛 안고 바다 떠 갈 생각하고 / 扁舟煙月思浮海
필마 타고 관하 가니 나루 묻기 싫증 나네 / 匹馬關河倦問津
칠 년간의 난리 통에 이별 한숨 짓는데 / 七載干戈歎離別
수양버들 꾀꼴새에 내 맘 몹시 상심되네 / 綠楊鶯語太傷神
《상동》

용산(龍山)에서 놀면서. 오자어 선생에게 바치다. [양형우(梁亨遇)]
복사꽃 필 즈음 살구꽃 거의 지고 / 桃花開後杏花稀
나그네 올 때에 제비들 날고 있네 / 客子來時燕子飛
산 아래 마을에는 봄풀이 자라났고 / 山郭數村芳草合
울타리 주위에선 벌들이 웅웅대네 / 野籬三面亂蜂圍
풍진 세상 갈래 길 어느 해에 끝나려나 / 風塵岐路何年盡
해진 모자 긴 바지로 지낼 계책 글러졌네 / 破帽長裙此計非
고향 땅이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기에 / 遙憶故園歸不得
물새 날고 봄물 불 때 사립문 닫아거네 / 白鷗春水掩柴扉
《상동》

한강(漢江)에 배를 대다 [이식(李植)]
봄바람 급한 물살 가벼운 배를 타고 / 春風急水下輕艭
아침 일찍 여주 떠나 저녁에 한강 왔네 / 朝發驪陽暮漢江
뱃사공 잠에 취해 노 젓는 소리 없고 / 篙子熟眠雙櫓靜
푸른 산만 무수히 선창을 스치누나 / 靑山無數過船窓
《명시종 및 지북우담》

성절(聖節)을 축하하는 시 《명시종》에 이르기를, “이자민은 무슨 관직에 있는지 모른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자민은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의 자(字)이다. [이자민(李子敏)]
황성에 해 뜨고 오색구름 펴질 즈음 / 九逵初日五雲覃
호배하는 궁정 뜰에 뭇 관원들 모이었네 / 虎拜彤庭百辟參
보불과 성신은 북극성을 선회하고 / 黼黻星辰璇極北
월상에서 험한 길 와 폐백을 바치누나 / 梯航玉帛越裳南
천년에 한번 황하 맑아지는 때 만나서 / 河淸適際千年一
일제히 만세 삼창 오래 살라 축수할 제 / 嵩壽齊呼萬歲三
먼 외방의 소신 역시 어진 황제 축수한 뒤 / 遐壤小臣陪舞獸
하사해 준 술 마시곤 황은에 취하누나 / 內尊偏倚主恩酣
《명시종》

병중에 술을 대하다 《열조시집》에 이르기를, “조선의 《손곡시집(蓀谷詩集)》 여섯 권에는 지은이의 성씨가 실려 있지 않은데, ‘억석행을 읊어 정랑 신설에게 주다.[憶昔行贈申正郞渫]’라고 한 것을 보고서 그가 만력(萬曆) 연간의 배신(陪臣)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달의 자는 달부(達夫)이고 호는 손곡이다. 《열조시집》에는 손곡의 시 36수가 실려 있는데, 지은이의 성명이 실려 있지 않다. 죽타(竹坨)의 《명시종》에는 이미 이달의 시 1수가 실려 있고, 또 손곡의 시 5수가 실려 있다. 그런데도 이르기를, “그 이름이 상세하지 않다.” 하였으니, 중국 사람들이 외국의 시를 기록하는 때에 이렇듯 엉성한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 [이달(李達)]
꽃 필 때 몸 병들어 문 굳게 닫고서는 / 花時人病閉門深
꽃가지 꺾어 놓고 술 마시며 시를 읊네 / 強折花枝對酒吟
덧없는 세월이 꿈결처럼 흘러가매 / 怊悵流光夢中過
봄 경치 봐도 다신 소년 시절 마음 없네 / 賞春無復少年心
《상동》

반죽원(斑竹怨) 살펴보건대, 이 시는 《지북우담》에는 이달의 시로 되어 있고, 《열조시집》에는 이숙원(李淑媛)의 시로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기에 양쪽에 다 기록하였다. [이달]
저 옛날에 두 비가 순 임금 좇아 / 二妃昔追帝
남쪽으로 상수 사이 달려갔었네 / 南奔湘水間
상수의 대나무에 눈물 흘려서 / 有淚寄湘竹
지금도 상수 대엔 얼룩이 졌네 / 至今湘竹斑
구의묘엔 구름이 잔뜩 끼었고 / 雲深九疑廟
창오산엔 서편 하늘 해가 지는데 / 日落蒼梧山
두 비의 한 강물에 남아 있기에 / 餘恨在江水
도도히 흘러가선 안 돌아오네 / 滔滔去不還
《지북우담》

억석행(憶昔行)을 읊어 정랑(正郞) 신설(申渫)에게 주다 이 시 아래에 나오는 여러 시는 《열조시집》 및 《명시종》에 모두 손곡의 시로 되어 있는데, 성명을 기록하지 않았으므로 이곳에 합쳐서 기록하였다. [이달]
아아, 거룩하신 천자께서는 / 嗟嗟天子聖
장수 명해 동쪽으로 출정케 했네 / 命將出東征
먼저 기왕 도읍지서 앞장을 서서 / 首事箕王都
파죽지세 날랜 칼을 맞이하였네 / 破竹遊刃迎
경성에 있던 왜적 줄행랑치자 / 漢京賊先遁
공경들이 임금 수레 뒤따라왔네 / 大駕隨公卿
처음으로 조정 위의 갖추어지매 / 草創朝儀在
왕도가 맑아진 걸 보게 되었네 / 庶見王都淸
한번 싸워 왕업을 회복했으니 / 一旅復夏業
역사책에 이름 쓰여 전해질 건데 / 簡策傳諸經
거 땅에 있을 때의 맘 잊지 않아 / 無忘在莒心
날마다 임금 계신 쪽을 보누나 / 日日望聖明
《열조시집》

서울로 가는 이계헌(李季獻)과 작별하다 [이달]
이별의 뜻은 절로 가눌 수 없고 / 別意不自制
이별의 정은 정말 가슴 아픈데 / 別情良可嗟
바닷가서 나그네로 오래 떠돌고 / 海隅爲客久
변경에서 사람 자주 전송하누나 / 關外送人多
언덕에는 꽃잎이 흩날리우고 / 野岸飛花樹
봄 다리엔 물결이 일렁이는데 / 春橋水上波
이내 신세 자규와 같은 처지라 / 猶同子規鳥
뿌린 눈물 나뭇가지 적시이누나 / 灑淚濕林柯
《상동》

밤에 대탄(大灘)에다 배를 대다 [이달]
강여울 아래에다 밤에 배 대니 / 夜纜泊灘下
강마을에 서릿기운 서리어 있네 / 水村霜氣凝
모래톱서 마른 나무 등걸 주워다 / 枯査拾沙渚
밥 지으려 고기 잡는 등불 빌리네 / 爨火乞漁燈
병든 객 외론 배서 꿈을 꾸는데 / 病客孤舟夢
시월이라 강 차가워 얼음이 어네 / 寒江十月氷
집 떠난 지 오늘까지 며칠째인가 / 辭家今幾日
뱃사공이 어느 사이 친한 벗 됐네 / 黃帽是親朋
《상동》

공산(公山)에서 송정옥(宋廷玉)을 만나다 [이달]
왜적들이 침입한 지 한 해가 넘어 / 寇盜經年歲
한양 땅엔 온통 다 전쟁 상처네 / 干戈滿漢陽
친척들은 난리 통에 모두 흩어져 / 所親皆喪亂
살았는지 죽었는지 묻지 못하네 / 不敢問存亡
서산에 지는 해는 행전을 보고 / 西日瞻行殿
동풍은 불어 불어 고향 가는데 / 東風入故鄕
이러한 때 그대 만나 술잔을 드니 / 時危對君酌
흘린 눈물 옷깃 흠뻑 적시려 하네 / 涕淚欲沾裳
《상동》

새벽에 판교촌(板橋村)에 가다 [이달]
서쪽 길 수관에선 새벽닭이 우는데 / 水關西路聽鷄鳴
고갯마루 달은 지고 안개는 평평하네 / 嶺月初沈曉霧平
초가 지붕 객점에선 사람 소리 가끔 나고 / 人響間聞茅店語
널다리를 오르는 말굽 소리 연이었네 / 馬蹄連上板橋聲
고향 산천 가까워져 마음은 기쁜데도 / 悠悠漸喜鄕山近
지친 모습 나그네의 행색이 드러나네 / 瑣瑣偏知旅態生
다시 긴 둑 내려와서 함께 가는 짝을 보고 / 更下長陂說徒侶
날 밝으면 앞선 일행 쫓아가자 말하누나 / 天明須趁及先行
《상동》

허 전한(許典翰)에게 서신을 보내어 안부를 묻다 [이달]
갑산 땅은 서북으로 음산과 닿아 있고 / 甲山西北接陰山
구름 속의 새 나는 길 올라갈 수가 없네 / 鳥道懸雲不可攀
귀양살이 떠나는 길 언제 도착하려는가 / 遷客北行何日到
때때로 보낸 편지 해 지나서 답장 오네 / 家書時寄隔年還
성안에선 언제나 조두 소리 들려오고 / 長聞刁斗城埤裏
숲 사이선 다람쥐와 담비만이 보이리라 / 但見鼯貂樹木間
성대에 어찌 끝내 인재 버려두겠는가 / 聖代豈終才子棄
서른 살에 머리 희게 버려두지 않으리라 / 莫敎三十鬢成斑
《상동》

회포를 쓰다 [이달]
인간 만사 그 모두가 뜻대로야 안 되는 것 / 人間萬事不如意
득실 변함 알려거든 새옹을 볼지어다 / 得失悠悠看塞翁
달빛 좋은 누대에는 병든 사람 누워 있고 / 好月樓臺還有病
꽃잎 지는 시절에는 바람이 많이 부네 / 落花時節每多風
뜻밖의 높은 관직 허무한 데 돌아가고 / 倘來軒冕虛無裏
과거의 영웅들은 모두 죽어 적막하네 / 過去英雄寂寞中
나이 오십 된 지금 가진 것이 무엇인가 / 五十之年何所
긴 파람 한번 불고 먼 허공 바라보네 / 一聲長嘯望遙空
《상동》

도중에 회포를 읊다 [이달]
용천검은 칼집 속서 비통하게 우는데 / 龍泉鳴吼匣中悲
시월이라 서풍 불어 귀밑머리 흩날리네 / 十月西風兩鬢絲
누런 잎새 가득한 산 절집은 무너졌고 / 黃葉滿山秋寺廢
흰 모래밭 닿은 물가 작은 다리 위태롭네 / 白沙連渚小橋危
외론 돛배 떠나간 뒤 천 산에는 날 저물고 / 孤帆過後千峯夕
필마로 길 떠날 제 가을풀은 시들었네 / 匹馬行時百草衰
쓸쓸한 고향 집이 꿈속에 보이나니 / 牢落故居空入夢
엉킨 덤불 성긴 대 속 초가집 한 채구나 / 亂藤疎竹有茅茨
《상동》

경홍(景洪) 한호(韓濩)와 이별하면서 주다 [이달]
서쪽 마을 골목에 있는 윤씨 집으로 / 西曲巷尹家庄
날이면 날마다 가 술잔을 기울였지 / 每到尋常把酒觴
좋았던 지난날은 꿈속의 일만 같고 / 全盛舊時如夢寐
난리 통의 오늘날은 마음 다시 처량하네 / 亂離今日更凄涼
옷 짧아서 변방의 풍상이 괴로웁고 / 短衣關塞風霜苦
필마 타고 가는 진경 길은 길고 길다네 / 匹馬秦京道路長
유유한 지난 일들 물을 곳이 없으니 / 往事悠悠問無處
그대를 보내면서 어찌 눈물 안 흘리리 / 送君安得不沾裳
《상동》

입춘(立春)에 오체(吳體)로 짓다 [이달]
강동의 객관에서 입춘절을 만나니 / 江東客裏逢立春
절물과 풍광이 깊은 수심 들게 하네 / 節物風光愁殺人
소쿠리 속 날채소는 먹을 수가 없는데 / 盤中生菜不可食
문 앞의 버들가지 되레 움트려 하네 / 門前柳條還欲嚬
아스라한 변방 땅에 홀로 멀리 있는데 / 悠悠西塞獨身遠
까마득한 남쪽에는 전란이 한창이네 / 杳杳南國多兵塵
종사 중흥 시키는 건 대신에게 달렸기에 / 中興宗社大臣在
슬프게 바라보며 눈물 옷깃 적시누나 / 望涕淚沾衣巾
《상동》

근상인(勤上人)에게 사례하다 [이달]
새로 집 진 골짝 안에 늙은 농부 사는데 / 新家峽裏老農居
농사지어 거둔 곡식 여유 있길 안 바라네 / 田圃收功不願餘
살 궁리 해 보지만 좋은 방책 낼 수 없고 / 百計謀生無上策
붓 있어서 시를 지어 답답한 마음 푸네 / 數詩排悶有中書
맑은 가을 산 숲 가서 때때로 즐기고 / 秋晴林逕時行樂
비 온 뒤에 시내에서 물고기를 낚누나 / 雨後溪潭見釣魚
오로지 산승만이 나의 뜻을 알고서는 / 惟有野僧知我意
가까이 와 살면서 어떠냐고 물어보네 / 近來棲息問何如
《상동》

무제(無題) [이달]
구슬 줄 가늘게 늘어진 합환상이고 / 瑤絃纖縷合懽床
따스함이 홍전을 누른 소동방이네 / 暖壓紅錢小洞房
진루에서 꿈 깨이자 비취는 쪼개졌고 / 夢覺秦樓分翡翠
상포에 해가 지자 원앙새는 오지 않네 / 日沈湘浦斷鴛鴦
비녀에선 달빛 밝아 진주구슬 반짝이고 / 鈿寶月明珠綴
허리띠엔 구름 서려 금낭이 상서롭네 / 腰帶盤雲瑞錦囊
기러기발 열두 개는 비스듬히 놓였는데 / 十二斜行金鴈柱
푸른 깁은 안개 같아 가을 향기 어려 있네 / 碧如霧掩秋香
《상동》

용성(龍城)에서 옥봉(玉峯)의 운을 차운하다 [이달]
비 온 뒤라 시냇물엔 작은 물결 일렁이고 / 淸溪雨後起微波
가지 처진 버드나무 물가 언덕 서 있네 / 楊柳陰陰水岸斜
남쪽 길서 한 동이 술 마시고서 취하면 / 南陌一樽須盡醉
동풍 부는 삼월도 얼마 뒤면 다 지나리 / 東風三月已無多
떠나는 길 곳곳마다 왕손초는 자라 있고 / 離程處處王孫草
마을에는 집집마다 탱자꽃 피어 있네 / 門巷家家枳殼花
오랫동안 하늘 끝서 나그네로 떠도니 / 流落天涯爲客久
한밤중에 오가 소리 차마 못 듣겠구나 / 不堪中夜聽吳歌
《상동》

청천강(淸川江)을 건너다 [이달]
안주성 바깥에는 강물이 드넓어서 / 安州城外水如天
모래밭에 말 세우고 뱃사공을 부르네 / 立馬沙頭喚渡船
저녁 연기 서린 돛배 강가에 매여 있고 / 帆帶晩煙依草岸
조각달빛 속에 기럭 갈대밭에 내려앉네 / 雁迷殘月下蘆田
먼 길 떠난 나그네라 돌아갈 생각하고 / 長途旅客思歸計
늙어가는 몸 보면서 젊은 시절 생각자니 / 向老筋骸憶少年
내 믿겠네 가난해도 고향 땅이 좋단 말을 / 始信在家貧亦好
요즘 들어 귀밑머리 점점 더 하얘지네 / 近來兩鬢轉蕭然
《상동 및 명시종》

청도(淸道)에 사는 이씨(李氏)의 집 벽에 제하다 [이달]
남쪽 온 지 몇 달 동안 계획 어긋났는데 / 南來數月計多違
세월은 물과 같아 어느새 깊은 가을 / 節序如流已授衣
여관에 지는 낙엽 바라볼 맘 안 나서 / 旅舍不堪黃葉落
저물녘에 흰 구름 흐르는 걸 바라보네 / 暮天遙望白雲飛
기럭 내린 모래톱엔 강물이 차가웁고 / 沙梁鴈下寒江渚
연기 피는 마을에는 대사립이 쓸쓸한데 / 門巷煙生苦竹扉
오로지 나와 함께 여기 온 산승 있어 / 唯有同來野僧在
병중에 마주 보며 돌아가잔 말 나누네 / 病吟相對說西歸
-《명시종》에는 ‘說’이 ‘話’로 되어 있다.
《상동》

나그네의 회포 [이달]
이내 몸 어찌 떠돌 생각하였나 / 此身那復計西東
이르는 곳 아득해라 부평초 신세 / 到處悠悠逐轉蓬
옛 친구와 같이 자니 유락한 뒤고 / 同舍故人流落後
타향에서 맞은 새해 난리 중일세 / 異鄕新歲亂離中
기러기는 눈 덮인 산을 지나고 / 歸鴻影度千峯雪
피리 소리 새벽 바람 타고서 오네 / 殘角聲悲五夜風
서글퍼라 변방 지역 길을 떠돌다 / 惆悵水雲關外路
봄풀 보자 무궁한 생각이 드네 / 漸看芳草思無窮
《상동》

평조사시사(平調四時詞) 4수(四首) [이달]
마을에는 청명이라 제비들 날아오고 / 門巷淸明燕子來
푸른 버들 안개 같아 누대를 가렸는데 / 綠楊如霧掩樓臺
친구와 짝이 되어 그네 타다 내려와서 / 同隨女伴鞦韆下
다시 꽃밭 사이로 가 풀싸움 하고 오네 / 更向花間鬪草廻

오색실 바늘 꿰어 수놓다가 걷어치니 / 五色絲針捲繡窠
뜨락에는 석류꽃이 이제 막 피었네 / 玉階新發石榴花
은 침상에 찬 방석 나머지는 일 없는데 / 銀牀氷簟無餘事
종일토록 정원에는 호랑나비 날고 있네 / 盡日南園蛺蝶多

우물가 오동 잎새 옥 난간에 떨어지니 / 金井梧桐下玉欄
비파줄 팽팽해져 타려 해도 탈 수 없네 / 琵琶絃緊不堪彈
거울 들고 눈썹 새로 그리려고 하면서 / 欲將寶鏡新黛
주렴 걷어올리자 이른 추위 선뜻하네 / 捲上珠簾怯早寒

향기 쌓인 은 장막에 향로는 높다란데 / 錦幕圍香寶獸危
단장코자 거울 드니 연지 굳어 딱딱하네 / 曉粧臨鏡澁臙脂
새장 속의 앵무새는 추위 몹시 싫어해서 / 繡籠鸚鵡嫌寒重
주렴 사이 향하여 어린 시녀 쳐다보네 / 猶向簾間覓侍兒
《열조시집》

보허사(步虛詞) 7수(七首) [이달]
높이 틀어 올린 머리 댕기로 묶었는데 / 三角峨峨鬢上綃
-남씨(藍氏)의 《사조시선(四朝詩選)》에는 ‘峨峨鬢上綃’가 ‘嵯峨拂紫綃’로 되어 있다.
남은 머리 가느다란 허리까지 내려왔네 / 散垂餘髮過纖腰
잠깐 사이 서왕모의 잔치에 나갔다간 / 須臾宴赴西王母
-《사조시선》에는 ‘赴’가 ‘罷’로 되어 있다.
한 곡조 퉁소 불며 허공 향해 날아가네 / 一曲鸞簫向碧霄
-《사조시선》에는 ‘簫’가 ‘笙’으로 되어 있다.

