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顯宗元文大王 | ||||
[庚戌元年 宋 大中祥符三年,契丹 統和二十八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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碑銘 | ||||
故華藏寺住持王師定印大禪師追封靜覺國師碑銘 奉宣述 [李奎報] |
達磨傳心兮。靈光東曜。後學倒見兮。背鏡求照。焯焯國師兮。揭日以行。一廓煙氛兮。昏矇皆▣。法王出世兮。祖月重暉。覺路司南兮。學者知歸。門弟林林兮。親哺以乳。又翼其鷇兮。放之使飛。種福滋久兮。流潤罔極。天子屈尊兮。北面請益。生爲帝範兮。卒作國師。龜鑑斯亡兮。安所取則。上命小臣兮。期以不晦。臣拜刻銘兮。與山作配。來者去者兮。騎行卽下。寧不拜佛兮。惟碑是拜。
염계는 주돈이(周敦頤)를 지칭하고, 풍월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약칭이다. 광풍제월은 비 갠 뒤에 부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인데,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의 인품을 평한 말로, 마음이 넓어 자질구레한 데 거리끼지 않고 쾌활하며 쇄락한 인품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용릉은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의 지명으로 북송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살던 곳이다. ‘밝은 달〔霽月〕’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약칭으로 주돈이의 사람됨을 형용한 말이다.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주돈이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하여 “흉금이 시원하기가 마치 맑은 바람에 달이 씻긴 듯하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고봉의 인품과 흉금이 주돈이의 그것과 같다는 뜻이다.
염계는 주돈이(周敦頤)를 가리킨 것으로,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여 가슴속이 깨끗해서 마치 온화한 바람과 맑은 달빛 같다.[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 한 데서 온 말이다. 무숙(茂叔)은 주돈이의 자(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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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 ||||
비가 그치고 날이 맑게 개자 다시 연꽃을 감상하고 싶은 흥취가 일어나기에 |
묻노라 누가 말 머리 나란히 연못으로 향했던고 / 問誰聯騎向蓮池
풍채가 의연히 한 시대를 뒤덮는 사람들이라오 / 風采依然蓋一時
하늘이 어쩌면 빗소리를 당장 그치게 했을지도 / 卷去雨聲天或使
태양도 알렷다 연꽃 향기 흠뻑 빚어내는 일을 / 釀成荷氣日應知
냉상 감밀이라 하여 문장의 대가도 좋아했고 / 冷霜甘蜜文章伯
맑은 바람 갠 달인 도덕의 스승도 사랑했지 / 霽月光風道德師
곧장 훨훨 날아올라 옛날의 발자취 찾고 싶어 / 徑欲翶翔尋往轍
누대에 올라 남쪽을 보며 혼자서 시를 읊노매라 / 上樓南望獨吟詩
[주D-002]맑은 …… 사랑했지 :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도 연꽃을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을 짓기까지 하였다는 말이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 “용릉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너무도 고매해서, 흉중이 쇄락하기가 마치 맑은 바람이요 갠 달과 같았다.[胸中灑落如光風霽月]”라는 말이 나오는데, 염계는 주돈이의 호이고, 무숙은 그의 자(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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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 ||||
즉사(卽事) |
새벽이 추워 창문을 더디 열고자 하여 / 曉寒窓戶欲開遲
해가 기울어 가도록 꿇어앉노라니 / 日已高舂坐更危
다행히도 내 흥취 무너뜨릴 사람 없어 / 幸是無人敗吾興
옛 시를 고치고 또 새로운 시를 짓노라 / 舊詩改了又新詩
생각건대 당년엔 사리 판단이 늦었더니 / 自念當年見事遲
백발엔 나라의 안위도 관섭할 뜻이 없네 / 白頭無意管安危
수시로 전조의 한이 치밀어 오를 때면 / 時時惹起前朝恨
붓끝에 뿌려지는 것 바로 이 시뿐일세 / 灑向毫端卽是詩
자로는 나루 묻고 번지는 수레 몰아라 / 問津子路御樊遲
제후국 주류할 제 위방엔 안 들어갔네 / 歷騁侯邦不入危
누가 알랴 성인의 마음 하늘이 아는 걸 / 誰識聖心天在上
병든 나는 오늘 괜히 시나 읊을 뿐이네 / 病夫今日謾吟詩
조용히 앉아 깊이 생각해 천천히 쓰면서 / 靜坐沈思下筆遲
정일에 의거하여 미위를 변별할 뿐이니 / 只憑精一辨微危
집중의 비결을 그 누가 전해 주었던고 / 執中祕訣誰傳授
중천에 달 이르니 시 짓기가 하도 좋네 / 月到天心恰得詩
[주D-002]정일(精一)에 …… 주었던고 :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에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允執其中]” 하였고,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선위할 때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여야 진실로 그중을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書經 大禹謨》
[주D-003]중천에 달 이르니 : 소옹(邵雍)의 〈청야음(淸夜吟)〉에 “달은 하늘 한가운데 이르고, 바람은 물 위에 살살 부누나. 이러한 맑고 깨끗한 의미를, 아마도 아는 사람이 적으리.[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곧 물과 달이 서로 비치는 맑은 정경을 서술한 것으로,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처럼 가슴속이 깨끗하여 조금의 사욕(私欲)도 없이 조용하게 도(道)에 합치되는 경지를 부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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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詩類) | ||||
초당(草堂) |
초당이 작은 못 둑을 굽어보고 자리했으니 / 草堂俯壓小塘開
나날이 여기서 그 몇 번이나 읊조리는고 / 日日吟哦得幾回
꽃 그림자는 교묘히 발 그림자 따라 옮기고 / 花影巧隨簾影轉
솔바람 소리는 멀리 대 소리를 화답해 오네 / 松聲遙答竹聲來
산봉우리는 집을 둘러 서로 아는 것 같고 / 峯巒繞屋如相識
새들은 뜰에 길들어 전혀 의심하지 않누나 / 鳥雀馴庭絶不猜
이 한 가지 청신한 맛을 그 누가 알겠는가 / 誰識一般淸意味
광풍제월이 내 마음에 환히 비치는구려 / 光風霽月照靈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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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문(詩文門) | ||||
광풍(光風) |
주 문공(朱文公)ㆍ주염계(周濂溪)는 다 황산곡(黃山谷)의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용어를 썼는데, 광풍(光風)이란 용어는 《초사(楚詞)》에,
라고 한 데서 나왔다. 이에 대한 왕일(王逸)의 주(註)에, ‘광풍이란 뜻은 해가 떠오르자 바람이 불어서 풀과 나무들이 광색(光色)이 있다는 것이다.’ 하였고, 또 《문선(文選)》에 보이는 사현휘(謝玄暉)의 시에,
하였는데, 이주한(李周翰)의 주에, ‘바람은 본시 빛이 없고 풀 위에서만 광색(光色)이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 움직이니 마치 바람이 빛이 있는 듯하다.’ 하였다.
주 문공의 난간(蘭澗)에 대한 절구에,
하였으니, 역시 위와 같은 뜻이다.
[주D-002]광풍제월(光風霽月) :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평한 말로, 천성(天性)이 고명하고 흉중(胸中)이 맑아서 비가 갠 뒤의 풍월(風月)처럼 맑고 시원함을 이름. 《宋史 周敦頤傳》
[주D-003]광풍은 혜초를 흔들고 숭란을 움직인다 : 이 구절은 송옥(宋玉)의 초혼(招魂)에 보임.
[주D-004]풍광은 풀잎을 스쳐 떠간다 : 이 구절은 화서 도조(和徐都曹)의, “日華川上動”의 대구임.
[주D-005]방두(芳杜) : 팥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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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祭文) | ||||
십구 |
모년 모월 모일에 문인 생원(生員) 이호민은 감히 맑은 술과 때에 맞는 제물로 삼가 고봉 선생의 영전에 제사 드립니다.
아 선생께서는 / 嗚呼先生
뛰어난 정기 받아서 / 誕膺間氣
타고난 자질 청명하고 / 稟質淸明
본디의 바탕 빼어났지 / 天資英毅
어릴 때부터 옛 도 높여 / 少小尙古
오직 도를 따랐으며 / 惟道是師
위기지학 학문 닦아 / 學以爲己
재목 기반 넓고 깊었네 / 廣深杞基
고정 도학 침잠하고 / 沉潛考亭
염락 근원 계승하여 / 泝洄濂洛
본원을 탐구도 하고 / 推本探原
주역 이치 궁리했네 / 究極羲易
빠른 성취 원치 않으니 / 初不欲速
어찌 첩경을 힘쓰리오 / 豈務徑約
선현 언행 많이 알아 / 多識前往
그 덕을 축적했네 / 以蓄其德
깊고 넓은 학문에다 / 學問淵博
활짝 트인 국량이요 / 局量宏廓
문장은 혼후하여 / 文章渾厚
드넓은 강과 바다였네 / 川停海納
재주 당대에 높아도 / 才高一世
명예롭다 아니하고 / 不自爲名
사방에 명망 중해도 / 聲重四方
영광으로 아니 여겼네 / 不自爲榮
가난한 생활 만족하고 / 安於處貧
선을 행하길 즐겼으며 / 樂於行善
입엔 이끗 올림 없고 / 口絶談利
손엔 서책 아니 놓아 / 手不釋卷
성현을 염두에 두고 / 心存聖賢
금석처럼 뜻을 굳혀 / 志堅金石
평소에 덕성 함양하여 / 充養有素
경과 의를 함께 세웠네 / 敬義偕立
흉금은 맑디맑아 / 襟懷灑然
가을밤 밝은 달이요 / 秋宵明月
온후한 낯빛에다 / 溫厚之色
엄중한 모습이라 / 嚴重之容
쳐다보면 고산이며 / 仰之高山
나아가면 화풍인데 / 卽之和風
스스로 깨달은 이치는 / 自得之餘
묘한 생각 깊고 중해 / 妙思深重
성정 드러내 밝히고 / 發明性情
체용 환히 가려냈네 / 昭析體用
퇴계 아니 계셨던들 / 不有退溪
누가 귀함 알았을까 / 孰識其貴
글월 닦아 논변할 때 / 修辭論辨
퇴계 감탄 몇 번일런고 / 幾相興喟
일상생활 세운 말씀 / 日用立言
모두가 도를 보위함이요 / 莫非衛道
생각이며 언행까지 / 思慮云爲
고인 법도 따랐어라 / 動遵前古
감히 태만함 없었으니 / 罔敢少懈
어찌 만족함 있었으리 / 寧或滿足
겸겸군자의 그 덕은 / 謙謙之德
오랠수록 도타웠네 / 愈久愈篤
조정에 우뚝 서매 / 鵠立朝著
언행일랑 한결같아 / 言行猶一
지모는 심원하고 / 智計深遠
몸가짐은 신중했네 / 守之若訥
일마다 바른 논의 / 遇事正議
충성심이 간곡한데 / 忠誠懇惻
연약한 저자들은 / 彼婉孌者
실로 정직 꺼려서 / 實憚正直
비난이 시끄러워도 / 有舌紛紛
소신 굽힌 일 없네 / 無所撓屈
격랑의 지주처럼 / 砥柱奔流
국가만을 알았으니 / 但知有國
그 경륜 크게 베풀어 / 謂將大施
이 백성에 혜택 주며 / 斯民是庇
반드시 장수하고 / 必得其壽
지위 얻을 줄 믿었는데 / 必有其位
못 믿을사 하늘이여 / 天乎難諶
병이 계속 침범하여 / 疾病交侵
대궐 떠나 강 건널 제 / 拜闕渡江
태양 이미 빛 잃었고 / 白日已陰
귀신 재앙 아니 뉘우쳐 / 鬼神莫悔
도중에서 운명하니 / 遽殞中程
산하가 슬퍼하고 / 山哀浦思
짐승들도 놀랐어라 / 鳥飛獸驚
나라엔 사표 없고 / 國無蓍龜
사류는 종장 잃었네 / 士失宗匠
아 몽매한 나 자신은 / 咨余愚蒙
강석에서 모셨는데 / 幸承函丈
재주 따라 가르쳐 / 隨才授訓
나갈 방향 알게 하니 / 使知趍向
가야 할 곳 다름 아닌 / 靡他其適
효제로써 권면했네 / 畀勸孝悌
절실하게 당부하여 / 見勵深切
성취 멀리 바랐는데 / 遠期造詣
끝내 아니 드러남은 / 厥終罔顯
내 정성이 없음일세 / 由我不誠
앞으로는 잘하리라 / 方來之善
우리 선생 믿었는데 / 恃我先生
비통할사 오늘날에 / 那知今日
기둥 홀연 부러지니 / 樑木忽摧
울부짖어 봐도 소용 없어 / 攀號莫及
원통하기 그지없네 / 慟怨難裁
모습 영원히 멀어져 / 儀刑永隔
가르침 청할 기약 없으니 / 就正無期
애통해라 이 소자는 / 哀哀小子
문을 나서 어디로 갈꼬 / 出門何歸
이 세상엔 뜻이 없으매 / 無意此世
황천 속에 따르려오 / 誓隨泉裏
쇠퇴해진 이 사문은 / 斯文之衰
그 뉘 떨쳐 일으키며 / 其孰振起
정학이라 이 종통은 / 正學之宗
누구에게 있을 건고 / 將誰在矣
공도 위한 통곡이요 / 爲公道哭
나 때문만은 아니네 / 非獨吾私
아 애통하오이다 / 嗚呼哀哉
하늘 뜻은 모를레라 / 天意難知
주신 수명 길잖으니 / 降年不永
과연 무슨 이유일까 / 果何爲斯
기수의 변고일랑 / 氣數之變
예로부터 있어 온 일 / 自古有之
몸 닦아 명 기다리니 / 修身以俟
사람 하늘에 부끄럼 없네 / 何愧何怍
명성 도덕 함께 거룩하니 / 名與道隆
만년토록 영원하리 / 萬古不滅
[주D-002]고정(考亭) : 주자학(朱子學)을 말한다. 고정은 주자가 평생 거처했던 곳으로, 1192년(고려 명종22) 이곳에 고정서원(考亭書院)을 짓고 학문을 강론했다. 이 때문에 주자학파를 고정학파라고도 한다. 《宋元學案》
[주D-003]염락(濂洛) : 염락관민(濂洛關閩)의 학문을 말한다.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자(程子),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자를 통칭한 것으로, 곧 송대의 성리학을 뜻한다. 여기서는 고봉이 도학의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말이다.
