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 산행 /2011.11.22. 도봉산 역사 탐방

2011.11.22. 도봉산 역사탐방 (암각화 사찰 )

아베베1 2011. 11. 22. 14:07

 도봉동문

 용주담

 연단굴

 고산앙지

 필동암

 명수대

 복호동천   

 김수영 시비

  김수영  시비 도봉서원 경내

 도봉계곡 쌍줄기약수앞

 도봉계곡 쌍줄기약수앞

명수대 

 도봉계곡 명수대

 

 도봉계곡 거북바위

 도봉계곡 코끼리 바위

 도봉계곡 코끼리 바위

 

 

 

 

  연단굴 鍊丹窟 입구의 모습

 

●도봉산에 선비들 소신 쓴 바위 15개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지난 19일 도봉산의 숨은 보물 각석군을 방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석군이란 쉽게 말해 바위에 글을 새겨 놓은 무리가 모여 있다는 것이다.

도봉산에는 17세기에서 구한말까지 선비들이 자신들의 학문적 소신 등을 글이나 시구로 새겨 놓은 바위가 15개 있다. 내년부터 복원하기로 한, 조광조를 기리는 도봉서원과 함께 조선 후기를 만나볼 수 있는 역사문화 탐방 코스로 제격이다.

도봉산 초입에서는 어른 키보다 큰 바위에 노론의 태두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도봉동문’(道峯洞門)이 우선 눈에 띈다.

도봉동 영역을 설정하는 기준으로 잡는 이 각석은 우암이 62세 때 경기 양주 선산에 왔다가 개성 송도의 박연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도봉산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가면서 남겨 놓은 글이다. 당시 도봉서원의 선비들이 글을 적어 달라고 해 가장 큰 붓으로 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봉문화원 홍기원 사무국장은 “충북 괴산 화양구곡에 있는 송시열의 글 ‘화양동문’과 견줄 수 있는 것으로, 여기에서 동문(洞門)이라는 것은 파라다이스”라고 귀띔했다. 홍 국장은 “화양구곡 각석군을 최고로 치는데, 도봉동문은 화양동문 각석군과 비교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수려한 도봉계곡에서 산행하며 인문학적 가치도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서울에서는 이런 곳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단풍이 붉게 물드는 도봉산에서 이 구청장을 만난 등산객들은 “등산로에 있는 화장실에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민원도 하고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 등 친근하게 구청장을 대하고 있었다.

 

●“최고 각석군 화양구곡과 견줄 만해”

‘도봉동문’에서 시작하는 각석을 다 둘러보려면 걸어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중요한 글로는 공자의 말에서 인용된 만절필동(萬折必東)에 어원을 둔 ‘필동암’(必東岩)이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물은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자연현상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후기 집권 세력인 노론파의 집권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황하가 만번 꺾어져도 동쪽으로 흐른다는 말이지만 선조의 어록인 ‘만절필동재조변방’과 연결하면, 청나라가 들어섰더라도 망해가는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에 대해 의리와 지조를 지키자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복호동천’(伏虎洞天)은 선비들이 파라다이스에서 때를 기다리며 수양하고 있다는 뜻이다. 곡운 김수증(1624~1701)이 쓴 ‘고산앙지’(高山仰止)도 도봉서원에서 배향하는 조광조의 선비 정신을 기린 것이다. ‘제월광풍갱별전료장현송답잔원’(霽月光風別傳聊將絃誦答潺湲)은 우암의 글로 주자의 도덕적 품성을 기르고 절대로 출세를 위한 과거공부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망상을 하지 말도록 한두 편의 시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구청장은 “자연에 인문학적 가치를 부여한 조선 후기의 역사·문화적 보고를 잘 보전하고, 역사 문화 코스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 역사적 의미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제일동천의 암각화  

 제일동천   동중저

 제일동천 (第一洞天) 제일경치가 아름답다는 곳이다 우암의 글씨이다

동중즉선경  동구시도원

 

 

 

 

 

 먹으로 그린듯한 벽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연대는 알수가 없다

 

 무명정자가가 소재하고 있다.

 

 필동암 (必東巖)

 

 박사호 라는 사람이 썻다는 필동암 (必東巖)

 바위에 그린 그림이 아직도 선면하게 남아있다  

 용주담(용珠潭)

  참으로 특이한 그림이다

 

계산기정 제3권
 관사에 머물다[留館] ○ 갑자년(1804, 순조 4) 1월
9일(기해)


맑음. 옥하관에 머물렀다.

융복사(隆福寺)

융복사는 옹화궁(雍和宮) 근처에 있다. 절 가운데에서는 으레 한 달에 세 번씩 장을 여는데, 8일부터 시작해서 10일에 이르러서 비로소 철시한다. 여러 사람들 중에 관광하는 자가 많이 있기에 나도 역시 따라갔다.
절 가운데에 전각이 첩첩이 들어박이고 불상이 화려하게 베풀어져 있었다. 전후 좌우엔 물건을 반드시 종류별로 구분해서 각각 벌여 놓았는데, 서책(書冊)은 동쪽에, 주옥(珠玉)은 서쪽에 벌여 놓았다.
살 사람, 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서 요란을 피우니, 씻은 땀이 비를 이루고, 잇닿은 옷자락이 장막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각종 물품을 구경하느라 때가 이미 신시가 된 줄도 깨닫지 못하였다.

연경에 드니 저자가 많구나 / 入燕多市交
우연히 융복사를 찾았노라 / 偶尋隆福寺
절 안엔 부처가 손을 마주잡고 / 寺中佛又手
절 앞엔 사람들이 팔뚝을 잡는다 / 寺前人把臂
모든 물건은 새 값을 부르고 / 萬貨呼新價
흰 금은 저울로 다는구나 / 白金稱星鍾
방목을 걸어서 민속을 관찰하고 / 揭牓觀民俗
판도를 벌여서 토리를 묻는다 / 列版詢土利
개중에 서번의 오랑캐들은 / 就中西蕃胡
서로 만나면 잔뜩 취하는 짓 일삼네 / 相逢事深醉

화초포(花草鋪)

융복사의 동쪽을 거쳐 화초포에 들렀는데, 화초포는 세 군데였다. 모두 땅을 파서 굴실(窟室)을 만들었는데, 그 굴실 등마루가 땅에서 몇 자쯤 튀어나왔고 서쪽 곁을 소통해서 창문을 설치했는데, 그 속에 들어가니, 높은 데 못지 않게 밝았다.
수많은 꽃들은 모두 꽃술을 머금고 싹을 토했다. 복숭아ㆍ살구ㆍ매화ㆍ계수나무 등은 오히려 신기한 것이 못 되었고, 그중 영춘화(映春花)ㆍ수선화(水仙花)ㆍ천추화(千秋花)ㆍ말리화(茉莉花) 등이 모두 만발하여 아름다웠다.
꽃 향기는 실내에 가득하고 더운 기운은 사람을 엄습하니, 사람의 공력이 하늘의 조화를 앗았다고 할 만하다.
그 외에 석류ㆍ유자ㆍ해당화ㆍ버들ㆍ대나무ㆍ종려(棕櫚)ㆍ선인장(仙人掌)ㆍ난초ㆍ옥잠화(玉簪花) 등 모든 화초들 역시 시새워 고왔으니, 모두 구경할 만한 것들이었다.

향내는 코를 찌르고 나무는 어깨 가지런하고 / 薰香撲鼻樹齊肩
갖가지 꽃들은 시새워 곱구나 / 百種花葩競媚妍
저절로 춘풍 있어 굴실 내에 부니 / 自在春風噓窟室
상설이 되 하늘에 가득한 줄 모를러라 / 不知霜雪滿胡天
수 나라 궁원 비단쪽 꽃은 인공이 졸렬하고 / 隋宮翦綵人工拙
당 나라 동산 꽃 재촉하는 데는 황제의 명령 내렸다 / 唐苑催花帝詔宣
어찌 그리도 번화한 삼월 모춘(暮春) 같은고 / 何似繁華三月暮
훨훨 나는 나비 없는 게 부끄럽는걸 / 愧無蝴蝶日翩翩

궁화방(宮貨房)

화초포의 동쪽 변두리에 편액이 ‘궁화방(宮貨房)’이라고 쓰인 집이 있는데, 갖가지 품종의 진보(珍寶)가 그 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대개 오옥(烏玉)ㆍ청동(靑銅)ㆍ밀화(蜜花) 등 물품으로서 갖가지로 색채가 찬란하였다. 이것은 문방구에 불과한 것들이었는데, 한 물품의 값은 어느 것이든 천금(千金) 이상이었다.
좌우에는 큰 방경(方鏡)이 각각 걸렸는데, 그 크기는 충분히 벽 전체와 가지런하였다.
또 자명종(自鳴鐘)ㆍ금감(金龕)ㆍ옥탑(玉榻)ㆍ유리등감(琉璃燈龕)이 있어 번쩍번쩍 서로 비쳤는데 모두 보물이었다.
그중에 가장 구경할 만한 것은 진옥(眞玉)으로 새겨서 반도(蟠桃)를 만들고 청강석(靑矼石)으로 지엽(枝葉)을 아로새긴 나무였다. 그 나무의 높이는 한 발 남짓하였는데, 화실(花實)과 지엽은 진가(眞假)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이것은 화신(和珅)ㆍ복장안(福長安)의 적몰(籍沒)된 가산인데, 후인들 중에 사 간 자가 있다. 그래서, 날마다 친왕(親王)ㆍ귀인(貴人)들이 직접 사 가는 바 되어 지금은 있는 것이 전에 비해 반밖에 안 된다고 한다.
초구(貂裘) 입은 사람 한 명이 수레를 타고 와서 옥관(玉梡) 1개를 사 가기에 물어보았더니, 그는 바로 황제의 친조카였는데, 그를 호위해 따르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구거리의 머리 깊숙한 저자에 / 九達街頭巷市深
찬란한 보물들 사람 마음 호탕하게 하네 / 波斯光怪蕩人心
비단 갖옷을 입은 저 공자 풍채가 대단한데 / 錦裘公子多風韵
손엔 수백 금 값어치의 옥잔을 가졌구나 / 手把瓊杯數百金