청동완릉화와 짝이 되어서 / 靑結伴腕凌華
한밤중에 삼주의 소옥 집에 내려오네 / 夜下三洲小玉家
한가로이 자양궁 궁궐 안 일 말하다가 / 閑說紫陽宮裏事
옥 계단서 벽도화 가지 몰래 꺾누나 / 玉階偸折碧桃花

오색 기린 끌고 가는 서왕모의 구름 수레 / 王母雲車五色麟
흰 난새 앞세우고 서쪽을 순시하네 / 白鸞前導向西巡
천장을 새벽녘에 허황전에 아뢰자 / 天章曉奏虛皇殿
선계화꽃 한 번 피니 팔만 년의 봄이네 / 仙桂花開八萬春

선도에서 향불 피워 옥허에 예 올리고 / 仙島焚香禮玉虛
붉은 기린 멍에 매어 오운거를 끌고 가네 / 紫麟催駕五雲車
서궁의 시녀들은 교태로운 웃음 많고 / 西宮侍女多嬌笑
삼천을 다 써도 글씨를 볼 수 없네 / 錄盡三天未見書

서악의 진군께서 자미궁에 올라가니 / 西嶽眞君上紫微
뭇 신령들 분주하게 위의를 갖추누나 / 百靈奔走備威儀
삼청경의 비결을 전수해 줄 데가 없어 / 三淸祕訣無傳授
천문도를 몰래 그려 한밤중에 돌아오네 / 偸寫天章半夜歸

양성의 사자가 진부를 가져가며 / 羊城使者取眞符
가슴 앞에 활락도를 드러내어 차고 가네 / 露佩胸前落圖
곧장 부상 향해 가서 목제를 재촉하여 / 直指扶桑催木帝
제때에 청도에 오르라고 말 전하네 / 及時傳語上淸都

삼단에서 한밤중에 진경을 강론하니 / 三壇中夜講眞經
뭇 신선들 뜨락 아래 많이도 와 모이었네 / 大集群仙列下庭
오로지 노군 있어 별전을 짓고서는 / 唯有老君修別殿
도가의 글 손으로 써 현명에게 보내누나 / 手書雲篆送玄冥
《상동》

궁사(宮詞) 3수(三首) [이달]
아침에 해가 떠서 궁전 문이 열리자 / 平日出殿門開
두 개의 깃털 부채 앞세우고 올라와선 / 鳳扇雙行引上來
저 멀리 대궐 뜰서 선포하는 조서 듣고 / 遙聽太儀宣詔語
조회를 파한 뒤에 망춘대로 납시누나 / 罷朝新幸望春臺

궁궐 담장 곳곳마다 꽃잎 져서 날리는데 / 宮墻處處落花飛
시녀는 향 피우며 석양빛 바라보네 / 侍女燒香對夕暉
봄바람 다 불도록 사람 모습 아니 보여 / 過盡春風人不見
대문 걸은 자물쇠엔 푸른 녹 생겨났네 / 院門金鎖綠生衣

중관이 맑은 새벽 재인을 찾더니만 / 中官淸曉覓才人
생가를 합주하자 궁전 가득 봄빛이네 / 合奏笙歌滿殿春
이원에 조서 내려 옥젓대 불게 하곤 / 別詔梨園吹玉篴
기린을 수놓은 어포 새로 하사하네 / 御袍新賜錦麒麟
《상동》

강릉(江陵)의 동헌(東軒) [이달]
물 가득한 연못에서 흰 연기 피어나고 / 水滿南塘生白煙
대나무 숲 가에 복사꽃은 피었는데 / 桃花發竹林邊
가련케도 병든 길손 한가로울 틈 없어 / 自憐病客無閑緖
한 봄이 지나는 게 한 해 가는 듯하네 / 一度傷春似去年
《상동》

그림에 제하다 [이달]
문 앞의 버드나무 누가 사는 집이런가 / 綠楊閉戶是誰家
반쯤 솟은 붉은 다락 끊어진 놀 비치네 / 半出紅樓映斷霞
무료한 꾀꼬리는 하루 종일 우는데 / 無賴流鶯啼盡日
비 개인 골목에는 떨어진 꽃이 많네 / 晩晴門巷落花多
《상동》

가산(嘉山)으로 가는 도중에 [이달]
가산에서 북쪽 보니 구성 땅과 닿았는데 / 嘉陵北望接龜城
지나온 길 헤아리며 다시 먼 길 떠나누나 / 歷數來途更遠行
슬그머니 숲에 가서 나루터쪽 바라보니 / 試向長林望津渡
들판에 구름 끼어 또렷하게 안 보이네 / 濕雲沈野不分明
《상동》

중의 시축(詩軸)에 제하다 [이달]
집 떠난 지 며칠 동안 산길을 가노라니 / 離家數日行山路
봄 머금은 꽃 폈으나 많이는 아니 있네 / 春在花枝亦不多
오로지 봄날의 무한한 뜻 아까워서 / 唯有惜春無限意
병든 몸 이끌고서 남은 꽃 가지 꺾네 / 強扶衰病折殘花
《상동》

좌랑(佐郞) 윤휘(尹暉)가 상경하는 것을 전송하다 [이달]
구월이라 요동 땅엔 풀들 시들었는데 / 九月遼陽塞草腓
북녘 바람 서릿기운 옷 안으로 스며드네 / 朔風霜氣滿征衣
가는 길손 연산에 가까이 가 자려 하고 / 行人欲近燕山宿
들판에는 기럭 어려 새벽에 아니 나네 / 鴈乳平蕪曉不飛
《상동》

악사(樂師) 허억봉(許憶鳳)에게 주다 [이달]
두 눈썹은 눈을 덮고 귀밑머리 엉성한데 / 雙眉覆眼鬢蕭蕭
일찍이 이원에서 옥퉁소를 불었다네 / 曾捻梨園紫玉簫
요대로 향해 가서 한 곡조 튕기더니 / 移向瑤臺彈一曲
다 튕기곤 눈물 속에 지난 세월 얘기하네 / 曲終垂淚說先朝
《상동 및 명시종》

도망(悼亡) [이달]
경대에는 거미줄 거울엔 먼지 꼈고 / 粧奩蟲網鏡生塵
닫힌 문엔 복사꽃만 쓸쓸한 봄날이네 / 門掩桃花寂寞春
누각은 예전처럼 달빛 아래 서 있는데 / 依舊小樓明月在
주렴을 걷을 사람 누구인지 모르겠네 / 不知誰是捲簾人
《상동》

평양(平壤)의 객관(客館) 벽에 서경고적시(西京古蹟詩)를 제하여 전 의조(田儀曹)에게 남겨 주다 6수(六首) [박미(朴瀰)]
단수 아래 신인 내려 이 도읍지 만들매 / 檀下神人始此都
지금에도 옛 성 가에 그분 사당 남아 있네 / 至今遺廟古城隅

모르겠네 그때 당시 아사달 이곳에도 / 不知當日斯達
용의 수염 붙들었다 떨어진 자 없는지 / 亦有攀髥墮者無

태사 막대 잃었지만 붓은 아직 남았는데 / 太師杖軼筆猶存
지난 일들 희미하여 말할 것이 못 되네 / 舊事鴻濛未足言
오로지 푸른 산에 석 자 되는 묘 있으니 / 惟有靑山三尺墓
동인들은 공림과 비등하게 논하라 / 東人須與孔林論

주나라 정전 제도 맹자에 실렸으나 / 周家井制出鄒賢
상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네 / 猶是其詳不得傳
함구문 밖에 나가 들판 쪽을 바라보니 / 試向含毬門外望
너른 들판 십 리에 정전 제도 남아 있네 / 平郊十里是商田

단락은 본디부터 붉은 땅에 안 맞는데 / 丹絡元非赤土宜
맑은 물이 어찌하여 가운데서 솟아나나 / 淸泉何事涌中逵
두레박에 경장을 길어서 마시고는 / 鹿盧汲取瓊漿飮
사람들은 천년토록 태사 얘기하누나 / 千載令人說太師

고구려가 시작된 건 한나라 홍가 때로 / 高句麗起漢鴻嘉
옛날 궁전 남은 터엔 풀들이 우거졌네 / 宮殿遺墟草樹遮
슬프게도 을지문덕 그분이 죽었거니 / 怊悵乙支文德死
후정화 부르라고 나라 망한 게 아니네 / 國亡非爲後庭花

조천석은 강가에 삐죽하니 나와 있고 / 朝天片石出江潯
기린굴엔 이끼 끼고 수목은 우거졌네 / 麟窟苔封草樹深
슬프구나 천손은 어디로 떠나갔나 / 怊悵天孫何處去
옛 사당 곁에는 들꽃만이 피어 있네 / 野棠花發古祠陰
《지북우담》 ○ 《명시종》에는 단지 ‘高句麗起漢鴻嘉’ 한 편만이 실려 있다.

봄날 [최전(崔澱)]
능수버들 일렁이고 강물 넘실대는데 / 楊柳依依江水生
살구꽃 눈 같아서 소리 없이 떨어지네 / 杏花如雪落無聲
푸른 안개 다 걷히자 그림 누각 보이는데 / 靑霞盡畫樓出
그 안에 옥인 있어 옥피리를 부누나 / 中有玉人吹玉笙
《명시종》

어떤 사람에게 주다 [최전]
시냇물 졸졸대며 단풍 든 숲 울리는데 / 碧溪哀玉響楓林
산수를 좋아해서 멀리까지 찾아왔네 / 山水孤懷恣遠尋
신선은 아니 오고 가을 이미 깊었기에 / 仙子不來秋已暮
석양 질 때 옛 누각 홀로 올라 바라보네 / 古樓斜日獨登臨
《상동》

경포대(鏡浦臺) [최전]
봉래에 한번 들면 삼천 년이 훌쩍인데 / 蓬一入三千年
은빛 바다 아득하고 물은 맑고 얕아라 / 銀海茫茫水淸淺
난새 타고 피리 불며 오늘 홀로 돌아오니 / 鸞笙今日獨飛來
벽도화 꽃 아래에 사람은 아니 뵈네 / 碧桃花下無人見
《정지거시화(靜志居詩話)》

최언침(崔彦沈)에 대한 만시(輓詩) [이정귀(李廷龜)]
나의 벗 지금 이미 돌아갔는데 / 有友今亡矣
무단히도 꿈속에서 자주 보이네 / 無端夢見之
영결할 때 남긴 말을 생각해 봐도 / 長尋臨訣語
나에게 준 시만이 떠오르누나 / 獨贈行詩
용 뱀처럼 꿈틀대는 글씨 완연코 / 宛爾龍蛇字
옥과 눈 같은 자태 분명도 한데 / 森然玉雪姿
청산의 한 줌 흙이 이미 됐기에 / 靑山一坏土
늙은 나의 두 눈에 눈물 흐르네 / 衰白淚雙垂
《명시종》

최언침에 대한 만시 [구면(具)]
연기 끼인 양포에서 삼월에 술 마셨고 / 楊浦煙花三月酒
풍설 부는 광산에서 십 년 동안 등불 켰네 / 匡山風雪十年燈
《정지거시화》

산에 살다 [권응인(權應仁)]
푸른 산 모퉁이에 집을 짓고는 / 結屋倚靑嶂
병 가져가 푸른 시내 물을 담누나 / 携甁盛碧溪
오솔길은 대숲 뚫어 가느다랗고 / 徑因穿竹細
울타리는 산 보려고 낮게 둘렀네 / 籬爲見山低
돌 위에서 잠자 옷엔 이끼 붙었고 / 枕石巾粘蘚
꽃 꺾느라 나막신엔 진흙 묻었네 / 裁花屐印泥
번화한 덴 꿈속서도 가지 않나니 / 繁華夢不到
한가한 맛 그윽하게 사는 데 있네 / 閑味在幽棲
《지북우담》

등주(登州)에서 밤에 앉아 있다가 딱따기 치는 소리를 듣다 《감구집(感舊集)》에 이르기를, “김상헌의 자는 숙도(叔度)로, 조선의 사신이 되어 천계(天啓) 연간에 등주를 경유해 들어와 조공하였는데, 추평(鄒平) 사람 장 충정공(張忠定公)이 자신의 집으로 관소를 정하게 하였으며, 인하여 《조천록(朝天錄)》 1권을 각판(刻板)하였다. 시 가운데 아름다운 시구가 많기에 대략 이곳에다가 싣는다.” 하였다. [김상헌(金尙憲)]
딱딱딱 딱딱딱 딱따기 소리 / 擊柝復擊柝
긴긴밤을 편안하게 쉴 수가 없네 / 夜長不得息
어느 사람 옷 없어서 추위에 떨고 / 何人寒無衣
어느 군사 밥 못 먹어 배가 고픈가 / 何卒飢不食
그들 어찌 나와 친한 사람이겠나 / 豈是親與受
또한 나와 서로 아는 사람 아니네 / 亦非相知識
그런데도 고통 함께하는 의 있어 / 自然同
내 마음에 측은한 생각이 드네 / 使我心肝惻
《감구집(感舊集) 및 명시종》

새벽에 평도(平島)를 출발하다 [김상헌]
긴 바람 만리에 사신 깃발 휘날리며 / 長風萬里送行旌
열흘 동안 돛 달고서 십도를 지나가네 / 十日孤帆十島經
용궁까지 닿은 물 깊고 깊어 검푸르고 / 水到龍堂無底黑
산이 서린 철산취엔 푸르름이 다하였네 / 山蟠鐵觜了餘靑
가을 깊어 바닷가엔 기러기 날아오고 / 三秋海岸初賓鴈
새벽녘 하늘에는 객성이 하나 떴네 / 五夜天一客星
집이 부상 가깝기에 동쪽을 바라보니 / 家近扶桑更東望
구름과 놀 쓸쓸하고 바닷물 아득하네 / 雲霞寥落水冥冥
《감구집》

등주(登州) 오 수재(吳秀才)의 운을 차운하다 2수(二首) [김상헌]
소고사엔 구름 옅어 가랑비가 내리는데 / 澹雲微雨小
팔월이라 난 시들고 국화 한창 피었네 / 菊秀蘭衰八月時
한 없는 나그네의 시름을 풀 길 없어 / 無限旅愁消不得
좋은 그대 시구 인해 그리운 맘 깊어지네 / 因君好句重相思

오경이라 조각달 성머리에 걸렸는데 / 五更殘月水城頭
역사 읊는 어떤 사람 홀로 배에 있는가 / 詠史何人獨艤舟
동해 바다 향해 가 돌아갈 길 찾지 않고 / 不向東溟覓歸路
되레 북두 의지하여 신주를 바라보네 / 還依北斗望神州
《상동》

동방삭(東方朔)이 살았다는 옛 마을에서 [김상헌]
한밤중에 선실 열려 면류관이 엄한데 / 夜開宣室儼珠旒
창을 잡은 낭관이 녹구 입고 달려가네 / 執戟郞官走綠
수서나 원구 모두 녹녹한 것이거니 / 首鼠轅駒俱碌碌
한나라 조정 기강 한 배우가 세웠다네 / 漢庭綱紀一俳優
《상동》

동행한 김 어사(金御史)의 운을 차운하다 [김상헌]
분분한 인사 자꾸 서로 간에 걸리나니 / 紛紛人事動相牽
어느 때나 세상 인연 다 끊고 돌아가 / 歸去何時了世緣
띠풀 지붕 바위 틈 샘이 있는 도혈리서 / 茅屋石泉陶穴里
약탕관에 시권으로 남은 생을 보내려나 / 藥爐詩卷送殘年
《상동》

이른 봄[早春] 2수(二首) [김상헌]
물 맞닿은 성가에 아지랑이 피어나고 / 水際城邊野馬飛
궁궐의 누각 소리 한낮이라 희미하네 / 漸聞宮漏晝
날마다 동풍 불어 들풀이 푸르르니 / 東風日日蘼蕪綠
북녘 사람 강남 사람 다들 고향 생각 나리 / 塞北江南總憶歸

흐르는 시냇물이 강언덕을 도는 곳 / 王灘流水遶江涯
강가의 솔숲 거기 나의 집이 있어라 / 江上松林是我家
어젯밤 꿈속에서 돌길을 찾아가니 / 昨夜夢尋烏石路
산 앞과 산 뒤에 이른 매화 피었네 / 山前山後早梅花
《상동 및 명시종》

처음 등주(登州)에 도착하다 [김상헌]
남쪽 상인 북쪽 길손 모래밭에 모여들고 / 南商北客簇沙頭
화익에다 푸른 주렴 어디서들 온 배인가 / 畫鷁靑簾幾處舟
죽지가를 부르면서 소매 잡고 가는데 / 齊唱竹枝聯袂過
성안 가득 달빛 비쳐 양주 땅과 흡사하네 / 滿城明月似楊州
《지북우담 및 명시종》