[주D-004]빠른……않으니 : 자하(子夏)가 거보(莒父)의 읍재(邑宰)가 되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빨리 이루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라. 빨리 이루려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연연하면 큰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하였다. 《論語 子路》
[주D-005]선현……축적했네 : 앞 시대 성현의 말씀과 행적을 많이 알아서 그것을 본받아 자신의 덕성을 쌓는다는 말이다. 《주역》〈대축(大畜) 상전(象傳)〉에 “천이 산 속에 있는 형상이 대축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지난 시대의 말씀과 앞 시대의 행적을 많이 알아서 자신의 덕을 축적한다.〔天在山中 大畜 君子以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라고 하였다.
[주D-006]쳐다보면 고산(高山)이며 : 《시경》〈소아(小雅) 거할(車舝)〉에 “높은 산 우러르고 큰길을 가는도다.〔高山仰止 景行行之〕”라고 한 것과 《논어》〈자한(子罕)〉에서 안연(顔淵)이 공자를 묘사하여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仰之彌高〕”라고 한 것을 원용하여 고봉의 덕을 기린 말이다. 애도의 대상인 기대승의 호가 고봉이므로 고산을 끌어온 것이다.
[주D-007]나아가면 화풍(和風)인데 : 스승 고봉의 인품이 온화했다는 말이다. 화풍은 온화한 봄바람으로 스승의 따뜻한 가르침을 뜻한다. 북송의 학자 주광정(朱光庭 : 1037~1094)이 명도(明道)에게 배웠는데, 여(汝) 땅에서 명도를 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광정이 한 달 동안 봄바람 속에 앉아 있었다.〔光庭在春風中坐了一箇月〕”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4》
[주D-008]겸겸군자(謙謙君子) : 겸양의 덕을 갖춘 군자를 말한다. 《주역》〈겸괘(謙卦) 초륙(初六) 상전(象傳)〉에 “겸손하고 사양하는 군자는 겸손한 덕행으로 자신을 다스린다.〔謙謙君子 卑以自牧也〕”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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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고시(七言古詩) | ||||
취중가(醉中歌) |
이색(李穡)
선생 손은 월굴을 더듬고 / 先生有手探月窟
선생의 발은 천궐(천자의 궁궐)엘 갔었네 / 先生有足趨天闕
선생은 워낙 천제의 아이라 / 先生自是天帝子
의태가 범부와는 아주 다르네 / 意態乃與塵凡絶
멀리 묘한 도를 닦아 희황 위로 나가고 / 遠尋妙道出羲皇
넓디넓은 상서며 엄숙한 주서에 눈을 돌렸네 / 瞠手灝灝并噩噩
또한 《자사》, 《맹자》에도 정통하여서 / 旁求精義竝思軻
《중용》 한 편을 참으로 즐겼다 / 中庸一篇眞足樂
때로는 말을 달려 혼자 뛰어가매 / 有時覂駕獨超群
장소와 반마가 모두 모기떼인 듯 / 莊騷班馬如飛蚊
선생은 혼자 웃어 이가 시리다 / 先生獨笑齒久冷
공문의 제자들은 구름떼 같네 / 孔門諸子屯如雲
누항에 참다운 낙이 있으나 / 雖然陋巷有眞樂
그 맑은 향기를 온 세상에 누가 따르리 / 擧世誰復希淸芬
내 지금 늙었으나 아직도 정정해 / 吾今老矣尙矍鑠
높은 산 우러름을 더 말할 것 있나 / 高山仰止奚云云
선생은 취중 노래만 자꾸 부르네 / 先生且歌醉中歌
천지가 호탕하여 편파 없는데 / 天地浩蕩無偏頗
머리 위 저 해와 달은 나는 북처럼 오가는구나 / 頭上日月如飛梭
[주D-002]희황(羲皇) :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 그가 팔괘(八卦)를 지었다 하니 《역(易)》의 시조이다.
[주D-003]넓디넓은 …… 돌렸네 : “상서는 호호하며 주서는 악악하니라[商書灝灝甬 周書噩噩甬].”《法言》호호(灝灝)는 넓고 휑한 모양, 악악(噩噩)은 엄숙한 모양을 말한다.
[주D-004]장소(莊騷) : 《장자(莊子)》와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주D-005]반마(班馬) : 《한서》의 작자 반고(班固)와 《사기》의 작자 사마천(司馬遷)은 명문 사가들이다.
[주D-006]이가 시리다 : 웃어서 입을 벌리고 있으므로 이가 시리다는 뜻이다.
[주D-007]누항(陋巷) : 공자의 높은 제자 안회(顔回)가 밥 한 대그릇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마을[陋巷 자기가 사는 동네 겸칭]에 살아도 그 즐거움은 그치지 않았다.
[주D-008]높은 산 우러름 : 높은 덕을 앙모함인데 《시경》에, “높은 산을랑 우러러볼지요, 환한 길을랑 가리로다[高山仰止 景行行止].” 하였다.
[주D-001]높은 …… 마음 : 높은 산은 스승의 훌륭한 도를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거할(車舝)에 “높은 산을 우러러보고 큰 길을 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 하였는데, 공자(孔子)는 이에 대하여 평하기를 “시인의 인(仁)을 좋아함이 이와 같구나. 도를 행하여 가다가 중도에 쓰러지더라도 자신의 늙음을 잊고 날마다 부지런히 힘써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 하였다. 《禮記 表記》 강한(江漢)은 중국의 양자강과 한수(漢水)로 큰 물을 이르는데, 바꾸어 스승을 그리워하는 말로 쓰인다. 공자가 별세하자, 제자들은 동문(同門)인 유약(有若)이 공자와 비슷하다 하여 스승을 섬기던 예(禮)로써 그를 섬기고자 하였으나 증자(曾子)는 “불가하다. 부자(夫子)의 덕(德)은 강한(江漢)으로 씻는 것과 같으며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 하고 반대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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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樑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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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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緇帷講道托師門。魯論深探性理源。處世鞱光明哲在。楚湘吟鵩尙含寃。右鄭文獻
鳳生麟出歎非時。丹悃無由聖后知。堯舜君民當日志。後人空泣道峰祠。右趙文正
一部中庸衍九經。忠言剴切動天聽。東方復見西山學。衮奬昭昭若日星。右李文元
考亭千載托心期。闢破陽明釋理疑。若使先生逢魯世。定無夫子陋東夷。右李文純
金聲玉色有文成。涑水經綸本一誠。明主願爲君子黨。元豐僞籍倍光榮。右李文成
詩禮承家德以將。兼資師友闇然章。行藏不必尤臧氏。正學終須入聖堂。右成文簡
功專三禮學純深。師統終歸魯也參。配食聖宮公議定。孰沮輿頌逞詖淫。右金文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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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
이동보(李同甫)에게 답함 - 무진년(1688) 6월 5일 |
더위와 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 신병이 더욱 악화되어 이 몸이 죽을 날이 매우 가까이 왔는데, 어찌 오늘 천리 밖 고인(故人)의 편지를 받아 볼 줄이야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너무도 놀랍고 반가운 나머지 묵묵히 아무 말도 못하였네.
서문(序文) 2첨(籤)은 잘 보았네. 상첨(上籤)은 비록 겸허한 편이나 굽은 것을 바로잡는 데 너무 직절(直截)한 듯하기에 삼가 하첨(下籤)을 취하겠네. 다만 영본(嶺本)이 이미 전포(傳布)되었다 하니, 일이 이미 끝난 뒤라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구황(救荒)에 대한 조례(條例)는 회옹(晦翁)의 유법(遺法)을 사용했으리라 생각되네. 그러니 회옹의 덕택이 이곳 해우(海隅)의 창생(蒼生)에게까지 미쳤다 하겠네.
회옹은 당시에 자신이 지나간 강산(江山)을 미처 구경할 겨를이 없었는데, 동보(同甫)는 빠짐없이 탐방하고 있으니, 혹 오늘날의 형편이 순희(淳煕 송 효종(宋孝宗)의 연호) 때와 달라서인지, 아니면 백성의 어려움을 급하게 여기는 마음이 회옹에게 미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한번 웃음직한 일일세. 다만 상상하건대, 활달한 기분으로 산에 올랐다가, 낭랑하게 읊조리며 날아서 내려오는 일은 의상(意象)에 있어서는 비록 넓고 좁으며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그 엄격히 묵계(默契)되는 의취(意趣)야말로 속사(俗士)가 엿볼 바가 아닌데, 그 즐거움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유감일세. 그러나 자네가 구경한 데가 구룡연(九龍淵) 최하의 한 폭포에는 미치지 못했으므로 스스로 내가 약간 낫다고 여기네. 그 폭포는 박연(朴淵)에 비하여 높이가 갑절이나 되고 그 기세의 웅장함이 천하에 둘도 없을 듯하네. 내뿜는 물줄기가 마치 쏟는 듯하여 도저히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네.