 

[주D-001]수 나라 …… 졸렬하고 : 수 양제(隋煬帝)는 대업(大業) 원년에 둘레가 300리나 되게 서원(西苑)을 쌓은 다음, 그 안에는 방장(方丈)ㆍ봉래(蓬萊)ㆍ영주(瀛洲) 등 모든 산을 만들고 대관(臺觀)ㆍ궁전(宮殿)을 화려하게 늘어 지었으며, 온갖 화목(花木)을 심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꽃이 지면 사람들을 시켜서 채색 비단을 잘라 꽃과 잎을 만들어서 나뭇가지에 붙이게 했던 것이다. 《續世說》
[주D-002]당 나라 …… 내렸다 : 당 명황(唐明皇)이 2월에 상원(上苑)에서 놀 때 장사들을 시켜서 갈고(羯鼓)를 쳐 꽃이 빨리 피게 하였더니, 꽃이 과연 피었다 한다. 《開元天寶遺事》
[주D-003]오옥(烏玉) …… 찬란하였다 : 이 대문이 박사호(朴思浩)의 《심전고(心田稿)》 연행잡저(燕行雜著)에는 “蓋烏玉靑銅 密花金具之屬 及其他樣樣色色”이라 하여, 오옥 청동(烏玉靑銅) 등과 양양 색색(樣樣色色)이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밀(蜜)’ 자는 ‘밀(密)’ 자로 되어 있다.
[주D-004]방경(方鏡) : 《심전고》에는 석경(石鏡)으로 되어 있다.
[주D-005]유리등감(琉璃燈龕) : 《심전고》에는 유리등롱(琉璃燈籠)으로 되어 있다.
[주D-006]화신(和珅) …… 있다 : 이 대문은 《심전고》에 “和珅福長安等諸臣籍産之物 買置此處”라고 되었다.
[주D-007]친왕(親王) : 황제의 아들들을 말한다.

 

 

 성호사설 제10권
 인사문(人事門)
정탐(偵探)


병법(兵法)에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 하였으니, 자기 힘을 아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상대의 힘을 아는 것이랴? 늘 상대하는 백성도 거짓과 간사한 짓을 숨기고 있는데, 비밀히 조사하지 않으면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옛날 육관(六官 주(周) 나라 때의 천관(天官)ㆍ지관(地官)ㆍ춘관(春官)ㆍ하관(夏官)ㆍ추관(秋官)ㆍ동관(冬官)을 이른다.)에 상구씨(爽鳩氏)가 형관(刑官)으로 되었으니, 이 상구란 매[鷹]이다. 매의 눈은 멀리까지 잘 보기 때문에 풀과 나무가 우거진 속에 있는 꿩과 토끼들의 동정도 분명히 알아낸다. 그러나 그 중 몸뚱이를 깊이 감추고 형적을 나타내지 않는 놈은 사냥개[獫歇]를 써야만 발견해 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적이 저희 나라에서 온갖 방법으로 속임수를 쓰는 것은 간첩(間諜)을 보내어 잘 정탐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적의 진상을 헤아려 내겠는가? 옛말에 “일을 도모하는 데는 간첩보다 더 가까이할 것이 없고 상을 주는 데도 간첩보다 더 후히 할 것이 없다.” 하였으니, 작록(爵祿)과 금백(金帛)을 아껴서 적의 실정을 탐지하려 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불인(不仁)한 것이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쓰는 데 있어서는 어진 인재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까닭에, 내가 인재를 얻으면 안심할 수 있고 적이 인재를 얻으면 두려운 생각이 든다. 항우(項羽)에게는 아부(亞父)가 있었으므로 한 고조(漢高祖)는 그를 없애지 않으면 전쟁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4만 금의 돈을 아끼지 않고 반간(反間)을 놓아 마음먹은 일을 완수하였다. 이 4만 금의 돈이 너무 많은 듯하지만 한 고조가 미리 적의 형편을 탐지하자면 이만한 돈이 아니고는 되지 않았을 것이고, 아부의 지위가 흔들리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신(韓信)도 조(趙) 나라를 칠 때, 조 나라에서 이좌거(李左車)의 계획이 쓰이지 않는 것을 미리 정탐한 다음에 용감하게 진격하였고, 금가한(金可汗)도 요양(遼陽)에서 지포(地砲)를 맞고 여러 장수들에게 계책을 물었을 때, 오직 구영개(九永介)만이 “먼저 원숭환(袁崇煥)을 없앤 다음이라야 중원(中原)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므로 드디어 온갖 비단을 위당(魏璫)에게 뇌물로 주어 숭환을 몰아 죽이자, 명(明) 나라는 다시 대항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본다면 적의 형편을 자세히 정탐하여 먼저 승산부터 결정하여 그것에 따라 대처하고 지혜를 잘 요량할 것이지 군사의 힘만 따져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풍각(風角)조점(鳥占)고경(枯莖)ㆍ후골(朽骨) 따위의 기술이 있다 할지라도 어찌 적의 정상을 추측하여 알아낼 수 있겠는가?
병자ㆍ정축년 난리에 임경업(林慶業)이 의주(義州)를 지키고 있을 때에 여러 방면으로 적의 내용을 정탐하여 동병(動兵)한다는 날짜까지 먼저 알고 있었으나 조정(朝廷)에서는 깨닫지 못했었다. 척화사(斥和使)가 갈 때에 경업이 부탁하기를 “여기서 얼마쯤 가면 대병(大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묻거든 너는 대답하기를 ‘의주 성안에는 지금 10만 명의 군사가 진을 치고 군량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고 하라.” 하고 드디어 흰 베로 온 성을 둘러싸서 마치 분첩(粉堞)처럼 만들었다. 얼마 후에 대병이 지나갔으나 감히 침범하지 않았다. 그때 오직 의주만이 적에게 함몰당하지 않은 것은 이런 반간술(反間術)을 썼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신이 되어 국경을 나가는 자가 누군들 적의 허실을 탐지하려고 하지 않겠는가마는, 재물 아낄 줄만 알아 겉 말과 웃음으로 호월(胡越) 같은 적의 심리를 파악하려 하니, 너무나 어긋난 계획이다. 근세에 어떤 민씨(閔氏) 재상(宰相)은 연경(燕京)에서 주씨(朱氏) 한 사람을 만나 그가 명(明) 나라의 후예라 믿고 노자를 털어 후히 대접하였고, 그 뒤에 또 사신 가는 편에 편지와 폐백을 보내었다. 뒤에 간 사신이 그를 찾아보니, 성도 주씨가 아니고 거지노릇을 하면서 남을 속이는 자였다.
또 변방에 경보(警報)가 있었을 때, 우리 변방 사람이 저들 백성에게 정보를 탐지해 주면 쌀 7석을 준다고 약속하여 놓고, 정보를 얻고 나서는 쌀 2석을 감하고 주자, 그는 웃으면서 받고 이르기를 “이 다음에는 너희들이 다시 정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으니, 우리나라 풍속은 비루하고 용렬함이 이와 같다.
천하에는 오랫동안 혼란은 있어도 늘 편할 때는 없는데, 조금 편할 시기에 혼란해질까 염려하면 사람들은 비웃으면서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니 이것은 마치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필연한 이치이다. 마을의 어떤 어른이 혼자 떨어진 털옷을 손질하고 솜옷을 햇볕에 쬐어 장차 한겨울 추위를 대비하려 하면, 어린이들은 반드시 서로 손뼉을 치면서 비웃을 것이나, 앞으로 서리가 내리고 또 얼음이 얼게 되면 갈포옷 입은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추위와 더위는 반드시 반년을 지나야 하지만 외적의 침입은 보무(步武) 밖에 있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런 이치에 깜깜해서 걱정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주D-001]나를 알고 …… 이긴다 : 이 말은 《손자(孫子)》 모공(謀攻)에 보인다.
[주D-002]상구씨(爽鳩氏) …… 되었으니 : 이 말은 《좌전》 소공(昭公) 11년 기사와 그 주에 보인다.
[주D-003]4만 금의 …… 완수하였다 : 이 말은 형양(滎陽)에서 항우에게 포위된 한 고조가 진평(陳平)의 계책을 들어 4만 금으로 초(楚) 나라의 군신을 이간시킨 것을 이른다. 《史記 高祖紀》
[주D-004]한신(韓信)도 …… 진격하였고 : 이 말은, 한신(韓信)이 조(趙) 나라를 공격할 때, 조 나라의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성안군(成安君)에게 한신을 격퇴할 계책을 말하였으나 듣지 않았는데, 간첩을 이용하여 이 사실을 탐지한 한신이 밤중에 조 나라를 공격하여 격파한 것을 이른다. 《史記 淮陰侯傳》
[주D-005]금가한(金可汗)도 요양(遼陽)에서 …… 죽이자 : 이 사실은 《명사》 원숭환전(袁崇煥傳)에는, 청병(淸兵)이 영원(寧遠)을 포위했을 때 숭환이 서양포(西洋砲)를 사용하여 물리쳤다고 보이고, 《청사》 태조기(太祖紀)에는, 태조 11년 정월에 명 나라의 영원을 칠 때 서양포에 사졸이 많아 상하여 공격을 그만두었다고 보일 뿐, 금가한(金可汗)이 지포(地砲)를 맞은 사실과 구영개(九永介)에게 계책을 물은 사실 등은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상고할 수 없다. 태조기에 의하면 금가한은 청 태조인 듯하나 구영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원숭환이 위충현(魏忠賢)의 잔당의 참소에 의해 죽은 점으로 보아 위당(魏璫)은 위당(魏黨)의 착오인 듯하다. 우리나라 박사호(朴思浩)의 《심전고(心田稿)》 홍이포기(紅夷砲記)와 김경선(金景善)의 《연원직지(燕轅直指)》 구혈대기(嘔血臺記)에, 청 태종의 10만 대군이 원숭환의 지뢰포(地雷砲)에 함몰당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고증이 되지 않는다.
[주D-006]풍각(風角) : 사방의 바람을 보아 길흉을 점치는 것.
[주D-007]조점(鳥占) : 해마다 정초(正初)가 되면 새를 잡아 배를 갈라 곡식이 많고 적음을 보아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것을 이른다. 《隋書 西城傳》
[주D-008]고경(枯莖)ㆍ후골(朽骨) : 고경은 시초(蓍草), 후골은 거북을 이르는데, 모두 점치는 데 쓰는 물건이다.
[주D-009]병자ㆍ정축년 난리 : 조선 인조(仁祖) 14년(1636)에 청 나라가 침입한 병자호란을 말한다.