구월 구일 [김상헌]
황현성 가에 해 넘어갈 때 / 黃縣城邊落日
주교역 안에서 중양절 맞네 / 朱橋驛裏重陽
국화꽃은 나그네를 반기건마는 / 菊花依然笑客
머리털엔 또 가을 서리 내리네 / 鬢髮又度秋霜
《상동》

봉래각(蓬萊閣) [김상헌]
석교는 진시황 때 이미 다 끊어졌고 / 橋石已從秦帝斷
성사는 한나라의 사신만이 통과했네 / 星槎惟許漢臣通
《지북우담》

왕백옥(汪伯玉)과 왕원미(王元美) 두 선생을 그리워하는 시 《태평청화(太平淸話)》에 이르기를, “윤근수가 조선의 사신으로 와서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 왕백옥과 왕원미를 흠모한다.’ 하였는데, 그의 문집에 두 선생을 그리워하는 시가 있다.” 하였다. [윤근수(尹根壽)]
큰 바다에 웅풍 불어 붉은 물결 이는데 / 大海雄風生紫瀾
-살펴보건대, 이 구절은 엄주(弇州) 왕세정(王世貞)의 시구를 인용한 것인데, ‘雄風’은 원시에 ‘回風’으로 되어 있다.
명성 같은 맹주로는 신안이 있었다네 / 齊盟狎主有新安
평소에 모시고픈 마음 간절하였건만 / 平生空抱執鞭願
멍하니 구름 보나 더위잡을 수가 없네 / 悵望南雲不可攀
《태평청화》

양경리사비시(楊經理祠碑詩) 《균랑우필(筠廊偶筆)》에 이르기를, “명나라 신종(神宗) 때 일본이 제(帝)라고 참칭(僭稱)하면서 조선을 통하여 쳐들어왔을 적에, 창서(滄嶼) 양호(楊鎬) 선생이 경리(經理)의 명을 받들고 나가 전공(戰功)을 크게 세웠으나 곧바로 참소를 입고 파직되어 돌아왔다. 그러자 조선 사람들이 선생을 그리워하여 사당을 세우고 비석을 세운 다음 그 일에 대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는데,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던 이이첨이 시를 찬하였다.” 하였다. ○ 비명(碑銘)은 본국문조(本國文條)에 나온다. [이이첨(李爾瞻)]
동방 땅에 요사스런 기운이 서리었고 / 靑社纏妖氛
바다에는 비린 피가 들끓어 올랐다네 / 滄溟沸腥血
길 빌린 건 큰 돼지가 마구 날뛴 것이고 / 假途類豕奔
솥 물은 건 쥐가 훔친 정도가 아니었네 / 問鼎非鼠竊
삼도 모두 토붕와해 그처럼 무너졌고 / 三都盡土崩
팔도 모두 갈라지고 찢겨져 나갔었네 / 八路更幅裂
여후가 진창길에 빠진 것과 같았고 / 黎侯在泥路
진나라 신하가 고삐 잡은 것 같았네 / 晉臣負羈絏
불을 안고 섶 위 누운 월나라와 같았고 / 越枕火方抱
종묘 제사 고기 못 쓴 제나라와 같았네 / 齊俎肉且輟
위급하다 하자 누가 초나라를 생각했나 / 告急誰憐楚
도와달라 하자 끝내 설나라를 구원했네 / 乞靈終救薛
천자께서 옥으로 된 검을 어루만졌고 / 天子按玉劍
장군께선 금결을 차고서 출정했네 / 將軍佩金玦
삼천 명의 정예로운 군사들은 빛나고 / 三千組練明
십만 명의 용맹한 병사들은 줄 이었네 / 十萬豼貅列
요동 들판 흙먼지가 일어서 어둑했고 / 鶴野煙暗塵
압록강엔 피리 소리 북소리가 울리었네 / 鴨水笳鼓咽
경리할 사람 뽑아 정벌 임무 맡기고자 / 經理委戎務
여기저기 두루 물어 걸출한 이 선발했네 / 疇咨簡俊傑
대궐 안서 염파와 이목을 얻었으니 / 禁中得頗牧
관서의 명문거족 집안 출신이었네 / 關西擅閥閱
문장 솜씨 화려하여 문성이 빛이 났고 / 華藻文星朗
맑은 법규 깨끗하기 흰 구름 같았었네 / 淸規白雲潔
노거에다 대장 깃발 꽂아 우뚝 세웠고 / 鷺車建牙旗
수놓은 옷 묵질로 바꾸어 입었다네 / 繡衣換墨絰
날짜 정한 등예처럼 수심에 잠기었고 / 指日鄧艾愁
얼음 먹은 섭공처럼 속이 모두 탔었네 / 飮氷葉公熱
분란을 해소하려 높은 의기 떨치었고 / 解紛奮高義
남 위급함 구하려고 목숨을 내맡겼네 / 急病任大節
검술은 백원공의 검술처럼 뛰어났고 / 雄劍白猿術
병법은 현녀의 비결처럼 밝았네 / 陰符玄女訣
그 위엄과 그 명성에 산악이 진동했고 / 威聲山岳動
신묘한 계책에는 강과 바다 갈라졌네 / 妙算江海決
신병들이 왜적들의 보루 모두 빼앗자 / 神兵奪集墉
궁한 도적 쫓겨가서 개미 언덕 지키었네 / 窮寇守蟻垤
세 겹으로 포위하니 월훈이 생겨났고 / 三匝月暈成
아홉 번 공격하며 운제를 설치했네 / 九攻雲梯設
왜적들은 숫양 뿔이 울타리에 걸린 거라 / 羊角徒觸藩
사마귀가 수레바퀴 막기는 어려웠네 / 螳臂難拒轍
왜적들이 밤중 틈타 바닷가로 도망치자 / 宵遁先邀阨
모두 멸망시킨 뒤에 아침 먹으려고 했네 / 朝食姑待滅
장궁처럼 손뼉 치고 큰소리로 말할 뿐 / 只抵臧宮掌
그 어찌 역생처럼 혓바닥을 놀리겠나 / 何掉酈生舌
소부로 아침 버섯 주멸하지 않았으나 / 蕭斧菌未誅
홍로에 터럭이 저절로 다 타 버렸네 / 洪爐毛自熱
팔수에서 물결이 흩어지길 기다렸고 / 八水佇濤散
사루에서 안개가 흩어지길 기약했네 / 四壘期霧徹
천시를 놓치기는 어려운 것이라서 / 天時難失誤
왜적들의 기세 이미 모두 다 꺾이었네 / 賊勢已摧折
높은 명망 참으로 꺼리는 것이라서 / 高名固所忌
큰 성공이 도리어 흠집이 나게 됐네 / 大成還若缺
악양은 헐뜯는 글 상자에 가득했고 / 樂羊謗書盈
반초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 절실했네 / 班超歸思切
그러나 조정에선 사실 밝게 알았으니 / 朝廷果洞燭
정직한 이 그 누가 모함할 수 있었겠나 / 正直詎媒蘖
접역에선 머무르길 간절히 바랐건만 / 鰈域方願留
홍저께서 갑자기 떠나간다 고하였네 / 鴻渚遽告別
유영에서 전송하는 잔치가 열리니 / 柳營祖席開
옥장이 보루 위에 높다랗게 펼쳐졌네 / 玉帳雲壘凸
신선 자취 속세와 나누어져 떠나가매 / 仙蹤凡界分
이별하는 생각에 마음 근원 고갈됐네 / 離想情源竭
제공들은 이뤄 놓은 규정을 떠받들고 / 諸公奉成規
새 장군은 예전의 법도를 준수했네 / 新府遵舊臬
추한 무리 모두들 다 충신에 감동했고 / 醜類感忠信
맹서하며 속임수를 안 쓰리라 경계했네 / 盟書詐譎
오랑캐 땅에 이미 교화 두루 퍼졌고 / 四裔化初漸
삼한 땅 우리나라 치욕 이미 씻겨졌네 / 三韓恥旣雪
위나라는 망했던 걸 이에 다 잊게 됐고 / 衛國乃忘亡
송나라의 사직이 그 덕분에 안 끊겼네 / 宋祀賴不絶
군자들은 원숭이와 학으로 안 변하였고 / 君子辭猿鶴
백성들은 물고기가 되는 것을 면하였네 / 萬姓免魚鼈

그 어찌 단포의 정벌보다 못하리오 / 丹浦征何讓
백등에서 싸운 것과 그 공이 비등하네 / 白登功可秩
기둥에다 단청 칠해 생사당 지은 다음 / 畫樑建生祠
아름다운 글 비석에 새로이 새기었네 / 黃絹記新碣
관현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 絃管奏雅頌
큰 국자로 술을 떠서 오래 살길 기원했네 / 大斗祝耆耋
하늘 같은 자태를 볼 수 없게 되었기에 / 未覩霄漢姿
몇 번이나 세월 빠름 탄식을 하였던가 / 幾嘆光陰瞥
천금처럼 그 모습을 우러러 사모하며 / 千金慕典刑
열 겹으로 잘 포장해 조심스레 모시었네 / 十襲費提挈
육법으로 교묘하게 그림을 안배하여 / 六法巧安排
어느 한 점 삐딱하게 찍히지가 않았네 / 一點不蹇拙
회칠한 벽에다가 화상을 걸어 놓자 / 壁垂寶軸
하얀 깁서 채색 무늬 생동을 하는구나 / 霜綃生彩纈
연함에선 기이한 의표가 드러나고 / 燕頷異表著
서뇌에는 기이한 무늬가 맺혀 있네 / 犀腦奇文結
허리띠를 풀고 있는 그 모습 아련하고 / 緩帶藹神采
윤건을 쓰고 있는 그 풍모는 늠름하네 / 綸巾凜風烈
검은 표범 안개가 낀 골짝에서 나오고 / 玄豹出霧壑
큰 봉새는 단혈에서 한가로이 노니누나 / 大鳳戲丹穴
덕스러움 부합하니 공경하기 마땅하고 / 符德容宜敬
의로운 모습 어찌 색깔이 바래리오 / 形義色豈涅
영명한 눈초리는 번개치는 것과 같고 / 英盻訝回電
아름다운 가르침은 톱밥 쏟는 것과 같네 / 佳誨怳霏屑
옛날과 지금이 또 다시금 가고 오니 / 今昔復去來
색과 상이 저절로 다시금 바뀌누나 / 色相自
향기로운 제수 차려 제사를 지내면서 / 享祀供芬苾
우러러 바라보며 서로들 기뻐하네 / 瞻望爭快悅
범상 모습 오히려 구리로 주조했고 / 范相尙鑄金
위공은 오히려 쇠를 걸어 두었다네 / 衛公猶掛鐵
감당나무 보면서는 남긴 사랑 노래하고 / 甘棠詠遺愛
대수 보곤 영명한 그 모습을 그리누나 / 大樹思英哲
하물며 우리나라 재조해 준 그 은혜는 / 況此再造恩
같이 함께 말하기가 어려운 데이겠나 / 難與一飯說
그 은공에 보답할 마음 뼈에 새겼는데 / 圖報骨仍鏤
환난 당함 생각하니 목이 다 메이었네 / 省患心每噎
선왕께선 가까이서 직접 마주 대하였고 / 先王承警欬
과군께선 기다리는 마음 더욱 간절했네 / 寡君增佇渴
태평한 운 돌아와서 요순 같은 임금 만나 / 泰運逢堯舜
세운 공훈 직설보다 훨씬 더 뛰어났네 / 勳業邁稷契
채색 깃발 세우고서 요동 지역 떠맡자 / 蜺旌任遼東
오랑캐들 요사한 짓 못하게 되었다네 / 蠻種戢妖孼
난초 지초 향기에 젖듯 은혜 입혀졌고 / 惠澤蘭芷浴
벼락치듯 번개치듯 호령 소리 울리었네 / 號令雷霆
감싸 줌은 외방까지 모두 감싸 주었는데 / 蔭芘固無外
달려가서 따르려나 길 없어서 한스럽네 / 往從恨有截
성대한 덕 제대로 잘 표현하고 싶은 맘에 / 盛德欲摸寫
못난 말을 끙끙대며 찾아다가 글 지었네 / 癡語困搜抉
《균랑우필(筠廊偶筆)》

서씨(徐氏)의 국장악부(菊莊樂府)에 제하다 《신원지략(宸垣識略)》에 이르기를, “전발(電發) 서구(徐釚)가 어려서 《국장악부》를 판각하였는데, 조선의 공사(貢使) 구원길이 보고는 금병(金餠)을 주고 사 가지고 가면서 시를 지어 주었다.” 하였다. [구원길(仇元吉)]
중국 땅서 국장사 시집 구해 가지고 와 / 中朝携得菊莊詞
읽고 나자 연기와 놀 바닷가를 비추누나 / 讀罷煙霞照海湄
북우의 풍류를 어디에서 찾을 건가 / 北宇風流何處所
쇠젓대 한 소리에 그리운 맘 일어나네 / 一聲鐵笛起相思
《신원지략》

시(詩) 《명시종(明詩綜)》에 이르기를, “가정(嘉靖) 7년(1528, 중종23)에 조선 사람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남쪽으로 통주(通州)에 이르러 수어소(守禦所)에 구금되었다. 그를 신문해 보니 바로 조선의 주시관이었는데, 그가 지은 시가 있다.” 하였다. [조선의 주시관(主試官)]
넘실대는 흰 물결 하늘까지 닿았는데 / 白浪滔滔上接空
열 폭의 베 돛이 바람에 찢겨졌네 / 布帆十幅不禁風
이내 몸 고기 뱃속 장사 지냈더라면 / 此身若葬江魚腹
만리 떠난 외론 신하 꿈속 사람 되었으리 / 萬里孤臣一夢中
《명시종》

안정관(安定館)의 북역(北驛) [낙사(洛師)의 낭객(浪客)]
사월이라 관문으로 가는 길에는 / 四月關門路
모래 바람 불어서 썰렁도 하네 / 風沙起慘悽
강가에는 봄 기러기 다 날아갔고 / 河邊春鴈盡
숲 밖에는 새벽녘에 꾀꼬리 우네 / 林外曉鶯啼
나라 떠난 몸이라서 혼 날아가고 / 去國魂長往
집 그리워 생각은 아득만 하네 / 思家意全迷
삐쩍 마른 말을 타고 좌도 지나서 / 羸驂經左道
오늘은 안서 향해 길을 가누나 / 今日向安西
《상동》

심 부마(沈駙馬)의 벽파대(碧波臺) [무명씨(無名氏)]
화려한 정자가 산모퉁이 서 있는데 / 貴主華亭入翠微
푸른 창 붉은 기둥 휘황하게 광채 나네 / 碧牕朱有光輝
봄 물결 따뜻해서 고기들은 모여들고 / 春來波暖魚龍出
밤 깊자 별 희미해 까막까치 날아가네 / 夜久星疎烏鵲飛
바다 위에 뜬 등걸은 지금의 관월이고 / 海上乘査時貫月
강가에 쌓인 돌은 옛날의 지기이네 / 江邊積石舊支機
잔치 열어 술 권하기 앞서 먼저 투할하니 / 當筵勸酒先投轄
취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못할 거네 / 不醉應知客不歸
《상동》

자청궁(紫淸宮)에서 놀다 [승(僧) 굉연(宏演)]
옛날에 홍애 선생 숨어 살던 곳이라 / 洪先生舊所隱
섬돌 아래 벽도화꽃 꽃잎이 흩날리네 / 階下碧桃花飄零
우물에선 광채 빛나 경액이 흐르고 / 夜光出井流瓊液
솔 뿌리엔 이슬 젖어 복령이 자라나네 / 露浥松根生茯苓
선녀는 가끔씩 녹옥지 가져오고 / 天女或携綠玉枝
신선은 스스로 황정경을 읽누나 / 仙人自讀黃庭經
절과는 가까워서 오 리도 채 못 되는데 / 隣寺歸來不五里
고개 돌려 바라보니 안개 끼어 안 보이네 / 回頭望斷煙冥冥
《열조시집》

양류사(楊柳詞) 2수(二首) [성씨(成氏)]
푸른 누각 서쪽 편에 버들개지 날리는데 / 靑樓西畔絮飛揚
연기 속에 여린 가지 난간을 스치우네 / 煙鎖柔條拂檻長
어디 사는 젊은이가 흰 말을 몰고 와서 / 何處少年鞭白馬
녹음 짙은 곳에다가 말고삐를 매는가 / 綠陰來繫紫游韁

가진 허리 시샘하고 잎은 눈썹 시샘는데 / 條妬纖腰葉妬眉
바람과 비 겁이 나서 모두 낮게 드리웠네 / 怕風愁雨盡低垂
버들가지 사람들이 잡아당겨 짤막한데 / 黃金穗短人爭挽
다시금 동풍 맞아 한 가지가 꺾여졌네 / 更被東風折一枝
《상동》

회포를 적다. 숙손 형제(叔孫兄弟)의 운을 차운하다. [성씨]
흘러가는 물을 따라 일 멀어지고 / 事隨流水遠
봄 새벽을 좇아 수심 생겨나누나 / 愁逐曉春生
들판 빛깔 연기 걷혀 짙게 푸르고 / 野色開煙綠
산빛은 비 지나가 밝기도 하네 / 山光過雨明
발 앞에선 지지배배 제비들 울고 / 簾前雙燕語
숲 밖에선 꾀꼬리들 울어대는데 / 林外數鶯聲
나 홀로 앉았자니 흥취 안 일고 / 獨坐無多興
마음 상해 화장조차 잘 안 되누나 / 傷心籹不成
《상동》

죽지사(竹枝詞) [성씨]
강 이쪽과 강 저쪽에 봄물이 불었는데 / 瀼東瀼西春水長
내 님 탄 배 구당협 향하여 떠나갔네 / 郞舟已去向瞿塘
파강 골짝 원숭이 울음 소리 애달파서 / 巴江峽裏啼猿苦
세 번도 울기 전에 애간장 다 끊어졌네 / 不到三聲已斷腸
《명시종》