일찍이 도봉(道峯) 산길에 남긴 나의 필적(筆跡)이 제현(諸賢)들의 배려에 의하여 새겨졌으나, 뒤에 윤휴와 허적의 무리가 나를 미워하여 이를 파 버렸다 하는데, 이번에 만폭동(萬瀑洞)에 새겨진 주자의 시(詩)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니, 혹 오늘날 군자(君子)의 지론(持論)이 전날보다 약간 완화되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네. 횡거(橫渠 송 나라 장재(張載))의 동명(東銘)을 늘 외워 왔건만, 실없는 농담이 가끔 나오곤 하니, 혹 구습(舊習)이 없어지지 못한 때문이 아닌지, 우스운 일일세.
오미자(五味子)는 일찍이 가제(家弟)를 위하여 부탁한 것인데, 참으로 기쁘기 이를 데 없네. 이 밖의 세 가지 약재(藥材)에 대해서도 아울러 감사드리네.
별지
일전에 왕복(往復)한 서신이 누설되어, 혹 무슨 곡절이 생겼을까 염려일세. 그때 내시(來示)를 보고 나서 나의 뜻이 시원하던 참에, 평소 자네를 의심해 오던 절친한 사람을 만났기에 내가 그 사람에게, 이제는 그 의혹을 풀 수 있겠는가 하였더니, 그 사람이 놀라고 기뻐하면서 그 서신을 보자고 매우 간절히 청하므로 잠시 꺼내 보였다네. 혹 이것으로 인하여 전파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이외에는 이를 아는 사람이 없다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자네가 구설(口舌)의 시끄러움을 면하고 싶은 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찌 그럴 리야 있겠는가마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경원(慶元) 당화(黨禍) 때의 일을 잘 간파하지 못한 듯하네.
또 새로운 비방이 적지 않다고 하니, 이 또한 우스운 일일세. 들으니 자네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아무[某 송시열을 가리킴]는 진정 주자에 미칠 수 없다. 요즈음 대윤의 연보(年譜)를 보았지만, 주자가 만약 이를 보았다면 어찌 그 정도에 그치고 말았겠는가. 이로 미루어 본다면 아무는 진정 주자에 미칠 수 없다.’고 하므로, 저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장차 나의 뒤를 이어 자네를 탄핵하려 한다고 하기에 내가 듣고 웃으며, 이는 저들의 탄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온 사류(士類)가 탄핵을 가해야 옳을 일이라고 하였네. 왜냐하면, 주 선생(朱先生)의 각하(脚下)에 어찌 감히 급불급(及不及)이란 어휘를 쓸 수 있느냐는 말일세.
그러나 주자가 어찌 그 정도에 그치고 말았겠느냐는 말은 진실로 확론일세. 왜 주자가 소식(蘇軾)과 육구연(陸九淵)과 임율(林栗)을 배척한 일을 보지 못하였던가. 임율은 다만 역서명(易西銘)을 논하다가 그 본의를 상실하고 거기에 미혹되어 돌아서지 못하였을 뿐인데, 주자의 박정(駁正)이 극히 준엄하여, 탄핵까지 받기에 이르렀어도 후회하지 않았으니, 지금 만약 대윤의 반복 휼광(反覆譎誑)하여 음사(淫辭)를 방조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배척이 어찌 무부무군(無父無君)과 솔수식인(率獸食人) 정도로만 그치겠는가. 지금 그 유독(流毒)은 이미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네.
옛날에 왕 상서(汪尙書 송 나라 왕응신(汪應辰))가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소씨(蘇氏)의 시를 쓴 선비 두 사람을 선발하자, 주자의 배척이 엄절(嚴切)하였을 뿐만이 아니었는데, 지금 대윤의 무리가 지공거가 되어 장주(莊周)가 성인을 업신여기는 말을 글제로 내어 선비를 선발하였으니, 세도(世道)가 어떻게 되었는가. 이는 윤휴의 작용(作俑 좋지 않은 일의 발단을 만드는 것)과 대윤의 당조(黨助)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두려운 일일세.
저들이 나더러 우옹(牛翁 성혼을 말함)을 비방한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가리킨 말인지 알 수 없네. 사람으로 하여금 몹시 당황스럽게 하네. 그러나 주자가 일찍이 선배를 경시(輕視)하는 일을 들어 배우는 이들을 경계하는 한편, 선배를 너무 존외(尊畏)하여 이의(異議)를 제기하지 못하고 좌우로 눈치를 살피며 뜻을 굽혀 주선(周旋)할 뿐, 의리(義理)의 시비와 문의(文意)의 당부(當否)를 알지 못하는 것을 그르다 하였는데, 저들이 만약 내가 망녕되이 의리와 문의를 논하는 것을 들어 우옹을 비방했다고 한다면, 이는 주자의 대훈(大訓)을 알지 못한 탓일세. 대저 주자의 이 전후(前後) 두 말씀에서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분별을 볼 수 있으니, 배우는 이는 이를 반드시 알아야 하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번 서신에, 탄사(灘祠) 운운한 말은 과연 저쪽의 서당(書堂)을 가리킨 것일세. 전일 용담(龍潭) 홍석(洪錫)이 지명(地名)으로 인하여 협곡(峽谷) 중에 정(程)ㆍ주(朱)의 사우(祠宇)를 건립하려 하기에 내가 적극 만류하기를, 어찌 이 다음의 일을 생각하지 않느냐고 하였으나 그가 듣지 않았네. 그 뒤에 수호(守護)하는 사람이 없는가 하면, 후임자(後任者)가 이를 그르다고 배척하여 수직(守直)하는 전복(典僕)까지 빼앗고 마을 사람들이 마구 더럽혀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제야 그가 개탄하기를, 송모(宋某)는 참으로 성인이라고 하였네. 이는 부유(婦孺)라도 다 짐작할 바인데, 그 사람만이 알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의 망발을 깨닫지 못하고 몹시 후회하게 되었던 것일세. 또 저번에 철원재(鐵原宰)가 사계 선생의 사당을 건립하려 하기에 내가 역시 적극 만류하여 그만두었으니, 오늘날 저쪽에서 사우(祠宇) 건립을 중단한 것은 잘한 일일세.
작은 사우에 고청(孤靑 서기(徐起))을 모시겠다는 계획은 조금은 경우가 다르네. 고청이 천한 신분으로서 굴기(崛起)하여 훌륭히 다사(多士)의 사장(師長)이 되었으니, 그 조예의 여하는 알 수 없으나 대개 죄과(罪過)가 있는 사람은 아니네. 그러나 지금 그런 분을 봉사(奉祀)하는 일은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네.
이상 외람된 말은 모두 가르침을 청하고 미혹을 깨우치자는 성의에서 나온 것이니, 이 다음 인편에 회시(回示)해 주기 바라네.
[주D-002]만폭동(萬瀑洞)에 …… 시(詩) : 현종 3년(1662) 3월에 송시열이 금강산을 유람할 때 만폭동 반석(盤石)에 주희(朱熹)의 ‘맑은 시내 흰 돌과 취향을 함께하고, 갠 달 맑은 바람 특별히 전하리[淸溪白石要同趣 霽月光風更別傳]’라는 시를 친필로 써서 새겨둔 것을 말한다. 《宋子大全附錄 卷4 年譜》 《宋子大全隨箚 卷9》
[주D-003]경원(慶元) 당화(黨禍) : 경원은 송 영종(宋寧宗)의 연호. 주희가 당시의 권신(權臣) 한탁주(韓侂胄)를 탄핵하자, 그 원한을 품고 도학(道學)을 위학(僞學)이라 배척하여 주희의 관작(官爵)을 삭탈함과 동시에 승상 조여우(趙汝愚) 등을 축출하고 도학자의 등용을 금한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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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
안경소(安景召) 태석(太奭) 에게 답함 - 경인년 11월 |
주신 편지의 뜻 잘 알겠네. 곽 승지(郭承旨)의 사실(事實)은 노선생(老先生)께서 지으신 묘문(墓文)을 보건대 지극히 찬양(贊揚)하셨고, 또 듣건대 선생께서 평소 곽공(郭公)의 조두(俎豆 향사(享祀))가 늦어지는 것을 탄식하셨다 하네. 이미 선사(先師)의 정론(定論)이 계시니 지금 많은 선비들의 의논에 대해 무엇 때문에 감히 이론(異論)을 제기하겠는가.
주자가 백록사(白鹿祠)에 염계(濂溪)를 모시고서 또 따로 사당을 세워 위공(威公) 도간(陶侃) 조손(祖孫)과 서간(西澗) 유응지(劉凝之) 부자(父子) 등 제현(諸賢)을 배향(配享)하고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네.
청운 백석은 취향이 같으나 / 靑雲白石聊同趣
제월광풍은 전한 것이 다르네 / 霽月光風更別傳
이것을 오늘날의 전거로 삼아도 무방하겠기에 대략 이런 내용으로 답장을 써서 보낸 바 있네. 그런데 지금 귀향(貴鄕)의 모든 의논이 모두 불가하다고 여긴다면 당초 내가 수작(酬酢)한 바가 있으나 어찌 감히 나의 의견이 옳다고 하겠으며 또 어찌 감히 그대의 물음에 간여하겠는가. 오직 그대들 여러 사람이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네.
