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 산행 /2011.9.16. 삼각산 산행

2011.9.16 .삼각산 산행 사진 (스크랩)

아베베1 2011. 9. 17. 17:32

   

 

           2011.9.16 .불광동 불광역 2번 출구앞 에서 시작된  산행

 국립보건원 뒷길로 다녀온 매표소 쪽두리봉 (용바위) 비봉 항로봉 사모바위 문수봉 주변을

  릿지로 산행을 하였다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향로봉을 진일할 수가 없다  입구에서 통제를 하신다 향로봉에

올라본  소감은 오랜만이었다 문수봉 뒷길을 릿지로 올라보니 참으로 좋은

 생각이 ..대남문을 통하여 하산 구기동으로   간단하게 묵밥에 맥주 한잔하고 오다가 미아삼거리에서

 한잔더 마시고 왔군요  산행시작 시간  2011.9.16. 11:20분부터 -18:20경까지 약 7시간정도의 산행이었다.   

   산행인원 :  6명

 

              삼각산 산행을 마치고

 

            수도 서울의 진산 (鎭山)인 삼각산에 올라서

            오랜만에 먼곳을 보았네

      

           암릉으로된 여러 봉우리 저마다 많은

           사연 안고 아주 오랜 세월(歲月) 모진 풍파 이겨내고

      

          쪽두리 처럼 생겼다하여 쪽두리봉

          내려 오는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향로처럼 생겼다 하여 향로봉

          오르기가 조금 까다로운 봉우리     

        

          삼국의 통일을 이룬 신라 진흥왕이

          자기의 영토를 둘러보고 영역표시를 한 비봉(碑峰) 

         

          사모관대 처럼 생겼다 하여 사모바위

          사모바위는 먼곳에도 보아도 역쉬 사모바위

        

         사모바위 아래에는 역사 안보 교육장이 김신조 일당이 

         무장간첩으로 침투하여 은신하였다는 은신처    

         

           사모바위 아래에는 천년 고찰 승가사가 자리잡고

           천년을 한결같이 버텨오면서 부처님의 자비를 배푸시고    

  

                 문수보살님의 사연이 있는 문수봉 많은 괴암이

 건너편봉우리에는 보현봉이 자리잡고  

           문수사가 문수봉 아래에 위치하고

           

          조선 숙종때 만들었다는 북한산성 14성문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대남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월속에 성곽은 허물어져 내리고 최근에 중수한 문루는

  삼각산의 나그네를 반기고

 

        하루의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산나그네도 어두움을 해치며 하산하여 

       물에 발을 담그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하산하여 

      

       묵밥 한그릇 뚝닥 해치우고 시원한 맥주잔에 

       맥주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잃은 체로 각자 자기의 쉼터로  귀가한다      

 

                               陰 신묘년 팔월 하순  삼각산 봉우리를 등반하고

                               몇자 적어 본다   대암 書  

            

 

 

  

 

 삼각산 쪽두리바위에서 폼을 잡고 한컷  

    이사진은 14일 찍은 노적봉에서 찍은 인수봉 백운대를 배경으로..

 예전에 숙인이면 상당한 대감부인의 상석이다  봉분에 나무가 자란상태를 보니 50년이상 관리가 안되었다

 淑人 이라 기록되어있다  숙인은 외명부로서 문무관 정3품·종3품  당상관 당하관의 처에게 주는 작호이다 정삼품은 당상관 당하관에게 주는 부인의 작호

 저가 설명을 산우님께 들려드린다

 조그 마한 슬랩 쪽두리봉을 오르기 위하여 중간지점에 릿지로 .. 용바위가 보인다

  쪽두리봉  용바위있다

  쪽두리봉 정상에서 일행과 한컷  향로봉과 비봉이 모이고  

  삼각산 북한문 을 통과하는모습이다

  북한문을 지나서 문수봉 가는 길 ..

  문수봉 뒷길 릿지길이다

  저기보이는 봉우리가 보현봉의 모습이다.

 보현봉을 배경으로

 날씨가 덥고 힘들고 땀도 많이 흘렀던 날이다

 

바위사잇길 클랙이 되어있다

참으로 특이한 바위 문수봉에

 