이별하면서 주다 [유여주(兪汝舟)의 처(妻)]
한스럽게 이별한 지 삼 년이 넘어 / 恨別逾三歲
갖옷 입고 홀로서 추위를 막네 / 衣裘獨禦冬
가을바람 귀밑머리 스치며 불고 / 秋風吹短鬢
찬 거울엔 늙어 쇠한 얼굴 비치네 / 寒鏡入衰容
객지 꿈은 풍진 세상 그 언저리고 / 旅夢風塵際
이별 시름 변방이라 막히었구나 / 離愁關塞重
서성이며 이것저것 생각노라니 / 徘徊思遠近
탄식 소리 방 안에 가득도 하네 / 流歎滿房櫳
《열조시집》

반죽원(斑竹怨) 《열조시집》에 이르기를, “이숙원은 승지 조원(趙瑗)의 첩이다.” 하였다. [이숙원(李淑媛)]
저 옛날에 두 비가 순 임금 좇아 / 二妃昔追帝
남쪽으로 상수 사이 달려갔었네 / 南奔湘水間
상수의 대나무에 눈물 흘려서 / 有淚寄湘竹
지금도 상수 대엔 얼룩이 졌네 / 至今湘竹斑
구의묘엔 구름이 잔뜩 끼었고 / 雲深九疑廟
창오산엔 서편 하늘 해가 지는데 / 日落蒼梧山
두 비의 한 강물에 남아 있어서 / 餘恨在江水
도도히 흘러가선 안 돌아오네 / 滔滔去不還
《상동》

귀래정(歸來亭) [이숙원]
벼슬자리 내던지고 일찍 돌아가 / 解紱歸來早
물가에다 정자를 한 채 지었네 / 亭開一水分
산과 시내 주인을 알아보았고 / 溪山知有主
갈매기와 해오라기 함께 놀았네 / 鷗鷺得爲群
기장 익자 술독에다 먼저 채우고 / 秫熟先充釀
맘 한가해 구름으로 화하려 하네 / 心閑欲化雲
늙어 죽을 때까지 살 토구의 이 땅 / 菟裘終老地
이는 징군 깔보는 게 아닌 거라오 / 非是傲徵君
《상동》

채련곡(採蓮曲) [이숙원]
남호에서 연밥을 따는 아가씨 / 南湖採蓮女
날마다 남호로 나아가누나 / 日日南湖歸
얕은 물가 연밥이 가득 들었고 / 淺渚蓮子滿
깊은 물엔 연잎이 드물게 있네 / 深潭荷葉稀

나긋나긋 젓는 노는 힘 하나 없어 / 盪嬌無力
비단옷에 물방울을 튀기는구나 / 水濺越羅衣
무심히 배를 저어 돌아오다가 / 無心却回棹
원앙새 나는 것을 유심히 보네 / 貪看鴛鴦飛
《상동 및 명시종》

누각에 오르다 [이숙원]
흰 매화꽃 더욱더 아름답고요 / 小白梅逾耿
푸르른 대 한결 더 곱기도 하네 / 深靑竹更姸
난간 기대 차마 못 내려가는 건 / 憑欄未忍下
달 뜨는 걸 보려고 그런 거라오 / 爲待月華圓
《열조시집》

눈을 읊다.[詠雪] 차운하여 짓다. [이숙원]
사립문 닫았으니 높이 누운 객 된 거고 / 閉戶何妨高臥客
우의 입고 눈물짓는 고향 못 간 몸이네 / 牛衣垂淚未歸身
눈 쌓인 산길에는 자리처럼 흩날리고 / 雲深山徑飄如席
바람 부는 허공에는 먼지처럼 모이네 / 風捲長空聚若塵
모래인 양 물가 쌓여 기러기의 눈 속이고 / 渚白非沙欺落鴈
새벽 온 듯 창 밝아져 나그네를 겁주누나 / 窓明忽曉劫愁人
강남 땅엔 지금쯤 매화 응당 폈을 건데 / 江南此日梅應發
하늘 닿은 물가 나무 몇 그루나 봄이려나 / 傍水連天幾樹春
《상동》

부질없이 흥이 일어 낭군에게 주다 [이숙원]
버들 자란 강 머리에 오마가 히힝 우니 / 柳色江頭五馬嘶
반쯤 깨고 반쯤 취해 누각 내려오는 때네 / 半醒半醉下樓時
봄꽃 지려 하기에 거울 앞에 앉아서는 / 春紅欲瘦臨粉鏡
한번 슬쩍 가느다란 눈썹을 그려 보네 / 試寫纖纖却月眉
《상동》

누각에 오르다 [이숙원]
붉은 난간 여섯 구비 은하수에 닿아 있고 / 紅欄六曲壓銀河
상서로운 안개 끼어 푸른 휘장 축축하네 / 瑞霧霏霏濕翠羅
달빛 밝아 창해에 날 저문 줄 모르겠고 / 明月不知滄海暮
구의산 아래에는 흰 구름 쌓여 있네 / 九疑山下白雲多
《상동》

가을날의 생각 [이숙원]
비취발 엉성해서 바람을 못 가리매 / 翡翠簾疎不蔽風
찬 기운 비단 휘장 속으로 스며드네 / 新涼初透碧紗
반짝이는 이슬과 둥그런 달 아래서 / 涓涓玉露團
풀 아래 벌레들이 가을 정 다 쏟아내네 / 說盡秋情草下蟲
《상동》

가을날의 한 [이숙원]
붉은 비단 빛 비치어 밤 등불 밝은데 / 紗遙隔夜燈紅
꿈 깨니 비단 이불 한쪽이 허전하네 / 夢覺羅衾一半空
찬 서리에 새장 속의 앵무새는 우는데 / 霜冷玉籠鸚鵡語
뜨락 가득 오동잎 갈바람에 지누나 / 滿階梧葉落西風
《상동》

보천탄(寶泉灘)에서 즉사(卽事)로 읊다 [이숙원]
복사꽃 같은 물결 몇 척이나 솟구치나 / 桃花良浪幾尺許
바윗돌들 파묻혀서 어딨는지 모르겠네 / 銀石沒項不知處
짝지어 나는 물새 옛 앉던 곳 못 찾고는 / 兩兩鸕鶿失舊磯
물고기를 입에 물고 부들 풀숲 내려앉네 / 銜魚飛入菰蒲去
《상동》

자적(自適) [이숙원]
가랑비 부슬부슬 처마 끝에 젖어드니 / 虛簷殘溜雨纖纖
베갯머리 싸늘함은 새벽녘에 더하누나 / 枕簟輕寒曉漸添
꽃잎 다 진 뒷뜰에 봄은 점점 깊어져 / 花落後庭春睡美
지지배배 제비는 주렴을 걷으라네 / 呢喃燕子要開簾
《상동 및 명시종》

칠석(七夕) [이숙원]
끊임없이 만나니 어찌 시름 있으리오 / 無窮會合豈
이별 잦은 뜬세상과 비교할 수가 없네 / 不比浮生有別離
하늘에서 아침저녁 만나는 걸 보고는 / 天上却成朝暮會
인간들은 일 년마다 만난다고 하누나 / 人間謾作一年期
《양조평양록(兩朝平壤錄)》

옛 이별 《열조시집》에 이르기를, “허경번(許景樊)의 자는 난설(蘭雪)로, 조선 사람인데, 그의 오빠는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이다.” 하였다. [허매씨(許妹氏)]
윙윙대며 구르는 두 개의 수레바퀴 / 轔轔雙車輪
하루에도 천만 바퀴 돌아가누나 / 一日千萬轉
맘 같은데 수레 함께 타지 못하고 / 同心不同車
헤어진 지 세월 많이 바뀌었구나 / 別離時屢變
수레바퀴 자국 아직 남아 있건만 / 車輪尙有跡
님의 생각 떠올려도 아니 보이네 / 相思獨不見
《열조시집》

우연히 느낌이 있어서 짓다 3수(三首) [허매씨]
하늘대는 창가의 난초 잎들은 / 盈盈窓下蘭
어쩌면 저다지도 향기로울까 / 枝葉何芬芳
가을바람 어느 날 저녁에 불자 / 西風一夕起
슬프게도 찬 서리에 시들었구나 / 零落悲秋霜
빼어났던 그 자태는 시들었지만 / 秀色消歇
맑은 향기 끝내 아니 사라졌구나 / 淸香終不死
그 모습 보노라니 나의 맘 아파 / 感物傷我心
흐른 눈물 옷소매를 적시는구나 / 流涕沾衣袂

옛집에는 대낮에도 사람이 없고 / 古屋晝無人
부엉이만 뽕나무서 홀로 우누나 / 桑樹鳴鵂鶹
섬돌에는 차가운 이끼 끼었고 / 蒼苔蔓玉砌
빈 다락엔 새들이 날아드누나 / 鳥雀飛空樓
그 옛날에 수레들이 몰려들던 곳 / 向來車馬地
지금에는 토끼 여우 사는 굴 됐네 / 今成狐兔丘
미덥구나 달관했던 사람들의 말 / 信哉達人言
근심 속에 다시 무얼 더 구하리오 / 慽慽復何求

오동나무 역산의 남쪽에 있어 / 梧桐生嶧陽
봉황새가 그 곁으로 날아들었네 / 鳳凰翔其傍
깃털에는 오색 빛깔 찬란도 하고 / 文章爛五色
울음 울며 천 길 높이 날아오르네 / 喈喈千仞岡
벼와 기장 그런 거는 안 쳐다보고 / 稻粱非所慕
대나무 열매만을 먹고 산다네 / 竹實迺其飧
그런데 어찌하여 오동나무에 / 奈何桐樹枝
올빼미와 소리개가 둥지 틀었나 / 棲彼鴟與鳶
《상동》

봉(篈) 오라버니에게 부치다 [허매씨]
개인 창엔 등불이 낮게 비추고 / 晴窓銀燈低
반딧불은 높은 누각 날아 넘누나 / 流螢度高閣
고요 속에 깊은 밤은 추워 가는데 / 悄悄深夜寒
쓸쓸하게 나뭇잎은 떨어지누나 / 蕭蕭秋葉落
산과 물이 가로막혀 소식 뜸하니 / 關河音信稀
깊은 시름 어떻게 풀 길이 없네 / 憂不可釋
청련궁에 계신 오빠 그리워할 제 / 遙想靑蓮宮
텅 빈 산속 담쟁이에 달빛만 밝네 / 山空蘿月白
《상동》

봉대곡(鳳臺曲) [허매씨]
진나라의 농옥과 소사 두 사람 / 秦女侶蕭史
아침저녁 봉대에서 퉁소 불었네 / 日夕吹參差
숭대에서 봉새 타고 멀리 떠나자 / 崇臺騎彩鳳
아득하여 쫓아갈 수가 없었네 / 渺渺不可追
하늘 땅과 더불어서 영원하리니 / 天地以永久
인간 세상 슬픔이야 어떻게 알리 / 那識人間悲
이내 몸이 눈물 참을 길이 없는 건 / 妾淚不可忍
그리운 이 영원토록 이별해서네 / 此生長別離
《상동》

망선요(望仙謠) 2수(二首) [허매씨]
구슬꽃은 흔들리고 푸른 새는 나는데 / 瑤花風細飛靑鳥
서왕모는 수레 타고 봉래도로 향해 가네 / 王母麟車向蓬島
난초 깃발 꽃 모자에 흰꿩 깃털 갖옷 입고 / 蘭旌蕊帔白雉裘
난간 기대 웃으면서 구슬풀을 뜯누나 / 笑倚紅欄拾瑤草
바람 불어 푸른 노을 치마는 나풀대고 / 天風吹擘翠霞裳
옥 가락지 금 노리개 낭랑한 소리 내네 / 玉環金佩聲琅琅
선녀들은 짝을 지어 옥 거문고 줄을 뜯고 / 素娥兩兩鼓瑤瑟
삼화수 나무 위엔 봄구름이 향기롭네 / 三花珠樹春雲香
동틀 무렵 부용각의 잔치가 다 끝나자 / 平明宴罷芙蓉閣
푸른 바다 청동이 흰 학을 타고 오네 / 碧海靑童來白鶴
옥퉁소 소리 속에 오색구름 피어나자 / 紫簫聲裏彩雲飛
이슬 젖은 은하수엔 새벽별이 떨어지네 / 露濕銀河曉星落
《상동》

왕교가 나를 불러 놀자고 하여 / 王喬招我游
곤륜산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네 / 期我崑崙墟
아침 나절 현포 꼭대기 올라 / 朝登玄圃峯
저 멀리 자색 구름 수레를 보네 / 遙望紫雲車
구름 수레 어쩜 그리 빛이 나는가 / 雲車何煌煌
현포로 가는 길은 아득만 하네 / 玄圃路茫茫
어느 사이 은하수를 날아 넘어서 / 倐忽凌天漢
해 뜨는 곳 부상 향해 날아가누나 / 飜飛向扶桑
부상은 몇천 리나 먼 곳이런가 / 扶桑幾千里
풍파가 길을 막아 멀기만 하네 / 風波路阻長
어려울 길 가고 싶지 않긴 하지만 / 吾欲捨此去
이처럼 좋은 기회 어찌 놓치랴 / 佳期安可忘
그대 맘이 어딨는 줄 알고 있기에 / 君心知何許
소첩 맘은 슬프기만 할 뿐이라오 / 賤妾徒悲傷
《명시종》 ○ 살펴보건대, 이 시는 《난설집(蘭雪集)》에는 실려 있지 않다.

상현곡(湘絃曲) [허매씨]
향기론 꽃 이슬 젖은 상강의 물굽이에 / 花泣露湘江曲
드문드문 가을 연기 하늘 밖에 푸르르네 / 點點秋煙天外綠
수부에 물결 차서 용은 밤에 우는데 / 水府涼波龍夜吟
젊은 처자 영롱한 옥 가볍게 두드리네 / 蠻娘輕戞玲瓏玉
난새 봉새 떠나가서 창오와 격했는데 / 離鸞別鳳隔蒼梧
빗기운 강에 스며 아침 해 흐릿하네 / 雨氣浸江迷曉珠
악기 소리 사라지자 돌이끼는 차가운데 / 神絃聲徹石苔冷
운무 같은 머리카락 강녀가 우는구나 / 雲鬟霧鬢啼江姝
허공 걸린 은하수는 높다라서 아득한데 / 瑤空星漢高超忽
금장식 단 깃털 가마 구름 사이 사라지네 / 羽蓋金支五雲沒
문밖에선 어부가 죽지가를 부르는데 / 門外漁郞唱竹枝
은 연못엔 님 그리는 달이 반쯤 걸려 있네 / 銀潭半掛相思月
《열조시집》

사시가(四時歌) 4수(四首) ○ 살펴보건대, 이 시는 《난설집》의 본문과는 전혀 다르니, 의심스럽다. [허매씨]
뜨락은 고요한데 살구꽃엔 비 내리고 / 院落深深杏花雨
백목련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누나 / 鸎聲啼遍辛夷塢
술 늘어진 깁 휘장에 봄추위 스며들고 / 流蘇羅幕春尙寒
향로에선 한 오라기 향연기가 피어나네 / 博山輕飄香一縷
거울 앞서 빗질하니 봄구름은 기나길고 / 鸞鏡曉梳春雲長
옥비녀에 트레머리 원앙새가 서려 있네 / 玉釵寶髻蟠鴛鴦
주렴은 반쯤 걷고 비취 휘장 내렸는데 / 斜捲重簾帖翡翠
금 굴레에 멋진 안장 님 어디로 가시었나 / 金勒雕鞍歎何處
뉘 집의 연못가서 생황 소리 울리는가 / 誰家池館咽笙歌
맑은 술 금 술잔에 달빛 내려 비치네 / 月照淸尊金叵羅
시름 많은 사람 홀로 밤잠을 못 이루니 / 愁人獨坐不成寐
깁 수건엔 날 밝은 뒤 눈물 자국 가득하리 / 絞綃曉起看紅淚
봄을 읊은 것이다.

나무 그늘 땅에 짙어 꽃 그림자 흐릿한데 / 槐陰滿地花陰薄
옥 담자리 은 침상의 붉은 누각 탁 트였네 / 玉簟銀牀敞朱閣
흰 모시옷 새로 지어 맑은 향기 물들이자 / 白苧新裁染汗香
미풍은 솔솔 불어 비단 휘장 흔드누나 / 輕風灑灑搖羅幕
옥 섬돌엔 석류꽃 다 떨어져 날아오고 / 瑤階飛盡石榴花
수정 주렴 햇빛 비쳐 그림자는 기울었네 / 日輾晶簾影欲斜
화려한 집 낮은 길어 낮잠 깊이 들었는데 / 雕梁晝永午眠重
비단 방석 위에는 옥비녀가 떨어지네 / 錦茵扣落釵頭鳳
이마 위엔 아침에 한 화장 흔적 번들대고 / 額上鵝黃膩曉粧
꾀꼴새 울음 속에 강남의 꿈 깨어나네 / 鸎聲啼起江南夢
남쪽 연못 처자들은 목란주를 타고 가 / 南塘女兒木蘭舟
어디에서 연을 따서 나루로 돌아오나 / 采蓮何處歸渡頭
가볍게 노 저으며 뱃노래를 부를 제 / 輕橈漫唱橫塘曲
물결 밖엔 석양빛에 산 다시 푸르구나 / 波外夕陽山更綠
여름을 읊은 것이다.

깁 장막에 추위 스민 가을밤은 길고 긴데 / 紗幮爽氣殘宵迥
텅 빈 뜰엔 이슬 내려 구슬 병풍 차가웁네 / 露滴虛庭玉屛冷
못의 연꽃 지는 소리 밤이라서 들리는데 / 池蓮粉落夜有聲
우물가의 오동잎 져 그림자도 아니 지네 / 井梧葉下秋無影
물시계는 똑똑대며 가을바람 타고 오고 / 金壺漏徹生西風
발 밖에선 찌륵찌륵 가을벌레 울어대네 / 珠簾喞喞鳴寒蟲
금 가위로 베틀 걸린 비단 싹둑 자르다가 / 金刀剪取機上素
님 그리는 꿈 끊기니 비단 장막 쓸쓸하네 / 玉關夢斷羅帷空
변방 가는 길손 편에 부칠 님 옷 지을 제 / 縫作衣裳寄遠客
등잔불만 쓸쓸하게 어둔 벽을 밝혀 주네 / 蘭燈熒熒明暗壁
눈물 속에 이별 고통 편지에다 써 놨는데 / 含啼自草別離難
역리는 날 밝으면 남쪽으로 떠난다네 / 驛使明朝發南陌
가을을 읊은 것이다.