그러나 우(右)를 상(上)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네. 주자가 죽림사(竹林祠)에 염계를 좌에 모시고 명도(明道)를 우에 모신 이것은 좌소우목(左昭右穆)의 뜻이니 오늘날 사당의 제도와는 전혀 같지 않네. 또 《남헌집(南軒集)》에 삼 선생사기(三先生祠記)를 상고해 보건대 염계와 이정(二程 명도(明道)와 이천(伊川))을 마주 대하여 모셨는데 염계가 동서(東序)에 있고 이정이 서서(西序)에 있으니, 이 또한 분명한 증거가 될 수 있네. 그리고 또 일찍이 사석(師席 우암을 가리킴)께 강문(講問)한 적도 있네. 그런데 지금 신도(神道)는 우를 상으로 삼는다는 설로써 책망한다면 옥천(沃川) 유생(儒生)들이 반드시 승복하지 않을 것이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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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1636) 난리 후에 집으로 돌아와 피난 중에 있었던 일들을 추술하여 조여벽에게 부쳐주다 40운 [丙子亂後還家追述避亂中事寄贈趙汝璧 四十韻] |
자연 속에 가돈하여 몇 해나 지났던가 / 嘉遯林泉歲幾周
작은 시냇가에다 초가집을 지었었지 / 茅齋寄在小溪頭
형문에서 홀로 즐거이 사니 세상사 고요하고 / 衡門獨樂塵機靜
화사에서 유람하니 한가한 흥취가 많아라 / 花社從遊逸興稠
중울의 문 앞에는 잡초 속에 길을 열었고 / 仲蔚門前開草逕
도잠의 거리 밖에는 방초 우거진 물가일세 / 陶潜巷外挹芳洲
땅이 외져 반곡은 휘감아 돌고 굽었으며 / 地偏盤谷繚而曲
마을이 후미져 도원은 단절되어 더욱 그윽해라 / 村僻桃源絶更幽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내 뜻이 아니요 / 拖紫紆靑非我志
부귀영화 누리는 것도 뜬구름과 같아라 / 乘軺建節若雲浮
삼천 길 백발 빗질해 보니 듬성해졌고 / 三千丈髮梳來少
일만 섬 시름은 늙을수록 하염없구나 / 萬斛閑愁老更悠
홀로 티끌 세상에 서매 좋은 벗 없지만 / 獨立塵寰無好伴
속세 밖에 어진 이 있을 줄 어이 알았으랴 / 寧知物表有賢流
우뚝 뛰어난 재주는 장경보다 낫고 / 奇才卓犖長卿右
펼쳐진 아름다운 문장은 자건의 짝이어라 / 麗藻聯翩子建儔
반평생 동안 전원에서 재능을 숨긴 채 살았고 / 半世丘園藏羽翼
바둑에만 마음을 쏟으며 즐거이 노닐었네 / 專心碁局樂遨游
날마다 서책을 탐독하니 마음에 속됨 없고 / 圖書日嗜心無俗
늘 술동이 그득하니 술을 사지 않아도 되었지 / 樽杓長盈酒不謀
금란의 우정은 평소에 쌓아온 지 알겠거니 / 托契金蘭知有素
교칠과 같이 서로 사귄 지 그 몇 해이런고 / 相從膠漆幾經秋
때로 와력을 가지고 맑은 서안(書案)을 더럽히고 / 時將瓦礫塵淸案
매양 경거를 가지고 늙은 눈을 부비게 하였지 / 每把瓊琚刮老眸
좋은 밤엔 다정히 누워서 보내던 그 날을 그리워하고 / 良夜相思同臥榻
꽃 피는 시절엔 함께 누각에 오르던 때를 생각한다오 / 花辰日憶共登樓
용순은 반드시 은자가 잡기를 기다리고 / 龍脣必待幽人挈
작설차는 늘 좋은 손님과 함께 마신다 / 雀舌恒從美客酬
세로에 지음으로 오직 그대가 있으니 / 世路知音君獨在
인간세상 만남과 이별엔 근심이 없어라 / 人間離合庶無憂
먼지가 옥새에 이니 삼정이 어두워지고 / 塵驚玉塞三精暗
말이 금하를 건너니 팔도가 짓밟히었네 / 馬渡金河八路蹂
달무리 진 외로운 성에는 새벽 딱따기 소리 울리고 / 月暈孤城晨擊柝
구름처럼 모인 용맹한 병사들 밤에도 북채 안고 잔다 / 雲屯猛士夜援枹
백성들 붙잡혀 가니 들판마다 곡하는 소리 / 燕民繫累千原哭
재물을 쓸어가느라 촌락마다 다 뒤지누나 / 秦貨擔歸萬落搜
학가는 서쪽으로 먼 요동 변새를 순시하고 / 鶴駕西巡遼塞遠
용안은 삭풍이 몰아치는 북쪽을 바라보셨어라 / 龍顔北望朔風颼
수레와 시종(侍從) 이어져 길에는 먼지 자욱하고 / 車從絡繹黃塵合
피난하는 행차 어지러워 밝은 해도 시름겹다 / 冠蓋繽紛白日愁
조정에서는 기미의 계책 쓰느라 세월만 보내고 / 廟算羈縻淹歲月
정벌의 계획은 고식적이라 창칼은 녹이 스누나 / 征謀姑息老戈矛
많은 식구 거느리고 남쪽 고을 수령 의지해 / 提携百口依南宰
갖은 신고 다 겪으며 바닷가에서 피난했네 / 備歷千辛賴海陬
객지에서 뜻밖의 상봉은 참으로 드문 일이니 / 逆旅相逢眞有數
진창길에서 이렇게 만나는 일 어찌 쉬우리오 / 泥途會面亦安偸
남은 술 식은 고깃점에 나그네 회포가 같고 / 殘盃冷炙同羇抱
필마에 여윈 아이종 데리고 객지를 떠돌았지 / 匹馬羸僮共旅遊
칡이 모구에 굵으니 세월이 오래 흘렀고 / 葛誕旄丘時已晩
외가 기협에 생기니 한 해가 지나갔어라 / 瓜生夔峽歲將遒
멀리 고향을 바라보며 유린당한 강토를 슬퍼하고 / 遙瞻故國悲秦衂
모임을 신정에서 마치매 초나라 죄수처럼 울었지 / 會罷新亭泣楚囚
다행히도 하늘이 내렸던 재앙을 거두시고 / 賴得皇天能悔禍
마침내 성상으로 하여금 이 나라 안정케 하셨네 / 終敎睿算定神州
타향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내 땅이 아니라 / 他鄕信美非吾土
여장을 꾸려 서로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니 / 行李相將返故丘
죽은 사람 산 사람 안부 물으매 슬픔은 끝없고 / 弔死問生哀不盡
홀아비 과부 위로하며 곡소리 그치지 않았어라 / 悲鰥慰寡哭無休
여염집들은 죄다 불타서 잿더미만 담았고 / 閭閻蕩爇餘灰燼
텅 빈 마을에는 간간이 해골만 널려 있는데 / 村巷空虛間髑髏
집안에 두었던 주현은 어디로 갔는지 뵈지 않고 / 屋裏朱絃亡不見
상자 속의 서책은 흩어져 수습할 수 없었네 / 籠中黃卷散無收
백성들은 스스로 삼생의 괴로움 탄식하고 / 齊民自歎三生苦
임금은 깊이 국가 재생의 계책을 도모하셨지 / 聖主深圖再造猷
자극에서는 한밤중에 측루를 생각하고 / 紫極中宵思側陋
단루에서는 전석하여 방구를 물었어라 / 丹樓前席問旁求
외로운 백성 불쌍히 여겨서 정치에 애를 쓰고 / 哀傷煢獨勞王政
피폐한 민생 보살피느라 내수에 힘을 다하누나 / 存恤瘡痍盡內修
혼란이 극도에 이르면 다스림 생각하는 때가 됐나니 / 亂極思治時已在
성공을 거둠이 패배로 말미암는 이치는 당연한 것 / 功成因敗理應優
변방에 난리가 안 일어나 조두 소리 그치고 / 邊聲不起停刁斗
봉화 연기 일어나지 않아 군대 깃발 누웠어라 / 烽火無烟偃旆斿
군사들은 이 때 응당 철마를 쉴 테고 / 壯士時當休鐵馬
장군이 투구를 벗는 것을 장차 보게 되며 / 將軍佇見脫兜䥐
시인들은 황하 맑음을 칭송하는 시를 짓고 / 詞人擬作河淸頌
은사들은 바다로 들어가는 노래를 그치리 / 隱士休歌入海謳
태평을 즐거워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 / 相樂太平眞所樂
함께 왕의 교화를 도울 길이 어찌 없으리오 / 共添王化豈無由
남은 생애 지금은 다 같이 일 없이 한가해 / 餘生此日同無事
나란히 물가에 앉아서 낚싯대나 드리우세 / 並坐苔磯引釣鉤
차운 조완. 호는 삼산이다 [次韻 趙完 三山]
한가함 달래는 서책만 책상에 놓여 있어라 / 消閑黃卷靜床頭
사립문 정갈하여 속세의 인연 드물고 / 柴扉蕭洒塵緣少
초가집은 그윽하여 시골 정취 많구나 / 茅屋幽深野趣稠
붉은 여뀌 우거진 기슭 가랑비 속에 낚시 드리우고 / 細雨垂竿紅蓼岸
흰 마름꽃 핀 물가에 저물녘 바람 불 제 젓대를 분다 / 晩風橫篴白蘋洲
한 마리 소로 농사짓는 언덕에서 방공은 늙고 / 一犂壟上龎公老
백 가지 화초 우거진 정원에서 사마는 한가로워라 / 百卉園中司馬幽
적막한 연하 속에 은거해 서로 만나기 어렵고 / 寥落烟霞成契闊
아득한 천지에서 속세에 부침하는 일 떠났어라 / 蒼茫天地謝沈浮
젊어서부터 술과 바둑 즐기며 세상 명리 멀리했고 / 少從碁酒名場遠
늙어서는 낚시 땔나무나 하며 한가로운 흥취 유유하네 / 老作漁樵逸興悠
정갈한 거처는 무엇보다 속세의 속박 없는 게 좋고 / 淨界最憐無世累
한가로이 살매 도리어 시벗을 만남이 반가워라 / 端居還喜得詩流
안영처럼 오래 공경함을 나는 늘 흠모하노니 / 晏嬰久敬吾常慕
관중의 마음 통하는 벗에 그대 비길 만하도다 / 管仲神交子可儔
산 속 집에서 바람과 안개 속에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 山館風烟開謔浪
들판 정자에서 꽃과 버들 속에 한가로이 맘껏 노닐었네 / 野亭花柳任優游
서로 운자(韻字)를 부르며 시를 자주 썼나니 / 相呼玉韻詩頻寫
함께 금귀를 잡고 술을 몇 번이나 마셨던고 / 共把金龜酒幾謀
백년 평생 세월은 임하에 저물고 / 百載光陰林下晩
우리 두 늙은이 머리털 거울 속에 세었어라 / 兩翁蓬鬢鏡中秋
산골 늙은이는 북쪽으로 바라보며 고개 돌리고 / 山翁北望應回首
물가 늙은이는 남쪽을 보며 눈길만 보낼 테지 / 潭老南瞻謾騁眸
늙고 병든 몸 늘 침석에 엎드려 있으니 / 衰病纏身常伏枕
이별의 회포에 몇 번이나 누각에 기댔던고 / 別離傷抱幾憑樓
짚신에 죽장 차림으로 찾아가지는 않으나 / 芒鞋竹杖休尋訪
술병 놓고 지은 글 품평하며 술잔 주고받는다 / 樽酒論文間作酬
한 번 조정에서 계책을 잘못 세운 뒤로는 / 一自廟堂謬算策
구중궁궐 임금께서 국사에 근심 많았네 / 九重宵旰軫虞憂
전란의 먼지 천지 가득한데 금고 소리 울리고 / 塵昏宇宙金鼙動
불길 훑는 산하를 적군의 철마가 짓밟고 갔지 / 火獵山河鐵馬蹂
그 누가 조생이 형수 건너던 노 두드릴꼬 / 誰擊祖生荊水楫
전장(田將)은 적성의 북채를 아직 잡지 않았네 / 未援田將狄城枹
곳곳마다 백성들은 마구 살육을 당하고 / 人民處處紛誅戮
집집마다 재물을 죄다 수탈해 갔으니 / 玉帛家家恣括搜
사해가 혼란해 임금은 시름이 가득하고 / 四海奔波顔慽慽
벼슬아치들은 허겁지겁 피난을 갔어라 / 千官顚倒鬢颼颼