태조 2년 계유(1393,홍무 26)
 1월21일 (정묘)
전국의 명산·대천·성황·해도의 신에게 봉작을 내리다

이조에서 경내(境內)의 명산(名山)·대천(大川)·성황(城隍)·해도(海島)의 신(神)을 봉(封)하기를 청하니, 송악(松岳)의 성황(城隍)은 진국공(鎭國公)이라 하고, 화령(和寧)·안변(安邊)·완산(完山)의 성황(城隍)은 계국백(啓國伯)이라 하고, 지리산(智異山)·무등산(無等山)·금성산(錦城山)·계룡산(鷄龍山)·감악(紺嶽)·삼각산(三角山)·백악(白嶽)의 여러 산과 진주(晉州)의 성황(城隍)은 호국백(護國伯)이라 하고, 그 나머지는 호국(護國)의 신(神)이라 하였으니, 대개 대사성(大司成) 유경(劉敬)이 진술한 말에 따라서 예조(禮曹)에 명하여 상정(詳定)한 것이었다.
【원전】 1 집 40 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숙종 36년 경인(1710,강희 49)
 10월16일 (정축)
도성 수비의 일과 홍복산·북한산의 축성 일에 대해 논의하다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이 말하기를,
“좌의정(左議政) 서종태(徐宗泰)가 올린 차자(箚子)의 대의(大意)는 도성(都城)이 허술하므로 결단코 지키자고 청하기가 어렵지만, 근래에 민정(民情)이 모두 도성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며, 성상께서 지금의 변우(邊憂)를 두려워하여 반드시 옮겨 피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나, 인정(人情)이 이로 말미암아 소요(騷擾)하므로 진안(鎭安)시키고자 하는 뜻입니다. 그 비답(批答)이 차자(箚子)의 뜻과 다름이 있으니, 혹 자세히 알지 못하셔서 그러하신 것입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나 또한 자세히 보았다. 내가 북보(北報)의 형체도 없는 구적(寇賊) 때문에 갑자기 도성을 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경급(警急)이 있으면 결단코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이 답한 것이다.”
하자, 이이명이 말하기를,
“서종태는 성의(聖意)가 이로 인하여 갑자기 버리고자 하시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알 것이나, 대신(大臣)의 나라를 근심하는 말이 이와 같으니, 차비(箚批)를 도로 거두시고, 이로 인하여 도성을 버리려는 뜻이 아님을 첨입(添入)해서 내리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도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으로써 비답(批答)을 내리면, 마침내 도성을 지키고자 하는 듯하니, 진실로 방애(妨碍)되는 바가 있다. 성(城)을 지키는 기구는 반드시 곡성(曲城)·돈대(墩臺)·해자(垓子)가 있은 후에야 적(敵)을 방어(防禦)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 국초(國初)에 처음 쌓았을 때와 비교해 보면 물력(物力)을 갑절 들여도 오히려 성공(成功)하기 어렵다. 만약 해마다 수축(修築)하고자 하면, 바로 속담에 이른바, ‘소나무를 심어 그늘을 찾는다.’는 것과 같다. 또 도성은 바로 정정(定鼎)한 곳이지 적(敵)을 방어하는 곳이 아니므로, 당초에 쌓은 모양이 과일을 포개놓은 것과 같아서, 적이 만약 대포(大砲)를 쏜다면 곧 훼파(毁破)될 것이니, 백성이 비록 많고 군량(軍粮)이 비록 축적(蓄積)되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수(保守)하겠는가? 남한 산성(南漢山城)으로써 말하건대, 근왕(勤王)의 군사가 많이 집결(集結)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끝내 강화(講和)의 치욕(恥辱)을 면하지 못하였었다. 이 성은 외원(外援)이 미처 이르기 전에 이미 패배하여 흩어질 것이니, 결단코 지킬 수가 없다.”
하였다. 이이명이 말하기를,
“고(故) 상신(相臣) 이정귀(李廷龜)도 또한 수성(守城)해야 한다는 뜻으로써 진소(陳疏)하였었으니, 도성을 지키자는 의논은 오늘날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개축(改築)한 후에야 지킬 수 있을 것이니, 지금은 지킬 수가 없다.”
하였다. 이이명이 민진후(閔鎭厚)·남치훈(南致熏)과 잇달아 진달(陳達)하여 모두 도성은 견고해서 지킬 수 있고, 남한 산성(南漢山城)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지키기 어려우며, 강도(江都)는 해구(海寇)를 방비하기 어렵다고 말하였으나, 임금이 끝내 옳지 않게 여겼다. 민진후가 말하기를,
“신이 먼저 홍복산(洪福山)을 보았더니, 형세가 비록 좋으나 온통 험조(險阻)함이 부족하여 안팎이 모두 토산(土山)이고, 또 수맥(水脈)이 많지 아니하니, 이것이 염려스럽습니다. 기지(基址)를 척량(尺量)해 보았는데, 넓게 쌓으면 25리에 지나지 않고, 줄여서 쌓으면 겨우 20리가 되어 대가(大駕)가 용접(容接)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삼면(三面)이 들이어서 적이 만약 들에 진(陣)을 치면, 성(城) 안에서 밖으로 통할 길이 없으며, 비록 엿보는 봉우리는 없었으나, 압림(壓臨)하는 곳이 많이 있으니, 이것이 제일 어려운 점입니다. 북한(北漢)은 과연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험한 것이 이와 같은데, 서울의 지척(咫尺)에 있는 데도 오히려 지금까지 버려두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지세가 절험(絶險)하여 사방에 평평한 땅이 없어서 사람이 들어가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일에 척량한 것으로써 말하건대, 35리는 되지마는 과연 용접(容接)할 만한 평지가 없었습니다. 바위에 가설(架設)하고 골짜기를 뚫는다면, 또한 집을 만들 수는 있겠으나, 단지 성상께서 옮겨 들어가신 후에 멀고 가까운 곳의 백성들이 와서 모인다면, 진실로 용접(容接)할 형세가 없었습니다. 신이 돌아오는 길에 문수봉(文殊峯)을 두루 살펴보니, 그 봉우리가 북한산(北漢山)의 남쪽에 있는데, 봉우리 아래 골짜기의 길이가 10리이고, 좌우(左右)가 깎아지른 듯하여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 석봉(石峰)이 구불구불 아래로 내려오다가 두 끝이 합해져서 끝나는데, 이 곳에 문(門)을 설치하고 기민(畿民)으로 하여금 골짜기 안에 들어가 살게 하면 아울러 용납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대개 북한산에 성을 쌓는 계책(計策)은 드는 비용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행궁(行宮)과 창고(倉庫)를 반드시 아울러 설치한 후, 한결같이 분사(分司)의 예(例)에 의거하여 눈앞의 수용(需用) 외에 각 관사(官司)의 쓰고 남은 물품을 나누어 적치(積置)한다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이이명은 말하기를,
“이유(李濡)·서종태(徐宗泰)는 모두 이미 가서 보았는데, 신 또한 가서 보고자 하였으나,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大臣)이 가서 본 후에 다시 의논함이 옳다.”
하였다.
【원전】 40 집 372 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왕실-국왕(國王)