박사호(朴士豪)

 

조선 전기의 유학. 김안국(金安國)의 문인(門人). 황정욱(黃廷彧)의 《지천집(芝川集)》에 그에게 보낸 시가 실려 있음.

시대: 조선전기  연도: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바윗돌

 참으로 이상하게 생긴바위가 아슬하게 남아있다

 

 

 

 

 

 

 

 

 

  도봉동문 (道峰洞門) 우암의 친필이다 힘이 넘치는 암각화 이다

 예전의 일설에 의하면 저위의 나무를 심기전에 도봉산 정상의 모습 달이 떴을때가 아름다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저 글씨는를 죽필(竹筆)로 썼다는 설이 있다 .   

옥담사집
병자년(1636) 난리 후에 집으로 돌아와 피난 중에 있었던 일들을 추술하여 조여벽에게 부쳐주다 40운 [丙子亂後還家追述避亂中事寄贈趙汝璧 四十韻]


자연 속에 가돈하여 몇 해나 지났던가 / 嘉遯林泉歲幾周
작은 시냇가에다 초가집을 지었었지 / 茅齋寄在小溪頭
형문에서 홀로 즐거이 사니 세상사 고요하고 / 衡門獨樂塵機靜
화사에서 유람하니 한가한 흥취가 많아라 / 花社從遊逸興稠
중울의 문 앞에는 잡초 속에 길을 열었고 / 仲蔚門前開草逕
도잠의 거리 밖에는 방초 우거진 물가일세 / 陶潜巷外挹芳洲
땅이 외져 반곡은 휘감아 돌고 굽었으며 / 地偏盤谷繚而曲
마을이 후미져 도원은 단절되어 더욱 그윽해라 / 村僻桃源絶更幽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내 뜻이 아니요 / 拖紫紆靑非我志
부귀영화 누리는 것도 뜬구름과 같아라 / 乘軺建節若雲浮
삼천 길 백발 빗질해 보니 듬성해졌고 / 三千丈髮梳來少
일만 섬 시름은 늙을수록 하염없구나 / 萬斛閑愁老更悠
홀로 티끌 세상에 서매 좋은 벗 없지만 / 獨立塵寰無好伴
속세 밖에 어진 이 있을 줄 어이 알았으랴 / 寧知物表有賢流
우뚝 뛰어난 재주는 장경보다 낫고 / 奇才卓犖長卿右
펼쳐진 아름다운 문장은 자건의 짝이어라 / 麗藻聯翩子建儔
반평생 동안 전원에서 재능을 숨긴 채 살았고 / 半世丘園藏羽翼
바둑에만 마음을 쏟으며 즐거이 노닐었네 / 專心碁局樂遨游
날마다 서책을 탐독하니 마음에 속됨 없고 / 圖書日嗜心無俗
늘 술동이 그득하니 술을 사지 않아도 되었지 / 樽杓長盈酒不謀
금란의 우정은 평소에 쌓아온 지 알겠거니 / 托契金蘭知有素
교칠과 같이 서로 사귄 지 그 몇 해이런고 / 相從膠漆幾經秋
때로 와력을 가지고 맑은 서안(書案)을 더럽히고 / 時將瓦礫塵淸案
매양 경거를 가지고 늙은 눈을 부비게 하였지 / 每把瓊琚刮老眸
좋은 밤엔 다정히 누워서 보내던 그 날을 그리워하고 / 良夜相思同臥榻
꽃 피는 시절엔 함께 누각에 오르던 때를 생각한다오 / 花辰日憶共登樓
용순은 반드시 은자가 잡기를 기다리고 / 龍脣必待幽人挈
작설차는 늘 좋은 손님과 함께 마신다 / 雀舌恒從美客酬
세로에 지음으로 오직 그대가 있으니 / 世路知音君獨在
인간세상 만남과 이별엔 근심이 없어라 / 人間離合庶無憂
먼지가 옥새에 이니 삼정이 어두워지고 / 塵驚玉塞三精暗
말이 금하를 건너니 팔도가 짓밟히었네 / 馬渡金河八路蹂
달무리 진 외로운 성에는 새벽 딱따기 소리 울리고 / 月暈孤城晨擊柝
구름처럼 모인 용맹한 병사들 밤에도 북채 안고 잔다 / 雲屯猛士夜援枹
백성들 붙잡혀 가니 들판마다 곡하는 소리 / 燕民繫累千原哭
재물을 쓸어가느라 촌락마다 다 뒤지누나 / 秦貨擔歸萬落搜
학가는 서쪽으로 먼 요동 변새를 순시하고 / 鶴駕西巡遼塞遠
용안은 삭풍이 몰아치는 북쪽을 바라보셨어라 / 龍顔北望朔風颼
수레와 시종(侍從) 이어져 길에는 먼지 자욱하고 / 車從絡繹黃塵合
피난하는 행차 어지러워 밝은 해도 시름겹다 / 冠蓋繽紛白日愁
조정에서는 기미의 계책 쓰느라 세월만 보내고 / 廟算羈縻淹歲月
정벌의 계획은 고식적이라 창칼은 녹이 스누나 / 征謀姑息老戈矛
많은 식구 거느리고 남쪽 고을 수령 의지해 / 提携百口依南宰
갖은 신고 다 겪으며 바닷가에서 피난했네 / 備歷千辛賴海陬
객지에서 뜻밖의 상봉은 참으로 드문 일이니 / 逆旅相逢眞有數
진창길에서 이렇게 만나는 일 어찌 쉬우리오 / 泥途會面亦安偸
남은 술 식은 고깃점에 나그네 회포가 같고 / 殘盃冷炙同羇抱
필마에 여윈 아이종 데리고 객지를 떠돌았지 / 匹馬羸僮共旅遊
칡이 모구에 굵으니 세월이 오래 흘렀고 / 葛誕旄丘時已晩
외가 기협에 생기니 한 해가 지나갔어라 / 瓜生夔峽歲將遒
멀리 고향을 바라보며 유린당한 강토를 슬퍼하고 / 遙瞻故國悲秦衂
모임을 신정에서 마치매 초나라 죄수처럼 울었지 / 會罷新亭泣楚囚
다행히도 하늘이 내렸던 재앙을 거두시고 / 賴得皇天能悔禍
마침내 성상으로 하여금 이 나라 안정케 하셨네 / 終敎睿算定神州
타향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내 땅이 아니라 / 他鄕信美非吾土
여장을 꾸려 서로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니 / 行李相將返故丘
죽은 사람 산 사람 안부 물으매 슬픔은 끝없고 / 弔死問生哀不盡
홀아비 과부 위로하며 곡소리 그치지 않았어라 / 悲鰥慰寡哭無休
여염집들은 죄다 불타서 잿더미만 담았고 / 閭閻蕩爇餘灰燼
텅 빈 마을에는 간간이 해골만 널려 있는데 / 村巷空虛間髑髏
집안에 두었던 주현은 어디로 갔는지 뵈지 않고 / 屋裏朱絃亡不見
상자 속의 서책은 흩어져 수습할 수 없었네 / 籠中黃卷散無收
백성들은 스스로 삼생의 괴로움 탄식하고 / 齊民自歎三生苦
임금은 깊이 국가 재생의 계책을 도모하셨지 / 聖主深圖再造猷
자극에서는 한밤중에 측루를 생각하고 / 紫極中宵思側陋
단루에서는 전석하여 방구를 물었어라 / 丹樓前席問旁求
외로운 백성 불쌍히 여겨서 정치에 애를 쓰고 / 哀傷煢獨勞王政
피폐한 민생 보살피느라 내수에 힘을 다하누나 / 存恤瘡痍盡內修
혼란이 극도에 이르면 다스림 생각하는 때가 됐나니 / 亂極思治時已在
성공을 거둠이 패배로 말미암는 이치는 당연한 것 / 功成因敗理應優
변방에 난리가 안 일어나 조두 소리 그치고 / 邊聲不起停刁斗
봉화 연기 일어나지 않아 군대 깃발 누웠어라 / 烽火無烟偃旆斿
군사들은 이 때 응당 철마를 쉴 테고 / 壯士時當休鐵馬
장군이 투구를 벗는 것을 장차 보게 되며 / 將軍佇見脫兜䥐
시인들은 황하 맑음을 칭송하는 시를 짓고 / 詞人擬作河淸頌
은사들은 바다로 들어가는 노래를 그치리 / 隱士休歌入海謳
태평을 즐거워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 / 相樂太平眞所樂
함께 왕의 교화를 도울 길이 어찌 없으리오 / 共添王化豈無由
남은 생애 지금은 다 같이 일 없이 한가해 / 餘生此日同無事
나란히 물가에 앉아서 낚싯대나 드리우세 / 並坐苔磯引釣鉤