한밤이라 동호 소리 찬 침상에 들리는데 / 銅壺一夜聞寒枕
깁 창으로 스민 달빛 원앙금침 비추누나 / 紗牕月落鴛鴦錦
까막까치 수차 도는 소리에 놀라 날고 / 烏鴉驚飛轆轤長
누각 앞엔 어느 사이 새벽빛이 밝아 오네 / 樓前倐忽生曙光
계집종이 금병에서 얼음 쏟아 내는데 / 侍婢金甁瀉鳴玉
주렴에는 성에 꼈고 연지는 향기롭네 / 曉簾水澁臙脂香
눈썹을 그리려나 그릴 수가 없기에 / 春山欲描描不得
난간에 올라서니 찬 서리가 하얗네 / 欄干佇立寒霜白
지난해엔 거울 비친 꽃과 버들 보면서 / 去年照鏡看花柳
호박빛 짙은 술을 한밤중에 기울였지 / 琥珀光深傾夜酒
비단 휘장 겹친 속에 생황 소리 가득한데 / 羅帳重重圍鳳笙
아름다운 얼굴 지금 그리움에 다 쇠했네 / 玉容今爲相思瘦
말을 타고 헤어진 뒤 봄 가고 또 봄 오건만 / 靑驄一別春復春
군마 타고 쇠창 잡고 한해의 가에 있네 / 金戈鐵馬瀚海濱
모래 바람 눈 날려서 초피 갖옷 차가우니 / 驚沙吹雪冷黑貂
규방의 좋은 밤은 어이 이리 아득한가 / 香閨良夜何迢迢
겨울을 읊은 것이다.
《상동》

처녀 적 친구에게 부치다 [허매씨]
옛날 놀던 길가에다 초가집 짓고 / 結廬臨古道
날마다 흘러가는 강물 본다오 / 日見大江流
거울에 새긴 난새 늙어만 가고 / 鏡匣鸞將老
꽃동산의 나비 벌써 가을이라오 / 園花蝶已秋
차가운 산엔 이제 기러기 날고 / 寒山新過鴈
저녁 비 속에 홀로 배 돌아오네 / 暮雨獨歸舟
비단 창문 닫혀져서 적막만 하니 / 寂寞牕紗掩
옛적 놀던 그 생각을 어이 견디리 / 那堪憶舊遊
《상동》

성(筬) 오라버니가 갑산(甲山)으로 유배 가는 것을 전송하다 [허매씨]
갑산으로 먼 귀양 길 떠나갈 제에 / 遠謫甲山去
강릉의 이별 길은 길기만 하네 / 江陵別路長
쫓겨나는 신하는 가 태부 같고 / 臣同賈太傅
쫓아내는 임금 어찌 초 회왕이랴 / 主豈楚懷王
강물 낮고 언덕에는 가을빛인데 / 河水平秋岸
관문에는 석양빛만 비치이누나 / 關門但夕陽
서릿바람 맞으면서 가는 기러기 / 霜風吹鴈翼
줄 끊겨서 가지런히 날지 못하네 / 中斷不成行
《상동》

변방에서. 큰 오라버니의 시를 차운하다. [허매씨]
구름 낀 돌밭 길을 말을 타고 올라서 / 侵雲石磴馬蹄穿
겹친 산 다 오르니 하늘 오른 것만 같네 / 陟盡重崗若上天
가을 깊어 어룡은 골짝 속에 잠들었고 / 秋晩魚龍眠
비 개이자 무지개 속에 폭포 떨어지네 / 雨晴虹蜺落飛泉
장군은 고각 불며 변방 급히 가는데 / 將軍鼓角行邊急
공주는 비파 뜯어 원망 소리 쏟아 내네 / 公主琵琶說怨偏
날 저물어 그대 위해 출새가를 부르니 / 日暮爲君歌出塞
칼 광채는 칼집 속서 부용처럼 피어나네 / 劍花騰躍匣中蓮
《상동》

큰 오라버니의 ‘고원의 망고대[高原望高臺]’ 시를 차운하다 [허매씨]
한 기둥 층진 누대 아득하니 솟았는데 / 層臺一柱壓嵯峨
서북쪽엔 변방 닿은 뜬구름 짙게 꼈네 / 西北浮雲接塞多
-살펴보건대, 《명시종》에는 ‘接’이 ‘入’으로 되어 있다.
철령에서 웅도 품은 용은 이미 떠나갔고 / 鐵峽霸圖龍已去
목릉에는 가을 되어 기러기 돌아오네 / 穆陵秋色鴈初過
산은 큰 땅 감돌아서 세 군 감싸 안았고 / 山大陸呑三郡
강은 들판 쪼개어서 모든 냇물 모여드네 / 水割平原納九河
만리 길에 올라보니 날은 장차 저무는데 / 萬里登臨日將暮
술 취한 채 산에 서서 홀로 슬피 노래하네 / 醉憑靑嶂獨悲歌
《상동 및 명시종》 ○ 《명시별재(明詩別裁)》에 이르기를, “심덕잠(沈德潛)이 말하기를, ‘풍격(風格)과 의도(意度)가 모두 좋은데도 전목재(錢牧齋)가 칠자(七子)의 시체(詩體)에 가깝다는 이유로 폄하하였다.’ 하였다.” 하였다.

둘째 오라버니 균(筠)의 ‘고원의 망고대’ 시를 차운하다 [허매씨]
까마득히 높다란 길 푸른 하늘 접하였고 / 崔嵬雲棧接靑霄
산봉우리 하늘 닿아 은하수의 표지 됐네 / 峯勢侵天作漢標
산맥이 북쪽 있어 세 강물 끊어졌고 / 山脈北臨三水絶
지형은 서쪽 낮아 두 강물 아득하네 / 地形西壓兩河遙
저녁 나절 안개 걷혀 외로운 성 나서니 / 煙塵暮捲孤城出
꼴풀에 가을 깊어 만 마리 말 날뛰네 / 苜蓿秋深萬馬驕
동쪽으로 변방 보니 북소리가 급하거니 / 東望塞垣鼙鼓急
어느 때에 다시금 곽표요가 일어나나 / 幾時重起霍
《명시종》

잡시(雜詩) [허매씨]
고운 금과 명월주로 만든 노리개 / 精金明月珠
그대에게 주어 차고 가게 하였네 / 贈君爲雜佩
길가에다 내버려도 안 아까우나 / 不惜棄道傍
새로 만난 연인에겐 주지를 마소 / 莫結新人帶
《상동》

최국보(崔國輔)의 시를 본받아 짓다 2수(二首) [허매씨]
소첩에게 금비녀가 하나 있어요 / 妾有黃金釵
시집올 때 머리에다 꽂고 온 거죠 / 嫁時爲首飾
오늘 길 떠나가는 님께 드리니 / 今日贈君行
천리 먼 곳에서도 날 생각하세요 / 千里長相憶
《상동》

연못에 자욱하게 봄비 내리자 / 春雨暗西池
찬 기운이 깁 장막에 스며드누나 / 輕寒襲羅幕
수심 속에 병풍에 기대 앉을 제 / 愁倚小屛風
담 모퉁이 살구꽃이 떨어지누나 / 墻頭杏花落
《열조시집》

빈녀음(貧女吟) 살펴보건대, 빈녀음과 가객사(賈客詞) 두 수의 시는 《난설집》 가운데 실려 있는데, 《열조시집》에서는 유여주(兪汝舟) 처의 작품으로 실려 있기에, 지금 바로잡아서 옮겨 실었다. [허매씨]
밤 깊도록 길쌈질 아니 쉬어서 / 夜久織未休
달그락 달그락 찬 베틀 우네 / 戞戞鳴寒機
베틀에 걸려 있는 한 필의 베로 / 機中一
마침내 어느 누구 옷을 지을까 / 終作阿誰衣
《상동》

가객사(賈客詞) [허매씨]
아침 나절 의주성 물가 떠나니 / 朝發宜都渚
북녘 바람 오량에 불어오누나 / 北風吹五兩
뱃머리서 제가끔 맘껏 마시고 / 船頭各澆酒
달밤에 일제히 노 저어 가네 / 月下齊盪
《상동》

새하곡(塞下曲) [허매씨]
변방이라 봄이 안 와 매화꽃 안 뵈는데 / 寒塞無春不見梅
변방 사람 불어 대는 피리 소리 들려오네 / 邊人吹入笛聲來
깊은 밤 꿈을 꾸다 고향 꿈에 놀라 깨니 / 夜深驚起思鄕夢
달빛만이 변방 산의 누대에 가득하네 / 月滿陰山百尺臺
《상동》

서릉행(西陵行) [허매씨]
전당강 그 강가에 바로 내 집 있어서 / 錢塘江上是儂家
오월이면 연꽃이 아름답게 피었지요 / 五月初開菡萏花
검은 머리 드리운 채 졸다가 깨어서는 / 半嚲烏雲新睡覺
난간에 기대어서 뱃노래를 불렀지요 / 倚欄閑唱浪淘沙
《상동》

유선곡(遊仙曲) 백 수 4곡을 뽑았다. [허매씨]
상서로운 바람 불어 푸른 노을 흩어지자 / 瑞風吹罷翠霞裙
손에다가 꽃을 들고 오색구름 기대 있네 / 手把天花倚五雲
구름 밖서 옥동자가 흰 호랑이 몰고 와서 / 雲外玉童鞭白虎
벽성에서 모군을 맞이하여 가누나 / 碧城邀取小茅君

얼음 집의 구슬 삽작 한 봄 내내 잠겼는데 / 氷屋珠扉鎖一春
지는 꽃과 안개 이슬 두건 위에 가득하네 / 落花煙露滿綸巾
동황이 요즘 들어 순행하는 일이 없어 / 東皇近日無巡幸
한가로이 요지에서 오색 기린 노누나 / 閑殺瑤池五色麟

푸른 정원 붉은 집 문 닫혀서 적적한데 / 靑苑紅堂閉寂寥
학이 조는 단조에 밤은 깊어 가는데 / 眠丹竃夜迢迢
선옹이 새벽녘에 밝은 달을 불러오자 / 仙翁曉起喚明月
바다 안개 흐린 속에 퉁소 소리 들리누나 / 微隔海霞洞簫

선녀 입은 비단 치마 색깔 연기 비슷한데 / 六葉羅裙色曳煙
완랑을 불러 내어 지초 밭에 오르누나 / 阮郞相喚上芝田
생황 소리 꽃 사이로 점점 더 멀어지니 / 笙歌暫向花間
이는 바로 인간 세상 일만 년이 흐른 거네 / 便是人一萬年
《양조평양록》

궁사(宮詞) 2수(二首) [허매씨]
붉은 비단 보자기로 건계차를 싼 뒤에 / 絳羅袱裏建溪茶
시녀가 봉함하고 비단 꽃을 다는구나 / 侍女封緘結綵花
칙 자가 써진 조서 비스듬히 꽂아서는 / 斜揷紫泥書勅字
내관 시켜 제후 집에 나누어 보내누나 / 內官分送五侯家

채색 비단 휘장에다 자색의 비단 방석 / 綵羅帷紫羅茵
솔솔 피는 향기가 모르는 새 스며드네 / 香射霏微暗襲人
내일 되어 꽃을 보러 황제 와서 머물면 / 明日賞花留玉輦
깔개 자리 주렴 처마 한꺼번에 환해지리 / 地衣簾額一時新
《상동》

떠나가는 것을 전송하다 《열조시집》에 이르기를, “덕개씨는 고려의 기생이다.” 하였다. [덕개씨(德介氏)]
비파 소리 속에다가 이별 정을 붙이노니 / 琵琶聲裏寄離情
동풍 속에 원망 스며 곡 제대로 아니 나네 / 怨入東風曲不成
깊은 밤 고당에선 향기론 꿈 싸늘하니 / 一夜高堂香夢冷
비단 치마 위에는 눈물 흔적 선명하리 / 越羅裙上淚痕明
《열조시집》

화장 씻은 물을 읊다 살펴보건대, 이 기생은 바로 평양부의 기생 운혜(雲慧)로, 예문지(藝文志) 잡철조(雜綴條)에 상세히 나온다. [조선의 기생(妓生)]
성긴 비는 가을이라 햇살과 함께 날고 / 疎雨秋兼漏日飛
드는 밀물 저녁이라 석양 띠고 떨어지네 / 回潮晩帶斜陽落
《서하집(西河集)》

이상은 본조(本朝)의 시이다.


 