[주D-001]정정(定鼎) : 도읍(都邑)을 정함.
[주D-002]행궁(行宮) : 임금이 거둥할 때에 머무는 별궁.
[주D-003]분사(分司) : 관아(官衙)를 나누어 설치하던 제도. 임금이 도성(都城)을 떠나 다른 곳에 장기간을 머물 때 각사(各司)는 관아를 나누어 두 곳에서 일을 보았음.
농암집 제29권
 제문(祭文)
기설제문(祈雪祭文)

아 밝은 신명이 / 於赫明神
나라 명맥 도와주니 / 有國所賴
수한 때면 기도하여 / 水旱禱祀
은택을 구한다네 / 輒徼嘉惠
나는 신을 섬긴 뒤로 / 自予事神
지은 죄가 실로 많아 / 實多罪戾
밤낮으로 가슴 죄며 / 夙夜怵惕
낭패 올까 두려웠네 / 懼及顚沛
헌데 겨울 따뜻하여 / 惟茲冬煖
내년 농사 걱정이니 / 憂在嗣歲
싸락눈도 아니 내려 / 霰雪極無
명충 피해 예견되네 / 螟䘌爲害
아, 우리 밀과 보리 / 嗟我來牟
농사가 망쳐져서 / 將受其敗
백성 하나 안 남으면 / 民靡孑遺
나라 꼴이 어이 될꼬 / 邦幾何蹶
근심이 참으로 커 / 憂心孔殷
규벽(圭璧)도 아끼지 않았으니 / 圭璧靡愛
상서론 눈 퍼붓기를 / 一霈瑞霙
신명을 놓아두고 뉘에게 비오리까 / 非神誰丐
위는 사직단에 기원한 것이다.

못난 이 몸 소자가 / 眇予小子
종묘 제사 이어받고 / 嗣守宗禋
지닌 덕이 부족하여 / 惟德之否
하늘에 죄 지으니 / 獲罪于天
재앙이 계속되어 / 災荒洊臻
국운이 끊길 지경 / 國命將顚
올해 흉년 들었어도 / 今歲失登
내년 농사 바랐건만 / 尙冀來年
하늘이 아니 도와 / 曾是不弔
겨울마저 이상 기후 / 冬候又愆
얼음 얼 절기인데 / 節届氷壯
따스하기 봄 날씨라 / 氣若春暄
안개 늘상 자욱해도 / 氛霧恒泄
눈 한 점 안 내리니 / 點雪猶慳
황충 떼에 보리 죽을까 / 蝗繁麥死
근심으로 애가 타네 / 怛焉心煎
종묘 뜰 오르내리는 / 於昭列祖
밝으신 조상 신령 / 陟降有神
부디 나라 도우시어 / 蘄垂冥祐
궁한 백성 살리소서 / 活此窮民
위는 종묘에 기원한 것이다.