차운 조완. 호는 삼산이다 [次韻 趙完 三山]
길가엔 푸른 솔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우고 / 挾巷靑松蔭道周
한가함 달래는 서책만 책상에 놓여 있어라 / 消閑黃卷靜床頭
사립문 정갈하여 속세의 인연 드물고 / 柴扉蕭洒塵緣少
초가집은 그윽하여 시골 정취 많구나 / 茅屋幽深野趣稠
붉은 여뀌 우거진 기슭 가랑비 속에 낚시 드리우고 / 細雨垂竿紅蓼岸
흰 마름꽃 핀 물가에 저물녘 바람 불 제 젓대를 분다 / 晩風橫篴白蘋洲
한 마리 소로 농사짓는 언덕에서 방공은 늙고 / 一犂壟上龎公老
백 가지 화초 우거진 정원에서 사마는 한가로워라 / 百卉園中司馬幽
적막한 연하 속에 은거해 서로 만나기 어렵고 / 寥落烟霞成契闊
아득한 천지에서 속세에 부침하는 일 떠났어라 / 蒼茫天地謝沈浮
젊어서부터 술과 바둑 즐기며 세상 명리 멀리했고 / 少從碁酒名場遠
늙어서는 낚시 땔나무나 하며 한가로운 흥취 유유하네 / 老作漁樵逸興悠
정갈한 거처는 무엇보다 속세의 속박 없는 게 좋고 / 淨界最憐無世累
한가로이 살매 도리어 시벗을 만남이 반가워라 / 端居還喜得詩流
안영처럼 오래 공경함을 나는 늘 흠모하노니 / 晏嬰久敬吾常慕
관중의 마음 통하는 벗에 그대 비길 만하도다 / 管仲神交子可儔
산 속 집에서 바람과 안개 속에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 山館風烟開謔浪
들판 정자에서 꽃과 버들 속에 한가로이 맘껏 노닐었네 / 野亭花柳任優游
서로 운자(韻字)를 부르며 시를 자주 썼나니 / 相呼玉韻詩頻寫
함께 금귀를 잡고 술을 몇 번이나 마셨던고 / 共把金龜酒幾謀
백년 평생 세월은 임하에 저물고 / 百載光陰林下晩
우리 두 늙은이 머리털 거울 속에 세었어라 / 兩翁蓬鬢鏡中秋
산골 늙은이는 북쪽으로 바라보며 고개 돌리고 / 山翁北望應回首
물가 늙은이는 남쪽을 보며 눈길만 보낼 테지 / 潭老南瞻謾騁眸
늙고 병든 몸 늘 침석에 엎드려 있으니 / 衰病纏身常伏枕
이별의 회포에 몇 번이나 누각에 기댔던고 / 別離傷抱幾憑樓
짚신에 죽장 차림으로 찾아가지는 않으나 / 芒鞋竹杖休尋訪
술병 놓고 지은 글 품평하며 술잔 주고받는다 / 樽酒論文間作酬
한 번 조정에서 계책을 잘못 세운 뒤로는 / 一自廟堂謬算策
구중궁궐 임금께서 국사에 근심 많았네 / 九重宵旰軫虞憂
전란의 먼지 천지 가득한데 금고 소리 울리고 / 塵昏宇宙金鼙動
불길 훑는 산하를 적군의 철마가 짓밟고 갔지 / 火獵山河鐵馬蹂
그 누가 조생이 형수 건너던 노 두드릴꼬 / 誰擊祖生荊水楫
전장(田將)은 적성의 북채를 아직 잡지 않았네 / 未援田將狄城枹
곳곳마다 백성들은 마구 살육을 당하고 / 人民處處紛誅戮
집집마다 재물을 죄다 수탈해 갔으니 / 玉帛家家恣括搜
사해가 혼란해 임금은 시름이 가득하고 / 四海奔波顔慽慽
벼슬아치들은 허겁지겁 피난을 갔어라 / 千官顚倒鬢颼颼
닭이 울어도 용루의 침소에 문안하지 않으니 / 鷄鳴休問龍樓寢
변방에는 응당 학가의 시름을 보태리 / 燕塞應添鶴駕愁
노신들은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있으랴 / 晉老可堪垂涕淚
군사들은 더 이상 창칼을 쓰지 않는구나 / 魏師無復試戈矛
군신들이 멀리 음산 저편에 가 있으니 / 君臣地隔陰山外
소식이 하늘 저편 외진 한해 쪽에 있어라
/ 消息天分瀚海陬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하는 의리 알거니 / 主辱固知臣死義
국가가 수치를 당했거늘 도리어 내 살 길을 도모하리오 / 國羞還苟我生偸
타향이라 새해를 맞는 감회가 곱절로 더하고 / 他鄕倍感逢新歲
나그네 길에 예전 노닐던 곳 만나면 몹시 놀란다 / 逆旅偏驚値舊遊
덧없이 떠도는 신세 강호에 오래 머무노니 / 身世飄零湖外滯
세월은 빨리 흘러 나그네 곁을 지나가누나 / 年光倏忽客邊遒
백성들 도탄에 빠지니 간장은 끊어질 듯하고 / 生靈塗炭腸堪斷
국사에 대해 말이 없으니 혀는 감옥에 갇힌 듯 / 國事無言舌似囚
회포는 그야말로 향수에 젖은 것과 같은데 / 懷抱正同思故土
객지생활 다행히 함께 당주에 있었어라 / 橐囊幸共賴唐州
꿈속에서 아스라이 멀리 선영을 찾아가 / 迢迢客夢尋先壟
시름에 잠긴 나그네 혼 옛 동산 맴돌았네 / 黯黯羇魂繞某丘
옛 집터에 돌아오매 슬픔을 견디지 못해 / 迹返故墟悲不耐
황량한 주춧돌 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지 / 眼隨荒砌淚無休
동쪽 이웃집 버려진 우물엔 이끼만 자욱하고 / 東隣癈井封苔蘚
북쪽 거리엔 시체가 가득 해골만 널려 있어라 / 北巷塡屍亂髑髏
벽에 남은 책들을 잿더미 속에서 거두고 / 壁上餘書灰裏拾
풀 속에 뒹구는 깨진 기왓장을 빗속에 주워모은다 / 草間壞瓦雨中收
종묘사직 회복하도록 신명이 도와주시니 / 重恢宗社神明佑
이 나라 새로 일으킨 건 성상의 계책일세 / 再造寰區聖主猷
종들은 흩어지고 없으니 반가이 모일 수 있으랴 / 僮僕散亡焉得歎
자손들을 보전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 子孫全保復何求
산 사람 위문하고 죽은 사람 조문하매 성은이 넉넉하고 / 問生弔死燕恩浹
과부 보살피고 홀아비 돌보아 훌륭한 정치 폈어라 / 恤寡哀鰥漢政修
유해가 된 군사 측은히 여겨 보상금을 넉넉히 주고 / 師惻遺骸酬帛歛
전쟁 겪은 땅 불쌍히 여겨 조세 많이 감면해 주었지 / 地矜經戰免租優
훗날 우리 동국이 장차 소생할 것이니 / 他年東國將蘇息
지금 관서 지방에 군사 깃발이 거두어졌네 / 今日西關卷旆斿
수자리 서는 군졸들은 창칼 갈무리한 채 구름을 갈고 / 戍卒耕雲藏劍戟
건장한 남아들은 투구 벗고서 한가로이 휴식하리라 / 健兒休養解兜䥐
강산은 아득한데 변방에는 경보를 알려오는 사람 없고 / 江山漠漠邊無使
들판의 보리는 푸릇푸릇 거리에는 아이들 동요 소리 / 野麥靑靑巷有謳
나라 걱정에 이내 작은 충정이 속절없이 격할 뿐 / 憂國寸誠空自激
적을 무찌를 삼략을 얻을 길이 실로 없구나 / 殲戎三略實無由
강호에 사는 이 늙은이 끝내 어디에 쓰리오 / 江湖老叟終何用
세상 밖에서 남은 생애 낚시질로 보내리라 / 物外餘生寄釣鉤