닭이 울어도 용루의 침소에 문안하지 않으니 / 鷄鳴休問龍樓寢
변방에는 응당 학가의 시름을 보태리 / 燕塞應添鶴駕愁
노신들은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있으랴 / 晉老可堪垂涕淚
군사들은 더 이상 창칼을 쓰지 않는구나 / 魏師無復試戈矛
군신들이 멀리 음산 저편에 가 있으니 / 君臣地隔陰山外
소식이 하늘 저편 외진 한해 쪽에 있어라 / 消息天分瀚海陬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하는 의리 알거니 / 主辱固知臣死義
국가가 수치를 당했거늘 도리어 내 살 길을 도모하리오 / 國羞還苟我生偸
타향이라 새해를 맞는 감회가 곱절로 더하고 / 他鄕倍感逢新歲
나그네 길에 예전 노닐던 곳 만나면 몹시 놀란다 / 逆旅偏驚値舊遊
덧없이 떠도는 신세 강호에 오래 머무노니 / 身世飄零湖外滯
세월은 빨리 흘러 나그네 곁을 지나가누나 / 年光倏忽客邊遒
백성들 도탄에 빠지니 간장은 끊어질 듯하고 / 生靈塗炭腸堪斷
국사에 대해 말이 없으니 혀는 감옥에 갇힌 듯 / 國事無言舌似囚
회포는 그야말로 향수에 젖은 것과 같은데 / 懷抱正同思故土
객지생활 다행히 함께 당주에 있었어라 / 橐囊幸共賴唐州
꿈속에서 아스라이 멀리 선영을 찾아가 / 迢迢客夢尋先壟
시름에 잠긴 나그네 혼 옛 동산 맴돌았네 / 黯黯羇魂繞某丘
옛 집터에 돌아오매 슬픔을 견디지 못해 / 迹返故墟悲不耐
황량한 주춧돌 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지 / 眼隨荒砌淚無休
동쪽 이웃집 버려진 우물엔 이끼만 자욱하고 / 東隣癈井封苔蘚
북쪽 거리엔 시체가 가득 해골만 널려 있어라 / 北巷塡屍亂髑髏
벽에 남은 책들을 잿더미 속에서 거두고 / 壁上餘書灰裏拾
풀 속에 뒹구는 깨진 기왓장을 빗속에 주워모은다 / 草間壞瓦雨中收
종묘사직 회복하도록 신명이 도와주시니 / 重恢宗社神明佑
이 나라 새로 일으킨 건 성상의 계책일세 / 再造寰區聖主猷
종들은 흩어지고 없으니 반가이 모일 수 있으랴 / 僮僕散亡焉得歎
자손들을 보전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 子孫全保復何求
산 사람 위문하고 죽은 사람 조문하매 성은이 넉넉하고 / 問生弔死燕恩浹
과부 보살피고 홀아비 돌보아 훌륭한 정치 폈어라 / 恤寡哀鰥漢政修
유해가 된 군사 측은히 여겨 보상금을 넉넉히 주고 / 師惻遺骸酬帛歛
전쟁 겪은 땅 불쌍히 여겨 조세 많이 감면해 주었지 / 地矜經戰免租優
훗날 우리 동국이 장차 소생할 것이니 / 他年東國將蘇息
지금 관서 지방에 군사 깃발이 거두어졌네 / 今日西關卷旆斿
수자리 서는 군졸들은 창칼 갈무리한 채 구름을 갈고 / 戍卒耕雲藏劍戟
건장한 남아들은 투구 벗고서 한가로이 휴식하리라 / 健兒休養解兜䥐
강산은 아득한데 변방에는 경보를 알려오는 사람 없고 / 江山漠漠邊無使
들판의 보리는 푸릇푸릇 거리에는 아이들 동요 소리 / 野麥靑靑巷有謳
나라 걱정에 이내 작은 충정이 속절없이 격할 뿐 / 憂國寸誠空自激
적을 무찌를 삼략을 얻을 길이 실로 없구나 / 殲戎三略實無由
강호에 사는 이 늙은이 끝내 어디에 쓰리오 / 江湖老叟終何用
세상 밖에서 남은 생애 낚시질로 보내리라 / 物外餘生寄釣鉤
차운 오상. 계유년(1633, 29세) 진사시에 두양과 동방 급제하였다 [次韻 吳尙 癸酉進士斗揚同榜]
세간은 명리 따위에는 고개 돌리지 않으시네 / 世間名利不回頭
초가집 처마에 해는 긴데 금서가 고요하고 / 茅簷日永琴書靜
집 앞 거리엔 사람 드물고 초목만 우거졌어라 / 門巷人稀草木稠
마음은 청풍에다 제월과 같이 맑고 / 心似淸風兼霽月
정신은 용포와 인주에 한가로이 노니네 / 神遊龍圃與麟洲
산수에 평소부터 살아온 터라 그 속에서 늙어가나니 / 溪山有素身將老
물고기와 새에 기심을 잊으매 흥취 더욱 그윽하여라 / 魚鳥忘機興轉幽
구름 가에 옥을 심으매 아침 해가 저물고 / 種玉雲邊朝日晩
숲 속에서 차 달이니 저녁 연기 피어오른다 / 煮茶林下夕烟浮
자취를 감추려니 매양 세상이 좁은 게 한스럽고 / 藏蹤每恨塵寰窄
옛날을 생각하며 속절없이 성인의 길이 멂을 슬퍼한다 / 思古空悲聖路悠
젊은 날 뛰어난 재주로 좋은 정치 이루길 기약했는데 / 少日才華期致澤
만년에는 시 읊고 술 마시며 풍류나 즐기시네 / 暮年詩酒屬風流
반계에서 어찌 주왕이 사냥 나오길 바라리오 / 磻溪詎望周王獵
율리에서는 진사의 짝이 되기에 충분하여라 / 栗里堪爲晉士儔
마치 공자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처럼 공부하니 / 如在孔門承訓誨
곧 문학이 상유를 능가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 卽看文學邁商游
뛰어난 문학의 재능 집안 대대로 이었으며 / 升堂翰墨傳家美
술상을 차려 놓고서 손님들을 불러들이네 / 斗酒盃盤見客謀
한 쌍의 나막신으로 매양 눈 덮인 남악 지나가고 / 雙屐每穿南嶽雪
하나의 낚싯대 때로 가을 옥담에 던지누나 / 一竿時擲玉潭秋
일곱 개 보배 구슬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따르고 / 七枚寶璧隨祥雲
한 쌍의 금빛 연꽃은 사람들 눈 부비고 본다 / 雙朶金蓮拭衆眸
대숲에다 집을 지었는데 색동옷 나란하고 / 家作竹林聯彩服
하늘을 도는 북두성이 동쪽 누각에 모였어라 / 天回北斗聚東樓
조숙한 덕이 천성에서 나온 것임을 내 아노니 / 吾知夙德由天性
신명이 고문을 돌보아 복록으로 보답하리라 / 神眷高門以福酬
무릎을 안고서 속절없이 제갈량처럼 노래하고 / 抱膝空勞諸葛嘯
시국에 상심하여 늘 범중엄처럼 몹시 근심하네 / 傷時恒切仲淹憂
병자년 난리 때의 고난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 追思丙子艱虞事
금구가 오랑캐에게 짓밟힌 사실 어이 차마 말하랴 / 忍說金甌羯狗蹂
한 모퉁이 외로운 성이 적의 공격 받을 제 / 一隅孤城方受箭
오경에도 차가운 성가퀴에는 북소리 그치지 않았지 / 五更寒堞不停枹
곰과 범 같은 장졸들 부르짖는 소리에 산이 찢어질 듯 / 熊咆虎吼山將裂
멧돼지 고래처럼 돌격해 오니 바다도 시름에 여윌 듯 / 豕突鯨奔海亦瘦
밝던 해도 빛을 잃어 하늘은 흐릿한데 / 白日無光天漠漠
슬픈 바람 피비린내 풍겨오고 비는 부슬부슬 / 悲風吹血雨颼颼
산천은 죄다 병사 주둔하는 곳이 되어 버리니 / 林泉盡入屯兵地
원숭이와 학은 속절없이 임금 연모하는 정 많아라 / 猿鶴空多戀主愁
한 달 동안이나 피난하며 쇄미한 신세 슬퍼하니 / 跋涉三旬悲瑣尾
전란의 먼지 자욱한 천 리에 창칼이 뒤덮었어라 / 烟塵千里蔽干矛
고향은 아득히 멀어 산은 첩첩 천 겹인데 / 鄕關杳杳山千疊
외로운 섬 망망한 바다 한 귀퉁이에 있었네 / 孤島茫茫海一陬
그곳에서 일백 식구 무사한 게 참으로 다행 / 百口無殤眞所幸
호공이 가졌던 비결을 홀로 훔칠 수 있었던 게지 / 壺公有訣獨能偸
고향 두곡은 잡초만 무성해 황폐해졌으니 / 蓬深杜谷成塵迹
학이 요양에 돌아오매 옛일에 감회가 일어라 / 鶴返遼陽感舊遊
하늘의 뜻 은연중 사람의 일에 호응하고 / 天意暗隨人事應
순박한 풍속은 날로 세월 따라 사라져 가네 / 淳風日逐歲華遒
진나라 관문에서 그 누가 닭 울음 흉내를 낼까 / 秦關孰效鷄鳴術
연옥에는 한나라 사람들이 많이 갇혔어라 / 燕獄猶多漢節囚
꿈속에서도 슬픔이 일어 세도를 보노니 / 夢裏興哀看世道
도성에 계신 임금님 소식 알 수 없어라 / 日邊消息阻皇州
천추에 이어온 예악 문물 어디로 사라졌나 / 千秋禮樂歸何地
당대의 영걸들 중년 나이에 땅 속에 묻혔네 / 一代勳英半世丘
남쪽은 두렵고 북쪽은 걱정돼 갈 곳이 없나니 / 畏南憂北無處適
군사 검점하고 군량 실어나르는 일 언제나 그칠꼬 / 點軍輸粟幾時休
오직 변방의 노인처럼 그저 운명에 맡기고 / 唯從塞老安時命
다시금 장공이 해골을 베고 누운 것 배우노라 / 更學莊翁枕髑髏
천 섬의 한가한 시름을 잔의 술로 씻을 수 있고 / 千斛閑愁盃可滌
만 숲의 경치는 붓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어라 / 萬林雲物筆能收
도사와 함께 도 닦는 비결을 얘기하고 싶을 뿐 / 思携羽客談眞籙
금문에서 큰 문장을 지어 올리길 원치 않는다 / 不願金門獻壯猷
다행히도 내가 공의 마을 근처에 사는 터라 / 幸我卜居仁里近
의기투합하는 사귐을 일찍이 이정에서 찾았지 / 神交早向鯉庭求
아양곡 속에서 마음을 서로 허여했고 / 峩洋曲裏心相許
난옥이 모인 속에서 학문이 이미 닦였어라 / 蘭玉叢中學已修
일산 기울이매 매양 친밀한 정에 기쁘고 / 傾蓋每欣情意密
침상 아래 절하고 넉넉한 예우를 받았었지 / 拜床仍荷禮容優
종횡하는 문장은 창칼을 가득 벌여놓은 듯 / 縱橫筆陣森戈戟
문단에 우뚝하여 깃발을 높이 세웠으니 / 崷崪詞壇建旆斿
만 마리 말이 발굽 모으매 마구(馬具)가 삼엄하고 / 萬馬攢蹄嚴韅靷
일천 군인 무기 잡으니 갑주(甲冑)가 정연하여라 / 千軍執銳整兜䥐
훗날 악부에서 새 시편들 고를 때 / 他年樂府調新律
응당 이소와 함께 초나라 노래에 들리라 / 應共離騷入楚謳
주신 시편에 답하지 못해 도리어 부끄러운데 / 辱贈未酬還自愧
새로 지은 시편을 보고 싶은들 무슨 수로 보리오 / 新篇欲覩更何由
남쪽 교외 달 밝은 밤에 자주 머리를 들고 / 南郊月夜頻擡首
창 밖에 성근 발을 드리우지 않고 달빛을 본다오 / 窓外疎簾不下鉤
[주D-002]형문(衡門) : 원래 나무를 가로로 걸쳐서 만든 소박한 문인데 후세에는 은사(隱士)의 집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진풍(陳風) 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여! 편안히 살 만하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하였다.