엄숙하신 음의 신령 / 肅肅陰靈
임계방(壬癸方)에 머물면서 / 宅于壬癸
한겨울과 화합하여 / 厥協盛冬
감수운(坎水運)을 관장하니 / 以司坎水
시절에 맞는 기후 / 時焉靜翕
신령이 이뤄준 것 / 實資發遂
헌데 이번 겨울 일은 / 乃茲寒冱
양기가 간여하여 / 陽干其事
음기를 데워서 안개를 뿜어내니 / 蒸陰泄霧
기후가 한결같이 따뜻하게 풀어져서 / 氣專縱弛
눈은 아니 내려오고 / 雪則不降
비만 대신 뿌리누나 / 惟雨之以
덕이 없고 정사 잘못 / 德愆政乖
내 허물을 압니다만 / 予固知咎
기근 들어 백성 죽으면 / 歲饑民死
신령인들 좋으리까 / 神亦何利
희생과 술 올리면서 달려와 비는 것은 / 牲酒走禱
나를 위한 일 아니니 / 匪以自爲
신이여 삼백 상서 / 三白之祥
부디 내려 주옵소서 / 庶拜神賜
위는 북교(北郊)에 기원한 것이다.

하늘이 화를 내려 / 天禍我東
해마다 기근 드니 / 饑饉歲臻
허물은 내 것인데 / 咎則在我
백성이 고통 받네 / 殃顧及民
떠돌다 굶어 죽은 저들 시체 보노라면 / 相彼流莩
나는야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인데 / 予欲無身
하늘이 아니 도와 / 曾是不弔
재해가 이어지네 / 災害相因
겨울이 봄인 양 날씨가 따스하여 / 麥不見雪
보리가 눈 구경을 단 한 번도 못 하는데 / 冬疑於春
하소연할 곳 없어 / 哀籲靡從
근심만이 클 뿐이네 / 憂心孔殷
우뚝한 국망이여 / 巍然國望
신령님만 믿사오니 / 所恃惟神
부디 은택 내리시어 / 庶降冥貺
이 사람들 살리소서 / 以活斯人
위는 삼각산(三角山)에 기원한 것이다.

불쌍한 우리 백성 / 哀我東民
큰 기근을 거듭 당해 / 洊罹大饑
굶어 죽기 직전인데 / 溝壑在前
구제할 방도 없네 / 予莫拯之
오직 하나 밀과 보리 자라나길 기대하며 / 惟指二麥
남은 백성 구제하자 마음을 먹었더니 / 以救孑遺
오호라 이 겨울은 / 乃茲冬月
가뭄이 더욱 심해 / 暵乾益彌
눈이 아니 내리니 / 雪不下地
보리 모두 시들겠네 / 麥將擧萎
슬피 울며 먹여주길 기다리는 목숨들 / 呱呱待哺
죽을 일만 남았구려 무엇에 의지하리 / 竟死何資
백악산 신령이여 / 惟嶽有神
이들이 가련커든 / 尙或憐茲
속히 은택 베푸시어 / 亟霈玄澤
땅을 적셔 주옵소서 / 以膏以滋
위는 백악산(白嶽山)에 기원한 것이다.

이 산 밑에 있는 도성 / 國於山下
조석으로 대하는데 / 朝夕几案
수목이 울창하고 구름이 피어나서 / 薈蔚之隮
가뭄이 들 적에도 촉촉히 적셔줬네 / 卽潤槁暵
다른 산 어찌 없으랴만 / 豈無羣望
가장 가까이 의지하여 / 依仰最近
재앙이 올 적마다 / 凡有災患
치성을 드렸다네 / 輒控忱款
더구나 이 큰 기근 / 矧茲大饑
국운 끊길 지경인데 / 國命幾斷
내년 근심 조짐이네 / 嗣歲之憂
겨울 가뭄 들었으니 / 又兆冬旱
보리농사 흉작되면 / 麥苟失登
백성 죽음 면하리까 / 民死曷逭
부디 구름 일으키사 / 三白之賜
삼백 상서 내리소서 / 尙賴膚寸
위는 목멱산(木覓山)에 기원한 것이다.

넘실넘실 맑은 한강 / 瀰瀰淸漢
나라의 금대인데 / 爲國襟帶
전답에 스며들어 / 滋液滲漉
은택 크게 끼치시니 / 厥施斯沛
나라에서 제사하고 / 禮秩祀典
백성들이 귀의커늘 / 民歸神惠
이 몸은 부덕하여 / 顧予不德
후회할 일 자초했네 / 自速咎悔
겨울에 눈 안 오면 / 一冬無雪
밀과 보리 망치는 법 / 來牟盡敗
계속되는 기근을 구제하지 못하면은 / 洊饑靡救
나라의 명맥도 끊기고 말 것이라 / 大命將蹶
신명께 고하면서 / 控于明神
희생을 바치나니 / 我牲靡愛
은택 조금 내리시면 / 一勺之澤
만백성이 소생하리 / 萬姓是賴
위는 한강에 기원한 것이다.