[주D-001]벗에게 주다 : ‘廣陵’에서 ‘堪誇’까지의 이 부분은 《상촌집》 권13에는 ‘廣陵三月已飛花 漢口孤帆落日斜 新結茅莰分洞府 欲隨麋鹿作生涯 平坡細雨催耕犢 曲渚游魚上釣叉 擧世盡從忙裏老 似君行樂獨堪誇’로 되어 있다.
[주D-002]들판에는 …… 재촉하고 : 원문대로 하면 뜻이 통하지 않기에 《상촌집(象村集)》에 따라 번역하였다.
[주D-003]嫩賦 : 원문에는 ‘嫩婦’로 되어 있는데, 《석주집(石洲集)》 권3에는 ‘嫩不’로 되어 있으며, 사고전서본 《명시종(明詩綜)》 권95에는 ‘嫩賦’로 되어 있다. 사고전서본 《명시종》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D-004]우번(虞飜)은 …… 늙었고 : 우번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 사람으로 손권(孫權)을 섬겼는데, 자주 직언하여 미움을 받던 중 술자리에서의 실수로 인해 교주(交州)로 쫓겨났다가 거기에서 늙어 죽었다. 후대에는 어진 선비가 원통하게 유배되어 울분 속에 지낸다는 전거로 쓰게 되었다.《三國志 吳書 卷57 虞飜傳》
[주D-005]왕찬(王粲)은 …… 읊었네 : 한(漢)나라 말에 왕찬이 난을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의지해 있으면서 뜻을 얻지 못하자 누각에 올라가서 등루부(登樓賦)를 읊어 시름을 달래었다.《三國志 魏志 卷21 王粲傳》
[주D-006]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5과 《북저집(北渚集)》 권3에는 ‘幾’로 되어 있다.
[주D-007]想得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5에는 ‘相約’으로 되어 있다.
[주D-008]견정인(牽情引) : ‘熊州’에서 ‘復春’까지의 이 부분은 《하곡집(荷谷集)》하곡선생시초보유(荷谷先生詩鈔補遺)에는 ‘雄州樓觀飛雲外 白簡霜威凌皁蓋 組練三千引綉衣 羅裙二八搖鳴珮 九華帳深暖氤氳 寂寂瓊籤午夜分 苧里佳人嬌薦枕 巫山仙子去行雲 牽情夢罷首歸路 別恨迢遰煙郊樹 妾身苦作藕中絲 郞意何如荷上露 錦水東西楊柳新 往來多少斷腸人 攀枝落日應怊悵 芳草年年空復春’으로 되어 있다.
[주D-009]백간(白簡) : 도교(道敎)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고하는 문서를 말한다. 옥간(玉簡)이라고도 한다.
[주D-010]조련(組練) : 정예로운 군사를 가리킨다. 조(組)는 거사(車士)들이 입는 군복이고, 연(練)은 보사(步士)가 입는 군복이다.
[주D-011]오야(午夜) : 한밤중으로, 밤 열두 시를 가리킨다.
[주D-012]연뿌리 속 실[藕中絲] : 연뿌리를 절단하여도 그 가운데에 있는 실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간의 관계는 끊어졌으나, 서로 간에 그리는 마음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D-013]연잎 위의 이슬 : 연잎 위에 있는 이슬이 아침이 되면 쉽사리 사라지는 것처럼 마음이 빨리 변한다는 뜻이다.
[주D-014]푸른 새[靑鳥] : 전설 속에 나오는 새로, 서왕모(西王母)가 기르던 신조(神鳥)인데, 이 새를 가지고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주D-015]산을 …… 이별하다 : ‘花宮’에서 ‘頭立’까지의 이 부분은 《하곡집》 하곡선생시초(荷谷先生詩鈔)에는 ‘花宮星斗寒垂映 重疊春山聞夜磬 楚客初招萬里魂 胡僧暫起經年定 王孫草綠漸芳菲 松月留人歸未歸 歡喜嶺頭叢桂暗 芙蓉峯下怪禽飛 荷衣蕙帶宿雲濕 寶殿沈沈鬼神入 明日昭陽江上行 知君惆愴溪頭立’으로 되어 있다.
[주D-016]화궁(花宮) : 불사(佛寺)를 가리킨다.
[주D-017]푸르른 왕손초(王孫草) : 회남소산(淮南小山)이 지은 초사(楚辭)인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의 노닒이여 돌아가지 않고, 봄풀이 자람이여 우거졌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에서 온 말로, 고향 땅을 떠난 사람의 수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을 말한다.
[주D-018]경낭사(鏡囊詞) : ‘江上’에서 ‘鏡面’까지의 이 부분은 《하곡집》 하곡선생시초에는, ‘江南女兒當牕織 染作春潭千丈黑 十襲珍包入尙方 五丁輸取歸東國 幾年箱篋有餘香 今日裁縫明鏡囊 囊裏靑銅明似月 鏡中白髮冷於霜 靑銅可磨石可轉 唯有此心終不變 欲識此心長憶君 日日揭囊看鏡面’으로 되어 있다.
[주D-019]오정(五丁) : 전설 속에 나오는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가리킨다. 하늘이 초왕(楚王)을 위하여 다섯 명의 역사를 탄생시켰는데, 그들의 힘은 산을 들어 올릴 정도였다.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촉왕에게 다섯 명의 미녀를 바치자, 초왕이 이들 다섯 명의 역사를 보내어 맞아오게 하였는데, 미녀를 데리고 오다가 뱀이 산의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다섯 역사가 뱀을 끌어내었다. 그러자 산이 무너졌으며, 진나라의 다섯 미녀는 산 위로 올라가서 돌로 화하였다고 한다.《藝文類聚 卷7》
[주D-020]황공(黃公) : 선조 15년(1582)에 사신으로 나온 한림원 편수 황홍헌(黃洪憲)을 가리킨다.
[주D-021]월탁(越槖) :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육가(陸賈)가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면서 남월 왕이 주는 재물을 싸 가지고 온 데서 유래한 말로, 사신의 짐꾸러미를 말한다.
[주D-022]등나무는 …… 거고 :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섬계(剡溪)의 물가에는 등나무가 많이 자라는데, 이를 가지고 질이 아주 좋은 종이를 만든다고 한다. 여기서는 아주 좋은 종이로 부채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주D-023]찬 대는 …… 거네 : 상수는 동정호(洞庭湖)로 흘러 들어가는 강 이름으로, 이 강가에는 반죽(斑竹)이 자란다.
[주D-024]글씨는 …… 남아 있고 : 일소(逸少)는 왕희지(王羲之)의 자(字)이다. 왕희지가 한번은 죽선(竹扇)을 가지고 있는 노파를 만나서 부채에 글씨를 써 주자 그 노파가 화를 내었다. 이에 왕희지가 “왕 우군(王右軍)의 글씨라고 하면서 백전(百錢)을 받으라.” 하였다. 노파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 부채를 사려고 하였으니, 왕 우군의 글씨가 사람들에게 중함을 받는 것이 이와 같았다.《晉書 卷80 王羲之列傳》
[주D-025]값은 …… 높아졌네 :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어려서부터 이름이 높았는데, 경사(京師)에 머물고 있을 적에 그의 향인(鄕人) 가운데 노자가 떨어진 사람이 있었다. 사안이 그를 불러다가 물으니, 그가 “포규선(蒲葵扇) 5만 자루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사안이 부채 하나를 집어 들고 부치자 경사의 사인(士人)들이 앞 다투어 부채를 사 가 값이 몇 배로 뛰었다고 한다.《晉書 卷79 謝安列傳》
[주D-026]한 글자의 기림[一字褒] : 《춘추》의 필법(筆法)이 아주 엄하여 한 글자마다 포폄의 뜻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범녕(范寧)의 춘추곡량전서(春秋穀梁傳序)에, “한 글자로 기리는 것이 화곤(華袞)을 주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한 글자로 폄하는 것이 시장에서 매질을 당하는 것보다 더 치욕스럽다.” 하였다.
[주D-027]선조(仙曹) : 상서성(尙書省)에 소속된 관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황홍헌을 가리킨다.
[주D-028]포규선(蒲葵扇) : 야자수 잎으로 만든 부채를 말한다.
[주D-029]滿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4에는 ‘兩’으로 되어 있다.
[주D-030]오자어(吳子魚) : 선조 30년(1597)에 우리나라를 구원하러 나왔다가 우리나라의 시를 모아 《조선시선》을 편집한 오명제(吳明濟)를 가리킨다.
[주D-031]태어난 …… 형제니 :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더라도 형제간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말이다. 도잠(陶潛)의 잡시(雜詩)에, “땅에 떨어져서 형제가 되었으니, 어찌 반드시 골육지친이랴.[落地爲兄弟 何必骨肉親]” 하였다.
[주D-032]빙호(氷壺) : 얼음이 담긴 옥그릇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인품과 덕성이 청백하고 개결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D-033]타주(唾珠) : 기침과 침이 모두 구슬이 된다[咳唾成珠]는 뜻으로,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가리킨다.
[주D-034]등룡(登龍) : 명망 있는 자가 직접 이끌어 주어서 높은 데 올라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 때 이응(李膺)이 높은 명망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가 불러 준 선비들을 보고는 사람들이 ‘용문(龍門)에 올랐다’고 하였다.《後漢書 卷67 黨錮列傳 李膺》
[주D-035]노중련(魯仲連) :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장수이다. 일찍이 조(趙)나라에 머물러 있을 적에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 정세가 위급하였다. 그때 위(衛)나라에서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 왕을 황제(皇帝)로 추대하여 군대를 철수시키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노중련이 진나라는 예의를 버리고 살인만을 일삼는 무도한 나라임을 역설하면서, 만약 진나라가 칭제(稱帝)한다면 자신은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하여 그 일을 중지시켰다.《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주D-036] : 원문에는 ‘扶’로 되어 있는데, 뜻이 잘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037]자야(子野) : 고려 때의 문신인 강호문(康好文)의 자인 듯하다.
[주D-038]사조(謝眺) : 남제(南齊) 때 사람으로, 자가 현휘(玄暉)이며, 글씨를 잘 썼고 시를 잘 지었는데, 특히 오언시를 잘 지었는바, 시가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으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南齊書 卷47 謝脁列傳》
[주D-039]좌사(左思) : 진(晉)나라 때 사람으로 시문을 잘 지었는데, 특히 부(賦)를 짓는 솜씨가 뛰어나서 제도부(齊都賦), 삼도부(三都賦) 등을 지었으며, 그가 지은 글을 베끼기 위하여 사람들이 앞 다투어 종이를 산 탓에 낙양(洛陽)의 지가(紙價)가 올랐다고 한다.《晉書 卷92 左思列傳》
[주D-040]동방삭(東方朔)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으로 시중(侍中)을 지냈는데, 변설(辯舌)에 능하고 해학(諧謔)을 좋아하여 이로써 황제를 깨우쳤다.
[주D-041]남곽(南郭) :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남곽자기(南郭子綦)를 가리킨다. 남곽자기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동생으로, 안석(案席)에 기대어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었는데, 멍한 모습이 자신의 존재조차 잊은 듯하였다. 후세에는 상대와 나의 존재를 잊은 채 청고하고 담박하게 지내는 사람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주D-042]동관(彤管) : 자루가 붉은 붓으로, 한나라 때 달마다 상서랑(尙書郞)에게 동관 한 쌍을 하사한 데서 상서랑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D-043]황각(黃閣) :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이다.
[주D-044]운문사(雲門寺) :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 회계현(會稽縣)에 있는 절 이름이다.
[주D-045]옥부(玉斧) :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인 허홰(許翽)의 소명(小名)이다.
[주D-046]우개(羽蓋) : 새 깃으로 장식한 수레로, 신선이 타는 수레를 가리킨다.
[주D-047]현포(玄圃) : 전설 속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고 하는 신선이 사는 곳인데, 그 속에는 기화요초와 기암괴석이 있다고 한다.
[주D-048]오리(傲吏) : 일반적인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관리를 말한다.
[주D-049]조창(趙昌) : 송나라 때의 화가로, 특히 꽃과 과일을 잘 그렸다.
[주D-050]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2에는 ‘雀’으로 되어 있다.
[주D-051]포곡(布穀) : 뻐꾸기의 별칭이다. 뻐꾸기가 울 때 ‘뻐꾹뻐꾹[布穀布穀]’ 하고 울어 마치 ‘씨 뿌리라, 씨 뿌리라.’ 하는 듯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주D-052] : 원문에는 ‘佛’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053] : 원문에는 ‘開’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054]호배(虎拜) : 대신(大臣)이 천자를 배알하여 절하는 것을 말한다. 호(虎)는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 소목공(召穆公)의 이름이다.
[주D-055]보불(黼黻)과 성신(星辰) : 모두 옛날에 황제의 예복(禮服)에 수놓았던 무늬인데, 보는 도끼 모양의 무늬이고, 불은 기(己) 자 두 개를 반대로 한 무늬이며, 성신은 별을 상징하는 무늬이다.
[주D-056]월상(越裳) : 남해(南海)에 있다고 하는 옛날 나라의 이름이다.《논형(論衡)》 회국(恢國)에, “성왕(成王) 때 월상에서 꿩을 바쳤다.” 하였다. 월상(越常)이라고도 한다.
[주D-057]천년에 …… 만나서 : 황하의 물은 본디 탁하여서 맑을 때가 없으나, 천년마다 한 차례씩 맑아지는데, 이는 태평 시대의 조짐이라고 한다.
[주D-058]두 비[二妃] : 순(舜) 임금의 두 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가리킨다.
[주D-059]억석행(憶昔行)을 …… 주다 : ‘嗟嗟’에서 ‘聖明’까지의 이 부분은 《손곡시집(蓀谷詩集)》 권1에는 ‘嗟嗟天子聖 命將出東征 旌旗蔽長空 炮火雷電聲 首事箕王都 破竹遊刃迎 漢京賊先遁 大駕隨公卿 草創朝儀在 庶見王都淸 一旅復夏業 簡策傳諸經 無忘在莒心 日日望聖明 朝廷共協力 臣子盡忠誠 誰能更多事 從此致昇平’으로 되어 있다.
[주D-060]거(莒) 땅에 있을 때의 맘 : 곤액을 당했을 때 가졌던 마음을 말한다. 춘추전국 시대 때 제(齊)나라에 난이 발생하자 공자(公子) 소백(小白)이 거 땅으로 유망(流亡)하였다가 돌아와서 임금 자리에 올라 환공(桓公)이 되었다.
[주D-061]이계헌(李季獻) : 계헌은 선조(宣祖) 때의 서화가인 이우(李瑀)의 자이다.
[주D-062]행전(行殿) : 행궁(行宮)으로, 이때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인해 의주(義州)로 파천해 있었다.
[주D-063]허 전한(許典翰) : 허봉(許篈)을 가리킨다. 허봉은 이이(李珥)의 직무상 과실을 탄핵하였다가 선조 17년(1584)에 유배되었다.
[주D-064]北行 : 《손곡시집》 권4에는 ‘此行’으로 되어 있다.
[주D-065]조두(刁斗) : 솥처럼 생긴 기구인데, 군중(軍中)에서 낮에는 밥을 짓는 데 쓰고 밤에는 경보를 알리는 데 썼다.
[주D-066]서른 살에 …… 않으리라 : 언젠가는 등용해 줄 것이란 뜻이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젊어서 용모가 아주 준수하였는데, 근심으로 인해 서른두 살의 나이에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한다.
[주D-067]새옹(塞翁) : 인생의 길흉화복은 무상하다는 뜻인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를 말한다. 옛날에 변방 근처에 사는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도망치자 사람들이 모두 위로하니, 그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몇 달 뒤에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여러 마리 데리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축하하니,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자, 사람들이 위로하니,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오랑캐들이 침입해 오자 다른 장정들이 모두 나가 싸우다가 죽었으나, 그의 아들만은 다리가 부러진 관계로 온전할 수 있었다.《淮南子 人間訓》
[주D-068] : 《손곡시집》 권4에는 ‘用’으로 되어 있다.
[주D-069]용천검(龍泉劍) : 보검의 이름으로, 진(晉)나라 때 오(吳)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이 보검을 얻었다고 한다.
[주D-070] : 《손곡시집》 권4에는 ‘街’로 되어 있다.
[주D-071]오체(吳體) : 시체(詩體) 가운데 하나로, 통속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천근(淺近)한 비유를 써서 지어 강남 지방 민가(民歌)의 풍미(風味)가 있는 시를 말한다.
[주D-072] : 원문에는 ‘帳’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손곡시집》 권4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D-073]합환상(合懽床) : 두 사람이 잘 수 있도록 만들어진 침상으로, 신혼 부부의 침상을 말한다.
[주D-074]소동방(小洞房) : 신혼 부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방을 말한다.
[주D-075] : 《손곡시집》 권4에는 ‘粧’으로 되어 있다.
[주D-076]금낭(錦囊) :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로, 주로 시고(詩稿)나 중요한 문서를 넣는 주머니이다
[주D-077] : 원문에는 ‘沙’로 되어 있는데, 《손곡시집》에는 ‘紗’로 되어 있다. 번역하면서는 《손곡시집》을 따랐다.
[주D-078]왕손초(王孫草) : 회남소산(淮南小山)이 지은 초사(楚辭)인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의 노닒이여 돌아가지 않고, 봄풀이 자람이여 우거졌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에서 온 말로, 고향 땅을 떠난 사람의 수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을 말한다.
[주D-079]오가(吳歌) : 오 지방, 즉 강남 지방의 노래를 말한다.
[주D-080]풀싸움[鬪草] :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하는 놀이로, 풀의 우열을 다투는 놀이이다.
[주D-081] : 《손곡시집》 권6에는 ‘均’으로 되어 있다.
[주D-082]청동(靑童) : 전설 속에 나오는 선동(仙童)을 가리킨다.
[주D-083]완릉화(腕凌華) : 전설 속에 나오는 서왕모(西王母)의 시녀(侍女) 이름이다.
[주D-084] : 원문에는 ‘銅’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손곡시집》 권6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D-085]삼주(三洲)의 소옥(小玉) 집 : 삼주는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말하고, 소옥은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의 시녀를 가리킨다.
[주D-086]천장(天章) : 천문(天文)과 같은 말로, 하늘의 문장을 말한다.
[주D-087]허황전(虛皇殿) : 허황은 도교(道敎)에 나오는 신(神)의 이름이다.
[주D-088]옥허(玉虛) : 도교에서 말하는 선궁(仙宮)으로, 옥제(玉帝)가 여기에 산다고 한다.
[주D-089]오운거(五雲車) : 신선이 타는 오색구름 수레를 말한다.
[주D-090]삼천(三天) : 도교에서 말하는 청미천(淸微天), 우여천(禹餘天), 대적천(大赤天)을 가리킨다.
[주D-091]삼청경(三淸境) : 도교에서 말하는 천상 세계로, 삼동(三洞)의 교주(敎主)가 사는 최고의 선경(仙境)인 옥청경(玉淸境), 상청경(上淸境), 태청경(太淸境)의 세 선경을 말한다.
[주D-092]양성(羊城) : 오양성(五羊城)으로, 광주(廣州)의 별칭이다. 옛날에 다섯 신선이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이곳에 왔으므로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주D-093]활락도(豁落圖) : 도교의 부록(符籙) 이름이다. 이백(李白)의 ‘유별조남군관지강남(留別曹南群官之江南)’ 시에, “몸에는 활락도를 차고 허리에는 호반낭을 드리웠네[身佩豁落圖 腰垂虎盤囊]” 하였다.
[주D-094] : 원문에는 ‘割’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095]목제(木帝) : 봄을 주관하는 동방의 신인 복희(伏羲)로, 목덕(木德)으로 왕 노릇을 하므로 목제라고 칭한다.
[주D-096]청도(淸都) : 전설 속에 나오는 천제(天帝)가 사는 궁궐을 가리킨다.