[주D-003]화사(花社) : 우화사(雨花社)의 준말로 절의 이칭이다. 석가(釋迦)가 설법을 하니 하늘에서 천신(天神)이 꽃비를 내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중울(仲蔚) : 한(漢)나라 때 사람인 장중울(張仲蔚)을 가리킨다. 그는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였는데, 그가 거처하는 곳에 쑥대가 우거져 사람이 파묻힐 정도였다 한다. 《三輔決錄》 자신을 장중울에 비긴 것이다.
[주D-005]도잠(陶潛)의 거리 : 자신이 사는 곳을 은자가 사는 거리에 비겼다. 도잠은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다. 그의 〈잡시(雜詩)〉에 “사람이 사는 지역에 집을 지었건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없어라.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하여 이럴 수 있는가. 마음이 속세와 머니 지역이 절로 외지네.[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한 것을 차용하였다.
[주D-006]반곡(盤曲)은 …… 굽었으며 : 반곡은 골짜기 이름으로 은자가 사는 곳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작자 자신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태항산(太行山) 남쪽의 반곡으로 돌아가는 벗 이원(李愿)을 전별하는 뜻에서 지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란 글에서 그곳의 낙토(樂土)임을 누누히 말하고 그곳의 지형을 말하면서 “휘감아 돌고 굽었으니 갔다가 돌아오는 것 같다.[繚而曲 如往而復]”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주D-007]도원(桃源)은 …… 그윽해라 : 마을을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비긴 것이다. 도원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어떤 어부가 시내를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복사꽃이 물에 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만났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즉 마을이 깊은 산골이라 찾아가는 길이 바깥 세상과 끊어져 더욱 고요함을 형용한 것이다.
[주D-008]삼천 길 백발 : 이백(李白)의 시 〈추포가(秋浦歌)〉에 “백발이 삼천 길이나 되니, 시름 때문에 길어진 듯하여라. 알지 못하겠네 밝은 거울 속,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하였다.
[주D-009]일만 섬 시름 : 인생의 많은 근심을 형용하였다. 유신(庾信)의 〈수부(愁賦)〉에 “일촌 크기 마음을 가지고, 만곡의 많은 시름을 담는다.[且將一寸心 容此萬斛愁]” 하였다.
[주D-010]장경(長卿) : 전한(前漢)의 문장가로 대표적인 부(賦)의 작자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字)이다.
[주D-011]자건(子建) :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아들 식(植)의 자이다. 그는 뛰어난 문장으로 명성이 높아,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영운(謝靈運)이 “천하의 재주는 모두 한 섬인데 조자건(曹子建)이 혼자서 여덟 말을 가지고 내가 한 말을 가지고 천하 모든 사람들이 한 말을 나누어 가졌다.” 하였다. 《釋常談 八斗之才》
[주D-012]금란(金蘭) :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하여 매우 두터운 우정을 뜻하는 말이다. 《주역(周易)》 〈계사 상(繫辭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예리함이 쇠를 끊는다.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3]교칠(膠漆) : 교칠은 아교와 옻인데, 이 둘을 합하면 매우 견고하게 붙는다. 후한(後漢) 때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의 우정이 매우 두터우니,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교(阿膠)와 옻[漆]을 섞으면 굳게 붙는다지만, 그래도 뇌의와 진중 두 사람의 우정만큼 굳지는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 하였다.
[주D-014]때로 …… 더럽히고 : 와력(瓦礫)은 깨진 기왓장과 자갈, 즉 매우 보잘것없는 물건을 뜻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지은 시(詩)를 가리킨다. 즉 자신이 상대방에게 시를 보내는 것을 겸사로 말한 것이다.
[주D-015]매양 …… 하였지 : 상대방이 좋은 시를 보내주었음을 말한다. 경거(瓊琚)는 보배로운 구슬로 좋은 시문을 뜻한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목과(木瓜)〉에 “나에게 목과를 주거늘 경거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주D-016]용순(龍脣) : 거문고를 가리킨다. 후한(後漢)의 순숙(荀淑)은 자가 계화(季和)인데, 용순이란 거문고를 가지고 있다가 어느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던 날 잃어버렸다. 3년 뒤 비바람이 크게 몰아치던 날 흑룡(黑龍)이 날아서 이응(李膺)의 방에 들어왔다. 이응이 자세히 보고는 “순계화(荀季和)의 구물(舊物)이다.” 하고 순숙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순숙이 다시는 날아가지 못하게 등에 금으로 글씨를 새겨 “유루(劉累)로써 누른다.”하고 비룡(飛龍)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說郛》 유루는 고대에 용을 잘 길들이는 사람이다.
[주D-017]먼지가 …… 어두워지고 : 변방에서 난리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즉 호란(胡亂)을 가리킨다. 옥새(玉塞)는 한대(漢代)에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에 있던 옥문관새(玉門關塞)의 약칭으로, 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삼정(三精)은 해, 달, 별이다. 《문선(文選)》 〈후한서광무기찬(後漢書光武紀贊)〉에 “구현에 회오리바람이 일고 삼정은 안개가 끼어 깜깜하였다.[九縣飆廻 三精霧塞]” 하였는데, 천하가 매우 혼란함을 뜻한다.
[주D-018]말이 금하(金河)를 건너니 : 청(淸)나라 군사가 쳐들어왔음을 뜻한다. 금하(金河)는 내몽고(內蒙古) 지역에 있는 강으로, 현재의 이름은 대흑하(大黑河)이다. 북방 교통의 중심지였다.
[주D-019]학가(鶴駕) :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에 “왕자교는 바로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인데, 일찍이 흰 학을 타고 가 후씨산(緱氏山)에 머물렀다.” 하였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왕세자의 거가(車駕)를 학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간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D-020]기미(羈縻)의 계책 : 적국과 적당히 친선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외환을 막는 방책이다. 전한(前漢)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난촉부로(難蜀父老)〉에 “대개 천자가 이적을 다루는 것은 그 이치가 기미의 방책을 써서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일 뿐이다.[蓋天子之牧夷狄也 其義羈縻勿絶而已]” 하였다. 청나라에 소현세자(昭顯世子) 등을 볼모로 보낸 것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원수인 청나라와 적당히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주D-021]남은 …… 고깃점 : 객지의 처량한 신세를 뜻한다. 두보(杜甫)의 시 〈증위좌승(贈韋左丞)〉에 “나귀 타고 삼십 년 동안, 장안의 봄을 나그네 신세로 살아 왔네. 아침이면 부잣집 문을 찾아가고, 저녁이면 살진 말의 뒤를 따랐어라. 남은 술과 식은 고깃점, 가는 곳마다 남몰래 몹시 서러웠네.[騎驢三十載 旅食京華春 朝扣富兒門 暮隨肥馬塵 殘盃與冷炙 到處潛悲辛]”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22]칡이 모구(旄丘)에 굵으니 : 모구는 앞은 높고 뒤는 낮은 언덕이다. 《시경》 〈모구편(旄丘篇)〉에 “모구의 칡은 어쩌면 이리도 마디가 굵어졌는가. 숙이여 백이여! 어찌 이리도 오랜 시일이 걸리는가?[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 하였다. 이는 여국(黎國) 임금이 나라를 잃고 위국(衛國)에 와서 머문 지가 오래 되어도 위국에서 자기네를 원조하여 본국으로 보내주지 않음을 원망한 것이다. 여기서는 타향에서 오래 피난했음을 뜻한다.
[주D-023]외가 기협(夔峽)에 생기니 : 기협은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삼협(三峽)의 이칭이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안사(安史)의 난 때 피난하여 이 지역에 살았다. 당시에 지은 해민(解悶) 12수 중 셋째 수에 “한 번 고향을 떠나 십년이 지나니 매양 가을 외를 보면 고향을 그리워한다.[一辭故國十經秋 每見秋瓜憶故丘]” 하였다. 역시 고향을 떠나 피난하고 있는 신세를 비유하였다.
[주D-024]모임을 …… 울었지 :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나라 죄수[楚囚]는 본디 춘추시대 초(楚)나라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정인(鄭人)에 의해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갇혀 있을 때 진 혜공(晉惠公)이 그를 불러다가 여러 가지 일을 물어보고 그에게 거문고를 주었더니, 그는 그곳에서도 자기 고향인 초나라의 음악을 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成公5年》 신정(新亭)은 정자 이름이다. 진(晉)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천도(遷都)했을 때에 당시 인사들이 한가한 날이면 신정에 나와서 술을 마셨다. 주의(周顗)가 그 가운데 앉았다가 “풍경은 다르지 않으나 눈을 들어 보매 산하가 다르구나.”라고 탄식하니, 모두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왕도(王導)가 낯빛을 바꾸며 말하기를 “응당 함께 왕실과 협력하여 중원을 회복해야 할 것이지, 어찌 초수처럼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하였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주D-025]타향은 …… 아니라 : 중국 삼국시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이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식객으로 있을 때 성루(城樓) 위에 올라가 울울한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등루부(登樓賦)〉에 “참으로 아름답지만 나의 땅이 아니니, 어찌 잠시인들 머물 수 있으리오.[雖信美而非吾土兮 曾何足以少留]” 하였다.
[주D-026]주현(朱絃) : 붉은 현(絃)으로 거문고 줄을 뜻한다. 여기서는 거문고를 가리킨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청묘의 슬은 붉은 현으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하여,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음(餘音)이 있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 壹倡而三嘆 有遺音者矣]” 하였다.
[주D-027]자극(紫極)에서는 …… 생각하고 : 임금이 숨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고심함을 뜻한다. 자극은 황제의 궁궐이다. 천제(天帝)는 자색(紫色)의 궁궐에 거처한다 하여 궁궐을 자미궁(紫微宮), 자궁(紫宮), 자달(紫闥) 등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측루(側陋)는 요(堯)임금이 사악(四岳)의 신하에게 인재를 구하기를 당부하면서 “이미 지위에 있는 사람도 드러내 밝히고 미천한 사람도 들어서 쓰도록 하라.[明揚側陋]” 한 데서 온 말로, 숨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다. 《書經 堯典》
[주D-028]단루(丹樓)에서는 …… 물었어라 : 역시 임금이 신하들에게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문제에 대해 의논하는 것을 뜻한다. 단루는 붉은 칠을 한 누각으로 궁궐을 가리킨다. 전석(前席)은 자리를 앞당긴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가 의기투합함을 뜻한다.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신하 가의(賈誼)와 얘기하다가 의기가 투합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앞으로 당겨 몸을 가의 가까이로 다가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史記 卷84 賈生列傳》 방구(旁求)는 《서경(書經)》 〈태갑 상(太甲上)〉에 “두루 뛰어난 인재를 구하여 후인을 깨우쳐 인도하셨다.[旁求俊彦 啓迪後人]” 한 데서 온 말로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을 뜻한다.
[주D-029]조두(刁斗) 소리 : 변방의 경보(警報)를 뜻한다. 옛날 군중에서 야경을 돌 때 쓰던 바라로 낮에는 이로써 밥을 짓고 밤에는 이로써 야경(夜警)의 딱따기로 사용하였다.