거룩하신 하늘이 / 於穆玄天
만물을 화육할 제 / 化育萬彙
누가 직무 맡아보나 / 孰任厥職
중대한 것 네 가지네 / 其大有四
움직이고 뒤흔들고 / 鼓舞動盪
습기 주고 적셔 주고 / 蒸潤霑被
작용은 다르지만 공효는 똑같아서 / 異用同功
만물이 그 덕분에 생겨나고 완성되네 / 以資生遂
이번 겨울 가뭄은 / 惟茲冬旱
신령께도 수치이니 / 神與有愧
내 탓 아니라 하지 마시고 / 罔曰非我
백성들을 동정하소 / 哀此民類
입김 불고 습기 모아 / 呼噓翕集
각기 직사 도모하여 / 各圖其事
상서로운 눈을 빚어 / 以釀瑞雪
정갈한 제사에 답하소서 / 以答蠲饎
위는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에 기원한 것이다.

울창한 산천들이 / 鬱彼山川
온 나라에 얼기설기 / 經緯邦域
강은 깊고 산은 높아 / 流深峙高
구름 피고 땅 적시네 / 出雲施澤
그 공효 미치는 곳 / 功利所及
무얼 아니 기르랴만 / 于何不育
덕정을 못 베풀자 / 德政之諐
신도 복을 아끼시어 / 神顧惜福
엄동설한 겨울철에 / 冱陰之月
눈이 아니 내려오니 / 雪不可得
백성들이 재앙 당해 / 民罹其菑
골짜기를 메울 지경 / 將胥塡壑
희생과 술 마련하여 온 산천에 기도하며 / 牲酒徧禱
다급한 이 사정을 고하여 올리나니 / 告此崩迫
어찌 감히 많은 것을 구하고자 하리까 / 豈敢多求
오직 하나 보리농사 구원하여 주소서 / 尙救此麥
위는 국내(國內)의 산천에 기원한 것이다.

내가 왕위 오른 뒤로 / 自予卽阼
해마다 흉년 들더니 / 歲比大侵
금년에는 혹독하기 / 其在今年
신임년보다 더하여 / 酷于辛壬
집집마다 곡식 한 톨 남아 있지 않으니 / 室如磬懸
백성들이 굶어 죽어 시체가 널릴 지경 / 民將尸枕
하늘이 이제 그만 화를 거두나 싶었더니 / 謂天悔禍
이 겨울은 재앙이 한층 더 심해져서 / 而又益甚
중동에다 그믐인데 / 仲冬且晦
다순 날이 훨씬 많네 / 恒燠少凜
눈 안 오면 보리 흉작 / 無雪無麥
너무나도 참혹할 터 / 亦孔之憯
백성 오직 신령께 의지하고 있사오니 / 民所庇依
신 아니면 그 어디에 하소연하오리까 / 非神曷諗
한바탕 눈 부디 내려 / 毋惜一霈
풍년 들게 하옵소서 / 以賜豐稔
위는 성황(城隍)에게 기원한 것이다.

아, 밝은 양의 신이 / 於昭陽神
만물 태동 맡아서 / 職司啓發
천지조화 새 출발을 도와서 일으키어 / 贊始大專
자연의 온갖 만물 푸른 싹을 피워내네 / 榮施羣物
비록 계절 겨울이라 음기가 가득해도 / 雖在陰閉
그 속에 생기가 없어서는 안 되는데 / 生意靡閼
가뭄 이리 들었으니 / 惟此乾旱
이는 바로 신의 과실 / 亦神之闕
보리 말라 다 죽으면 / 麥枯將盡
백성들도 죽어갈 터 / 民死自必
저기 저 어린 아기 / 如彼赤子
젖줄 끊긴 신세리라 / 乳哺是絶
신령께서 어찌 차마 그런 짓을 하시리까 / 神胡忍此
차라리 이내 몸이 벌을 달게 받으리다 / 予寧受罰
부디 제사 흠향하고 / 尙歆禋祀
눈을 한번 내리소서 / 報以一雪
위는 구망씨(句芒氏)에게 기원한 것이다.

밝으신 신령께선 / 有赫明靈
왕성한 덕을 지녀 / 其德恢台
전답 곡식 성숙하고 / 登成甫田
온갖 초목 무성하네 / 百昌咸熙
헌데 내가 즉위하자 / 乃予忝位
하늘이 포학하여 / 逢天疾威
해마다 기근 들어 / 仍歲洊饑
백성 종자 끊길 판에 / 民靡孑遺
올겨울도 따뜻하여 / 方冬恒燠
싸락눈도 볼 수 없네 / 霰雪愆期
지금 춥지 아니하면 / 今失翕聚
내년 농사 뻔할 텐데 / 來者可知
만물을 길러주는 왕성한 능력을 / 生養之功
신께서는 어디에 베풀려 합니까 / 神顧安施
부디 지금 한 자 깊이 / 一霈盈尺
눈을 펑펑 쏟으소서 / 尙及此時
위는 축융씨(祝融氏)에게 기원한 것이다.