[주D-097]노군(老君) : 이노군(李老君),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약칭으로,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주D-098]현명(玄冥) : 북방(北方)의 신으로, 동신(冬神)을 말한다. 《예기》 월령(月令)에, “맹동, 중동, 계동의 달은 그 제(帝)는 전욱(顓頊)이고 그 신(神)은 현명(玄冥)이다.” 하였다.
[주D-099] : 《손곡시집》 권6에는 ‘明’으로 되어 있다.
[주D-100]이원(梨園) :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속악(俗樂)을 익히게 하던 곳인데, 전하여 악공들이 있는 곳을 말한다.
[주D-101] : 《손곡시집》 권6에는 ‘少’로 되어 있다.
[주D-102]허억봉(許憶鳳) : 《손곡시집》 권6에는 ‘許億鳳’으로 되어 있다.
[주D-103]粧奩蟲網 :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 부록 1에는 ‘羅幃香盡’으로 되어 있다.
[주D-104]단수(檀樹) …… 남아 있네 : 단수(檀樹)의 ‘檀’은 원문에는 ‘壇’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단수는 박달나무를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으로 삼고는 평양에 도읍하고 단군(檀君)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 평양에 단군사(檀君祠)가 있다.《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6책 평양부》
[주D-105] : 원문에는 ‘何’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06]용의 …… 자 : 옛날에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자, 신하와 후궁 가운데 황제를 따라서 올라간 자가 70여 명이었으며, 미처 용의 몸에 올라타지 못한 자들이 용의 수염을 잡고 올라갔는데, 수염이 끊어져서 황제가 가지고 있던 활과 함께 떨어졌다. 이에 사람들이 활과 용의 수염을 잡고 통곡하였다고 한다.《史記 卷28 封禪書》
[주D-107]태사(太師) :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긴 뒤 은나라의 태사로 있던 기자를 우리나라에 봉하였다고 하는데, 기자의 묘가 지금 평양에 있다.《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6책 평양부》
[주D-108]공림(孔林) : 공자(孔子) 및 그 후예들의 묘역(墓域)으로,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 있다.
[주D-109]경장(瓊漿) : 신선이 마시는 음료수이다. 옛날에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동남쪽의 남계(藍溪)의 다리 곁에 선굴(仙窟)이 있었는데, 당나라의 배항(裴航)이 이곳을 지나다가 선녀인 운영(雲英)을 만나서 선인들이 마시는 음료인 경장을 얻어마셨다고 한다.《傳奇 裴航》
[주D-110]홍가(鴻嘉) : 한나라 성제(成帝)의 연호로, 기원전 20년부터 17년까지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
[주D-111]후정화(後庭花) : 악부(樂府)의 가곡(歌曲) 이름으로, 남조(南朝) 때 진(晉)나라 후주(後主)가 지었는데, 소리가 몹시 애달파서 후대에는 망국(亡國)의 음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주D-112]조천석(朝天石) : 부벽루(浮碧樓) 아래 기린굴 곁에 있는 바위인데,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이 이곳에서 말을 타고 하늘에 조회하였다고 한다.《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6책 평양부》
[주D-113]기린굴(麒麟窟) : 부벽루 아래에 있는 굴인데,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이 이곳에서 기린말을 길렀다고 한다.《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제6책 평양부》
[주D-114]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4에는 ‘卷’으로 되어 있다.
[주D-115]봉래(蓬萊) :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여기에는 신선들이 살며 불사약(不死藥)이 있고 새와 짐승이 모두 희며,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주D-116] : 《성소부부고》 부록 1에는 ‘壺’로 되어 있다.
[주D-117]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4에는 ‘紀’로 되어 있다.
[주D-118]구면(具) : 원문에는 ‘具寇’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D-119]등주(登州)에서 …… 듣다 : ‘擊柝’에서 ‘肝惻’까지의 이 부분은 《청음집(淸陰集)》 권9에는 ‘擊柝復擊柝 夜長不得息 何人寒無衣 何卒飢不食 萬家各安室 獨向城上宿 豈是親與愛 亦非相知識 自然同胞義 使我心肝惻’으로 되어 있다.
[주D-120]추평(鄒平) 사람 장 충정공(張忠定公) : 도찰원 좌도어사(都察院左都御史)를 지낸 충정공 장연등(張延登)을 가리킨다.
[주D-121]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4에는 ‘袍’로 되어 있다.
[주D-122]철산취(鐵山觜) : 우리나라 사신들이 해로(海路)로 중국에 갈 때 경유하던 곳으로, 여순구(旅順口) 부근에 있다.
[주D-123] : 원문에는 ‘文’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24]등주(登州) …… 차운하다 2수(二首) : 첫 번째 수의 ‘澹雲’에서 ‘相思’까지의 원문은 《청음집》 권9에는 ‘澹雲輕雨小姑祠 佳菊衰蘭八月時 機石近依牛女渚 桂花低暎廣寒枝 夢回孤枕鯨濤撼 風散遙空鴈列差 無限旅愁消不得 喜君詩句慰羈離’로 되어 있다.
[주D-125] : 원문에는 ‘古’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청음집》 권9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D-126]역사 …… 사람 : 진(晉)나라의 사상(謝尙)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김상헌 자신을 가리킨다. 사상이 가을 달밤에 원굉(袁宏)과 함께 뱃놀이를 하면서 영사시(詠史詩)를 읊었다.《晉書 卷92 文苑列傳 袁宏》
[주D-127]신주(神州) : 중국을 말한다. 전국 시대 때의 학자인 추연(鄒衍)이 중국을 신주라고 하였는데, 그 뒤로는 중국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D-128]선실(宣室) : 황제가 거처하는 정궁(正宮)을 가리킨다.
[주D-129]창을 …… 달려가네 : 창을 잡은 낭관은 집극랑(執戟郞)으로 있었던 동방삭을 가리키고, 녹구(綠褠)는 일하는 데 편하게 하기 위해 옷소매를 좁게 만든 옷을 말한다.
[주D-130] : 원문에는 ‘鞲’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31]수서(首鼠)나 원구(轅駒) : 수서는 쥐가 의심이 많아서 쥐구멍에서 머리만 내놓고 관망한다는 뜻으로, 어느 편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것을 말하며, 원구는 멍에를 메고 수레를 끄는 데 익숙하지 않은 망아지를 말하는데, 힘이 부족하거나 기국이 작은 사람을 뜻한다.
[주D-132]歸去 : 《청음집》 권9에는 ‘宿債’로 되어 있다.
[주D-133]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4에는 ‘間’으로 되어 있다.
[주D-134]遶江涯 : 《청음집》 권9에는 ‘入江沱’로 되어 있다.
[주D-135]화익(畫鷁) : 익(鷁)은 바람을 잘 타는 새로, 뱃사람들이 뱃머리에다 채색 비단으로 익새의 모양을 만들어 달아 풍랑 속에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주D-136]석교(石橋)는 …… 끊어졌고 : 진시황(秦始皇)이 바다를 건너서 해돋는 곳을 보고자 하여 돌다리를 놓으려고 하였는데, 해신(海神)이 나타나서 다리 기둥을 세워 주었다. 진시황이 이를 고맙게 여겨 만나 보려고 하니, 해신이 말하기를, “내 모습이 추하니 내 모습을 그리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만나겠다.” 하였다. 이에 진시황이 들어가 해신과 만났는데, 진 시왕의 좌우 사람들이 몰래 해신의 발을 그렸다. 그러자 해신이 성을 내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였다. 진시황이 말을 타고 곧장 나왔는데, 말 뒷다리가 석교에서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석교가 무너졌다.《藝文類聚 卷79》
[주D-137]성사(星槎)는 …… 통과했네 : 성사는 한(漢)나라 장건(張騫)이 타고 갔다는 뗏목을 말한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한나라 무제(武帝)가 장건을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보내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을 타고 가다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 하였다.
[주D-138]왕백옥(汪伯玉)과 왕원미(王元美) : 백옥은 명나라 왕도곤(汪道昆)의 자이고, 원미는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의 자이다. ‘汪伯玉’이 원문에는 ‘王伯玉’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D-139]신안(新安) : 당시 왕세정과 함께 문단(文壇)의 맹주로 추앙받던 신안 사람 이반룡(李攀龍)을 가리킨다.
[주D-140]길 빌린 건[假途] :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면서 명나라를 치러가니 길을 빌려 달라는 핑계로 쳐들어왔다.
[주D-141]큰 돼지가 마구 날뛴 것[豕奔] : 큰 돼지는 성질이 포악하고 잔혹스러운 자를 말한다. 《춘추좌씨전》 정공(定公) 4년 조에, “오(吳)가 큰 돼지와 큰 뱀이 되어 상국(上國)을 범하였다.” 하였다.
[주D-142]솥 물은 건[問鼎] : 천자의 자리를 빼앗고자 도모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우(禹) 임금이 구정(九鼎)을 주조하였는데, 삼대(三代) 시대 이후로 이를 국보로 여겼다. 주(周)나라 정왕(定王) 때 초왕(楚王)이 육혼(陸渾)의 오랑캐들을 정벌하고서 주나라의 강역 안에서 관병(觀兵)을 하자, 정왕이 사신을 보내어 위로하였다. 이때 초왕이 그 사신에게 솥의 대소와 경중을 물었는데, 이는 주나라를 쳐서 천자 자리를 빼앗을 뜻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春秋左氏傳 宣公3年》
[주D-143]삼도(三都) : 한성(漢城), 개성(開城), 평양(平壤)을 가리킨다.
[주D-144]여후(黎侯)가 …… 같았고 : 임금이 나라를 잃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나라의 임금이 적인(狄人)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위(衛)나라로 도망쳐 있었다.
[주D-145]진(晉)나라 …… 같았네 : 임금이 파천(播遷)하여 떠돌았다는 뜻이다. 진나라 신하는 자범(子犯)으로, 진(秦)나라에서 진(晉)나라 공자(公子) 중이(重耳)를 본국으로 돌려보낼 적에, 일행이 황하(黃河)에 이르자 중이를 모시고 가던 신하 자범이 중이에게 말하기를, “신이 공자님의 말고삐를 잡고 공자님을 따라 천하를 돌아다녔으니, 신이 저지른 죄가 많습니다. 그러니 제가 여기에서 도망치도록 해 주십시오.” 하였다.《春秋左氏傳 僖公24年》
[주D-146]위급하다 …… 생각했나 : 초(楚)나라의 신포서(申包胥)가 진(秦)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한 고사를 말한다. 춘추 시대 때 오자서(伍子胥)가 오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에 침입하자, 신포서가 진(秦)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였는데,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조정의 담에 기대어서 통곡하였다. 그러자 진나라의 애공(哀公)이 감동하여 구원병을 내어 주었으므로, 그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와서 국난을 평정하였다.《淮南子 修務訓》
[주D-147]금결(金玦) : 한쪽이 트인 금으로 만든 고리로, 출정 나가는 장군이 차고 가는 것이다. 전국 시대 때 진(晉)나라 신생(申生)이 동산(東山)을 정벌할 적에 이것을 차고 나갔다.
[주D-148]대궐 …… 얻었으니 : 궁정 안에서 시종하는 사람으로서 문무의 재주를 겸비한 자를 말한다. 양호(楊鎬)가 진사(進士) 출신으로 우첨도어사(右僉都御史)를 지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은 전국 시대 때 조(趙)나라의 명장이다.
[주D-149]문성(文星) : 문창성(文昌星)으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이다.
[주D-150]노거(鷺車) : 수(隋)나라 때 만든 수레로, 수레 기둥 꼭대기에 나무로 백로 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고취거(鼓吹車)라고도 한다.
[주D-151]묵질(墨絰) : 검은 상복(喪服)이다. 고대에 거상(居喪)을 함에 있어서 집에 있을 적에는 백색 상복을 입고 거상하였는데, 전쟁이 있어서 군직(軍職)을 맡아 출정할 경우에는 검은색 상복을 입고 출정하였다. 진(晉)나라 양공(襄公)이 문공(文公)의 상을 치르지 못한 채 출정(出征)하면서 이 옷을 입고 나갔다. 양호가 요동 포정사(遼東布政使)로 있다가 상을 당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중에 출정하라는 명을 받았으므로 한 말이다.
[주D-152]날짜 …… 잠기었고 : 급한 마음에 군사들을 독려해서 출정하는 것을 말한다. 등예는 삼국 시대 때 위(魏)나라의 장수로, 종회(鍾會)와 함께 촉(蜀)나라를 공격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촉나라 군사들 몰래 음평도(陰平道)로 나아가 성도(成都)를 함락시켰다.《三國志 魏書 卷28 鄧艾傳》
[주D-153]얼음 …… 탔었네 : 몹시 두려워서 속이 타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섭공(葉公) 자고(子高)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에게 말하기를, “아침에 사신으로 가라는 명을 받고는 저녁에는 얼음을 먹었는데도 저의 몸 안은 근심으로 인해 타 들어갑니다.” 하였다.《莊子 人間世》
[주D-154]백원공(白猿公) : 전설 속에 나오는 검술(劍術)이 뛰어난 사람이다.
[주D-155]현녀(玄女) : 전설 속에 나오는 천상의 선녀로, 일찍이 황제(黃帝)에게 병법을 주어 치우(蚩尤)를 제압하게 하였다고 한다.
[주D-156]월훈(月暈) : 달무리가 진 것으로, 한나라 고조(高祖)가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었을 적에 달무리가 생겼었다.
[주D-157]운제(雲梯) : 높은 성을 공격하기 위한 병기(兵器)이다.
[주D-158]왜적들은 …… 거라 : 왜적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뜻이다. 《주역(周易)》 대장괘(大壯卦)에, “숫양이 울타리를 치받아 그 뿔이 휜다.[羝羊觸藩 羸其角]”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159]사마귀가 …… 어려웠네 : 제 힘을 생각지 않고 대적한다는 뜻인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로, 여기서는 왜적들이 전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D-160]장궁(臧宮)처럼 …… 말할 뿐 : 왜적을 섬멸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는 뜻이다. 장궁은 후한 때의 장군으로, 보위장군(輔威將軍)이 되어 광무제(光武帝)를 따라 촉(蜀) 지방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에 흉노족이 쇠약해지자 상소를 올려 쇠약해진 틈을 타서 쳐야 한다고 하면서 군사를 내어 주면 일거에 섬멸시키겠다고 하였으나, 광무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後漢書 卷18 臧宮列傳》
[주D-161]역생(酈生) : 한(漢)나라 때의 유세가(遊說家)인 역이기(酈食其)를 가리킨다. 고조(高祖)가 고양(高陽)에 이르렀을 때 역이기가 고조를 찾아가서 제(齊) 땅의 70여 성을 취해 주겠다고 한 다음,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찾아가서 고조에게 붙어야만 제 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고조에게 붙게 하였다. 그 뒤에 한신(韓信)이 제 땅을 침입하자, 전광이 역이기를 팽형(烹刑)에 처하였다.《史記 卷97 酈生列傳》
[주D-162]소부(蕭斧) : 형벌을 시행할 때 쓰는 도끼이다.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강한 진(秦)나라나 초(楚)나라가 약한 설(薛)나라에 보복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소부를 휘둘러서 아침 버섯을 베어 버리는 것과 같다.” 하였다.
[주D-163]홍로(洪爐)에 …… 타 버렸네 : 왜적들이 저절로 멸망하였다는 뜻이다. 홍로는 큰 용광로를 말한다.
[주D-164]팔수(八水) : 관내(關內)에 있는 여덟 개의 강으로, 경수(涇水), 위수(渭水), 파수(灞水), 산수(滻水), 노수(澇水), 휼수(潏水), 풍수(灃水), 호수(滈水)를 가리키는데, 흔히 관중(關中) 지역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주D-165]악양(樂羊)은 …… 가득했고 : 이때 중국의 병부 주사(兵部主事) 정응태(丁應泰)가 도산(島山) 싸움에서 패한 것을 숨겼다는 내용으로 양호(楊鎬)를 무고하자, 각로(閣老) 장위(張位) 등이 양호를 비방하는 내용으로 아뢴 사실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 때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악양을 장군으로 삼아 중산국(中山國)을 정벌하게 하였는데, 3년 만에 정벌을 마치고 돌아왔다. 악양이 자신의 공을 자랑하자 문후가 상자를 열어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는 악양을 비방하는 글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러자 악양이 “승리한 것은 저의 공이 아니라 군왕의 공입니다.” 하였다.《戰國策 秦策2》
[주D-166]반초(班超)는 …… 절실했네 : 반초는 동한(東漢) 때 사람으로 반고(班固)의 동생이다. 서역(西域)의 50여 국을 정벌하여 모두 중국에 조공하게 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반초가 서역을 다 평정한 뒤 스스로 오랫동안 이역(異域)에 있었다고 생각하고는,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황제에게 상소하기를, “신은 감히 주천군(酒泉郡)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살아서 옥문관(玉門關)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하였다.《後漢書 卷47 班超列傳》
[주D-167]접역(鰈域) : 가자미가 생산되는 지역이란 뜻으로, 우리나라의 별칭이다. 《이아의소(爾雅義疏)》에, “동방에 비목어(比木魚)가 있는데, 두 마리가 나란히 가지 않으면 앞으로 가지 못한다.” 하였다.
[주D-168]홍저(鴻渚) : 달관(達官)이나 위인(偉人)을 가리킨다.
[주D-169]유영(柳營) : 세류영(細柳營)으로, 한나라 때 주아부(周亞夫)가 오랑캐를 방비하기 위하여 가는 버들로 쳤던 군영인데, 후대에는 튼튼한 군영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170]옥장(玉帳) : 장수가 거처하는 장막을 가리킨다.
[주D-171] : 원문에는 ‘戎’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72]위(衛)나라는 …… 잊게 됐고 :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이미 망한 위나라를 초구(楚丘) 땅에다가 제후국으로 세워 주자, 위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가 이미 망했다는 것을 잊었다.《春秋左氏傳 閔公2年》
[주D-173]군자들은 …… 면하였네 : 전란으로 인해 군사와 백성들이 죽는 것을 면하였다는 뜻이다. 《포박자(抱朴子)》에,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남정(南征)을 하니, 전 군사가 다 죽어서 군자는 원숭이나 학으로 변하였고 소인들은 벌레나 모래가 되었다.” 하였다.
[주D-174]단포(丹浦)의 정벌 : 단포는 단수(丹水)의 물가란 말로, 옛날에 요(堯) 임금이 이곳에서 유묘씨(有苗氏)와 싸웠다.
[주D-175]백등(白登)에서 싸운 것 : 한나라 고조(高祖) 7년에 유방(劉邦)이 진양(晉陽)에서 흉노를 물리친 뒤 패주하는 흉노를 뒤쫓다가 도리어 흉노의 계략에 빠져 백등에서 포위 당하였는데, 진평(陳平)의 계략을 따라 흉노에게 뇌물을 바치고 풀려났다.《史記 卷8 高祖本紀》
[주D-176]생사당(生祠堂) : 어진 이를 기리기 위하여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 세운 사당이다. 양호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 사현(沙縣) 밖에다 생사당을 세웠다.