[주D-030]철마(鐵馬) : 철갑(鐵甲)을 입힌 전마(戰馬)이다.
[주D-031]황하 맑음 : 어진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이강(李康)의 〈운명론(運命論)〉에 “황하가 맑아지면 성인이 나온다.[黃河淸而聖人生]”고 하였고, 그 주(註)에 “황하는 천 년 만에 한 번 맑아지는데, 황하가 맑아지면 성인이 그때에 나온다.[黃河千年一淸 淸則聖人生於時也]” 하였다.
[주D-032]바다로 들어가는 노래 : 바다에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이 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옛날에 세상을 피하여 은둔하는 사람들이 신선을 찾아 바다로 갔던 것이다. 즉 세상을 피하여 은둔하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주D-033]한 …… 늙고 : 방공(龐公)은 후한(後漢) 말엽 양양(襄陽)의 고사(高士)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그는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다. 벼슬길에 나오라는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청을 거절하고 훗날 처자식을 거느린 채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小學 善行》
[주D-034]백 …… 한가로워라 : 사마(司馬)는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을 가리킨다. 그는 자신이 사는 집을 독락원(獨樂園)이라 하고 화초를 가꾸면서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古文眞寶 後集 獨樂園記》
[주D-035]안영(晏嬰)처럼 오래 공경함 : 벗과 오래 사귀면 친압(親狎)하기 쉬운데 늘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영은 춘추시대 때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차례로 섬긴 제(齊)나라의 명상(名相)으로 자는 평중(平仲)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하도다. 오래되어도 공경하는구나.[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하였다. 《論語 公冶長》
[주D-036]관중(管仲)의 …… 벗 : 춘추시대 제(齊)나라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어려서부터 서로 친구 사이였다. 포숙은 관중의 어짊을 잘 알아주었지만, 관중은 워낙 빈곤(貧困)하여 포숙을 항상 속이곤 했다. 그러나 포숙은 끝까지 관중을 믿어주어, 뒤에 관중이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 하였다. 여기서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가 생겼다. 《列子 九命》 즉 옥담을 포숙과 같은 좋은 벗이라 말한 것이다.
[주D-037]금귀(金龜) : 벼슬아치가 차는 거북 모양으로 된 인장이다. 당(唐)나라 하지장(賀知章)이 이백(李白)을 만나 서로 뜻이 맞으니 금귀를 잡혀서 술을 마셨다 한다. 이백이 고인이 된 벗 하지장을 생각하며 지은 시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에 “금귀로 술을 바꾸어 먹던 곳에서, 벗을 생각하며 눈물로 수건을 적시네.[金龜換酒處 却憶淚沾巾]” 하였다.
[주D-038]조생(祖生)이 …… 노[楫] : 적을 소탕하리라는 결심을 뜻한다. 조생은 동진(東晉)의 조적(祖逖)을 가리킨다. 조적이 예주 태수(豫州太守)로 있으면서 석륵(石勒)의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양자강을 건너다가 노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조적이 중원을 평정하지 못하고 다시 강을 건널 때는 이 강에 몸을 던지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양자강 이남의 지역을 확보하였다. 《晉書 卷62 祖逖傳》
[주D-039]전장(田將)은 …… 않았네 : 잃은 강토를 회복할 장수가 없음을 뜻한다. 전장은 전씨(田氏) 장수, 즉 진(秦)나라 말엽 적성령(狄城令)으로 있던 전담(田儋)을 가리킨다. 그는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종실(宗室)로 진나라가 혼란할 때 적성령으로 있다가 다시 제나라를 세웠다. 《史記 卷94 田儋列傳》
[주D-040]닭이 …… 않으니 : 용루(龍樓)는 한(漢)나라 때 태자가 거처하던 궁(宮)의 문 이름이다. 난리 중이라 경황이 없어 문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주D-041]학가(鶴駕) : 왕세자(王世子)의 행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에 “왕자교는 바로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인데, 일찍이 흰 학을 타고 가 후씨산(緱氏山)에 머물렀다.” 하였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왕세자의 거가(車駕)를 학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간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D-042]군신들이 …… 있어라 : 한해(瀚海)는 사막(沙漠), 또는 북해(北海)를 이르는 말로 북방을 가리킨다. 음산(陰山)은 흉노족의 땅에 있던 산으로, 사철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한다. 현재 내몽고(內蒙古)의 자치구(自治區) 남쪽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내흥안령(內興安嶺)까지 뻗어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이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신하들이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간 것을 가리킨다.
[주D-043]당주(唐州) : 진주(晉州)의 이칭이다.
[주D-044]구름을 갈고 : 송(宋)나라 관사복(管師復)이 숭산(崇山)에 은거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무슨 즐거움이 있느냐?”고 묻자 “언덕에 덮인 흰 구름은 갈아도 다함이 없고 못에 가득한 밝은 달은 낚아도 흔적이 없네.[滿塢白雲耕不盡, 一潭明月釣無痕]”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는 은자(隱者)의 고답적인 생활을 형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변방에 전투가 없어 군사들이 한가로이 농사나 짓고 있음을 형용하였다.
[주D-045]삼략(三略) :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는 고대의 병서(兵書)이다.
[주D-046]안연(顔淵)의 표주박 :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뜻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一簞食 一瓢飮]로 누추한 시골에서 지내자면 남들은 그 곤궁한 근심을 감당치 못하거늘,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여기서는 옥담(玉潭)의 삶을 형용하였다.
[주D-047]금서(琴書) : 거문고와 책으로 옛날 선비의 필수품을 뜻한다.
[주D-048]청풍에다 제월(霽月) : 성어(成語)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하여 비가 온 뒤의 맑은 바람이 불고 달이 뜬 깨끗한 풍광을 뜻한다.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周敦頤)의 맑은 인품을 형용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49]용포(龍圃)와 인주(麟洲) : 모두 전설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곳이다. 용포는 환룡포(豢龍圃)의 준말로 《습유기(拾遺記)》에 나오는 지명인데 하늘에서 향기로운 이슬이 내려 못을 이룬 것이라 한다. 인주는 봉린주(鳳麟洲)의 준말로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 나오는 지명인데 서해(西海)에 있다고 한다.
[주D-050]물고기와 …… 잊으매 : 자연 속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형용하였다. 기심(機心)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교사(巧詐)한 마음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와 놀았는데 갈매기들이 그를 의심하지 않고 함께 놀았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갈매기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하여 바닷가에 나갔더니 갈매기가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에게 기심(機心)이 생겼기 때문에 갈매기가 멀리한 것이다. 《列子 黃帝》 소식(蘇軾)의 시 〈강교(江郊)〉에 “낚시만 생각하고 고기는 잊고서, 이 낚싯대와 줄만 즐기노라.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며 사물의 변화를 완상한다.[意釣忘魚 樂此竿綫 優哉悠哉 玩物之變]” 하였다.
[주D-051]옥을 심으매 : 한(漢)나라 때의 효자인 양백옹(楊伯雍)은 낙양(洛陽) 사람으로 무종산(無終山), 즉 옥전(玉田)에 살면서 3년 동안 목마른 행인들에게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해 주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돌 한 되를 주면서 땅에 심게 하였다. 몇 년 뒤에 서씨(徐氏) 집에 딸이 있어서 옹백이 장가들고자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백옥 한 쌍을 폐백으로 바치라고 하였다. 이에 옹백이 돌을 심었던 밭에 가서 다섯 쌍의 백옥 구슬을 캐서 바치니 서공이 딸을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구름 속에서 용이 내려와 이들 부부를 맞이해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그 후손들이 밭 가운데 비석을 세워 그 일을 기록하였다 《搜神記》
[주D-052]반계(磻溪)에서 …… 바라리오 : 반계는 강태공(姜太公)이 낚시질하던 곳이다. 주왕(周王)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강태공이 위수(渭水) 가의 반계에서 낚시질하다가 사냥을 나온 문왕을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었다. 여기서는 옥담을 강태공에 비겼다. 임금의 지우(知遇)를 입어 세상에 뜻을 펴지 못했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53]율리(栗里)에서는 …… 충분하여라 : 율리는 유명한 은사인 진나라 도연명이 살던 고향 마을 이름이다. 즉 옥담이 고향에 은거하여 한가로이 살아가는 모습을 진나라 은사 도연명에 비유한 것이다.
[주D-054]상유(商游) : 공자의 제자로 문학에 뛰어났던 자하(子夏)와 자유(子游)의 병칭이다. 자하의 이름이 상(商)이다. 공자가 제자들의 특장을 말하면서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이다.” 하였다. 《論語 先進》
[주D-055]일곱 …… 구슬 : 일곱 아들을 비유하였다.
[주D-056]한 …… 연꽃 : 두 딸을 비유하였다.
[주D-057]색동옷 나란하고 : 아들들이 부모를 잘 봉양함을 뜻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은사(隱士)가 있었는데, 어버이를 모시는 효성이 지극하여 나이 일흔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小學 稽古》
[주D-058]하늘을 …… 모였어라 : 별이 모인다는 것은 덕망과 재주를 갖춘 선비들의 모임을 뜻한다. 진식(陳寔)이 두 아들인 원방(元方)ㆍ계방(季方)과 손자 장문(長文)을 데리고 순숙(荀淑)의 집에 가자 하늘에 덕성(德星)이 모이는 상서(祥瑞)가 나타났는데, 태사(太史)가 이것을 보고 “하늘에 덕성(德星)이 모였으니 500리 안에 현인(賢人)들이 회합했을 것입니다.” 하였다. 《後漢書 卷62 荀淑列傳》 여기서는 옥담의 일곱 아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D-059]무릎을 …… 노래하고 : 큰 뜻을 펴지 못하는 선비가 울울한 심정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을 때 양보음(梁甫吟)이란 노래를 지어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채 길게 불렀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포슬음(抱膝吟)〉이라고도 한다.
[주D-060]시국에 …… 근심하네 : 북송(北宋)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廟堂)에 높이 있을 때는 백성을 근심하고 강호에 멀리 있을 때는 임금을 근심하니, 이는 나아가도 근심하고 물러나도 근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때 즐거운가. 반드시 천하가 근심하기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 後集 岳陽樓記》
[주D-061]금구(金甌) : 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疆土)에 비유된다. 양무제(梁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혼자 말로 “나의 국토는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도 흠도 없다.”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南史 卷62 朱异傳》
[주D-062]한 …… 성(城) : 인조(仁祖)가 농성하다가 청(淸)나라에 항복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가리킨다.
[주D-063]쇄미(瑣眉)한 신세 : 전란으로 유리(遊離)하는 신세를 뜻한다. 《시경(詩經)》 〈패풍(邶風) 모구(旄丘)〉에 “자잘하고 자잘한 이 유리하는 사람이로다.[瑣兮尾兮 遊離之子]”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64]호공(壺公)이 가졌던 비결 : 후한(後漢) 때 호공(壺公)이라는 선인(仙人)이 시장에서 매일 약을 팔다가 석양이 되면 점포 머리[肆頭]에 달아놓은 병 속으로 뛰어들어가곤 하였다. 그것을 본 비장방(費長房)이 한번은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하나의 별천지(別天地)가 있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72下 費長房列傳》 여기서는 옥담이 두곡이란 곳에서 은거한 것을 비유하였다.