넓고 너른 대지여 / 坤輿磅礴
그 덕이 성대하여 만물을 실어 주고 / 德盛持載
하늘 작용 받들어서 / 順承天施
공능이 넓고 크네 / 功化弘大
자라나는 만물을 / 衆萬幷生
모두 품어 기르면서 / 函育靡外
어이 재앙 내리시어 / 胡寧降災
나라를 아니 돕나 / 國靡攸賴
겨울 눈이 아니 내려 / 冬雪不降
보리 싹 죄다 병드니 / 麥苗盡瘁
애달픈 궁한 백성 / 哀此窮民
누구에게 목숨 비나 / 命于何丐
인자하신 신령이여 / 惟神孔仁
어여삐 여기시어 / 尙冀見愛
한 자 깊이 흰 눈을 / 盈尺之貺
펑펑 한번 쏟으소서 / 秪在一霈
위는 후토씨(后土氏)에게 기원한 것이다.

기운 맑은 가을을 / 沆碭西灝
신령께서 주관하여 / 神實司令
천지 기운 한데 모아 / 一氣揫斂
온갖 열매 영그는데 / 萬寶成性
어이 은혜 아니 펴서 / 胡寧不惠
우리 백성 힘겹게 하나 / 爲我民病
홍수와 심한 가뭄 / 極備極無
한 해 안에 연이었네 / 一歲以倂
그래도 보리 익길 / 尙蘄麥熟
주림 참고 바랐건만 / 忍飢引領
이 겨울 기후 보니 / 視茲冬候
그 또한 가망 없네 / 又將無幸
지금 한 번 눈 내리면 / 及今一雪
남은 목숨 구할지니 / 庶救餘命
신령이여 동정하여 / 神其哀之
간곡한 청 들어주소 / 無孤至請
위는 욕수씨(蓐收氏)에게 기원한 것이다.

밝으신 신령께서 / 仰惟明神
우리 농사 주관하니 / 實主我稼
백곡(百穀)이 자라는 것 / 百嘉之生
모두 그 조화의 힘 / 咸資其化
신이 혹여 잘못하면 / 神或失職
백성들이 주리는데 / 民則受餓
애처롭다 겨울철에 찾아든 이 가뭄이 / 哀此冬旱
봄 여름 가뭄보다 한층 더 심하구나 / 殆甚春夏
음기가 풀리어서 / 陰氣解弛
눈이 제때 아니 오니 / 雪不時下
싹 텄던 보리들이 / 有茁者麥
들판에서 말라 죽네 / 枯死于野
백성 양식 걱정되어 / 念及民食
밤낮으로 안절부절 / 不遑夙夜
신령이여 은택 내려 / 神其降澤
나의 죄를 사하소서 / 我罪是赦
위는 후직씨(后稷氏)에게 기원한 것이다.

거룩하신 현제께서 / 於穆玄帝
북방에 위치하니 / 宅于坎位
겨울이라 이 절기는 / 凡是冬令
모두 신이 부린 조화 / 皆神之自
춥게 하고 눈 내림은 / 爲寒爲雪
모두 신의 책임인데 / 孰非其事
어이 직무 수행 못해 / 云胡失職
기강을 실추했나 / 綱紀墮弛
따스하기 봄날 같아 / 暄燠若春
싸락눈도 안 내리니 / 霰雪不摯
한숨 어린 이 기도를 / 吁嗟之禱
뭇 신령께 올렸으나 / 雖徧群示
겨울 위엄 떨치는 일 / 自奮玄威
오직 신께 바라나니 / 匪神誰冀
부디 이 점 살피시어 / 尙鑑在茲
우리 백성 위하여 은택을 내리소서 / 爲我民賜
위는 현명씨(玄冥氏)에게 기원한 것이다.