[주D-177]아름다운 …… 새기었네 : 광해군 때 양호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모화관(慕華館) 밖에 세웠는데, 이정귀(李廷龜)가 비문을 짓고 여러 사신(詞臣)들이 시를 지어 칭송하였다.
[주D-178]큰 …… 기원했네 : 《시경》 대아(大雅) 행위(行葦)에, “큰 국자로 술을 떠서 황구를 기원하네.[酌以大斗 以祈黃耉]” 하였다.
[주D-179]육법(六法) : 중국 회화(繪畫)의 여섯 가지 기법으로, 기운생동(氣韻生動), 골법용필(骨法用筆), 응물상형(應物象形), 수류부채(隨類賦彩), 경영위치(經營位置), 전이모사(傳移模寫)를 말한다.
[주D-180] : 원문에는 ‘紛’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81]연함(燕頷) : 턱 모양이 제비 턱처럼 생긴 것으로, 골상법(骨相法)에서 이것은 무(武)를 상징한다. 한나라 때 반초(班超)가 어려서 턱 모양이 제비 턱 같았는데, 관상가가 보고는 만리후(萬里侯)가 될 상이라고 하였다. 그 뒤에 반초는 서역을 정벌하여 각지의 난을 평정하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後漢書 卷47 班超列傳》
[주D-182]서뇌(犀腦) : 이마 위의 뼈가 튀어나온 것으로, 관상법에 이러한 사람은 고관(高官)이 될 상이라고 한다. 한나라 이고(李固)의 골상(骨相)이 기이하여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 태위(太尉)를 지냈다.《後漢書 卷63 李固列傳》
[주D-183]허리띠를 풀고 있는[緩帶] : 남북조(南北朝) 시대 때 진(晉)나라의 양호(羊祜)가 군대를 맡고 있으면서 갑옷을 입지 않은 채 항상 가벼운 옷을 입고 허리띠를 느슨히 풀어놓고 있었는데도, 군사들이 모두 그 덕에 감복하였다.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이 되어 오(吳)나라를 치다가 병사(病死)하였는데, 그가 죽자 변경을 지키던 오나라 군사들까지 그의 덕을 사모하여 눈물을 흘렸다.《資治通鑑節要 卷25 漢紀 後帝禪下》
[주D-184]윤건(綸巾) : 제갈건(諸葛巾)으로,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선왕(宣王)과 함께 위수(渭水) 가에서 싸울 때 흰 수레를 타고 윤건을 쓰고 백우선(白羽扇)을 들고 싸웠다.
[주D-185]검은 표범[玄豹] : 자신의 재주를 숨긴 채 숨어 사는 은자를 말한다.
[주D-186]단혈(丹穴) : 전설 속에 나오는 산 이름으로, 봉황이 산다고 한다.
[주D-187]아름다운 …… 같네 : 좋은 말을 끊임없이 토해 내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호무보지(胡毋輔之)가 왕징(王澄)과 친하였는데, 왕징이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호무보지는 아름다운 말을 하는 것이 톱밥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아 끊임이 없다.” 하였다.《晉書 卷49 胡毋輔之列傳》
[주D-188] : 원문에는 ‘相’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89]범상(范相) …… 주조했고 : 범상은 월(越)나라 범려(范蠡)를 가리킨다. 범려가 떠나간 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범려의 형상을 주조해서 자리 옆에다가 안치하고 아침저녁으로 정사를 논하였다.《吳越春秋 句踐伐吳外傳》
[주D-190]위공(衛公)은 …… 두었다네 : 누구의 고사를 말하는지 자세하지 않다. 위공은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진 당나라 이정(李靖)이나 송나라 한기(韓琦)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191]감당나무 : 주(周)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甘棠) 시를 지어 기렸다.《史記 卷34 燕召公世家》
[주D-192]대수(大樹) :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때의 장군인 풍이(馮異)는 사람됨이 겸손하여 길을 가다가 다른 장군을 만나면 항상 한쪽 옆으로 피하였으며, 휴식을 취할 때 다른 장수들은 서로 모여 전공에 대해 떠들어 대었으나 풍이만은 항상 큰 나무 아래로 가 쉬고 있었다. 이에 군중 사람들이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부르면서 좋아하였다.《後漢書 卷17 馮異列傳》
[주D-193] : 원문에는 ‘製’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94] : 원문에는 ‘棋’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195]관월(貫月) : 배를 말한다. 《습유기(拾遺記)》 당요(唐堯)에, “요 임금이 황제 자리에 오른 지 30년 되는 해에 큰 나무 등걸이 서해 바다에 떠 있었는데, 등걸 위에서 빛이 발하여 낮에는 밝다가 밤에는 사라졌다.……등걸은 항상 사해(四海)를 떠돌아다녔는데, 12년마다 하늘을 한 바퀴 돌았다.” 하였다.
[주D-196]지기(支機) : 하늘나라의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괴었다고 하는 돌을 말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황하의 근원을 찾아갔는데, 가다가 빨래하는 부인을 보고 어디냐고 물으니 은하수라고 답하면서 돌을 하나 주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와서 엄군평(嚴君平)에게 물으니 지기석(支機石)이라고 하였다.《太平御覽 卷8》
[주D-197]투할(投轄) : 술을 좋아하고 손님 불러들이기를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때 진준(陳遵)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을 마실 때면 손님이 집안에 가득 있어도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들이 타고 온 수레바퀴의 비녀장을 뽑아 우물 속에 던져 넣어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漢書 卷92 遊俠傳 陳遵》
[주D-198]자청궁(紫淸宮) : 신선이 산다고 하는 궁궐 이름이다.
[주D-199]홍애(洪崖) 선생 : 상고 시대의 신선 이름으로, 황제(黃帝)의 신하인 영륜(伶倫)이라고도 하고, 혹 요 임금 때 이미 삼천 년을 살았으며 서산(西山)의 홍애(洪崖)에 살았다고도 한다.
[주D-200] : 원문에는 ‘厓’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D-201]녹옥지(綠玉枝) :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말하는데, 녹옥의 가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주D-202]황정경(黃庭經) : 도교의 경전이다.
[주D-203]구당협(瞿塘峽) : 장강(長江)의 삼협(三峽) 가운데 하나로, 사천성(泗川省) 백제성(白帝城)에 있는데, 강물의 흐름이 아주 빠르고 산세가 몹시 험하기로 유명하다.
[주D-204]조원(趙瑗) : 원문에는 ‘趙媛’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D-205]토구(菟裘) : 지명(地名)으로, 산동성(山東省) 사수현(泗水縣)에 있는데, 늙어 벼슬에서 물러나 사는 곳을 가리킨다.
[주D-206]징군(徵君) : 진(晉)나라 때의 시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도잠은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다가 벼슬을 내던지고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던 중 조정에서 저작랑(著作郞)에 제수하고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주D-207]얕은 …… 있네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5에는 이 두 구(句)가 빠져 있다.
[주D-208] : 원문에는 ‘漿’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209]높이 누운 객 : 한(漢)나라 때 사람인 원안(袁安)을 가리킨다.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서 한 자가량이나 쌓였는데, 낙양 영(洛陽令)이 직접 나가 시찰하다가 원안이 사는 집의 문 앞에 이르니, 사람이 나다닌 흔적이 없었다. 이에 원안이 이미 죽은 것이라고 여기고 사람들을 시켜서 눈을 치우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원안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낙양 영이 원안에게 어째서 나와서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느냐고 묻자, 원안이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짓이다.” 하였다.《後漢書 卷45 袁安列傳》
[주D-210]우의(牛衣) : 집안이 가난함을 상심해서 눈물 흘리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때 왕장(王章)이 집이 몹시 가난해 병이 들었는데도 덮을 이불이 없어 우의를 덮고 자면서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눈물을 흘렸다.《漢書 卷76 王章傳》
[주D-211]오마(五馬) : 수령이 타는 말을 말한다. 수령이 부임할 때 말 다섯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간다.
[주D-212]구의산(九疑山) :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아홉 개의 산봉우리가 서로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주D-213] : 《역대여류시문선》에는 ‘襱’으로 되어 있다.
[주D-214] : 《역대여류시문선》에는 ‘九’로 되어 있다.
[주D-215] : 원문에는 ‘縫’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216]虛簷殘溜 : 사고전서본 《명시종》 권95에는 ‘虛檐殘漏’로 되어 있다.
[주D-217] : 《조선역대여류시문선》에는 ‘愁’로 되어 있다.
[주D-218]우연히 …… 짓다 3수(三首) : 둘째 수의 ‘古屋’에서 ‘何求’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오언 고시에는 ‘古宅晝無人 桑樹鳴鵂鶹 寒苔蔓玉砌 鳥雀栖空樓 向來車馬地 今成狐兔丘 乃知達人言 富貴非吾求’로 되어 있고, 셋째 수의 ‘梧桐’에서 ‘與鳶’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오언 고시에는 ‘梧桐生嶧陽 幾年傲寒陰 幸遇稀代工 劚取爲鳴琴 琴成彈一曲 擧世無知音 所以廣陵散 終古聲堙沈’과 ‘鳳凰出丹穴 九苞燦文章 覽德翔千仞 噦噦鳴朝陽 稻粱非所求 竹實乃其湌 奈何桐樹枝 反栖鴟與鳶’의 두 시로 나누어져 있다.
[주D-219]夕起 : 《난설헌집(蘭雪軒集)》 오언 고시(五言古詩)에는 ‘披拂’로 되어 있다.
[주D-220] : 《난설헌집》에는 ‘縱’으로 되어 있다.
[주D-221]역산(嶧山) :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이 산의 남쪽에서 오동나무가 자라는데, 이 오동으로 거문고를 만들면 아주 좋다고 한다.
[주D-222] : 《난설헌집》 오언 고시에는 ‘端’으로 되어 있다.
[주D-223]청련궁(靑蓮宮) : 승사(僧舍)를 가리킨다.
[주D-224]봉대곡(鳳臺曲) : ‘秦女’에서 ‘別離’까지의 이 부분은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佔畢齋集)》 권19에 같은 제목으로 ‘秦女侶蕭史 日夕吹參差 崇臺遺鏡奩 巾袖雲披披 暮伴鳳凰宿 朝侶鳳凰嬉 天地以永久 那識人間悲 妾淚不可忍 此生長別離’란 시가 들어 있는바, 허난설헌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주D-225]진(秦)나라의 농옥(弄玉)과 소사(蕭史) : 진나라 목공(穆公)의 딸인 농옥이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소사가 퉁소를 잘 불어서 봉새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냈으므로 목공이 농옥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봉대(鳳臺)를 지어 주었다. 이들 두 사람이 퉁소를 불면 봉황이 날아와서 모였는데, 뒤에 두 사람이 함께 봉황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列仙傳》
[주D-226]망선요(望仙謠) 2수(二首) : 첫째 수인 ‘瑤花’에서 ‘星落’까지의 원문이 《난설헌집》 칠언 고시에는 ‘瓊花風軟飛靑鳥 王母麟車向蓬島 蘭旌橤帔白鳳駕 笑倚紅闌拾瑤草 天風吹擘翠霓裳 玉環瓊佩聲丁當 素娥兩兩鼓瑤瑟 三花珠樹春雲香 平明宴罷芙蓉閣 碧海靑童乘白鶴 紫簫吹徹彩霞飛 露濕銀河曉星落’으로 되어 있다.
[주D-227]푸른 새 : 전설 속에 나오는 새로, 서왕모(西王母)가 기르는 신조(神鳥)인데, 서왕모가 이 새를 가지고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주D-228]삼화수(三花樹) : 패다수(貝多樹)로, 이 나무는 일 년에 세 차례 꽃을 피운다고 한다.
[주D-229]청동(靑童) : 전설 속에 나오는 선동(仙童)을 가리킨다.
[주D-230]왕교(王喬) : 신선인 왕자교(王子喬)를 가리킨다. 왕자교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인데, 일찍이 흰 학을 타고 가 후씨산(緱氏山)에 있으면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주D-231]현포(玄圃) : 전설 속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고 하는 신선이 사는 곳인데, 그 속에는 기화요초와 기암괴석이 있다고 한다.
[주D-232]상현곡(湘絃曲) : ‘薰花’에서 ‘思月’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칠언 고시에는 ‘蕉花泣露湘江曲 九點秋煙天外綠 水府涼波龍夜吟 蠻娘輕戞玲瓏玉 離鸞別鳳隔蒼梧 雨氣浸江迷曉珠 閑撥神絃石壁上 花鬟月鬢啼江姝 瑤空星漢高超忽 羽蓋金支五雲沒 門外漁郞唱竹枝 銀潭半掛相思月’로 되어 있다.
[주D-233] : 원문에는 ‘黃’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234]수부(水府) : 해신(海神)이나 용왕(龍王)이 산다고 하는 바다 속의 궁전을 가리킨다.
[주D-235]창오(蒼梧) :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구의산(九疑山)으로, 순(舜) 임금이 묻힌 곳이다.
[주D-236]죽지가(竹枝歌) : 악부(樂府) 가운데 하나로, 본래 사천(泗川) 일대의 민가(民歌)인데,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새 가사로 개작하였다. 주로 삼협(三峽)의 풍광과 남녀 간의 연정(戀情)을 읊었다.
[주D-237]사시가(四時歌) 4수(四首) : 4수 중 ‘院落’에서 ‘紅淚’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칠언 고시에는 ‘院落深沈杏花雨 流鸎啼在辛夷塢 流蘇羅幕襲春寒 博山輕飄香一縷 美人睡罷理新粧 香羅寶帶蟠鴛鴦 斜捲重簾帖翡翠 懶把銀箏彈鳳凰 金勒雕鞍去何處 多情鸚鵡當窓語 草粘戲蝶庭畔迷 花罥游絲闌外舞 誰家池館咽笙歌 月照美酒金叵羅 愁人獨夜不成寐 曉起鮫綃紅淚多’로 되어 있고, ‘槐陰에서 ‘更綠’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칠언 고시에는 ‘槐陰滿地花陰薄 玉簟銀牀敞珠閣 白苧衣裳汗凝珠 呼風羅扇搖羅幕 瑤階開盡石榴花 日轉華簷簾影斜 雕梁晝永燕引雛 藥欄無人蜂報衙 刺繡慵來午眠重 錦茵敲落釵頭鳳 額上鵝黃膩睡痕 流鸎喚起江南夢 南塘女伴木蘭舟 采采荷花歸渡頭 輕橈齊唱采菱曲 驚起波間雙白鷗’로 되어 있고, ‘紗幮’에서 ‘南陌’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칠언 고시에는 ‘紗廚寒逼殘宵永 露下虛庭玉屛冷 池荷粉褪夜有香 井梧葉下秋無影 丁東玉漏響西風 簾外霜多啼夕蟲 金刀剪下機中素 玉關夢斷羅帷空 裁作衣裳寄遠客 悄悄蘭燈明暗壁 含啼寫得一封書 驛使明朝發南陌 裁封已就步中庭 耿耿銀河明曉星 寒衾轉輾不成寐 落月多情窺畫屛’으로 되어 있고, ‘銅壺’에서 ‘迢迢’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칠언 고시에는 ‘銅壺滴漏寒宵永 月照紗幃錦衾冷 宮鴉驚散轆轤聲 曉色侵樓窓有影 簾前侍婢瀉金甁 玉盆手澁臙脂香 春山描就手屢呵 鸚鵡金籠嫌曉霜 南隣女伴笑相語 玉容半爲相思瘦 金爐戰炭暖鳳笙 帳底兼兒薦春酒 憑闌忽憶塞北人 鐵馬金戈靑海濱 驚沙吹雪黑貂弊 應念香閨淚滿巾’으로 되어 있다.
[주D-238]목란주(木蘭舟) : 심양강(潯陽江)의 목란주(木蘭洲)에서 자라는 목란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하는 배인데, 일반적으로 배의 미칭(美稱)으로 쓰인다.
[주D-239]동호(銅壺) : 구리로 만든 물시계를 말한다.
[주D-240]한해(瀚海) : 북쪽에 있다고 하는 큰 바다이다.
[주D-241]처녀 …… 부치다 : ‘結廬’에서 ‘舊遊’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오언 율시에는 ‘結廬臨古道 日見大江流 鏡匣鸞將老 花園蝶已秋 寒沙初下鴈 暮雨獨歸舟 一夕紗窓閉 那堪憶舊遊’로 되어 있다.
[주D-242]성(筬) …… 전송하다 : ‘遠謫’에서 ‘成行’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오언 율시에는 ‘遠謫甲山客 咸原行色忙 臣同賈太傅 主豈楚懷王 河水平秋岸 關雲欲夕陽 霜風吹鴈去 中斷不成行’으로 되어 있다.
[주D-243]가 태부(賈太傅) : 한나라 때 태부를 지낸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가의는 글을 잘 지었는데, 문제(文帝) 때 박사(博士)가 되어 정삭(正朔)을 고치고, 복색(服色)을 바꾸고, 법도(法度)를 제정하고, 예악(禮樂)을 일으켰다. 그 뒤에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되었고, 다시 양회왕(梁懷王)의 태부로 옮겨졌는데, 양회왕이 낙마(落馬)하여 죽자, 가의 역시 상심하여 죽었다.《史記 卷84 賈生列傳》
[주D-244]초 회왕(楚懷王) : 전국 시대 때 초 회왕이 진(秦)나라와 혼인하지 말라는 굴원(屈原)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마침내 진나라에서 객사하였다. 여기서는 간언을 듣지 않는 임금의 뜻으로 쓰였다.
[주D-245] : 《난설헌집》 칠언 율시에는 ‘大’로 되어 있다.
[주D-246]목릉(穆陵) : 선조(宣祖)의 능이다.
[주D-247] : 《난설헌집》 칠언 율시에는 ‘回’로 되어 있다.
[주D-248]칠자(七子) : 칠자에는 전칠자(前七子)와 후칠자(後七子)가 있는데, 전칠자는 명나라 홍치(弘治)와 정덕(正德) 연간에 문명(文名)을 떨쳤던 이몽양(李夢陽), 하경명(何景明), 서정경(徐禎卿), 변공(邊貢), 강해(康海), 왕구사(王九思), 왕정상(王廷相) 등 7인을 가리키고, 후칠자는 가정(嘉靖)과 융경(隆慶) 연간에 문명을 떨쳤던 이반룡(李攀龍), 사진(謝榛), 양유예(梁有譽), 종신(宗臣), 왕세정(王世貞), 서중행(徐中行), 오국륜(吳國倫) 등 7인을 가리킨다.
[주D-249]둘째 …… 차운하다 : ‘崔嵬’에서 ‘嫖姚’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칠언 율시에는 ‘巃嵷危棧切雲霄 峯勢侵天作漢標 山脈北臨三水絶 地形西壓兩河遙 煙塵晩捲孤城出 苜蓿秋肥萬馬驕 東望塞垣鼙鼓急 幾時重起霍嫖姚’로 되어 있다.
[주D-250]곽표요(霍嫖姚) : 한나라 때 표요교위(嫖姚校尉)로 있으면서 흉노족과 싸운 명장인 곽거병(霍去病)을 가리키는데, 후대에는 변방을 지키면서 공을 세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D-251] : 원문에는 ‘驃’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D-252]잡시(雜詩) : ‘精金’에서 ‘人帶’까지의 이 부분은 《난설헌집》 오언 고시에는 ‘精金凝寶氣 鏤作半月光 嫁時舅姑贈 繫在紅羅裳 今日贈君行 願君爲雜佩 不惜棄道上 莫結新人帶’로 되어 있다.
[주D-253]최국보(崔國輔) : 당(唐)나라 때의 시인이다.
[주D-254] : 《난설헌집》 오언 절구에는 ‘匹’로 되어 있다.
[주D-255]오량(五兩) : 뱃사람들이 바람의 세기나 방향 등을 알아보기 위하여 배의 돛대 끝에 매다는 것이다.
[주D-256] : 원문에는 ‘漿’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D-257]유선곡(遊仙曲) 백 수 : 4곡 중 첫 곡인 ‘瑞風’에서 ‘茅君’까지의 원문은 《난설헌집》 칠언 절구에는 ‘瑞風吹破翠霞裙 手把鸞簫倚五雲 花外玉童鞭白虎 碧城邀取小茅君’으로 되어 있다.
[주D-258]벽성(碧城) : 푸른 노을로 만든 성으로,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주D-259]모군(茅君) :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으로, 구곡산(九曲山)에 산다고 한다.
[주D-260]동황(東皇) : 봄을 맡은 신의 이름이다.
[주D-261]閉寂寥 : 《난설헌집》 칠언 절구에는 ‘鎖泬㵳’로 되어 있다.
[주D-262]단조(丹竃) : 도사가 단약(丹藥)을 달이는 부엌을 말한다.
[주D-263] : 《난설헌집》에는 ‘鶴’으로 되어 있다.
[주D-264] : 《난설헌집》에는 ‘聞’으로 되어 있다.
[주D-265]완랑(阮郞) : 한나라 때 회계군(會稽郡)에 살던 완조(阮肇)로, 친구와 함께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아름다운 선녀를 만나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주D-266] : 《난설헌집》 칠언 절구에는 ‘盡’으로 되어 있다.
[주D-267] : 《난설헌집》에는 ‘寰’으로 되어 있다.
[주D-268]궁사(宮詞) 2수(二首) : 첫째 수인 ‘絳羅’에서 ‘侯家’까지의 원문은 《난설헌집》 칠언 절구에는 ‘紅羅褓裏建溪茶 侍女封緘結出花 斜押紫泥書勅字 內官分送大臣家’로 되어 있다.
[주D-269]건계차(建溪茶) : 건계는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시내 이름인데, 이곳에서는 명차(名茶)가 생산된다.
[주D-270] : 《난설헌집》 칠언 절구에는 ‘幕’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