차운 오상. 계유년(1633, 29세) 진사시에 두양과 동방 급제하였다 [次韻 吳尙 癸酉進士斗揚同榜]
안연의 표주박 한 즐거움에 도가 이미 넉넉해 / 一樂顔瓢道旣周
세간은 명리 따위에는 고개 돌리지 않으시네 / 世間名利不回頭
초가집 처마에 해는 긴데 금서가 고요하고 / 茅簷日永琴書靜
집 앞 거리엔 사람 드물고 초목만 우거졌어라 / 門巷人稀草木稠
마음은 청풍에다 제월과 같이 맑고 / 心似淸風兼霽月
정신은 용포와 인주에 한가로이 노니네 / 神遊龍圃與麟洲
산수에 평소부터 살아온 터라 그 속에서 늙어가나니 / 溪山有素身將老
물고기와 새에 기심을 잊으매 흥취 더욱 그윽하여라 / 魚鳥忘機興轉幽
구름 가에 옥을 심으매 아침 해가 저물고 / 種玉雲邊朝日晩
숲 속에서 차 달이니 저녁 연기 피어오른다 / 煮茶林下夕烟浮
자취를 감추려니 매양 세상이 좁은 게 한스럽고 / 藏蹤每恨塵寰窄
옛날을 생각하며 속절없이 성인의 길이 멂을 슬퍼한다 / 思古空悲聖路悠
젊은 날 뛰어난 재주로 좋은 정치 이루길 기약했는데 / 少日才華期致澤
만년에는 시 읊고 술 마시며 풍류나 즐기시네 / 暮年詩酒屬風流
반계에서 어찌 주왕이 사냥 나오길 바라리오 / 磻溪詎望周王獵
율리에서는 진사의 짝이 되기에 충분하여라 / 栗里堪爲晉士儔
마치 공자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처럼 공부하니 / 如在孔門承訓誨
곧 문학이 상유를 능가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 卽看文學邁商游
뛰어난 문학의 재능 집안 대대로 이었으며 / 升堂翰墨傳家美
술상을 차려 놓고서 손님들을 불러들이네 / 斗酒盃盤見客謀
한 쌍의 나막신으로 매양 눈 덮인 남악 지나가고 / 雙屐每穿南嶽雪
하나의 낚싯대 때로 가을 옥담에 던지누나 / 一竿時擲玉潭秋
일곱 개 보배 구슬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따르고 / 七枚寶璧隨祥雲
한 쌍의 금빛 연꽃은 사람들 눈 부비고 본다 / 雙朶金蓮拭衆眸
대숲에다 집을 지었는데 색동옷 나란하고 / 家作竹林聯彩服
하늘을 도는 북두성이 동쪽 누각에 모였어라 / 天回北斗聚東樓
조숙한 덕이 천성에서 나온 것임을 내 아노니 / 吾知夙德由天性
신명이 고문을 돌보아 복록으로 보답하리라 / 神眷高門以福酬
무릎을 안고서 속절없이 제갈량처럼 노래하고 / 抱膝空勞諸葛嘯
시국에 상심하여 늘 범중엄처럼 몹시 근심하네 / 傷時恒切仲淹憂
병자년 난리 때의 고난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 追思丙子艱虞事
금구가 오랑캐에게 짓밟힌 사실 어이 차마 말하랴 / 忍說金甌羯狗蹂
한 모퉁이 외로운 성이 적의 공격 받을 제 / 一隅孤城方受箭
오경에도 차가운 성가퀴에는 북소리 그치지 않았지 / 五更寒堞不停枹
곰과 범 같은 장졸들 부르짖는 소리에 산이 찢어질 듯 / 熊咆虎吼山將裂
멧돼지 고래처럼 돌격해 오니 바다도 시름에 여윌 듯 / 豕突鯨奔海亦瘦
밝던 해도 빛을 잃어 하늘은 흐릿한데 / 白日無光天漠漠
슬픈 바람 피비린내 풍겨오고 비는 부슬부슬 / 悲風吹血雨颼颼
산천은 죄다 병사 주둔하는 곳이 되어 버리니 / 林泉盡入屯兵地
원숭이와 학은 속절없이 임금 연모하는 정 많아라 / 猿鶴空多戀主愁
한 달 동안이나 피난하며 쇄미한 신세 슬퍼하니 / 跋涉三旬悲瑣尾
전란의 먼지 자욱한 천 리에 창칼이 뒤덮었어라 / 烟塵千里蔽干矛
고향은 아득히 멀어 산은 첩첩 천 겹인데 / 鄕關杳杳山千疊
외로운 섬 망망한 바다 한 귀퉁이에 있었네 / 孤島茫茫海一陬
그곳에서 일백 식구 무사한 게 참으로 다행 / 百口無殤眞所幸
호공이 가졌던 비결을 홀로 훔칠 수 있었던 게지 / 壺公有訣獨能偸
고향 두곡은 잡초만 무성해 황폐해졌으니 / 蓬深杜谷成塵迹
학이 요양에 돌아오매 옛일에 감회가 일어라 / 鶴返遼陽感舊遊
하늘의 뜻 은연중 사람의 일에 호응하고 / 天意暗隨人事應
순박한 풍속은 날로 세월 따라 사라져 가네 / 淳風日逐歲華遒
진나라 관문에서 그 누가 닭 울음 흉내를 낼까 / 秦關孰效鷄鳴術
연옥에는 한나라 사람들이 많이 갇혔어라 / 燕獄猶多漢節囚
꿈속에서도 슬픔이 일어 세도를 보노니 / 夢裏興哀看世道
도성에 계신 임금님 소식 알 수 없어라 / 日邊消息阻皇州
천추에 이어온 예악 문물 어디로 사라졌나 / 千秋禮樂歸何地
당대의 영걸들 중년 나이에 땅 속에 묻혔네 / 一代勳英半世丘
남쪽은 두렵고 북쪽은 걱정돼 갈 곳이 없나니 / 畏南憂北無處適
군사 검점하고 군량 실어나르는 일 언제나 그칠꼬 / 點軍輸粟幾時休
오직 변방의 노인처럼 그저 운명에 맡기고 / 唯從塞老安時命
다시금 장공이 해골을 베고 누운 것 배우노라 / 更學莊翁枕髑髏
천 섬의 한가한 시름을 잔의 술로 씻을 수 있고 / 千斛閑愁盃可滌
만 숲의 경치는 붓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어라 / 萬林雲物筆能收
도사와 함께 도 닦는 비결을 얘기하고 싶을 뿐 / 思携羽客談眞籙
금문에서 큰 문장을 지어 올리길 원치 않는다 / 不願金門獻壯猷
다행히도 내가 공의 마을 근처에 사는 터라 / 幸我卜居仁里近
의기투합하는 사귐을 일찍이 이정에서 찾았지 / 神交早向鯉庭求
아양곡 속에서 마음을 서로 허여했고 / 峩洋曲裏心相許
난옥이 모인 속에서 학문이 이미 닦였어라 / 蘭玉叢中學已修
일산 기울이매 매양 친밀한 정에 기쁘고 / 傾蓋每欣情意密
침상 아래 절하고 넉넉한 예우를 받았었지 / 拜床仍荷禮容優
종횡하는 문장은 창칼을 가득 벌여놓은 듯 / 縱橫筆陣森戈戟
문단에 우뚝하여 깃발을 높이 세웠으니 / 崷崪詞壇建旆斿
만 마리 말이 발굽 모으매 마구(馬具)가 삼엄하고 / 萬馬攢蹄嚴韅靷
일천 군인 무기 잡으니 갑주(甲冑)가 정연하여라 / 千軍執銳整兜䥐
훗날 악부에서 새 시편들 고를 때 / 他年樂府調新律
응당 이소와 함께 초나라 노래에 들리라
/ 應共離騷入楚謳
주신 시편에 답하지 못해 도리어 부끄러운데 / 辱贈未酬還自愧
새로 지은 시편을 보고 싶은들 무슨 수로 보리오 / 新篇欲覩更何由
남쪽 교외 달 밝은 밤에 자주 머리를 들고 / 南郊月夜頻擡首
창 밖에 성근 발을 드리우지 않고 달빛을 본다오
/ 窓外疎簾不下鉤


 