[주C-001]기설제문(祈雪祭文) : 작자의 나이 35세 때인 1685년(숙종11) 11월에 왕명에 따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주D-001]규벽(圭璧)도 아끼지 않았으니 : 규벽은 흉년이 들었을 때 신(神)에게 예(禮)로 바치는 옥(玉)이다. 《시경》 〈대아(大雅) 운한(雲漢)〉에 “왕께서 말씀하기를 ‘아, 지금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늘이 환란을 내리사 기근이 거듭 이르기에, 신에게 제사를 거행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 희생을 아끼지 아니하여 규벽을 이미 모두 올렸는데도, 어찌하여 내 말을 들어주지 아니하십니까.’ 하였다.[王曰於乎 何辜今之人 天降喪亂 饑饉薦臻 靡神不擧 靡愛斯牲 圭璧旣卒 寧莫我聽]” 하였다.
[주D-002]삼백(三白) 상서 : 동지 이후 세 번째 돌아오는 술일(戌日)을 납일(臘日)이라고 하는데, 납일 전에 세 번 눈이 내리는 것을 삼백이라고 한다. 이때 내리는 눈이 보리농사에 가장 좋기 때문에 상서라고 한 것이다.
[주D-003]국망(國望) : 삼각산의 백운대(白雲臺)와 만경봉(萬景峯)에 대한 이칭이다.
[주D-004]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 : 서울 남쪽 교외의 청파역(靑坡驛) 근방에 있었던 제단으로, 풍운뇌우산천성황단(風雲雷雨山川城隍壇)에서 가운데에 위치한 풍운뇌우의 신좌(神座)를 가리킨다. 다음 문장에 나오는 국내 산천의 신좌는 왼쪽에, 그 다음 문장에 나오는 성황의 신좌는 오른쪽에 있었는데,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주D-005]신임년 : 신유년(1681, 숙종7)과 임술년(1682)을 말한다.
[주D-006]구망씨(句芒氏) : 오행(五行) 중에 목(木)의 운(運)을 맡은 신(神)으로, 봄을 관장한다.
[주D-007]축융씨(祝融氏) : 오행 중에 화(火)의 운을 맡은 신으로, 여름을 관장한다.
[주D-008]후토씨(后土氏) : 오행 중에 토(土)의 운을 맡은 신으로, 토지를 관장한다.
[주D-009]욕수씨(蓐收氏) : 오행 중에 금(金)의 운을 맡은 신으로, 가을을 관장한다.
[주D-010]후직씨(后稷氏) : 순(舜) 임금 때에 후직 벼슬을 맡아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기(棄)를 말하는데, 뒤에 곡식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졌다.
[주D-011]현명씨(玄冥氏) : 오행 중에 수(水)의 운을 맡은 신으로, 겨울을 관장한다

 

 동문선 제18권
 칠언배율(七言排律)
삼각산 문수사(三角山文殊寺)


이장용(李藏用)

성남 10리엔 희디 흰 모래벌판 / 城南十里平沙白
성북엔 두어 떨기 푸른 봉이 겹겹인데 / 城北數朶重岑碧
늙은 태수 게을러 일찍 공무 끝내고 / 老守疏慵放早衙
훨훨 나다니며 좋은 경치 찾아 가네 / 出遊浩蕩尋幽跡
양주의 학을 탐은 그만두고 / 還他駕鶴楊州天
화산의 나귀 타는 명부에 한 사람 보태리 / 添却騎驢華山籍
관사를 마치려 하나 어리석어 무가내요 / 官事欲了無奈癡
구경에 철 잃을까 가석하기 때문일세 / 賞心易失尤堪惜
노랑 옷들 벽제함은 너무나 속된 일 / 黃裾唱引大俗生
푸른 눈과 함께 감이 더욱 높은 격이것다 / 碧眼相携有高格
비탈진 돌길을 한참 돌아가다가 / 試攀崎嶇石逕斜
인간 세상 벗어나니 고개 숲이 또 막히네 / 漸出像籠林嶺隔
깊은 골을 굽어보니 아득하기만 / 俯臨絶谷但蒼茫
가파른 봉에 올라보니 더욱 오들오들 / 上到危巓增跼蹐
갠 봉우린 해와 상거가 겨우 두어 길인 듯 / 晴峯距日纔數尋
구름 속 잔도는 허공에 몇천 자를 솟았는고 / 雲棧淩虛幾千尺
나는 새 가물가물 남천이 나직하고 / 鳥飛杳漠楚天低
넓은 벌판을 또렷이 한강이 쭉 그었네 / 野廣分明漢江畫
서쪽으로 바라보니 연기낀 듯 신선 물가 / 非煙西望卽仙洲
남으로 흘러 흘러 큰 물과 통해 / 大浸南連通水驛
한 번 올라와 홀로 탄식하니 / 一廻徙倚獨嗟咨
팔극을 금방 내휘두를 듯 / 八極須臾可揮斥
가파른 돌층계 울툭불툭 90단에 / 懸磴參差九十層
희미한 옛 자취는 나무신이 앞뒤굽 / 舊躅依稀上下屐
어허 이게 세상 아닌 청련궁일세 / 奇哉不世靑蓮宮
이르되 대지진인이 이룩한 절이라고 / 云是大智眞人宅
휑 뚫린 석굴 벽에 이끼가 아롱지고 / 石崛呀開苔蘚斑
번쩍이는 용 숲 속에 단청이 휘황하구나 / 林龍眩晃丹靑射
인자한 부처님 얼굴 복성 동쪽 그대로인 듯 / 睟容宛若福城東
가부좌로 높게 금사자를 타셨네 / 寶趺高馭金猊脊
편길장자 계시는 곳 마주 바라보나 / 相望遍吉長者居
법계 현관을 뉘라서 열 줄 알리 / 誰識法界玄關闢
대자비의 환한 얼굴이 속세 생각 덮어주고 / 大慈的的蠲煩襟
영천이 졸졸 흘러 더운 번뇌 가시는데 / 一掬涓涓貯靈液
유인이 천과 용의 꾸지람이 두려워서 / 遊人恐觸天龍嗔
북처럼 잔을 던져 주문 외고 물 마시네 / 卜領試呪杯梭擲
이내랑 안개 속에 흰 탑 홀로 우뚝 섰고 / 煙霞影裏孤㙮白
종 소리 은은한데 붉은 등 하나 켜 있네 / 鍾梵聲中一燈赤
수승한 법회는 보광에서 옮겨온 듯 / 依然勝會移普光
갖가지 묘한 공양은 향적에서 오는 듯 / 應有妙供來香積
들으니 선왕께서 어향을 사르셨다고 / 聞昔先王焚御香
지금도 중사(궁중의 내시)들이 종사의 복을 비네 / 至今中使祈宗祐
내가 오니 때마침 가을인데 / 我來適値雲揚秋
중의 만류로 머물러 저녁 산빛을 보게 되네 / 僧留歡賞山色夕
처마 끝의 산봉은 옥처럼 뾰죽뾰죽 / 倚簷列岫玉嵯峨
난간 앞의 숲에는 비단필을 두른 듯 / 當檻瑤林錦狼籍
산나물에 깨끗한 밥을 반가이 배불리 먹고 / 喜飡蔬食飫淸芳
포단을 빌어 앉아 곤한 몸을 쉬노라니 / 旋借蒲圑寄安適
이야기가 조용하자 하현 달이 문에 들고 / 語闌缺月入深扉
밤이 깊자 미풍이 잣나무를 스치는데 / 夜久微風吟聳栢
대견할손 선탑은 이리 고요하다마는 / 最憐禪榻靜寥寥
우스워라 인생은 어찌 저리 부산한고 / 忽笑人生何役役
쉽사리 벼슬 옷을 못 벗어버리는 몸 / 未能容易掛衣冠
혹시나 공명을 죽백에 드리울 건가 / 倘可功名垂竹帛
아이놈이 부르기에 번쩍 단잠을 깨니 / 淸眠恰被健稚呼
먼동이 벌써 터서 붉은 해가 솟았네 / 紅暈已動鴉輪赫
태애(台崖)에 손짓하며 부르는 이 좇으려다 / 擬追台崖招手人
여산(盧山)의 눈썹 찡그리는 손 됨이 부끄럽네 / 愧同廬嶽攢眉客
진세의 말로 청산을 더럽힌다 꺼려 마소 / 莫嫌塵語汚靑山
일찍이 단액에 입직 임금 말씀 받잡던 몸 / 曾演綸言直丹掖