[주D-065]학이 …… 일어라 : 옥담이 피난갔다가 고향에 돌아왔음을 뜻한다. 요양(遼陽)은 요동(遼東)이다. 한(漢)나라 때 요동에 정령위(丁令威)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영허산(靈虛山)에 가서 도술을 배운 뒤에 학(鶴)으로 변신하여 요동에 돌아와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어떤 소년이 활로 자기를 쏘려고 하자, 학이 높이 날아올라 말하기를 “두루미로 변한 정령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그대로인데 사람은 그렇지가 않구나. 어이하여 신선이 되는 법 배우지 않아서 죽어 묻힌 무덤이 여기저기 쌓였는고.” 하고 한탄하면서 하늘 높이 사라졌다고 한다. 《搜神後記》
[주D-066]진(秦)나라 …… 낼까 : 포로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 등을 구출할 사람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에 억류되었다가 속임수를 써서 도망쳐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했다. 그러나 함곡관은 닭이 울기 전에는 관문(關門)을 열어주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한편 맹상군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진나라 소왕(昭王)은 사람을 시켜서 급히 맹상군을 쫓게 하였다. 닭이 울 시간은 멀었고 추격대는 바짝 뒤쫓아 오고 있는 터라, 상황이 몹시 다급하였다. 이 때 맹상군의 일행 중에서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닭 울음소리를 내자 인근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 댐으로써, 마침내 관문을 열어 주어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주D-067]연옥(燕獄) : 조선의 충신들이 청(淸)나라 감옥에 많이 갇혔음을 뜻한다. 남송(南宋) 때 충신 문천상(文天祥)이 원(元)나라가 침입해 오자 가산(家産)을 털어 군사를 일으켜 근왕(勤王)하여 신국공(信國公)에 봉해졌고, 그 후 원(元) 나라 장군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여 3년 동안 연옥(燕獄)에 수감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주D-068]변방의 노인 :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에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 도망쳐서 오랑캐 땅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두 위로하였는데, 그 노인은 태연하게 ‘이것이 도리어 복이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였다. 몇 달 뒤에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 여러 마리를 데리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축하하였는데,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였다. 그의 아들이 말 타기를 좋아하여 그 말들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니, 사람들이 와서 위로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였다. 1년 뒤에 오랑캐들이 대거 침입하자 장정들이 모두 나가 싸워 변방 근처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죽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만은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부자가 모두 온전하게 살 수 있었다.” 하였다.
[주D-069]장공(莊公)이 …… 배우노라 : 무상한 인생에 집착하지 않음을 뜻한다. 장공은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장자가 초(楚)나라로 가다가 해골을 만나서 말채찍으로 그 해골을 때리면서 묻기를 “자네는 삶을 탐하다가 도리를 잃어서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라를 망친 일 때문에 처형을 당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쁜 일을 하여 부모와 처자를 욕되게 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그 해골을 베고 누워 잤다. 밤중에 해골이 장자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자네의 말은 변사(辯士)와 같네. 그러나 자네가 말한 여러 가지는 살아 있는 사람의 허물일 뿐이요, 나처럼 죽은 사람은 그런 걱정이 없다네.” 했다고 한다. 《莊子 至樂》
[주D-070]금문(金門) :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인 금마문(金馬門)이다. 국가의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문학의 선비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
[주D-071]이정(鯉庭) : 자식이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는 곳을 뜻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례에 대하여 배웠느냐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일에서 유래한다. 《論語 季氏》 여기서는 이 시의 작자 오상(吳尙)이 옥담의 아들과 벗이기 때문에 옥담의 가정을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주D-072]아양곡(峨洋曲) : 벗끼리 마음이 통하는 지음(知音)을 뜻한다. 춘추시대 백아(伯牙)가 금(琴)을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면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 하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면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列子 湯問》
[주D-073]난옥(蘭玉) : 지란(芝蘭)과 옥수(玉樹)의 준말로, 남의 자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큰 문벌을 이루었던 사안(謝安)이 자질(子姪)들에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 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뜰에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世說新語 言語》
[주D-074]일산(日傘) 기울이매 : 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 수레의 휘장을 기울이고 그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로, 잠깐 동안 이야기해 보고서도 마음이 통함을 뜻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공자가 담(郯)에 가다가 길에서 정본(程本)을 만나고는 경개(傾蓋)하고 종일토록 이야기하며 몹시 친밀해졌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75]침상 아래 절하고 : 존경하는 어른을 배알함을 뜻한다. 후한(後漢) 때 제갈량(諸葛亮)이 방덕공(龐德公)을 찾아가면 반드시 방덕공이 앉은 침상 아래서 공경히 절하였고, 방덕공은 제지하지 않고 태연히 절을 받았다는 고사에서 생긴 말이다. 《資治通鑑》
[주D-076]악부(樂府)에서 …… 들리라 : 악부는 한(漢)나라 때 음악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민간의 노래를 채집하기도 하였다. 〈이소(離騷)〉는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대시인 굴원(屈原)이 불렀다는 노래이다. 즉 옥담의 시를 이소에 비겨 칭찬한 것이다.
[주D-077]주신 …… 본다오 : 옥담이 보내준 시편에 대해 화답하는 시편을 아직 보내지 못하다가 이제 시편을 보내지만 답하는 시편을 볼 길이 없으니, 멀리서 달빛을 보며 옥담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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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선생 화상 찬[六先生畵像贊] 주희(朱熹) |
염계선생(濂溪先生)
도가 없어진 지 천 년에 / 道喪千載
성인이 멀어지고 그 말씀도 사라졌을 때 / 聖遠言堙
선각자가 있지 않았다면 / 不有先覺
누가 우리를 열어 주었겠는가 / 孰開我人
글로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 書不盡言
그림도 그 뜻을 다 하지 못하였네 / 圖不盡意
맑은 바람 밝은 달 끝없는 경계 / 風月無邊
뜰의 풀은 서로 어울려 푸르도다 / 庭草交翠
명도선생(明道先生)
태양처럼 온화하고 산처럼 우뚝하며 / 揚休山立
옥 같은 얼굴에 금(金) 같은 목소리 / 玉色金聲
원기가 응집하여 / 元氣之會
온전함 타고났네 / 渾然天成
상서로운 해와 구름 같고 / 瑞日祥雲
온화한 바람과 단비 같았네 / 和風甘雨
용덕(龍德)이 바른 자리에 있어 / 龍德正中
그 혜택 널리 베풀어졌도다 / 厥施斯普
이천선생(伊川先生)
규구(規矩)처럼 원만하고 방정하고 / 規員矩方
먹줄처럼 곧고 준(準)처럼 공평하였네 / 繩直準平
참으로 군자다운 분 / 允矣君子
실로 대성(大成)하셨도다 / 展也大成
포백(布帛)과 같은 문장 / 布帛之文
숙속(菽粟)과 같은 맛이로다 / 菽粟之味
덕을 아는 이 드무니 / 知德者希
누가 그 귀함을 알겠는가 / 孰識其貴
강절선생(康節先生)
하늘이 인걸을 내놓아 / 天挺人豪
뛰어난 자질 세상을 뒤덮었네 / 英邁蓋世
바람을 타고 우레를 채찍질하여 / 駕風鞭霆
끝없이 두루 살폈네 / 歷覽無際
손으로 월굴(月窟)을 만지고 / 手深月窟
발로 천근(天根)을 밟았도다 / 足躡天根
고요함 속에 고금을 넘나들고 / 閑中今古
취한 중에 건곤을 보았도다 / 醉裏乾坤
횡거선생(橫渠先生)
젊어서는 손자(孫子)와 오기(吳起)를 좋아하다가 / 早悅孫吳
만년에는 노불(老佛)에서 도망하였네 / 晩逃佛老
과감히 사석을 거두고 / 勇撤皐比
한 번 변하여 도에 이르렀네 / 一變至道
정밀하게 생각하고 힘써 행하여 / 精思力踐
오묘한 비결 글로 썼네 / 妙契疾書
완고함을 바로잡은 가르침 / 訂頑之訓
나에게 광거(廣居)를 보여주었네 / 示我廣居
속수선생(涑水先生)
독실하게 배우고 힘써 실천하여 / 篤學力行
절개 맑고 높았네 / 淸脩苦節
덕 있고 말씀도 남겼으며 / 有德有言
공적이 있고 의열도 남아 있네 / 有功有烈
심의(深衣)를 입고 큰 대를 차고 / 深衣大帶
공손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가네 / 張拱徐趨
유상의 기풍 늠름하여 / 遺象凜然
경박한 사람 숙연하게 하네 / 可肅薄夫
[주D-001]맑은 …… 경계 : 송(宋)나라 황산곡(黃山谷)이 주렴계(周濂溪)의 인품을 칭찬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하였다.
[주D-002]뜰의 …… 푸르도다 :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뜰의 풀을 뽑지 않고 “나의 의사와 일반이다.[與自家意思一般]” 하였다. 즉 뜰의 풀도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의 기운을 받은 것으로서 사람의 뜻과 같다 하여 깎지 않았다는 것이다. 《性理大全 卷39 ; 周子》
[주D-003]용덕(龍德)이 …… 있어 : 《주역(周易)》의 건괘(乾卦) 육효(六爻)를 변화가 신묘불측하다 하여 모두 용으로 상징하였는 바, 용덕은 훌륭한 덕으로 천자나 군자의 덕을 상징한다. 건괘 문언(文言)에서 “용의 덕을 가지고 중정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龍德而正中者也]” 하였다.
[주D-004]준(準) : 수평을 재는 기구.
[주D-005]포백(布帛)과 …… 맛이로다 : 평범하면서도 절실한 것을 이르는 말.
[주D-006]월굴(月窟)을 …… 밟았도다 : 소강절이 음양을 궁구한 것을 통틀어 일컬은 말. 《주역(周易)》에서 하지(夏至)에 아래에서 한 음(陰)이 처음 생긴 것이 구괘(姤卦)로서 이를 ‘월굴(月窟)’이라 하고, 동지(冬至)에 한 양(陽)이 아래에서 처음 생긴 것이 복괘(復卦)로서 이를 ‘천근(天根)’이라 한다.
[주D-007]광거(廣居) : 마음을 인(仁)에 두는 것. 맹자가 “천하의 넓은 집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 하였다. 《孟子 膝文公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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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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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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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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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年甲辰 先生三歲
二十一年乙巳 先生四歲
二十二年丙午 先生五歲
孝宗弘治元年戊申 先生七歲
二年己酉 先生八歲
三年庚戌 先生九歲
四年辛亥 先生十歲
五年壬子 先生十一歲
六年癸丑 先生十二歲
七年甲寅 先生十三歲
八年 燕山君元年 乙卯 先生十四歲
九年丙辰 先生十五歲
十年丁巳 先生十六歲
十一年戊午 先生十七歲
十五年壬戌 先生二十一歲
十七年甲子 先生二十三歲
武宗正德元年恭僖大王元年 丙寅 先生二十五歲
三年戊辰 先生二十七歲
四年己巳 先生二十八歲
五年庚午 先生二十九歲
八年癸酉 先生三十二歲
九年甲戌 先生三十三歲
世宗嘉靖元年壬午
二十年辛丑
三十六年丁巳
二年戊辰昭敬大王元年
三年癸亥仁祖大王元年
毅宗崇禎元年戊辰
二十三年庚寅孝宗大王元年
二十九年丙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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致祭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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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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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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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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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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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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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廷未肯用虛名。野外無田可耦耕。進退卽今難着脚。乞爲留院老書生。
山中一夜笑聲和。山外紛紛誶語多。今日吾儕幸無事。枕流堂裏一長歌。聖徽同宿。夜半。使子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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