[주D-001]가돈(嘉遯) : 〈돈괘(遯卦)〉 〈구오(九五) 효사(爻辭)〉에 “아름다운 은둔이니, 바르므로 길하다.[嘉遯 貞吉]” 하였다. 이는 출처거취(出處去就)를 중정(中正)한 도리에 맞게 하여 은둔하는 것으로 매우 좋은 은둔이 된다.
[주D-002]형문(衡門) : 원래 나무를 가로로 걸쳐서 만든 소박한 문인데 후세에는 은사(隱士)의 집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진풍(陳風) 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여! 편안히 살 만하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하였다.
[주D-003]화사(花社) : 우화사(雨花社)의 준말로 절의 이칭이다. 석가(釋迦)가 설법을 하니 하늘에서 천신(天神)이 꽃비를 내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중울(仲蔚) : 한(漢)나라 때 사람인 장중울(張仲蔚)을 가리킨다. 그는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였는데, 그가 거처하는 곳에 쑥대가 우거져 사람이 파묻힐 정도였다 한다. 《三輔決錄》 자신을 장중울에 비긴 것이다.
[주D-005]도잠(陶潛)의 거리 : 자신이 사는 곳을 은자가 사는 거리에 비겼다. 도잠은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다. 그의 〈잡시(雜詩)〉에 “사람이 사는 지역에 집을 지었건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없어라.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하여 이럴 수 있는가. 마음이 속세와 머니 지역이 절로 외지네.[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한 것을 차용하였다.
[주D-006]반곡(盤曲)은 …… 굽었으며 : 반곡은 골짜기 이름으로 은자가 사는 곳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작자 자신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태항산(太行山) 남쪽의 반곡으로 돌아가는 벗 이원(李愿)을 전별하는 뜻에서 지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란 글에서 그곳의 낙토(樂土)임을 누누히 말하고 그곳의 지형을 말하면서 “휘감아 돌고 굽었으니 갔다가 돌아오는 것 같다.[繚而曲 如往而復]”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주D-007]도원(桃源)은 …… 그윽해라 : 마을을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비긴 것이다. 도원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어떤 어부가 시내를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복사꽃이 물에 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만났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 마을이 깊은 산골이라 찾아가는 길이 바깥 세상과 끊어져 더욱 고요함을 형용한 것이다.
[주D-008]삼천 길 백발 : 이백(李白)의 시 〈추포가(秋浦歌)〉에 “백발이 삼천 길이나 되니, 시름 때문에 길어진 듯하여라. 알지 못하겠네 밝은 거울 속,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하였다.
[주D-009]일만 섬 시름 : 인생의 많은 근심을 형용하였다. 유신(庾信)의 〈수부(愁賦)〉에 “일촌 크기 마음을 가지고, 만곡의 많은 시름을 담는다.[且將一寸心 容此萬斛愁]” 하였다.
[주D-010]장경(長卿) : 전한(前漢)의 문장가로 대표적인 부(賦)의 작자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字)이다.
[주D-011]자건(子建) :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아들 식(植)의 자이다. 그는 뛰어난 문장으로 명성이 높아,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영운(謝靈運)이 “천하의 재주는 모두 한 섬인데 조자건(曹子建)이 혼자서 여덟 말을 가지고 내가 한 말을 가지고 천하 모든 사람들이 한 말을 나누어 가졌다.” 하였다. 《釋常談 八斗之才》
[주D-012]금란(金蘭) :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하여 매우 두터운 우정을 뜻하는 말이다. 《주역(周易)》 〈계사 상(繫辭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예리함이 쇠를 끊는다.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3]교칠(膠漆) : 교칠은 아교와 옻인데, 이 둘을 합하면 매우 견고하게 붙는다. 후한(後漢) 때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의 우정이 매우 두터우니,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교(阿膠)와 옻[漆]을 섞으면 굳게 붙는다지만, 그래도 뇌의와 진중 두 사람의 우정만큼 굳지는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 하였다.
[주D-014]때로 …… 더럽히고 : 와력(瓦礫)은 깨진 기왓장과 자갈, 즉 매우 보잘것없는 물건을 뜻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지은 시(詩)를 가리킨다. 즉 자신이 상대방에게 시를 보내는 것을 겸사로 말한 것이다.
[주D-015]매양 …… 하였지 : 상대방이 좋은 시를 보내주었음을 말한다. 경거(瓊琚)는 보배로운 구슬로 좋은 시문을 뜻한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목과(木瓜)〉에 “나에게 목과를 주거늘 경거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주D-016]용순(龍脣) : 거문고를 가리킨다. 후한(後漢)의 순숙(荀淑)은 자가 계화(季和)인데, 용순이란 거문고를 가지고 있다가 어느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던 날 잃어버렸다. 3년 뒤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던 날 흑룡(黑龍)이 날아서 이응(李膺)의 방에 들어왔다. 이응이 자세히 보고는 “순계화(荀季和)의 구물(舊物)이다.” 하고 순숙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순숙이 다시는 날아가지 못하게 등에 금으로 글씨를 새겨 “유루(劉累)로써 누른다.”하고 비룡(飛龍)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說郛》 유루는 고대에 용을 잘 길들이는 사람이다.
[주D-017]먼지가 …… 어두워지고 : 변방에서 난리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즉 호란(胡亂)을 가리킨다. 옥새(玉塞)는 한대(漢代)에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에 있던 옥문관새(玉門關塞)의 약칭으로, 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삼정(三精)은 해, 달, 별이다. 《문선(文選)》 〈후한서광무기찬(後漢書光武紀贊)〉에 “구현에 회오리바람이 일고 삼정은 안개가 끼어 깜깜하였다.[九縣飆廻 三精霧塞]” 하였는데, 천하가 매우 혼란함을 뜻한다.
[주D-018]말이 금하(金河)를 건너니 : 청(淸)나라 군사가 쳐들어왔음을 뜻한다. 금하(金河)는 내몽고(內蒙古) 지역에 있는 강으로, 현재의 이름은 대흑하(大黑河)이다. 북방 교통의 중심지였다.
[주D-019]학가(鶴駕) :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에 “왕자교는 바로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인데, 일찍이 흰 학을 타고 가 후씨산(緱氏山)에 머물렀다.” 하였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왕세자의 거가(車駕)를 학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간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D-020]기미(羈縻)의 계책 : 적국과 적당히 친선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외환을 막는 방책이다. 전한(前漢)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난촉부로(難蜀父老)〉에 “대개 천자가 이적을 다루는 것은 그 이치가 기미의 방책을 써서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일 뿐이다.[蓋天子之牧夷狄也 其義羈縻勿絶而已]” 하였다. 청나라에 소현세자(昭顯世子) 등을 볼모로 보낸 것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원수인 청나라와 적당히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주D-021]남은 …… 고깃점 : 객지의 처량한 신세를 뜻한다. 두보(杜甫)의 시 〈증위좌승(贈韋左丞)〉에 “나귀 타고 삼십 년 동안, 장안의 봄을 나그네 신세로 살아 왔네. 아침이면 부잣집 문을 찾아가고, 저녁이면 살진 말의 뒤를 따랐어라. 남은 술과 식은 고깃점, 가는 곳마다 남몰래 몹시 서러웠네.[騎驢三十載 旅食京華春 朝扣富兒門 暮隨肥馬塵 殘盃與冷炙 到處潛悲辛]”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2]칡이 모구(旄丘)에 굵으니 : 모구는 앞은 높고 뒤는 낮은 언덕이다. 《시경》 〈모구편(旄丘篇)〉에 “모구의 칡은 어쩌면 이리도 마디가 굵어졌는가. 숙이여 백이여! 어찌 이리도 오랜 시일이 걸리는가?[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 하였다. 이는 여국(黎國) 임금이 나라를 잃고 위국(衛國)에 와서 머문 지가 오래 되어도 위국에서 자기네를 원조하여 본국으로 보내주지 않음을 원망한 것이다. 여기서는 타향에서 오래 피난했음을 뜻한다.
[주D-023]외가 기협(夔峽)에 생기니 : 기협은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삼협(三峽)의 이칭이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안사(安史)의 난 때 피난하여 이 지역에 살았다. 당시에 지은 해민(解悶) 12수 중 셋째 수에 “한 번 고향을 떠나 십년이 지나니 매양 가을 외를 보면 고향을 그리워한다.[一辭故國十經秋 每見秋瓜憶故丘]” 하였다. 역시 고향을 떠나 피난하고 있는 신세를 비유하였다.
[주D-024]모임을 …… 울었지 :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나라 죄수[楚囚]는 본디 춘추시대 초(楚)나라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정인(鄭人)에 의해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갇혀 있을 때 진 혜공(晉惠公)이 그를 불러다가 여러 가지 일을 물어보고 그에게 거문고를 주었더니, 그는 그곳에서도 자기 고향인 초나라의 음악을 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成公5年》 신정(新亭)은 정자 이름이다. 진(晉)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천도(遷都)했을 때에 당시 인사들이 한가한 날이면 신정에 나와서 술을 마셨다. 주의(周顗)가 그 가운데 앉았다가 “풍경은 다르지 않으나 눈을 들어 보매 산하가 다르구나.”라고 탄식하니, 모두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왕도(王導)가 낯빛을 바꾸며 말하기를 “응당 함께 왕실과 협력하여 중원을 회복해야 할 것이지, 어찌 초수처럼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하였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주D-025]타향은 …… 아니라 : 중국 삼국시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이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식객으로 있을 때 성루(城樓) 위에 올라가 울울한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등루부(登樓賦)〉에 “참으로 아름답지만 나의 땅이 아니니, 어찌 잠시인들 머물 수 있으리오.[雖信美而非吾土兮 曾何足以少留]” 하였다.
[주D-026]주현(朱絃) : 붉은 현(絃)으로 거문고 줄을 뜻한다. 여기서는 거문고를 가리킨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청묘의 슬은 붉은 현으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하여,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음(餘音)이 있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 壹倡而三嘆 有遺音者矣]” 하였다.