 

[주D-001]양주(楊州)의 학(鶴)을 탐 : 여기서는 양주(楊州)의 수령으로 있기 때문에 인용하였다.
[주D-002]화산(華山)의 나귀 : 화산처사(華山處士) 진단(陳摶)이 일찍이 흰 나귀를 타고 변중(汴中)으로 들어가려다가 송 태조(宋太祖)가 등극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웃고 나귀에서 떨어지며 말하기를, “천하가 이제야 정(定)해졌군.” 하였다. 여기서는 삼각산(三角山)을 화산이라 한 것이다.
[주D-003]노랑 옷 : 수령(守令)이 행차할 때 앞을 인도하며 갈도(喝道)하는 졸노(卒奴)배.
[주D-004]푸른 눈 : 고승(高僧)은 벽안(碧眼)이 많다 한다.
[주D-005]희미한 …… 앞뒤굽 : 진(晉) 나라 사령운(謝靈運)이 등산(登山)을 좋아하였다. 등산할 때에 나무신[屐]을 신고 산에 올라갈 때에는 나무신의 앞 니를 떼고,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었다.
[주D-006]인자한 …… 동쪽 : 《화엄경(華嚴經)》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선지식(善知識 불법을 잘 아는 이)을 찾아 두루 다니다가 복성 동쪽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났다.
[주D-007]법계 현관(玄關) : 현묘(玄妙)한 도(道)와 관문. 《보등록(寶燈錄)》에, “현관을 크게 열고 바른 눈을 유통케 한다[玄關大啓 正眼流通].”하였다.
[주D-008]보광(普光) : 부처가 보광명장(普光明藏)에서《원각경(圓覺經)》을 설하였다. 보광명은 부처의 덕이 두루 밝다는 뜻이다.
[주D-009]태애(台崖)에 손짓하며 부르는 이 : 천태산(天台山) 벼랑으로 신선이 왕래한다는 곳. 이백(李白)의 시에, “신선이 나를 사랑한다면, 손을 들고 와 부르리라.[仙人如愛我 擧手來相招]”라는 구절이 있다.
[주D-010]여산(盧山)의 눈썹 찡그리는 손 : 진(晉) 나라 혜원사(惠遠師)가 도잠(陶潛)더러 자주 연사(蓮社)에 들라고 권하자, 연명(淵明)이 눈썹을 찡그리고 갔다. 《周續之 虞山記》
[주D-011]단액(丹掖) : 붉게 칠한 액성(掖省). 액성은 궁중의 문하성(門下省)ㆍ중서성(中書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