[주D-027]자극(紫極)에서는 …… 생각하고 : 임금이 숨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고심함을 뜻한다. 자극은 황제의 궁궐이다. 천제(天帝)는 자색(紫色)의 궁궐에 거처한다 하여 궁궐을 자미궁(紫微宮), 자궁(紫宮), 자달(紫闥) 등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측루(側陋)는 요(堯)임금이 사악(四岳)의 신하에게 인재를 구하기를 당부하면서 “이미 지위에 있는 사람도 드러내 밝히고 미천한 사람도 들어서 쓰도록 하라.[明揚側陋]” 한 데서 온 말로, 숨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다. 《書經 堯典》
[주D-028]단루(丹樓)에서는 …… 물었어라 : 역시 임금이 신하들에게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문제에 대해 의논하는 것을 뜻한다. 단루는 붉은 칠을 한 누각으로 궁궐을 가리킨다. 전석(前席)은 자리를 앞당긴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가 의기투합함을 뜻한다.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신하 가의(賈誼)와 얘기하다가 의기가 투합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앞으로 당겨 몸을 가의 가까이로 다가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史記 卷84 賈生列傳》 방구(旁求)는 《서경(書經)》 〈태갑 상(太甲上)〉에 “두루 뛰어난 인재를 구하여 후인을 깨우쳐 인도하셨다.[旁求俊彦 啓迪後人]” 한 데서 온 말로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을 뜻한다.
[주D-029]조두(刁斗) 소리 : 변방의 경보(警報)를 뜻한다. 옛날 군중에서 야경을 돌 때 쓰던 바라로 낮에는 이로써 밥을 짓고 밤에는 이로써 야경(夜警)의 딱따기로 사용하였다.
[주D-030]철마(鐵馬) : 철갑(鐵甲)을 입힌 전마(戰馬)이다.
[주D-031]황하 맑음 : 어진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이강(李康)의 〈운명론(運命論)〉에 “황하가 맑아지면 성인이 나온다.[黃河淸而聖人生]”고 하였고, 그 주(註)에 “황하는 천 년 만에 한 번 맑아지는데, 황하가 맑아지면 성인이 그때에 나온다.[黃河千年一淸 淸則聖人生於時也]” 하였다.
[주D-032]바다로 들어가는 노래 : 바다에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이 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옛날에 세상을 피하여 은둔하는 사람들이 신선을 찾아 바다로 갔던 것이다. 즉 세상을 피하여 은둔하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주D-033]한 …… 늙고 : 방공(龐公)은 후한(後漢) 말엽 양양(襄陽)의 고사(高士)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그는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다. 벼슬길에 나오라는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청을 거절하고 훗날 처자식을 거느린 채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小學 善行》
[주D-034]백 …… 한가로워라 : 사마(司馬)는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을 가리킨다. 그는 자신이 사는 집을 독락원(獨樂園)이라 하고 화초를 가꾸면서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古文眞寶 後集 獨樂園記》
[주D-035]안영(晏嬰)처럼 오래 공경함 : 벗과 오래 사귀면 친압(親狎)하기 쉬운데 늘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영은 춘추시대 때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차례로 섬긴 제(齊)나라의 명상(名相)으로 자는 평중(平仲)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하도다. 오래되어도 공경하는구나.[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하였다. 《論語 公冶長》
[주D-036]관중(管仲)의 …… 벗 : 춘추시대 제(齊)나라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어려서부터 서로 친구 사이였다. 포숙은 관중의 어짊을 잘 알아주었지만, 관중은 워낙 빈곤(貧困)하여 포숙을 항상 속이곤 했다. 그러나 포숙은 끝까지 관중을 믿어주어, 뒤에 관중이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 하였다. 여기서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가 생겼다. 《列子 九命》 즉 옥담을 포숙과 같은 좋은 벗이라 말한 것이다.
[주D-037]금귀(金龜) : 벼슬아치가 차는 거북 모양으로 된 인장이다. 당(唐)나라 하지장(賀知章)이 이백(李白)을 만나 서로 뜻이 맞으니 금귀를 잡혀서 술을 마셨다 한다. 이백이 고인이 된 벗 하지장을 생각하며 지은 시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에 “금귀로 술을 바꾸어 먹던 곳에서, 벗을 생각하며 눈물로 수건을 적시네.[金龜換酒處 却憶淚沾巾]” 하였다.
[주D-038]조생(祖生)이 …… 노[楫] : 적을 소탕하리라는 결심을 뜻한다. 조생은 동진(東晉)의 조적(祖逖)을 가리킨다. 조적이 예주 태수(豫州太守)로 있으면서 석륵(石勒)의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양자강을 건너다가 노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조적이 중원을 평정하지 못하고 다시 강을 건널 때는 이 강에 몸을 던지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양자강 이남의 지역을 확보하였다. 《晉書 卷62 祖逖傳》
[주D-039]전장(田將)은 …… 않았네 : 잃은 강토를 회복할 장수가 없음을 뜻한다. 전장은 전씨(田氏) 장수, 즉 진(秦)나라 말엽 적성령(狄城令)으로 있던 전담(田儋)을 가리킨다. 그는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종실(宗室)로 진나라가 혼란할 때 적성령으로 있다가 다시 제나라를 세웠다. 《史記 卷94 田儋列傳》
[주D-040]닭이 …… 않으니 : 용루(龍樓)는 한(漢)나라 때 태자가 거처하던 궁(宮)의 문 이름이다. 난리 중이라 경황이 없어 문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주D-041]학가(鶴駕) : 왕세자(王世子)의 행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에 “왕자교는 바로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인데, 일찍이 흰 학을 타고 가 후씨산(緱氏山)에 머물렀다.” 하였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왕세자의 거가(車駕)를 학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간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D-042]군신들이 …… 있어라 : 한해(瀚海)는 사막(沙漠), 또는 북해(北海)를 이르는 말로 북방을 가리킨다. 음산(陰山)은 흉노족의 땅에 있던 산으로, 사철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한다. 현재 내몽고(內蒙古)의 자치구(自治區) 남쪽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내흥안령(內興安嶺)까지 뻗어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이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신하들이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간 것을 가리킨다.
[주D-043]당주(唐州) : 진주(晉州)의 이칭이다.
[주D-044]구름을 갈고 : 송(宋)나라 관사복(管師復)이 숭산(崇山)에 은거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무슨 즐거움이 있느냐?”고 묻자 “언덕에 덮인 흰 구름은 갈아도 다함이 없고 못에 가득한 밝은 달은 낚아도 흔적이 없네.[滿塢白雲耕不盡, 一潭明月釣無痕]”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는 은자(隱者)의 고답적인 생활을 형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변방에 전투가 없어 군사들이 한가로이 농사나 짓고 있음을 형용하였다.
[주D-045]삼략(三略) :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는 고대의 병서(兵書)이다.
[주D-046]안연(顔淵)의 표주박 :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뜻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一簞食 一瓢飮]로 누추한 시골에서 지내자면 남들은 그 곤궁한 근심을 감당치 못하거늘,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여기서는 옥담(玉潭)의 삶을 형용하였다.
[주D-047]금서(琴書) : 거문고와 책으로 옛날 선비의 필수품을 뜻한다.
[주D-048]청풍에다 제월(霽月) : 성어(成語)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하여 비가 온 뒤의 맑은 바람이 불고 달이 뜬 깨끗한 풍광을 뜻한다.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周敦頤)의 맑은 인품을 형용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49]용포(龍圃)와 인주(麟洲) : 모두 전설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곳이다. 용포는 환룡포(豢龍圃)의 준말로 《습유기(拾遺記)》에 나오는 지명인데 하늘에서 향기로운 이슬이 내려 못을 이룬 것이라 한다. 인주는 봉린주(鳳麟洲)의 준말로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 나오는 지명인데 서해(西海)에 있다고 한다.
[주D-050]물고기와 …… 잊으매 : 자연 속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형용하였다. 기심(機心)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교사(巧詐)한 마음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와 놀았는데 갈매기들이 그를 의심하지 않고 함께 놀았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갈매기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하여 바닷가에 나갔더니 갈매기가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에게 기심(機心)이 생겼기 때문에 갈매기가 멀리한 것이다. 《列子 黃帝》 소식(蘇軾)의 시 〈강교(江郊)〉에 “낚시만 생각하고 고기는 잊고서, 이 낚싯대와 줄만 즐기노라.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며 사물의 변화를 완상한다.[意釣忘魚 樂此竿綫 優哉悠哉 玩物之變]” 하였다.
[주D-051]옥을 심으매 : 한(漢)나라 때의 효자인 양백옹(楊伯雍)은 낙양(洛陽) 사람으로 무종산(無終山), 즉 옥전(玉田)에 살면서 3년 동안 목마른 행인들에게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해 주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돌 한 되를 주면서 땅에 심게 하였다. 몇 년 뒤에 서씨(徐氏) 집에 딸이 있어서 옹백이 장가들고자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백옥 한 쌍을 폐백으로 바치라고 하였다. 이에 옹백이 돌을 심었던 밭에 가서 다섯 쌍의 백옥 구슬을 캐서 바치니 서공이 딸을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구름 속에서 용이 내려와 이들 부부를 맞이해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그 후손들이 밭 가운데 비석을 세워 그 일을 기록하였다 《搜神記》
[주D-052]반계(磻溪)에서 …… 바라리오 : 반계는 강태공(姜太公)이 낚시질하던 곳이다. 주왕(周王)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강태공이 위수(渭水) 가의 반계에서 낚시질하다가 사냥을 나온 문왕을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었다. 여기서는 옥담을 강태공에 비겼다. 임금의 지우(知遇)를 입어 세상에 뜻을 펴지 못했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53]율리(栗里)에서는 …… 충분하여라 : 율리는 유명한 은사인 진나라 도연명이 살던 고향 마을 이름이다. 즉 옥담이 고향에 은거하여 한가로이 살아가는 모습을 진나라 은사 도연명에 비유한 것이다.
[주D-054]상유(商游) : 공자의 제자로 문학에 뛰어났던 자하(子夏)와 자유(子游)의 병칭이다. 자하의 이름이 상(商)이다. 공자가 제자들의 특장을 말하면서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이다.” 하였다. 《論語 先進》
[주D-055]일곱 …… 구슬 : 일곱 아들을 비유하였다.
[주D-056]한 …… 연꽃 : 두 딸을 비유하였다.
[주D-057]색동옷 나란하고 : 아들들이 부모를 잘 봉양함을 뜻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은사(隱士)가 있었는데, 어버이를 모시는 효성이 지극하여 나이 일흔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小學 稽古》
[주D-058]하늘을 …… 모였어라 : 별이 모인다는 것은 덕망과 재주를 갖춘 선비들의 모임을 뜻한다. 진식(陳寔)이 두 아들인 원방(元方)ㆍ계방(季方)과 손자 장문(長文)을 데리고 순숙(荀淑)의 집에 가자 하늘에 덕성(德星)이 모이는 상서(祥瑞)가 나타났는데, 태사(太史)가 이것을 보고 “하늘에 덕성(德星)이 모였으니 500리 안에 현인(賢人)들이 회합했을 것입니다.” 하였다. 《後漢書 卷62 荀淑列傳》 여기서는 옥담의 일곱 아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D-059]무릎을 …… 노래하고 : 큰 뜻을 펴지 못하는 선비가 울울한 심정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을 때 양보음(梁甫吟)이란 노래를 지어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채 길게 불렀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포슬음(抱膝吟)〉이라고도 한다.
[주D-060]시국에 …… 근심하네 : 북송(北宋)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廟堂)에 높이 있을 때는 백성을 근심하고 강호에 멀리 있을 때는 임금을 근심하니, 이는 나아가도 근심하고 물러나도 근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때 즐거운가. 반드시 천하가 근심하기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 後集 岳陽樓記》
[주D-061]금구(金甌) : 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疆土)에 비유된다. 양무제(梁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혼자 말로 “나의 국토는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도 흠도 없다.”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南史 卷62 朱异傳》
[주D-062]한 …… 성(城) : 인조(仁祖)가 농성하다가 청(淸)나라에 항복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가리킨다.
[주D-063]쇄미(瑣眉)한 신세 : 전란으로 유리(遊離)하는 신세를 뜻한다. 《시경(詩經)》 〈패풍(邶風) 모구(旄丘)〉에 “자잘하고 자잘한 이 유리하는 사람이로다.[瑣兮尾兮 遊離之子]”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64]호공(壺公)이 가졌던 비결 : 후한(後漢) 때 호공(壺公)이라는 선인(仙人)이 시장에서 매일 약을 팔다가 석양이 되면 점포 머리[肆頭]에 달아놓은 병 속으로 뛰어들어가곤 하였다. 그것을 본 비장방(費長房)이 한번은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하나의 별천지(別天地)가 있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72下 費長房列傳》 여기서는 옥담이 두곡이란 곳에서 은거한 것을 비유하였다.
[주D-065]학이 …… 일어라 : 옥담이 피난갔다가 고향에 돌아왔음을 뜻한다. 요양(遼陽)은 요동(遼東)이다. 한(漢)나라 때 요동에 정령위(丁令威)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영허산(靈虛山)에 가서 도술을 배운 뒤에 학(鶴)으로 변신하여 요동에 돌아와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어떤 소년이 활로 자기를 쏘려고 하자, 학이 높이 날아올라 말하기를 “두루미로 변한 정령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그대로인데 사람은 그렇지가 않구나. 어이하여 신선이 되는 법 배우지 않아서 죽어 묻힌 무덤이 여기저기 쌓였는고.” 하고 한탄하면서 하늘 높이 사라졌다고 한다. 《搜神後記》
[주D-066]진(秦)나라 …… 낼까 : 포로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 등을 구출할 사람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에 억류되었다가 속임수를 써서 도망쳐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했다. 그러나 함곡관은 닭이 울기 전에는 관문(關門)을 열어주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한편 맹상군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진나라 소왕(昭王)은 사람을 시켜서 급히 맹상군을 쫓게 하였다. 닭이 울 시간은 멀었고 추격대는 바짝 뒤쫓아 오고 있는 터라, 상황이 몹시 다급하였다. 이 때 맹상군의 일행 중에서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닭 울음소리를 내자 인근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 댐으로써, 마침내 관문을 열어 주어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주D-067]연옥(燕獄) : 조선의 충신들이 청(淸)나라 감옥에 많이 갇혔음을 뜻한다. 남송(南宋) 때 충신 문천상(文天祥)이 원(元)나라가 침입해 오자 가산(家産)을 털어 군사를 일으켜 근왕(勤王)하여 신국공(信國公)에 봉해졌고, 그 후 원(元) 나라 장군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여 3년 동안 연옥(燕獄)에 수감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주D-068]변방의 노인 :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에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 도망쳐서 오랑캐 땅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두 위로하였는데, 그 노인은 태연하게 ‘이것이 도리어 복이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였다. 몇 달 뒤에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 여러 마리를 데리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축하하였는데,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였다. 그의 아들이 말 타기를 좋아하여 그 말들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니, 사람들이 와서 위로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였다. 1년 뒤에 오랑캐들이 대거 침입하자 장정들이 모두 나가 싸워 변방 근처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죽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만은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부자가 모두 온전하게 살 수 있었다.” 하였다.
[주D-069]장공(莊公)이 …… 배우노라 : 무상한 인생에 집착하지 않음을 뜻한다. 장공은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장자가 초(楚)나라로 가다가 해골을 만나서 말채찍으로 그 해골을 때리면서 묻기를 “자네는 삶을 탐하다가 도리를 잃어서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라를 망친 일 때문에 처형을 당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쁜 일을 하여 부모와 처자를 욕되게 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그 해골을 베고 누워 잤다. 밤중에 해골이 장자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자네의 말은 변사(辯士)와 같네. 그러나 자네가 말한 여러 가지는 살아 있는 사람의 허물일 뿐이요, 나처럼 죽은 사람은 그런 걱정이 없다네.” 했다고 한다. 《莊子 至樂》
[주D-070]금문(金門) :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인 금마문(金馬門)이다. 국가의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문학의 선비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
[주D-071]이정(鯉庭) : 자식이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는 곳을 뜻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례에 대하여 배웠느냐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일에서 유래한다. 《論語 季氏》 여기서는 이 시의 작자 오상(吳尙)이 옥담의 아들과 벗이기 때문에 옥담의 가정을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주D-072]아양곡(峨洋曲) : 벗끼리 마음이 통하는 지음(知音)을 뜻한다. 춘추시대 백아(伯牙)가 금(琴)을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면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 하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면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列子 湯問》
[주D-073]난옥(蘭玉) : 지란(芝蘭)과 옥수(玉樹)의 준말로, 남의 자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큰 문벌을 이루었던 사안(謝安)이 자질(子姪)들에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 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뜰에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世說新語 言語》
[주D-074]일산(日傘) 기울이매 : 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 수레의 휘장을 기울이고 그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로, 잠깐 동안 이야기해 보고서도 마음이 통함을 뜻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공자가 담(郯)에 가다가 길에서 정본(程本)을 만나고는 경개(傾蓋)하고 종일토록 이야기하며 몹시 친밀해졌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75]침상 아래 절하고 : 존경하는 어른을 배알함을 뜻한다. 후한(後漢) 때 제갈량(諸葛亮)이 방덕공(龐德公)을 찾아가면 반드시 방덕공이 앉은 침상 아래서 공경히 절하였고, 방덕공은 제지하지 않고 태연히 절을 받았다는 고사에서 생긴 말이다. 《資治通鑑》
[주D-076]악부(樂府)에서 …… 들리라 : 악부는 한(漢)나라 때 음악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민간의 노래를 채집하기도 하였다. 〈이소(離騷)〉는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대시인 굴원(屈原)이 불렀다는 노래이다. 즉 옥담의 시를 이소에 비겨 칭찬한 것이다.
[주D-077]주신 …… 본다오 : 옥담이 보내준 시편에 대해 화답하는 시편을 아직 보내지 못하다가 이제 시편을 보내지만 답하는 시편을 볼 길이 없으니, 멀리서 달빛을 보며 옥담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